< 각 신문사 당선시> 2008년 평화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좀들이쌀 / 김남수 이사하면서 지하실 구석진 곳에 슬그머니 놓고 왔다 묶인 짐들이 제자리를 찾는 사나흘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주소 바뀐 집에서 놓고 온 좀들이쌀 항아리를 생각했다 오래된 기억들이 출렁거렸다 뒤주 옆 좀들이쌀 항아리 바닥 긁는 소리 단잠을 깨우는 날이면 만장기도 없는 상여 한 채가 절뚝절뚝 뚝방 길을 밀고 떠나갔다 둘째 언니는 여전히 아침저녁 놋숟가락으로 어른 수만큼 쌀을 덜어냈다 항아리에 조금씩 쌓이는 좀들이쌀 이장집 할머니가 함지박 이고 사립문을 들어서면 반도 못 찬 항아리가 텅 비었다 그런 날이면 상여 한 채가 뚝방 너머로 사라지거나 타지에서 흘러온 영월댁이 몸을 풀었다며 어른들의 근심이 우물가로 모여들었다 이사한 지 두 주일 지나 손잡이 떨어져 나간 그 항아리를 찾아 나섰다 마음 앞세우고 서둘러 가는 길 예고 없이 비가 내렸다 골목의 수평이 기우뚱 발목을 적셨다 [당선소감] "에미야 오늘 쉬는 날인데, 방문 콕 닫고 들어가더니 어찌 이제 나오냐? 나는 네가 안 나올 줄 알면서도 옥중 춘향 이도령 기다리듯 했어야." 내 방문 앞까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해거름까지 말벗을 기다리던 당신. 닫힌 방문 앞에서 기다려준 시간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직장에 다니며 뒤늦게 시를 쓰겠다고 열심을 내는 막내딸을 대견스러워 하면서도, 때로는 투정처럼 외로움을 하소연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시를 접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더 컸습니다. 다시는 써질 것 같지 않던 시(詩), 마음 추스르며 버려둔 원고 뭉치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는 오래 시에 주려 있었습니다. 시를 찾아 먼 길을 걸어와 뒤늦게 이제 시를 만납니다. 제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님과 주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시밭을 깊게 갈아 엎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한 분 한 분 이름을 부르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들이 있습니다. 시의 길로 불러주신 고 임영조 선생님, 걸음마를 떼게 하신 이승훈 한양대 교수님, 이지엽 경기대 교수님, 문효치 선생님, 식어 가는 심지에 불을 지펴주신 마경덕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곁에서 응원해주던 딸 우리와 시인의 아들이 되고 싶다던 기철이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약력= ▲1954년 충남 부여 출생 ▲73년 부여여고 졸업 ▲2003년 제21회 마로니에 백일장 시 입선 ▲2003~2004년 기독교 세진회 계간 「새 생활 안내」에 시 연재 ▲시사랑문화인협의회원 ▲사회복지법인 '함께하는 사랑밭' 근무 ▲본명 김남순 [심사평] 지난해보다 작품 수는 무거웠다. 질도 훨씬 키가 높았다. 평화신문 신춘시의 수준이 여기에 닿았다고 흐뭇해 하며 심사를 했다. 심은섭씨의 '내비게이션'은 상상력과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각별하며 신시대 흐름에 따르는 새로움을 차고 들어가는 가동력이 있긴 했지만, 덜 삭은 듯 어색한 표현들이 아쉬웠다. 서옥섭씨의 '류(柳)가 들고 온 네프리솔 250'은 산뜻하고 유쾌한 표현과 이미지가 눈길을 끌었고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신선미가 마음을 끌었는데도, 선뜻 당선작으로 하기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이 심사위원이 일치하는 의견이었다. "너무 눈부셔 늙어가는 그 여자 바람났네/한 3일 구멍 뚫린 무처럼 바람들었네" 등의 표현은 글솜씨의 진경에 들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구절들이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정작 마지막까지 시간을 끌면서 당선작을 내지 못하고 숙고하게 한 것은 강미성씨의 '직소폭포'와 김남수씨의 '좀들이쌀'이었다. '직소폭포'는 세련된 문장과 시를 몰고가는 역동적 힘이 보통 수준을 넘었고, 오랜 연륜을 느끼게하는 그의 시의 근육은 탄탄하기만 했다. 약점이라면 여러 편의 시가 고른 수준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지적됐다. 김남순씨의 <좀들이 쌀>도 만만치 않은 연륜과 흘러간 시절의 작은 항아리 하나에 한 시대의 슬픔과 배경을 끌어 모아 잔잔한 감동을 쉽게 놓지 못하게 하는 내성의 깊이가 누구도 따를 수가 없었다. 더욱 다섯 편의 시가 고른 수작이었고,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해도 될 듯했다. 시의 분위기가 좀 어둡다는 것이 흠이라는 지적은 있었다. 그러나 시의 완성도가 그쯤의 흠을 누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당연 당선작으로 할 만하다는 것이 심사위원들 생각이었다. 강미성씨는 어디에서든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믿고 아쉬움을 전한다. 심사 : 김종철ㆍ신달자 == [한국일보 2008 신춘문예 시 당선작] 차창밖, 풍경 빈곳 정은기 철길은 열려진 지퍼처럼 놓여있다, 양 옆으로 새벽마다 물안개를 뱉어내는 호수와 <시골밥상>이니 <대청마루>니 하는 간판의 가든촌이 연대가 다른 지층처럼 어긋나 있다 등 뒤로 떨어지는 태양이 그림자로 가리키는 북동의 방향으로 질주하는 춘천행 무궁화호 열차 지퍼를 채우듯 튿어진 자리를 꿰매며 달려가는 것은 열차의 속도였다 기차의 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것은 긴장을 잃고 곡선으로 휘어지는 구간에서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곳에 자리를 튼 마을이 호수에 기대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가정식 백반>의 가정을 찾아 속도에 몸을 싣고 거꾸로 달린다 이곳에서는 두고 온 먼 곳의 시간을 추억하는 일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관람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박물관을 찾는 일만큼이나 자본주의적이다 직선의 끝에는 목적지가 있어 마을은 머지않아 먼지의 전시관이 될 것이다 곁길로 샐 수 없는 것이 슬프다는 것을 호수는 알고 있을까 튿어진 굴곡을 따라 살을 드러낸 풍경의 허리를 휘감고 돌아가는 기차, 가끔씩 창밖으로 활처럼 휘어지는 기차의 곡선을 본다면 퇴락을 거듭하는 호숫가 옆, 한 마을이 생각날 것이다 ■ 인터뷰-"가만히 방향의 이정표되는 작품 쓰고 싶어" 정은기(28)씨의 시작(詩作)은 문학보단 여성에 대한 선망으로 시작됐다. 남자 중학교를 졸업하고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진학한 정씨는 여학생과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아 문예반에 가입했다. 