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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42.2.21.음력.출생(임오년 갑진월 기축일) 경남 하동 출생
경남 하동군 양보면 안우동골, 박석골
기갑임
축진오.....내가 궁합.com에서 뽑은 사주(평달로 뽑아도 이 사주고, 윤달로 뽑아도 이 사주임)
기계임
축묘오...........진실한 가르침 상 나와있는 사주
(1)1941.여름 경남 하동군 양보면 장암리 우동부락 안우동골...여래님 가족 8명이 생활 중
부,모, 6명의 자녀들,(병든남편,큰딸은 14세,)어머니께서 꿈에 “청암으로 가서 큰나무앞에 정성을 드리라. 그러면 훗날 좋은 일을 알게된다‘는 꿈을 꾸심..어머니가 아버지한테 꿈이야기를 하니 아버지 역시 그런 환상을 보았다며 서로 신기해 하였다..다음날 왕복 100여리가 넘는 신령이 가리킨 지점까지 어머니가 가셔서 기도를 하심
(2)1942.음2.21.까치와 산세들이 오두막을 에워싸고 울기 시작함..아들을 낳음(여래님 출생)..5살 누나,
(3)1942.여름 부친별세...4살배기 쌍둥이 형제 죽음..9명중 3명사망, 총6명생존(모와 자녀5)
(4)16세 장녀 후처로 시집감..이제는 모와 자녀4명, 11살짜리 아들(장남), 6세딸,돌이 지난 여래님,
(5)외가의 주선으로 우복골로 이사. 총4식구라 하심(여기서 약간의 착오가 생김..위를 보면 5식구임)
(6)모친 진교의 포구에서 생선을 받아서 이동리 저동리 다니며 파는 장사길을 나섬,
막내(여래님4살이 됨), 형 누이는 장암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님,
(7)1945년 해방..
(8)경전선 철길을 닦던 곳에 북천과 양보를 이은 굴이 있었음,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릴려 하지만 바쁜 어머니는 여래님의 응석을 받아 줄 여유가 없고 그러면 여래님은 굴로간다. 굴로간다.하고 모친을 위협하심, 굴에는 2미터나 되는 물길이 있었고 바로 자살하겠다는 그런 위협을 어머니에게 하는 것임.
(9)여래님 이 무렵 지게를 지고 산속에 들어가서 나무를 해옴...
(10)동네에 낯선 중이 나타남..여래님 댁에 들러 모친(그 가난한 와중에도 여래님 어머님은 제사에나 쓸 양으로 천장에 메어둔 쌀 봉지에서 얼마쯤을 중의 염낭에 부어줌)한테 여래님의 사주를 물어 봄, 쌍계사에서 나온 중이었음,.저 막내를 우리절에 맡기라는 중의 말, 그리고 어머니가 거절하자, ”큰 그릇이야“ 라는 말을 남기며 중은 다른 집으로 가버림..
(11)김씨 집성촌에 이씨는 여래님 댁 혼자
(12)여래님은 6살부터 나무를 해 오심
(13)장남(여래님 맏형)이 초등학교 졸업하고 일거리를 찾아 부산으로 떠남, 3식구가 집에 남음
(14)초등학교 3학년 누나따라, 여래님 1학년 입학
(15)우동골댁인 어머니가 장남이 보낸 편지를 들고 노서기댁으로 감,
(16)박석골에 있는 우동골댁이 사는 초가집으로 장남이 설날에 방문함
(17)이승만 대통령이 이씨라는 말에 우쭐해짐, 6.25전쟁이 터짐, 장남이 부산에서 귀향함
(18)1951년 설날 부산에서 장남이 귀향,
(19)여래님 어머니, 징집될지 모르는 큰아들 걱정에 큰 병을 얻으심,아랫마을 하성부락에서 제법 소문이 난 여의사를 모셔옴,(실제로는 간호사 출신)
(20)설 날을 5일 앞둔 어느 날 모친 별세하심, 여래님 나이 10세
(21)장남 노름으로 동네 이웃의 아들에게 돈을 빌리면서 집과 밭을 저당잡혔고 결국 날아감
(22)16세 누님, 12세 여래님, 여래님 부산에 있는 장남을 찾아 부산으로 감, 6시간 버스를 타고 부산 충무동에 도착, 친척집에 도착하여 숙박하기 시작함
(23)22살 장남은 12살 여래님한테 아무 대책도 세워주지 않은 채 친척집에 왔다가 떠나버림, 중앙동 낙원다방에 오면 자기를 만날 수 있다는 말만 남기고,...제법 먼 하단까지 논고동을 잡겠다고 놀러가기도 하심,
(24)영도로 옮겨 가심, 10원으로 신문 한 장을 사서 20원에 팜, 20원으로 신문2장을 삼, 그 날 하루 360원을 모음, 그 돈에서 200원을 형수한테 생활비조로 줌, 그 다음날 동아일보를 팔아서 800원의 돈을 모음, 아이스께끼 장사로 전업을 하심,
(25)13살 소년, 영도 고갈산에 오름, 해녀일도 하심, 김장철 동안 리어카 짐꾼의 조수가 되심, 동아일보 부산분실 신문배달원이 되심, 동광동5가-영주동 수원지 위까지 배달하심, 1달만근 월급을 미수금으로 해결하라는 말, 그리고 한푼도 받지못하시고 귀가하심, 화교 골목의 어떤 집에서도 2달치 미수가 있었음,
(26)14살 한 해 신문배달로 보냄, 신문일 물려주고 해녀일을 기다리는 와중, 동리에서 중국인의 부인이었던 일본태생의 여인만이 가장 호의를 보내주었음. 솥공장에 가면 밥은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하면서 일할 것을 제안함, 중국인들의 주물공장이 있는 대평동의 쌍화주물을 찾아감,
(27)15살 주물공장에서 일하심, 80명의 노동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림, 형수가 아기를 낳음, 첫 월급 군복을 물들여 만든 작업복 살 돈 만 제외하고 전부를 형수한테 주심, 어느날 누나의 방문, 설날을 기점으로 그만두시고 뻥튀기 만들어주는 일을 하심,
(28)대청동 미공보원 앞에서 구인광고 발견, 대청동 조선일보 부산지사 방문, 당시 조선일보 부산지사장 곽도산씨의 채용승락, 봉금은 15,000원, (1957년 경), 부산 서구 지역 총무직책,
밤에는 천자문 공부, 형이 돈을 받으러 자주 사무실에 나타남, 형이 동생을 의지함
(29)4.19발생, 4.26이승만하야성명발표, 경향신문 복간, 곽도산씨 경향신문 부산지사 다시 인수, 여래님 경향신문으로 이동, 동일장소에서 초량을 중심으로 한 부산 동구 경향신문 담당,
(30)17세 : 초량지국장의 농간으로 일자리를 잃으심, 영도로 이사와 살고있는 누나 집으로 찾아감
(31)동광초등학교 운동장에서 100여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하사관 응시용 신체검사, 다음 날 시청옆에 있던 제5 육군병원에서 신체검사, 가슴들레가 키의 1/2이 넘지 않으면 탈락한다는 조건이 걱정이 됨, 그정도로 여위심, 아리랑 담배 한갑을 150원여에 사서 일등중사 주머니에 넣고 청탁을 하심,
(32)입대를 누나,형에게 알려도 몸조심하라는 말조차 못 들음, 부산역 집결 후 입대열차에 승차, 오후4시출발 기차 자정에야 대전역 도착, 신검대, 훈련소로 차례로 이동,
(33)1961년 5.16 발생, 혁명공약6개조를 못외우셔서 곤란을 겪으심, 논산을 떠나 부신진역도착, 부산소재 모 특과학교 특기교육이수차 도착,
(34)1군 관할 직할기술대대 배치, 이후 최전방사단 소총대대 배치,
(35)20여일간의 휴가, 부산 형의 집을 근2년만에 방문,그동안 모았던돈과 휴가비로 받은 돈 전부를 내놓음, 입고간 새 군복마저 형제에게 주고 오심,
(36) 사단체육대회 씨름1등, 처음으로 조국에 모든 것을 바치고 싶은 심정이 생기심, 연대급 웅변대회 1등, 태권4단 짜리와 싸움을 제압하여 싸움실력도 드러내심. 열외사병대우를 받음.
