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陟金氏와 善山金氏 貫祖에 대한 硏究 및 文獻의 考察
-各種 文獻 考證을 中心으로-
白松 金 宰 弘 / 三陟金氏譜學硏究會硏究委員
A. 序論
한 씨족의 관조는 그 종족의 뿌리이다. 그 뿌리를 근원으로 한 관조의 혈통을 이어받은
계류를 잘 알도록 하기 위하여 선조들과 자신들의 행적 및 내력을 후손들에게 전할 수 있
는 제일 중요하고 소중한 기록이 족보인 것이다. 근래에 와서 남의 관조를 자기들의 시조인양 도용하여 족보를 날조하는 씨족, 각종 고증 문헌을 찾아 상계를 새로 정립하기도 하고
또한 찾지 못하여 애 태우고 있기도 하다. 삼척김씨는 신라 56대왕 경순대왕의 제8자이신 삼척군 휘 추의 후예로 독자이신 휘 위옹께서는 어사대부, 사농경, 상주국, 좌승상을 역임하시고 은청광록대부, 삼한벽상공신, 실직군으로 책봉된 다음 신라 경순대왕의 후예로서는 유일하게 실직군왕으로 녹봉되시어 삼척군(실직은 현 삼척,동해,태백시임)일대를 식읍으로 하사 받으시었다.
그러나 최근인 서기 1986년에 와서 선산김씨(漢忠系) 종중에서는 각종 문헌에 있는 고증을 무시하고 삼척김씨 시조이신 삼척군 휘 추를 시조로 하여 삼척김씨의 큰집이라고 한 새로운 족보를 근거 없이 날조하여 각계에 배포함으로서 혼란과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본 고찰은 서기 2000년 7월 8일 경순대왕계 모 족보편찬위원회로부터 선산김씨 측에서 자신들 및 희천, 원주김씨 족보사본을 가지고 와서 수단할 때 경순대왕 제8자 휘 추공을 자기네들의 시조로 하여 달라고 하여 경순대왕 후예 각관 족보를 확인하여 보았으나 휘 추는 삼척김씨의 시조가 분명한데 그 진위를 밝혀달라고 요청하므로 역대 여러 고증 문헌을 통하여 상고하여 본 결과 선산김씨 들이 임의로 허위날조 한 것임을 알았다. 이러한 왜곡하고 있는 사실이 더 알려지기 전에 신라대보공 후예의 각종회와각종 보학도서 출판사 및 선산김씨 측에 명확히 밝히고 시정을 요구하려는 의도에서 작성한다.
각종 고전 문헌상에 선산김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파가 있다.
1. 선산김씨(한충계) : 신라 38대 원성왕 의 9세손 김 한충
2. 선산김씨(선궁계) : 신라 46대 문성왕 의 8세손 김 선궁
B. 삼척김씨 족보(三陟金氏 族譜)의 기록을 중심으로
1. 삼척김씨 세보 총(三陟金氏 世譜 總)-서기 1904년 삼척김씨 대종회 발행.
1) 경순대왕 왕자 서차(序次)-경순대왕 제8자 추 삼척김씨.
2) 김씨 동원록(金氏 同原錄)-가) 삼척김씨 삼척군 휘 추
나) 선산김씨 좌복야 한충(漢忠) 원성왕 후
3) 선원세계 경순왕 제8자 추(錘) 삼척군(三陟君)일운 일선군(一善君)
2. 선원세계 세보(선원세계 세보) 제1-서기 1921년 삼척김씨 대종회 발행
1) 경순대왕 왕자 서차 - 경순왕 제8자 추(錘) 삼척김씨
2) 각종 분관록 -가) 삼척김씨 삼척군 추(錘)후
나) 선산김씨 좌복야 한충(漢忠) 원성왕 후
C. 선산김씨(한충계)의 족보 기록을 중심으로
1. 선산김씨 족보 상권(善山金氏 族譜 上卷)-서기 1939년(소화14년)경상북도 선 산김씨 대종회 발행
1) 시조 1세 김 기(김 기)
2) 족보서문 : 서김씨족보후-김씨본선산 - 중략 - 원조휘한충이등극사부경
우풍재불반자손이등주일위기진
(원조휘한충이등극사부경우풍재불반자손이등주일위기진)-중략 - 왕부이상 9 대독자 성족 불번(왕부이상 9대독자 성족 불번)
우 문간 공 구암 소저(우 문간 공 구암 소저)
* 문간공 구암의 이름은 김 취문이다. 시조 김 기의 5세손으로 1509년에 출 생하여 1570년에 사망, 관직은 강원도관찰사와 성균관 대사헌을 역임, 선산김씨가 자랑하는 고대 유명인물로소 이후 후손들이 족보를 창보 할 때 김 한충을 시조로 하라는 유훈이다.
3) 단천족보 고전 의(단천족보 고전 疑)
* 이 기록은 경북 선산 남종파에서 족보를 편찬할 때 함경북도 북종파에서 신라경순대왕의 제8자 김 錘의 후손이라고 한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하여 의심 疑자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
2. 선산김씨 분종파보-서기 1929년(대정15년)함경북도 북종파 종친회 발행.
