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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라뱃길에서 부산 낙동강 하구까지
세상은 변화하는 것이고 그 변화에 대하여 나는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세월은 물 흐르듯 유유자적 흐르는 것이고 그 흐름 속에는 매 순간 변화가 따르고 그 흐름은 변화에 대한 순종을 거역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 수 록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안위하려거나 변화에 당황해 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 조금씩 보수적으로 치우쳐 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불가마에 들어 앉아 있는 듯한 더위가 연일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 내가 살아온 동안 아니 우리나라 역대 이렇게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은 기억에 없다. 기상 이변은 수년전부터 예측하고 있었으나 막상 갑자기 찾아온 무더위에 내 몸은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말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안이지만 너무나 급격히 다가오는 변화에 몸의 생리가 따라가지 못해 이것을 고통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재난, 재앙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분명 자연의 순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즉 인간에 의한 자연에 대한 역반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첫날,
(아라 서해 갑문 ~ 아라 한강 갑문)
나는 이른 아침에 인천 서해 아라뱃길 시작점인 갑문 옆에 있는 인증박스에서 인증을 하곤 힘찬 발돋움으로 이내 신나게 달렸다. 인위적인 것이지만 곧게 뻗은 자전거길, 한강으로 이어지는 푸른 물, 우측 제방에 만발한 꽃들이 응원 및 격려해주듯 가지각색의 얼굴과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반기며 얼굴을 흔든다. 가슴이 뻥 뚫일 듯한 시원함과 벅찬 즐거움, 저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부르며 빨갛고 파란 인공의 길을 페달은 끌어 잡아당기듯 힘차게 박차며 내달리고 있었다. 푸른 물을 가르며 달리는 유람선을 제치고 웅장하고 긴 다리들을 통과할 적마다 인간의 위대함을 느꼈다, 옆으로는 인공폭포가 물줄기를 시원하게 쏟아내고 있었고 40여분 달리니 아라뱃길의 끝 지점인 한강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나는 지금 이 길을 통해 저 먼 부산 낙동강 하구까지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벅찬, 가슴이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것도 이 한여름 아스팔트를 녹이는 뜨거운 햇살을 가르며 홀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제 아내나 주위분들이 이 한 여름에, 아니 그것도 예전에 없던 찜통 무더위에, 하며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다시피 자전거를 올라탔다. 그 이유는 내 지론이지만 변화를 주지 못하는 생각은 생각일 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인간은 늘 한시도 생각을 멈출 수 없지만 생각엔 산 생각과 죽은 생각이 있다. 정적이든 동적이든 간에 생각은 어떠한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생각은 헛 공상일 뿐이다. 그리고 혼자 여행을 다니는 이유는 인간과 인간이 같이 있으면 생각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나와 나, 또는 나와 자연만이 같이 있을 때 자신을 더 밀접하게 다가가게 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준다. 누구나 한 길을 달려가면서 늘 자신을 바라다본다는 것은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일이다. 꼭 평생 벗으로 삼아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들뜬 마음으로 바람을 일으켜 가르다 보니 한강갑문이 눈앞에 와있다. 인증센터주위에는 많은 라이딩맨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갖가지 가지고온 영양보충제를 먹고 마시곤 하였다. 라도 한강을 가슴에 안고 그늘에 앉아 단숨에 물 한통을 비웠다. 땀에 젖은 옷은 묵직했고 얼굴에선 화기가 화끈거렸다. 간식제로 바나나와 초코렛을 하나씩 먹고 다음 목적지로 출발을 하였다.
( 아라 한강 갑문 ~ 여의도)
한강에 접어들면 나뿐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이기려 자전거를 힘차게 타는 모습을 볼 수 가 있다. 덥다고 늘어져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남녀노소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가는 사람들의 눈빛은 태양열기보다 더 뜨거운 것이기에 아름답고 활기가 넘친다. 한강 자전거 길은 강을 끼고 인도와 구분이 되어있어 달리기에 좋으나 사람이 많고 또한 학생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나온 어머니들도 많고 자전거들도 많아 늘 조심해서 속도를 줄이고 타야 한다. 하기야 나도 타니 자전거 인구가 얼마나 많겠는가. 한참 달리다 보면 어느덧 선유도 공원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밤섬과 이어지는 서강대교에 이른다. 이곳에 빨간 부스로된 인증센터가 있다. 수첩을 꺼내 후끈 달아오르는 박스로 들어가 도장을 꽉 찍고 바라보니 흐뭇하다.
(여의도 ~ 광나루 자전거 공원)
이어서 내친김에 마포대교를 지나 노들섬을 가로지르는 한강대교 그리고 줄줄이 이어지는 대교를 지나니 자전거 키로수가 점점 줄어든다. 4시간을 거의 쉬지도 않고 달려 왔으니 그럴만도 하지 자전거 공원 가기 전에 쉬기로 하고 매점있는 곳으로가 자전거를 밭쳐놓고 시원한 쮸쮸바 하나와 물 한통을 사가지고 나와 시원한 그늘 밑으로가 휴식을 취했다.
난 바람을 좋아한다. 바람처럼 살고 싶다. 누군가의 말처럼 바람처럼 사는 것은 고독하고 외롭겠지만 자유롭기에 인생을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다. 바람은 의식이고 깨우침이다. 만약 우리 마음을 가다듬어 주는 바람이 없다면 우리의 사상은 맑고 깨끗해 지지 않았을 것이다. 바람은 내 마음의 생명이고 호흡인 것이다. 그리고 또한 바람은 절대 채우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바람을 가르며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덧 서울 아산병원앞 광나루 공원에 도착하여또 수첩에 인증을 하곤 다음목적지로 달렸다.
