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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연수가 "아아, 제발 이 이야기가 끝없이 계속됐으면 좋겠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한밤의 아이들>은 이야기꾼의 마법과 같은 이야기가 듬뿍 담겨있습니다. 화자인 살림도 독자들/청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나는 사람들의 인생을 먹어치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를 알려면, 나 하나를 알기 위해서는, 당신도 나처럼 그 모든 인생을 먹어치워야 한다."
30개의 제목을 가진 3부작 이야기.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나는 봄베이 시에서 태어났는데...옛날옛날 한 옛날이었다. 아니, 안 되겠다. 연원일을 생략할 수는 없다. 나는 1947년 8월 15일 나를리카르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시간은? 시간도 중요하다. 그래, 좋다. 밤이었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실은 밤 12시 정각이었다. 내가 나오는 순간, 마치 경의를 표하듯이 시곗바늘들이 하나로 포개졌다. 아, 더 자세히, 더 자세히: 나는 인도가 독립하는 바로 그 순간 이 세상으로 굴러나왔다." 인도가 독립한 날 정각에 태어난 살림은 자신의 운명이 인도의 운명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한 개인의 인생과 그의 가족사가 인도 역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자신이 산산히 부서지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설득력있게 이야기합니다. 그 당시, 즉 인도가 독립한 날의 정각부터 1시간 사이 천 명하고도 한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이 아이들은 정각에 가까워질 수록 아주 특별한 능력을 지니게 됩니다. 열두시 정각에는 두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살림과 시바, 시바와 살림. 운명의 장난인지 이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 이름표를 바꿔치기 당해 서로의 운명이 뒤바뀌게 되지만, 어쨌든 시바에게는 전쟁의 재능을, 살림에게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독자들이여, 눈치 채셨습니까? 살림은 그의 능력덕분에 필연적으로 기억을 글로 담아내는 글쟁이의 운명을 지녔다는 사실을. 어쨌든 살림은 이 한밤의 아이들의 존재를 제일 처음 발견한 아이이며, 자신들이 태어난 존재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되지요. 그래서 이야기가 시작한 1부에서부터 자신의 존재가 특별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가 태어나기도 전의 조상들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의 부모가 누구인지, 그가 어떻게해서 태어났는지, 어떻게 우연찮게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한밤의 아이들과 연결하게 되었는지 등등,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과 인도 역사가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1915년부터 1978년까지의 인도의 근대사를 이 책을 통해 엿보았는데 한국의 근대사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복잡하고 요지경같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 맞서 독립을 투쟁하는 인도인들, 해방 후 종교와 언어차 때문에 그리고 각 나라의 국경지대란 요소때문에 인도가 곳곳으로 균열되고 떨어져나갔는지를 보았지요. 또한 해방 후 권력을 잡은 지식인들이 그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현실이지만 현실같지 않은 일들을 벌였는지도 간접적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인도의 복잡다단한 역사처럼 살림의 인생사가 그렇게 파란만장하게 펼쳐졌고, 그렇기때문에 기쁘고 슬프고 비극적이고 무시무시한 그의 이야기속에 빠져들어, 이야기속에서 이야기를 듣는 청자 파드마처럼 저도 '이게 어디까지 진실이고 거짓인지', 즉 살림을 어디까지 믿어야하는지 의심에 빠지기도 했고 '환상적이며 현실적인'이야기에 헤어나올 틈이 없었습니다.
한편 이 책은 소설에 대한 소설을 보여주기도합니다. 일명 메타소설. 아. 소설에서의 형식미에 대해 저 코스모스는 조금 알게되었습니다. 어쨌든. 이 책은 20세기의 천일야화답게 이야기꾼의 전통을 보여주면서도 문학의 새로운 면을 드러내지요.
막 책을 다 읽은 참이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이 책을 번역한 김진준 씨의 말처럼, 말을 꺼낼수가 없습니다. 그저, "끝내주는 이야기책"이라고만 정리하겠습니다.
첫댓글 끝내주는 이야기책 저도 곧바로 읽어 보겠습니다. 끝내주는 독서가, 코스모스님. 감사합니다.
리버티님의 감상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네요? 좋은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을 읽고 난 후, 책을 읽고싶은 마음이 드셨다니 저야말로 기분이 하늘로 가볍게 오르듯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