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 모시는 동학 정신, 생명사상 씨앗이었다
동학에는 생명사상의 뿌리가 담겨있다. 인간의 평등과 만물의 소중함을 중요한 교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은 단지 인간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동학사상은 모든 가치의 최우선으로 ‘생명’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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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을 동학의 불씨를 살린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1대 교조인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세상에 알린 시간은 고작 1년 정도에 불과했다. 해월은 최제우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한 제자였다. ‘사람은 누구나 하늘을 모신 존재’라는 ‘시천주’ 사상을 ‘사람 대하기를 하늘 대하듯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승화시켰다.
또 충청지역과 영월, 홍천, 인제, 원주 등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오지 마을 200여 곳을 35년간 옮겨다니며 동학을 체계화하고 전파했다. 최시형의 노력으로 인해 동학은 전국적인 세를 형성했고,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한 교조신원운동으로 이어졌다. 그 불씨가 3대 교조인 손병희가 주도했던 3·1운동으로 이어졌다고도 평가한다.
인간의 평등함과 자연의 소중함을 뿌리로 내세운 최시형의 생각은 동학혁명을 단순히 계급투쟁의 성격으로만 볼 수 없도록 만든다. ‘사람을 죽이지 말고 재물을 손상하지 마라’는 동학군의 첫 번째 행동강령이 그렇다. 백범 김구 또한 동학의 평등사상에 매력을 느끼고 최시형을 직접 찾아가 입교하기도 했다.
100년을 앞서 세상을 내다본 최시형의 행적을 보면, 강원도에서 동학의 사상이 완성됐고 꽃을 피웠다고 해도 무방하다.
최시형의 주요 업적 중 하나는 최제우가 집필한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간행, 이론적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1879년 인제 갑둔리 김현수의 집에 각판소를 설치, 이듬해 6월 14일 ‘동경대전’ 초판을 완성했다. 정선 유시헌의 집에 은거하며 교단을 정비했고, 1872년 태백산에 들어가 49일간 기도를 갖기도 했다. 최시형은 원주에서 마지막 활동을 하다 1898년 체포돼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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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던 장일순 선생은 “수운이나 해월 선생의 말씀을 보면 그 많은 말씀이 전부 시(侍)에 관한 말씀”이라며 “그거 하나만 보고 있으면 편안한 것이라”고도 말을 남겼다. 최시형이 생각한 동학의 가르침을 한 글자로 요약하자면 모실 ‘시(侍)’인데, “모든 존재는 한울님을 시하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다.
“우리가 먹는 밥 한그릇에는 모든 생명이 담겨 있다”라는 말을 남긴 것도 최시형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무고히 해치지 말고 만물을 소중히 여겨한다는 경천·경인·경물 사상이다. 하늘·사람·자연을 모시는 존재로 일체화 시키고 공동운명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정신이다.
김삼웅 전 관장은 “한국근대 민중운동의 기원은 최시형을 원류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동학의 교조신원운동은 동학혁명에서 만민공동회로, 그리고 3·1혁명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족운동의 거대한 에너지가 됐다”고 했다.
조실부모하고 어려서 머슴살이를 했던 최시형은 말을 잘하거나 글을 잘 쓰는 리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다녀간 자리에는 신분을 막론하고 따르는 이가 늘 많았다고 한다. 그가 전한 동학의 보편적 가치와 모심의 자세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학의 실천자로서 해월의 가르침은 생명사상의 원류로 재평가 되고 있다.
강원도민일보 김진형 기자 2023.03.24
출처;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175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