1) 시조 1세 金 成富
2) 선산김씨 세보 분파 직계 역대기
계류를 대보 공 29세손 경순대왕 제 6자 金 錘의 후손이라고 기록하여 놓 고도 위 3항 1호의 시조 金 起의 삼촌인 金 成富를 시조 1세 로 하여 족보를 발행하였다.
3. 선산김씨 대동보 권지1.-서기 1986년도 경상북도 선산김씨 대동종친회 발행.
1) 선원세계 : 시조 1세 김 추(金 錘)
2) 김씨 분관록 : 선산김씨 시조 추(錘) 경순왕 제8자
족보서문 8쪽에 기 화의군은 고려 말 정순대부 광주목사(광주목사)의 벼슬을 내 치시고 혈연도 버리신 채 선산군 옥성면 하송에 은거하시어 입 향 시조가 되시니 - 이하생략 -
족보서문 9족 금번 대동보 편찬에 즈음하여 4개 파(成元 : 起의 父, 成富, 成龍, 成呂 4형제를 칭함)자손이 다함께 참여하기를 바라 백방으로 광고 혹은 수소문하여 종인이 발견되었으나 선대가 미상이란 이유로 두 개 파는 불참하였다.
동 족보권지 5. 1037쪽 판서공파 세보 편찬후기에 우리 선산김씨가 선산을 본관으로 삼은 것은 시조이신 일선 군 諱 錘께서 일선 군에 책봉되었으므로 그 곳이 훗날 선산으로 지명이 변경되었기에 그 후손이 선산을 본관으로 하였음이 확실한데 그 다음 어느 조상께서 처음 선산에 터 잡아 살며 입적하였는지 알 수 없으며 또한 어느 조상께서 처음 개성에 살면서 성가하였는지도 알 수 없고 대저 화의 공께서 어쩔 수 없이 길주에 입북하신 이후 그 자손이 단지 선산에서 이곳(길주)에 온 줄로만 알고 따라서 선산이 본향이라고 여겼는데 이제 비로소 장적(帳籍)을 근거로 살펴본즉 개성에서 이곳길주로 왔으니 사람으로서 근본을 되돌아 처음을 찾는 뜻이 끝내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고로 이에 감히 거듭거듭 의문을 제기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수차 족보를 간행 했을 뿐 남북동종이 합 보할 뜻은 간절했으면서도 여러 사정으로 끝내 대동보를 이루지 못하고 지나는 동안 광복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중략--서기 1898년 발간한 무술보가 경북 의성군 안계면 용기 동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全 會長 익상(益商) 씨가 단걸음으로 달려가 실물을 확인하였으나 소장자(김 ?용)씨가 쉽게 내놓지 않아 빈손으로 귀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익년 다행히도 그 분이 심적 변화를 일으켜 두 아들로 하여금 가보로 깊이 간직하고 있던 무술 보를 가지고 상경하였기에 북청출신 형목 종친의 도움으로 복사본을 만들어 여러 종인에 배포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그간 迀?曲折을 겪어오던 대동보 문제도 원만한 타결을 보아 과거 300여년 전부터 시도해오던 선산김씨 대동보가 드디어 이 세상에 나오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하생략--
의문점 : 한 종족의 족보는 여러 종인이 소장하는 것인데 왜 한사람만 소장하였으며 족보 수보에 필요하다는데 응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상계의 흐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스스로 자인하였다. 그러므로 북종 파에서 주장하는 상계를 본향인 선산군 남종 파에서는 지금 것 믿지 않았던 것이다.
* 동참하지 아니한 2개 파는 자신들이 김 추(錘)의 후손이 아니기 때문에 대동보 간행에 불참하는 불행을 자초한 것이다.
선산김씨는 경상도지방의 남종파와 함경도지방의 북종파가 숙질지간에 시조를 달리하여 오다가 창관 이래 족보다운 족보인 대동보를 처음 간행하면서 각종 고전고증문헌에 선산김씨 시조는 원성왕 9세손 김 한충이라고 기록되어 전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계가 전혀 다른 경순대왕 제8자 김 추(를 시조 1세로 허위 날조한 족보를 간행하면서 족보 서문에 선산 입 향 시조라고 밝힌 김 起는 1세에서 18세로, 북종 파 시조 김 성부는 1세에서 17세로 한 것은 자신들의 조상에 대한 불효일뿐더러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처사라 할 것이다.(입향 시조란 곧 그 씨족의 관조이다.)
4. 선산김씨 족보-서기 1869년 경상북도 선산김씨 대종회 발행
1) 시조 1세 김 기
2) 족보서문 : 선산김씨 족보서문(선산김씨 족보서문)
김씨 본선산(김씨 본선산)-중략-원조휘한충이등극사부경우풍재불반자손이등주일위기진(원조휘한충이등극사부경우풍재불반자손이등주일위기진)-중략-왕부이상 9대독자 성족불번
우구암선생이 ?(이부분은 제가 한문이 어두워 생략함)-이하생략-
* 구암 김 취문이 대사헌이란 관직에 있었으므로 120여 년 전인 1452년에 광포된 고려사 열전 김 한충에 대한 기록을 모르고 자신의 시조문제를 ??히 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다만 후손들이 고려사 때문에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뿐이다.
