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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왕보살경 하권
4. 혜자재(慧自在)
이와 같은 지혜로 지혜의 업을 짓지만 지혜를 다하지 않는 이것을 지혜가 자재하다[智自在]고 한다.
자재왕아, 무엇을 보살의 혜(慧)가 자재하다 하는가?
혜자재를 얻은 보살은 모든 법을 알아서 문장과 글귀를 해석하며, 뜻에 걸림 없는 지혜ㆍ법에 걸림 없는 지혜ㆍ말에 걸림 없는 지혜ㆍ즐겨 설하는 데 걸림 없는 지혜, 이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의 힘을 얻기 때문에 자재하다고 한다.
[뜻에 걸림 없는 지혜]
무엇을 뜻에 걸림 없는 지혜라 하는가?
보살이 모든 말 가운데서 말에 의지하지 않고 뜻에 의지하는 것이다. 뜻이란 모든 법을 아는 바른 지혜다.
무엇을 바른 지혜라 하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뜻을 말한다. 그러나 이 뜻은 말속에 있는 것이지 소리와 무관하게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본래부터 모든 모양을 떠났기 때문이니 이것을 뜻[義]이라 한다. 그러므로 말을 떠나지 않고 뜻에 의지해야 하니 말 가운데 평등한 성품이 바로 뜻이다.
이와 같이 알면 뜻에 걸림 없는 지혜라 한다.
또한 일체 법의 뜻에 통달한다면 그것도 뜻에 걸림 없는 지혜라 한다.
[법에 걸림 없는 지혜]
무엇을 법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는가?
보살이 법에 의지하고 법 아닌 것에 의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법에 의지하는 자는 법 아닌 것을 보지 않는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은 모양을 떠났으나 이름뿐인 줄 알기 때문이다.
법에 걸림이 없게 된 이는 3승(乘)을 설할지라도 법의 성품을 파괴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법의 성품이란 하나의 성품, 즉 모양이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다.
보살은 말을 사용해서 법을 설할 때 말이 메아리 같은 모양인 줄 즉시 알며, 설한 법을 믿고 이해하는 것이 법의 성품과 동일하여 지혜에든 말에든 걸리는 바가 없다.
이것을 법에 걸림이 없는 지혜라 한다.
[말에 걸림이 없는 지혜]
무엇을 말에 걸림이 없는 지혜라 하는가?
모든 하늘의 말[言辭]을 알며, 용ㆍ야차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긴나라ㆍ마후라가 등의 사람인 듯 하면서 사람이 아닌 것들의 말을 알며, 제석ㆍ범천ㆍ세상을 보호하는 자의 말을 아는 것이다.
한 말ㆍ두 말ㆍ많은 말ㆍ간략한 말ㆍ넓은 말ㆍ남자의 말ㆍ여자의 말ㆍ남자 아닌 말ㆍ여자 아닌 말ㆍ과거의 말ㆍ미래의 말ㆍ현재의 말을 알고,
그때그때 방편으로 말을 써서 듣는 자가 이해하게 하며,
자기는 깨끗하고 미묘한 말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경멸하거나 훼방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모든 법에는 말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생각한다.
‘말을 사용해서 법을 설하여 듣는 사람이 이해하게끔 하나 이 법은 말에서 얻어질 수 없고 말 역시 법에서 얻어질 수 없다. 애초부터 말이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말이라는 것이 있다면 착한 말로 착하지 않은 법을 설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에는 선과 악을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말에 걸림이 없다는 것은 중생의 말을 사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법을 행하게 한다는 뜻이다.
왜냐 하면 법이 법을 행할 수는 없으므로 이런 식으로 모든 법을 행하기 때문이다.
말을 가지고 이 행을 설하여 저들이 이해하게끔 하는 것을 말에 걸림 없는 지혜라 한다.
[즐겨 설하는 데 걸림 없는 지혜]
무엇을 즐겨 설하는 데 걸림 없는 지혜라 하는가?
보살이 모든 문자를 설하기를 즐기며, 모든 음성도 설하기를 즐기며, 모든 명자(名字) 또한 설하기를 즐긴다면 이것을 즐겨 설한다고 한다.
무엇을 즐긴다 하는가?
보살이 법을 설할 때 법을 즐기고, 실제를 즐기고, 진실을 즐기는 것이다.
