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이어주는 가장 강력한 힘, 사랑
-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까?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한 삶을 꿈꾼다.
한 가족이 있다. 아빠는 새벽에 일어나 토스트로 간단히 식사한 후 정신없이 전철역을 향해 내달린다. 매일매일 전쟁 같은 직장생활을 꿋꿋하게 버텨내는 건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다. 중학생인 딸은 중간고사 준비로 늦게 자는 바람에 제때 못 일어나 짜증을 있는 대로 내면서 밥도 먹지 않고 서둘러 등교했다. 지겨워 죽겠지만, 공부에 목숨을 거는 건 좋은 대학 가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조숙한 딸은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신랑감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고3인 아들은 동생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집을 나섰다. 학교 갔다가 학원에 들러 공부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밤 10시가 넘는다. 늘 파김치처럼 피곤을 달고 살지만, 일류대학 진학과 대기업 입사라는 목표를 한시도 잊은 적 없다. 그것이 행복의 보증수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세 사람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세 사람의 행복이 자기에게 달렸다고 믿는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고 힘겨우나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 참고 산다.
각 가정의 모습은 물론 천차만별이지만,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의 생활 형태는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추구하고 꿈꾸는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조건 혹은 요소는 무엇인가? 행복에도 일정한 법칙이 있을까? 아마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 있을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이 그 답을 찾아냈다. 193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유례를 찾기 힘든 세계 최장기 종단연구로 진행되고 있는 성인 발달 연구가 그것이다.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은 1937년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한 2학년생 268명의 삶을 그들이 노인이 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끈질기게 추적하며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도 법칙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이 연구는 연구 대상자들이 50대 때 20대 시절에 대해 회고하는 방식이 아니라, 20대에 겪은 일은 20대에, 50대에 겪은 일은 50대에 기록하는 식으로 상황의 발생과 동시에 연구가 이루어졌다. 상당한 재원이 들어가고, 연구원들의 끈기가 요구되며, 연구 대상자들의 협조가 필요한 엄청난 연구였다. 35년 동안 총책임자를 맡아 이 연구를 진행한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과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베일런트 교수가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쓴 책이 바로 『행복의 조건(원제: Aging Well)』이다. 2010년에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되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책에서 베일런트 교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입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수십 년 동안 이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들을 자세히 관찰해서 얻어낸 결론이 행복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오며 그 핵심 요소는 사랑이라고 밝혀낸 것이다. 행복이 인간관계로부터 비롯된다면 인간관계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가족관계야말로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 보고서는 끊임없이 배우고 유머를 즐기며 친구를 사귄다면 그리고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는 동시에 일찍 귀가해 가족들 얼굴을 한 번 더 본다면, 그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하며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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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소개되는 연구 대상자 한 사람과 그의 가족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유년 시절에 짐 하트의 어머니는 심각한 정신병을 앓았다. 그는 버릇처럼 학대를 일삼는 아버지를 전혀 존경하지 않았고, 그런 아버지를 그저 두고만 보는 어머니가 싫었다. 부모님과 가장 친근하게 지냈던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그는 기억이 미치는 한에서는 그런 시절이 전혀 없었다고 대답했다.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채 오히려 심각한 학대를 받으며 자라난 그의 인생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찾아온다. 아내를 만난 것이다.
줄리아와 결혼한 뒤 짐 하트의 삶은 꾸준히 변하기 시작했다. 결혼은 건강한 노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성인의 회복탄력성을 다지는 초석이 되기도 한다. 47세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내 아내입니다.” 56세에 결혼생활에 크게 변화된 점이 있는지 물었을 때는 이렇게 대답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부부 사이가 좋아지는 것 말고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56세의 줄리아는 오랜 세월 하트와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로 “첫째 남편은 나의 절친한 친구다. 둘째 해가 갈수록 우리의 사랑은 점점 더 깊어졌다. 셋째 우리는 함께 지내는 생활이 즐겁다.”라는 점을 들었다. 하트의 두 아이 역시 하트 부부의 결혼생활이 다른 친구들 부모의 결혼생활보다 더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그에게 돈은 수단일 뿐이었으며 궁극적인 목적은 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데 있었다. 50세에 하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 역시 권력과 지위와 성공을 원할 때가 있어요. 거대기업의 사장이 되어 있는 동창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아요. 그러나 나는 그 모든 바람이 한낱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어요. 내가 진심으로 바라왔던 것은 가족관계를 훌륭하게 유지하는 것 그리고 내 아이들이 행복하고 올바로 살아가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에요.” 하트는 자기 바람대로 살았고, 그 결과 대학 시절 그에게 시민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던 연구원들보다 훨씬 행복한 노년에 이르렀다. 짐 하트를 처음 만났던 1970년에는 나 역시 그가 노년에 이르러 우리 연구의 이상적인 모델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유년기는 비참하게 보냈지만, 짐 하트는 연구 대상자 중에서 가장 훌륭하게 노후를 보낸 사람 중 하나였다. 젊은 시절, 연구원들의 비판 대상이었던 하트는 노년에 이르러 동경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던 그 어린아이가 자애로운 할아버지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가 불행한 과거를 딛고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행복한 결혼생활에 있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크고 작은 역경과 시련과 실패를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인생의 바닥으로 고꾸라졌다가도 다시 치고 올라가는 힘, 맨 밑바닥까지 떨어졌더라도 재차 꿋꿋하게 튀어 오르는 능력을 가리킨다. 물체마다 각기 탄성이 다르듯 사람도 저마다 탄성이 다르다.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위기 국면에 처했을 때 좌절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경주해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발휘해 내는 사람이 있다. 회복탄력성 지수는 자신의 감정과 충동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자기조절 능력, 주변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인관계 능력, 긍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습관인 긍정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불행한 가정에 태어났다고 해서 자신의 인생이 반드시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며 자랐다고 해서 자신도 남들을 사랑할 수 없는 게 아니다. 회복탄력성을 발휘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가고자 노력한다면,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남들에게 더 많이 베풀고자 애를 쓴다면 짐 하트처럼 얼마든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랑을 만끽하며 살 수 있다. 사랑의 출발점은 가족에서부터 시작된다. 부부가 지극히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 또한 사랑하며 사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부부가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주면 자녀 역시 행복을 가꿔 나가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 행복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가족끼리 작지만 소중한 사랑을 가꾸고 나누고 베푸는 게 행복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다소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우정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무방하다.
30년 넘게 개인과 부부를 상담해 온 작가 죠티시 노박은 자신이 쓴 책 『유쾌한 결혼생활에 꼭 필요한 30가지(원제: 30-Day Essentials for Marriage)』에서 이렇게 조언한다.
“우정을 부부 관계의 기초로 삼아라. 내가 만나본 현명한 상담자들과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우정에 기반을 둔 결혼생활이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다고 한다. 우리는 단순히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워 친구를 선택한다. 진정한 친구라면 의견이 항상 일치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너무 재미없지 않겠는가. 친구라면 생각이 다르더라도 말없이 지지를 보낸다. 배우자를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로 만들어라. 서로에게 이끌렸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보고, 그 느낌들을 늘 생생하게 간직하라.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이야기하며 웃는 모습을 그려보라. 그리고 50회 결혼기념일에도 똑같은 모습일 거라고 상상해보라. 우정을 우선순위의 맨 윗자리에 둔다면 당신의 결혼생활은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끄떡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