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鳳心劍의 傳人 두두두! 두 필의 건장한 준마(駿馬)가 어둠을 가르며 질주하고 있었다. 항주성을 향하는 관도 위에는 몇몇의 행인들이 걷고 있었지만, 마상의 인물들은 훌륭한 기마술로 교묘히 행인들을 피하며 맹렬히질주했다. 자욱이 피어오르는 흙먼지를 뒤집어 쓴 행인들은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준마들이 달리는 속도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갈색의 준마 위에는 단단한 무장을 한 귀견수(鬼見手) 조중이 흙먼지를 더불어 쓴 채 무표정히 말채찍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뒤를 조금도 처지지 않고 따르는 선홍빛 준마의 마상에는 죽립을 깊숙이 눌러 쓴 남의인이 가끔씩 주위를 살피며 따르고 있다. 조중은 태산(泰山)에 자리한 무림맹의 총단(總壇)으로 가서 직속상관인 감찰전주(監察殿主)에게 항주의 사건을 설명한 후, 몇 가지지시를 받고 다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일단 자객의 표적이 될만한 인물이 네 사람이었다. 무림맹의 공동맹주들인 우내삼기(宇內三奇)와 삼기중 일인인 신검황(神劍皇)의 아들 연대강(燕大强)이 바로 그들이었다. 무림맹의 최고 요인들인 이 네 사람의 신변은 항상 호전(護殿)의고절한 무예를 지닌 위사(衛士)들에 의해서 주야로 경호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치밀한 그 경호를 다시 더 강화한다는것은 불필요한 주의를 끌게 할 따름이었다. 두두두...! 두 필의 준마가 성 안으로 들어서자,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두 필의 말을 막아서며 장읍을 했다. {조어른, 사공표입니다.} 나타난 인물은 조중의 심복들 중 비마영의 행방을 찾고 있던 사공표(史公彪)였다. 갑작스런 사공표의 출현에 조중은 황망히 마상에서 내려섰다. {무슨 일인가, 사공표?} 사공표는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 후 나지막이 말했다. {공동파(공동派)의 장문인 진산도인(震山道人)이 지부에 와 있습니다.} 조중의 눈빛에 이채가 스쳤다. {그 사람이 왜 절강지부에 찾아왔나?} {우선 자리를 옮기시지요. 지금 열래객잔(烈來客棧)에서 차수와운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 앞장서게.} 사공표의 행동에서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조중이 급히 말을 몰았다. 열래객잔은 주로 숙식만을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방들은 비교적조용하고 깨끗했다. 조중이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장차수와 자운유가 급히 인사를했다. 조중은 인사를 받은 둥 마는 둥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공동파의 장문인이 지부로 쳐들어오다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자운유가 난색을 지으며 말했다. {누가 이번 일을 진산도인에게 알렸는지 모르지만, 이틀 전 오인의 제자와 함께 온 진산도인이 다짜고짜 모충이 공동파의 반도라면서 내놓으라고 설치는것을 지부장이 겨우 달래어 조어른을기다리고 있습니다.} [모충이 공동파의 제자라?] 조중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모충의 시신을 절강 지부로 옮긴 것을 아는 사람은 모두 합쳐야십 명 내외였고, 그 사실을 철저히 비밀로 붙이도록 되어 있었다. 헌데 그것을 공동파에서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또 자신도 아직파악하지 못했던 모충의 출신이 공동파라는 건 어찌된 노릇인가? {그래! 모충이 공동파의 제자라고 치고... 하면 공동파 장문인은또 어떻게 모충의 시신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알았다고 하던가?} 조중의 추궁에 장차수는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게...공동장문은 아직 모충이 죽었다는 것은 모르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리고 하도 막무가내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돌연 이때 청아한 목소리가 싸늘하게 울려퍼졌다. {흠, 말코 같은 도사가 더러운 성질을 부리는 모양이군.} 지독히도 경멸이 섞인 말이 아닌가? 조중을 제외한 삼 인은 죽립을 깊이 눌러 쓴 남의인을 향해 놀라운 시선을 던졌다. 