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에게 Korean Pop Music을 아느냐고 하는 질문은 더이상 곤란한 질문이 아닐테다.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젠틀맨, 그리고 걸스 제너레이션 같은 걸그룹들, 수퍼주니어 같은 보이그룹들의 K-Pop 댄스뮤직을 안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을테니 말이다. 그들에게 K-Pop은 의심의 여지없이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음악이다. 그렇다면 정작 한국 사람들은 K-Pop이 지금의 한국을 대표하는 대중음악이라고 거침없이 답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기억하기로 5,6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무개성 댄스뮤직이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떨어뜨린다고 욕을 해댔지만, 이 음악이 한류의 선봉장이 된 후부터는 K-Pop을 대하는게 깜쪽같이 호의적이다. 수출역군과 국위선양을 하는 일이라면 전국민이 하나되어 박수쳐주는 사회 분위기 덕분에 K-Pop에 대한 비판론은 어느새 쑥 들어갔다. K-Pop이 진정한 한류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지, 한류의 수준을 오히려 한정 짓고 있지는 않는지(나는 개인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언론과 정치권에 의해 과대포장되고 있지는 않는지, 이런 저런 의구심을 가지는 것조차 쉬쉬하는 분위기다. 비판없이 발전하는 문화가 없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주지 않았던가?
한국대중가요의 역사를 얘기하기에 앞서 K-Pop의 비판론부터 얘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내 열정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를 충분히 훑고 난 다음에 K-Pop 비판론은 말미에나 가서 할 얘기로 남겨두련다. K-Pop 얘기부터 꺼낸 이유는 외국인들이 한국 대중음악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이 때에 정작 우리는 우리의 대중음악에 대해서 몰라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다. 우리는 현 시점의 우리 대중음악의 모습을 알아둘 필요가 있고 그 뿌리와 변해온 역사도 익히고 있어야 한다.
한국대중음악의 역사
우선 주류 대중음악의 맥만 훑어보자. 어느 시대이든 주류의 빈 공간을 비주류가 메워주었지만 비주류 얘기는 차츰 (할 수 있으면) 해보겠다. 아이돌 댄스뮤직이 주축이 되는 K-Pop이 지금의 한국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음악이냐는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나, 상업적인 주류 음악인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빅뱅과 곧바로 이어진 테크노의 유행이 지금의 댄스음악 형식미를 만들었다. 서태지가 댄스라는 펜으로 경계를 긋기전에는 한국대중음악은 조용필과 함께 했던 낭만의 80년대 한국 팝이 주류였다. 70년대에는 포크와 그룹사운드 음악이, 60년대에는 패티 김의 우아한 소울과 발라드 음악이 주류였다. 60년대는 서양의 대중음악 선율과 작법이 이 땅에 처음으로 유입되던 때였다. 즉, 한국의 대중음악은 서양의 대중음악과 접목하기 시작한 60년대 이후로 토착화되면서 발전해 온것이다. 그렇다면 60년대 이전에는 어떤 음악이 이 땅의 주류 대중음악이었을까.
트.로.트.
그렇다. 트로트다. 트로트는 1930년대부터 유행가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한국전쟁 이후까지 40여년 동안 확고부동한 주류 대중음악이었다. 싸이가 홀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가정하에, 만약 싸이가 1960년 이전에 활동했다면 지금 전 세계인들은 비만 오는 날이면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을 부르면서 슬프게 말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정리하자면, 우리의 대중음악은 1930년대에 일본 대중음악이 이식된 트로트로 시작했고, 1960년대 에 영미의 대중음악이 이식된 서양식 팝음악으로 갈아탄 후, 2000년대부터 한국형 댄스음악이라는 그리 독자적이진 않지만 억지스럽게 독자적인 모습으로 평가 받으면서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그렇다, 불행히도 우리의 대중음악의 역사는 외래에서 이식된 역사다. 토착화 여부를 따져야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대중음악이 우리의 전통음악(민요)을 계승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트로트가 왜색이라면서 정통성 논쟁이 80년대에 크게 일었던 일이 기억난다. 트로트의 왜색 시비는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 요즘 대중음악은 트로트가 유치한 음악이자 왜색음악이라면서 비판한다. 같인 이유라면 60년대 이후의 대중음악도 양색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중음악 판에서 왜색시비와 양색시비가 대립하는 것을 클래식은 한 발 뒤에서 무심하게(혹은 한심하게) 지켜 볼 것이다. 또 그 뒤에선 국악 애호가들이 클래식이든 대중가요든 모두를 비주체적인 음악이라며 손가락질 할 것이다.
