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청춘을 함께 지나온 친구였다
2017. 11. 향기 이영란
부탁해도 되니 너에게
기억이 부르는 날에
널 사랑하던 그 얘기를
다시 한번 들려줄수 있게
잠들어 있는 날 보던 너와
내 꿈에 있던 너의 모습이
늘 지워지지 않게 내 안에
간직해 가야 할 기억이기에
*멀어지는 너의 뒷모습에서
감출수가 없이 눈물이 흐르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할수가 없었던 그리운 시간속에 그대여*
노을에 비친 긴 머리칼과
널 바라보던 그 눈빛이
늘 지워지지 않게
내 안에 간직해 가야 할 기억이기에
*
사랑하는 내 안에 기억이여
지울수가 없이 내게 머물던
가지 말라는 말 한마디
할수가 없던 그리운 시간에 너
<아름다운 사실> - 김태원
콘서트장에는 은은하고 진한 호의로 가득했다. 쿵쿵대는 드럼소리에 다리가 후덜거렸고, 심장까지 가 닿는 느낌으로 온 몸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무대를 막고 있는 휘장이 걷히기까지 시간은 좀처럼 가지 않았고 나는 기대와 흥분으로 무척이나 조바심쳤다. 네가 무슨 말을 하던, 무슨 노래를 하던 우리는 모두 너를 응원할거야! 시작도 하기 전부터 관객들은 온 몸으로 메시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한 기운이었다. 그렇게 기다려온 부활의 창원콘서트장에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검색창에 부활 콘서트를 자주 두드려 보았다. 그리고 버킷리스트에도 올려두었다. 서울이라도 시간대만 맞다면 가봐야지 하는 다짐도 했다. 여름까지만 해도 통 소식이 없었다. 김태원이 아픈 것 같기도 했고, 실제 골골대는 걸로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드디어 서울, 대구, 창원 투어콘서트가 떴다. 나는 8월 말인지, 9월 초인지 거의 모든 좌석이 다 비어있을 때 제일 먼저 예약을 했고, 기다리다가 잊어먹다가를 반복하면서 지난 토요일 오후에는 드디어 마산을 갔다. 생각지도 못하게 차들이 많이 밀렸고, 길을 잘못 들어서 저녁도 못 먹은 채 콘서트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록 뮤직
록 음악의 사운드는 전통적으로 전기 기타를 중심으로 하며, 베이스 기타 그리고 드럼과 심벌이 포함된 드럼 킷을 사용한다. 피아노나 해몬드 오르간, 신시사이저와 같은 건반악기도 역시 자주 사용한다. 록 밴드는 일반적으로 보컬리스트, 리드 기타리스트, 리듬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 등의 역할을 나누어 맡는 둘에서 다섯 정도의 멤버로 구성된다. 이 일반적인 형태는 버디 홀리가 고안해냈고 비틀즈가 확립했다. 록 음악은 전통적으로는 백비트가 있는 4/4 박자의 반복적인 리듬을 자주 사용한다. 록 음악은 스타일적으로 매우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며, 복잡한 역사와 다른 장르의 요소의 잦은 유입 등의 이유로 록이란 무엇인가를 음악적으로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힘들다.
록은 영어로 Rock, 바위를 말한다. 바위를 치는 듯한 둔중한 소리의 음악을 말하는 것일까? 짐작해 본다. 부활의 경우 현재 보컬 김동명, 리드기타 김태원, 베이스 기타 서재혁, 드럼 채제민으로 구성되어 있고, 신디사이저와 리듬 기타리스트의 경우는 객원인 듯 싶다. 록 밴드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이야기하다니. 사랑의 힘일 지어다.