냉소를 터트린 장본인은 자그마한 체구를 지닌 그 남의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동파 장문인이 어떤 신분인가? 배분으로만 따져도 당금무림에서 감히 이런 막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손꼽을 정도였다. 헌데, 비록 죽립으로 얼굴을 가린데다 먼지를 막기 위하여 면사를 둘렀지만 많아 보아야 이십대 초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남의인의 말투는너무도 무례한 것이었다. 만일 이 자리에 공동파의 진산도인이 있어 그의 말을 들었다면 벌써 피라도 튀었으리라. * 남의인은 세 사람이 멀거니 쏘아보자 문득 자신의 말이 너무 지나치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흠...} 조중이 헛기침을 터뜨리자 삼 인은 꿈에서 깨어난 듯 고래를 돌렸다. {현재 공동파의 장문인은 어디에 있나?} 자운유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 지부의 접빈각(接賓閣)에 머물고 있습니다.} 조중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사공표에게 던졌다. {비마영의 행방에 관한 단서를 잡았나?} 사공표는 송구스러운 표저으로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노력은 해 봤지만...아직 별다른 소식은...} {개방에 도움을 청해 봤나?} 사공표는 쓴웃음을 지었다. {해봤지만 냉담한 반응이었습니다.} 사공표는 조중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알고 계시지만 개방의 방주가 바뀐 후로 그들은 우리에게 한번의 도움을 준 일이 없습니다.} 조중은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다는 듯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림맹과 구파일방(九派一幇)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수련과 절제를 기본으로 삼는 구대문파의 입장에서 본다면 흑백양도를 불문하고 마구 잡이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패거리를 만든무림맹의 존재는 그 근본조차 의심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지난 삼십년동안 욱일승천하여 그 위세를 대강남북에 떨치고 있는 무림맹의 혁혁한 성공은 수백년동안 사실상 무림을 영도해온 구대문파의 심기를 뒤틀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무림맹과 구파일방의 관계는 소원해질수밖에 없었고, 도처에서 양진영 사이의 사소한 충돌이 끊이지를않고 있었다. 조중은 입맛이 쓴 표정으로 장차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장차수는 힐끗 남의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의 눈빛은상대방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빛이 흐르고 있었다. 조중이 손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차수, 그 분에게 신경 쓸 필요는 없네. 할말이 있다면 해 보게.} 남의인에 대한 조중의 존칭에 순간적으로 장차수의 눈에 호기심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같은 내심을 숨기며 말했다. {제가 마침 개방의 절강 분타주인 황룡개(黃龍개)와 몇 번 면식 이 있어서 비마영이 현재 악양(岳陽)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얻을수 있었습니다.} {다른 일들은 어떤가?} 자운유가 설명했다. {월화루에서 별다른 동정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틀 전 월화가변장을 하고 몇 시진 동안 사라졌는데 현재 그 일을 조사중에 있습니다.} 조중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그녀가 잠시 동안 사라진 것이 별다른 일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노기섞인 조중의 목소리에 자운유는 고소를 지었다. {그것이... 월화루에 비밀통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변장한 모습을 포착했기에 곧, 행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조중의 눈빛이 비수처럼 날카로와졌다. {자네들은 그 동안 편안한 생활로 몸에 살이 찐 것 같군. 게다가정신까지 나태해졌으니...