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로 넘어가는 날이다. 류블랴나에서의 오 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가고픈 곳이 두어 곳 더 있었는데 못 갔지만 아쉽지는 않다. 여행이 두어 달 넘어가니까 슬슬 체력이 바닥이 나고 있다. 욕심을 버리자구.
아침을 먹으려고 계단을 내려가니 마야가 꼬리를 흔들며 기다리고 있다. 녀석.. 금방 날 잊겠지만 이 순간은 하이파이브를 했다. 날 졸졸 따라오지만 오늘은 소고기 구워둔 거도 삶은 계란도 없는 샐러드뿐이다. 미안.
12.55분 버스 표를 샀었다. 10시 대도 있었는데 애매하게 왜 이런 시간대를 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숙소를 나와 최대한 천천히 걸어도 터미널엔 금방 왔다.맥날을 갈까 했는데 거기도 전쟁터다. 포기.
플릭스 버스 정류장이 29~ 30번이다. 버스 터미널 바로 앞이다. 폰을 보니 무려 25분이나 딜레이 된단다. 점심시간이니 정류장 앞 의자에 앉은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이나 다들 빵을 씹고 있다. 나도 동참했다. 길 건너편 태국 음식점에서 팟타이를 포장할까 하다가 버스 안에서 냄새가 날까 봐 참았는데 길에서 밥을 먹어야 하다니.. 팟타이 먹고 싶은데.
졸다가 눈을 뜨니 국경이다. 인제 버스에서도 잘 잔다.ㅋ 기사가 여권을 꺼내라고 해서 준비했는데 경찰은 입구에서 두어 번 목을 빼서 살피더니 그냥 갔다. 이렇게 쉬운 국경 넘기라니.
우디네라는 곳에 도착했다. 내 앞자리 할머니들이 나보고 저곳을 손짓을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사진을 찍었더니 자기네들도 사진을 찍는다. 왜 찍었는지 이유도 없다.
우리 기사는 차장과 쉴 새 없이 수다를 떨고 앞자리 여자 할머니들도 계속 수다 삼매경이다. 두 달째 기차와 버스를 탔는데 이렇게 시끄러운 건 처음이다. 그들이 잠깐 조용해지자 이번엔 내 뒷자리에서 전화 수다가 시작되었다. 얼마나 목소리가 큰지 앞에 사람들이 다들 뒤돌아 봐도 아랑곳없다. 게다가 다리도 들어서 앞자리에 걸쳐 놨다. 참다못해 차장이 와서 조용히 하라고 하니 그제야 조금 조용해졌다. 그럼 뭐 하나.. 버스 기사와 차장이 다시 수다가 계속되었다. 졸린 걸 방지하기 위한 건지 뭔지.. 결국 도착할 때까지 버스는 계속 시끌시끌했다. 이게 이탈리아 모습인가.
메스트래역에 내렸다. 베네치아 본섬은 숙소 값도 비싸고 방도 구하기 어려웠다. 많이들 이곳에 숙소를 정해 섬까지 기차나 버스를 타고 들어간다.
예약한 저 숙소는 완전 기업이다. 늦게 예약하는 바람에 다른 곳은 거의 방이 없거나 평점이 무지 낮아서 가기 싫었다. 이곳은 방이 남아 있고 평점도 좋아서 왜지 했는데 저렇게 큰 빌딩이다. 방이 없을 수가 없다. 다행이다.
7층을 배정받았다. 뷰도 있다.ㅋ 방안에 화장실과 샤워실도 있고 여자만 쓴다. 짐을 놔두고 마트를 갔다. 걸어서 3분 거리다. 슬로베니아가 착했네. 여기 물가가 40프로 정도는 더 비싼 거 같다. 그래도 4일 먹을 과일, 유제품 물을 사 왔다. 버스를 타고 와서 입이 텁떱하지만 밥할 힘이 없어서 빵으로 대충 먹었다. 부엌은 사람 수에 비해서 너무 적고 요리하는 애들은 많았다. 사박 내내 빵만 먹게 생겼다.
근처를 검색해 보니 중국 식당도 많고 중국 식품점도 많다. 사진에 김치가 보여서 나가 보았다. 한 봉지 득템했다. 가격이 자그레브의 반값이다. 5.5유로라니. 제법 양도 많다. 냉장고에 들어가기 전에 몇 조각 집어먹었다. 종갓집 김치가 꽤 맛있다.
여기서 공항가는 버스를 탄다.
코르티나 담페초가는 버스 시간표다. 버스 티켓은 온라인으로 사야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