( 광나루 자전거 공원 ~ 능내역)
한 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하남시에 다다른다. 하남시부터는 자전거길이 더 잘되어있을뿐더러 사람들도 적어 한적하게 강물의 흐름을 느끼며 달릴 수가 있다. 검푸른 물은 바람결에 은비늘이 찰랑거리고 흐르지 않는 듯 흐르는 모습은 인간이 배워야할 진리이다. 팔당대교를 지나 옛길로 200m정도 가다가 좌회 하면 맛 집인 초계구수집이 나온다. 배고품을 참고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며 이곳까지 왔다. 자전거를 거치대에 마물쇠로 채우고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바람이 햇빛에 데워진 살갗을 소름끼치듯 닭살로 만들어 놓는다. 싸고 양도 많고 맛도 있어 언제나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자리가 있어 가서 헬멧을 벗고 냉국수 곱빼기 한 그릇을 시켰다. 잠수 후 나온 국수 육수를 한 여름 소가 일을 마치고 개울가에서 물을 빨아 마시듯 나는 육수를 벌컥벌컥 들어 마시니 오장육부가 시원하게 느꼈다. 육수를 좀 더 달래서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니 배가 든든한 것이 금방이라도 양평까지 달릴 수 있는 기분이다. 식사를 다 마치고 나와 식당 뒷길로 접어드니 옛 기찻길을 자전거도로로 잘 만들어 놓았다. 침목사이를 나무 또는 우래탄으로 깔아 자전거 여행하기에 너무나 잘해 놓았다. 왼편으로는 울창한 산이 서있고 오른편으로는 시퍼런 강줄기가 흐르고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풍광인가. 이 무더위에 간간이 나타나는 터널은 마치 냉장고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다. 어찌 이 느낌을 글로 다 표현하랴, 너무나 환상적이다. 반대편에서 가늘게 들어오는 햇살은 마치 부채살같이 곱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경이롭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빠져 나오기 싫은 터널을 나오면 또 푸른 강물이 마음을 달래주고 그 기분에 힘은 저절로 배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를 팔당 4터널을 지나면 봉안터널이 나오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치는 양수리가 파노라처럼 펼쳐진다. 이런 아름다운 진풍경이 있어 여행의 맛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능내역 ~ 양평군립미술관)
양수리로 들어서는 철교를 지나노라면 마치 콰이강의 다리라는 영화 한편을 보듯이 금방 옛 추억에 사로잡히고 만다. 철거를 하지 않고 자전거 길로 만든 관계당국에 감사가 절로 나온다. 물론 모든 길이 그리 순탄하게 쭉쭉 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돌아가는 길도 있고 조그만 언덕을 넘어가는 곳도 있으나 힘든 코스는 아니다. 무려 7사간정도를 달려 왔으니 이제는 지칠 정도가 아니라 파김치가 될 정도로 힘이 소진 되어 있었다. 오빈역에 다다를 무렵 뒤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큰 못에 찔렸는지 금방 푹 주저앉았다. 날은 덥고 힘은 빠져 몸은 늘어지고 죽을 지경인데 펑크라니 나는 내려서 주저앉은 타이어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래를 보니 굴다리가 있어 시원할 것 같아 그리로 내려갔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역시 더웠다. 옆을 둘러보니 조그만 팔가정이 있어 자전거를 끌고 그곳으로 옮기고 줄줄 흐르는 땀을 연실 닦아내며 뒤 타이어를 빼서 주부를 점검하니 펑크난 곳을 찾았으나 더워서 새 주부로 갈아 끼우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오시며 고생하는 구먼 한다. 나는 일어나 인사를 하고 조금 남은 물마저 마시며 땀을 훔치니 아저씨가 집으로 가셔서 큰 펌프와 얼음물을 가지고 오시며 이물 마셔 하시는 것이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여러번 인사를 들이고 큰 펌프로 바람을 넣으니 금방 타이어가 땡땡해졌다. 자전거를 조립해 놓고 쉬면서 아저씨에게 헌자 사세요. 하니 하시는 말씀이 전에 교장으로 퇴임해 지금은 옆에 있는 초등학교 지킴이를 하신다고 하시며 가수 노사현이도 제자고 그 언니도 내가 가르쳤다고 하신다. 그래서 저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니 서로 말이 통해 30분정도를 얘기를 나누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다시 페달에 힘을 주었다. 조금 지나니 양평군립미술관 팻말이 나온다. 나는 그곳으로 내려가 인증센터를 찾으니 도무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두리번대다 옆을 보니 조그만 카페 입구 돌 위에 있지 않은가 반가워 인증을 마치고 카페에 팥빙수라는 글자를 보고 무작정 들어가 한 그릇을 시켰다. 조금 후 나온 팥빙수를 한 수저 먹으니 속이 얼얼한 것이 더위가 금방 가시는 것이었다. 오늘 하루 양평까지 무려 10시간 130km를 달렸다.
둘째 날
(양평역 ~ 이포보)
누구나 한번쯤 “삶과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언젠가는 모두 흙으로 돌아가게 돼있는 것이 진리다. 하지만 저승 보다는 이승이 났다고 생각한다. 개똥밭에 굴러 살아도 이승이 좋고, 서양의 어느 작가는 “바람이 있어 나는 살아야 겠다”는 훌륭한 표현을 했다. 이승을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아야 저승도 그러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포보로 가는 둑방길은 직선으로 곧게 나있다. 인간은 빨리 속마음을 내비치기를 좋아해 직선을 좋아하고 자연은 은은하게 살며시 감추는 맛이 있기에 곡선을 좋아한다. 혼자 여행을 하다보면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다. 자기에게서 또는 자연에게서, 둑방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바라보면 다 똑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모습이 다르다. 우리 수십억 인구 사람 개개인이 다 다르듯이 모양도 향기도..
어깨에 맨 배낭이 무게를 느끼고 등짝이 흠뻑 젖을 쯤 눈에 잡히는 백로의 날개 모양처럼 만들어진 보가 바로 이포보이다. 수많은 보중에 조형미가 가장 아름답다는 곳이 바로 이포보다. 보의 기둥 꼭대기마다 7개의 백로의 알 모양으로 이뤄진 보의 모습은 인상 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포보 ~ 여주보 ~강천보~ 충주댐)
이런 보들을 만들어 수자원을 보호하고 매번 연속되는 장마 피해가 심각할 정도로 많은 농민들에게 손해를 미치게 한다. 물 관리는 앞으로 기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당장 내가 이무더위에 달릴 수 있는 것도 먹을 물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들을 바라보며 건설인지 파괴인지 의문이 깊을 때가 많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 우리가 지금 격고 있는 기후의 변화도 환경파괴에서 온 것이다. 인간이 좀 더 편리하게 살고자 자연을 무방비로 파괴하고 무관심하게 버린 이유로 인하여 이 같은 고난을 지금 전 세계가 격고 있지 않은가. 오존층이 파괴되고 지열이 발산하지 못해 온도가 올라가 빙하가 모두 녹아내리고 지구는 지금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충주에 도착하기 전 중앙탑 가든 휴게소가 나온다. 이쯤 오면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숨이 차고 기운이 떨어진다. 이 휴게소에 들려 강가를 바라보며 시원한 냉면을 한 그릇 먹고 나면 정신이 반짝 들고 힘이 불뚝 솟는다. 보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와 무지개를 일으키며 하늘을 뒤 덮는 하얀 포말을 보노라면 더위가 싹 가신다.