수다라(修多羅:經)를 믿고 즐기는 자에게는 그를 위해 수다라를 설하며,
기야(岐夜:重頌)ㆍ가타(伽他:孤起頌)ㆍ폐가란나(弊迦蘭奈:授記)ㆍ구타나(謳陁那:無問自說)ㆍ이타나(禰陀那:因緣)ㆍ아파타나(阿波陀那:譬喩)ㆍ이제욱다가(伊提郁多伽:本事)ㆍ사타가(闍陀伽:本生)ㆍ배불약(裵佛略:方等)ㆍ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未曾有)를 믿고 즐기는 자에게는 다 그것들을 설하며,
과거를 믿고 즐기는 자에게는 본생담[本事]을 설한다.
모든 중생이 무슨 근(根)을 즐기느냐에 따라 법을 설한다.
즉 믿는 근기[信根]를 즐기는 자에게는 믿는 근을 가지고 법을 설하며,
정진하는 근기[進根]를 즐기는 자에게는 정진하는 근기를 가지고 법을 설하며,
집중의 근기[念根]를 즐기는 자에게는 집중의 근기를 가지고 법을 설하며,
선정의 근기[定根]를 즐기는 자에게는 선정의 근기를 가지고 법을 설하며,
지혜의 근기[慧根]를 즐기는 자에게는 지혜의 근기를 가지고 법을 설한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을 근기에 따라서 설한다.
음욕(婬欲)이 많은 자는 2만 천 가지로 나뉘는데 부처님께서는 8만 4천의 근기가 있음을 아신다. 여래께서는 이 모든 근기마다 있는 대로 다 설하기를 즐기며, 보살은 다음으로 설하기를 즐긴다.
성냄[瞋恚]이 많은 자는 2만 천 가지로 나뉘는데 부처님께서는 8만 4천의 근기가 있음을 아신다. 여래께서는 이 모든 근기마다 있는 대로 다 즐겨 설하시고, 보살은 그 다음으로 즐겨 설한다.
어리석음[愚癡]이 많은 자는 2만 천 가지로 나뉘는데 부처님께서는 8만 4천의 근기가 있음을 아신다. 여래께서는 이 모든 근기마다 있는 대로 다 즐겨 설하시고, 보살은 다음으로 즐겨 설한다.
잡되게 분별하는 자는 2만 천 가지로 나뉘는데 부처님께서는 8만 4천의 근기를 아신다. 여래께서는 이 모든 근기마다 있는 대로 다 즐겨 설하시며, 보살은 그 다음으로 즐겨 설한다.
자재왕아, 이것을 즐겨 설하는 데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한다.
뜻에 걸림이 없고, 법에 걸림이 없고, 말에 걸림이 없고, 즐겨 설하는 데 걸림이 없는 네 가지는 다 지혜가 근본이 되며,
지혜가 그것들이 머무는 처소가 되며, 지혜에 포섭된다.
보살은 지혜의 힘으로 네 가지 자재와 나머지 자재를 써서 다 자재를 얻게 한다.”
“세존이시여, 지혜는 무엇을 근본으로 하며, 어느 처소에 머물며, 어느 처소에 포섭됩니까?”
“자재왕아, 지혜는 많이 듣는 것을 근본으로 하며, 많이 듣는 곳에 머물며, 많이 듣는 데 포섭된다.”
“세존이시여, 많이 들음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며, 어느 처소에 머물며, 어느 처소에 포섭됩니까?”
“자재왕아, 많이 들음은 선지식을 근본으로 하며, 선지식의 처소에 머물며, 선지식에 포섭된다.”
“세존이시여, 선지식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며, 어느 처소에 머물며, 어느 처소에 포섭됩니까?”
“자재왕아, 선지식은 공경하는 마음을 근본으로 하며, 공경하는 마음에 머물며, 공경하는 마음에 포섭된다.”
“세존이시여, 공경하는 마음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며, 어느 처소에 머물며, 어느 처소에 포섭됩니까?”
“자재왕아, 공경하는 마음은 깊은 마음을 근본으로 하며, 깊은 마음에 머물며, 깊은 마음에 포섭된다.”
“세존이시여, 깊은 마음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며, 어느 처소에 머물며, 어느 처소에 포섭됩니까?”
“자재왕아, 깊은 마음은 곧음을 근본으로 하며, 곧음에 머물며, 곧음에 포섭된다.”
“세존이시여, 곧음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며, 어느 처소에 머물며, 어느 처소에 포섭됩니까?”
“자재왕아, 곧음은 큰 자비을 근본으로 하며, 큰 자비에 머물며, 큰 자비에 포섭된다.”
“세존이시여, 큰 자비는 무엇을 근본으로 하며, 어느 처소에 머물며, 어느 처소에 포섭됩니까?”
