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토)
아침 7시에 일어나 마을을 한바퀴 빙 돌았다.
아침 일찍부터 마을은 북적거리고, 사람들이 집 앞을 열심히 청소하고 있다. 내가 찾았던 대부분의 네팔 마을에서 항상 볼 수 있는 풍경이다.
9시쯤 버스를 타고 라뜨나로 향했다.
구불구불하고 험난한 산악길에서 네인도 따쉬 쬘링 곰파를 지나고, 저 아래에 바그마티 강이 흘러가는 모습이 보이고, 강 건너편 붕가마티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여정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지나치는 것이 아쉬웠다.
포장 도로로 접어들자 얼마 안가서 큰 연못, 작은 호수같은 따우다하를 지났다.
신화에 의하면 카트만두 밸리는 거대한 호수였고, 만주슈리가 마검을 호수에 내려쳐 그 물이 초바르 협곡을 통하여 빠져나갔다고 한다. 호수에 살던 뱀들의 왕 까르또닥을 비롯한 수많은 나가들이 만주슈리에 살 길을 호소하였고, 나가들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따우다하를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실제 지질학상으로도 원래 카트만두 밸리가 커다란 호수였음이 증명되고 있다. 약 10,000여년 전 호수의 둑이 터졌고, 카트만두 밸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초바르 협곡은 바다가 융기하였음을 증명하듯 석회암 지역으로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 있고, 그로 인한 환경 오염과 카트만두의 도시화로 인한 오수와 폐기물들로 많은 유적들이 훼손되었고, 극심한 악취 등 피해를 겪고 있는 지역이다.
바그마티와 비슈누마티에 맑은 물이 흐르고, 일상적인 흙먼지와 매연 등 공해가 없어진 카트만두를 기원해본다.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에 있는 까테심부를 찾았다.
까테심부는 스와얌부나트, 보우다, 차바힐 스투파와 함께 카트만두의 4대 스투파로 불린다.
멀리 인도에서부터 티벳까지 교역의 거점이었던 카트만두는 많은 대상(카라반)들이 찾았다. 대상들은 시간을 내서 스와얌부나트와 보우다를 순례하기도 하였으나, 시간이 없는 대상들을 위하여 카트만두 시내에 만들어진 스와얌부나트가 바로 까테심부라고 한다.
까테심부는 작은 스와얌부나트답게 본당 스투파도 훌륭할 뿐 아니라, 스투파 주변으로 많은 짜이티야를 비롯한 조형물들이 있다. 다만 본당의 감실은 스와얌부나트가 9개 있는 반면에, 동, 서, 남, 북에 각 하나, 정면에 하나 더해서 모두 5개가 있다.
본당 둘레에는 목각으로 정교하게 조형된 문이 있는데, 팔길상(팔보)가 새겨져 있다.
팔길상에는 법라, 법륜, 보산, 백개, 연화, 보병, 금어, 반장이 있다.
가장자리에는 Dharma Kirti Bihar와 Drubgon Jangchup Choeling Gompa가 있다.
까테심부에 한참을 앉아 볕을 쬐고 있다가, 스와얌부나트를 향해 걸었다.
까테심부에서 스와얌부나트까지는 실상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대략 30~4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거리이다.
가는 길에 티베탄 가게에서 뚝바로 점심을 해결했다.
비슈누마티의 다리를 건너 언덕 계단을 올라서자 스와얌부나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번엔 너무 어두운 새벽에 가서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본당 스투파 옆에 우뚝 솟아있는 아난타푸라와 프라타푸라 스투파가 호위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제대로 된 스와얌부나트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 같았다.
2015년 대지진으로 아난타푸라는 완전 붕괴되었고, 프라타푸라는 기단부만 남아있는 상황이었고, 2017년 1월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아난타푸라와 프라타푸라는 완전히 재건되었고, 다른 부분들도 상당히 정돈되어 있었다.
스와얌부나트를 다녀 와서 타멜을 한바퀴 빙 둘러보았다.
