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음악! 그 황홀함에 대하여
두봉 김영일
태양이 싱그러운 아침
항상 출근길이 바쁜 직장인들 서두르는 시간만큼 여유 있게 가고 싶은 나는 트랜지스터를 켜고 FM을 틀어본다.
오늘의 날씨는 어떨는지
아나운서가 오늘의 날씨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라고 멘트를 한 뒤 일기예보를 알려주는 대신에 음악을 한 곡 들려주고 있다.
켓 스티븐슨의 morning has broken을
일기예보를 음악으로 화창한 날씨만큼 기분이 상쾌하다.
이런 이유에서라면 음악이 생활 속에서 얼마나 삶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생활리듬을 조정해 주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즐겁고 고마울 뿐이다.
신록이 짙은 오월 어느 날 직장으로 가는 아침 출근길
시청 공보실 뮤직 박스에서 아침 음악이 그것도 우아한 원무곡이 기분도 상쾌하게 정문 안 광장에 꽉 차도록 흐르고 있다.
서울에서 전근을 와서 같은 부서에 근무하고 있는 미스 정이 하이힐 소리도 요란하게 보도 위를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 미스터 김
안녕 하세요 미스 정
인사하면서도 귀는 음악이 울려 퍼지는 스피커 쪽으로 향하고 있다.
확성기에 시선을 얹어두고 음악을 들으며 걸어오던 미스 정이 말을 걸어온다.
미스터 김 음악 참 좋죠
네 좋은 곡입니다.
미스 정은 잠간 뜸을 들이더니 실례지만 지금 연주되는 음악이 누구의 무슨 곡인지 혹시 아시는지요? 라는 미스 정의 질문이 너무 당돌하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항상 오만하다고 느껴지는 그녀의 콧대를 꺾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딴청을 부리며 네 저 곡이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웨버의 무도회의 권유라는 곡 아닌지요
어머머 맞아요.
웨버의 무도회에 권유 맞는데 그럼 한 가지 더 그 음악에 스토리는?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 채로 혹시 틀릴 경우를 생각해서 한 자락 깔고 대답했다.
네 그 스토리는
나는 어느 무도회에서 왈츠를 같이 추자는 신사의 권유를 거절하였다가 다시 두 번째 요청이 있었을 때 이를 받아들여 기꺼이 승낙하고 춤을 추는 어느 신사와 귀부인과의 얘기를 설명했다.
말을 마친 나는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할 말을 잊고 멍하니 서있던 미스 정은 사뭇 포옹이라도 할 기세이다.
와아! 멋져요 이런 시골구석에서 이 정도의 음악을 아신다는 것 원더풀! 같은 과에 근무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칭찬 그 싫지 않은 칭찬이 온 광장 안에 깔리고 있다.
이래서 둘이는 음악으로써 친해진 첫 번째 케이스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출근길
산 중턱에 있는 직장 한양 칸트리 클럽을 가기 위하여 아침이슬 밟으며 길을 가노라니 호젓한 교차로(交叉路)에 어느 묘령의 아가씨가 길 좌측에 오롯이 서 있었다
나는 레디 퍼스트라 길을 비켜서며 먼저 가시라고 목례를 한 뒤 시간을 벌고 서 있었는데 그러나 그녀는 가지 않고 나더러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한다
고맙고 송구스러움에 나는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왈 아침 출근길에 감히 여자가 대장부의 갈 길을 막고 길을 먼저 건너 갈 수 없지 않습니까
말이 안 나온다 이때 처음 나는 결혼한 것을 후회해 보았다.
감사의 목례를 한 뒤 나는 시간이 지체된 것만큼 빨리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서둘렀다 트렌지스터의 음악은 다시 흘렀고 1964년도 개최 제18회 동경올림픽 주제곡인 뛰지 말고 걸어라가 울려 퍼지고 있다
나는 발걸음을 늦췄다.
마음을 추스르고 푸르른 오솔길을 다시 이슬을 털며 걸어서 회사에 도착했다.
