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간의 길을 가다
원리의 이해
사고실험
극한의 법칙은 에너지의 방향성을 이용한 사고실험에 쓰인다. 에너지는 방향이 있어서 닫힌계를 걸고 압박하면 극단화 된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플러스 아니면 마이너스다. 그 방향으로 계속 간다. 중간이 없으므로 명확하다. 이론적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자동차가 고장날 확률은 0이 아니다. 자동차를 정비하지 않고 계속 몰고 다니면 언젠가 퍼진다. 외계인이 있을 확률은 0이 아니다. 0이 아니면 어딘가에 무조건 있다. 과학가라면 이런 부분에 명확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론적 확신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유체는 여럿이 하나처럼 행동한다. 하나 밖에 없으므로 답은 명백하다. 분석할 필요도 없이 그냥 안다. 확률 필요없다. 백 퍼센트다. 확률은 유체와 강체 사이의 애매한 부분에 적용된다. 확실히 유체가 맞다면 백 퍼센트 확신을 가지고 정답을 말할 수 있다.
유체의 순수성 반대편에 강체의 복잡성이 있다. 복複은 중복이고 잡雜은 혼잡이다. 같은 것이 중복되고 다른 것이 섞여서 노이즈가 발생된다. 이는 관측자료가 오염된 것이다. 오염되기 이전의 순수상태로 되돌리면 된다. 유체에 압력을 높이면 순수해진다.
강체는 핀셋으로 잡아서 낱낱이 오염을 제거해야 하지만 유체는 원심분리기를 돌리면 비중대로 줄을 선다. 유체는 닫힌계에 가두어져 있다. 그릇에 담겨서 전체가 한 덩어리로 일제히 움직인다. 유체의 특별한 성질을 이용해 많은 사고실험을 할 수 있다.
엎어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지만 컵에 담긴 물은 따를 수 있다. 어느 쪽이 쉬울까? 컵에 담긴 물을 따르기가 쉽고 엎어진 물을 주워담기가 어렵다. 마이너스는 쉽고 플러스는 어렵다. 유체는 내부에 압력이 걸려 1이므로 다루기가 쉽다. 엎어진 물은 강체다.
여기서 말하는 강체는 고체가 아니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강체다. 여럿이 에너지로 연결되면 유체다. 팽팽해진 쇠사슬은 유체다. 메뚜기 떼는 유체다. 원자론은 강체의 사고다. 양자역학은 원자론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유체는 1이고 1은 명확하다.
밸런스의 코어가 만들어져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외부의 힘이 내부의 힘을 이기느냐다. 내부의 힘이 외부의 힘을 이기는 순간 강체 3차원이 유체 4차원으로 도약하며 확률 100 퍼센트가 된다. 내부에 빈틈이 소멸하면서 막강해진다.
극한원리
극한은 사건의 방향성이다. 방향은 1이다. 머리와 꼬리가 합쳐서 몸통 하나다. 방향성은 일원론이다. 유체는 하나를 가지고 전체를 판단한다. 닫힌계를 걸고 내부 압력을 높이면 하나가 된다. 일정한 압력에 도달하면 내부 밸런스가 작동하고 1에 의해 통제된다. 원인이 1이므로 결과는 명확하다. 사고실험을 할 준비가 된 거다.
극한의 법칙은 밸런스의 법칙, 방향성의 법칙, 1의 법칙이다. 범선이 탄력을 받으면 키 하나로 조종된다. 바람이 잠잠할 때는 조종되지 않는다. 배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느냐는 확률에 달려 있다. 바람이 불고 돛을 올려서 추력과 항력의 밸런스에 도달하면 그때부터 키가 마음대로 배를 조종한다. 다른 모든 조건은 기각된다.
유체는 1이므로 확률이 없다. 주사위 눈이 하나이면 확률은 없다. 자전거가 처음에는 강체라서 비틀대지만 속도가 붙으면 유체로 바뀌고 직진한다. 속도를 높일수록 직진성은 높아진다. 압력이 증대하여 내부 자원이 연결된 상태가 되면 외부 영향보다 내부의 힘이 강해지면서 이기는 힘이 작동한다. 2가 1이 되는 극한원리다.
