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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위치: 동남아시아
인구: 280,908,449명 (2023년 추계)
수도: 자카르타
면적: 1,910,931㎢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인도네시아 공화국 (Republic of Indonesia)
기후: 열대성기후
민족 구성: 자바인(45%), 순다인(14%), 마두루인
언어: 인도네시아어
정부/의회형태: 중앙집권공화제 / 다당제&양원제
종교: 이슬람교(88%), 개신교(5%), 로마가톨릭
화폐: 인도네시아 루피아 (IDR) 환율계산기
국화: 자스민
대륙: 아시아
국가번호: 62
GDP: USD 1,074,966,000,000
인구밀도: 142명/㎢
전압: 220V / 50Hz
도메인: .id
인도네시아와 한국과의 관계
▶ 외교
▶ 경제·통상·주요 협정
▶ 문화교류·교민 현황
요약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걸쳐 있는 섬나라. 수마트라 섬에서 뉴기니 섬까지 펼쳐져 있다. 수도는 자카르타이다.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다. 주민 대부분은 오스트로네시아 언어를 쓰는 말레이인이며, 이슬람교를 신봉한다. 농업과 광업에 바탕을 둔 개발도상국으로서 혼합경제체제를 갖추고 있다. 국민총생산(GNP)가 인구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1인당 GNP는 낮은 편이다. 1/4을 차지하는 농업 부문에 총노동력의 절반 가량이 종사한다.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섬나라. 수도는 자카르타이다. 서쪽의 수마트라 섬에서 동쪽의 뉴기니 섬까지 약 5,100km, 남북으로는 약 1,600km에 걸쳐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는 파푸아뉴기니와 아라푸라 해, 남쪽과 서쪽으로는 인도양, 북서쪽으로는 안다만 해, 북쪽으로는 말라카 해협, 남중국해, 셀레베스 해, 태평양 서부 해역과 이웃한다.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2019년 8월, 보르네오 섬의 동 칼리만탄 북프나잠 파세르군과 쿠타이 카르타느가라군 일부 지역에 새 수도 건설 계획이 발표되었다.
자연환경
인도네시아의 주요섬들은 빽빽한 열대림으로 뒤덮인 울퉁불퉁한 화산성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열도의 바깥쪽, 즉 남쪽에는 수마트라·자바·발리·롬보크·숨바와·플로레스·티모르 섬이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늘어서 있다. 열도 북쪽에는 인도네시아어로 칼리만탄이라고 부르는 보르네오 섬이 있다. 보르네오 섬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섬이며, 대부분 구릉과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묘하게 생긴 셀레베스(술라웨시) 섬이 보르네오 섬 동쪽에 있으며, 그 옆으로 계속해서 몰루카 제도 북부의 섬들과 뉴기니 섬이 이어진다. 뉴기니의 서반부는 이리안자야라고 부르는 인도네시아 영토이다.
인도네시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라카타우(크라카토아) 화산을 포함하여 220여 개의 활화산이 있다. 1883년에 일어난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은 유사 이래 가장 큰 화산활동 가운데 하나로 자바 섬과 수마트라 섬 사이 순다 해협 해저에서 분화했다.
인도네시아의 기후는 대체로 고온다습한 열대성기후로 평균기온은 해안지방이 가장 높고 보통 23~31℃의 분포를 보인다. 1년 내내 비가 많이 내리는데,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내리는 오후의 집중 호우가 강수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국토의 약 17%만이 경작이 가능하고, 또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자바 섬 중북부와 수마트라 남서부의 이모작 벼농사를 비롯한 벼재배에 이용된다. 국토의 7%는 목초지로 쓰인다. 열대우림이 인도네시아 전국토의 2/3가량을 덮고 있다. 해발 1,500m이상인 고지에서는 온대우림이 발견되고, 수마트라·칼리만탄 섬의 지대가 낮은 해안선을 따라 곳곳에 자리잡은 습지에서는 홍수림이 자란다.
인도네시아는 동물 분포상 2개의 지역으로 나뉘는데 서쪽은 아시아 동물상을, 동쪽은 오스트레일리아 동물상을 보인다. 아시아 동물군에는 무소·오랑우탄·맥류(貘類)·호랑이·코끼리 등이, 오스트레일리아 동물군에는 볏을 움직이는 앵무새들과 바우어새, 극락조류의 각종 새들이 서식한다.