착각이었다. 남자반은 여자 선배, 여자반은 남자 선배의 지도로 엄격한 합평회가 열렸다. 살가운 이성교제는 물 건너갔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새록새록했다. “글 잘 쓴다는 칭찬에 매료됐다. ‘공부 잘한다’ 같은 칭찬과는 달랐다. 칭찬 받고 싶어 시를 썼다. 나아가 내가 쓴 작품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후 정씨에게 세계의 중심은 시(詩)가 됐다. 무슨 일을 선택하든 글을 쓰는 일과 연관지었다. 대학 전공은 어문학과를 택했고, 문학회, 독서토론회, 학보사 등 글쓰기와 관련된 동아리를 찾아 몸담았다. 처음 들어간 학교와 편입한 학교 모두에서 학보사 공모 문학상에 당선됐다. 대학원에 진학해선 ‘문예창작단’이란 이름의 정예 스터디 그룹에서 창작 공부에 매진해왔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다보니 정씨의 일상은 문학으로 고취되고 독려받는 일의 연속이다. “시는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의 정점”이라고 평한 그는 “시 쓰는 사람들이 종종 드러내는 오만하리만치 대단한 우월감은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최근 2, 3년간 가장 돋보이는 ‘예비 작가’였다. 신춘문예나 신인문학상 최종심 후보에 이름을 올린 것도 여러 차례. 그는 “등단 안해도 열심히 쓰면 된다고 하다가도 12월만 되면 (신춘문예 당선에) 집착하게 되는 마음을 다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며 그간의 심적 부담을 토로했다. 아울러 문청이라면 누구나 희망하는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게 돼 더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나만의 습작법’으로 정씨는 ‘연작시 쓰기’를 소개했다. 한 사물에 대해 구체적 묘사에서 추상적 의미화로 단계를 옮겨가며 연작시를 쓰는 것이다. 정씨는 상투적 의미가 많이 부여돼 있지 않은 소재를 찾아 100여 개의 시를 써보는 훈련이 필력을 키우는데 보탬이 됐다고 말했다. 휴대폰 녹음이나 문자 기능을 이용해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해 둔다는 정씨는 “이쪽으로 가라고 외치기보단 가만히 서서 방향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 당선소감-"내속에 들끓었던 고민과 갈등에 위안" 오래전부터 책을 읽을 때면 나는 저자의 약력부터 살피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책의 가장 처음에서 남들과 다른 특별한 이력 한두 개쯤 발견하고 나면 어떤 특별함도 없는 나의 이력을 지리멸렬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곤 했다. 시의 문장은 어떤 비기와도 같은 천재성과 결부되어 있다고 믿었었고 조용히 우리 가족의 기원을 의심해보기도 했었다. 나는 왜 천재가 아닌가하는 치기어린 열등감이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가족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내가 받은 사랑을 나누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늘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서툴렀다. 때문에 너무 쉽게 타인의 상처에 이름을 붙이고 긍정하려했고 뒷전에 물러나서는 슬플 것 없는 내 삶에 대해 불평하기도 했다. 매우 어리석었다. 계속되는 낙선의 고배를 마시는 동안 나에게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시는 특별한 이력이나 천재성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배우게 되었다. 나는 오히려 평범한 내 삶과 무거운 엉덩이와 큰 머리, 굵은 손가락,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무대뽀식의 내 젊음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 한자리에 끝까지 앉아서 오랫동안 응시하고 무겁고 육중한 시를 쓰는 일이 내 체질에 어울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당선소식을 전해 들었던 지난 밤, 아직은 설익은 작품으로 당선된 것에 대해 내 속에서 들끓었던 많은 고민과 갈등에 작은 위안을 삼고자 한다. 무엇보다 부족한 작품에서 가능성을 보아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꾸준하게 오래도록 쓰겠다는 다짐으로 감사드린다. 참된 삶으로 이끄는 시를 쓰도록 격려해주신 김재홍 교수님과 게으름과 나태에 끊임없이 죽비를 내려주시던 박주택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늘 애정을 가지고 시를 보아준 思詩美의 호남형, 학중형 그들보다 먼저 이름을 걸게 되어 미안하다. 경희문예창작단에서 함께 시를 쓰고 있는 재범형, 경섭이, 은지, 규진이 그리고 많은 선후배들, 사랑한다. 아직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서툴지만 그들에게 하나둘 배우고 있어 매우 소중한 친구들이다. 그리고 당선 소식에 눈물로 축하해주신 우리 김복순 여사님과 아버지 정채용씨, 동생 다금이, 사랑합니다. ●정은기(鄭恩技)-1979년 충북 괴산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 ■ 심사평-"언어적 감수성·말걸기의 새로움 번뜩" 시는 말 걸기다. 시적 대상에게 말 걸기. 하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아직 시가 아니다. 시적 대상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결국 독자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다. 시는 대화다. 그러니 시적 대상과의 대화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독자와의 대화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수많은 응모작 가운데 한 작품, 즉 새로운 시인을 가려내는 과정은 곧 개성적인 대화 능력을 선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이 최종적으로 여섯 편의 응모작을 논의 대상으로 삼았다. 홍종화의 <투명한 돌밭>, 신희진의 <온난화>, 임재정의 <나를 겨누다>, 임경섭의 <자동판매 김대리>, 박은지의 <뿔의 냄새>, 정은기의 <차창 밖, 풍경의 빈 곳>. 이 가운데 먼저 네 편을 제외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투명한 돌밭>은 비유와 묘사가 탁월했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온난화>는 구성과 전개가 자연스러웠으나 결말이 어색했다. <나를 겨누다>는 단단한 기본기가 눈길을 끌었지만 애인과의 이별과 사과를 깎는 행위가 작위적으로 보였다. <자동판매 김대리> 역시 시적 주체의 행위가 개연성을 갖지 못했다. 