} 차분한 음성이었지만 그 내면에는 신랄한 추궁의 빛이 담겨 있었다. 삼 인은 죄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삼 인 심복의 모습을 노려보는 조중의 입가에 굳은 미소가 떠올랐다. {자네들은 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겠지... 한 번은 모르지만 두번째는 결코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결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장차수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좋아, 잘 듣게 지금으로서는 월화루의 주인이 이쪽의 수중에 있는 유일한 현실적인 단서야.} 조중은 차분히 말했다. {그녀의 일거일동 하나라도 절대 놓쳐서는 안돼. 청부자의 목줄기를 잡기 위해서는 그녀의 꽁무니를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잊지말도록.} 사실 조중에게는 무거운 압력이 가해져 있었다. 그와 감찰전주는 자신들의 행동을 삼태상(三太相)에게 먼저 알려야 했지만, 그들은 이건에 대한 보고를 일방적으로 늧추어 버리자고 결정했다. 사건을 아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면 자연히 비밀이 누설되고혼란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이 일이 어설프게 처리된다면 값비싼 보상을 하지않으면 안된다. 즉, 생명까지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조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이제 지부로 가세.} 그는 말과 함께 다른 사람이 말할 틈도 주지않고 밖으로 나갔다. * 항주성내에 자리한 무림맹 절강 지부 접빈각(接賓閣)에는 도사차림의 육 인(六人)이 머물고 있었다. 여섯명의 도인들 중 다섯명은 백발을 깨끗이 빗어 틀어올린 한명의 늙은 도인을 호위하듯이 반원으로 둘러 서 있었다. 방 중앙에 포단을 깔고 좌정한 이 노도인(老道人)은 조중이 들어서자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번쩍! 한 순간, 노도인의 눈에서 화광(火光) 같은 강렬한 눈빛이 뻗어나와 조중의 눈을 따갑게 만들었다. (실로 지순한 공력! 노화순청(爐火純靑)의 경지로구나!) 조중은 내심 감탄을 하며 정중한 포권지례를 취했다. {조중이 장문인께 인사드리오.} 노도인은 일순 흰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웃는 낮에 침을 뱉을수는 없는 일, {조대협, 오랜만에 뵙는구료.} 노도인은 소태 씹은 표정으로 마지 못해 조중에게 마주 인사를했다. {하하 그 동안 진산장문인께서도 별래무양하셨는지요.} 조중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하자 진산도인은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듯 냉막하게 외쳤다. {조대협, 그 따위 가식섞인 인사는 필요없소. 내 다 알고 왔으니, 어서 썩 공동파의 반도 모충을 내놓으시오.} 진산도인의 사람을 무시하는 어조에 조중의 눈썹이 위로 치켜올랐다. {장문인, 우선 그 일을 논하기 전에 나의 말을 들어 보시지요.} 조중은 치밀어 오르는 노기를 억누르며 정중히 말했다. 하지만 원래부터 강호에서 성격이 편협하고 괴퍅한 인물로 소문난 진산도인은 차갑게 외쳤다. {흥 딴 말은 들을 필요없으니 먼저 모충이란 놈을 내 놓으시오.} 조중은 진산도인의 기세로 보아 말이 통하지 않음을 느꼈다. {차수! 모충의 시신을 가져오게.} 장차수는 흠칫했지만 곧 몸을 돌렸다. {장문인, 지금 사람이 갔으니 곧 가지고 올 것입니다.} 진산도인의 눈빛이 커졌다. {아니, 방금 시신이라고 하셨소?} 놀라움에 찬 그의 음성에 조중은 담담히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충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죽은 상태였습니다.} 진산도인의 표정이 야릇해졌다. {조대협, 그것이 확실하오?} 어딘가 비웃는 듯한 진산도인의 물음에 조중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수십 년을 강호에서 생과 사를 헤쳐나온 조중은 묻는 말속에담긴 뜻을 헤아리고 있었다. (말뜻을 보아하니 우리가 모충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곤란하게 되었군.) 진산도인의 말대로라면 모충은 비록 반도라고는 해도 구대문파중 하나인 공동파의 제자다. 그의 죽음은 다분히 문제를 일으킬 수있었다. 조중은 힘주어 말했다. {장문인 이 조중의 말에는 한 점의 거짓도 없소.