5. 선산김씨 세보(선산김씨 세보)권1 한충계-서기 1898년 함경북도 북종파 종친회 발행(서기 1988년 중앙도서관 사본 납본)
1) 김씨 동원록
가) 선산 내 신라종성 왈 여조공신순충공선궁지후고룡엄수점필재종직시야우경순자병부령일선군추씨8대손병부상서일선부원군선공지후
나) 신라종성운연미번기시적지인이서사래예찬집이명암이후지자
新羅宗姓云然未番其始籍之人耳庶使來裔撰輯耳明暗以侯知者
* 위와 같은 기록은 김씨동원록 및 김씨분관록이나 또는 각관 족보에서 찾아볼 수 없다. 허위로 날조한 것은 먼 훗날 자신들의 시조를 버리고 남의 시조를 도용하기 위한 계획적 의도라 할 것이다. 그리고 경순 자 추씨라고 기록해 놓은 것은 자손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불경이다. 그리고 선공지후라고 자신들이 기록했으니 선공을 시조라고 해야 옳다.
2) 수단(수단) 자손 록에는 총 314명중 대보공 휘 김알지를 1세로 하여 경순대왕 제4자 휘 은열 후손인 48세 정가지 271명이 (서 30명 포함)(86.3%)경순대왕 제8자 휘 추의 후손이라 하여 대보 공 47세 기(선산김씨 선산군 남종 파 시조임)까지 43명(서는 없음)(13.7%) 위와 같은 수단인원을 보면 경주김씨 족보이지 선산김씨 족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족보편찬 관행상 있어야 할 다음 세대로 이월하는 장수 기록이나 선계로 연결하는 장수표시가 없다. 과연 어느 씨족의 족보에 자신들 선조들의 인원보다 타 씨족의 인원이 더 많이 수록된 족보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족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산김씨 측에서는 이 족보와 신라김씨 2000년사만이 유일한 고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득 관의 본향인 경북 선산 남종 파에서는 휘 김 추의 후손이란 기록을 부인하고 함경북도 북종 파에서만 휘 김 추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이 족보 미구에 본보는 고증할 수 없다 라 고 기록되어있다. 누가 보아도 그 종족의 족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6. 각종 족보의 기록을 중심으로
1) 선산김씨 족보(선산김씨 족보)(선궁계)
서기 1690년 (청강 29 경오년)선산김씨 대종회 발행-김 원노의 서 김 기
화의군 경주인 추밀사 한충 후 후손 개본 선산(후손 개본 선산)
2) 선산김씨 대동보 상(선산김씨 대동보 상)(선궁계)
서기 1739년 (영조 15년 을미년)선산김씨 대종회 발행-김 원노의 서 김 기 화의군 경주인 추밀사 한충 후 후손 개본 선산(후손 개본 선산)
3) 선산김씨 족보(선산김씨 족보)(선궁계)
서기 1918년 선산김씨 대종회 발행-김 원노의 서 김 기: 경주인 화의군 남 가명 군수 손 유찬()유찬부사 현손 취성 호 진락 당 취문 호 구암 구유원정
4) 선산김씨 백암선생 파보(선산김씨 백암선생 파보)(선궁계)
서기 1981년 선산김씨 백암 파 종회 발행-김 원노의 서 김 기: 경주인 화의군 남 가명 군수 손 유찬()유찬부사 5대손 취성 호 진락당 취문 호 구암 구유원정
5) 영산김씨 족보(영산김씨 족보) 원(元)-서기 1760년(숭정 후 3 경신)영산김씨 대종회발행 선원세계-경순대왕 자 추(추) 삼척군(삼척군) 삼척김씨
6) 경주김씨 족보(경주김씨 족보)권지1-서기 1784년(정조8년) 경주김씨 종친회발행
1) 김씨 분관 록-가) 삼척김씨: 삼척군(三陟君) 김 추(김 추) 지후
나) 선산김씨 유이일칙 태조공신 문하시랑 김 선궁지후
일칙 좌복야 김 한충 원성왕 예 지손
2) 원유록-경순대왕 자 추(추) 삼척군(삼척군) 이후 삼척김씨
* 선산김씨는 경순대왕의 후손이란 기록이 없다.
7) 경주김씨 족보(경주김씨 족보)-서기 1926년 (대정 15년) 숭혜전(숭혜전) 발행
1)선산김씨 : 좌복야 김 한충(좌복야 김 한충)후
2)삼척김씨 : 삼척군 김 추(삼척군 김 추)
* 숭헤전이란? : 미추왕, 문무왕, 경순왕의 위패를 모신 전. 경주시 황남동 소재.