국민
인도네시아 국민은 250여 종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300개 이상의 민족집단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은 오스트로네시아(말레이폴리네시아)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을 사용하는 말레이인이며, 이슬람교를 신봉한다. 그 다음으로 규모가 큰 민족집단으로는 자바인이 있는데, 언어 또한 가장 우세한 자바어를 사용한다.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종족은 크게 세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집단은 힌두교를 믿으며 자바와 발리 섬 내륙에서 벼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로 자바인·순다인·마두라인·발리인 등을 포함해 전체인구의 2/3를 차지한다. 2번째 집단은 수마트라 섬의 말레이인과 셀레베스 남부의 마카사르족을 포함해 이슬람교를 믿는 해안지방의 민족들이다. 3번째는 다야크족을 비롯해 국가가 관장하는 생활 영역에서 벗어난 소수 부족 집단들이다.
원주민 이외의 최대 민족집단은 중국인으로 대부분이 이곳에서 몇 세대째 살고 있다. 공용어인 바하사 인도네시아어는 수마트라 섬 동부의 잠비 지역에서 사용되는 말레이어 방언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요종교들은 자바 섬, 수마트라 섬 남부 같은 개방된 지역 외에는 해안지방에 먼저 전래된 후 서서히 내륙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국민의 약 4/5가 신봉하는 이슬람교는 대체로 힌두교, 불교, 전통적인 애니미즘 등의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힌두교도들은 주로 발리 섬에 거주하며, 중국인들은 대부분 불교와 유교를 신봉한다. 멀리 떨어진 오지에는 몇몇 부족 종교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인구밀도는 151명/㎢(2023)으로서, 인구가 밀집한 자바 섬에만 인도네시아 총인구의 1/2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마두라 섬, 발리 섬, 수마트라 섬과 셀레베스 섬의 일부 지역들도 인구밀도가 높다. 1960~90년에 인구는 전체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2배 가량 늘어났지만, 1970년대 이후 출생률은 늦은 결혼, 산아제한법 도입, 가족 계획 등으로 인해 급격하게 감소했다. 특히 자바 섬 중부의 출생률은 현저하게 낮아졌다. 또한 영·유아 사망률도 보건위생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크게 감소했다. 인구의 1/4 이상이 15세 이하이며, 평균기대수명은 남자 67세, 여자 71세이다(2020).
언어
공용어는 말레이어의 방언인 인도네시아어로 인도네시아의 국어이다. 인도네시아어는 말레이어가 달리 표준화된 형태로서 1928년 청년단체가 말레이어를 약간 개정하여 인도네시아어로 제정한 것이다. 말레이반도에서 사용되는 말레이시아어와는 거의 흡사하나 발음, 철자, 단어의 의미, 문법 규칙 등이 약간씩 다르다. 어족으로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중 서부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말레이어군에 속하며, 유형학적으로는 교착어에 속한다. 말레이어가 국어이기는 하나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람은 약 3,000만 명 정도로 전국의 인구에 비해 의외로 적다. 이유는 말레이어는 과거 말라카와 말루쿠를 잇는 해상무역의 과정에서 골고루 사용된 것을 바탕으로 전 국민이 제2언어로서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 인구수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인의 제1언어는 실질적으로 자와어이다. 회화체 언어로는 어휘, 문법 규칙 등이 서로 다른 583개 이상의 방언이 인도네시아어와 함께 병존하며 각 지역의 일상 생활에 사용되고 있다.
수도 자카르타에 돈벌이하러 나오는 사람도 꽤 많기 때문에 지방 사람이라도 말레이어는 필수이며, 사용할 수 없으면 돈벌이에도 영향이 미친다. 인도네시아어 외에 인도네시아의 각 지역에서 사용되는 지방어는 현재 742개로 추산되며, 자와어, 순다어, 발리어, 마두라어, 람풍어, 바탁어, 아체어, 이반어, 다약어, 마카사르어, 부기스어, 마나도어, 말루쿠어 등이 있다. 정부 차원에서 많은 지방어가 관리되지 않아 특색있는 지방어가 줄어드는 실정이다.
인도네시아의 문자해득률은 2015년 기준 93.9%이다. 식민지 시절에는 네덜란드어가 공용어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의해 네덜란드어 사용이 금지되고 일본어와 말레이어가 공용어 기능을 하였다. 오늘날은 네덜란드어가 거의 쓰이지 않지만, 70세 이상의 노령 인구는 네덜란드어를 구사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와는 달리 인도네시아의 화교는 일상적으로 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하지만 화교끼리는 대부분 중국어를 사용한다. 본래 대다수 화교가 중국어를 사용하였으나,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은 이들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수하르토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각 민족의 문화를 이해하고 허용하는 말레이시아와는 달리 인도네시아에서는 모든 국민을 "똑같은 인도네시아인"으로 동화시키려는 정책을 펼쳐, 중국식 이름을 인도네시아식으로 개명하게 하였고(예: Kang → Kangean, Pang → Pangestu), 학교 또는 일상생활에서 중국어의 사용을 엄금했다. 수하르토 집권기 31년간 행해진 결과, 중국인들은 중국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수하르토의 하야 이후 하비비/와히드 정권을 거치면서 중국인 탄압정책이 폐지되었으나, 중국인들은 여전히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하며, 인도네시아어만을 구사한다. 최근들어 중국,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으로 유학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의 중국어 구사율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이들의 자연스러운 말레이어 사용은 말레이어의 사용을 꺼려하고 말레이 문화를 거부하는 말레이시아 중국인들이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인도네시아 내에서 나오고 있다.