} 진산도인의 입가에 냉랭한 미소가 스쳤다. {조대협의 말은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나 사람의 마음은 조석으로 변하고 강호는 원래 음모가 난무하는 곳, 나는 이 일의 진상을규명해야 되겠소.} 조중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그래셔야지요.} 장차수가 모충의 시신을 운반해 오자, 진산도인은 무표정히 시신을 일별한 후 자신의 제자들에게 소리쳤다. {모충의 시신을 본산으로 옮겨라.} 이어 조중에게 포권을 취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고 훗일 꼭 보답하겠소.} 싸늘하게 말한 진산도인은 걸음을 옮겼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흥, 언제부터 공동파가 은혜를 잊지 않을 정도로 대의(大意)를지켰지?} 누가 들어도 비웃음이 잔뜩 실린 말이었다. 그것은 물론 조중과동행한 왜소한 체구의 남의인이 한 말이었다. 조중은 다급히 동행에게 무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늦었다. 문 앞까지 갔던 진산도인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푸르락 불그락하는 그의 얼굴로 보아 노기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올랐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방금 네가 나를 모욕했느냐?} 진산도인은 두눈에서 번갯불같은 안광을 토해내며 남의인을 노려보았다. 조중이 황급히 진산도인 앞으로 나섰다. {장문인 별다른 뜻이 있어서 한 말이 아니니 고정하시고...!} 조중이 어색한 얼굴로 대신 사과를 했지만 진산도인은 그는 아랑곳 않고 남의인에게 노성을 터뜨렸다. {네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디 네놈의 입처럼 손재간도 좋은지 보자.} 쏴아아! 일갈과 함께 진산도인이 우수를 확 펼치자 그의 소맷자락에서한 줄기 날카로운 경력이 칼날같이 남의인을 향해 뻗어갔다. * {흥, 그까짓 공동파의 무예로는 어림도 없다.} 남의인은 냉소성을 외치며 식지(食指)와 중지(中指)를 꽂꽂이 세워 마주 찔러갔다 . 내찔러진 그의 두 손가락에서는 창날같이 예리한 무형의 살기가 터져나와 진산도인의 강맹한 경력을 가르고 들어갔다. 남의인의 이같은 수법의 신랄함과 기묘함은 진산도인으로서는처음 보는 것이었다. 흠칫 놀란 진산도인은 소맷자락을 회수하며 손바닥을 위로 향하면서 손목을 비틀었다. 꽈르르릉! 그러자 다음순간 대기를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터지며 강맹한 장풍이 일어나 흡사 태산을 허물 듯이 남의인을 향해 덮쳤다. 남의인은 갑자기 변화된 진산도인의 수법에 재빨리 좌우로 후려치며 두 발을 교차시켰다. 그러자 남의인의 신형은 한 순간 기우뚱거리더니 비쾌하게 허공으로 치솟았다. 진산도인은 자신의 수법이 무산되자 그 자신도 용등호약(龍騰虎 躍)의 신법으로 신형을 날리며 독룡탐조(毒龍探爪)의 금나수법으로 남의인 왼쪽어깨를 낚아채 갔다. {말코도사가 제법이군.} 남의인은 멸시에 찬 어조로 중얼거리면서 허공에서 재주를 넘었다. {운룡대구식(雲龍大九式)! 그것은 곤륜파(崑崙派)의 신법...!} 진산도인은 다급한 일성을 터뜨렸다. 동시에 황망히 뒤로 물러서며 냉랭히 물었다. {네놈은 곤륜파의 제자이냐?} 남의인은 그가 갑자기 물러서자 기회를 잡은 듯 추호의 사정도없이 찌르고 후려치면서 속공으로 공격해 왔다. {내가 곤륜파의 제자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쩌겠단 말이냐?} 폭포수가 내리 쏟는 듯한 공세에 진산도인은 허둥지둥 피하기에급급했다. 한 번 기선을 빼앗자 사기가 오른 남의인의 공격은 갈수록 수법이 신묘해지고 깊어가 무궁했다. 허나 진산도인은 수십 년 동안 격전 속을 헤쳐나온 백전노장이었다. (네놈이 곤륜파의 제자라도 이렇게 존장을 몰라보고 함부로 손을쓴다면 결코 네놈을 용서하지 않겠다.) 치솟아 오르는 노기에 진산도인은 대갈성을 터뜨렸다. {이런 육시랄 놈 같으니! 노부가 네 사문과의 정리를 생각해서용서해 줄려고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기필코 네놈의 버릇을 고쳐주겠다.} 우르르릉! 대노한 진산도인이 필생의 공력을 끌어올려 우수에 집중시키자 그의 손바닥이 갑자기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것을 본 조중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거령산수(巨靈散手)...!} 거령산수! 진산도인은 바로 공동파의 가장 무서운 호산절기를 발휘하려는 것이다. 진산도인이 자신의 최고절기를 구사하려고 하자 남의인도 방심할 수 없다는 듯 흠칫 몸을 떨며 신형을 멈추었다. 