물론 지각도 안 했고 흥분이 가시지 않은 마음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 묘령의 아가씨에게 한 송이 꽃을 꽂아주기 싶어서 마음은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FM 음악은 스콧 매켄지의 샌프란시스코로 바뀌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오시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오늘 같은 날 그녀의 머리위에 꽃을 한 송이 아니 100 송이라도 꽂아 주고 싶어라
샌프란시스코 언제 들어도 마음이 상쾌한 곡 잊을 수 없는 멜로디 지금도 입속으로 웅얼거려 본다.
모 건설회사에 근무할 당시 아파트 건설을 위주로 했던 우리 회사는 가끔 모델하우스에서 분양을 위한 세일을 위해 전 직원이 북새통을 이루며 아파트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파트별로 각자 자기 담당업무를 수행하던 회사 동료들이 점심식사 때에는 모여서 즐겁게 환담을 하며 각자 개인 취미와 기호에 대해서 얘기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어느 날 K와 나는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항상 고자세에 호남형의 K 오만하게 보이는 그가 내 마음속에 비집고 들어올 수 없는 편이었으나 30분여 그와의 환담은 나로 하여금 K에게 그로 하여금 나에게 몇 년 동안 마주보며 목례 정도 나누던 사이가 그 30분에 서로를 친구에 반열에 올려놓게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 그리 되었을까
그는 클래식 음악의 달인이었고 나는 영화음악과 팝음악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귀재(?)라고나 해야 될까
서로의 취미를 확인한 우리는 세월을 앞당겨 진실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이 사람이 음악으로 새긴 두 번째 케이스에 주인공이 되었다.
그와 친하게 지내던 어느 날 우리는 구 반포 돌샘이라는 음악다방 오디오 시설이 잘 되어있다는 그 곳을 찾아 신청곡을 넣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트럼펫의 귀재 알 허트의 "쟈바" 라는 곡
천지가 진동하는 듯 경쾌한 그 곡은 맛있게 먹은 점심이 금방 다 소화가 되었을 정도로 후련하고 경쾌했고 알 허트의 멋진 트럼펫 연주도 일품이다.
오! 이 황홀하고 후련함이여
음악의 정석이란 이런 것인가라는 감탄사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어느 때 그와 함께 차를 타고 교외에 나가면서 음악 얘기를 하며 가는 도중 옆에 동승했던 친구가 너무 친숙한 두 사람 대화 그것도 음악에 대한 이야기에 시샘이 났는지 중간에 끼어들었다.
도대체 음악이란 무엇이기에 둘이서 만나면 그렇게도 정답게 음악이야기를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아차하며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친구 K에게 대답을 구했다.
그러나 그는 묵묵부답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네 음악이란 사람으로 따지면 사랑스런 애인 같아서 음악을 들을 때면 으스러지도록 꼬~옥 껴안아 주고 싶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음악인 걸로 알고 대답을 대신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차안에 동승했던 우리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아니 음악을 어떻게 그리도 잘 표현 하십니까
오! 참 멋진 대답입니다 하며 박수를 쳐 주었다 물론 친구 K도
그 후 우리는 음악 홀 음악다방 그리고 음악영화 감상까지 늦게 만남을 한탄하며 실질적인 친구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친해졌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왈츠의 아버지)와 2세(왈츠의 왕)의 음악들을 담은 영화 사랑은 영원히
독일의 명배우 홀스트 보프홀쯔(영화 부활에 주연 남우)가 요한 2세역을 맡아 열연했던 영화 거기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2대의 걸쳐 작곡한 음악이 대형 화면에 생동감 있게 펼쳐지고 비엔나 숲속에 이야기 등 그 현란한 연주는 실연 못지않게 장관이었다
마지막에 대형 스크린에 울려 퍼지는 푸른 다뉴브 강은 관람객들을 객석에서 스크린으로 끌어 드리기에 충분한 여건이 있어 원무곡이 연주되는 동안 스크린 속에 뛰어들어 춤추고 싶은 충동을 자아내는 더 이상의 찬사가 필요 없는 영화였고 K도 좋은 음악영화라고 평했다.