“자재왕아, 큰 자비는 중생을 근본으로 하며, 중생에 머물며, 중생에 포섭된다. 왜냐 하면 자재왕아, 보살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큰 자비심을 내며, 모든 지혜의 마음을 내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살의 지혜가 자재하다고 한다.
또한 혜자재를 성취한 보살은 지혜가 자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법문을 가지고도 1겁(劫) 동안, 혹은 1겁이 감하는 동안 갖가지 다른 말로 모든 법을 널리 설하지만 실상에 있어서는 어기거나 잃는 바가 없다.
보살은 자기 몸을 나타내지 않고 중생을 위해여 법을 설하기도 하고, 혹은 몸의 털구멍마다에서 법음을 내기도 하며, 중생의 행태에 따라서 법을 설하기도 한다.
보살이 자기 몸을 나타내어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면 모든 외도논사(外道論師)들은 그 뜻을 끝까지 다하지 못한다.
또한 외도선인(外道仙人)이 지은 만다라주술경(曼多邏呪術經)ㆍ위타야어론(韋陀若語論:베다)ㆍ발추(鉢追)ㆍ모든 신통ㆍ모든 지혜의 문ㆍ일월오성경(日月五星經)ㆍ몽경(夢境)ㆍ지동경(地動經)ㆍ타마타주술(陀魔陀呪術)ㆍ 오어경(烏語經)ㆍ조수경(鳥獸經)ㆍ용건달바야차입신경(龍乾闥婆夜叉入身經)ㆍ왕상경(王相經)ㆍ풍락기근상경(豊樂飢饉相經)ㆍ제황유희경(諸遑遊戱經) 등
세계의 경서와 지혜와 기예와 문장과 산수와 색상과 음악과 가무와 피리를, 소리와 곡조가 꺾어질 때 보살이 몸을 굴리기만 하면 자연히 마음 속에 통달한다.
지혜의 힘을 쓰기 때문에 다 알며, 다 나타내 보이며, 다 통달한다.
보살이 비록 이와 같은 방법을 안다 해도 중생을 번뇌롭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것으로 깨끗하고 묘한 도를 삼지도 않는다.
자재왕아, 지혜가 자재한 보살은 백천만이나 되는 모든 범왕과 함께 머물고 함께 앉으며, 스스로 그 몸을 나타내어 함께 말을 나누지만 범왕의 빛나는 덕상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범왕이 보살을 맞이하고 전송하면서 존경심을 낸다.
이와 같이 모든 천궁에서 자재한 힘을 나타내지만 집착하지 않고 다만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무아(無我)라는 생각을 내어 남이 없는 법[無生法]을 의지하여 일체 중생의 마음을 제도한다.
자재왕아, 이것을 보살의 지혜가 자재하다 한다.
또한 자재왕아, 지혜가 자재한 보살은 저 마군의 천궁 보다 더 좋은 궁을 나타내고 자기 몸도 마군보다 백천만 배나 좋게 나타내어 모든 마군 무리들로 하여금 목마르게 사랑하는 마음을 내게 하며, 탐착하는 마음을 내게 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꾸며서 마군의 교만한 마음을 파괴하여 그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의지하게 한 뒤에 법을 설한다.
자재왕아, 지혜는 보살이 행하는 공통되는 법이다.
보시를 하거나 받거나 보시로써 회향하려면 이곳에서 반드시 지혜를 써야 하며,
스스로 계율을 지니고 다른 사람에게도 계율을 지닐 것을 가르쳐 계율 지님으로써 회향하려면 이곳에서도 지혜를 써야 하며,
인욕행을 닦고 다른 사람에게도 인욕을 가르쳐 인욕으로써 회향할 경우 이곳에서도 지혜를 써야 한다.
자신이 정진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정진을 가르쳐 정진으로써 회향할 경우 이곳에서도 지혜를 써야 하며,
자신이 선정을 행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선정을 가르쳐 선정으로써 회향할 경우 이곳에서도 지혜를 써야 한다.
모든 경을 읽거나 다른 사람을 위해 법을 설하거나 들은 대로 행할 때 지혜로써 생각을 바로 하고, 가고 서고 앉고 눕는 모든 몸가짐과 일체에 마음을 버리는 경우에도 다 지혜의 힘을 써야 한다.
지혜의 힘을 성취한 보살은 모든 착한 법의 힘으로 지혜를 증장하는 보살이니, 일체 법에 있어서 자재함을 증장하며, 지혜가 자재한 보살은 일체 법에 마음대로 행한다.
지혜의 힘을 잡은 보살은 부처님께서 마군을 무찌르는 줄 알며, 지혜가 있는 보살은 마음대로 모든 법을 따라 행하지만 힘은 쓰지 않는다.