(37)고참하사, 타 하사는 중사진급이 되었는데 중사로 진급이 안됨, 육군본부를 찾아감,참모총장실 노크를 하심, 누가 큰소리만 치면 총을 막 쏘고 싶고...그런 꾀를 내심, 전역
(38)형집에 감, 모았던 돈을 정에 못이겨 빌려주고 못 받음, 그리고 쫓겨남
(39)공주를 감, 갑사 방문, 등원암 방문, 휴양하기로 하고 한달 쌀25되요구받았으나 2달 있기로 하고 쌀 한가마니의 값을 냄, 등원암의 옛이름은 압정사, 300년 전부터 등원암으로 이름을 바꿈, 당시 암자의 이름을 쓴 사람이 여래님과 동명이인, 50여일 경과 섣달 그믐날을 얼마앞둔 어느날 부산을 다녀오기로 결정, 누나집 방문, 중이 되겠다는 결심을 전하니 누나는 이틀뒤 어머니 제사만 보고가라, 결심이 바뀌어 등원암가서 짐을 챙겨서 다시 도시생활을 시작하심, 대청동산비탈에다가 다다미 방 한칸 짜리를 구하여 생활
(40)”너의 용기와 양심을 동포에게 바쳐라!“ 하는 소리를 들으심, 점점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남의 불행을 구하는 일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뜻과 사명을 느끼기 시작, 독서에 몰두, 위인들의 자서전
(41)대청동에서 영도 누나네로 하숙을 옮김
(42)서울 방문, 추풍회의 오재영씨 소개로 알게 된 그곳 임시대변인 직함을 가진 구좌석이라는 청년을 만나보고 싶었음, 북가좌동에 사는 구좌석씨를 찾아감, 그의 부인인 듯한 여인이 약국에서 언제쯤 돌아 올 것이라고 알려줌, 다음 날 다시 찾아가 만나셨고 그에게 포부를 밝히고 종로2가 정치인들을 만나러 감, 국민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에서 장준하씨와 엇갈리고 여래님은 만나고자 원하는 사람은 장준하기 아님을 직감적으로 아심, 2번째로 찾아간 곳이 서민호의원의 사무실임,
(43)대중당 방문 서민호당수를 만남, 서민호 당수가 조직국장 장재철씨를 소개해줌,
(44)대중당 입당 후 맹세하심, ”저는 앞으로 제 행복보다 민족의 영광을 위해 제 몸과 마음을 바칠 것입니다“ 구좌석형과 점심후 서울역 통해 귀부산,
(45)지구당 창당노력, 사람과 자금을 모음, 다들 협조적이었음(연줄이 생길거라는 기대 등으로)
사무총장 및 구좌석 참석한 창당식 개최, 창당사
<오늘 이 자리를 만들기까지 수고해 주신 당원 동지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더욱 빛내 주신 내빈 여러분!
지금 이 순간 여러분과 나 자신을 위해 무어라고 인사의 말을 올려야 할지 제 마음이 자꾸 당황해집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러한 저를 앞으로 이끌어 주시고 채찍질을 해 주셔서 이 땅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키워 달라고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제가 오늘 이런 일을 통해 여러분 앞에서 약속드릴 수 있는 분명한 말은, 어떤 일이든 더 열심히 임할 것이며,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아온 제가 앞으로의 일을 통해서 제 자신을 여러분과 여러분의 친구들에게 알리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신의 뜻을 믿으며 진리를 믿는 쪽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오늘 부족한 것이 있다면 과거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앞으로는 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매우 어렵게 생각되어 왔으나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따라 매우 쉬운 일입니다.
위선과 거짓을 일삼는 자는 일생을 통해 이루지 못할 것이나 행동과 실천을 통하여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땅에 생명을 가진 자 중에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렇지만 그 세대를 위해 불의와 싸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은 게 세상인심입니다.
이런 일들이 신의 뜻일까요? 분명한 것은 축복받는 사회, 축복받는 민족의 길을 위해서는 진리가 통하는 쪽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이 소신만으로 저의 인사를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몽 사무총장 치사,
(45)약 반년 후 민주시민 답합대회 개최, 2천명 들어올 ㅈ아소 섭외, 600석 의자 준비, 30명 대회준비위원의 구성,
(46)영도예식장 4층, 대회 직전 37명 데리고 부산역 서민호의원 마중, 영도시장 부근 동원여관에 서민호 의원 숙소를 방2칸으로 마련함
(47)스피커설치등 일을 혼자서 뛰어다니며 다 준비하시고, 대회장 아치준비, 정중동원 등 가슴을 졸이심
(48)대회당일 당 선전국장인 이경식동지가 대회가 걱정이 되어 개인자격으로 방문, 안내방송을 맡아 줌, 10시20분 개식,
<이삼한 부산지구당 대표 대회 개회사>
억울한 사람은 있어도 억울한 마음을 풀 길이 없으니 어찌 사람들이 자기의 장래를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불안하고 답답하고 울분이 치솟는 마음을 참고만 살자니 제 본분이 의심스러워 오늘 여러분을 이곳에 오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노예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의 동등한 주인입니까?
권력의 주변은 비대해 지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우는 여위어만 가니 도대체 오늘의 인심을 알 길이 없습니다.
더욱 의심이 생기는 것은 사람들의 상식이 남을 위해서도 도움이 못되고 자신을 위해서도 도움이 못되는 것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이런 일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결과를 두고 기다리라는 것입니까? 짐작해서 알아라 하는 것입니까.
침묵이 흐르는 현장은 새로운 반성의 역사를 원하기 때문입니까. 단순히 민족정기의 파괴를 보기 위해서 입니까.
남을 믿지 않아야 자기가 사는 그런 시대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 나는 묻고 싶습니다.
세계는 지금 모든 나라가 정의를 근본으로 여겨 정치의 기본이 되고 있으며 약속도 생명과 같다는 조례에 의해서 남을 믿고 자신을 의지하며 모든 사람들이 위로를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다른 나라와 같은 근본을 갖추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잘못했고 여러분이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기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사람을 너무 믿었고 권력을 너무 두려워하기만 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대접을 받으려 할 때는 주인노릇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주인노릇을 못할 때 그 사회는 위계질서가 파괴되고 상식이 사라지고 스스로의 권위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깨닫고 분통이 터질 때는 이미 외로운 자신을 보게 되며 불행한 세계에 살게 된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내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건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생명과 희망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여러분을 청한 것입니다.
진리는 변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를 따라 가면 불행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인 줄 알면 주인의 권위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며 믿음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의 시대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시대를 위해 두려움을 버렸습니다. 일을 잘 하는 일꾼은 우리의 보배이지만 나라를 망칠 일꾼은 우리의 적인 것입니다.
조그마한 위협이나 가소로운 협상 앞에서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는 어두운 마음만은 과거를 생각하더라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권력의 횡포는 진리가 아닙니다. 양심이 부족한 자의 행동일 뿐입니다.
저는 내 자신이 왜 불행한 세계에 살고 있느냐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내 자신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진리가 있는 편으로 가겠습니다. 그 때는 여러분 모두를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때까지 불편한 점이 많더라도 참으시고 용기를 내어서 현명한 판단으로 오늘의 현실에 임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대중당 당수 월파 서민호선생 치사>
오후1시 넘어서 대회 성료, 남포동 번화가로 나와 당수가 사는 설렁탕을 먹음, 식사후 남포동 향촌다방에 가서 커피,
(49)다음해 대중당 전당대회 참석, 시민회관별관에서 대통령후보에 서민호지명, 그러나 정권교체라는 열망에 의거 후보를 포기, 2장의 공천장에 인장으로 도장, 경북지역 청송.영덕의 김동현형, 부산 영도구 이삼한님, 이몽선생을 새로운 대표대리로 선출,
(50)4.27.대통령 선거,
(51)5.6일 가까스로 국회의원 등록을 마침, 벽보비 10만원 마련되었기 때문에 가능, 대중당 대덕,연기지구당 위원장 최희수동지가 뜻밖에 찾아 옴
(52)전직고교교사 사회담당교사였던 모씨를 선거사무장으로, 노동판의 십장 몇사람, 이발관을 하던 친구 유무종씨를 참모진으로 갖추고, 선거전에 임함
(53)5.8일 정견발표일 당일에도 정견발표를 모르고 있었음, 남중학교 운동장으로 감,
최희수동지가 추첨에 참가 하필 1번으로 연설을 하시게 됨, ”기호4번 대중당 후부 이삼한입니다“ 로 연설 시작
<제가 기호 4번인 대중당의 후보 이삼한입니다.
