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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소 제목 : 쿰부 히말의 전진기지 셀파들의 고향 남체.
쿰부 히말에서의 첫날밤은 쿰부 히말 트레커들의 전진 기지인 남체로 올라간다는 설레임 때문에
잠을 설치고 말았다. 두번의 잠을 깨어 시간을 확인하니, 01시와 04시였다.
5시 화장실을 다녀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침낭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06시에 일어나 배낭 팩킹을 하고 또 하루를 준비한다. 밖으로 나와 보니 날씨는 맑고 히말라야의 공기 또한 상큼하다. 어제 있었던 현기증 증세는 말끔히 날아가 버렸다. 아마도 음식을 못먹어 허기가 진 탓이였나 보다. 이제부터는 때를 거르지 않고 음식을 꼭 먹어야 할 것 같다.
배낭을 둘러매고 다이닝 룸으로 들어가 어제 저녁에 주문한 아침식사를 먹고나니 07시15분이다.
앞으로 하루 시작 일정을 06시 기상, 07시 식사, 08시 트레킹 출발을 하는 6.7.8 씨스템 모드로 바꾸기로 한다. 게스트 하우스의 숙식비는 선불이 아니고 체크 아웃할때 한꺼번에 계산을 한다. 물론 청구서는 없고, 수기된 노트로 정산을 한다. 어제 도착시 부터 먹고 자고 한 비용이 1,210Rs이고 그중 방값이 200Rs이다.
우리 돈으로 약 18,000원정도 된다. 우리나라의 물가를 비교할 수 없지만, 네팔 물가로 환산을 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07시 30분 몬주 게스트 하우스를 출발한다. 어제 잠시 둘어 보았던 마을 오르막을 오르니, 조르살레라는 지역에 있다는 사가르마타 국립공원의 체크 포인트 겸 입장료를 징수하는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거리상으로 보아 그냥 몬조라고 하여도 무방할듯하다.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이른 시간임에도 두 사람이 근무를 하고 있다. 당연히 입장료가 1,000Rs로 만만치 않은 돈이라 24시간 상주 근무를 하겠지...
나는 팀스카드 대신 아일랜드 퍼밋을 내 보이고 1,000Rs를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는다. 영수증은 잘 보관하여 영수증 소지 여부를 체킹을 당할때 제시를 해야 한다.
<국립공원 입장료 영수증>
사무실에 걸려 있는 년도 및 월별 국립공원 입장객 일람표를 보니, 최고의 피크 타임이 월 10,000여명이 입장한 10월, 다음이 6,000여명이 입장한 4월이다. 그리고 매년 입장객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지난달(2012. 3)에도 약 4,000여명이 다녀 간 것으로 되어 있다. 하루 평균 100명이 넘는 숫자이다.
<년도별 및 월별 입장객 일람표>
그만한 숫자면 입장료 수입도 만만치 않을 터인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건물 외관은 그럴듯하지만, 트레커들을 배려하는 편의시설은 커녕, 편안하게 쉴만한 휴게실도 보이지 않고 사가르마타 네쇼날 파크 지형도만 덩그러니 설치되어 있을뿐이다.
하긴 트레커들이 여기서 머물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가슴 설레게 가야할 목적지를 앞에두고...
<히말라야 지형도>
관리사무소를 지나자 붉은 랄리그라스가 탐스럽게 피어있는 고개에서 바로 두드코시 강변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길이다. 돌 계단 고개길을 포터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다가 뒤딤돌에 짐을 기대고 쉬고 있다. 트레킹로 주변의 쉴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짐을 내리고 쉴수있는 뒤딤돌 또는 나무가 설치되어 있다.
포터와 조금 떨어진 뒤에서 트레킹을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하산하는 트레커들의 표정이 여유와 홀가분함이 묻어난다. 이제 시작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참 부럽기도 하다.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지난 고개마루에서>
군 체크 포인트가 있는 조르살레 마을이 바로 앞에 내려다 보인다. 몬조에서 보았든 큰 수력발전소에서 발전되는 전기가 네가닥의 전기줄을 타고 두드코시강을 건너 조르살레 마을로 들어가고 있다.