8) 강릉김씨 평의 공 파보(강릉김씨 평의 공 파보)권지 1 -서기 2003년 강릉김씨 평의 공 파보 편찬위원회 발행-上系淵源譜: 敬順王 제8자 錘 三陟君 三陟金氏
7. 각종 고증문헌의 기록을 중심으로
1)조선시대 사찬읍지(조선시대 사찬읍지)21. 규장각도서 - 성종 7년(서기 1476년) 기록에서 인조 8년(서기 1630년)에 이 준이 인물 지를 보완하였다고 하는 일선 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김 기(김 기) 한충지후사려계관지정순대부광주목사선산김성일야위김원노(선궁계)지서 처봉화의군부인
2) 한국근대도지(한국근대도지) 10 - 교남지(矯南誌) 선산군편에 김 한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김 한충(김한충): 경주인 신라 원성왕 9세손 부 대광 유염 분적 본군 등제관 좌복야 시 원평 * 위 경주인은 경주김씨를 말함.
3) 일선지(일선지) - 1983년 경북 구미시 문화원 발행. 김 기(김 기): 한충지후 사려계관지정순대부광주목사선산김성일야위김원노(선궁계)지서 처봉화의군부인
4) 일선지(일선지) - 서기 1998년 경북 구미시 문화원 발행. 김 기(김 기): 한충의 후손이다. 고려 말에 벼슬하여 관직이 정순대부 광주목사에 이르렀다. 선산김씨의 하나이다.
5) 구 암 집(구암집) 규장각 도서 - 서기 1789년(성상 13년 을유)발행. 성균관 대사성, 금성 정 범조() 근서. 서족보후(서족보후) 전략,원조고휘한충이등극사유주로부경우풍재불반자손이등주일위기진운
(원조고휘한충이등극사유주로부경우풍재불반자손이등주일위기진운)이하생략.
6) 구암집(구암집) 규장각 도서 - 서기 1789년(숭정3기유)발행 - 청풍 김 종수(김 종수)근서. 전 생략, 원조고휘한충이등극사운운.....(원조고휘한충이등극사운운) 위 3항 1절 2호와 7항의 선산김씨 족보서문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전해오고 있다.
7) 김 씨 소원 록(김씨소원록) 규장각 도서 - 서기 1654년(순치11년) 우부승지 남 선. 신라 경순대왕의 8자 김 추(김 추)삼척군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선산김씨는 경순대왕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없다.
8) 김 씨 분관 록(김씨분관록)
1) 삼척김씨: 경순왕 8자 삼척군 추 후
2) 선산김씨: 원성왕 후 대광 유염 좌복야 한충(한충)예
9) 신라 삼성 연원 보(신라삼성연원보) - 서기 1632년 발행.
1) 신라김씨 경순왕 공자 실기 - 삼척군 휘 추
2) 황남묘 전신도 비명(황남묘 전신도 비명) - 추 삼척군
3) 동원김씨 분관록 - 삼척김씨 錘 후(後) 선산김씨 한충(漢忠)후(後)
4) 계림김씨 연원보 - 경순왕 자 추 삼척군 삼척김씨.
추(추) 삼척군(삼척군)삼척김씨(삼척김씨)
10) 신라선보(신라선보) - 서기 1922년(대정11년) 발행
김씨분파록(김씨분파록) 삼척김씨 삼척군 추 경순왕 제8자.
선산김씨 원성왕 예 좌복야 한충(한충)
11) 계림김씨유적(계림김씨유적)권지 1 - 서기 1585년(만력 13 을유년)발행.
서문에---훈업특시복록무강이관향모원유일기본무이녀경주, 나주, 의성, 강릉, 언양, 삼척, 울산, 안동, 청풍, 수원, 지김계위벌경순대왕지후예---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선산김씨는 경순대왕의 자란 기록이 없다.
12) 신라세보유적(신라세보유적) - 서기 1932년(소화 7년 신라김씨 대동 종보소 신라김씨 대동종보소)발행-경순왕 8자 김 추(추) 삼척군(삼척군)
13) 조선씨족통보(조선씨족통보) - 서기 1924년 (대정13년) 발행
선산김씨 원성왕 9세손 김 한충(김 한충)
14) 신라김씨 선원세보(신라김씨선원세보) - 서기 1934년(소화 9년) 발행
경순왕 8자 김 추(김 추) 삼척군(삼척군)
15) 김씨 본원 세계 보(김씨본원 세계보) - 서기 1921년 (대정 10년) 발행
1) 분관록 - 삼척김씨: 경순왕 제8자 삼척군 김 추(삼척군 김 추)
선산김씨: 원성왕 예 좌복야 김 한충(김 한충)
2) 선원세계 - 경순왕 제8자 추 삼척군(추 삼척군)
16) 숭혜전지(숭혜전지) - 서기 1987년 숭혜전 발행(역자: 국사편찬위원회)
1) 신라김씨 분관록-선산김씨 ① 문하시랑 선궁(선궁) 후
② 좌복야 한충 (한충)후
삼척김씨 삼척군 추 후
2) 신라선원세계 (신라선원세계) - 경순대왕 제8자 추 봉 삼척군 후 위 삼척김씨
선산김씨는 기록이 없음.