제가 이번 5·25 선거에 출마하게 된 것은 이때까지 살아오는 동안 느꼈던 답답함을 풀어보고 싶었고 또한 저처럼 살아오면서 답답함을 가슴에서 풀지 못하고 있는 다른 분들을 위로해 주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억압과 복종만 강요했던 왕권정치를 모방만 하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적 독선과 그들만이 진정한 조국의 수호자인양 떠벌리는 정권의 억지에 대항하고자 출마를 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양심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용기가 있는 자가 조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고자하며 저와 같은 뜻을 가진 분을 찾아 나라의 앞날을 구하고자 이 자리에 나섰습니다.
양심과 정의를 먼저 구하고 희망과 용기를 심어 번영되고 자유로운 조국을 가질 수 있는 이상적인 기회는 바로 지금이라고 여기면서 이러한 중대한 시기에 금력에 매수되고 권력에 억눌려 자신의 행사를 뜻대로 못한다면 우리는 희망을 잃게 되고 자유를 버리게 되는 사실을 경고하기 위해 저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믿었으며 부패자와 싸우기를 원하는 젊은 기개를 가진, 여러분 같이 가난하고 순박하며 우직스런 저를 국회에 보내 주심으로 해서 여러분이 이 땅의 확실한 주인임을 확인시키기 위해 오늘 제가 이 자리에 나선 것입니다.
주인이 주인 구실을 못할 때, 질서는 파괴되고 정의는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받는 고통이 아프다고 빌기만 하고 지낼 수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자에게는 신의 축복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여 온 사실입니다.
다음에 이 자리에 올라올 다른 후보들은 저를 두고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가난하며 학식도 없고 명성도 없습니다만 언제나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며 당당하게 조국과 민족을 걱정하면서 소신과 양심을 지킬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사실을 거짓으로 바꾸어 말하는 것은 웅변이 아니며 사기꾼의 행동입니다. 위선을 일삼는 자는 인재가 될 수 없으며 협잡꾼에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조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후보가 있다면 누구든지 자기의 영달보다 사회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으로 이 자리에서부터 행동으로 임해주길 제의합니다.>
(54)날계란과 용각산을 먹어가며 버티심, 5.25일이 선거날임, 몇몇 동지들 그리고 최희수동지의 정은 정말 고마웠다..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 타 후보들은 정당정치가 어떻고 살기가 좋아지고 경제가 발전했다고 떠들어 대는 것을 보고 저는 심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일을 외면한 위선의 소리일 뿐입니다. 정말 이런 정도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환경이라 생각합니까?
정당정치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쥐를 잡지 못하는 고양이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권력의 횡포에 말도 못하고 부화뇌동하며 민중을 기만하면 그것이 어찌 우리들의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정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까? 대통령을 위해서 입니까? 국민을 위해서 입니까?
저는 오늘날 너무나 상식을 벗어나서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 답답함을 참을 수 없어 여러분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양심도 없는 자가 위선과 거짓을 보태서 말한다고 똑똑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엄청난 외국의 빚을 얻어 빌딩 몇 개 짓고, 쓰지도 못하는 공장을 계획 없이 짓는다고 발전이며 건설이라고 함부로 자랑하는 것은 조국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 빚은 누가 갚아야 합니까? 대통령이나 정당이나 국회의원이 갚는 게 아니라 그 빚과 이자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이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계획적으로 엄청난 빚을 얻어 즉흥적으로 발전이라 떠들고 보면 그 덕은 극히 일부들만 보고 우리는 무거운 부담만 얻고 빚 때문에 허덕여야 할 날이 멀지 않은 장래에 다가올 것입니다.
오늘의 정부나 집권층은 상식 밖의 일을 너무나 잘 하고 말도 비단결 같이 잘 하는데 그것을 확인해 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 젊은이가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그런데도 항간에는 저를 말 잘하는 위선자 정도로 보는 경우가 허다하니 참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오늘을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지켜야 하는 것이 우리들 공동의 책임입니다.」
이렇게 절규하다 보면 나의 가슴은 정말 격해지고 금방 터질 것 같았다. 얼굴에는 땀이 흠뻑 흘렀으며 그럴수록 무언가 이 나라에 불안한 문제가 터질 것 같은 마음이 가슴을 떨리게 했다. 이야길 하다보면 목소리도 격해져서 고함이 되었고 절규로 변했다.
「자기 것은 자기가 차지해야 합니다. 위협한다고 굴복하고 기만한다고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밝은 것을 버리고 어둡게 살려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소치이며 영원히 후회해야 할 일이 될 것입니다.
자유와 행복은 신의 선물이며 이 귀중한 선물은 여러분의 양심 속에서 지켜져야 할 것으로서 결코 망각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내일의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나와서 진심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자유와 행복은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입니다. 이 사람의 말이 옳다고 보시면 주저하지 마시고 지지하여 주십시요.
저는 분명히 약속드립니다.
조국을 위해서 생명을 바칠 것이며 사회의 정의를 찾기 위해서는 어떤 매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겠으며 굶주림도 고달픔도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55)하루 4-5회 자리를 옮기며 개인 정견발표, 최희수동지가 지지호소,
(56)마지막인 5번째의 정견발표회, 동삼초등학교 오후3시 개최됨, 연설순위는 5번째로 마지막순위였음,
<오늘 시간보다 일찍 여러분을 뵈옵고 제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리고자 동삼국민학교, 이곳 연설회장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제가 타고 오던 버스는 정류장마다 서면서 타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을 위해 멈추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교통법규를 위반해 가면서 질주하는 승용차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장 제 처지와 그분들의 처지가 너무나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느꼈습니다마는 안타까운 마음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고 연단에 올라오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주위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예감에서 우리 사회의 앞날을 두고 좀 진지하게 의논도 하고 진실된 말로 내일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나의 사명을 찾아 조국에 바치고자 결심하고 나왔습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또 오늘의 어두운 사회 현실에서 밝은 것을 찾으려는 애국적 유권자 여러분,
저는 오늘 이곳 연설회장에서 다른 후보들의 정견을 여러분과 함께 들었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그분들은 말씀도 수월하게 잘 했습니다만 도저히 그분들의 웅변 속에서 수긍이 안 가는 것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출세를 하기 위해 국회의원에 출마한 분인지 조국의 어려운 문제 때문에 사명감이 생겨서 출마하시 분들인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저의 반대자들은 저를 조소하고 저 자가 누굴 비방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도 있을 줄 압니다마는 저는 결코 어떤 쪽을 비방하기 위해 이런 말을 끄집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분들은 정당정치가 어쩌고저쩌고 하며 우리들을 가르치려고 하고 있습니다마는 정말 ○○당이나 ××당을 믿고 우리의 행복과 이상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까?
오늘의 세상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의심이 생기는 문제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나쁜 것을 무조건 덮어두려는 행위가 정당정치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현실에 대한 문제들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젊은 제가 오늘의 이런 쟁점에 뛰어들었습니다. 저의 용기나 저의 지혜가 여러분에 의해 이 땅에서 봉사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이든 잘 알고 행세를 한다면 낭패를 당하는 일이 적을 줄 믿습니다.
오늘 이곳에 마지막까지 남아 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여러분들께서는 지난날 대통령 선거에 대한 기억을 아직도 잊지 않은 줄 압니다.
저는 당시 두 분의 연설회장에 나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대통령후보의 연설과 찬조연사로 나온 쟁쟁한 분들의 말씀 속에서 아연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들은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에서까지 우리 부산 시민에게 당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전직 국무총리의 말씀부터 들은 대로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전하겠습니다.
