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1962년 경희대 영어영문학회에서 발간한 미국 작가 토머스 울프의 단편소설입니다. PC가 없던 시절 구식 타자기로 갱지에 찍은 것으로. 책꽂이에서 60년이 지나니 종이가 누렇게 바래고 가장자리가 으스러집니다. 추억 어린 것이라 버리지 못하고 PC에 스캔하여 저장했습니다. -카페지기-
★ ★ ★ ★ ★
표지
멀리 있는 잃은 자들의 집
토머스 울프 지음
미국 남부의 문학
★ ★ ★ ★ ★
PAGE 1
토머스 울프
(1900-1938)
토마스 울프는 1900년 10월 3일 노스 캐롤라이나 주 애슈빌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토착화한” 남부사람이고 어머니는 유명한 산악인 집안 출신이다, 열다섯 살 때, 울프는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교에 입학하고, 거기서 대학 잡지와 대학 신문을 편집했다. 채플 힐에 있을 때 ‘버크 개빈의 돌아옴’이라는 단막극을 쓰기도 했는데, 그것은 그 후 대학에서 출판하는 남부 민속극 전집 가운데 실렸다, 1920년 졸업 후 하버드 대학교에 가서 조지 피어스 베이커 교수의 “47 연극교실”에 참석했다. 당시 울프는 극작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1922년 하버드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고 1924년부터 6년 동안 뉴욕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틈나는 대로 글쓰기에 전심하여 그의 첫 번 소설 “천사여, 고향을 보라”를 완성했다. 1930년에 구겐하임 펠로우십을 받자 교편생활을 끝내고 유럽으로 건너가 널리 돌아다니면서 글쓰기를 계속했다.
울프는 다작가였는데, 1938년 그가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책으로 출판된 것은 – 거의 “산더미” 같다고 할 수 있는 원고 더미에서 - 고작 네 권뿐이었다. 이들은 애슈빌에서 보낸 젊은 시절의 서정적 이야기인 “천사여 고향을 보라” (1929), 성숙한 주인공이 지방이 아닌 세상을 만나기 시작하는 “시간과 강에 대하여” (1935), 단편 모음집인 “죽음에서 아침까지” (1935), 그리고 자신의 글에 대한 연구로 이듬해 ‘토요문학평론’(The Saturday Review of Literature)지에 연재된 “소설의 이야기” (1936)들이다. 가장 잘 된 작품 가운데 몇몇은 울프가 죽은 뒤에 출판되었는데 “거미줄과 바위” (1939), “너는 다시 집에 가지 못한다” (1940), “저 건너 언덕들” (1941) 따위다.
----------(이하 소설 본문)----------
(1)그해 가을 나는 읍내에서 일 마일쯤 되는 곳에 벤트너 도로와 사이가 좀 떨어져 있는 집에서 지냈다. 사람들은 그 집을 ‘농장집’이라고들 불렀다. ‘언덕배기 농장집’이니, ‘외딴 농장집’이니, 뭐 그런 이름으로 불렀지만, 사실 농장집은 전혀 아니었다. 그 집은 그 지방에서 나는 풍우 서린 잿빛 돌로 지은 웅장한 집이었다. 마치 그 지방의 습하고 무거운 대기의 바탕 속에 배어 있는 세월 그 자체의 부드럽고 짙은 잿빛과 닮은 듯하다. 거칠기는 하나 산뜻하게 몸속으로 사뭇 배어드는 그 습하고 무거운 대기는 마구 닥치는 대로 풀이랑, 나뭇잎이랑, 벽돌이랑, 담장이랑, 사람들의 촉촉한 얼굴빛이랑, 또한 오랜 세월 모진 풍우에 서린 잿빛 돌들을 마냥 풍요하게 해 주었다.
★ ★ ★ ★ ★
PAGE 2
아래서 13째 줄 이하
courteously – getting the same sound into the word “very”
that they got in “American,” a sound that always repelled
me a little because it seem to have some scornful aloofness
and patronage in it.
마지막 줄
I had seen or known in my childhood.