17) 계림김씨 선원세보 (계림김씨 선원세보)권1 - 서기 1925년 (대정 14년) 발행
선원세계 : 경순왕 제 8자 추 봉 삼척군
18) 한국고사 대전(한국고사 대전) - 서기 1969년 회상사 발행
선산김씨 김 한충()좌복야 원평 공 본래 경주인으로 신라 원성왕의 9세손인 父는 삼중대광 유염이니 선산에 분적 함.
19) 신라경순대왕 년 보(신라경순대왕 년보) - 경기도 연천군에서 경순대왕 陵의 사적을 해설한 책 - 신라 김 부(김 부) 대왕 계보-추 서기 946년 丙午 生 삼척김씨 시조
20) 연성 성보(연성 성보) - 서기 1984년 연성성보수보편찬위원회 발행.
신라선원세계-경순왕 자 추(錘) 삼척김씨 시조
21) 계림 지(鷄林誌) - 서기 2004년 사단법인 경주김씨 계보연구회 발행
1) 원성왕 후 분관 계보도(원성왕 후 분관 계보도)-선산김씨 시조 원성왕 9세손 한충(한충)
2) 삼척군 후예 분관 계보도-삼척김씨 시조 삼척군 추(시조 삼척군 추)
22) 계보연구(계보연구)지 (춘, 하계 합본) - 서기 2004년 경주김씨 대 종친회 발행
명문거족 소개(명문거족 소개)삼척김씨 편 - 김 추 삼척군 삼척김씨 시조. 선산김씨는 경순왕 후손이 아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23) 경주김씨 대 종친회 50년사(경주김씨 대 종친회 50년사) - 서기 2000년 경주김씨 대 종친회 발행. 경순왕 제8자 추 삼척군 삼척김씨
24) 신라김씨 2000년(신라김씨 2000년) - 서기 2000년 신라김씨 2000년 편찬위원회 발행
선산김씨: 각종 고증문헌을 중심으로 기록을 살펴보면 선산김씨 시조가 한충이란 기록이 여러 곳에 나온다. 선산김씨 추계라고 하는 후손들은 과연 시조가 누구인지에 관해 현명하고 분별력 있는 해석을 해야 될 것 이라고 본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25) 한국성씨 총감(한국성씨 총감) - 서기 2005년 한국성씨 총 연합회 발행.
1) 삼척김씨 연원 - 삼척김씨는 신라대보공 김알지의 후예이다. 관 시조 추는 신 라 56대 경순대왕의 제8자이며 고려조 문하시중을 역임하고 삼척군으로 봉하여 졌다.
위패는 보본단내 숭모 사에 봉안되어 있으며 외아들 위옹은 어사대부 검교 사농경 을 역임하고 은청광록대부 삼한벽상공신으로 실직 군에 봉하여졌다가 신라왕실 경순대왕의 후예로서 유일하게 군왕(실직: 삼척의 고명)으로 책 봉 되면서 식읍으로 하사받은 삼척군 일대를 통할하였다.
2) 선산김씨의 연원과 유래 - 선산김씨는 신라왕실의 후손으로 경순대왕의 제8자이며 고려태조의 외손자인 상서령 일선 군 김 추를 시조로 하고 관향을 선산으로 삼았다. 후대에 온양, 희천, 진주, 원주, 영광으로 분관 되었다.
위와 같은 선산김씨의 기록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가) 문서번호 제10호 2004. 10. 20. 총감간행에 대한 협조요청 정식문서를 삼척김씨 대종회 장 명의로 발송하였고.
나) 문서번호 제0411호 2004. 10. 20. 분쟁조정기일에 대한 안내란, 분쟁 조 정위원장 명의의 문서를 받고 2004. 11. 18. 13시 30분에 조정 회에 참석하여 선산김씨 및 삼척김씨 시조에 대한 각종 고증문헌의 고찰이란 문서와 같이 31종의 고증자료를 제출하였고 삼척김씨 회장 외 4명이 참석.
다) 문서번호 제13호 2004. 12. 5. 각종문헌의 고찰에 대한 추신 문 제출.
라) 문서번호 제4호 2005. 1. 3. 한국 성씨총감에 기록하는 선산김씨 족보 (1898년)무술 보 고찰의 제2차 추신 문 제출.
마) 문서번호 제4호 2005. 1. 6. 한국 성씨총감에 기록하는 선산김씨 原稿 하 단에 대한반론 문서제출.
바)
사)
26) 영광김씨 매몰파보(영광김씨 매몰파보) - 서기 1998년 영광김씨 매몰 파 종친회 발행. 족보 18족 보간 사에 신라김씨 2000년사 편저자 김 헌범 씨와 범 신라 김씨 종무원 사무총장 김 용모 씨 선산김씨 종친회장 김 교식 씨와 원주김씨종친회 회장 김 장성 씨와 회동하여 석공의 초휘가 후공이며 선공(선산김씨)과 익공과 거공(원주시조)과 실공과 석공과 치공이 주의 이며 형제임을 확인하였다. 이 족보 간행 전까지는 상계를 몰라 경순대왕 제4자 대안 군 휘 은설 공의 3세손인 휘 심언(일면경언)을 시조로 하는 영광김씨와 합보를 하고 있다가 신라 김씨 2000년사에서 고증을 하였다고 선산김씨와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8. 신라김씨 2000년사의 문제점 - 선산김씨 영광김씨 등에서 신라김씨 2000년사에서 고증하였다고 하니 그 실체를 밝힌다.