과학은 아직도 비행기가 나는 원리를 정확히 설명 못한다. 양력, 추력, 항력, 중력 필요없고 관성력이 백 퍼센트다. 비행기가 나는 원리는 관성력의 직진성 때문이고 양력, 중력, 항력, 추력은 밸런스 조절장치다. 뭐든 핵심 하나에 지배되므로 우리는 사고실험으로 답을 알 수 있다. 내부의 압력을 높여 강체를 유체로 바꾸면 된다.
유체가 압력을 받아 1이 되면 핵심 하나로 전체가 통제된다. 내부의 힘이 외부의 힘을 이겼을 때 코어가 작동한다. 그것은 1회의 결정이 전체 판도에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가 변하는 방향이다. 그것이 범선의 키가 된다. 부부가 환경의 압박을 받아 사랑으로 뭉쳐 1이 되었을 때 둘을 묶어주는 아기가 코어가 되어 전체를 결정한다.
유체원리
승과 패의 차이가 2인 두 프로야구팀 중에서 승률이 앞선 팀을 알아내는 문제다. 100전 51승 49패의 키움과 4전 3승 1패인 롯데의 승패 차이는 2다. 키움은 돔구장 때문에 다른 팀보다 시합을 많이 했다. 한 경기의 결과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시합을 적게 한 롯데가 크다.
승패 차는 같고 두 팀이 다 승률 5할을 넘겼다면 무조건 시합을 적게 한 롯데가 앞서 있다. 반대로 승률 5할 이하는 시합을 많이 한 팀이 앞서 있다. 5할은 승에서 패를 뺄 것인지, 패에서 승을 뺄것인지를 정하는 경계다. 계산하기 쉽게 큰 숫자에서 작은 숫자를 빼면 이렇게 된다.
1. 승률이 5할 이상은 시합을 적게 한 팀이 1승당 승리 가중치가 크다.
2. 승률이 5할 이하는 시합을 많이 한 팀이 1패당 패배 가중치가 적다.
11명이 뛰는 축구시합에서 더 많은 골이 터지게 하려면 팀 당 선수 숫자를 늘려야 할까, 줄여야 할까? 줄여야 한다. 숫자가 적을수록 선수 한 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한 명의 영향력이 클수록 표준편차가 커서 실력차가 두드러진다. 선수가 적어야 정규분포에서 멀어진다.
1명이 뛰는 축구와 각 100명이 뛰는 축구를 비교해 보자. 각 1명이 뛰면 승부차기다. 당연히 많은 골이 터진다. 선수 숫자가 많으면 골이 터지지 않는다. 확실하다. 확신을 가지는게 중요하다. 큰수의 법칙과 같다. 주사위를 10회 던지면 알 수 없지만 100만 번 던지면 1/6이다.
영향력이 권력이다. 민감한 초기조건의 기세다. 구슬을 꿰어내는 실이다. 결을 정한다. 첫 번째 주사위에 권력이 있고 뒤로 갈수록 권력이 작아진다. 단순하게 보면 큰수의 법칙이다. 그런데 대조군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에너지의 방향만 보고 답을 안다. 사고실험을 할 수 있다.
게임원리
이기는 팀은 먼저 가세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일찍 정당에 가입해서 터줏대감 되어 뒤늦게 가담하는 사람에게 삥을 뜯는 것이 텃세다. 먼저 와서 길을 닦았으므로 도로 사용료를 내라는 식이다. 지는 팀은 반대다. 나중에 가담하는 사람이 부족한 2 퍼센트로 딜을 친다. 막판에 지지선언 해주고 총리 자리 요구한다.
도박은 나중 베팅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남이 돈을 넣어놓은 슬롯머신을 찜하면 잭팟이 터질 확률이 높다. 경마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늦게 마권을 사려는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주식투자도 남의 정보로 늦게 가담하면 종목을 연구하는 비용을 절감하지만 그러다 상투 잡는다. 뒤에 가담하면 대신 리스크가 크다.
1회의 결정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갈수록 작아지므로 보통은 먼저 가담해야 한다. 다단계를 해도 먼저 가담한 사람이 높은 위치에 오른다. 뒤에 가담하는게 유리한 경우는 강체가 유체로 바뀔 때다. 지는 팀의 구원투수라면 나중에 붙는게 유리하지만 대신 리스크가 크다. 이기는 팀은 먼저 붙는게 유리하다.