문화
수세기에 걸친 문화적 동화작용의 결과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양식이 생겼다. 8~10세기에는 거대한 대승불교 유적인 보로부두르 및 광대한 힌두 사원 단지들이 자바 섬 중부에 건립되었다. 음악·춤·연극이 결합된 표현양식을 자바 섬과 발리 섬의 유명한 인형극 와양(wayang)에서 볼 수 있으며, 금속세공과 돌·나무·뼈·상아 등의 조각물을 포함하는 장식예술과, 복잡한 도안을 창출하기 위해 방염 왁스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섬유염색법인 납결염색법(바틱)이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문학사에는 구비문학과 기록문학이 모두 존재한다(→ 인도네시아 문학).
역사
신석기시대 BC 1000년경까지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한 언어를 사용하는 원시 말레이족 집단들이 아시아 본토에서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으로 이주해왔다. 이들은 현재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주민 대부분의 조상이 되었다. 기원후로 들어서면서 중국과의 상거래가 시작되었고, 또 인도로부터 들어온 힌두교와 불교가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들에 문화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9~13세기에는 말레이인이 세운 슈리비자야 왕국이 말레이 반도, 자바 섬 서부, 수마트라 섬 등지를 영역으로 번영을 누렸으며, 슈리비자야 왕국이 쇠퇴하여 소왕국으로 전락한 12세기말에는 자바의 마자파히트 왕국이 인도네시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13세기에 인도에서 온 이슬람교도 상인들을 통해 이슬람교가 수마트라 북부에 전래되어, 다음 2세기 동안 힌두교와 고유문화를 계속 고수한 발리 섬을 제외한 여러 섬들로 전파되었다.
15세기 후반 이후 마자파히트 왕조가 쇠퇴했으며, 16세기에는 신생 이슬람 무역국들이 여러 섬의 지배권을 놓고 자기들끼리, 또는 내륙의 귀족계급을 상대로 경쟁하게 되었다. 1511년 포르투갈인들이 몰루카 제도(향료제도)에 상륙했고, 뒤이어 스페인인·네덜란드인·영국인이 도착하여 현지 통치자들을 서로 적대하게 하는 방법을 통해 쉽게 지배권을 장악했다. 무역에 전념하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결국 자바, 수마트라, 몰루카 제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권을 획득하고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에 회사를 설립했다.
17세기말에는 네덜란드가 거의 모든 섬에 대해 경제적·정치적 지배권을 확립했고, 1811~16년을 제외하고는 20세기 중엽까지 계속 이 지역에서 지배권을 행사했다. 1927년에 수카르노를 총재로 한 인도네시아 국민당(Indonesia Nationalist Party/PNI)이 결성되어 네덜란드로부터의 독립을 꾀했으나 1929년 수카르노를 비롯한 지도자급 인사들이 검거되었을 뿐 실패로 끝났다.
1942년에는 일본이 네덜란드 식민통치로부터 이 지역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원주민들의 저항이 약해진 틈을 타 일본군이 인도네시아를 침략했다. 1945년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한 후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선포했고, 그후 4년 동안 지배권을 되찾으려 노력하던 네덜란드는 결국 1949년 인도네시아를 명목상의 네덜란드 연방으로 묶어두는 것에 만족하고 실질적인 독립을 인정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연방공화국이 결성된 후 수카르노가 대통령직에 올랐으나 이리안바라트(서(西)뉴기니, 지금의 이리안자야)의 장래문제가 1949년의 협정에서 미결상태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양국 사이에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었다. 계속해서 이리안바라트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하는 네덜란드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인도네시아는 1954년 네덜란드와 연방관계를 해체했다. 네덜란드는 1962년 이리안바라트를 일시적으로 국제연합(UN)에 양도했고, 이 지역은 결국 1969년 인도네시아에 합병되었다.
1965년 쿠데타를 진압한 수하르토 장군이 정권을 장악하고 1968년 대통령이 되었다. 수하르토 정부는 1975~76년 포르투갈령이었던 동(東)티모르를 인도네시아에 합병시켰다. 1998년에 불어닥친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인도네시아에까지 번져나갔고, 그 여파로 수하르토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결국 1998년 5월 21일 수하르토는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바차루딘 주수프 하비비에에게 정권을 이양했다.