그 친구와 나는 어느 봄날 신촌에 있는 이대 강당으로 폴 모레아 악단 공연실황을 보고 들으러 구름같이 모여든 청중들과 함께 그곳으로 달려갔다
때는 춘삼월 훈풍이 불어오는 광장과 강당 안은 음악 팬들로 가득 차 있었고 폴 모레아 악단은 봄의 무드를 타고 우리들의 아니 음악 팬들의 가슴에 부드러운 봄기운과 감미로운 음악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우울한 사랑(love is blue) 등 수많은 히트곡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들뜨게 해 주었고 그러한 무드는 강당 안을 넘어 창밖에까지 흘러넘쳐 들뜨게 만들고 있었는데.......
음악은 엘 콘도 파샤(철새는 날아가고)를 연주하기에 이르렀고 청중은 마음속으로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때다.
창문을 열어 놓은 그 틈새로 제비 한 쌍이 날아들어 강당 안을 휘휘 맴 돌면서 음악에 맞추어 춤추며 날아다니는 모습 철새들도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은 그 모습은 가히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연주가 끝나니 철새들은 다시 창밖으로 날아가서 떠나가 버리고.....
음악과 철새 어쩌면 철새들도 사람들처럼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보여준 환상적인 장면이라 생각을 하니 음악회는 더욱 뜻깊은 음악회가 되었다.
K와 나는 이 음악회를 끝으로 헤어지게 되었다.
호사다마랄까
그 친구는 내가 제주에 관광개발차 가 있는 동안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이민 가기 전 제주에서 출장차 상경한 나는 그와의 마지막 이별을 아쉬워하며 그의 자택에서 그의 가족들과 함께 보냈는데 이민 간 그 후 소식은 지금도 전해 듣지 못하고 있다.
사랑은 영원히 우정도 영원히
바람처럼 사라져간 친구 그의 행복을 비는 마음 지금도 간절하다.
드볼작의 첼로 협주곡 b단조 작품 104번은 내가 남들에게 선물하는 단골 레파토리였고 LP판과 CD도 여러 장 선물하기도 했다.
드볼작의 신세계를 들으며 선열들의 조국을 잃어버린 슬픔을 반추해 보기도 했고 때로는 타향에서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울먹일 때도 있었다.
바이올린은 사람의 심금을 아플 정도로 뜯어내고 첼로는 우리의 마음을 엄마의 품속같이 감싸 안아주는 것 같은 그런 묘미가 있어 나는 첼로 곡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크라이슬러가 연주하는 유모레스크 같은 곡을...
시시때때로 산행 후에는 그로페의 조곡 그랜드 캐논 중 대협곡을 들으며 음악에 오솔길을 거닐었다.
어느 때 K에게도 사준 이런 곡들을 같이 들으며 옛날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다시 가져 봤으면 하고 막연한 기대를 걸어보고 있다.
그 황홀하고 환희에 찬 시간을 ......
어느 날 직장에서 만난 한 친구
그의 핸드폰 컬러링이 너무 멋있어 거기에 담겨진 노래가 무슨 곡인가
하고 물어 보았으나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몰라요 우리 딸이 다운 받은 것이어서 자기는 잘 모른다고 그는 대답했다.
한심하다고 생각한 나는 인터넷 등을 뒤져서 그 곡이 west life에 my love임을 알아내고 그에게 알려준 뒤 나 또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집 사람 나의 my love는 이제는 비극적인 사랑으로 끝나 버렸다.
허무한 이 세상이 암울하게 느껴지는 삶 속에서 나는 오마 샤리프와 줄리 크리스티가 주연한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샛노란 수선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초원에서 자기의 사랑을 찾아 춤추며 헤매면서 부르는 여주인공의 노래 some where my love를 떠 올리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가 버린 집사람
세월이 갈수록 더 생각나는 그 사람
그리고 떠나간 옛 친구들
그러나 세월은 가도 변하지 않는 음악에의 사랑
흘러간 노래들을 다시 떠 올리며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래도 내 삶을 삭막하지 않게 어루만지려고 오늘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 노래들을 들으며 음악에의 황홀한 경지 속으로 내 마음은 또다시 몰입하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황홀한 음악들을 언제까지나 그대들과 함께 즐기려고....
첫댓글 두봉 선생님의 음악에대한 해박한 지식에 경탄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저도 황홀경에 빠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