제1야당이라는 곳에서 공천 받고 후보로 나온 사람들을 국회에 뽑아 보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합디다. 낮이면 국회의원 행세를 하지만 밤만 되면 장사꾼으로 변한다는 이 말의 의미가 납득이 안 가 저의 머리속에서는 몇 날이나 저를 괴롭혔습니다마는 현명하신 여러분들께서는 이 말이 무슨 의미에서 나온 말인지 짐작하실 줄 믿습니다.
제가 모략을 하는 것이 아니냐 의심하는 분들은 그 날 조방 앞에 가신 분을 붙잡고 물어 보세요. 다른 분들도 들은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그 날 백만이다. 60만 명이다 하는 군중 앞에서 똑똑한 발음으로 웅변한 그들의 직위나 태도로 보아 거짓이 아닐 것이라는 심증을 확인했습니다.
이젠 김 모 후보의 당부말씀도 전하겠습니다. ○○당 국회의원 후보들 국회의원에 뽑아도 여러분 위해 별 소용이 없다. 그들은 하나같이 행정부의 시녀 노릇이나 하니 오히려 민주정치를 하려는 역사에 역행이나 하는 짓이다 하는 말씀에는 왜 우리 사회가 밝지 못하고 점점 음침해지는가 하는 의심이 더욱 나를 괴롭혔습니다.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
우리의 생활 속에는 안면도 좋고 의리도 좋은 것입니다마는 더욱 중요한 것은 밝은 사회이며 활기 찬 조국인 것입니다. 이런 일을 위해 준비 없이 이번 선거전에 뛰어든 젊은 저에게 그놈 괜찮은 놈이다 여기시고 표 좀 모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언제든지 여러분과 조국을 위해 나의 양심과 용기를 바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각오 때문에, 제 어려움보다 조국의 어려움에 더 슬픔을 느끼며 양심을 버린 자들의 조소 속에서도 떳떳이 제 자신을 지키려고 버팁니다.
오늘 마지막까지 남아 제 연설에 귀를 기울여 준 여러분의 양심에 기대를 걸며 시간관계상 연단을 물러갑니다. 감사합니다.>
(58)이 때 여래님 나이 26세 청년,5차례의 함동정견발표회, 54회의 개인연설회,
(59)5.25선거 끝이 남
(60)서울행, 새벽에 용산역 도착, 남대문시장통으로 가서 꿀꿀이 죽을 10원에 사드심, 남산에 올라 시간을 보내시고 10시경 종로 대중당 사무실 방문, 6인은 저녁때가 되어서야 관철동 싸구려 술집을 찾음,
(61)상도동 친척집 방문, 잠시 지내시다 다시 부산으로 귀향
이상 86페이지 16번 까지 정리
86페이지 17.여분없는 인생부터 다시 정리 해 나감
(62)유명세가 생겨 처신하기가 곤란하지만, 어떤 상황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으심, 비누배달일, 고철장사로 돈을 또 모아서 서울행, 당사 방문 10여명 동지들과 함께 관철동 ㅆ구려 술집 찾아가 생두부안주에다가 막걸리를 사주심, 사직동에 하숙을 구하심,
(63)당시 사무총장 이강백 동지, 당의 최고위원 이동화선생, 사무총장 지냈던 이몽선생,
(64)사무총장 서리에 경북.의성 지구당 위원장 이동수 동지 임명
(65)사직동 하숙집에서 대한홍익회 사무실인 김우제씨 집과 당사를 내왕하며, 또 돈이 떨어져 나감
(66)최희수동지가 자기형편에 무리를 해서 열차표를 사주셨고, 신민당 총재비서로 있던 이경식동지가 주간지 두권을 사주며 차안에서 일으라고 하심,
(67)열차좌석 옆에 미인이 탐, 여래님 말을 붙이심, ”부산까지 갑니까? “ ㅎㅎ
(68)미장원에 비누배달하는 일을 하시며 1972년 봄을 맞으심(여래님 나이 31세, 곽종은 나이 9살로 초등학교 입학), 이후락 평양 다녀온 일 발생, 유신발생, 대중당도 지지성명하는 상황이 됨, <나는 결코 출세나 영달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오직 양심에 따라 사명을 따르기 위해 살아갈 뿐이다.」 이런 각오를 다지심
(69)단골다방에 갔더니 면식이 있는 모 기관원이 기다리고 있었음, 유신에 대한 지지를 요구받음, 끝까지 지지를 하지 않으심
(70)1973년이 됨, (여래님 나이 32세), 선을 보심, 당시 부산에서 제일 큰 호텔이었던 반도호텔 커피숍에서 일류대학 졸업한 부자의 딸임, 너무 격차가 커서 당신 스스로 여자를 차버림/ 2 번째 선 본 여자는 미인이었음, 미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속 썩을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으심
3번째 미래의 사모님이 되실 여자분을 소개받으심, 광복동에서 동래까지 바래다 달라는 사모님의 제안,...사모님댁에 까지 가서 그 쪽 식구들도 만나게 됨, 장인어른이 직업이 뭐냐고 하여 직장은 없고 돌아다니며 브로커 노릇이라 하고 산다고 말씀을 하심,
일사천리로 결혼이 진행이 되어 사모님이 여래님 말씀으로 남포동 제일예식장 3층을 예약하였다고 알려오심, 결혼4일전에야 청첩장을 찍음, 400장 찍어서 남자측 200장 결혼전까지 70장 밖에 못 돌리심,
(71)결혼식 당일 서울서 10여명 동지들 내려옴, 고향에서 남매와 사촌들이 찾아 옴, 1973.5.13.정오...제일예식장 3층 특실에는 400여 좌석은 다 차버리고 통로마저 메워짐..
대중당 간사장의 축사, 양산 통도사, 해운대 등에서 기념촬영 후 오후6시가 되어 수영비행장에서 제주도로 출발 신혼여행 하심, 성산포 일출호텔에 숙박을 하기로 정하심,
(72)부산으로 귀가, 처가가 있는 동래에 들러 인사, 형네 갔는데 축의금 들어온 돈 약20만원은 한푼도 받지를 못하심, 다음날 고향을 찾으심,
(73)방 얻을 돈이 없던 차에 우연히 돈 20만원이 수중에 들어오는 일이 생김...서면에 보증금20만원에 월세5천원으로 신혼방을 마련하심...부억킹 갖추어지지 않은 단칸 방..
사모님은 동리의 국민학생 상대 과외활동,
(74)유신체제는 정당법으로 정당의 간판을 내리게 하였다...대중당도 간판을 내리게 됨..
(75)통일당 부산조직책임자였던 박재우씨를 통하여 부산의 제1선거구인 중구 영도의 조직책 신청서를 신청
(76)서울행, 신당인 통일당 당사방문 이경식 동지 만나심, 당 사무총장은 전 경북대학교 문리과 대학 학장이던 하기락씨,
(77)낙원동 방문 통일사회당 김철 위원장 방문, 이동열동지와 서울특별시 대변인을 맡았던 백철 동지들이 이끌어서 다방으로 가심, 청진동 수송초등학교 통일연구인협회 사무실 방문
그 사무실에 있던 장재철동지가 반김, 72세 월파 서민호 선생 만나심, 권노갑씨도 만남
서범용동지도 다방으로 와서 인사를 함, 장재철동지가 오늘 오후 6시 중대발표가 있다고 한다...정부 긴급조치1호 발동,
(78)부산으로 내려오셔서 고민, 사모님 임신 중, 전세방 만들려고 마아둔 돈을 다 찾아서 다시 서울행, 서울의 터미널도착, 구좌석형을 떠올리심, 서부경찰서 근방에서 구좌석형을 만나심,
(79)모래네 한 여관에 방을 정하시고 구좌석형과 토론
(80)구좌석형..1963년 한일회담 반대를 위하여 전남 광주 모처에서 할복한 사나이다운 행동파
(81)월파 서민호씨도 세상을 떠난 후, 통사당 김철 위원장을 다시 찾아가심, ”상식이 소멸되는 사회야말로 내 일생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절망이라고 발언하심“
40여명의 동조자 규함, 민사청을 재건하려고 하심,
(82)염천교 부근에서 일명 번개라 부르는 옛 전우로 하여금 건달 4명을 모이게 한 자리에서 민사청 재건을 발표, 모두의 우려를 삼
(83)길거리에서 결혼식에 왔던 김교수(전 홍익대학 학생처장)를 만나게 됨, 여관에서 연행이 되심, 어떤 조사실로 연행되심,
(84)다행히 풀려나고 그 다음날 이동열동지와 민주회복국민회의 운영위원을 자낸 김상석동지가 가방을 터미널까지 옮겨줌
(85)귀 부산, 1975년 음력 설날을 맞이함(여래님 당33세, 곽종은 12세)
(86)장남 출생,
(87)시청앞 남도다방에서 친구를 기다리시다 옆테이블에서 사람들이 하는 사업이야기를 들으심, 남부민동과 암남동의 경계지점에 배를 댈 수 있는 장소를 발견,
(88)사모님은 돈40만원을 융통해 오심, 섬진강서 모래를 실어서 부산항에 양륙 후 판매, 새벽03.30분 기상, 4시면 현장에 도착, 6개월만에 기틀이 잡혀짐, 처가의 신뢰를 받음,
(89)다시 사회와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고뇌후 사무실을 얻으심, 부평동4거리 5평짜리 사무시를 보증금10만원에 월세2만원으로 계약을 함. 사회부조리 추방 청년협의회를 구성할 것을 결심하심
(90)40명의 발기위원 중35명이 참석하여 불교 웅변인 협의회장 정갑덕동지의 제청으로 만장일치로 회장에 선임됨, 주위에서 이상하고 불안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함, 취지문
<오늘날 우리는 역사적 전환기에 임하여 격동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미래의 영광과 희망을 찾아서 투쟁하고 있다.