오늘 중으로 중주댐에 들려 인증을 받으려면 빨리 서둘러야 한다. 곧 이내 페달에 힘을 주고 국도로 나서면 좌측으로 댐 길을 통과하는 길이 나온다. 양쪽으로 옥빛 같은 강물을 바라보며 달리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아마 자전거를 이래서 타는 모양이다. 나는 자전거를 탄지 약 4년밖에 안됐지만 매번 인천 주면에서 돌아다녔지 이렇게 종주를 시작하게된 것은 혼자 다녀보고 싶은 모험에서다. 모험은 창조적이 아니던가.
한참을 달리니 탄금대가 눈에 들어온다. 좌측 자전거 길로 접어들어야 산위에 있는 댐으로 갈 수 있다. 댐에서 흘러나오는 물가를 달리다 거리를 줄이기 위해 국도로 올라타 달렸다. 댐으로 올라가는 길은 길이 서 있듯이 가파르다. 양 옆으로 오래된 벚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터널 같은 곳에 시원한 바람이 폭포 흐르듯이 스쳐 지나간다. 아스라이 댐이 보이나 기어를 낮추고 페달에 힘을 가해보지만 속력이 나지 않는다. 힘도 딸리고 지친 상태라 기진맥진하며 휴게소에 다다라니 도저히 페달링을 할 수 없어 그늘진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며 있는 물을 한통 다 마셔 버리고 하나 남은 쪼코랫마저 먹어버렸다.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 힘든지 모두 언덕을 질질 끌듯 가고 있었다. 나는 오기로 자전거에 올라타 있는 힘을 다하여 올라가니 500m라는 표시가 나온다. 거의 다왔다 싶어 용기와 힘을 내지만 500m가 왜이리 먼지 몇 번을 쉬고서야 올라왔다. 올라서니 우선 빨간 부스가 눈에 들어와 인증을 하고 매점으로가 아이스바 두 개와 물 한통을 사서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그제서야 눈에 웅장하게 서있는 탑과 댐의 전망대가 보인다. 나는 우선 인증사진을 한 장 부탁하여 찍고 댐과 연결된 다리로 가서 거대한 충주댐의 중압감에 사로잡히고 거대한 산들이 첩첩히 둘러쌓여 있다. 고불고불 저 먼 곳으로 수산리가 보이는듯 하였고 그 뒤로 검은 산 덩어리가 월악산 같이 보였다. 이번 마지막 인증코스에서 기억이 될 만큼 힘들고 어려운 코스인 것이다. 이곳도 약 10시간에 120km를 달렸으니, 그날 오후 6시 충주 터미널에서 인천까지 버스를 다고 왔다.
셋째 날
달리는 버스 창가로 아침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도심을 빠져나가 창 커튼 사이로 슬라이드처럼 지나가는 자그마한 시골의 풍경은 고즈넉했다. 충주가 가까워 오는 것 같다. 큰 다리 아래에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검푸르게 보이는 강물이 고요한 아침의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 사실 자전거 타며 모든 것을 관찰하며 느낀다는 것은 걷는 이만 못하다.
(충주에서 ~ 상주까지)
충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탄금대로가 인증을 받고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나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나의 존재도 같이 흘러가는구나 하며 생각하니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낀다. 의자에 잠시 앉아 수안보 방향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자니 어떤 분이 어디가냐고 묻는다. 나는 문경으로 해서 상주로 간다하니 같은 방향이니 같이 가자고 하길래 그러자 해서 3명이 일행이 되었다. 가면서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이야기도 하며 수안보에 금세 도착하였다. 인증을 마친 후 주위를 살피니 산속에 묻혀 있는 듯 사방이 푸르름으로 가득했다. 조금 내려와 우측으로 방향을 트니 문경새재 (이화령)으로 올라가는 옛 국도 길이 앞을 가로 막는다. 한 여름에 고불고불 하늘로 이어지는 길은 내 마음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온 힘을 다해 기어 변속을 여러번하며 올라오다 보니 쉼 장소가 있다.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잠시 쉬며 목을 축이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중간쯤 올라온 듯 나무 사이로 휘어진 길과 산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다. 삼삼오오 사력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연실 손으로 훑어내며 비틀비틀 저속으로 올라오느라 모두 고생들을 한다. 우리도 잠시 후 출발을 하여 8부 능선쯤 외 나는 뒤로 처져 김경태씨 일행과 보이지 않게 멀어졌다. 나도 힘께나 쓴다고 생각했는데 영 아니다. 내 자전거가 좀 싸구려라 그런가 가파른 길에서는 기어 변속도 잘 안되어 몇 번이나 서곤 하였다. 온 힘을 다해 종주중 제일 힘들다는 이화령에 올라서니 힘은 들지만 시원한 바람과 조망이 막혔던 가슴을 터 준다. 우선 가계로가 시원한 물을 사 꿀꺽꿀꺽 물을 한병 다 마시고 전망대로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뱀처럼 휘어진 길과 저 멀리 아늑하게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해냈다는 자신감을 같게 해준다. 이래서 힘들지만 고행을 하는 것에 대하여 또 한 번 기쁨을 만끽하며 추억으로 간직한체 문경새재라고 새겨진 큰 푯돌 앞에서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고 내려가자고 해서 문경쪽으로 가파른 길을 눈 깜빡할 사이에 쏜살같이 내려왔다. 아마 이분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좀 더 시간을 같고 이화령에서 좋은 시간을 가졌으리라 잠시 후회를 하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내려오니 식사를 하자고 해서 마땅한 식당을 골라 식사를 한 후 문경읍으로 내려와 어렵게 낙동강 길을 찾아 내강변을 달리다 보니 식수가 떨어져 갈증이 목을 조이고 있다. 얼마나 갈증이 나는지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그들은 저 멀리 사라지고 나는 쫓아가느라 죽을 똥을 싼다. 한참을 달려오다 보니 공사하는 곳이 보이 길래 가서 물 좀 있냐고 물으니 얼음물 한통을 주면서 다 마시라 한다. 얼마나 고마운지 연실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하였다.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한참을 내려가니 상주보가 저 멀리 아련하게 잡힌다. 인증을 한 후 우리 일행은 상주시외버스터미널로 와서 각자 집으로 왔다. 그리고 서로 연락을 하며 다음에도 같이 또 가자고 약속을 했으나 내가 이유 아닌 이유를 대서 그들과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곤 이내 홀로 여행을 떠났다.
이화령을 넘으며
내 아버님은
보부상이셨다
하얀 꽃소금을 등에 지시고
천상보다 더 높은
꼬불꼬불
열두 고개를 단숨에 넘으셨다니
얼마나
허리가 저리셨을까
남쪽의 별을
무척이나 좋아하시던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은 모두
전부 다
아버님의 소금 꽃이다
지지않는 꽃
오늘은
산들바람이 되시어
나의 등을 살며시 밀어 주신다.