남은 두 작품은 박은지의 <뿔의 냄새>와 정은기의 <차창 밖, 풍경의 빈 곳>.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박은지의 작품이 성숙했지만, 표현의 차원에서는 정은기의 작품이 뛰어났다. 결말 처리는 박은지가 우수했고, 도입부는 정은기가 참신했다. 두 응모작은 상호 보완 관계에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정은기의 언어적 감수성에 점수를 주기로 했다. 시적 대상에게 말을 거는 방식의 새로움이 독자와의 신선한 대화로 이어진 것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는 동시에 최종심에 오른 다섯 분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부디 출발 시점에 연연해하지 말고, 길게 보시기 바란다. 10년, 20년 뒤 누가 더 좋은 시를 쓸 것인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심사위원=정호승(시인) 이숭원(문학평론가ㆍ서울여대 교수), 이문재(시인) [대구매일 2008 신춘문예 시 당선작 ] 파문 이장근 결혼을 코앞에 두고 여자는 한강에 투신했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물은 여자를 결과로만 받아들였다 파문을 일으키며 열리고 닫히는 문 물은 떨어진 곳에 과녁을 만든다 어디에 떨어져도 적중이고 무엇이 떨어져도 적중이다 투신한 죽음도 다시 떠오른 삶도 물은 과녁을 만들어 적중을 알렸다 적중을 알리며 너는 왔다 온몸에 파문처럼 돋던 소름 빗나간 너의 말도 떨어지는 족족 적중했다 사랑처럼 민감한 것이 또 있으랴 이유 없이 떠나도 결과는 적중이었다 이유 없이 너는 가고 나는 안개 같은 거짓말로 너를 미워했다, 그리워했다, 지웠다, 썼다 사랑처럼 가벼운 것이 또 있으랴 구름이 되어 제멋대로 문장을 만들다 지치면 낱글자가 되어 떨어졌다 지금도 비가 온다 몸에 소름이 돋는다 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 밤 이 세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랑이 투신할 것인가, 투신하는 족족 파문을 일으키며 적중할 것인가 ------------------------------------ △1971년 경북 의성 출생 △한남대학교(대전) 국어교육과 졸업 △세일중학교(서울) 교사(국어)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서른 분의 작품을 다시 검토해 본 결과 남은 작품은 ‘황소’(서은교), ‘아가리 마을’(이규), ‘가야동 계곡’(김순자), ‘아스팔트 칸트’(기우연), ‘입이 없는 비평’(최문희), ‘나무별똥’(문성록), ‘불안의 거처’(김지고), ‘일획’(정수원), ‘마네킹’(박정수), ‘소금밭의 기억’(김중곤), ‘바늘’(김명희), ‘파문’(이장근), ‘토마토’(하숙욱), ‘등피를 닦으며’(박선영) 등이었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신춘문예의 특성상 새로운 것에 천착한 나머지 일부러 문장을 비틀고 기발한 착상에 몰두해 난삽한 기교의 과잉에 의한 억지가 많았다. 비튼 문장이나 발상이 독특한 감각으로 살아나 신선한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새로운 감수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표현하기까지의 데생의 기초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냥 시단의 한 흐름을 따르고 있는 난해한 아류의 것들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새로움도 있고 표현의 신선함을 주는 작품으로 일획’'마네팅’'소금밭의 기억’'바늘’'파문’'등피를 닦으며’ 등을 들 수 있었다. 작품 하나 하나 놓고 볼 때 모두 독특한 포즈을 지니고 있어 오래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투고한 작품이 모두 고르다는 점에서 이장근의 ‘파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파문'은 자칫 통속적으로 떨어질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독특한 시적 비전에 의해 삶의 진지성과 감동을 주는 데 효과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이 시인이 지닌 삶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더 깊은 비전에 천착해 좋은 작품을 생산하길 바란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정호승(시인) [문화일보 2008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문 정] 하모니카 부는 오빠 문 정 오빠의 자취방 앞에는 내 앞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사철나무가 한 그루 있고 그 아래에는 평상이 있고 평상 위에서는 오빠가 가끔 혼자 하모니카를 불죠 나는 비행기의 창문들을 생각하죠, 하모니카의 구멍들마다에는 설레는 숨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이륙하듯 검붉은 입술로 오빠가 하모니카를 불면 내 심장은 빠개질 듯 붉어지죠 그때마다 나는 캄보디아를 생각하죠 양은 밥그릇처럼 쪼그라들었다 죽 펴지는 듯한 캄보디아 지도를 생각하죠, 멀어서 작고 붉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 오빠는 하모니카를 불다가 난기류에 발목 잡힌 비행기처럼 덜컹거리는 발음으로 말해주었지요, 태어난 고향에 대해, 그곳 야자수 잎사귀에 쌓이는 기다란 달빛에 대해, 스퉁트랭, 캄퐁참, 콩퐁솜 등 울퉁불퉁 돋아나는 지명에 대해, 오빠의 등에 삐뚤빼뚤 눈초리와 입술들을 붙여놓은 담장 안쪽 사람들은 모르죠 오빠의 하모니카 소리가 바람처럼 나를 훅 뚫고 지나간다는 것도 모르죠 검은 줄무늬 교복치마가 펄렁, 하고 젖혀지는 것도 영원히 나 혼자만 알죠 하모니카 소리가 새어나오는 그 구멍들 속으로 시집가고 싶은 별들이 밤이면 우리 집 평상 위에 뜨죠 오빠가 공장에서 철야작업 하는 동안 별들도 나처럼 자지 않고 그냥 철야를 하죠 ■ 고통을 긍정으로 극복하는 힘 돋보여 시 심사평 최종심까지 논의된 작품은 김강산의 ‘천렵’, 김연아의 ‘밤의 지평선 아래’, 김중곤의 ‘불알을 끼우며’, 문정의 ‘하모니카 부는 오빠’ 등 4편이었다. 이 중 ‘천렵’은 천렵의 의미가 은유화되지 못하고 지극히 식상하다는 점에서, ‘밤의 지평선 아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힘이 약하다는 점에서, ‘불알을 갈아 끼우며’는 해학적이라는 장점은 있으나 산문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각각 제외되어 자연히 ‘하모니카 부는 오빠’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당선작 ‘하모니카 부는 오빠’는 현실적 고통을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고도 고통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데에 큰 장점이 있는 시다. 