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후라이 / 하희경
기억이란 건 처음 생겨난 그대로 남는 게 아닌가 보다. 겨자씨 하나가 자라 큰 나무 되듯, 작은 기억 하나가 모락모락 자라서 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아주 작은 사건 하나가 가시를 세우고 상처를 낸다. 상처의 크기는 상관없다. 아무리 작아도 비집고 들어갈 틈은 있으니 말이다. 그 작은 틈새를 놓치지 않고 가시가 들어가 자리 잡는다. 상처에서 흐르는 진액을 먹이 삼아 뿌리를 뻗어나간다. 세포 하나하나에 기생하며 새끼를 치고 점차 숙주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결국 어린 시절에 박힌 가시 하나가 뽑히지 않고 상처를 후벼 파면서 끝없이 갈증을 느끼게 한다.
나는 ‘계란후라이’를 맹목적으로 좋아한다. ‘맹목적’이란 단어가 적당한지 모르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좋다. 단어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겠다. ‘계란후라이’라는 단어는 ‘계란프라이’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계란후라이’라고 불러서 그런지, 계란프라이는 왠지 낯설어 여전히 ‘계란후라이’라고 한다.
맨 처음 계란후라이를 본 것은 초등학교 친구의 도시락에서였다. 하얀 밥 위에 꽃처럼 피어있는 계란후라이가 신기했다. 한 입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수돗가에서 물로 배를 채우곤 했다. 그때는 하루 세끼니 먹기도 힘든 형편이라 계란으로 반찬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처음 만난 계란후라이는 그림의 떡으로 지나갔다.
다시 계란후라이를 본 건 열세 살 되던 겨울이었다. 초등학교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하고 남의집살이를 시작했다. 화물처럼 기차에 실려 낯선 대구까지 가서 가정부로 첫발을 내디뎠다. 사돈의 팔촌쯤 된다며 언니라고 부르라던 주인 여자와 고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주인 남자, 어린아이가 하나 있는 집이었다. 주인 남자는 학교 출근하기 전에 과외를 한다며 새벽같이 밥을 먹었다. 명색이 가정부로 갔으니 주인 남자의 밥상 차리는 일은 당연히 내 몫이었다.
새벽 서너 시면 일어나 압력솥에 불을 켜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접시에 담는다. 압력솥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면 불을 줄이고 프라이팬을 꺼낸다. 주인 여자가 알려준 대로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계란 두 개를 깨뜨린다. 식용유와 달리 참기름은 쉽게 타기 때문에 불을 최대한 낮추고 서서히 익혀야 한다. 계란이 익어가는 시간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 이어진다. 참기름 냄새가 주방을 채우기 시작하면 속없는 위장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마침내 주인 남자가 나오면 불을 끄고 계란후라이에 참깨를 솔솔 뿌려 상에 올린다.
주인 남자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대기하면서 계란후라이를 힐끔거렸다. 하나쯤 남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조화인지 새벽마다 등장하는 계란이 낮에는 자취를 감추고 도통 보이질 않았다. 주인 남자 외에는 계란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하면 그냥 먹고 싶다고 말했으면 먹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개처럼 입을 딱 다물고 있었으니 바보가 따로 없다. 그렇게 어린 시절 내내 눈앞에서 애간장을 태우던 계란후라이는 내 몸 깊숙이 들어와 똬리를 틀었다.
따지고 보면 가정부로 지낸 기간은 살아온 날들에 비하면 극히 짧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가지게 된 갈증을 달래려고,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식탁에 계란을 빠지지 않고 올렸다. 계란후라이, 계란말이, 계란찜, 오믈렛, 계란볶음밥 등을 하기 위해 쉬지 않고 계란을 사 날랐다. 냉장고에 계란이 떨어지면 어쩐지 마음이 허전해서 열심히 계란을 채웠다. 그뿐인가, 한동안은 옛날 생각이 나서 참기름으로 계란후라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계란을 채워 넣어도 계란후라이로 인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어쩌다 여러 날 계란후라이를 먹지 않으면, 다른 음식을 많이 먹어도 밀려드는 허기를 달랠 길이 없었다.
비단 계란후라이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음식을 보면 정신 나갈 정도로 탐닉했다. 먹는 일 하나 조절하지 못해 음식에 끌려다니는 내가 마땅치 않았지만 도리 없었다. 다른 일에는 참을성이 많은데 음식 앞에서는 자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제는커녕 그동안 못 먹은 걸 한 번에 다 먹어 치울 기세로 수시로 폭식을 했다. 그래도 헛헛한 위장은 채워지지 않았다. 계란후라이만 보면 절로 벌어지는 입, 피곤하거나 우울하면 혼자서라도 먹을 걸 찾아 순례하는 버릇, 몸살이라도 나는 날이면 머리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자극성 강한 음식들.
오랜 시간 끌려다니다가 이제야 겨우 음식으로 인한 갈증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건 어린아이가 음식을 통해 전해 받아야 했던 내리사랑의 부재 때문이었다.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던 꼬맹이에게 달라붙은 가시 하나가 슬며시 뿌리를 내린 것이다. 뽑고 또 뽑아도 다시 돋아나는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 있다. 진실을 알고 나서 음식에 대한 욕구를 조금씩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음식에 대한 갈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루는 어른인 내가 이기고 또 하루는 내 안의 꼬맹이가 승리하는 숨바꼭질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차례 건강이 나빠지면서 살기 위해 걷기를 선택했다. 빗방울과 햇살, 바람의 속삭임을 즐긴다. 걷다가 길가에 핀 개망초를 보면 반사적으로 ‘계란꽃’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다행히 전과는 달리 개망초꽃을 보고 계란후라이가 먹고 싶어 헐떡거리지는 않는다. 이제 조금씩 치유가 되고 있는 걸까? 개망초의 꽃말이 ‘화해’이듯이 깊고 질긴 갈증과 화해하고, 몸도 마음도 자유로운 나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