<군 체크 포인트가 있는 조르살레 마을>
초라한 막사에 군인 한 사람이 근무를 하고 있다. 나는 퍼밋을 제시하고 인적사항과 일정을 체크 하고 있는 군인에게 간단하게 응대하고, 최근 한국인이 지나간 기록이 있는지 물어보니 노트를 몇장 넘기더니 2~3일 전부터 오늘 현재까지 한국인이 지나간 기록은 없다고 한다. 혹시나 하였는데 어제 오늘 올라간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군 체크 포인트 초소>
체크 포인트를 지나고 다시 다리를 건너 거의 고도차 없이 두드코시강을 왼쪽에 끼고 거의 나란히 걷는다. 편안한 트레킹로가 한참을 이어진다. 하산하는 경남 진주에서 왔다는 한국인 3명을 만나, 선 걸음에 인사를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서로의 갈길이 있기에 오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다. 역시 내땅 까마귀라도 반가운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멀리 남체로 가는 관문인 마지막 다리 라자 도반 브릿지가 양쪽 산 허리에 높게 걸려있다. 저 다리를 건너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오늘의 기착지인 남체의 모습을 보리라. 지금까지 많은 다리를 건너 오면서 그 다리의 이름을 모른체 건넜는데, 남체의 관문이라서 그런지 다리의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이 라자 도반 브릿지(Larja Dobhan Bridge)다. 지도상에 다리가 있는 지역이 Larja Dobhan 이라는 지명을 따라 다리의 이름을 붙인것 같다.
뒤 따라 오던 미국인에게 사진 부탁을 하였더니 멋진 포토 포인트라며 자기 사진도 부탁한다.
<남체로 가는 길목에 있는 라자 도반 브릿지>
외국인들은 만사 확실한 것을 좋아하나 보다. 혹시 자신의 실수로 사진이 찍히지 않았을까봐 확실한 인증샷을 위해 한번 더 포즈를 요구한다.
<같은 장소에서...>
고도감을 살릴려고 다리의 근접거리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돌아와 등로를 따라 우측 언덕을 올라 간다.
<다리 고도를 실감나게>
이 지역은 보테코시와 두드코시가 합류되는 지점이다. 타메쪽에서 흘러오는 강이 지류인 보테코시이고, 본류는 고쿄쪽 고쥼바 빙하와 에베레스트 쪽 쿰부 빙하가 합류하여 흘러 내려온 강이 두드코시 강이다. 이 강을 건너는 다리가 라자 도반 브릿지다.
다리를 건너기 위해선 강변 우측 언덕으로 약간의 고도를 상승시켜야 한다.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풍광을 즐길만한 쉼터가 있는데 그늘도 지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 오가는 트레커들이 쉬고있다. 넓은 바위도 있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참 좋은 장소다 .
<라자 도반 브릿지를 건너기 전에>
상징성이 있어서인지 라자 도반 브릿지에 수많은 타르초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타르초가 바람에 흔들릴수록 타르초에 적힌 불경이 많은 중생들을 계도하도록 사방으로 바람을 타고 퍼지기 위함인가.
<라자 도반 브릿지에 수많은 타르초가 바람에...>
아래 사진 좌측이 보테코시이고, 우측으로 조금 보이는 강이 두드코시이다.
<두 강의 합수 지점>
지금까지 건넌 다리중에 다리의 고도가 제일 높다. 일명 쿰부 히말의 서스팬션 브릿지라고 한다는 데 약간 스릴을 느낄만한 다리다. 다리의 높이가 고도감을 느낄만 하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두드코시 강을 철조망 사이로 찍어 본다.
<다리 위에서 두드코시강을 내려다 보고>
다리를 건너 좌측 계단을 통해 가파르게 내려가 보테코시 강을 좌측으로 내려다 보며 걷다가 강을 버리고 우측의 된비알을 오른다. 남체까지의 거리는 얼마되지 않지만 고도를 600여미터를 치고 올라야하는 고소 시험지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많은 분들이 이곳을 빨리 오르면 고소증세를 느낄 수 있다고 되도록이면 천천히, 혹자는 팍팅에서 출발을 할 경우 오후 4시 이전에 남체 도착을 삼가하라고 말할 정도이다.
