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 기념관
모택동기념관은 1964년에 개관한 이래 2003년의 확장공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축 면적이 6,000여 평방미터에 달하는데 모택동의 유물, 유관 문물, 자료, 사진 등 수만 점의 물품을 전시하여 모택동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1990년에는 중남해(中南海)에 있던 모택동의 유품 5,000여점을 이곳으로 이관하여 함께 전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 모택동의 일생과 사상을 연구하는 중요한 기구로 자리 잡고 있다.
기념관은 총 12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등소평이 쓴 ‘소산모택동개념관’ 편액이 걸린 대문을 들어서면 한백옥(漢白玉)으로 만든 모택동 좌상이 보인다. 중산복 위에 스프링코트를 걸쳐 입은 모습으로 높이 2.67미터, 무게 3톤이다. 좌우엔 그의 시 <到韶山(소산에 도착하여)>과 <장정>이 새겨져 있다. 이 중 <도소산>을 읽어 본다.
到韶山 / 毛泽东
别梦依稀咒逝川,故园三十二年前。
bié mèng yī xī zhòu shì chuān ,gù yuán sān shí èr nián qián
红旗卷起农奴戟,黑手高悬霸主鞭
hóng qí juàn qǐ nóng nú jǐ ,hēi shǒu gāo xuán bà zhǔ biān
有牺牲多壮志,敢教日月换新天
wéi yǒu xī shēng duō zhuàng zhì ,gǎn jiào rì yuè huàn xīn tiān
喜看稻菽千重浪,遍地英雄下夕烟。
xǐ kàn dào shū qiān zhòng làng, àn dì yīng xióng xià xī yān
소산에 도착하여 / 모택동
떠난 후 꿈속에서 지난 세월 어렴풋이 한스러웠었지
삼십이년전 그 때의 고향 땅
붉은 깃발 아래 농민은 창을 들고 일어났는데
시커먼 마수는 두목의 채찍을 높이 들었지만
장한 뜻 무수히 희생된 대가로
천지가 새롭게 바뀔 수 있었네
즐겁게 바라보네, 벼와 콩 천 겹으로 물결치는 들판에
가득한 영웅들이 저녁연기 속에 돌아오는 길
모택동 연표에 의하면 그는 1959년 6월 25일 소산에 와서 28일까지 머물렀다고 하는데 이때 쓴 작품으로 보인다. 1959년 6월이면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가 거의 실패한 정책임이 드러난 판국인데, 이 시의 마지막연에서 그는 풍요로운 농촌을 묘사하고 있다. 아직도 그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모를 일이다. 바로 며칠 후인 7월 2일에 개최된 여산(廬山)회의에서 그는 팽덕회로부터 인민공사 실패에 대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기념관에는 모택동의 소년시절, 혁명활동 시기, 신중국 성립 후 만년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사진들이 파란만장한 중국 현대사를 증언하고 있다. 유물관에는 중남해에서 쓰던 책상과 의자, 군복, 잠옷, 안경, 벼루, 수영복, 곽말약으로부터 받은 손목시계, 사용하던 그릇 등 수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그의 체취를 느끼게 한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시경>, <논어> 등의 책들도 풍부하게 전시되어 있다.
송재소(2020), 중국인문기행3 –호남성편-, 창비: 파주, pp.139-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