그리고 그 고통을 아픔으로 느끼게 해주는 게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나 힘 같은 것으로 느끼게 해주는 미덕이 있는 시다. 그래서 이 시는 전반적으로 화사하다. 그렇지만 그 화사함이 추하거나 가볍지 않고 따뜻하고 정답다. 진솔하고 꾸밈 또한 없다. 마치 한 소녀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꿈과 희망의 속삭임을 듣는 것 같다. 현실 인식의 시들이 대체로 부정적이고 어두운 데 반해 이 시는 긍정적이고 밝다. 캄보디아에서 온 한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삶 속에 있는 ‘킬링필드’의 고통조차도 모성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 앞으로 큰 시인으로 성장해나가길 기대해본다. 심사위원 / 오세영·정호승 ■ 몇 년 동안 안고 산 詩의 그늘 걷혀 시 당선소감 - 문 정 짙은 안개 속으로 출근을 합니다. 햇살은 아직 산속에서 종종거리고 있습니다. 안개에 어둠이 잔뜩 물려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 갑갑하기도 무섭기도 합니다. 나는 앞차의 엉덩이에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안개 속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갑니다. 안개가 쉽게 걷힐 것 같지 않습니다. 3교시 수업 끝내고 쉬는 시간 불현듯 전화를 받습니다. 사방의 안개가 걷힙니다 몇 년 동안 꼭 안고 살아온 시의 그늘도 걷힙니다. 나는 벌판에 전신주처럼 서 있습니다. 이곳저곳으로 열심히 당선소식을 퍼 나릅니다. 흥성거리는 햇살이 벌판에 가득 차올라 있습니다. 금방 사연이 바짝 말라버립니다. 나는 홀로 두리번두리번, 꼼짝없이 벌판에 붙박여 있습니다. 알알이 드러난 내 몸뚱이를 내려다봅니다. 부끄럽습니다. 다시 어딘가로 숨고 싶습니다. 내일이면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 내 몸뚱이 가려줄 어둠 한 폭 정도는 여유가 있겠지요. 먼저 부족한 시를 선뜻 뽑아, 시의 꽁무니에 불을 붙여주신 오세영 선생님, 정호승 선생님 고맙습니다. 허락도 없이 시의 소재로 차용한 이 땅의 그늘 깊은 사람들께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땅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으로 시를 채찍질해주던 여러 스승들과 친구들에게도, 고집불통 글쟁이 남편 때문에 내내 마음에 바람만 안고 살아가는 아내에게도, 올망졸망 예쁘고 순결한 내 어린 눈망울들에게도, 고마움 한 구절 이렇게 뽑아 올립니다. ▲본명 문정희 ▲1961년 전북 진안군 백운면 출생 ▲전북대 국문과 ▲전주 우석고 국어교사 [영남일보] 2008 영남일보 문학상 시 당선작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 조혜정 처음 찍은 발자국이 길이 되는 때 말의 반죽은 말랑말랑 할 것이다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쏙독새는 온몸으로 쏙독새일 것이다 아랫도리를 겨우 가린 여자와 남자가 신석기의 한 화덕에 처음 올려놓았던 말. 발가벗은 말. 얼굴을 가린 말. 빵처럼 향기롭게 부풀어 오른 말. 넘치고 끓어오르는 말. 버캐 앉는 말. 빗살무늬 허공에 암각된 말. 처음 만난 노을을 허리띠처럼 차고 만 년 전 바람이 만 년 전 숲에서 불어온다 뒤돌아보는 여자의 열린 치맛단 아래 한번도 씻지 않은 말의 비린내 훅 끼쳐온다 여자가 후후 부풀린 불씨가 쏙독새 울음소리에 옮겨 붙는다 화덕 앞에 쪼그린 아이들 뜨겁게 반죽한새소리를 공깃돌처럼 굴리며 논다 진흙 같은 노을 속에 층층 켜켜 찍히는 손가락 자국들, 귀먹은 아이는 자꾸 흩어지는 소리를 뭉치고 굴린다 깊고 먼 어둠을 길어 올려 둥글게 반죽한다 천 개의 나뭇잎들이 천 개의 귀를 붙잡고 흔드는 소리, 목구멍 속에서 쏙독새 울음소리가 허공을 물고 터져나온다 바람이 석류나무 아래서 거친 숨결을 고르자 처음부터 거기 살고 있는, 아직도 증발하지 않은 침묵의 긁힌 알몸이 보인다 나무는 나뭇잎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쏙독새는 온몸으로 쏙독새인 그 길이 보인다 [국제신문] [2008년] 시 당선작 -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이언지 가을, 입질이 시작되었다 만물이 보내는 연서가 속속 배달 중이다 온몸이 간지럽다 배롱나무 붉은 글씨는 화사체라고 하자 작살나무가 왜 작살났는지 내야수는 내야에만 있어야 하는지 계집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작살나게 이쁜 열매가 미끼였다고 의혹은 무조건 부인하고 보는 거야 경자년이 정해년에게 속삭인다 낮은 음들이 질러대는 괴성에 밥숟갈을 놓친 귀들 은해사 자두가 맛있었다고 추억하는 입술을 덮친다 누가 빠앙 클랙슨을 누른다 -당신의 유방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테이프을 갈아끼우는 사이 농염의 판타지가 물컹 섞인다 비탈 진 무대에서 마지막 스텝을 밟는다 끼어들고 싶다 소리와 소리 사이 스텝과 스텝 사이, 소문과 소문 사이 납작하게 드러눕고 싶다 내 것도 아니고 네 것도 아닌 죽은 나에게 말 걸고 싶다 거시기, 잠깐 뜸들이고 싶다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노랑 소인이 찍힌 연서는 하룻밤만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사라져 도착할 것이다 소멸을 윙크하는 가을 프로젝트 데카당스도 이쯤이면 클래식이다 ▶마농꽃 달래의 제주 방언, 샤프란 400여 명의 시 1800편을 읽으면서, 여전히 한국시의 지층은 흔들리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 시인도 많지만 아직도 시인 지망생도 많음을 새삼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시의 경향은 전반적으로 전통 서정시의 큰 흐름을 넘어서는 실험적 시도가 크게 보이지 않았다. 시의 수준은 상당히 평준화 되어가고 있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패기만만하면서도 신인으로서의 놀라운 역량을 엿보게 하는 발군의 작품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 중에도 김진의 '달, 멈추다', 김미혜의 '몽유', 김정의 '숨 쉬는 고서점', 이언지의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 등은 최종 논의 대상 작품으로서 시를 읽는 즐거움을 맛보게 했다. '달, 멈추다'는 설화적 이미지를 현재화하는 발상 자체는 살만 했지만, 그 현재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이미지화가 선명하게 부각되지 못한 한계가 보였다. 시는 세계에 대한 시인의 새로운 해석이란 점을 새삼 환기시켜 주었다. ‘몽유'는 예민한 감각을 통한 이미지화나 새벽의 분위기를 형상화하는 시선은 좋으나, 시어 선택에서 아직은 개성적인 자기 언어를 창출하는 힘이 모자랐다. 시인은 일상어를 자기 언어로 새롭게 전환시켜가는 힘을 스스로 내장하고 있어야 한다. '숨 쉬는 고서점'은 활달한 시적 상상력의 전개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그 상상력을 밑받침해줄 수 있는 이미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한계가 지적되었다. 