마치 위로 활을 쏘면 그 화살이 돌아올 때는 활의 힘이 필요치 않는 것과 같다.
보살도 이와 같이 지혜의 힘을 쓰기 때문에 자재한 지혜를 버리고 모든 착한 법에 들어간다.
도량에 앉을 때 이 지혜의 힘을 얻어 이 힘을 쓰기 때문에 오른 손으로 시방세계를 움직이며 큰 마군을 무찌르고 부처님의 열 가지 힘을 얻는다.
이 열 가지 힘 때문에 모든 천상 인간 중에 당할 자가 없다.
자재왕아, 이것이 계자재(戒自在)ㆍ신통자재(神通自在)ㆍ지자재(智自在)ㆍ혜자재(慧自在)이다. 누구라도 선근을 심지 않고는 이런 경전을 들을 수 없다.
자재왕아,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기쁜 마음을 낸다면, 이 사람은 네 가지 자재를 얻어 이 자재함으로 자재한 힘을 나타내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자재왕아, 이 모든 자재는 그 어떤 성문이나 벽지불에게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자재왕보살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매우 기뻐서 합장하고 공경히 예를 올리고 높으신 얼굴을 우러러 보면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지금 이 네 가지 자재한 힘을 쓰시기 때문에 일체 중생도 이 네 가지 자재한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신력으로 자재왕보살로 하여금 갖가지 좋은 빛깔의 향과 꽃을 그 옷자락에 가득 채워 부처님과 모든 보살에게 흩뿌리게 하면 뿌려진 꽃을 받은 자는 다 금색이 되고 서른 두 가지 모양으로 그 몸을 장엄하게 됩니다.”
공중에서 백천만억이나 되는 모든 하늘들이 이구동성으로 찬탄하였다.
“이와 같은 네 가지 자재한 힘을 받아 믿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는 마음을 낸 중생은 모두 부처님의 장엄으로써 자신을 장엄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 네 가지 자재는 다 일체법을 아는 지혜의 마음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부처님께서 본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지 않았다면 이 모든 중생에게 어떻게 이렇게 불가사의한 자재를 설하는 경을 듣게 하겠습니까.”
모든 천자가 찬탄을 마치자 부처님께서 자재왕보살에게 말씀하였다.
“내가 과거 세상을 생각해 보니 연등부처님 이전에 보정광왕여래(普淨光王如來)라는 70번째 부처님께서 계셨는데, 그 분도 이 네 가지 자재한 법을 자세히 설하셨다.
그때 지행족(智行足)이라는 보살이 있었는데 역시 이 법을 부처님께 질문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법을 설했을 때 8천 보살이 이 네 가지 자재를 얻고 생함이 없는 이치를 확실히 알았으며, 3만 2천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는 마음을 냈었다.
자재왕아, 내가 그때 처음으로 이 네 가지 자재함을 들었으며, 듣고 나서는 받아 지니고 연등부처님 때가 되어서야 네 가지 자재를 완성했다.
만일 지금 세상에 내가 멸도한 후에 어떤 사람이 한마음으로 불도를 구하여 이 경을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은 빠른 시간 안에 무생법인을 얻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자재왕경을 설한 때 3만 2천의 천상과 인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다는 마음을 냈으며, 모든 천자가 부처님을 공양하려고 백천 가지 음악을 울리고 하늘나라의 꽃을 뿌렸다.
부처님께서는 신통한 힘으로 뭇 음악을 따라 이와 같은 소리를 내셨다.
‘만일 어떤 중생이 자재왕경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은 모든 근(根)이 밝고 영리하여 부처님법을 즐기고, 그 지혜가 넓고 넓어 선지식에게 보호받으며, 선근을 깊이 심어 모든 중생에게 큰 자비의 길을 행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때 자재왕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에게는 열 가지 힘[十力], 네 가지 두려울 바 없음[四無所畏],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법[十八不共法]이 있습니다만,
보살에게도 열 가지 힘, 네 가지 두려울 바 없음,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법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자재왕에게 말씀하셨다.
“아비발치(阿鞞跋致:不退轉)보살이 있는데, 이들은 이미 오랫동안 익히고 행하여 생겨남이 없다는 이치를 확실히 알고 제8지(地)에 머물며 제9지에 들어가고자 하여 반야바라밀방편의 보호를 받는다.
이런 보살은 보살의 열 가지 힘, 네 가지 두려울 바 없음, 열여덟 가지 함께 하지 않는 법을 빠짐없이 성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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