2012.7.28.(토요일)
(인천시외버스터미널 ~ 상주시외버스터미널)
06:35분 상주행 버스에 낸 애마를 실고 걷게 뻗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이번에는 상주에서 부산 낙동강하구까지 종주를 마치려고 대단한 결심을 하고 출발한 것이다. 폭염주위보가 발령되고 아침부터 쏟아지는 햇살은 모든 것을 태우려는 듯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을 새롭게 만나는 즐거움이야 말로 더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나그네처럼 목적도 없이 시간과 공간도 모두 버린 우주의 한 점처럼 자유스러운 여행이야 말로 여행은 얻어서 오는것이 아니라 버려서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새심 느낀다. 여행은 보고 즐기고 놀라고 경탄에 젖어 연실 감탄의 환성을 지르며 담아오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이 나이에 여행은 보고 느끼며 깨달아 나와 나 사이의 거리를 한층 좁히고 내심에 들어앉아 깊게 숨을 들어마시고 조용히 사물을 즉시하며 길게 내쉬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자전거 여행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강물처럼 여유롭게 흘러가고 싶다.
(상주시외버스 터미널 ~ 상주보)
시내에서 보까지는 그리 가깝지가 않다. 전에 다녀간 기억을 되살려 우측 시내도로를 따라가니 병상천 둑방길에 자전거 도로가 잘 나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시내 외곽으로 자전거도로를 그나마 잘 해 놓은 편이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 약 한 시간 정도 달리면 낙동강 줄기가 실뱀처럼 나타나고 우측으로 웅장한 상주보가 시아에 들어온다.
세개의 웅장한 탑과 길게 가로질러 늘어선 다리가 산맥들과 잘 어울려 있었다. 상주보기념관에 들려 인증을 한 후 시간을 보니 거의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쉴곳을 두리번 거리고 찾아보니 뒤편에 아담한 정자가 있어 가보니 죽암정(竹岩亭)이라는 현판이 결려있다. 다리를 놓으며 새로 지은 듯한 듯이 보이는 이정자에 올라서니 낙동강 푸른 물은 은어떼들이 춤추는 듯 번쩍번쩍이고 가운데 경천섬이 푸르른 모습으로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아니 경이스러운 곳에서 옛 선인들이 낙동강을 벗으로 하여 세월을 노래했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상주보 죽암정에서
낙동강 푸른 물에
세월을 씻어보니
남는건 바람뿐이로구나
수양버들은
물에 가지를 드리우고
옛 모습
덧없이 바라보지만
강물은 가자고가자고 하니
한 잎 뛰어 보낸다
언제 또
댓잎 사각대는
바위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낙동강 푸른 물에
바람을 드리울까
낙동강 700리
흐르는 물 바라보니
남는건 바람뿐이로구나.
( 상주보 ~ 낙단보 ~ 구미보 ~ 칠곡보 ~칠곡읍)
상주보를 출발하여 낙단보를 가는 길엔 온통 쏟아지고 튕기는 따가운 햇살뿐 빨리 가서 쉬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아가 좁아든다. 흠뻑 젖은 몸을 바람ㅇ[ 날리며 다다른 것, 낙단보, 인증을 마치고 우측으로 올라서니 강둑 옆으로 또 정자가 있다. 2층으로 되어 있어 자전거를 메고 올라가니 점심때라 그런지 인부들이 오침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신발과 소대와 두건을 벋고 간단히 요기를 하기위해 가방을 열어보니 바바나가 진물러 녹아 흘러 내린다. 먹는 것이 아니라 핥아 먹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래도 달착지근한 것이 꿀보다 더 달았다. 준비해간 쪼코렛과 터미널슈퍼 아주머니가 주신 토마토 한 개를 먹으니 든든하였다. 상주부터는 중간에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먹을 곳이 없어 늘 준비를 해 가지고 다녀야 한다. 물은 서너통 이상 필히 준비해야 하고 간간이 염분을 섭취하기 위해 소금 등을 지녀야 한다. 한 더위에 땀을 많이 흘려 물 및 영양 공급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탈수증 및 더위를 먹어 잘 못하면 큰일이 날 수 도 있다. 너무 뜨거운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에는 되도록 이면 여행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금 있으니 인부들이 모두 일하러 내려가고 나만 홀로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잠시 눈을 붙였다. 노래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보니 저 쪽에 할아버지 아니 나도 이제 60십이 내일이니 아저씨라고 말해야할 것 같다. 소주 한 병을 친구 분과 주거니 받거니 하시며 세월의 노래를 하고 있다. 시계를 보니 잠시 2,30분 정도 잔 것 같다. 아저씨가 나를 부르며 한잔 하라 핫;s다. 나는 자전거 여행중이라 음주를 하지 않는 다고 하나 허허하며 웃으시더니 참 좋은 취미를 가지고 있군 ...여행 참 좋은 거지 하며 하신다. 하시며
낙동강 물은
어제나 이제나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는데
나의 주름살은
골이 깊어만 가누나
시 노래를 하고 계신다.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세월의 흐름을
세월도 물도 바람도 흘러서 사는 것
무엇이 있고 없음이랴...
나는 이내 강을 바라다보았다. 수 만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에 나도 따라 흘러가보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겠는가.