이에 비해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는 우선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언어유희에 가까울 정도로 능수능란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드러낼 듯하면서 감추며, 감출 듯하면서 드러내는 암시적이며 은유적인 시적 전개와 거침없이 펼쳐가는 상상력의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와 함께 다른 작품들이 보여주는 시적 수준도 앞으로의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었기에 심사위원 전원은 '마농꽃이 걸어서 우체국에 간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정진을 빈다. 본심 심사위원 문정희·남송우·정일근 [무등일보]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 박문혁 아버지가 다리미 하나 들고 세상 한 가운데 섰다. 비록 세상이 알 굵은 사포처럼 거칠다 해도 창가에서 응원가를 불러주는 벽돌만한 금성 라디오 벗 삼아 묵묵히 하루를 다렸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감은 손목이 아리도록 다림질을 강요했지만, 세상을 배우는 수업료라 여겨 한번 숙인 고개를 좀체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점점 달인이 되어가던 아버지. 아버지는 다리미로 세상의 모든 근심을 다렸다. 장마 끝으로 축축해진 무등산 호랑이 가죽도 다리고, 학동과 지원동을 돌며 바다를 파는 목포댁의 생선 비린내도 다리고, 매번 귀가할 때마다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막노동꾼 김씨의 흘러간 노래도 다리고, 거리에서 붕어빵을 구워 파는 박씨의 희망도,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시각장애인 송씨의 하얀 지팡이도, 등록금 마련을 위해 연탄배달을 하는 대학생의 굵은 땀방울도 스팀을 다려 먹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유방암까지 다릴 수는 없었다. 이제 그 아버지가 3평 좁은 공간에서 홀로 늙어간다. 지금껏 구겨지고 이맛살 찌푸린 것들, 매끈하게 다려 모두 손님에게 돌려주고 마지막 남은 것이라곤 고작 몸에 걸친 한 벌 외로움 뿐.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아버지는 자신의 외로움을 다리지 못한다. 늦은 밤 나는 아버지가 벗어놓은 외로움을 빳빳하게 다려서 어머니 영정 옆에 쓸쩍 걸어놓는다. 미사일처럼 세워놓은 다리미가 어둠을 다림질하며 하늘로 솟아오를 듯. ===== [동아일보 2008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은규]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 이은규 어느 날부터 그들은 바람을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바람은 형상을 거부하므로 우상이 아니다 떠도는 피의 이름, 유목 그 이름에는 바람을 찢고 날아야 하는 새의 고단한 깃털 하나가 흩날리고 있을 것 같다 유목민이 되지 못한 그는 작은 침대를 초원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건기의 초원에 바람만이 자라고 있는 것처럼 그의 생은 건기를 맞아 바람맞는 일이 혹은 바람을 동경하는 일이, 일이 될 참이었다 피가 흐른다는 것은 불구의 기억들이 몸 안의 길을 따라 떠돈다는 것 이미 유목의 피는 멈출 수 없다는 끝을 가진다 오늘밤도 베개를 베지 않고 잠이 든 그 유목민들은 멀리서의 말발굽 소리를 듣기 위해 잠을 잘 때도 땅에 귀를 댄 채로 잠이 든다지 생각난 듯 바람의 목소리만 길게 울린다지 말발굽 소리는 길 위에 잠시 머무는 집마저 허물고 말겠다는 불편한 소식을 싣고 온다지 그러나 침대위의 영혼에게 종종 닿는 소식이란 불편이 끝내 불구의 기억이 되었다는 몹쓸 예감의 확인일 때가 많았다 밤,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은 바람의 낮은 목소리만이 읊을 수 있다 동경하는 것을 닮아갈 때 피는 그 쪽으로 흐르고 그 쪽으로 떠돈다 地名을 잊는다, 한 점 바람 -------------------------------------------------- ■ 심사평 이시영(시인), 남진우(시인·문학평론가) (예심 : 박형준, 김선우) 예심을 통과한 15명 투고자들의 작품을 읽고 검토한 결과 두 명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남게 되었다. ‘무릎’ 등 5편의 작품을 투고한 조율의 경우 일상적 삶의 구체성에 바탕을 둔 치밀한 관찰과 묘사가 눈길을 끌었다. 그의 시는 감상이나 과장을 멀리한 채 삶의 신산함과 남루함을 적절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 투고자의 시적 발상이나 화법은 새롭다기보다는 기존의 유형화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또 시를 떠받치는 인식이 아무래도 소품 지향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반면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경전)’ 등 5편을 투고한 이은규의 경우 일상에서 시를 출발시키기보다는 관념에서 시를 끌어오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추상적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작품을 관류하는 활달한 상상력 덕분에 요즘 시에서 보기 힘든 탁 트인 느낌과 더불어 세련된 이미지와 진술의 어울림이 주는 감흥을 맛볼 수 있었다. 잠언풍의 시는 자칫하면 시적 긴장을 이완시킬 수 있는데 그는 이런 함정을 잘 피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두 선자는 이번 심사에서 일상의 세목에 대한 충실보다는 ‘바람을 동경하는’ ‘유목의 피’에 잠재된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당선자의 시가 한국시의 비좁은 영토를 열어젖히고 나아가는 언어의 모험으로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 당선소감 이 은 규 △1978년 서울 출생 △광주대 문예창작과 및 동대학원 졸업 △200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 최초의 시는 시의 몸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시가 아닌 것에서 시의 속살을 만나다니, 새삼 逆(역)은 眞(진)이 아닐 수 없다. 열두 살의 아이는 어느 날 고분의 등잔 사진을 보게 된다. 복숭아모양의 등잔을 보는 순간 몸 안의 혈액들이 출렁, 그 후 어두운 무덤 내부가 등잔 빛에 환히 열리는 환영에 시달리며 혹시, 저것은 시가 아닐까 자문하는 날이 길었다. 시를 알기 전 시적인 것에 생의 운율이 출렁이다니. 영혼의 심지에 불을 놓았을 어느 손길. 불빛으로 한 생의 삶의 폭을 넓히겠다는 기원과, 한기에 영영 얼지 말라며 다독였을 시정(詩情)이 거기 있다. 