혁명, 경제, 개혁, 유신체제 등을 절규하는 것도 모두 격동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조국과 민족의 영광과 발전을 슬기롭게 이룩하려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는 나날이 변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고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을 어떤 자는 위대한 성과라 하며 또 어떤 자는 실패라고 단정한다.
이것은 비판하는 자들의 세계관,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여하에 따르는 견해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여기에 관여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 묵과해서는 안 될 중요하고도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중대사가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 제거이다.
격동하고 있는 오늘날 언제 어디서든지 폭풍이 몰아치고 강토를 진동하는 분화가 화산에서 폭발할지도 모르는 이 절박한 시기에 사회의 부조리가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서 깊이 뿌리박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민족의 장래에 불길한 암영을 던져주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이와 같은 사회의 부조리가 깊숙한 폐부에까지 뿌리박고 있다는 이 엄청난 사실은 민족의 앞날에 치명적인 결정타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무릇 사회의 부조리는 민족의 영광과 발전에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광된 조국의 역사에 자랑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민족의 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사회의 부조리를 깨끗이 우리 사회에서 청소할 것을 열망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의 부조리는 너무나 깊이 뿌리박혀 있다. 따라서 이것을 일소한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국가의 행정력을 동원해서도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것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회의 부조리 일소에는 국가의 권력으로도 될 수 없고 말로만 호언장담해서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유일한 방법이란 새로운 차원에서 새로운 각오로써 국민적 정풍운동을 전개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대 국민운동은 너무나 거창한 과업이며 용이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의중을 깊이 살펴서 우리의 역량에 합당한 범주를 설정하며 젊은이다운 열정과 깨끗한 심정에서 뜻있는 청년들의 뜻을 모아서 사회부조리 추방 청년협의회를 결성코자 하는 바입니다.
1975년 월 일
정관 내용
제1장 총칙
제1조(명칭) 본 회는 사회부조리 추방 청년협의회라 칭한다.
제2조(목적) 본 회는 각 분야의 부정부패 및 사회 부조리를 제거하기 위한 과감한 사회운동 전개를 그 목적으로 한다.
제3조(사업) 본 회는 목적달성을 위한 다음과 같은 사업을 한다.
1. 공명한 사회 건설을 위한 캠페인 운동.
2.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 건설을 위한 배가운동.
3 사회 부조리 부문의 경고 폭로 고발운동.
제4조(소재) 본 회의 중앙회를 부산에 두고 필요에 따라 서울특별시 지부 및 각 도청 소재지에 지부를 둔다.>
(91)장사를 쉰 지 3개월만에 다시 장사를 재개하심
(92)1977년 여름 내집마련, 제법 넓은 정원이 달린 내 집 마련 성공, 딸 출생, 가정은 화목하였다..손위 누나의 남편인 자형을 밑에다 일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시공세 사는 가난한 누님한테도 논을 사주심, 영도다리 입구에다가 개인사무실을 차리심,
(93)다시 국가를 바라보심, 그러나 구좌석형과 최희수동지가 와서 말림,
(94)창당대회 개최, 이경식동지가 서울에서 참석,
(95)1978.10.27.10시 대회식 개최...극장에 2,500여명의 청중이 모여듬..
대회사
<오늘날 조국이 처한 현실을 바라보며 나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젊은 양심을 숨길 곳이 없어 지금의 정치현상을 알면서도 속고 있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깨우치기 위해 나와 나의 가족의 행복을 바치며 생명까지도 걸어야 할 비정한 현장에 신을 믿고 여러분을 믿으며 뛰어 들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정의의 소재를 찾지 못해 외로움을 느끼며 자신의 운명에 도전한 고집스런 저의 행동에 이 순간 뜨거운 박수를 보내준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당원 동지 여러분에게 먼저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드립니다.
지금까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기민당을 이 사람이 선택하여 이곳에서 창당을 하게 된 것은 이 나라의 기존 정당이 시대와 그 시대의 국민들 앞에 사명감 같은 걸 내어놓지 않고 당리 당책과 자신들의 이익에만 치중하는가 하면 또 자신들에 의해서 생긴 모순에 억울한 사람이 생겨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괴상한 버릇을 보고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나는 오늘 양심 있는 사람들 편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의 주위에는 교회의 목사님과 신부님이 있습니다. 또 자기를 속일 수 없는 양심인 들이 기민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권을 탐내지도 않고 권력을 탐내지도 않으며 부귀영달을 탐하지도 않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하며 밝은 사회를 원하며 동포들의 앞에 희망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수치심을 잊은 채 계속 남을 속이는 자나 기대 가치가 없는데도 그것을 지키려는 역사에 반역하는 악인과 싸우기 위해 목적을 가졌고 또 진리에 따르는 정치를 소생시키기 위해 민족의 양심을 직결시키겠다고 그 뜻을 밝혔습니다.
존경하는 애국 시민 여러분!
어떤 사회이든 양심이 지켜질 수 없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사회에 살고 있느냐 불행한 사회에 살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여러분 개인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행한 사회에 살고 있다면 그 책임은 마땅히 이 나라 안에 존재한 정권과 그 주변이 책임을 져주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이 그런 것을 몰라라 한다면 그 행동은 양심이 없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상식이 떠난 사회는 위험한 사회입니다. 그래서 이 참에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구해야 되겠다고 떠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소릴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의 가족은 걱정이 생겼고 저는 다리를 펴고 잠을 자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위험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조국에 바치려는 나의 애정입니다.
더 많은 젊은 양심들을 형무소로 보내느니 보다 내 생명을 바쳐서라도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나의 용기가 양심을 포기하라는 선언에 맡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장래는 여러분의 심판에 의해서 앞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아직도 이 나라에는 상식을 살리고 양심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말뿐입니다. 자신이 박해 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안일을 생각하는 쪽으로만 기운다면 그것은 두려운 세상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사는 행위이며 이런 짓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짓으로써 자신에 대한 자기 책임마저도 부인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또 장차는 스스로 멍에를 멘 노예생활의 시작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정말 자신을 버린다는 것이 자손들의 앞날에도 삶의 수단이나 행복이 될까요? 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나는 오늘 이 자리를 빌어 이 땅의 모든 사람들한테 외치고자 합니다. 비겁한 자신과 싸워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 길이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는 길이며 조국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여러분의 방관적인 나약함은 이 땅에 양심과 정의를 침몰시키는 길이며, 정의와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영원히 어둠 속에 잠긴 그런 세상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세월이 좀 더 흘러 살기가 어려워지고 억울한 일이 생기고 나서 후회하고 반성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늘의 현상은 전적으로 국민 전체가 책임질 것이 많습니다. 주인노릇을 안 하려고 하니깐 당연한 벌을 받는 것입니다.