종교
인도네시아는 국교가 따로 없고, 헌법 29조에 의해 6개 종교(이슬람, 개신교, 로마 가톨릭, 힌두교, 불교, 유교)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 다만 주의할 점은 무신론자는 공산주의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혹은 반대로 공산주의자는 무신론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신분증에 반드시 신앙이 명시되어야 한다. 물론 21세기 들어 이것이 전근대적인 발상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지만,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인도네시아에는 종교 선택의 자유는 있지만 종교 유무의 자유는 없는 셈이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믿지만(인도네시아 대통령은 7대까지 다 무슬림이었다) 일부 지역에선 다른 종교가 강세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발리섬에서는 힌두교가, 술라웨시섬 북부에서는 로마 가톨릭이, 서티모르에선 가톨릭과 개신교 등이 강세를 보인다. 인도네시아 기독교는 1960년대에 크게 성장하는데, 이유는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당원들을 교우로 받아들여서 정부와 극우파들의 박해와 학살로부터 보호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인도네시아는 크리스마스, 부처님 오신 날, 힌두교 신년 등 타 종교의 기념일도 모두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이슬람교가 사실상 사회 분위기를 많이 좌지우지하지만, 보통의 아랍국가들처럼 전형적인 이슬람 국가는 아니고, 식민지 시대 등을 거치며 세속 국가에 가까운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탐탁치 않아하는 이슬람 강경파들도 존재하지만, 사실 이슬람이 인도네시아에서 주류가 된 것도 중세 이후부터로 이전엔 오히려 불교나 힌두교가 강세였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을 강요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타 이슬람 국가들처럼 무슬림들에게는 이슬람법이 적용된다. 이슬람 사립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은 교칙에 따라 다리를 드러내지 않는 긴 치마를 교복으로 입고 머리에 히잡을 두른다. 특히 아체 주처럼 샤리아 율법을 강하게 적용하는 지역은 무슬림이 아니더라도 법을 적용하여 술 팔다 적발된 기독교인이 태형을 맞은 사례도 실제로 있다. 도박, 음주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게다가 무슬림들이 하람(금기) 행위를 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관계는 공식 수교를 맺기 전인 1966년 8월 영사관계를 수립하고 주자카르타 총영사관을 개설하면서 시작되었다. 1973년 9월 17일 수교합의와 함께 양국 수도에 상주대사관을 설치했다. 북한과는 이보다 앞선 1964년 4월 16일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1981년에는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이, 1982년에는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이 상대국을 방문해 양국의 우호관계를 재확인했다.
이후 1994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정상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국빈 방문했으며, 2003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세안+3(ASEAN+3,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3) 정상회의를 위해 발리에 방문했다. 2010년과 2011년, 2012년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유도요노 대통령이 발리 민주주의 포럼과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경제개발계획과 에너지 개발사업을 위한 협력에 합의했다.
양국은 모두 G20과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앞선 경제발전을 모델로 삼고 있으며 특히 양국의 경제협력 증진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 2006년 12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했으며, 2017년 11월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에서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은 인도네시아의 교역 대상국 중 6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대인도네시아 주요 수출품은 경유, 휘발유, 편직물, 합성수지, 열연 및 냉연 강판이며 주요 수입품은 천연가스, 유연탄, 원유, 천연고무, 펄프 등이다. 양국의 수출입 규모는 2011년과 2012년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세계 경기 침체로 인해 최근에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6년 기준 한국의 대인도네시아 수출액은 66억 853만 달러이며, 수입액은 82억 8,534만 달러이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은 1971년 8월 한국과의 경제 및 기술협력과 통상증진에 관한 협정을 시작으로 건설협력 양해각서(1981. 7), 임업협정(1987. 6), 항공협정(1989. 9), 투자보장협정(1991. 2), 대외경제협력기금협정(1997. 11), 사법공조협정(2002. 3), 원자력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2006. 12) 등을 체결해왔으며, 2006년과 2009년 사이에서는 한-아세안 FTA 상품협정과 서비스협정, 투자협정도 체결했다. 한편, 2009년부터 2016년까지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가 추진되었으나 결렬되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1970년부터는 한국의 건설업체들이 진출하여 공사를 수주하고 마두라 유전개발에 참여하는 등 민간차원에서도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5년 기준 14개의 지역 한인회와 10여 곳의 한글학교가 있으며, 2,200여 개의 한인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인도네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는 3만 1,091명이며,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2017년 기준 3만 7,237명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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