나 역시 그 정도는 아니지만 빠른 걸음으로 걷기를 자제하고 천천히 오르기로 한다.
09시 09분 시계 고도가 3,000m 갖 넘었다.
<고도 3005m 지점>
3,000m 지점에 마역소(말 정류장)가 있다. 남체에서 마역소까지, 또는 마역소에서 남체까지 말을 타고 오고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재미삼아 또는 걷기 힘든 트레커들이 제법 비싼 삮을 주어야 할것 같다. 마침 남체에서 부터 말을 타고 내려오는 트레커가 있어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포즈를 취해준다. 꺼띠 뻐이사 호?(값이 얼마냐?) 라고 묻지는 못했다.
<말을타고 내려 온 유럽인 트레커>
마역소가 있는 곳에서 부터는 지그재그로 오름짓을 해야 하나 길은 완만한 계단이거나, 마사토 길로 이어진다. 고도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걷기 편한길이다. 빠르게 걸으면 절대 않된다고 너무 엄포를 당한 느낌이다. 야크들도 하산 트레커들의 카고백 같은 등짐을 지고 가볍게 내려오고 있다. 가끔 야크들이 가파른 경사도를 오르 내림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네발 달린 짐승이 완만한 경사도를 오르 내린것은 가능할것이라 생각 하였지만, 가파른 길을 직상, 직하하는 것은 보지도 못했고 상상을 못했었는데 신기하게 잘 걷는다. 두 발로 걷는 우리도 힘든 길을...
<이정도 길은 식은죽 먹기로 내려 오는 야크들>
지그재그 사면길을 걸어 올라가다가 울창한 숲 사이로 설산이 보여 얼른 카메라를 들이대 보았다.
지도를 펴놓고 지도정치를 해보면 대략 무슨 산인지 알 수 있으련만, 아직은 히말라야에서 이름값 하는 산이 아닐터이니 그냥 통과하기로 한다.
<숲 사이로 보이는 설산>
에베레스트가 처음 보인다는 에베레스트 뷰 포인트에 도착을 하니 하산하는 유럽쪽 트레커들이
장사진을 치고있다. 에베레스트 산이 보인다고 하는데 선명치 않아 에베레스트를 본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에베레스트 산을 보인다고 찍었으나... >
2~3명 네팔리 아줌마들이 귤을 팔고 있는데 북적이는 사람은 많아도 귤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늘 귤 장사가 별 신통하지 않은것 같다.
<에베레스트 뷰 포인트의 트레커들>
트레킹을 끝내고 내려가는 트레커들은 마냥 비스타리 모드다. 이제 시작하는 나는 배낭을 내리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완만한 사면길을 걸어가던 포터들이 무거운 짐을 내리고 쉬면서 목을 축이고 있는 샘터를 만나 나도 잠시 어깨쉼을 하기로 한다. 13kg 정도의 배낭으로 이제 이틀째 밖에 산행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묵직함이 제법 어깨를 파고든다. 쉬면서 맞은편 골짜기의 골이 괴이스럽게 깊어 상단의 봉우리까지 가로로 카메라 앵글을 맞춰 본다.
<괴이스럽고 깊은 골짜기>
등로변에 관을 묻어 흘러나온 물이 목마른 길손들의 목을 축일 수 있는 고마운 간이 샘터이나, 나는 지금껏 흐르는 물을 먹지않고 끓인 물을 마시며 걷고 있다. 비상시 흐르는 물도 마셔야 할것 같아 아쿠아탭스란 식수 소독제를 사오려고 하였으나 준비하지 못했다. 잘 한건지, 잘 못한건지 아직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흐르는 물도 먹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남체 오르는 길옆 샘터>
10시 10분 고도 3,080m 통과한다.
10시 20분 남체마을이 보이는 체크 포인트에 도착을 한다. 몬조에서 약 2시간 20여분 걸린셈이다.
천천히 걷는다고 걸었는데 너무 빨리 온건가.
<남체 마을이 처음 보이는 들머리>
10시 23분 3,330m 지역이다.