1) 신라 범 김씨 대종 원 대종 보(현 신라김씨 연합대종원의 전신)서기 1981년6월 발행. 동보 11쪽 임시총회 의사록에 보면 김모씨 : 신라김씨 2000년사를 보면 정말 한심합니다. 오식 투성이의 내용도 없는 模倣도 잘못한 기록을 가지고 우리 종인들을 속여가면서 강매하거나 타성에도 파는 것 같은데 아무리돈이 중해도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팔지 못할 것이다.
김 모 씨 : 2000년사가 잘못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입니다.- 이하생략 -
2) 신라 범 김씨 대종 원 대종 보 서기 1984년 1월 발행. 동보 10쪽.
가) 신라김씨(동원이성) 연합대종회 년 표 - 서기 1975년 11월 26일 서울역사2층 특실에서 김영인 김 웅각 씨와 경주인 김 헌범(신라김씨 2000년사 편저자)씨의 발의로 칭 신라김씨 연합대종회 회의를 개최하고 위원장에 서흥인김 인득 씨를 부위원장에 선산인 김 교식, 수성인 최 기덕을 선출하다.
나) 동보 15쪽 : 청진동에서 김 헌범(대종 원 사무총장 부총재를 역임한 선산고등학교 교사출신)씨 개인 명의로 발행한 소위 신라김씨 2000년사는 그 내용에 있어서 수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오기로 인하여 각 종중에서 판매 중지를 요청한바 있는데 근자에 와서 우리 종무원에서 발행한 2000년사라고 속여가면서 강매하고 다닌다고 하니 여러 종인께서는 그들의 수법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 이하생략 - 이러한 신라김씨 2000년사를 신라 범 김씨 대종 원 전각관 종회에서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책자를 기준하여 성씨의 고향, 족보대전, 한국성보대전, 한국인의 족보, 성씨보감, 한국성씨 보감, 김씨 통사, 신라김씨 왕손사적 보감 등등이 발행되어 우리 신라김씨 각관 계보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9. 선산김씨 대동종친회에 시조 고증문헌 확인 요청 건
1) 2000년 8월부터 선산김씨 대종회 장에게 경순대왕 제8자 삼척군 휘 추를 선산김씨 시조라고 하는 고증이 있느냐고 전화로 문의 하였더니 많은 문헌을 소장하고 있으니 언제라도 제시하여 주겠다고 하여 서기 2000년 9월 22일 삼척김씨 회장을 비롯한 종인 8명이 대구 선산김씨 대종회 사무실을 방문하여 선산김씨 회장 外 宗人 7명 도합 16명이 회동한 자리에서 그 많다던 고증 문헌은 없고 금속활자로 된 서기 1600년대에 발행하였다는 A4용지 크기의 족보1권과 신라김씨 2000년사만 제시하면서 이것이 유일한 고증이라고 하여 족보는 시대적으로 목판인쇄가 아닌 금속활자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하자 동의 하였고 신라김씨 2000년사는 귀 선산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잇던 김 헌범이 편저한 책자이니 믿을 수 없고, 상호간 나의 조상을 조상이 아니라고 하여도 불효요, 남의 조상을 나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도 큰 불효이니 조상의 명의를 걸고 고증을 찾을 터이니 다시 연락을 하자고 하면서 과거 족보를 발행할 때 북종 파와 3,4년 싸웠는데 다시 기를 시조로 하여야 되겠다, 라고 하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하였다.
2) 그 후 아무런 연락이 없다 2000년 10월 21일 1차 서신을 발송하였으나 회신이 없어 다시 2000년 11월 15일 2차 촉구서신이 반송되자 2000년 11월 23일 3차 서신발송하고 전화로 촉구하였다. 2000년 12월 1일자 선산김씨 대동종친회 회장의 서신을 받고 2000년 12월 21일자로 26종의 고증문헌을 첨부하여 답신을 하였으나 응답이 없다가 2001년 2월 28일자로 휘 추공의 3자 중 2자인 삼척의 휘 위옹을 장자로 하는 데는 이의치 않겠다는 서신을 보내와 이에 불응하였다.
3) 서기 2002년 10월 18일 신라김씨 연합대종원의 주선으로 선산김씨 회장과 임원 1명, 삼척김씨 측에서는 회장 외 임원3명, 대종 원 상임부총재 도합 7명이 합석한 자리에 선산김씨 측에서 고증을 제시치 못하면서 휘 천을 차자로 하여주면 좋겠다고 하여 선산김씨는 원성왕계지 경순대왕계가 아닌데 동의 할 수 없다고 하자 대종원 상임 부총재는 선산김씨 회장에게 경순대왕계가 아님을 인정하느냐고 반문하자 그렇다고 확실한 답을 한 사실이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선산김씨 측에 12종의 고증자료를 전하면서 검토하여 보시고 반증자료를 찾으면 언제든지 상호 검토하자고 제의 하였으나 지금껏 아무런 답을 주지 않고 있다.