오후 4시가 돼서 나는 조금 가벼워진 햇살을 등에 달고 강변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16시40분쯤 되니 구미보에 도착 하였다. 보마다 조형물이 특징을 가지고 있듯 설계되어 있다. 요즘은 어떠한 건물도 미적인 감각을 살려서 이미지를 가지고 설계되었으니 참으로 예술적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또 한번 건설인가 파괴인가에 대하여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구미보에 오니 기념관에 마트가 있어 음료수, 물, 얼음 등 시원하게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오는 도중 어느 보하나 이런 쉴 곳 또는 음식을 먹을 곳 등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아 여행자에게 이리 불편할 수가 없다. 지역 당국에서 이런 배려를 해주길 바랬다. 오늘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칠곡보이기에 서둘러 페달에 힘을 가했다. 칠곡보에 도착하여 인증을 한 후 시간을 보니 19시 25분이다. 숙박할 곳 까지 가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한다. 서둘러 칠곡읍으로 향해 도착하여 모텔을 정하니 20시가 되었고 한곳을 정해 들어가니 어찌난 곰팡이 냄새가 나는지 들어갈 수 가 없었다. 시골이라 자주 사용을 않해 그런 모양이다 생각하곤 그냥 아니 피곤해서 지쳐서 그랬는지 나는 들어가 환기를 시키고 빨래를 한 후 목욕을 하는데 물도 시원하지 않았다. 첫날부터 방을 잘 못 잡았구나 하며 푸념을 하곤 나는 식사를 하러 나왔다. 나와서 집사람에게 오늘 목적지 까지 왔다고 보고를 하니 날이 더운데 무척 걱정을 했다며 천천히 조심해서 쉬면서 타라고 아이들에게 타이르듯이 마한다. 순간이나마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오늘 중복 날이니 맛있는 것 사먹어라 한다. 나는 보신탕 생각이 났다. 지나가는 사람들, 가계 아저씨에게 보신탕집을 물어보니 이곳은 작은 동네라 없다고 한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보신탕하는 데를 데려다 달라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생각이 난 듯 이리저리 한참을 돌더니 시골 모퉁이 있는 것에 보신탕집이 있었다. 들어가 벽 메뉴판을 보니 8000원이라고 쓰여 있어서 만원짜리 한 그릇 해달라고 하니 아주머니가 덤으로 고기를 한 접시 더 준다. 나는 막걸리 한 병에다 배불리 먹고 내일 준비거리를 사가지고 모텔로 돌아와 곤하게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서둘러 여관을 나와서 해장국을 먹으려니 시고이라 음식점이 넚다. 조금 내려오니 김밥집이 있어 들어가 점심용으로 주먹밥을 해달라고 하니 그냥 깨소금을 뿌린 후 단무지를 넣고 김밥을 말아 준다. 나는 두 덩이를 배낭에 넣고 앞을 보니 24시 할매순대국집이 있어 내키지는 않았지만 한 그릇 가볍게 먹고 칠곡을 빠져 나왔다.
2012.7.29.(일요일)
(칠곡보 ~ 강정고령보 ~ 달성보 ~ 합천창녕보 ~적포교 )
내가 자전거를 타고 질주할 때 순산순간 모든 것이 새롭게 변한다. 강물이며 산 그리고 바람, 구름 하늘, 풀, 나무들, 꽃 , 풍경 및 작은 돌맹이 어느 것 하나같은 것이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막 칠곡읍을 빠져 나오려 하니 눈에 익은 듯한 철교가 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노량진에서 용산으로 잊는 한강철교와 비슷한 모양의 구조물로 되어 있다. 다소 좁고 길이가 짧으나 낡아 보였고 사연이 깊은 다리로 보였다. 이 다리는 일제 때 만들어 졌으며 관호리와 왜관읍을 잊는 다리로 6.25 당시 북한군이 남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군들의 폭격으로 끊어 졌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복구해서 지금은 인도 및 자전거 도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칠곡철교를 우측으로 돌아서 강변을 따라 달리기 시작 하였다. 산도 간도 나도 같이 달렸다. 콰이강의 철교 같은 다리는 내 등 뒤로 점점 안개 속에 묻혀가듯 멀어져 가고 강물은 같이 가자고 서둘러 나를 잡아끈다. 강물 속엔 검은 산이 드러누워 있고 가끔씩 피라미들이 산을 뜯어 먹은 듯 골이 파여 있다. 가끔씩 흔들리는 산 흐르는 물과 산은 서로 공유하고 있으나 같이 하지는 않는다. 물에 거꾸로 누워있는 산은 평범함을 잊으려 하듯 골을 나타내지 않는다. 평상심을 드리울 뿐이다. 물은 산맥을 올라타 흐르고 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다. 산은 산 물은 물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은 좁은 길목을 만나면 서두른다. 소리를 내며 뛰어 가기도 하고 뛰어 내리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넓이를 만나면 죽은 듯이 숨을 몰아쉬며 흐르고 있는 것이다. 2시간 반 정도 달리니 강정고령보에 이른다. 이곳에서도 마찬 가지로 인증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달성보에서 쉬기로 하고 내침김에 페달에서 발을 내리지 않는다.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오전 목적지에 도착해 쉬어야 만 한다. 그래야 일정에 차질이 없다. 강정보를 오는 길은 국도 및 동네를 한바퀴 휘돌아 와야 한다. 어떻게 길을 냈는지 통 알 수가 없어 잘못하면 길을 잃기가 십상이다.
다음 목적지인 달성보를 향해 달리니 달맞이꽃들이 둑방을 노랗게 물들이며 일렁거리고 있다. 서로서로 긴 목을 드리우고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쑥스러운 모습으로 지나가는 자전거 종주 메니아들에게 인사를 하듯 고개를 흔드는 모습을 바라보자니 반갑기 그지없고 시름을 잃는다. 때가 되면 스스로 피어나 시기와 질투도 없이 있는 그대로 향기를 바람에 날리다 밤이 오면 달빛과 남도 모르는 사랑의 교신을 하며 애정을 나눈다. 꽃이라 해서 그리움이 없겠는가, 달빛이 가늘어지고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이면 눈가에 이슬을 맺히다 아침 햇살이 다가오면 잊은 듯 이렇게 웃고 있는 것이다. 꽃들은 움직이지 않아도 세월의 흐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따금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웃음의 배려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오전 11시 달성보에 도착해 오전 여행을 마감하고 너무 덥기에 오후에 따기로 하고 다리 밑으로가 쉬기로 했다. 다리 밑에 가니 어느 아주머니가 그늘에 책을 보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헬멧과 신발등을 벋고 휴식에 들어갔다. 눈을 살짝 붙이다 보니 햇살이 가까이 와 일어나 또 옮기기를 수차래 한참 기승을 부리는 시산이 되니 다리 및도 더위가 찾아온다. 나는 일어나 달성보 휴게소로 가서 목을 축이고 화장실에 들려 얼굴을 보니 그 사이에 벌겋게 타버렸다. 얼마나 더운지 그늘에서도 화끈 거리도록 화기를 느꼈다. 나는 선크림을 짙게 바르고 안면 마스트를 더욱 챙기며 합천창녕보로 향했다. 달성보에서 행사를 하여 시원한 국수를 한 대접 사먹고 4시 반에 출발하였다.