좀 더 정신 차리고 살자며 호소하는 사람을 보고 손가락질이나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라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또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고 그런 말이 불신을 낳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딱한 사정을 저마다 지닌 채 가슴을 치고 후회할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남의 출세나 부러워하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던 나약한 시대적 배반 행위에서 탈출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스스로가 자기의 희망과 자유를 얻기 위해 침묵을 버릴 때가 온 것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조국을 위하여 지킬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용기와 노력과 자신에 대한 투자만이 위대한 결과에 기다림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가치관을 지니는 것만이 이 땅에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상식이며 조국에 대한 의무라고 나는 판단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상이나 꿈을 찾기 위해서는 자기에 대한 도전이 꼭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 하나의 예를 보십시오.
가난했던 스위스 사람들은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 곳에서 진리 하나만을 지킨 용기에 의해서 세계에서 제일 소득이 높은 국민이 되었습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서구의 영국은 의지 하나만으로 간단한 법률로 이루어진 헌법만으로 오랜 세월을 두고 흔들리지 않고 세계 제일의 민주주의를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이런 주위의 사정과 내력을 배우면서도 현실을 해결하지 못한 것은 인재를 멀리하고 있으며 국민의 주인의식 포기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속이는 자가 있고 속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무 일도 지켜질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양심보다는 욕망이 지켜지는 사회는 스스로 그 고통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분명히 희망을 제시하였습니다.
정치가 잘 되는 나라나 경제부국으로 발전을 이룩한 나라들은 대부분 먼저 그 나라 국민 속에 믿음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며 개인의 창의력이나 용기가 숭상된 데서 생긴 것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람들보다도 못한 것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봐도 별로 빠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자 국민이 되고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못하는 사람들의 억지가 무섭기만 합니다.
나는 이런 자리에서 누구를 욕하려 들고 싶지도 않습니다. 한 마디하고 싶은 말은 오늘의 고통스러운 조국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제 가족들한테 못난 남편, 못난 아비가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오직 부족한 것을 찾으려 도전했습니다.
주위에 계신 동지 선배 여러분!
험난한 앞길에 격려와 충고를 보내주어 이 사람이 다른 길로 가지 못하게 지켜주고 오직 젊은 양심을 조국에 바칠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의 말씀을 올리며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저의 인사에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극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흥분했다. 박수와 환호가 폭발했다. 싸늘한 날씨였는데도 실내가 열기로 가득 찼다.
행사에 참석했던 중앙당 연사들의 축사가 있었고 친구의 자격으로 구좌석 형이 축사를 했다.
「젊은 사람이 험난한 세상에서 생명을 바치려고 하여도 바칠 곳이 없으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을 두고 죽어도 얼굴을 들지 못할 수치를 느끼면서 그래서 자신을 위로하고자 오늘 이삼한 동지의 양심적 선택에 조금이라도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제 집에서는 내려가지 말라고 붙잡는데도 고집부리며 이 곳에 찾아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부산 시민여러분, 여러분이 아직도 양심과 정의를 구하고자 하는 이곳의 열기를 보고 나 또한 나라를 위해 시비를 가려보고 싶은 심정뿐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시집살이 석 3년이란 말이 있습니다.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봉사 3년을 시집살이에서 겪으라는 말로 전해 온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정치하시는 높은 분들은 우리 국민을 보고 시집살이를 시킬 모양입니다. 엊그저께 신문을 보니깐 무고죄는 엄벌에 처하겠다는 담화가 발표되었는가 하면 국민들이 중상모략을 심하게 한다고 해놓았습니다.
험난한 세상에 살다 보면 그런 일도 더러는 있을 것입니다마는 왜 그런 말씀을 그분들이 자주 신문에서 대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침묵이 강요되고 있는 사회에서 울고 있는 동포가 얼마나 되는지 그런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국민의 위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자가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는, 10억에서 수백억까지 재산을 모았다는 소문은 사실인가 거짓인가 밝혀보겠다는 의사는 한 번도 밝혀 본 바가 없습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에다 재갈을 물리며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고 엄포를 주면 국민은 누굴 믿고 살며 사람의 양심을 두었다가 어디에 쓰라고 배고픈 사람한테 시집살이만 시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지 살기가 죽기보다 더 지루합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짊어지고 있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양심과 용기가 있는 사람을 정치현장에 내몰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부산에서 살고 계시는 여러분이 저보다 더 잘 아시는 일입니다만 이삼한 동지야 말로 이 땅에서 자기와 싸울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인물이며 그분의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도 이 땅에 살고 있는 동포의 사명자로서 손색이 없다고 본인이 생각하였기에 고민이 많은 정권이나 고달픈 민족이나 영광이 없었던 조국을 위해 이런 분께 십자가를 지워야 한다는 사실이 저의 심중에 확신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거듭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이삼한 동지가 불의와 싸워 좌절하지 않도록 격려와 또 스스로 채찍이 되어주실 것을 당부 드리오며 상식이 숨어버린 사회에서 상식을 되찾고 축복이 멀어진 곳에 축복을 구하며 역사 앞에서 진실을 되찾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축사에 대신합니다.」
민주통일당 당직자 이경식 동지 축사
<나는 민주통일당의 당적을 가진 이경식입니다.
긴급조치인가 무엇인가 하는 것 때문에 감옥에 갔다가 최근에 석방되어 오늘 부산 영도에서 이삼한 동지가 기민당을 창당하고 양심과 용기를 조국의 장래에 바치겠다는 장한 결의를 불초 이 사람이 격려나 좀 해주고자 이곳에 찾아왔습니다.
가까이에 계신 주민 여러분!
나라를 위해서나 여러분을 위해서 이삼한 동지 같은 젊은 양심이 조국을 위해 싸울 수 있게 힘이 되고 보호자가 되어 같이 행동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특히 요즈음에 와서 어떤 문제든지 사실을 알고 행동해 달라고 거듭 부탁을 드립니다. 지나고 나서 속았다고 한탄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슬픈 일을 당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다면 예방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엊그제 감옥 구경을 갔더니 별의 별 사람을 다 만났습니다. 세상인심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들은 사실 다 털어 놓으면 이곳에 오신 분들 마음 소란해질 것이고 이곳에 나와 있는 경찰관들 입장이 곤란할 것 같아 꼭 해야 할 말만 골라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조국이 바라는 지도자, 여러분이 바라는 지도자는 여러분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96)부산 제3지구당 창당준비대회에 가셔서 축사를 하심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을 돌볼 기회도 어려울 때 조국을 사랑하고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오늘 이 자리를 만들고 또 이곳에 나와 준 손용규 위원장의 애국적인 자기 양심에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지의 한 사람으로서 고마운 마음으로 나의 뜻을 전해드리며 오늘 이러한 출발을 위해 도와주신 당원동지 여러분의 열성에 뜨거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간다고 느껴지는 현장에서, 누군가가 이 자리에 뛰어들어 사실을 확인하고 희망을 심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순박한 양심에 자기희생을 동의했습니다마는 험난한 세상의 인심이 정의를 찾으려는 노력에 두려움과 외로움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뜻은 있어도 말은 못하고 알고는 있어도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바로 우리들 주위에 긴급조치가 선포되어 있습니다.
가족을 생각할 때 이 땅에 태어난 자신을 슬퍼해야 했습니다. 자신이 두려운 사람들은 남을 편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통은 또 고통으로 이어져가고 있는데 그것을 치료해 주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절망적인 문제에 대해 해결을 해보겠다고 병드는 사회를 고쳐보겠다고 정치해 보겠다고 손용규 위원장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곳에 자리를 같이 해주신 당원동지 여러분 또 내빈 여러분!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손 위원장이 도맡아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오늘 널리 알려주시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셔서 이 나라의 정치를 바로 잡기 위해 힘이 되어주시길 간구하는 바입니다.
제가 오늘 손 위원장을 처음 이 자리에서 보았습니다만 관상을 보니깐 완전히 진짜였습니다.