마음속으로 간절한 주문을 외웠겠지. 그 주문은 언어이면서 언어의 배후. 침묵은 언어의 배후로 알맞지, 꽃의 배후가 허공인 것처럼. 누군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지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해야 하는 시는 무엇인가. 새삼 逆(역)은 眞(진)이 아닐 수 없다. 늘 존재 자체로 시이신 고재종 선생님과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님들, 객지에서의 새움을 틔우는데 도움을 주신 박해람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가족들과 바람으로라도 가닿고 싶은 정처(定處)에게 마음을 전한다. 끝으로 심사위원들 그리고 나의 나와 도약의 지점에 대한 약속을 맺는다. 머리맡에 시를 두고 자는 밤이 길 것이다. 그 밤들을 생이 함께 지새워줄 것. [조선일보 2008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유희경]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유희경 1.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 쪽 부엌 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잎맥이 쪼그라드는 아침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이 난다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면도를 하다가 그저께 벤 자리를 또 베었고 아무리 닦아도 몸에선 털이 자란다 타일은 오래되면 사람의 색을 닮는구나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삼촌은 두꺼운 국어사전을 닮았다 얇은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뒷문이 지워졌다 당신이 찾아올 곳이 없어졌다 3.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간 밤 당신 꿈을 꾼 덕분에 가슴 바깥으로 비죽하게 간판이 하나 걸려진다 때 절은 마룻바닥에선 못이 녹슨 머리를 박는 소리 아버지를 한 벌의 수저와 묻었다 내가 토닥토닥 두들기는 춥지 않은 당신의 무덤 먼지들의 하얀 뒤꿈치가 사각거린다 ■ 시 당선소감 ― 유희경 모든 두근거림의 뿌리를 보고 싶었다 지금 손에 쥐어진 내 온도가 낯설다. 이것은 누구의 것일까. 모든 두근거림의 뿌리를 보고 싶었다. 왜 내가 사랑하는 것은 일찍 죽거나 죽으려 하는 것일까. 드디어 앰프가 터졌다 이제 음악 없는 서커스다. 어릿광대의 춤을 보고 있는 누구도 웃지 않는다. 박수도 없다. 침묵이 두꺼워질수록 광대는 더 빨리 춤을 추고, 그의 두 뺨은 겁에 질린 땀으로 번들거린다. 그러나 광대는 뛰쳐나가지 않는다. 공연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나갈 수 없다. 창 밖에서는 괴물이 숨쉬고 있다. 단단한 비늘이 있고 타오르는 거센 숨에 둘러싸인 괴물이 두껍고 튼튼한 발이 달리기 시작한다. 보라. 괴물은 제 몸집의 크기를 보인 적이 없다. 독과 고함과 친구들에게, 이름의 한 글자씩 빌려주신 연 선생님과 성 선생님께, 권 선생님과 J형께, 아해와 부모님께, 그밖에 모든 사람들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특별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1980년 서울 출생. 2000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4년 재학중. ■ 심사평― 문정희(시인), 황지우(시인) 몰개성의 시대, 눈에 띄는 참신함 예심을 거친 20명의 응모작들 가운데 이연후씨의 ‘우니코르’, 이서씨의 ‘고래자리’, 최수연씨의 ‘누에의 잠’, 유희경씨의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정도가 최종심 대상작으로 언급할 만하다고 여겨진 작품들이다. 신춘문예 응모작들을 보면 한 시대의 사회적 징후가 집약된 듯한 목록들을 읽을 수가 있다. 그 목록들이란, 최근 수년 동안 뭉쳐져 있는 경향이어서 어지간해서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번에도 역시 현저히 즉물적이다는 것, 다분히 자폐적이다는 것, 몰개성적이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특징들이 나쁘다, 좋다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요는 이런 특징들을 가지되 응모작들이 스스로를 한편의 시로 ‘성립’시키고 있는가를 가려내는 것이 우리 심사자들이 할 일이었다. 최소한 어떤 것이 시이기 위해서 갖는 조건, 즉 ‘시의 기본’을 모른 채 시 비슷하게 써서 시라고 우기는 것 같은 수많은 위조품들을 읽어야 하는 심사자의 고역은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즉물적이다는 것은 사물을 주절이 주절이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헤프게 낭비하는 것, 동어반복하는 것은 시에서는 범죄일 수 있다. 또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넌센스의 나열이나 실패한 은유들을 가지고 시의 특권이라고 오해하게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 많은 투고작들이 어쩜 한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었는데 이 개성의 표준화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까? 위의 네 편 최종심 대상작들도 이런 지적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점에서 스스로를 시로 성립시키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최수연씨, 유희경씨의 두 작품을 놓고 고민하다가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우리는 동의했다. 최수연씨가 시를 다루는 데 더 유연해 보이는 점이 있지만 유희경씨가 상대적으로 더 참신해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선자는 앞으로 한 권의 시집으로 자신의 시인됨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세계일보 2008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박미산] 너와집 박미산 갈비뼈가 하나씩 부서져 내리네요 아침마다 바삭해진 창틀을 만져보아요 지난 계절보다 쇄골 뼈가 툭 불거졌네요 어느새 처마 끝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나 봐요 칠만 삼천 일을 기다리고 나서야 내 몸속에 살갑게 뿌리 내렸지요, 당신은 문풍지 사이로 흘러나오던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고 푸른 송진 냄새 가시기 전에 떠났어요, 당신은 눅눅한 시간이 마루에 쌓여있어요 웃자란 바람이, 안개가, 구름이 허물어진 담장과 내 몸을 골라 밟네요 하얀 달이 자라는 언덕에서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화덕에 불씨를 다시 묻어놓고 단단하게 잠근 쇠빗장부터 열겁니다 나와 누워 자던 솔향기 가득한 한 시절, 당신 그립지 않은가요? ■ 당선소감 - 박미산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라든가 막막한 나날이 계속될 때마다 산을 탔다. 