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冠岳山)의 왕후묘(王后墓)
폐왕 연산군이 재위 중 산림이 울창했던 관악산으로 사냥을 나갔다.
몇 사람의 내시를 대동하고 있었는데 산기슭을 돌아 내를 건너려 하는데 연산군이 우두커니 서서 한 곳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연산군이 쳐다보고 있는 곳은 빨래터였고 그곳에는 한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정하. 어언 일로 내를 건너지 않으시는지요?”
다가온 내시가 조용히 여쭈었다.
“갑자기 사냥하고픈 생각이 없어졌다.”
“날이 이리 화창한데 어언 말씀이신지요?”
“너희들 눈에는 저기 빨래하는 처녀가 보이느냐? 미인이더냐? 박색이더냐?”
“촌녀지만 천하절색으로 보이나이다. 전하.”
“역시 과인의 눈이 틀리지 않았구나.”
이 말을 들은 내시들은 그 때야 상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한편 빨래터의 처녀는 웬 남정네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을 힐끔거리고 있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빨랫감을 챙겨서는 급히 집으로 향했다.
놀란 토끼마냥 달려가는 처녀를 본 연산군은 내시에게 말했다.
“저 계집의 집을 확인하고 오렸다. 오늘은 호젓한 촌락에서 회포를 풀어보겠다.”
내시는 이내 복부하고선 처녀의 뒤를 다르기 시작했고 처녀는 헐떡이며 자기 집 사립문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마당에 있던 어머니가 물었다.
“얘야. 뭔 일인데 빨래를 하다 말고 이리 급히 오는 게냐?”
“어머니. 이상한 사냥꾼들이 절 따라와요. 저 보세요.”
바로 이때 말발굽소리가 멈추더니 사냥꾼 서너 명이 사립문으로 들어왔다.
“당신이 저 처자의 모친 되시오?”
“네. 그렇긴 합니다만 무슨 일로.. 혹 제 딸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습니까?”
“우린 상감마마를 모시는 사람들이오.”
“네에?”
모녀는 눈이 화등잔 만해져 안색이 변해 벌벌 떨고 있었다.
“오늘 상감마마께서 이 근처로 사냥을 나오셨는데 이곳에서 하룻밤 유할 것이니 방을 깨끗이 치워놓도록 하시오.”
“이 누추한 촌것들의 집에서 어찌....”
“상감의 영이니 그리 아시오. 아 참. 댁의 따님이 상감마마의 수발을 들 것이니 그리 아시오.”
내시들은 이내 자신들의 말을 다 했다는 식으로 말머리를 돌렸고 어안이 벙벙한 모녀는 할 말을 잃고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어명이니 서둘러 준비해 두시오.”
멀어지던 한 사람의 말이 재차 들리고서야 모녀는 현실감을 되찾고 힘없이 쓰러져 앉아 흐느낄 뿐이었다.
“어머니. 전 어떻게 해요? 승기는요? 승기가 알면 절 죽일 건데....”
이 처녀는 윗마을의 개똥이 승기와 약혼을 한 사이고 혼례 날을 잡아 놓은 상태였다.
마침내 저녁이 되자 임금 일행은 사슴 한 마리를 잡아와 잔치 아닌 잔치를 열었고 잔치가 끝나자 드디어 연산군은 은주 처녀를 불러 들였다.
“이런 촌에 너처럼 고운 처녀가 있을 줄은 몰랐다. 어서 이리로 오너라.”
그러나 은주 처녀는 움직이질 않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허어. 이런 날 왜 우는 것이냐?
연산군이 엄하게 꾸짖자 고개를 숙이고 잇던 은주 처녀가 조용히 그러나 또렷한 말로 아뢰었다.
“소녀에겐 곧 혼례를 치를 약혼자가 있나이다.”
“머라? 약혼자가 있다? 그게 먼 상관이라더냐? 짐은 곧 만백성의 어버이! 네게 지아비가 있다 한들 무슨 상관이냐? 어서 옷이나 벗거라!”
한편 은주 처녀의 약혼자 승기는 저녁 들일에서 돌아와 뒤늦게 이 소식을 듣고는 은주 처녀의 집을 쳐들어가다 내시들에게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맞고는 처녀 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더러운 놈! 지가 임금이면 임금이지 어찌 남의 여자를 강제로 취한단 말이냐? 네 놈이 게속 왕위에 있는 다면 내 성을 갈겠다. 박에서 ㄱ자를 빼고 바지씨가 되겠다!!”(사실 승기는 집필자 임. ㅋㅋ)
승기는 통곡을 하며 울분을 속으로만 삭여야 했다.
그리고 이후 은주와 승기는 혼례를 올렸습니다. 더 이상 개놈 같은 연산군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 추잡한 기억을 잊고 해로를 했을 것이건만....
그 후로도 연산군은 관악산으로 사냥을 나오면 은주에게 수청을 요구했고 은주는 어쩔 수 없이 수청을 들고 말았다.
‘내 어이 한 남자의 지어미로 계속 임금의 수청을 들 수 있겠는가? 지금도 낭군에게 얼굴을 들 수 없는 지경이건만... 차라리 죽어 없어지면 더는 찾지 않으리라....’
은주는 마침내 뒷산 소나무에 목을 매었고 이를 발견한 승기는 은주의 싸늘항 시체를 안고 사라졌다. 그 뒤 승기를 보았다는 사람은 이조시대엔 없었다 한다.
그런데 연산군의 파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은주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 온 연산군은 다시 은주를 찾았고 자살했다고 아뢰었으나 이를 믿지 않고 그 무덤을 파 확인하려 했다.
“괘씸한 것들 같으니! 내가 너희들 잠 너리에 속을 줄 알았더냐! 날 솏이고 멀리 달아나 살려구?”
하면서 은주의 무덤을 파헤치라 명했다.
한데 이 때 이 전설은 시작된다. 막 병사들이 무덤을 파려고 하자 어디선가 은주의 목소리가 울려오는 게 아닌가 말이다.
“마마. 마마.....”
“아니? 이 목소리는 은주의 목소리인데....!”
“마마. 마마. 이부종사를 한 죄 많은 여인은 죽음으로써 지아비에게 사죄코자 세상을 하직하였는데 어찌 계속 괴롭히시옵니까? 하니 차후엔 저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은주의 목소리가 차즘 멀어지더니 소멸되어 버렸다. 은주의 목소리가 사라져서야 연산군은 주위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 너희들은 은주의 목소리를 들었느냐??”
그러나 주위 누구 하나 그 목소릴 들은 자는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연산군은 보통의 일이 아니라 생각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명했다.
“그 무덤을 원래대로 덮고 비석을 세워 왕후묘라 하라!”
그런 뒤 연산군은 사냥을 나올 때마다 왕후묘에 명복을 빌었고 몇 년 뒤 연산군이 폐위 당하자 이 왕후묘도 임자 없는 무덤이 되어버렸다 한다.
이 왕후묘는 경기 시흥군 동남쪽의 관악산(현 서울시) 중턱의 바위에 얽힌 사연으로 오늘날 몸을 마치 상품인양 팔고 사는 현실에 비추어 부귀영화를 마다하며 한 사람에 대한 지고한 사랑을 염원했던 여인의 정신을 말 하는 것으로 이런 정신으로 사랑하는 부부라면 이혼이 난무하는 오늘의 현실이 이렇게 각박해지자는 않았을 거라는 교훈을 남기도 있다 하겠다.
은주야 나 다시 환생했어.. 곧 찾아 갈게...
이상 끝. 06년 4월 28일 아침이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