저녁을 먹고는 다시 덜발을 산책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12/30(일)
[짱구 나라얀]
8시 30분 박타푸르 행 버스에 올랐다.
9시 30분 쯤 박타푸르에 있는 데코차 짱구 나라얀 버스 정거장에서 하차해서, 짱구 나라얀 행 버스로 갈아탔다.
10시 30분경 가파른 능선을 타고 올라 짱구 나라얀에 도착했고,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비교적 한산했다.
짱구 나라얀 신전은 아주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은 카트만두 밸리에서 가장 오래된 힌두 신전 중의 하나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의 하나이다. 붓다 닐깐타, 고까르네슈와르 마하데브, 인드레슈와르 마하데브, 덕쉰 깔리와 함께 카트만두 밸리의 5대 힌두 신전이기도 하다.
2015년 대지진의 피해가 매우 심했다고 하는데, 경내는 많이 정돈된 모습이었다. 다만, 일부 전각들은 아직 복구가 되지 않았고, 무너진 잔해들이 한군데 모여있었다.
본당은 황동판을 붙여 조형을 한 2층 건물로, 토라나, 툰다르의 정교한 조각이 일품이다. 동쪽에는 그리핀, 남쪽에는 코끼리, 서쪽 정면에는 사자, 북쪽에는 날개달린 사자가 호위하고 있다. 정면 좌우의 석주 위에 비슈누의 상징인 법라와 짜끄라 바퀴가 올려져 있다. 본당 안에는 비슈누의 화신 나라얀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경내의 Chhinnamasta Mandir(본당 왼쪽 황동으로 만든 사원, 깔리의 네팔 이름), Mahadev Shiva Mandir, Lakshmi Narayan Mandir(남서쪽 코너, 비슈누의 부인), Kileshwor Mandir 등의 신당들 중 Kileshwor Mandir와 Chhinnamasta Mandir만 찾을 수 있었다.
몸 상태가 좋지않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 좀 더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길을 나섰다. 지나고 나니 참 아쉬웠다.
[바즈라요기니]
짱구 나라얀의 서쪽 문으로 나와 바즈라요기니 신전을 향해 걸었다.
길을 물어본 사람들마다 한결같이 maps. me가 지시하는 길과는 다른 길로 안내했고, 거리는 점점 더 늘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차가 다니는 길까지 안내한 것이었고, 당연히 차를 타고 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시간 정도를 걸어 찻길까지 나와서 길을 물으니, 동네 사람들을 불러모아 잠깐 이야기를 나누더니 그 중 한 사람에게 오토바이로 바즈라요기니까지 태워다 주고 오라고 한 것 같았다. 나는 극구 만류하였고, 오토바이를 타더라도 사례를 하고싶다고 했으나, 완강하게 거절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 사람의 오토바이 뒤에 얻어타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한 300m쯤 가자 시동이 꺼지드니, ‘finish, finish’를 연발하였다.
결국, 네팔 사람들의 따뜻한 호의만 가슴 속에 간직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막상 산쿠에서 바즈라요기니까지 올라가는 길은 오토바이로 올라가기에도 힘든 길이었다. 미리 중단한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한참을 비포장 흙길을 흙먼지 뒤집어쓰고 걸으니 산쿠 마을이 나오기 시작했다.
산쿠 마을에서 달밧으로 점심을 먹고, 마을을 지나 바즈라요기니로 향했다.
바즈라요기니는 우리나라 깊은 산중의 산사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산쿠 마을에서 바즈라요기니 가는 길은 산사 올라가는 길과 흡사했다.
산쿠 마을에서부터 1시간 정도 걸어 바즈라요기니에 도착했다.
바즈라요기니는 카트만두 밸리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불교 사찰이라고 한다. 티벳불교와 북방불교의 보살인 바즈라요기니(금강유가모)는 산쿠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해서 힌두교에서는 깔리나 두르가와 동일시한다고 한다.