바싹 마른 말이 먼지를 피우며 스르르 무너지려 할 때 지리산을 완주했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설악과 북한산에 다니면서 내 몸을 다져 밟았다. 잘근잘근 밟혀 돌아오면 후줄근한 내 몸에서 말들이 피어나왔다. 허기진 가슴에서 바람이, 구름이, 안개가 시로 피어났고 때로는 미처 피어나지 못한 말들은 나도 모르게 곳곳에 쌓여 갔다. 찰랑찰랑 의심하던 사랑을, 요절을, 시를 여름 계곡에 떠나보내고 푸른빛이 사라져 이슥해진 나의 겨울 계곡은 은빛의 물 뿌리가 드러났다. 바닥이 다 드러난 나는 솔솔 내리는 눈발에 목을 축이고 사모하는 긴 혀를 따라 구불구불 의심했던 길을 다시 갔다. 피어나지 못했던 말은 부패되지 않은 채 골짜기로 흐르고 있었으며 이리저리 부딪치며 새 물길을 터뜨리기도 했다. 지난밤 나는 가장 예쁜 꿈을 꾸었다. 눈 쌓인 계곡에 차가운 바람을 얼굴에 맞으면서도 지천으로 피어나던 꽃살문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내가 존경했던 선생님께서 철없는 나에게 ‘늦게 피는 꽃’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지진아처럼 느리게 공부하는 나에게 격려와 질책을 아낌없이 해주신 최동호 선생님과 시 합평회를 할 때마다 묵사발을 만들어준 수요시창작팀, 유안진 선생님, 장만호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치매로 고생하시는 시어머님과 구십이 넘도록 식당일을 하시는 친정어머니, 묵묵히 나를 지켜준 남편과 사랑하는 두 딸 단비와 차래에게도 고마움을 보낸다. 십년을 함께 땀 흘린 택견패들에게도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고, 무엇보다도 유종호 선생님과 신경림 선생님 두 분 심사위원께 감사드린다. 오랜 세월 흐르는 동안 유연해지고 너그러워진 말로 살냄새 나는 시를 쓰고 싶다. 나는 우리들의 삶을 감싸 안는 따뜻함이 묻어나는 시를 씀으로써 두 분 심사위원께 두고두고 은혜를 갚을 참이다. ▲ 박미산(본명: 박명옥) / 1954년 인천 출생.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방송대 강사. ■시 심사평 - 신경림(시인), 유종호(문학평론가)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이 수준이나 내용이 비슷비슷했다. 특별히 개성 있는 시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재미있게 읽히는 시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실직’(이재근), ‘나비의 꿈’(문계현), ‘너와집’(박미산) 같은 작품들은 신춘문예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준은 넉넉히 되었다. 먼저 ‘실직’은 삶에 뿌리박은 정서의 시로서 호소력을 갖는다. 한데 무언가 신선한 맛이 덜하고, 죽음의 이미지가 시를 무겁게 만든다. 게다가 너무 건조하다. 같은 작자의 ‘얼굴’은 읽는 재미는 ‘실직’보다 낫겠는데, 산만하고 장황한 것이 흠이다. ‘나비의 꿈’은 장애인 부부의 외식 나들이가 소재가 된 시로서,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비유가 좀 억지스럽고 관념적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화자가 되고 있는 ‘붉고 둥그스름한 다라이’는 정리가 더 돼야 할 소재 같다. 하지만 남과 같지 않은 상상력은 그의 앞날에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너와집’은 아주 따듯한 시여서 일단 호감이 간다. 물론 ‘너와집’은 실제의 너와집이기보다 ‘당신’과 ‘내’가 만든 사랑의 집일 터, 그 비유가 호소력이 있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말이나 감각도 신선하고 맛깔스럽다. ‘문둥이가 사는 마을, 이랑진 무덤들 사이에도’는 열두 살 여름의 추억을 소재로 하고 있는 시로서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힌다. 이렇게 해서 우리 두 심사위원은 최종적으로 박미산의 ‘너와집’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서울신문 2008 신춘문예 시 당선작 / 이선애] 가벼운 산 이선애 태풍 나리가 지나간 뒤, 아름드리 굴참나무 등산로를 막고 누워 있다. 오만상 찌푸리며 어두운 땅속을 누비던 뿌리 그만 하늘 향해 들려져 있다. 이젠 좀 웃어 보라며 햇살이 셔터를 누른다. 어정쩡한 포즈로 쓰러져 있는 나무는 바쁘다. 지하 단칸방 개미며 굼벵이 어린 식구들 불러모아 한 됫박씩 햇살 들려 이주를 시킨다. 서어나무, 당단풍나무, 노각나무 사이로 기울어진 채 한 잎 두 잎 진창으로 꿈을 박고 있는 굴참나무 제 뼈를 깎고 피를 말려 숲을 짓기 시작한다. 생살이 찢겨 있는 굴참나무, 그에게서는 고통의 향기가 난다. 살가죽의 요철이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한 밥장수 할머니의 손등만 같다. 끝내 허리를 펴지 못하는 굴참나무가 세로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굴참나무가 쓰러진 것은 태풍 나리 때문이 아니다. 나무는 지금 저 스스로 살신성인하는 중이다, 하늘 가까이 뿌리를 심기 위해. 【심사위원】 본심 : 오세영 최동호 / 예심 : 유성호 이재무 ■ 심사평 -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돋보여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올라 온 시편들을 정밀하게 읽고 이에 대해 논의한 다음 다시 최종심의 대상을 다섯 편으로 압축하였다.‘낡은 피아노에는 빗소리가 난다´(송인덕)는 자연스러운 시상의 전개가,‘난초와 칼´(이연후)은 이미지의 선명성이,‘양치하는 노파´(한세정)는 시적 함축성이,‘바닷가 떡집´(김영진)은 진득한 삶의 감각이,‘가벼운 산´(이선애)은 시적 발상 전환이 돋보였으나 각각 그 나름의 약점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시편을 놓고 좀 더 범위를 좁힌 결과 세 편의 시가 남게 되었다.‘난초와 칼´은 이미지의 선명성은 두드러지지만 대립구도가 너무 단순하고,‘가벼운 산´은 시적 발상 전환이 참신했으나 설명적인 부분이 시적 밀도를 약화시켰으며,‘낡은 피아노에는 빗소리가 난다´는 자연스러운 시적 전개가 강점이지만 상식의 틀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엇비슷한 수준의 작품을 놓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심사위원들은 ‘가벼운 산´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는데 이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참신성과 더불어 그 속에 담긴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한 밥장수 노파의 손등에서 고통의 향기를 관찰한 시인의 시선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솜씨와 더불어 눈여겨볼 만한 점이라고 하겠다. 