그 이전에 세 팀을 만나게 되었는데 한 팀은 대구에 사는 50대 초반의 중년 부부였고 또 한 팀은 인천대 기계과 2학년인 우창기교수님의 제자 학생들이었고 마지막 한사람은 서초구에 사는 이분도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영인(010-2279-27700이라는 사람이었다. 두 부부는 다리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 곳에 와서 쉬다가 알게 되었다. 두 학생은 방학 중 특별한 의미를 갖어보기 위해 종주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무더위에 남들은 쉴 텐데 힘든 결정을 하고 보람있는 여행을 하게 된 모양이다. 또 마지막 한 사람은 역시 혼자 종주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달성보에서 만나 달성보에서 시간차를 두고 자기 갈 길대로 떠났다. 일찍 먼저 떠난 사람은 3시간 전인 학생들이다. 그리고 부부가 나 앞에 떠나고 마지막으로 내가 달성보를 등에 대고 다리를 건넜다. 조금 지나가니 다리가 나왔다 이 다리는 1022국도로 만나는 다리다. 내가 이 국도를 택한 이유는 휴게소에서 쉬는데 어느 한 학생하고 자전거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적이 있는데 이 학생이 하는 말이 직진으로 가면 비포장에 큰 언덕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고개를 넘으려면 지금 이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 할 수 없다고 국도를 가다 강 길을 택하라고 말 하길래 다리 쪽을 택하여 가는데 먼저 떠난 서초동에사는 분이 저기서 달려온다. 왜 이제 오느냐고 물으니 언던쪽으로 갔던 모양이다. 또 조금 있으니 두부부가 온다. 그 쪽도 마찬가지 였다. 우리는 일행이 되어 국도를 타고 가는데 가도가도 딴 방향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우리는 주유소 앞에서 방향을 잡기 위해 물어보니 아는 사람들도 없고 아이폰을 이용해 방향을 보니 간에서 한 참 멀리 떨어져 있었다. 부부 아주머니가 한참 누구와 통화를 하더니 논길로 가자고 해서 논둑으로 무작정 내려가니 또 다른 작은 국도가 나온다 한참을 가다 한 젊은이가 있어 물어보니 낙동강변으로 가려면 이길로 쭉 가다 아파트가 나오면 그쪽 방향을로 또 가라고 한다. 그래서 한참 달리다 보니 좌측으로 아파트가 나와 우리일행 4명은 그 쪽으로 가다 자그마한 가계가 있어 아니스바좀 사먹을 겸 들어가 물으니 가는 방향이 맞다 고 한다. 조금 있으니 어디서 한참먼저 떠 났던 인천대 학생들이 지나 가길래 불으니 그들도 국도 따라 왔다가 몇 시간을 헤맷다고 한다. 나는 반갑고 해서 얼른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두 개 사다주고 같이 가지고 하며 합천 창녕보에 도착하였다.
우리들은 합천 창영보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인증도 받고 한참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일정을 나누곤 하였다. 두부부와 학생들은 밤새도록 가 오늘내로 부산에 도착하겠다고 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저녁이 금세 다가오는 시간이지만 그 들이 무사히 잘 가기를 기원하며 서초동 사람과 나는 느긋하게 쉬다가 그 곳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적포교에 가면 모텔과 식사할 곳이 있다고 하여 우리는 그곳에서 하루 머물기로 하였다. 그리곤 아이폰을 이용해 숙박지 전화번호를 알아내 예약을 하곤 이내 출발을 하였다.
30분이면 갈 것 같은 거리인데 1시간 정도 걸려서 거의 도착할 무렵에 또 전에 한번 만났던 혼자온 학생을 가는 길에서 또 만났다. 우리는 곧 어둠이 깔리고 해서 그곳에서 같이 묵기로 하고 모텔을 찾아 들어갔다. 주인아주머니가 벌써 방에 에어컨을 켜놔 들어가니 시원하였다. 우리들은 8시 반에 카운터 앞에서 만나 시;r사를 하기로 하고 방으로 들어가 세탁을 하고 이내 만나 식당을 가니 대부분 닫고 한집만 열었다. 메뉴판을 보니 먹을 만 한 것이 돼지 두루치기 3인분을 시켜 식사 겸 소주 한 병을 시켜 어런저런 여행 이야기를 하며 허기진 배를 든든히 채우고 들어와 곤한 잠을 청했다.
이제는 사람들을 만나도 간단한 이름정도만 알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 더 아는 것이 나에게 번잡함을 알게 했기 때문에 나 역시 내 정체를 밝히지도 않고 우리들은 시간이 되면 만났다 떠나는 그런 나그네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2012.7.30(월요일)
(적포교 ~ 창영함안보 ~김해시)
창가를 통해 들어온 햇살이 포근히 나의 눈까풀을 애무한다. 아이폰에서 6시라는 신호가 나의 귀와 서로 소통할 때 나는 뻐근히 굳은 근육을 피며 일어난다. 세상의 흐름은 변함없이 바람이 몰고 온다. 바람은 세상을 데려다 놓고 살며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 바람은 변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온유하며 억세다. 때로는 사랑을 잃어버린 한 여인의 가날푼 눈매와 같이 아무도 없는 강가에서 무엇을 찾는 듯 서성이 듯 쓸쓸하지만 새로움을 안겨주는 나그네의 정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준비를 끝내고 아침을 먹으러 나왔으나 식당 연곳이 한 군데도 없다. 조그만 시골이라 누가 아침을 먹으러 오겠는가. 아마 어제 까지 장사를 한 집도 모두 고요함에 젖어 무심의 세계를 만나고 있을 것이다. 마침 저 곳에 한 남자분이 있어 아침 하는 곳을 물어 보니 저 적포교를 건너며 오른 편에 식당이 있다고 한다. 그 집은 오가는 기사들이 식사를 하는 곳이라 항시 여니 가보라 한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며 이방면하고 연결된 아주 오래된 길을 바라보니 낡은 다리지만은 덤덤한 것이 넉넉해 보인다. 나는 가끔 이렇게 헐은 것을 보면 새것보다 더 아늑한, 고고한 맛이 더 나를 매혹 시킨다. 낡은 듯하면서 뭔가 시대의 냄새를 듬뿍 담고 있는 듯 한 조금은 쓸쓸한 모습에 내 마음이 더 가는 것은 까마득한 옛날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다.