(2)그 집은 도로에서 수백 야드 사이가 떴다. 아마 사분의 일 마일쯤 될 거다. 도로에서 그 집까지 오는 길은 하늘을 가리는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섰는데, 폭풍이 그 나뭇가지에 불어치는 밤이면 나에게 고향생각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길 양옆으로 두 대학의 럭비 운동장이 있어 오후가 되면 운동장의 산뜻하고 축축한 초록색 잔디 구장에서 젊은 대학생들이 뛰노는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들은 반바지와 운동셔츠 바람으로 맨 무릎이 풀과 잔디에 긁힌 채, 스크럼을 짜고서 잠시 몸을 틀고, 버둥대고, 흔들고, 밀치다가, 이윽고 스크럼이 확 풀어지더니, 달리고, 피하고, 상대편에 막히면 재빨리 공을 패스하기도 했다. 경기 중에 외치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습기 찬 대기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들은 대학 대표 팀들이 홈 구장에서 보여 주는 필사적이고 단호하고 거의 직업적인 정열은 보여 주지 않았으나, 경기를 하느라고 무릎이 긁히고 흙투성이가 되고, 스크럼을 짜서 밀고 밀리다가 재빠르게 몸을 빼어 쏜살같이 달리고, 숨을 헐떡이며 상쾌하고 맑은 목소리로 외치는 그들의 품새는 성장한 젊은이들의 씩씩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3)언젠가 그들이 놀고 있던 오후에 나는 길을 걷고 있었는데, 마침 럭비공이 밖으로 튀어나와 내 앞으로 굴러왔다. 흔히 아이들이 야구를 하고 노는 운동장을 지나면서 공을 주워 주듯이, 나는 공을 주우러 쫓아갔다. 경기를 하던 학생 하나가 운동장 끝으로 달려와 손을 허리에 짚고 내가 공을 주어 줄 때까지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는 숨을 헐떡거렸고, 얼굴은 발그레 상기되었으며, 금빛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내가 공을 던져 주자, “생스 베리 머취!”하고 쾌활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베리’란 말에 영국사람들이 ‘어메리컨’이라고 말할 때 내는 소리와 꼭 같은 소리를 냈다. 그 ‘어메리컨’이란 어조에는 어쩐지 멸시하는 듯하고 잘난 체하는 느낌이 있는 듯하여 나는 언제나 그 말을 들으면 좀 불쾌했다.
(4)잠시 나는 그 학생이 공을 가지고 다시 운동장 가운데로 씩씩하게 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다른 학생들은 숨을 헐떡이며 손을 허리에 짚고 우두커니 공이 오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가 공을 스크럼으로 밀어 넣자, 스크럼이 움직이더니, 심히 요동하며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갑자기 확 풀어져 다시 온 운동장에 학생들이 퍼졌다. 이 모든 일들이 엄청나게 낯설기도 하고,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5)그것은 항상 낯익은 일인 것 같았고, 항상 나의 일인 것 같았으며, 내가 어린 시절에 보고 체험했던 모든 일처럼 나에게 친근감을 주었다.(5문단 계속)
★ ★ ★ ★ ★
PAGE 3
대지의 바탕조차 친숙해 보였으며, 밟으면 촉촉하고 탄탄하며 퍽신퍽신한 느낌을 주었다. 밤이 되면 길거리에 늘어선 커다란 나무들에 불어치는 세찬 바람소리가 퍽 거칠고 쓸쓸하고 미친 듯하였다. 마치 내가 여덟 살 먹었을 때 우리 집 뒤 언덕에 서 있던 큰 참나무에 불어치는 바람소리를 잠결에 듣던 것 같았다.
(6)그 집 가족의 성씨는 ‘쿨슨’이었다. 처음에 나는 당장 그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약속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볕에 그은 듯한 중년 부인이었으며, 우리는 홀에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홀은 대리석으로 꾸며졌고, 홀을 나서면 곧장 자갈 깔린 문밖 길로 통했다.
(7)그 부인은 발랄하고 서근서근하며 세상 물정에 밝은 인상을 풍겼다. 그 나이에도 참 잘 생긴 모습이었다. 모직물 격자무늬의 멋진 스커트에다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홀 안의 공기가 쌀쌀해서 나와 이야기하는 동안 부인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한 손 손가락 사이에는 궐련이 끼워져 있었다. 복슬복슬한 누렁개 한 마리가 나오더니 고개를 쳐들고, 이야기하고 있는 부인의 손에 냄새를 맡았다. 부인은 개의 머리에 손을 얹어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부인에게 그 이튿날 이사하고 싶다고 했더니,
(8)"좋아요! 오신다면 방을 다 치워 놓겠어요!” 하며 활기차고 기분 좋게 말했다. 그리고 나더러 대학에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렵다는 느낌과 고독감을 드러낸 심정으로, 나는 “작가”인데 글을 쓰기 위해 거기에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내 나이 스물네 살이었다.
