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의 고통은, 그의 머릿속에서 소냐와의 추억 비디오가 켜지는 버튼이 눌러졌을 때 수없이 돌아가도 그때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더 고통스러웠다.
오토의 머릿속 비디오는 얼마나 많이 재생되었는지 대화를 되내일 정도였다.
오토의 슬픔은 고통과 괴로움으로 이어졌다.
내 삶은 다층촬영 사진과 같았다.
고통을 느낄 때에만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통의 원리로 건설된 현실이었다.
자기 경험의 주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괴로운 것이다. 소냐와 사별 후 소냐와 사랑은 시작하고 고통을 겪었던 시절의 자신이 될 수 없기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오토가 소냐의 사고와 죽음 이후 느낀 슬픔이 고통과 괴로움으로 확장된 것은 거대한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토는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번번히 실패한다.
소냐의 비디오가 재생 버튼은, 자살을 하려는 순간, ‘두드림’ 노크, 이 노크 소리는 현실 속 시절 인연이었다. 그리고 자살은 실패한다.
-허술한 나사못
-마리솔의 노크
-맬컴의 방문
-노인의 추락
자살 실패/계획 무산에도 불구하고 오토는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세일하는 꽃을 사들고 소냐의 무덤에 찾아가고, 노인을 구하고, 맬컴을 소냐의 방으로 들이고, 마리솔 부부에게 앨런벤치를 빌려준다.
흑백의 사람들, 흩어져 있을 때는 자신을 주변인으로 정체화한 흑백의 사람들은 함께 일 때 컬러로 완성된다. 아름다운 꽃밭이 된다.
*오토의 비디오의 역할-화가 난 이유
자신의 삶에 흑백에서 칼라가 된 이유가 나온다. 소냐의 다리와 6개월 된 아들을 잃어버림
버스 회사, 운전사, 부동산 업자 등 규칙을 지키지 않고 사소한 안일함으로 타인의 삶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알게 됨
*오토는 ‘머저리’같은 살마들에게 화가 났다. 이 머저리들은 사소한 규칙을 무시하고 안일하게 대처한다. 정해진 규칙만 잘 지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흑백이던 자신의 인생을 컬러로 만들어준 아내 수잔을 따라 죽기로 결심했지만, 그는 마리솔과의 대화 중 수잔이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말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서 자신의 도움, 쓰임을 필요로 하는 살마들의 일을 해결해 주면서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깨닫고 오토라는(OTTO)라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제 수잔은 오토의 머릿속 비디오에서가 아닌 그의 삶, 그의 존재 속에 되살아왔다.
우리는 상실의 아픔 상황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고통과 괴로움의 길, 또다른 하나는 대상을 내 안에서 되살리는 길이다. 앞의 길은 파괴적인 힘을 내포하고 있으며, 뒤의 길은 창조적인 힘을 내포하고 있다.
삶이란 겪는 사람의 것이지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것은 분명 아닌 듯싶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진정으로 동참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내의 옷 정리’를 도와주겠다던 마리솔의 호의는 오히려 오토를 더 고독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