이곳에서도 군인 한 사람이 체크를 한다. 별로 있으나 마나한 검문 검색이다. 퍼밋을 보고 국적, 이름, 일정 간단히 적고 패스다.
<체크 포인트 군 초소>
체크 포인트 군 초소 맞은편에 구멍가게가 파리를 날리고 있다. 주인장도 장사에 별 관심이 없어보인다.
<남체 초입 체크 포인트 앞 구멍가게>
마을 입구 첫번째 만나는 집 모퉁이 공터에서 아이들이 우리네 알까기와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다. 네팔의 전통놀이 문화인지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면 어른 아이들 할것 없이 많이들 즐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네 알까기 비슷한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들>
남체마을 본 정통은 한 고비 더 휘돌아 올라가야 한다. 마을 아낙들이 간이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있고, 하릴없이 엄마를 따라 온 아이가 물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우리네 시골마을 어디서나 보던 풍경이다.
<빨래터의 여인>
남체 바자르 입구에서 마주친 트레커와 우연히 인사를 하는데, 뜻밖에도 인도네시아 여성이다. 인도네시아 말로 인사를 하니 깜짝 놀라며 반가워한다. 네팔리 가이드 한사람을 데리고 에베레스트 BC캠프까지 트레킹을 마치고 루크라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란다. 우선 인도네시아에도 이런 열혈 여성 산악인이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내가 인도네시아에 등산을 목적으로 간 것이 아니라 사업상 체재를 하여 잘 몰랐는지 모르지만, 인도네시아 같은 열대지방에서는 등산문화는 찾아볼 수도 없었을뿐 아니라, 높은 산은 많이 있다고 하지만 모두 밀림지역으로 벌목 또는 광물 채굴의 목적이 아니면 갈 수도 없고, 가려는 사람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여자 혼자 왔다는 것은 상상하기어려운 일이다.
짧은 인도네시아 말로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언제 만날지 모르지만 기념사진을 한장 남기기로 한다. 헤어지면서 남체에서 머물만한 롯지를 소개하겠다면서, 몬주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본인 네오모토상이 소개한 A.D. FriendShip 롯지를 역시 추천한다. 어떤 곳인지 매우 궁굼해 진다.
<인도네시아 여성 트레커>
그녀와 헤어지고 남체 바자르로 들어선다. 참! 남체 바자르는 지역의 고유명사가 아니다. 즉 지역의 고유명사는 남체(NAMCHE)이고, 바자르(BAZAR)는 시장이란 뜻으로 남체의 7일장(매주 토요일)이 유명하다 보니 흔히들 남체라는 지명에 시장이라는 뜻의 바자르를 붙여서 남체 바자르로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보니 네팔어와 인도네시아어가 발음이 비슷한 단어가 많다. 일단 인도네시아어로 시장을 파사르라고 하며, 숫자 2를 두아, 3을 띠가라고한다.
어쨋든 매주 토요일에 남체에 시장이 선다. 장날이 되면 멀리는 티벳에서부터 쿰부히말의 모든 마을에 사는 셰르파족들이 팔 물건을 야크 또는 직접 이고 지고 남체 바자르로 모여든다.
<남체 바자르 이모 저모 >
천천히 장을 둘러본다. 장에 나온 물건들이 대부분 상품이라고 할것도 없이 자기가 직접 생산한 농산품, 키우는 동물들 등, 자기집에서 쓰다가 좀 남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서 팔고, 또한 자기가 필요한 물건을 사가는 다시 말하면, 물물교환식 상거래 장터이다.
<우리의 벼룩시장 같은 장마당>
그래도 둘러보니 없는것 빼고는 다 있는것 같다.
<장마당 가운데 서서>
생필품도 여러가지 지만, 지극히 적은량일뿐 아니라 포장상태도 운반도중 일그러지고 찌그러지고, 또 유효기간은 있는 것인지 한마디로 살만한 물건이 없다.
<생필품>
알곡들은 보자기 또는 포대채로 펼쳐놓고 그 뒤에 그냥 쪼그려 앉아있다. 그리고 팔려는 사람이 누구이고 사려는 사람이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양쪽 다 소극적이다. 값을 밀고 당기고흥정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한 장마당의 재미도 없다.