부활은 1986년 데뷔했다. 중학교 때였는 데, 지금 돌아보고 나서 그 때였지, 막상 그 때는 달달하거나 화려한 춤사위의 가수들 뒤에 가려져 그 진가를 알아 볼 수 없었다. 존재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승철이라는 뛰어난 보컬 덕분에 부활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고 히트곡도 많이 생겨났다. 그 뒤로 간간이 대박까지는 아니라도 중박, 소박 정도의 노래들이 알려졌다. 마지막 콘서트,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 lonely night, 사랑할수록, Neverending Story 등. 다른 음악에 비해 매력 있는 노래임에는 틀림 없었지만, 노래의 사연이나 그 뿌리를 알 수 없는 히트곡은 그저 멜로디 익숙한 박제된 노래일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리더 김태원은 부활의 존폐를 거듭했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그래도 음악은 그의 희망이었고, 물리학도를 꿈꾸던 베이스 기타 서재혁은 그의 옆을 꾸준히 지켜냈다. 그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강한 개성과 욕망을 지닌 보컬들은 자신의 음악적 성공을 위한 지렛대로 잠시 머물다가 가는 일이 많았고, 정동하의 경우는 8년을 지켜냈다. 다재다능한 정동하는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지금 현재 김동명이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건장한 체격의 김동명의 노래를 여러번 찾아 들었다. 가수라기 보다는 평범한 직장인에 가까운 수수하게 튀지 않는 이미지였다. 콘서트장에서 그는 말했다.
“제가 무명시절에 안산의 공장에서 일했는 데요, 창원에도 공장이 참 많네요. 차를 타고 오다보니, 제가 출근을 하러 오는 건지, 콘서트를 하러 오는 건지 잠시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그랬구나. 올해 서른 다섯. 잘 보이려고 하는 말만 할 나이는 아니다. 그리고 아직 자신의 꿈을 더 펼쳐볼 욕심이 살아 있을 나이이기도 하다.
리더 김태원은 말한다.
“제 주치의 선생님이 절 보고 도저히 2부까지 감당해 낼 체력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낮 3시 콘서트가 1부, 7시 콘서트가 2부) 여러분의 응원과 환호가 저를 이렇게 서 있게 만듭니다.” 김태원의 별명은 국민할매로 저질체력의 대명사이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많은 게 보인다. 노래만 들어도 보컬의 성격을 읽을 수 있다. 정동하의 경우 많이 무난하다. 무난하다는 말은 결함이 없다는 표현도 되지만, 너무 무난함은 자기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말과도 비슷할까? 5집 활동만 하고 뛰쳐나간 박완규의 경우는 대충 보기에도 인간성이 뾰족해 보인다. 김동명 역시 거칠고 잘 타협할 줄 모르는 선이 느껴진다. 어쩐다. 저 강한 개성이 묘한 매력이 있다. 어쨌든, 부활의 여러 히트곡은 그 보컬만의 고유한 것이 되기도 한다. <lonely night>의 경우 박완규가 아니고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전유물이 된다. 관객들은 저 노래의 주인이 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반면 <사랑하고 있다>는 김동명의 것이다. 참 좋다. 눈물나게.
저렇게 30년 동안 한 그룹을 지켜나올 수 있었던 힘은 김태원의 내면에서 음악과 詩어가 끊임없이 샘 솟았기 때문이고, 그걸 음악으로 표현해 내었고, 그의 친구들은 그 음악을 함께 지키고, 그의 곁을 지켜 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에게 신은 노래의 축복을 함께 내리지는 않았다. 그 사랑을 다른 사람이 불러야 했고, 그가 욕심을 좀 내어 낮고 탁한 목소리로 직접 부른 노래는 저주 받은 듯 관심이 꺼져 버렸다. 그가 진심을 다해 부른 노래를 그의 곁을 스쳤던 사람들이 살려 내었다.
갈라 놓을 수 없을 듯한 팀원들의 우정도 보이고, 김태원의 음악적 그늘아래에만 있지 않을 것 같은 보컬의 욕심도 보인다. 그래도 서로 존중하려는 예의와 배려가 보인다.
노래 <아름다운 사실>은 김태원이 한때 시한부 판정을 받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써 내려간 곡이다. 뒤에 오진이라고 판명이 났지만, 생을 마감해야 하는 남자의 회한이 묻어나는 곡이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앞으로도 결코 멈출 일이 없을 남자,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어 보이는 남자, 우리들의 사랑과 관심이 계속 필요한 남자,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그 신나는 노래와 비트와 리듬에 맘껏 소리치고 흔들고 온 떠들썩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