트로트는 우리나라 초기 대중음악의 틀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중음악 역사의 시작을 트로트가 이 땅에 정착하기 시작한 1930년대로 보는 것이 맞을까. 대중음악의 특성을 '대중적인 미디어(음반, 방송)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상업적으로 전파되는 것'으로 본다면 1930년대가 아마 맞을 것이다. 1930년대부터 축음기와 라디오의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대중음악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로트가 정착되기 이전에 우리 민중의 주류 음악이었으며 트로트가 정착된 이후에도 꾸준히 불리웠던 민요는 어떻게 봐야할까.
대중음악 연구가 이영미씨는 1920~30년대에 일본의 대중가요가 한국에 번안되면서 트로트는 곧바로 주류 대중음악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트로트 레코드가 불티나게 팔리면서 상업적인 인기를 끈 것은 맞지만 1930년대 들어서도 트로트 이전의 우리 대중음악이었던 민요의 인기도 꾸준했다고 생각한다. 즉, 트로트가 미디어을 등에 업고 곧바로 주류음악의 왕좌를 차지한 것이 아니라 민요와 오랜 기간 왕좌를 놓고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트로트가 지금 현재 민요보다 더 많은 음반 기록으로 남아있기에 민요의 비 미디어적 파급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K-Pop이 상업적인 주류이기는하나 지금 우리 모두가 K-Pop을 듣는 것은 아니다.
트로트가 도입되면서 트로트는 도시 서민의 신식 음악이 되어갔고 민요는 시골 음악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전통적인 민요는 주로 구전을 통해 인기를 유지했지만, "신민요"라는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민요 레코드도 꾸준히 취입되었다. 신민요는 시골 서민들의 음악으로 사랑받으면서 저변을 지켜갔다. 겨울이 지나고 봄 냄새가 풍길 때마다 나는 아직도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같은 민요가락을 흥얼거린다. 내가 어릴때였던 70년대 80년대에도 민요 가락이 대중 방송에 전파를 탄 덕분이겠다. 나는 어릴 때 대도시에 살았지만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이 민요를 부르는 장면을 수없기 기억한다. 80년대 후반, 대학생이 되어 신입생 환영회 같은 술자리에서도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니나노~~~닐니리야~~" 같은 선배들의 민요 가락을 들었다. 지금 신입생 환영회 때 민요를 부르는 학생이 있다면 아마 음악적으로 상당히 고상하다는 얘기를 들을지 모르겠지만 20,30년 전만 해도 민요 가락은 고상함과 거리가 멀었다. 민요는 80년대 후반에 트토트와 더불어 우스꽝스런 선술집 노래 취급을 받았다. 어떤 취급을 받았든 분명한 점은 민요의 생명력은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다는 것이다. 1930년대에 트로트가 민요를 밀어내고 곧바로 주류 음악으로 떠올랐다고는 하나, 민요는 80년대 후반까지 술자리 음악으로나마 살아남았다. 잡초같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민초들처럼, 민초들이 누렸던 대중음악, 대중문화 역시 잡초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1930년대로 돌아가서, 간결한 신식음악 트로트와 달리 전통적인 민요는 대체로 길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민요는 3분짜리로 짧게 편곡을 해서 녹음되었다. 당시 78회전 SP 레코드의 한 면 재생시간이 3분 정도였기 때문이다. 창작자라는 개념이 없던 전통 민요는 작곡가가 편곡 혹은 새로운 창작을 통해 대중적인 특성의 음악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러한 음악이 일제 강점기에도 트로트와 함께 대중적인 인기를 유지했던 "신민요"였던 것이다. 하지만 신민요는 한국 대중음악으로서 정통성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 정통성은 일본음악인 트로트가 이어갔다. 민요는 시골로, 노인들로, 도시 하층민들로 하향적 파급에 의해 그 존재만 근근히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생뚱맞지만 "만약에 한국사!"
만약에 우리한테 일제강점기의 역사가 없었다면? 나는 상상한다, 우리 대중음악 역사의 시작이 트로트가 아니라 민요였을 거라고. 그렇다하더라도 60년대에는 서양의 록과 팝의 전세계적인 유행은 피할 수 없었을테니 30년대부터 주류음악이었던 신민요는 60년대 서양의 팝음악과 접목하여 지금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해왔을 것이다. 민요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서양의 팝과 록이 섞인 음악. 과연 어떤 음악이 되었을까.
(1) 민요의 특성: 노랫말은 설움, 한, 임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이라는 정서를 담고, 리듬은 주로 3박자다.
(2) 서양 팝/록의 특성: 기타, 드럼, 키보드와 일렉트로닉 계열의 연주법에 4박자에 두번째 네번째에 강을 두는 비트다.
쉐키리 쉐키리! (1)과 (2)를 섞는다. 그런 결과물을 아래 이상은의 노래들에서 찾고 싶다. 만약에 한국사가 전개되었다면 이상은의 아래 음악 형태가 주류 음악이 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이다. 그런 음악은 K-Pop이 아니라 일명 "민요-Pop"으로 불리웠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