<곡물 >
빨간 고추가 눈에 띄게 색깔이 선명하다. 고산지역의 강렬한 햇볕을 받고 자란 고추라서 그런지 우리네 고추와는 많이 다르다. 고추전을 지키고 있는 아이가 많이 무료한 듯 보인다.
<고추전의 아이>
제법 먹음직 스럽게 보이는 귤의 빛깔이 하도 고와서 카메라를 들이 대 본다. 어느 지역에서 생산된 귤인지 무척 궁굼하다. 남체까지 오는 동안 귤이 열려있는 것을 본적이 없는데 말이다.
<귤을 파는 과일전>
방물장수를 연상케 하는 잡화점이다. 신발, 의류, 장신구 등 잡다한 물건들을 풀어 헤쳐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아낙이 카메라에 반응하여 힐끔 쳐다본다. 오늘 일당이나 건졌는지 아니면 마수걸이는 하였는지 밝지 않는 아낙의 표정이 나를 걱정스럽게 한다.
<잡화점>
본격적인 장마당 구경은 시간이 넉넉하니 우선 숙소를 결정해 놓고 하기로 한다.
인터넷으로 몇 군데 강추 롯지를 검색을 해 놓았지만, 일본인과 인도네시아 여성이 소개한 A.D. FriendShip 롯지를 찾아가 보기로 한다. 장마당을 지나면서 인터넷에서 너무나 많이 보았던 남체의 모습 즉, 말 발굽 모양의 지형에 계단식으로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본다. 한 눈에 둘러 보아도 롯지가 너무 많다. 과연 수요와 공급에 맞춰 롯지들이 수지타산을 맞추고 있는것인지 심히 의문스럽다.
<롯지들이 계단식으로...>
A.D. FriendShip 롯지를 찾아가는 길목에 있는 상가들의 규모나 크기가 카트만두 타멜 거리를 방불케한다. 등산장비와 등산의류도 못지 않다. 간혹 쇼핑을 하는 트레커들의 모습이 보이고 상가 내부에서 점원들이 개점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타멜 거리를 방불케하는 남체의 상가>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거리가 복잡하지 않다. 지역 주민들은 모두 7일장이 선, 장마당에 갔을 것이고, 트레커들은 숙박시간이 아직 일러 남체에 머무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로 보아 오후 늦은 시간부터 저녁 시간대에는 거리가 북적일것 같다.
<숙소로 가는 길목>
A.D. FriendShip 롯지를 물어 물어 찾아간다.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지 자꾸 올라가라 한다.
<골목을 따라 구석구석 상가가 조성되어 있다>
A.D. FriendShip 롯지에 도착하여 독실(1실 2베드)에 숙소 배정을 받고 콩데가 보이는 창문을 열고 남체 마을을 내려다 본다.
<숙소의 창밖으로 본 남체마을>
여기에서 2박을 할 예정이라 배낭 정리를 하기 위하여 배낭 속 짐을 다시 정리를 하기위하여 전부 꺼낸다. 내일은 고소 적응차 에베레스트 뷰 호텔을 거쳐 쿰중마을과 쿤데마을을 돌아 상보체, 남체로 회귀하는 트레킹이기 때문에 가벼운 행장(보조 배낭)으로 산행 채비를 한후 남체 바자르와 상가를 구경하러 나간다. 나가다가 주방에 들러 사우지와 사우니를 만나 정식으로 인사를 한다. 알고보니 사우지인 앙 도르지 셀파는 고산 등반에 상당한 경력을 가진 나름 유명한 셀파였다.