중심을 잡기 전에는 뒤에 가담하는게 낫고, 중심을 잡고 궤도에 올랐다면 먼저 가담하는게 낫다. 신대륙으로 간다면 늦게 가는 사람이 낫다. 메이플라워호 타고 먼저 간 사람은 1년 안에 반이 죽었다. 먼저 가는 사람이 매를 맞지만 자리를 잡은 다음은 먼저 가는 게 유리하다. 뒤에 가면 이민을 받아주지 않는다.
추력과 항력이 대결하면 닫힌계 내부에 밸런스가 작동한다. 코어가 탄생하면 이기는 힘이 이긴다. 추력이 항력을 이기면 키 하나가 전체 판도를 결정한다. 그때부터 확률은 의미없다. 51 대 49까지 가기가 어렵고 51이 되는 순간 탄탄해진다. 삼차원이 사차원으로 도약하면 차가 속도를 올릴수록 핸들은 묵직하다.
균형이론
1회 결정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져서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작용과 비용의 균형이 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과 같다. 이미 잠긴 병뚜껑을 더 돌릴 필요가 없는 한계점이 있다. 강체가 유체로 바뀌는 변곡점에도 균형이 있다. 호스에 공기가 들어가 있으면 사이펀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으므로 호스 입구를 입으로 빨아야 하는 것과 같다.
엔진은 발동이 걸리는 순간 안심해도 된다. 출력이 입력보다 큰 양의 피드백이 되느냐가 결정한다. 복부를 수술한 환자는 첫 번째 방귀가 나오는 순간 걱정이 없다. 확률 100 퍼센트 찍었다. 내부 자원이 연결되어 권력균형에 도달하면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 의미가 없다. 애매할 때는 에너지를 투입하여 내부를 압박하는 방법으로 굳히기를 시도해야 한다.
엔트로피의 법칙이 공간을 해석하는데 비해 극한의 법칙은 시간을 해석한다. 약팀은 초반 혼전을 유발할수록 좋고 말년병장은 떨어지는 가랑잎도 두려워 한다. 사건의 기승전결 진행에서 어느 단계에 와 있느냐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 약팀은 기에 서고 강팀은 결에 선다. 리스크가 증대하는 확산방향인지 리스크가 감소하는 수렴방향인지만 판단하면 된다.
유체의 압력이 높으면 궤도를 타고 정해진 길로 간다. 자동차는 마음대로 가지만 비행기는 정해진 길로 간다. 비행기가 더 많은 비용이 들고, 더 사고위험이 높고, 더 많은 보험에 들어 있어서 더 많은 압력이 걸려 있다. 더 많은 승객이 타고 있다. 강체가 유체로 바뀌는 변곡점을 넘어 에너지가 수렴방향으로 정해지면 외력의 간섭을 이기고 탄탄대로가 된다.
확률은 강체의 유체화 정도다. 문제는 일반의 확률착각이다. 우리는 막연히 확률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체의 확률을 알 수 없을 뿐이다. 닫힌계를 걸어 외부를 내부화 한 다음 압력을 높여 임계를 넘으면 유체가 된다. 선거전이 달아오르면 결과는 명백해진다. 반대로 투표율이 낮으면 알 수 없다. 베팅한도가 무제한이면 돈 많은 사람이 이긴다.
공산당은 대의원 숫자를 늘려 회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기술을 쓴다. 숫자가 많을수록 대의원 한 명의 발언권이 약해진다. 두 명이 회의를 하면 반반씩 교착된다. 세 명이면 세 번째 사람이 다 먹는다. 네 명이면 2 대 2로 교착된다. 다섯이면 한 명은 의장으로 빠져서 네명이나 마찬가지다. 혹은 세 명과 같다. 여섯 명도 교착될 수 있으므로 일곱이 적당하다.
게임의 법칙
등가원리
메커니즘이 같으면 같다는게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다. 의사결정 구조가 같으면 같은 것이다. 내시균형, 엔트로피 증가, 한계효용 체감, 큰수의 법칙, 극한의 법칙은 같다. 상호의존성이라는 코끼리의 어느 다리를 만졌느냐다. 유체는 서로 붙잡고 의존한다.
본질은 에너지 격발 메커니즘이다. 붙잡은 것을 놓으면 에너지는 발사된다. 에너지는 활처럼 쏜다. 이기는 힘은 밸런스의 복원력이다. 하나의 밸런스에서 또다른 밸런스로 갈아탄다. 밸런스는 활이다. 시장원리는 화살의 이득이고 내시균형은 활의 간섭이다.
