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증조)할아버지다.”
5일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은 김익창(金益昌·60) 씨의 손자 손녀들은 한 묘비 앞에 다다르자 펄쩍펄쩍 뛰었다.
묘비에는 ‘해병대 중위 김문성(金文性)’이라고 적혀 있다. 그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당시 강원 양구지역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도솔산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인공. 전쟁기념관이 선정한 ‘6월의 호국인물’이다.
김 중위의 막내조카인 김 씨는 “작은아버지가 젊었을 때 돌아가시는 바람에 직계 후손이 없어 조카들이 모시고 있다”며 해마다 이맘때면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를 데리고 이곳을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렇게 많은 묘지 중에 사연이 없는 이가 어디 있겠느냐”고 말하던 김 씨는 뛰어노는 손자 손녀를 보다가 “내가 저만할 때 작은아버지 소식을 접했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김 중위는 부유한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출중한 외모와 쾌활한 성격에 ‘신랑감 1호’로 부러움을 샀다. 그러던 그의 자원 입대는 가족에겐 상당한 충격이었지만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김 씨는 “당시 군 입대는 호국청년의 신성한 의무였다”고 회상했다.
사병으로 입대한 김 중위는 군 생활이 적성에 맞았던지 다시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그리고 해병대 소위 임관 3개월 만에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의 나이 21세 때였다.
김 씨는 “내가 그 어린 나이에 나라가 무엇인지, 애국이 무엇인지 알기나 했겠느냐”며 “그래도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상심한 표정을 지켜보며 무언가 느낀 게 있었는지 지금껏 외국제품 하나 안 쓴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가족 중 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한 훌륭한 분이 계셨다는 얘기를 후손에게 해 줄 수 있는 자료는 신문기사 스크랩이 전부”라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