일본어도 수준급으로 구사를 하며, 일본에 많은 지인들을 사귀고 있어 수없이 다녀 왔고, 지금도 가끔 일본을 다녀오지만, 한국에는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하는 지일파 네팔리다. 다이닝 룸에 가보니 일본 전통 문화를 상징하는 장식으로 꾸며져 있고, 일본의 산에 관한 서적과 화보, D VD 도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 모처럼 일본어 대화가 되는 앙 도르지 셀파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A.D. FriendShip 롯지를 찾아오게된 연유를 이야기하였더니, 더욱 반가워 하며 롯지를 소개했던 사람들도 여기서 2~3일씩 머물고 간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롯지의 주인장 앙 도르지 셀파 부부>
이야기를 마치고 롯지를 나와 남체 바자르로 가보니 이미 파장분위기다. 갈길들이 멀어서인지 야크에 짐을 채우고 떠날 채비들을 하고있다. 알고보니 매주 토요일이 장날이지만, 실제로 금요일 오후부터 장이 서고, 토요일 일찍 장마당이 끝난다고 한다. 발길을 돌려 남체마을 혼마찌(중심거리)로 가보니 고도 3,440m의 고산지역의 작은 마을로 생각했던 남체가 아니였다. 정말 없는게 없이 돈만 있으면 뭐든 다될것 같은 남체였다.
먼저 눈에 띄는 베이커리 가게에 들어가니 우리나라 빵집 못지않게 맛있게 생긴 빵들이 많았다.
간식으로 먹을만한 빵을 눈여겨 보고 찜을 해둔다.
<남체의 베이커리 점 내부>
<각양 각색의 빵이 진열되어 있다>
남체 골목 곳곳에서 돌을 쪼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무엇을 하는고 하니 롯지를 짓는 중이라 한다.
나무보다는 돌을 구하기가 쉬워서인지 남체의 롯지 99%가 석조건물이다.
석조 건물은 지어 놓기만 한다면 목조건물은 비할바가 못되겠지만, 순수하게 맨손으로 돌을 다듬어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내가 판단하기론 현재 남체 마을의 롯지의 숫자도 만만치 않은데 지금도 계속해서 롯지 신축을 하는 곳이 있으니, 과연 언제까지나 경쟁력이 있을 것인가. 진정 남체에서 먹고 살길은 롯지 숙박업뿐인가.
내일 상보체로 올라가는 길과 쿰부히말로 넘어가는 삼거리 고개쪽을 바라본 풍경이다.
<빈틈 없이 들어찬 롯지>
10시 반쯤 남체에 도착을 하였드니 시간이 너무 많아 무료하기까지 하다. 다시 롯지로 돌아와 다이닝 룸에서 독일 트레커 두사람과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나, 금방 한계에 부닥친다.
<A.D. FriendShip 롯지 다이닝 룸의 간단한 기념품과 음료 및 주류 판매대>
다이닝 룸 벽에는 네팔 전통 장식과 일본의 장식이 많고, 앙 도르지 셀파와 유명인사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다. 특히 일본 산악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많다. 그 중 다베이 쥰꼬 여사와 찍은 사진도 걸렸으며, 에베레스트를 1953년 세계최초로 등반한 힐러리경이 죽기전인 최근에 네팔을 방문해 앙 도르지 셀파와 함께 찍은 사진도 상징물처럼 걸려있다.
<A.D. FriendShip 롯지 다이닝 룸>
다이닝 룸에 있던 독일인 두사람도 뮤료했던지 낮잠을 즐기러 방으로 들어가 버려, 슬리퍼를 끌고 다시 남체 거리로 나간다.
남체의 중심가 사거리에는 술 파는 카페와 당구대도 함께있는 서구풍의 라이브 카페도 있다. 카페 벽면에는 각국의 트레커들이 기념으로 남기고 간 온갖 소품들을 장식품처럼 인테리어를 해 놓았다.
<온갖 술이 진열되어 있는 카페 스탠드>
카페 벽면에 여러나라 국기가 걸려있는데도 태극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수 많은 한국의 원정대와 트레커들이 다녀 갔을 터인데... 어쩐지 푸대접을 받고 있는 기분이다.
<당구대가 있는 카페>
카페 사거리 맞은편에 네파 매장이 있어 구경삼아 들어가 주인장인 네팔리와 인사를 하는데 일본어를 제법 한다. 그래서 한국의 네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더니, 자기는 카트만두의 네파 매장의 정사장이라는 사람과 거래를 한다고 하면서 일본말이 통하니 친절하게 다가온다. 내가 인테넷을 할수 있는곳을 찾는다고 하니 친절하게 맞은편 카페 2층에 있는 인터넷 카페로 안내를 하며, 젊은 네팔리 사장에게 한국인이라고 나를 소개한다. 후일 알았지만, 이 젊은이가 이곳에서 부자 소리를 듣는 젊은이란다.