세상에는 가짜가 많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면 많이 기억해 내실 것입니다. 이씨 세상에는 이씨 것이요, 윤씨 세상에는 윤씨 것이요, 박씨 세상에는 박씨 것이요, 또 다음 세상에는 다음 사람의 것이 될 줏대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웃을 속이고 사회를 속이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속이고 줄을 잡는 사람들, 그들이 오늘날 우리의 세대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셔야 할 것입니다.
일꾼이라고 골라놓으면 일은 안하고 감독한테 잘 보이기 위해 아양만 떠는 이런 게 일꾼입니까. 기생이지.
농사를 망치면 핑계는 하늘에다 둡니다. 속은 사람은 말도 못합니다. 이런 세상에는 그래서 인지 이유가 많습니다.
쉬운 말로 제가 여러분에게 하나 물어 보겠습니다. 대한민국 법률 제1조에 보면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조문이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 바로 여러분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그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여러분이 주인 대접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잘못 보였다가는 천덕꾸러기 대접도 못 받습니다. 왜 세상이 요지경으로 변했습니까.
줏대 없는 작자들 때문이요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고 직무를 유기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래서 답답한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애국심만 믿고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패가망신은 그냥 두고 생명까지도 걸어야 하는 이런 자리로 뛰어 나왔습니다. 바로 잡아야 한다. 바로 잡아야 한다. 그 마음으로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 집에는 한숨소리뿐입니다. 제 행동이 안타까워 제 여편네가 죽을 지경이랍니다.
동포가 무엇이며 조국이 무엇이냐고 나를 타이르는 여자의 마음, 남들처럼 살아가자고 절규하는 자식을 키우는 여자의 변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목석이 아닌 사람의 심중으로는 애간장이 녹을 때도 있습니다. 자식의 애처로운 눈물을 볼 때마다 못난 애비의 변을 느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양심을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고집을 부리며 버티고 있습니다. 저희는 양심을 이 땅에 바칠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점이 있어도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당원동지 여러분 그리고 내빈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손 위원장의 처지와 심정을 깊이 아시고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 땅에서 양심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유의하시고 이끌어 주시고 채찍질해 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속담에 아기가 크면 어른이 된다 는 진리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희망을 키우면서 현명하게 살아 갈 국민이 될 것을 같이 다짐해 보면서 오늘 이 식전에 나와 축사에 갈음합니다. 감사합니다.」
(96)부산 제3지구당 창당준비대회장 손용구씨 실종으로 북부경찰서를 방문하심,
(97)서울 창당준비위원회 방문
<나의 아버지는 석수장이로 화전을 일구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기억에 담을 수 없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혼자된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나를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달픈 여인의 힘에 부담을 준 짐이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분도 아홉 살 적에 돌아 가셨습니다.
열 살 때부터 세상의 인심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냉정한 사회에서 살려고 하다 보니 별 것 다 겪은 사내입니다.
남루한 내 꼴이 이웃으로부터 멸시를 받았지요. 어떤 때는 동리에서 성질이 사나운 아이들의 분풀이 대상도 된 적이 있었습니다. 형제조차도 나를 학대하였습니다. 나는 힘없는 동물처럼 세상을 두려워하며 살아왔습니다.
13살 때에는 신문장사, 아이스케키장사, 중국인 주물공장의 노동자, 좌우지간 궂은일은 무엇이든지 해보았습니다.
지금 저는 너무 복잡한 나를 다 소개는 못합니다. 너무 기니까요. 군대라는 곳엘 갔다가 제대해 보니깐 성인이 되었지요.
빵 문제 때문에 취직을 하려고 하였더니 보증인이 없어서 몇 번이나 직장을 못 구하고 질식할 것 같은 감정을 느끼던 날, 나는 세상에서 어떤 사명을 느끼고 정치를 해 보겠다고 뛰어 다녔습니다. 비로소 내 적성에 맞는다는 걸 느꼈습니다.
조직 속에 들어가니깐 난생처음 사람대접을 받았습니다. 대중당에 입당해서 지구당위원장, 청년국장, 사회단체 회장, 준비위원장 같은 것은 열 번도 더 맡아 보았습니다.
간이 커진 제가 1971년 5월 25일 선거에 출마를 했더니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입을 딱 벌립디다. 나는 내 자신의 무지 때문에 언제든지 참모를 필요로 했고 한 번도 '부'자 붙은 자리에는 앉아보지를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당 대표나 한 번 해 볼까 했더니 정치위원밖에 못 됐습니다마는 우리들이 있는 곳이 양심세력이라는 데 매력을 느끼며 나의 양심을 통해 자신의 발전을 기대합니다. 앞으로 잘 이해하고 지내봅시다. 나에게도 소개의 기회를 주어 감사합니다.」
(98)1978.11.28.합동연설회 개최.
청학초등학교 운동장이 연설장,
<10대 총선에서 10번의 기호를 타고 10번 째 연설을 하겠다고 이곳에 나온 이삼한입니다.」
하면서 허리를 구부렸다. 사람들은 나의 인사말에 대접을 해주는 것인지 박수를 쳤다. 나는 다음 말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이번 지역선거에서 한 사람에게 십자가를 세 번씩이나 지워준 것은 나의 요술이 아니고 신의 뜻일 것입니다. 추운 날씨에 기다려 준 여러분에게 보답하기 위하여 제가 왜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되었는가 하는 말씀부터 해보겠습니다.
저의 가슴 속에는 답답한 것이 많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있는데 정치가 우리 주변에 없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들으면 애국자는 많은데 실제는 나라꼴이 말이 아닙니다. 국민들은 정말 믿을 데가 별로 없습니다.
사기당하고 억울하다고 가슴 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많이 사는 곳이 우리가 사는 땅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왜 이런 세상이 가면 갈수록 고쳐지지 않고 더해 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우리가 뽑아 보낸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나가서 도대체 어떤 일을 했기에 이렇게도 억울한 사람 슬픈 사람이 생기는가 알아봐야 하겠고, 또 방치할 수 없는 우리들 주변의 사정을 반영해 보고자 꽤 까다로운 선거에 출마하고자 여러분 앞에 나섰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돈이 많아서 명성을 얻으려 나온 사람도 아니요. 관록이 좋아서 자랑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요. 학벌이 좋아 누굴 가르치겠다고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세상 꼴과 걱정스러운 나라의 장래를 두고 참고 견딜 수가 없어서 나 같은 사람이 나와서는 요런 세상에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젊은 양심은 조국을 그냥 외면할 수가 없어서 나라를 구해 보겠다고, 죽어가는 정치를 구해 보겠다고 아까운 목돈을 구해서 공탁금까지 실제 두고 보면 알 일이지만 저 같은 것은 기부금이 될 것이지만 500만원이나 내어 놓고 나왔습니다.
이번 선거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나라나 우리 개인이나 중요한 선거이기 때문에 저 또한 결심이 다른 사람 같지 않고 특별히 대단하였던 것입니다.
이 중요한 선거에서 이 땅의 주권자인 여러분들께서는 안면이나 물질의 유혹이나 협박과 회유에 속지 말고 여러분 자신이 입후보 등록은 안 했더라도 한 사람의 후보자로서 임해줄 것을 부탁드리는 바이며 또 주위에다가 이번 선거야 말로 중요한 선거이니 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 용기가 있는 사람, 양심이 있는 사람, 정의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선거 풍토를 조성함으로 해서 정말 나라의 장래를 구하는 일에 같이 힘써 주실 것을 한 사람 국민 된 양심으로서 여러분에게 부탁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서 날씨가 쌀쌀한데도 마지막 사람까지 연설을 들어 보겠다고 남아 주신 유권자 여러분,
여러분의 말을 듣지 않더라도 나는 여러분의 심중을 헤아릴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 또한 지금 심정은 앞에 나와 이곳에서 연설은 하고 있어도 실제 제 심정은 여러분의 심정 바로 그것과 같습니다.
나는 법률과 양심을 보호하지 않는 모순된 오늘날의 정치와 싸울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나는 정의를 외면한 무능하고 용기 없는 사이비 정치인과 싸우겠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오늘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여러분 그놈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박수 좀 치십시요. 오늘 날씨가 추워 그런지 저의 마음이 차갑습니다.」
하고 말을 끝내니 사람들 속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는 다음 말을 끄집어내었다.