네가 이곳까지 지나오면서 새로운 많은 보들과 웅장하게 가로지는 다리들을 보았지만 정겹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주 옛날 아니 보편적으로 옛 다리들은 일제시대 때 만들어 진 것들이 많다. 일본인들이 만들어서 반감을 같는 것은 아니다. 시대적 유물이 되어 아직도 풍자한 세월은 지기고 있는 쓸쓸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다리를 대할 때 넉넉한 마음이 나를 차문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다리를 건넌 식당 앞마당에 들어서니 자전거 두 대가 보인다. 아마 어제 일행이려니 하엿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나이 많으신 아저씨와 아주머니, 부부인듯한 두 분이 식사를 하고 계신다. 나는 인사를 하고 어디서 오셨냐고 하며 말문이 서로 교통을 하기 시작하였다. 서울에서 왔는데 어제 무척 고생 했다면 너무 고생스러워 밥도 안 먹힌다며 아주머니가 몇 숟가락도 뜨지 않으시고 연실 물만 마신다. 물어본즉 무척 험한 고갯길을 넘어 오셨다는 것이다. 나는 무사히 그곳을 피해 왔지만 아마 그분들은 나이에 힘들었으리라 생각이 된다. 어느 방향으로 갈것이냐고 물으니 국도를 타고 가겠다고 한다. 나는 국도가 위험하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자전거 길을 택했지 만은 그분들은 곳 떠나 버렸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다리를 건너 다시 돌아와 강변 길을 택하여 질주를 했다. 아침 햇살은 아직 부드러운 맛을 가지고 있었다. 선그라스를 착용하지 않아도 시원한 바람 향기를 맡으며 달리는 기분은 어제의 피로를 풀어준다. 다리의 힘도 씩씩해지고 마음도 상쾌하져 강물을 따라 이어진 길과 숲에서 푸드등 나는 새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구름 따라 달리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새롭다.분주하게 여럿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여행하는 것보다. 이렇게 홀로 달리는 쓸쓸한 듯한 분위기를 가슴에 안고 또 다른 미지의 세상을 맞이하는 것 또한 즐거운 것이다. 호로 다니며 얻는 것이 너무나 많다. 앞서 말한 바도 있지만 외로움과 고독함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몸소 터득한다는 것은 매혹적이다.
창년함안보까지는 아주 긴 거리다. 54.6km dir 5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다. 봄이나 가을 이면 온 종일 달려도 치력 소모가 적지만 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쉬는 시간이 많아 평균으로 시간당 12~15km전도 밖에 가지 못한다. 함안보에 도착해 인증을 마치고 쉬고 있는데 관리 하는 분이 오시며 혼자 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참 고생이 많다고 격려를 해주시며 관광버스를 가리키며 저분들은 버스를 타고 단체가와 인증을 찍고 간다며 가는 미소를 던진다. 오전 11시 인데도 날씨가 무르익는다. 올 날씨는 유난히 너무 덥다고 이야기 하며 아마 이상기온이거나 우리나라가 아열대로 바뀌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나보고 보 중간에 가면 휴게실에 에어컨도 나오고 하니 그곳에 가서 쉬라고 일러 주신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자전거를 가지고 내려가니 정말 전망도 좋고 시어한 것이 한잠 청해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선 몸을 가볍게 하고 의자에 앉아 넓은 보를 바라보며 물과 같은 모습으로 살았으면 하는 생각에 잠겼다. 늘 생각해 온 것이지만 망각으로 살다보니 진실하게 내가 살아왔나 반성을 하는, 뒤를 돌아다보는 생활을 만조하게 갖지를 못한 것 같다. 넋을 놓고 잠시 내가 살아온 세계를 뒤집어 보는, 박쥐같이 세상을 살아보는 시간 속에 미미하게 나마 일렁이는 물결에 내 삶을 비춰보는 이 시간 물결은 스스로 일어나기 보다는 바람에 일어나는 것을 직감한다. 이곳에는 냉장고에 시원한 물도 있어 나는 가방에 두 개를 넣고 자전거에도 채웠다. 그리고 자리에 와 앉아 있으려 하는데 이영인씨가 오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반갑게 맞이하며 이번 여행에 우리는 인연인가 보다 하며 너스레를 떨고 같이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그는 복장도 와이셔스이고 95.000원하는 자전거를 타고 종주를 하고 있었다. 아마 메니아는 아니지만 모험이라 할까 세상을 도전하고 싶은 의지에서 집을 떠나온 듯하였다. 참 용기가 가상하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나그네는 묻지를 않는 것이 통례이다. 그저 서로 마음으로 이해를 하고 가늠할 뿐이다. 서로 오늘 갈 목적지를 이야기 했다. 나는 시간이 되는 대로 수산시외버스터미널 또는 시간이 나면 잠자리와 식당이 강가에 있을 것 같은 삼란진역까지 간다고 하니 그도 같이 가자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일행이 되어 같이 강변을 달리기로 하였다. 길이 참 잘나있었다.
그 전에 적포장에서 자고 다리건너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창영함안보를 향해 출발을 하였다. 잘 난 강변길을 따라 가다보니 어느 마을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조그만 마을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다보니 마을 끝이 나오고 비포장도로인데 산으로 이어져 있었다. 가파른 산은 임도인 듯하였으나 매우 험상궂고 상어 지느러미마냥 날카로웠다. 처음부터 자전거를 힘들고 밀고, 또는 끌고 하며 한없이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쉬며 또 쉬며 하기를 수 차례 8부능선 쯤 올라가니 조그만 프랜카드가 걸려있다 아리고개라고 산길을 표시해놓은 것이다. 20여분 더 올라가니 정상에 다다르고 멀리 평야가 눈에 어린다. 얼마나 힘들게 올라왔든지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올라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의 존재를 재확인 하는 듯 신비감에 사로잡혀 나의 동공은 하나의 꽃잎에도 감흥이 된 듯 황홀함을 감추지 못한다. 이러한 고개를 하나 더 넘으니 조그만 마을을 돌아서 나가는 길목에 수로가 흐르고 느티나무가 큰 그늘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나는 그 곳에서 잠시 쉬려고 양말을 벗고 물석에 발을 담그니 그래도 한결 발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물은 참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내 몸의 팔 할이 물이니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곧이어 맞은편에서 세명의 자전거 무리들이 다가와 나와 같이 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나는 하도 힘든 고개를 넘어와 피로가 겹치고 힘들어 동네 목욕탕에 가서 더위를 피할 겸 쉬기로 하고 마을을 벗어났다. 그래도 소규모의 동네지만 아파트도 있고 식당도 여러군데 있는 곳이라 나는 한 식당을 골라 들어가 낙지볶은 밥을 시켜 맛있게 먹고 목욕탕으로가 휴식을 취하며 한잠을 자고 났더니 3명의 학생들이 들어와 그들도 자전거로 부산까지 간다고 한다. 시골 목욕탕이라 4시까지 쉬지 않고 2시쯤 나와 간 곳이 함안보 이다.