삶을 바라보는 독자적인 시선이 시적 구도 속에서 빛날 때 남다른 작품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신춘문예 응모자들은 다시금 되새겨 주기 바란다. ■ 당선 소감 “비로소 내가 나를 낳은 엄마라는 느낌 들어” 매년 이맘때면 문학을 좋아하는 엄마들끼리 모여서 자그마한 ‘여성문학지’를 만든다.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있는 엄마들의 곱고 섬세한 손길로 엮은 이 책은 지역사회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책 읽는 습관, 문학의 저변확대를 꾀하고자 함이다. 어언 여섯 번째 세상에 나올 우리들의 아기를 기대하면서 출판사 편집실에서 최종교정을 마치고 OK 사인을 내던 찰나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당선소식이다. 떨리는 손끝과 가슴에 또 하나의 산통이 스친다. 몸속 아기가 앉았던 자리에 시를 앉히고 자신을 낳기 위해 주저하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 수많은 언어들이 시간의 벽을 허물며 웅웅 메아리친다. 이제 비로소 내가 나를 낳은 엄마란 느낌이 든다. 세상에 갓 던져진 갓난아기인 나를 위하여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 엄마가 된 것이다. 당장 배고픈 나를 위하여 옥타비오파스의 말을 빌린다. “시는 앎이고 구원이며 힘이고 포기다. 시의 기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시적 행위는 본래 혁명적이지만 정신의 수련으로서 내면적 자기 해방의 방법이기도 하다.” 시시각각 파고드는 죽음 앞에서도 아르테미르 여신처럼 즐겁게 시를 낳는 풍요와 다산의 힘을 기르고 싶다. 시를 쓰기 위하여 늦은 나이에 진학한 광주대학교 문창과 대학원이 고맙다. 열심히 지도해주신 이은봉, 신덕룡 교수님, 외에도 문예창작과 교수님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드린다. 그리고 아내이기보다는 공주이기를 소망한 나를 탓하지 않고 묵묵한 눈길로 지켜봐 주신 남편과 함께 공부한 지선, 성희, 인드라망 문학모임 식구들과 이 기쁨 함께 나누고 싶다. 예기치 않은 기쁜 소식 주신 서울신문사와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고려대 최동호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심사위원님들께도 큰절을 올린다. 좋은 시로 갚아야 할 너무 큰 빚이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치열하게 시를 낳는 엄마가 되기를 자청해본다. ▲ 이선애 1955년 전남 여수 출생. 2005년 방송대 국문과 졸업. 2006년 광주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재학. [대전일보] 책장애벌레 / 이종섶 낡은 책장은 망치로 부수는 것보다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것이 더 간단하다 나무의 이음새마다 박혀있는 나사못 숨쉬기 위해 열어놓은 십자정수리를 비틀면 내장까지 한꺼번에 또르르 딸려 올라오고 허물처럼 남아있는 벌레의 집에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들었다 안간힘을 다해 붙어있는 것들을 대여섯 마리씩 잡을 때마다 하나 둘 떨어져나가는 책장의 근육들 바닥에 납작 주저앉을 무렵엔 한 줌 넘게 모인 애벌레가 제법 묵직했다 가지와 가지 사이를 물고 깊은 잠을 자야했던 동면기가 끝나면 훨훨 나비가 되어 숲속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책장이 늙어버린 탓에 애벌레만 집을 잃고 말았다 꼼지락거리는 것들 땅바닥에 던져버리려다 회오리돌기가 마디마디 살아있어 공구함에 보관해둔다 상처도 없고 눈물도 없으니 언젠가는 다시 나무속에 들어가 살게 될지도 모른다 밤만 되면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소리 나무의 빈 젖을 물고 싶어 오물거리는 소리 고아원의 밤이 깊어간다 [경향신문] 페루/ 이제니 빨강 초록 보라 분홍 파랑 검정 한 줄 띄우고 다홍 청록 주황 보라. 모두가 양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양은 없을 때만 있다. 양은 어떻게 웁니까. 메에 메에. 울음소리는 언제나 어리둥절하다. 머리를 두 줄로 가지런히 땋을 때마다 고산지대의 좁고 긴 들판이 떠오른다. 고산증. 희박한 공기. 깨어진 거울처럼 빛나는 라마의 두 눈. 나는 가만히 앉아서도 여행을 한다. 내 인식의 페이지는 언제나 나의 경험을 앞지른다. 페루 페루. 라마의 울음소리. 페루라고 입술을 달싹이면 내게 있었을지도 모를 고향이 생각난다. 고향이 생각날 때마다 페루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침마다 언니는 내 머리를 땋아주었지. 머리카락은 땋아도 땋아도 끝이 없었지. 저주는 반복되는 실패에서 피어난다. 적어도 꽃은 아름답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간신히 생각하고 간신히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영영 스스로 머리를 땋지는 못할 거야. 당신은 페루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미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입니다. 이상할 것도 없지만 역시 이상한 말이다. 히잉 히잉. 말이란 원래 그런 거지. 태초 이전부터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무의미하게 엉겨 붙어 버린 거지.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미쳐버린 채로 죽는 거지. 그렇게 이미 죽은 채로 하염없이 미끄러지는 거지. 단 한번도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안심된다.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사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길게 길게 심호흡을 하고 노을이 지면 불을 피우자. 고기를 굽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마시자. 그렇게 얼마간만 좀 널브러져 있자.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페루는 고향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스스로 머리를 땋을 수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양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말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비행기 없이도 갈 수 있다.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의미 없이도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