4) 선산김씨 회장의 2000년 12월 1일 서신 내용 중에 판서 공(성부)은 태조 개국당시 전의로서 개국공신이며 개경에 살았는데 이 태조가 함흥으로 이어 시 호종하였다가 태종(방원)에게 해를 당할까봐 염려하여 단천에서 정주하게 되었다. 변란 중에도 족보를 지참한 종인이 몇 사람 있어(북종 파 보간 사에는 경북의성에 사는 단 한사람이다.) 대조해 보니 족보 머리에 기재된 사실과 똑 같았으며 입 향조 화의군(기) 까지만 등재되어 있었다. 북종 파에서 합보를 하자고 제의하여 왔으나 일차로 원로종친께서 거절했었다. 남쪽에 오면 종친이 많이 산다고 들어왔고 또 심적으로라도 타관이니 의탁하려다가 허탈감에 빠져 눈물을 흘리며 호소해 왔다. 갑론을박 근20년을 끌어오다가 종친회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니 청장년층 종친의 찬성으로 겨우 합의가 이루어져 혜 어 진지 육백여년만인 1974년 북종파와 같이 대종회를 조직하여 종사를 논의하게 되었으며 선산 입향조 휘 기를 1세 로 하였던 것을 일선 군 휘 추를 관조로 하게 되었다. 1977년 신라김씨 2000년사를 편저할 때 참여하였던 단천계보 그대로를 인정받게 되었으며 1983년에 대동보 간행을 결의하여 병인 보(1986년)에 북종 파와 같이 합보하게 되었다.
의문점 : 첫째 단천계보대로 인정을 받았다고 하였는데 선산김씨의 유일한 고증인 1898년 무술 보에 휘 성부를 개국공신 호조판서라고 기록되어있다. 태조대왕실록이나 국조 개국공신록에는 1등에 15員, 2등에는 9員, 3등에는 15員중 명단에는 없다.
그리고 전의로서 태조를 호종하는데 함흥에서 호조판서가 과연 될 수 있는지?
경태7(1456년) 5월 29일 우승지 한명회 경봉 원종공신녹권에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
둘째 : 태종(방원)에게 해를 당할까 염려하였다고 하는 것은 혹시 태조대왕실록 권제15의 10항 태조 7년 1398년 11월 26일(무술) 김 성부에 대한 기록 때문이 아닌가 한다.
셋째 : 원로 종친께서는 단천계보를 보고 믿지 못하여 반대한 것을 청장년 종친은 똑같은 내용을 보고 왜 찬성하였는지?
넷째 : 신라김씨 2000년사는 믿을 수 없다고 하는데 간행당시 선산김씨는 시조문제로 많은 논쟁이 있을 때 김 교식 회장(대종원부총재)이 참여하여 인정받았다고 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의문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10) 신라김씨 연합 대종 원 선산김씨 시조 기록 확인 요청 건
1) 문서번호 제5호 2000. 10. 20. 신라김씨 연합대종원에 선산김씨 시조 기록 확인 및 시정협조요청 문서와 각종 고증문헌 32건 제출.
2) 문서번호 제12-1호 2000년 12월 5일 신라김씨 연합대종원에 신라김씨 2000년사 및 신라김씨 왕손 사적보감 내용시정 및 판매금지 요청에 대한 촉구문서발송.
3) 문서번호 제6호 2002. 7. 15 신라김씨 연합대종원에 신라김씨 2000년사 및 신라김씨 왕손사적보감 내용시정 및 판매금지요청에 대한 문서발송.
4) 문서번호 제4호 2003. 6. 16. 신라김씨 연합대종원에 신라김씨 2000년사 및 신라김씨 왕손사적보감 내용시정에 대한 재촉구 문서발송.
5) 문서번호 제2003-22호 2003. 11. 17 선산김씨 관 시조 유래 고증자료에 관하여 신라김씨 연합대종원의 문서접수.
가) 신라김씨 2000년사 서적은 본원과 무관하다는 내용.
나) 신라김씨 왕손 사적보감에 대하여는 본원에서 감수 미단 상태인 것을 저작권 자가 일부 출간한 사실이 있어 그 당시 즉시 출간을 금지 조치한 것으로 알 고 있습니다. 라고 하는 회신, 그러나 본 사적보감은 선산김씨 회장 김상조 가 대종 원 총재 재임 시 1998년에 발행하면서 선산김씨 시조 일선 군 김 추 제단 비 사진을 계 재 하였고 이 책은 지금도 한얼보학연구소에서 판매 하고 있다.
다) 선산김씨 대동종친회에서 보내온 선산(일선)김씨 세보 정묘 보를 보내옴.