바즈라요기니는 2015년 대지진의 피해가 극심하였고, 복구 공사가 진행중이지만,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산쿠 마을로 다시 내려오는 것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산쿠 마을은 예전 카트만두와 티벳 라싸를 잇는 대상로의 요충지로 14세기 전후에 번창했던 마을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런 유인이 사라진 상황에서 카트만두의 외곽 옛 영화가 조금씩 흐려지고 있는 조용한 마을로 남아 있다.
원래 계획은 산쿠에서 하루 숙박을 하고, 살리 나디 강변의 살리 나디 신전까지 둘러보려 하였으나,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고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당연히 라뜨나 버스파크로 갈 줄 알았던 버스는 보우다, 파슈빠티나트를 지나 링로드를 거쳐 빠탄 라간켈 아래의 삿도바또를 향하는 것이었다.
삿도바또 초입에 하차해서 라간켈까지 걸었다. 라간켈에서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6시가 넘어서야 순다라에 하차하였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큰 길 건너편 라뜨나 광장에선 연말이라고 그러는지 공연이 한참 진행중이었다.
카트만두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위하여 Small Star를 찾았다. 7시 30분쯤 찾은 Small Star는 하루 일과를 끝내고 술 한잔 하려고 모여든 카트만두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당연히 합석을 생각했었고, 마침 비어있는 1층 한 자리에 앉아 똥바와 뚝바를 먹었다.
12/31(월)
올해의 마지막 날이자 카트만두를 떠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타멜을 지나 DDC를 찾았다. 가는 길에 빌라 에베레스트 옆에 있는 Bhagwan Bahal을 들렀다. DDC에서는 선물용 야크치즈를 구입했다.
점심은 체트라파띠에 있는 조그만 네와르 식당에서 바라와 찌야를 먹었고, 공항가는 시간까지 남는 시간을 타멜에서 덜발까지 마냥 걷다가 까테심부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우연히 네팔과 인연을 맺게된 후로 이 곳은 내 마음의 한 공간을 차지해 버렸다. 마치 내가 모르는 오래전에 그 곳이 내 마음의 주인이었던 것처럼...
그 때로부터 얼마되지 않아 신화와 역사, 그리고 현재가 뒤섞여 공존하는 카트만두 밸리를 혼자서 마냥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짧은 기간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렸고, 일정의 압박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생활하는 공간이 따로 있고, 내 생활에서의 압박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는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아쉬움을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내 생활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첫댓글 짱구나라얀은 제가 본 신전 중 최고로 꼽고 싶은 곳 중 하나~ 지진 후 방문자가 대폭 감소했다지만 다시 활력을 되찾겠죠
샨큐는 철도 개통시 카트만두역의 유력한 후보지라죠 앞으로 카트만두 메트로의 중심이 되지않을까 싶네요
잔잔하고 부드러운 물결을 연상케 하는 카트만두 근교 방문기~ 정말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처럼 익사이팅하고, 아슬아슬하고, 시원한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관심있는 분들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하루나 이틀 혹은 사흘 카트만두에 머물게 된다면 한번 들러볼만한 곳을 소개하는 정도의 의미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 저기 발길을 닿을 수 있도록 많은 정보와 의지를 심어주신 티스코님에게 항상 감사드립니다~~^^
타멜에서 더르바르광장으로 가다가 있는 까테심부(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쉬움-여긴 2017년에도 방문) 생각도 나고,
짱구나라얀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여기에 있는 가루다를 타는 비슈누상이 네팔지폐 10루피 도안에 들어간 것으로 유명한데, 지진피해를 입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여기 올려주신 사진에는 보이질 않는군요).
안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본당 서편 정면(도바자가 내려와 있는 곳) 사자상 앞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찾질 못하였습니다. 손상된 유물들을 한 곳에 모아두었는지, 아니면 제가 꼼꼼하게 보질 못해 못 찾은 것인지 비문과 비슈누 상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대충 지나쳐서 놓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선지 짱구 나라얀 피해가 가장 심했었다고 하죠
지진 직후 자가용 가루다 타는 비슈누상은 괜찮었던 것으로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티스코님
이렇게 빨리 의문을 풀어주셨군요
짱구나라얀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