이어 그가 허리띠에 손을 갖다대자 창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허리띠에서 한 자루의 연검(鉛劍)이 시퍼런 검광을 발산하며 뽑혀져나왔다. 그 얇고 좁은 검신의 연검은 칼날에 서릿발 같은 예기가 흐르고 검신에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절세신기(絶世 神器)임이 분명했다. 그 특이한 연검을 본 진산도인은 두 눈을 휘둥그래 뜨고 입에서헛바람이 새어나왔다. {봉심검(鳳心劍)...!} 진산도인의 턱밑 근육이 실룩거렸다. 그는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연검과 남의인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윽고 탄식과 함께 공력을풀었다. {소협은 봉심도주(鳳心島主)와 어떤 관계이신지요?} 거령산수를 거둔 진산도인은 긴장한 눈빛으로 남의인에게 정중히 물었다. 진산도인의 그같은 표변한 태도에 주위에서 보고 있던 조중을비롯한 중인들도 긴장된 표정으로 남의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것은...!} 연검을 손에 든 채 엉거주춤 서서 무어라 대꾸하려던 남의인은 자신에게 쏠린 중인들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성을 버럭 내었다. {그것은 알려 줄 수 없소. 나의 검이 두렵다면 패배를 자인하시오.} 남의인의 그같은 질타에 진산도인의 표정이 나무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인이 패배를 자인한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수치가 아닌가? 진퇴양난에 빠진 진산도인은 한동안 막연한 눈길로 남의인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이윽고 땅이 꺼질 듯이 탄식을 토했다. {휴! 나 진산은 전날 봉심도주에게 크나큰 은혜를 입었으니 무어라고 하셔도 대항할 수 없소이다.} {흥, 할머니가 당신에게 은혜를 베풀었단 말이예요?} 남의인이 냉소성을 터뜨리자, 진산도인은 씁쓸한 표정으로 장읍을 취했다. {이제보니 그 분의 세손(世孫)이셨구료. 진산이 문안을 여쭙드라고 전해 주시오.} 남의인은 순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한 번 뱉은 말은 되물릴 수 없는 법, {누가 당신의 말을 전한단 말이예요?} 매섭게 외치는 남의인의 목소리는 어느 새 방울굴리는 듯한 청아한 옥음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사실 남장을 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진산도인은 억지 같은 남의인의 말에 고소를 지으며 조중에게말했다. {조대협 실례했소이다.} 발길을 돌리는 진산도인의 등은 왜소해 보였다. 이윽고 진산도인과 그의 제자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조중은 남의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 봉심도(鳳心島), 중원의 어느 곳인가에 있다는 신비지처(神秘之處)다. 봉심도가 강호에 알려지게 된 것은 봉심검주(鳳心劍主)라는 신비여고수로 인해서였다. 오십여년전, 절세신병인 봉심검을 허리에 두른 한명 화용월태의미녀가 강호에 나타나서 중원을 떠돌며 협행(俠行)을 시작했었다. 그녀의 미모는 천하절색이었지만 무예 또한 고절해서 당시만 해도 악명을 떨치던 마웅거효(魔雄巨梟)들이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강호출도 이 년 만에 그녀의 명성은 대강남북(大江南北)을 진동시켰고 그 후 반 년 만에 홀연히 그녀는 사라져 버렸다. 그로 인해 그 당시 그녀를 추종하던 수많은 무인들이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오리무중(五里霧中), 한 번 사라진 그녀는 바다에 돌이빠진 듯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다만 그녀가 있는 곳이 봉심도라는 것만 알려졌을 뿐 그 진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조중의 시선에 따가움을 느낀 남의인은 버럭 교성을 외쳤다. {뭘 봐요? 사람을 처음 보나요?} {아... 아무것도 아니오.} 조중은 멀쑥한 표정으로 황망히 밖으로 나갔다. 더 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기에 총총히 발걸음을 옮기는 조중은 절로 한숨을 몰아쉬었다. (염병할, 계집인 줄은 누가 알았나? 전주도 미쳤지. 저런 망나니같은 여자를 내가 데리고 있으라니...) 조중은 생각하면 할수록 감찰전주가 원망스러웠다. 조중이 그녀와 함께 오게 된 것은 모종의 사연이 있었다. 