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안에서 흐르는 음악소리
2018103361 박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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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감정을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다. 악기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 내 몸에서 소리가나는 것만 같았다. ‘빰 빠바빰빰’라는 소리가 공연장을 울렸을 때 나에게 무척 감동이었다. 공연장에
있던 관객 모두가 귀 기울여 합주를 듣고 있다고 느낀 그 순간 이 때까지 연습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모든 공연을 끝내고 관객들이 박수를 친 그 순간이 나에게 최고의 순간이었다.
나름 교복도 입고, 명문이라고 부르는 우리 초등학교에서는 학생 대부분이 방과후 시간에
악기 하나씩 배우게 정해져 있었다. 그 때 난 악기에 ‘악’도 모르는 갓 초등학생이었고, 아무 악기나 선택해보자는 생각으로 직감이
이끄는 첼로를 선택하였다. 첼로 강의 첫 시간에 첼로 잡는법, 악보
보는 법, 활 쓰는 법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첼로
지탱을 못해 한번씩 떨어뜨리고, 활만 들고 있으면 잘못 잡았다며 지적을 받는 것은 일상, 악보를 보면 한번에 음을 못 찾아 틀린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첼로
강사님께서 지적을 했는데, 이를 고치려는 오기가 생겼다. 이를
고치기 위해 방과후실에서 2-3시간씩 연습하는 노력을 통해 첼로를 떨어뜨리는 일이 없어져가고 활 쓰는
법 때문에 지적을 받는 일이 줄었다. 많은
노력을 통해 ‘비행기’, ‘바흐 미뉴에트 1번’ 등을 연습함을 통해 나름 내공이 생기게 되었다. ‘드보르작의 위모레스크’라는 음악으로 작은 시 대회도 나가보고, 첼로를 켤 줄 안다는 소리를 들을 때쯤 관현악단 모집이 내 눈에 띄었다. 각종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국기의 대한 경례와 애국가를 연주하던 모습이 멋져보였던 나에게 매우 끌리는 모집이었고, 이
기회만 기다리고 있던 나는 바로 지원하였다.
처음 관현악단에 들어왔을 때 ‘아프리카 심포니’라는 곡을 연습하였다. 관현악단 한 4-50명이서 한 곡을 연주하는 것이라 내가 틀리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연습했다. 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모두가 개인적으로 방과후에 1-2시간은 연습하고, 매일 아침 9시 독서할 시간에 나와 합주부실로 집합하여 함께 노래를
맞추어 보았다. 매번 지휘자선생님께 각 파트마다 지적해주시고, 우리는
각 파트별로 서로 피드백하고 고치는 노력을 통해 꽤 만족스러운 합주가 되었다. 첫번째 무대인 학교 축제
때 ‘아프리카 심포니’라는 노래를 연주하였고, 이를 웅장하고 장엄하게 연주한 결과 매우 좋은 반응이 나올 수 있었다. 이에
욕심이 생긴 저희 관현악단은 ‘캐리비안 해적 OST’, ‘오페라의
유령’, ‘목포의 눈물’ 등 다양한 노래를 선정하여 연습하였다. 각 노래는 어려웠지만 매 방과후시간과, 아침 독서시간을 할애한 결과
나름 만족스러운 합주가 되었다. 꾸준히 연습하던 중에 호텔에서 축하공연을 해주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첫 출장공연이라 들뜬 상태로 있었고, 열심히 연습하였기 때문에 나름
자신있는 상태로 공연하러 갔다.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와
같이 간단한 국민의례를 마친 후 첫 순서로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노래를 연주하였다.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노래가 처음에 ‘빵’하고 터지는 깜짝 놀랄만한 노래였는데, 역시나 그 당시 사람들이 밥 먹다가 우리 노래를 듣고 깜짝 놀라는건 기본, 숟가락을
떨친 사람들까지 본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프리카 심포니’ 등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을 때 매우 뿌듯했고, 사람들이 밥먹다가도 우리의 합주를 들어 주었다는 것에 너무
감사했다.
언제 다른 기회가 없나 기다리던 중 마침내 우리 지역에서 가장 큰 공연장인 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평소 유명인사들이 우리 지역에 초청되면 항상 문화예술회관에서 공한하는 것을 보고 자란
나는 우리가 그 곳에서 공연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매우 설렜고, 기대되었다. 그렇게 큰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듣는 앞에서 연주하기
때문에 우리도 아침 독서시간에만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주말 밤까지 함께 합주연습을 통해 공연하게 되었다. 많은
노력을 한 후 그 날이 닥쳤을떄 사람들이 공연장 대부분을 채우고 있었고, 그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를
바라본다고 생각할 때 매우 긴장돼었다. 하지만 우리가 수없이도 연습했던 첫 곡이 시작되자마자 긴장이
풀리게 되고 연습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주 할 수 있게 되었다. 첫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고 박수가
나왔을 때 기분은 묘했지만 한 곡, 한 곡 끝날 때 마다 박수치고 마지막 앵콜 나왔을 때 처음으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드레날린이 내 몸속에 존재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지금까지 연습했던 힘들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하늘을 날아갈 거 같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후 간식을 먹었을 때 매우 후련했고, 편안했다. 이를 마지막 공연으로 한 후 우리는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중학교
생활을 해야하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관현악단을 그만 두게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생활은 입시를 위한 생활이었고, 공부, 잠, TV, 게임의
연속이었다. 위의 영광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자 중학교 축제에서 드럼연주를 해서 즐겁기는 하였지만, 오케스트라 했을 때처럼 내 몸안에서 피 끓는 감동을 느껴보지는 못했다. 고등학교
때는 물론 공부하느라 악기를 만져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대학교 로망이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이 내 로망이었고 지금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오케스트라 동아리인 KUKO에 가입하였다. 경희대학교에서 공연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느끼는 것, 피 끓는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