6) 문서번호 제10호 2003. 12. 2. 선산(일선)김씨 대종회에 정묘 보 발행 사실 확인요청서 발송 족보 및 족보 분? 說明書 添附
7) 문서번호 제2호 2004. 2. 3. 신라김씨 연합대종원에 선산김씨 측에서 제출한 족보진위 확인요청문서에 삼자회동(대종 원, 선산, 삼척)을 하자고 제의 하였다.
8) 문서번호 제4호 2004. 3. 9. 신라김씨 연합 대종 원으로 선산(일선)김씨 선궁 계는 21세손까지 531명 중 사위 157명 포함 42.823%가되고 선산김씨 한충계는 선궁계보다 13세가 더 많은 34세까지 709명중 사위 41명 포함 57.177%가 된다.
내용을 세밀히 검토해본결과 짜깁기 식 날조한 것으로 판단되어 진위확인요청을 한 것이다.
9) 문서번호 제2004-13 2004. 3. 19. 신라김씨 연합 대종 원 회신문서, 선산(일선)김씨 세보진위확인 재요청으로 양 선산김씨 종친회에 확인 요청하였다는 내용.
10) 문서번호 제2004-04 2004. 5. 21. 선산(일선)김씨 대종회로부터 족보 고증확인 요청의 회신 문서 접수.
10. 結論
이상의 각종 문헌에 대한 검토를 종합하면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첫째, 선산(한충계)김씨는 원성왕의 후예 휘 한충이지 경순왕의 후예가 아니다.
둘째, 경순왕의 제8자 삼척군 휘 김 추는 삼척김씨의 시조이다. 따라서 선산김씨가 휘 김 추를 시조로 하려는 시도는 사실을 왜곡하고 삼척김씨의 명예를 훼손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선산(한충계)김씨가 창보 하기 전 자기네들의 선조인 구암 김취문이 남긴 유훈이 있음에도 후손들이 그를 믿지 않고 타 관조를 도용하였다는 것은 유훈을 남긴 자신들의 선조에 대한 불경임은 물론, 관조를 도용당한 경순대왕 계와 삼척김씨 종중의 대 영광이라 할 수 있는 명성을 떨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후손들이 그 기록을 믿지 아니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온당치 못한 처사다.
선산김씨가 그동안 파보만을 편찬하고 대동보를 만들지 못하다가 1986년에 대동보를 만들면서 관조를 도용하는 등 사실을 왜곡하는 일을 범한이유는 자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사 권95 열전 제 8에 김 한충의 처는 문종의 從첩의 딸이었던 관계로 그가 비록 높은 벼슬을 지냈으나 대각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잇듯이 그의 천한 신분 때문일 것이라고 사학이나 보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직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천한 신분이라 하더라도 혈통을 이어받은 그 자손들은 조상을 버려서는 안 된다. 합보를 하지 못하고 시조를 달리 한 족보만 간행하여 오다가 1986년 처음 대동보를 간행하면서 단합해야할 종족끼리 오히려 시조 날조 문제 때문에 불화를 초래한 것은 어느 누구라도 옳다고 하지 않을 것이며 그 불미한 사실을 족보 서문에다 밝힌 것도 불신과 불화를 더 가중시킬 뿐이다.
결국 자신들의 종중 미화를 위해 다른 종중의 관조를 도용하는 선산김씨(한충 계) 행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선산김씨(한충 계)가 더 분열되지 않고 사회의 지탄을 받지 않으려면 대동보 간행에 동참하지 아니한 2개 파의 후손들과 합류하여 시조를 바로 한 족보다운 대동보를 다시 간행하고 서기 1993년에 구미시 선산읍 포상리에 세워놓은 선산김씨 시조 일선 군 휘 추의 제단비와 입구에 내용 표석도 제거 하여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후손은 물론 신라김씨 각관 종중으로부터 잘못되어 있는 조상 또는 종중들이라는 따가운 멸시와 지탄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 문종은 서기 1046년-1083년 까지 재위한 왕으로서 고려사 및 열전에 나오는 김 한충과 선산김씨 시조인 신라원성왕의 9세손 김 한충은 원성왕10세손인 경순대왕보다 1세대 상계이므로 년대적으로 보아 고려인이 아닌 신라인으로 확정되어 동명이인으로 판단된다. 과거에는 고증할 수 있는 문헌을 입수하기 어려웠지만 현실은 다르다. 노력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문헌을 볼 수 있고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니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것이다. 남의 조상을 내 조상이라고 날조하는 등의 우와 불효를 범하였다고 하는 불미스러운 사실이 더 알려지기 전에 조상을 바로 찾아 모시기 바란다.
원하시면 고증및 잘못된 허위기재 내용을 복사 송부하도록할까 합니다.
제전화는 011-9092-6114이며 031-888-2137 425-9709입니다.
메일은 knpkwhca@hanmail.net입니다.
삼척김씨중앙종친회부회장 신라김씨계보연구회연구위원
신라김씨연합대종원홍보위원 한국성씨총연합회운영위원
한국성씨총감편찬위원회편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