무림멩의 총단의 감찰전에서 그가 전주와 항주사건으로 의논을하고 있을 때 남장을 한 그녀가 갑자기 들어왔다. 이쁘장하게 생긴 얼굴을 보면서 조중은 처음에 몹시 놀랐지만, 전주가 아무런 말도 없는 이상 그도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 후 조중이 무림맹을 떠날 때 전주가 그녀를 데리고 갈 것을부탁했고, 조중은 전주의 부탁과 강압에 어쩔 수 없이 그녀에 대한내력을 아무것도 모른 채 같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전주의 태도를 보았을 때 신분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알았지만, 남장여인에다 봉심도의 후예인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못한 일 아닌가? 조중은 지끈지끈 쑤시는 듯한 골머리에 저절로 땅이 꺼질 듯한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어떤 시기인가? 자객들을 잡지 못하고 사건이 미궁에 빠진다면 장차 무림맹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을런지도 모른다. 조중은 사실 이 일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있었다. 헌데 이런 시기에, 난데없이 천방지축같이 날뛰는 여인을 데리고있어야 하다니 생각만해도 머리가 쑤셨다. 그 날 밤 조중은 장차수, 자운유, 사공표를 불러서 은밀히 지시를 내렸다. {진산도인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미루어 보아 암중의 인물은 이번 일을 확대하여 혼란을 조성하려는 것같다.} 잠시 말을 멈춘 조중은 자신의 수하들을 일별했다. [장차수, 자네는 황룡개를 최대한 이용해서 비마영의 행방을 추적해라.] [예!] [그자를 빨리 찾아낼 수만 있다면 어떠한 수단을 사용해도 무방하네. 자네에게 한 가지 이점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돼 . 자네는 그 자를 알고 있지만 그 녀석은 자네가 뒤쫓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장차수가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럼 각자 그 동안 수집한 정보에 대하여 검토해 보세.} 조중의 말을 시작으로 네 사람도 그 동안 파악한 모든 것을 세세히 자세하게 살폈다. 현재로서는 모든 것이 불투명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누군가가무림맹의 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거금을 뿌리고 있고 사오 명의 일류자객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조중은 한숨을 쉬었다. 동원된 자객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살수들이다. 아주적은 가능성에 대해서도 진지한 대응을하여 필사의 방어망을 갖추어야 한다. 오랜 연륜을 쌓은 빈틈없고 대담한 자객의 행위가, 그 자객으로부터 요인을 지키려는 쪽보다 유리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자객은 이미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조중 쪽에서는아직 아는 것이라고는 동원된 여러명의 자객들 중 한명의 이름이비마영이라는 것 뿐이었다. 게다가 이런 일은 공개적으로 조사할 수도 없다. 무림맹의 조직이 아무리 방대하고 치밀하다고 해도 별로 도움이 되지를 않으니 실무책임자인 조중으로서는 속이 바삭바삭 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모충의 정보가 허위임을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잠시 동안 그 가능성이 주는 위안으로 마음이 편안해졌지만, 제정신으로 돌아가고 보니 그 불안으로 도피는 아직 자기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사치스러운 생각임을 깨닫기에는 그리 오랜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조중은 침울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잊지 말게. 이번 일에는 우리의 생명까지 달려 있다는 것을...!} 무거운 목소리로 말한 조중은 천근같이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옮겼다. 계 |
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다녀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