이영인님과 같이 삼랑진역까지 가기로 하였다. 우리는 무슨 인연인지 또 한 번 고비를 맞고 말았다. 오후 6시가 됬을까, 수산대교를 왔을 때 지나가는 행인에게 길을 물었다. 그랬더니 건너로 가면 국도로 가야하며 공사중이라 좀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원래는 그 길이 지도상에 나와 있는 길이다. 그래서 새로 난 길로 가라해서 막 돌아 설려고 하는데 그 쪽에서 한 젊은이가 자전거를 타고 오길래 재차 물으니 새로 난 길로 가다 동네가 나오면 자전거 표시가 있으니 그길로 똑바로 가다 조그만 산이 나오면 넘어가라고 일러 준다. 시간이 얼마나 거리냐고 물으니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하여 우리는 삼랑진역으로 출발을 하였다. 길이 잘나 있었고 한참을 가니 둑방에 팔각정이 아담하게 있었으며 그곳에는 TV도 있었고 시원한 맥주를 사다가 동네 아주머니들이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쉬고 시계를 보니 1시간을 달려왔다. 삼랑진에 대하여 길을 물으니 저 고개를 넘으면 된다하여 또 출발을 하였는데 마을 어귀를 지나니 고개가 나온다. 자전거를 끌고 우리는 올라갔다. 좁은 길이지만 자전거 마크가 있어 우리는 이 길을 확신하며 계속 갔으나 끝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날은 어두워지고 달은 중천 나뭇가지에 걸려 훤하게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보름이라 그런지 달은 꽉차있었고 달무리까지져 으스스한 길이지만 그런대로 바람도 시원하고 갈만 하였으나 고갯마루가 나오지 않아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한 시감이면 갈 수 있다던 곳은 나오지 않고 무려 두 시간이 훨씬 지나 밤 9시를 넘고 있었다. 이영인씨는 나보다 뒤처져 오고 있었다. 휘어진 길목에서는 보이지를 낳아 내심 걱정이 되어 기다리면 오고하기를 수차례 어느덧 고갯마루가 발아래 왔을 때 날은 저물 때로 저물어 어둠이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여 숲으로 만들고 푸른색마저 검게 물들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기계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불빛이 어스름하게 시아에 들어왔다. 저 곳인가 보다 하고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내려갔으나 마을이 아니고 공단이었다. 이런 난감한 일이 황당해 있는데 두사람이 차에서 서성이고 있어 우리가 삼랑진에 대하여 물으니 다시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일이 우리는 그 속에서 망연자실허여 어리둥절하였다. 어떻게 하여야 할까 망설이다 그분들께 다시 물으니 지금 이 시간에는 절대로 삼랑진 가는 국도를 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국도에 밤이면 차량이 100km이상을 달려 죽음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제일산업에 조왕래 공장장(010-6249-3825, 김해시)의 말이다. 그러더니 우리보고 자기공장에 자전거를 두고 내 차로 김해시에 가서 자고 내일 와서 가지고 가라고 하길래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한 후 조공장장의 차를 타고 김해시에 가서 식사를 한 후 모텔에 들어가 하루를 쉬게 되었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처음 낮설은 사람에게 이렇게 까지 호의를 베풀어 주신 조공장장님에 고마움을 잊을 수 없어 다음날 음료수 두 박스를 사서 공장으로 찾아가 인사를 하고 우리는 악수를 나눈 다음 자전거를 타고 그가 알려준 길로 해서 삼량진에 도착하였다.
2012.7.31(화요일)
(삼랑진 ~ 양산물문화관 ~ 부산낙동강하구둑)
어느 곳에서나 길은 있었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선택 되었다. 길이 아닌 곳에서는 내가 길을 만들어야 했고 잘못되었어도 실패라고 단정 짖지 않았다. 오늘 내가 떠나는 미지의 길도 누군가의 실패의 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나는 그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태양이 달아오르듯이 나의 마음도 달아올라 아직도 길 위에 올라서면 장에 갔다 오시는 엄마를 언덕마루에서 뒷금치를 들썩이며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인다.
삼량진에서 아침 식사를 하려고 했으나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아 우리 간단히 간식을 먹고 이내 강가로 내려와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곳부터는 길이 참 좋았다. 국도도 없고 산길도 없어 강변을 따라 순탄하게 달릴 수 있었다. 시간도 있고 해서 우리는 마지막 종착지인 낙동강 하구 둑까지 가기로 하고 앞서 달리기 시작 했다. 아침도 못 먹어 허기가 지길래 물금역주변에서 먹으려고 주변을 살폈으나 본디 촌이라 식사하는 데가 없다. 우리는 양산물정화소 부근에서 인증을 마친 후 다리 밑을 지나려 하니 그곳에서 컵라면과 팥빙수를 팔고 있었다. 나는 우선 팥빙수를 시켜 단숨에 들이마셨다. 퍼먹은 것이 아니라 벌컥벌컥 마신 것이다. 마치 철리를 달려온 말 한 필이 낙동강 물을 만나 빨아들이듯이 그렇게 말이다. 속이 얼얼하다 못해 얼어버린 듯 내장이 움직이지를 안는다.
그곳에서 100kg이나 나가는 짐을 달고 달리는 사람을 만났다. 자유인임에 틀림이 없어 보이는 그는 우리와 합석을 하여 막걸리를 단숨에 한잔 들이키고 이야기를 하는데 부산을 가서 일본으로 간다고 한다. 일본은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 도로나 모든 시설이 잘 되었다고 분주히 장황에게 털어논다. 나도 전국을 마친 후 일본을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우리들은 다시 출발을 하여 낙동강 하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달리니 날도 무덥고 지친 몸이라 자전거 속도가 나질 않는다. 한참을 달린 후 이정표에 낙동강 하구 기점 5km라고 쓰여졌다. 이것을 보니 힘이 절로난다. 조금 가니 하구보가 나오고 20여분 달리니 다리를 건너 인증소에서 인증을 마치고 관리소에 들어가 종주 싸인을 받고 나니 맥이 풀린다. 시원한 에어콘 바람이 나오는 휴게실에서 쉬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참으로 이 무더위를 가르며 종주 했다는 기분에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곤 투정하듯 어리광 부리듯 시원한 수박이 먹고 싶다고 오늘 집에 들어가니 준비하라고 안부전화를 끝내니 이영인씨가 점심을 머자고 해서 우리는 다리건너 평양냉면집에 가서 물냉면을 시켰다. 나오자마자 육수를 벌컥벌컥 들어 마시고 육수를 더 달라고 해서 냉면 곱빼기를 먹으니 이제야 힘이 절로난다. 다닐 때는 간식을 준비해 중간중간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 우리는 냉면집에서 나와 이영인씨는 친구와 동생을 만나고 간다고 해서 이곳에서 우리는 이별의 악수를 하고 헤어지고 나는 서부버스터미널로 와서 5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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