인터넷 카페에서 우선 카트만두의 자이언트로 전화를 하여 남체에 도착하였음을 알리고, 인터넷을 통하여 그동안의 메일을 확인하고 집사람에게 무사히 남체에 도착하였음을 메일로 남긴다.
고산 지역인 남체에서 카트만두는 물론 국제전화까지 된다니 놀라울 일이고, 거기다 전화나 인터넷 사용 요금이 그다지 비싸지 않은 편이라 문명의 이기는 어디까지가 한계일런가.
전화 1분에 30Rs, 인터넷 사용료 30분에 200Rs 주었다. 한글 자판이 없어 메일 보내는데 많이 버벅거린다. 인터넷 카페 사장이 일본말을 하는 나를 같은 카페에 있는 일본인을 소개 해주어 이야기를 나눈다. 일본인은 에베레스트 뷰 호텔에 머물고 있는데 남체에 놀러 왔는데 놀다가 저녁에 올라 간다고 한다.
<인터넷 카페의 전화와 컴퓨터실>
인터넷 카페에서 전화와 인테넷을 하다가 네파 매장으로 내려와 주인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네팔리 친구들과도 인사를 한다.
<네파 매장>
따스한 햇볕을 받고 앉았는데 너무 지루하다. 내일도 고소적응차 가벼운 트레킹 일정인데 남체에서 시간을 어찌 보낼까 지금부터 걱정이다. 내일 트레킹 간식거리로 비스켓과 우유를 400Rs주고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간다.
<네파 매장앞에서 하릴없이...>
다시금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해보려고 누워 있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낮잠을 잤다가 정녕 저녁에 잠이 오지 않으면 그것도 고역이 아닐 수 없어 잠자기를 포기하고 일어난다. 창밖의 콩데가 어느샌가 구름에 가려 보이지를 않는다. 고산 지역의 오후는 기상변화가 심하다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심상치않는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어느새 구름속으로 콩데가 묻쳐 버린다>
5시 30분쯤 다이닝 룸으로 내려와 저녁 식사로 네팔리들의 주식인 달밧을 주문하여 앞으로의 적응도를 테스트 겸 시식을 해보기로 한다.
주문한 달밧을 한국에서 가지고 간 고추장과 후리가께(밥이랑)를 비벼 먹어 보는데, 맛이 심상치 않다. 스프(국물) 맛도 영 입에 맞지 않으니 앞날이 걱정이다. 인도네시아의 현지식보다는 네팔 현지식인 달밧을 잘 먹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계산 착오다.
<네팔의 대표적인 음식 달밧>
어쨋거나 달밧을 억지로 다 비우고 다이닝 룸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숙소로 올라간다.
방은 3층의 공동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방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몬주 게스트 하우스에서도 공동화장실이 가장 가까웠었다.
일면 화장실이 가까워 편리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화장실을 오가는 사람들의 소음으로 기피 할 것같다. 그렇지만 롯지측의 입장에서 보면 홀로 트레커에게 알맞는 1인실 방이 있으면 몰라도 2인 1실의 방을 홀로 트레커에게 독실로 주어야 하는 나름 애로사항이 있어, 빈방이 남아 있어도 홀로 트레커에게는 좋은 방을 선점케 할 수는 없었을것이다. 동양인들은 몰라도 유럽인들이나 미국쪽 사람들은 방이 조금 마음에 들지않아도 사정없이 다른 롯지로 발길을 돌려버리니, 방을 파는 것보다 음식을을 팔아야 하는 롯지측에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씁쓸할 수 밖에...
그러나 몬주 게스트하우스의 방에 비하면 여기는 호텔수준이다. 창문의 채광도 좋고 풍광도 빼어난 위치라서 혼자지만 주인장 앙 도르지 셀파가 조금 배려를 한것 같다.
<셀프 카메라>
너무나 지루하게 보낸 하루다. 하릴없이 많은 시간을 허비한것 같아 속이 상하지만 내일을 기대하며 남체에서의 첫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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