(9)"그러시다면 여긴 정말 글 쓰시기에 참 좋은 곳이지요.” 하고 부인은 시원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전에도 이 집에 미국사람 몇 분이 계셨는데 모두들 매우 유식하신 분들이었어요. 여기서 우리와 함께 지내신 미국사람들은 다들 유식하신 분들이었어요. 젊은 양반도 이곳이 마음에 드시리라 믿어요.” 하면서 부인은 문까지 걸어 나와 인사했다. 그때, 조그마한 자동차 한 대가 와서 멈추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한 소녀가 바깥 자갈 깔린 마당을 재빨리 지나 홀로 들어왔다. 키가 크고 날씬한 몸매에 매우 예쁜 소녀였다. 그러나 눈매에 어린 빛나고 차가운 기운과 그 입술 가녘에 번지는 여리고 냉랭한 미소는 그 부인과 꼭 닮았다.
(10)“에디스야, 이 젊은 분은 미국인이신데, 내일 우리 집으로 오시게 됐단다.” 하고 부인이 생기 있고 유달리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녀는 차갑게 빛나는 시선으로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장갑 낀 작은 손을 내밀어 잠깐 손을 쥐었다 놓으며 간단히 인사했다.
★ ★ ★ ★ ★
PAGE 4
(11) “오! 첨 뵙겠어요. 잘 지내 주세요.” 하고, 그는 곧장 홀을 지나 왼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
(12) 소녀의 목소리는 그의 어머니처럼 활기차고 분명했지만, 또한 시원하고 앳되고 감미롭고, 노랫소리 같기도 했다. 내가 길에 나선 다음에도 그 음성이 귀에 쟁쟁 울리는 듯했다.
(13) 그 집은 멋진 집이었다.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멋진 사람들이었다. 훗날까지 나는 그들을 잊을 수 없었다. 내가 한평생 그들을 알고 지낸 것 같았고, 그들의 삶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나의 혈육 같이 친근한 듯했으며, 나의 생각과 기억의 뿌리 깊숙이 그들을 알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함께 자주 얘기하지도 않았으며, 우리 삶에 관해서 서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 집에서 어떻게 느끼고 함께 살았는지 -- 그것을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그것을 항상 알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단순하고 심오한 삶의 경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4) 그러나, 마치 어린아이에게 그가 알고 있던 어느 마법의 나라가 반쯤 흐릿한 환상처럼 떠올라, 신비감과 마음 속으로 다시 찾은 기쁜 감정이 어린 시절을 사로잡는 것처럼, 우리의 생활감정을 털어놓을 말은 항상 우리 입술에 머물러 바로 우리들 기억의 문전에서 형태와, 어구와, 발음을 이루어 입밖으로 튀어나올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말하려고 하면, 꺼져가는 불빛처럼 그 무언가 우리들 마음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그려 놓은 연기마냥 그 무언가 우리들 기억 속에 녹아 버리며, 그것을 잡으려 하면 그 무언가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15) 오로지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 집이 때때로 내가 그때껏 경험하지 못한 정적과 적막에 싸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집안에 나 이외에 다른 이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느껴 왔다. 적막한 밤에 나의 거실에 홀로 앉아 있노라면 바깥에 있는 거대한 나뭇가지에서 울어대는 바람소리와, 이따금 난로 아궁이에서 타고 있는 석탄불에서 작은 불꽃이 튀기는 소리만 들릴 뿐, 정적만이 – 밤이면 온 집안에 기다렸다는 듯 강하게 생동하는 적막한 정적만이 – 흘렀다. 그런데 항상 집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느껴 왔다.
(16) 집안 사람들이 현관을 들어서서 내 방문 앞을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라든지 집안에서 문을 여닫는 소리라든지 그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구태여 들었기 때문은 아니다. 도무지 보고, 듣고, 말을 나누어 보지 못했다 해도 집안에 사람이 있다고 내가 인식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게다.
계속→ The House of the Far and Los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