「요즈음 세상을 보니 보는 것마다 기막히고 답답한 일 뿐입니다. 긴급조치다 뭐다 해서 남의 양심에다 수갑까지 채우는가 하면 가진 것을 일구어서 저축은 고사하고 외부에서 빚내어다가 흥청거리는 것 보고 정치 잘 한다고 줏대 없는 소리나 씨부리는 자들을 지도자 만든다고 떠드는 것을 볼 때 눈물까지 나옵니다.
인재가 그 사회에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 이런 일은 역사책에도 없습니다. 양심을 버린 사람들을 보고 순진한 사람이 걱정을 한다고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까.
장사 한 번 안 하고도 수백억 원을 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깨비 부자인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방망이의 요술이냐 그렇지 않으면 협잡이란 요술이냐 궁금합니다.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생활을 부러워하게 됩니다. 또 그런 나머지 세상에는 별의 별일이 많습니다.
억울한 자가 많이 생길 것은 엄연한 이치이지만 이 억울한 사람들이 호소할 곳이 없어 가슴을 치는 것을 볼 때 양심을 가진 자의 힘없는 가슴에 그 고통이 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슬픈 사연들의 종식을 위해 우리 동포의 모두는 비겁한 자신과 투쟁해야 한다는 원칙을 보이기 위해 나는 출마를 했습니다.
이곳에 나오신 분 중 저보다 여건이 못한 분은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조국을 위해 행동을 보이지 않는 한 우리의 앞날은 어둠 속에 묻히게 될 것은 구태여 예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책임을 질 수가 없다고 발뺌을 한다 해도 가까운 앞날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일어나기에 힘이 들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일을 방관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 땅에 태어나서 누구보다도 충분히 고생을 경험했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미래에 대한 행복으로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지금 그 미래가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이것을 구할 수 있는 자는 여러분과 나입니다. 여러분이 하겠습니까. 제가 할까요, 누가하든 각오는 단단히 하고 대들어야 할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후보 상대자들은 내가 무슨 이야길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을 위해서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특히 정계로 관계로 두루 돌아 다녀보신 분들은 자기들 의견을 그 동안 많이 반영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꼴이 요즈음 보니까 요 모양 요 꼴입니다. 조금치라도 그런 사람들은 아직 양심이 있다면 오늘의 사회에 대해 변명 같은 것 구태여 생각하려고 하지 말고 새로운 시대를 위해 스스로 용단을 내려 줄 것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께는 이 자리가 웅변 대회장 같이 변하는 자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또한 제 주장입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인재의 앞길을 막는 행위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자랑이 되는 그러한 시대가 지금은 아님을 경고하겠습니다. 현재의 어려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지 못하겠다 싶은 분들은 미안하지만은 오늘 이 자리에서 사퇴해 달라고 제의하겠습니다.
나라가 중요하고 희망이 중요하고 사실이 중요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아야 할 현실인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일을 하겠다고 후보자와 유권자 여러분 앞에 자신 있게 공약하는 바입니다.
나는 평소 우리나라 정치인 김두한 선생과 서민호 선생의 의회 활동을 존경해온 사람으로서 그분들과 같은 길을 걸어 갈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여러분 오늘 동리로 돌아가시거든 저의 말씀 좀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고장의 명예를 빛낼 것은 물론 나라의 장래를 빛나게 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번째 정견발표회, 영주동 봉래국민학교에서 개최됨
<그저께 청학국민학교에서 있었던 연설회에서 열 번째 연설을 하였습니다. 내 차례까지 기다리다 보니 아홉 사람의 연설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두 한결같이 국민학교 학생 때 하던 웅변대회에서 연사들 인양 유신 정부의 대변인처럼 대안도 없이 참으라고 하는 식의 소위 오늘날 권력 쥔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것 같은 말만 하고,
목마른 사람들 보고 언제 비가 올 것이라는 말은 빠뜨리고 문자 타령만 하는가 하면 저희가 일당 주고 끌고 온 사람들 보고 박수 치기나 시키는 것을 보고 그 사람들의 웅변이 하도 딱해서 제 마음 속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때 내 차례가 되어서 죄 없는 마이크에다 대놓고 고함을 좀 질렀더니 이렇게 목이 꽉 잠겨서 제 말을 듣기가 여러분들께서는 거북하실 줄 믿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사회와 조국의 장래를 생각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올라왔으니 주어진 시간 동안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나의 주장은 언제나 핑계 잘 대는 사람만 속아서 뽑아 더러운 꼴만 당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하고 있는 괴롭고 어려운 일을 하나하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지지하며 뽑아주어야 한다는 주장부터 먼저 하겠습니다.
자식대대로 유신이나 할 것이며 부족한 희망 속에서 한국적인 민주주의나 이해하며 속아주고 또 속아주고 억울해도 입 닫고 참고 또 참고 하는 지루한 일만 되풀이하지 않고 좀 똑똑하고 용기 있는 사람을 뽑아서 세계적인 민주주의를 하도록 해 보고 일등 국가를 한 번 만들어 보자 하는 것이 나의 소신입니다.
말 잘 하는 사람의 말만 믿고 살지 말고, 안 되는 일의 원인을 하나하나 확인하여 바로 잡도록 하고, 답답한 사람들 답답하지 않게 하는 사회 풍토를 개선해 보자는 것이 제 정치적인 주장입니다.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란 일꾼을 뽑는 것이 선거인데 여러분께서는 상전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을 뽑게 되는 그런 곤란한 일을 저지르지 말자는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이번 선거에 나온 사람 중에서 현재의 선거법 덕분에 1등 2등만 하면 된다는 기대에서 나온 사람 중에는 1등 2등할 만한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악법도 법이라는 이유 때문에 법을 내세우는 현장에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가슴에 새기면서 저의 생활에서는 대단히 큰돈인 500만원을 공탁금으로 내놓고 조국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출마는 했습니다마는 여러분에게 제 자신을 알리기에는 너무나 답답한 일들뿐입니다.
공개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보장된 방법이란 것은 고작 4번의 합동연설 기회뿐인데 그것도 짧은 20분 동안이니 4번 다 합쳐보아야 80분입니다.
장소도 제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지정해 주는 곳에서 그것도 제비뽑기로 운수를 잡아야 하는 순위 결정에는 난감할 뿐입니다.
잘못 뽑았다가는 사람 다 나가 버린 운동장만 보고 가슴 속에 울부짖는 애국심을 호소해야 하는가 하면 잘 잡았다 해도 돈 많은 사람 권력주변에서 노는 사람들이 데리고 오는 박수부대 앞에서 제 신세 생각하고 울어야 하니 도대체 이 딱한 남자의 사정을 어떻게 해야 옳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돈을 쓰면 안 되는 선거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돈을 막 뿌립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7사람 달리기를 하는데 완전 자유로운 사람과 손이 묶인 사람, 발이 묶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 같은 사람은 지금 손발 전부 묶인 채로 모든 규칙 다 지켜야 하는 형편입니다.
이게 무슨 장애물 경기입니까? 여러분께서는 공평한 심사를 할 수만 있다면 확인해 보십시오. 제가 1등입니다.
그런데 이게 장애물 경기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 사람 욕심에 다른 사람들이 위반을 하는 것 아닙니까.
이유는 알 수 없고 이유를 몰라 심판한테 물어보면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그 사람들 말이 더 근사합니다. 웃기는 경기 같지요. 이번에는 꼭 공명선거를 하겠다고 신문에서 떠듭니다마는 그래 이런 방법이 공명선거입니까?
제가 지금 국회의원이 못될 것 같아서 이렇게 떠드는 것이 아닙니다. 조국을 생각하고 동포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역사를 생각할 때 안타까워서 외치는 것입니다.」
(100)1980년이 됨
10.26.발생
1980.5.18.
1980년 처가 장인이 돌아가심
1981.8.4.
1981.12.26....3,000만원 부도
2.별세 년 : 2008.8.21.별세..2008.8.21...별세....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별세
3.
1983년.(42세) : 자서전 <외로운투쟁> 출간
1984년(43세) : 깨달음을 얻으심(1984년 43세때 깨달음을 얻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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