게임이론과 시장원리는 같다. 수요와 공급이 시장에서 게임을 벌인다. 극한의 법칙은 의사결정의 효용과 비용이 같은 지점에서 붙잡은 화살을 놓는다. 엔트로피는 에너지 낙차가 사라질 때 과녁에서 화살이 멈춘다. 활이 화살을 쏘는 문제를 논하는 것이다.
바둑은 영향력이 큰 지점부터 둔다. 바둑 포석은 서로 붙잡는 정도가 높은 지점을 차지하는 것이다. 붙잡는 정도가 높으면 활이고 낮으면 화살이다. 전쟁은 요충지를 먼저 점령한다. 영향력은 점차 작아져서 더 이상 바둑을 둘 자리가 없으면 사건이 끝난다.
자연 - 내시균형, 엔트로피 증가, 극한의 법칙, 시장원리, 큰수의 법칙은 상호의존성 감소로 사건이 종결된다.
인간 -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은 상호의존성이 높은 상태에 머무르려는 것이다. 그럴 때 흥분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은 같다. 의사결정구조가 같다. 다만 방향이 다르다. 인지부조화, 스톡홀름증후군, 계급배반투표, 사이비 종교, 다단계 상술, 도박중독, 정치적 프레임, 군중심리, 각종 포비아, 음모론은 공통적으로 액션의 주고받기 형태로 상호의존성이 작용한다.
내시균형, 엔트로피, 시장원리가 화살쪽을 살피는데 비해 인간은 활이 되려고 하는 점이 다르다. 활에게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결과 측을 분석하고 인간은 원인 측에 서려고 한다. 극한의 법칙은 사건 전체를 보지만 상대적으로 활에 비중을 둔다.
인간은 1회의 결정이 집단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쪽으로 호르몬이 나오고 흥분된다. 사건의 초기단계에 머무르려고 한다. 도박꾼은 100만원을 잃었다 해도 다음에 200만원을 베팅하면 맨 처음 도박장에 입장하는 것처럼 리셋된다.
내시균형
머피의 법칙은 선택적 기억에 따른 확률착각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왜 그런 농담에 이끌렸느냐다. 수렁에 빠진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해도 역효과가 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진다. 그런 경험이 강한 인상을 줘서 내가 수렁에 빠져 있는게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윤석열과 안철수는 수렁에 빠져 있다. 일어날 일이 일어난다. 게임의 구조에 갇혀 있다. 빠져나오려고 하는 모든 행동이 수렁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우리는 언제든 운명적으로 게임에 갇힐 수 있다. 게임은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경험이다. 게임이냐 아니냐는 상호작용이냐 일방작용이냐다.
게임이론은 상호의존성 이론이다. 오뚝이와 같다. 어떻게 해도 오뚝이는 원위치 된다. 자신이 중심보다 약하면 그렇게 된다. 오뚝이의 머리가 되어서는 몸통을 자빠뜨릴 수 없다. 수렁에 빠지거나 게임에 갇혔을 때 우리는 오뚝이구조에 갇힌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머피의 법칙이 작동된다.
처음에는 일방작용으로 시작했는데 하다보면 상대의 맞대응에 의해 팃포탯의 덫에 갇힌다. 처음에는 여당이 일방적으로 야당을 때리는데 상대가 맞대응 하는 바람에 상호작용으로 바뀐다. 일방작용을 하려면 돈을 줘야 한다. 부자 아버지를 둔 재벌 2세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인간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 있다. 인지부조화, 스톡홀름증후군, 늑대에 쫓기는 사슴, 물에 빠진 사람,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도박꾼 심리, 계급배반투표, 관종짓은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야 하는 팃포탯 상황이다. 액션을 받아주는 상대가 있다. 그 지점에서 인간의 행동은 법칙을 따라간다.
권투선수는 일방적으로 주먹을 휘두르지만 유도와 씨름은 붙잡고 시작한다. 샅바를 내줬다면 게임에 갇힌 것이다. 상대를 이겨야 하는게 아니고 나와 상대를 합친 전체를 이겨야 한다. 상대의 힘에 내 힘도 포함되어 있다. 그 수렁은 내가 설계한 수렁이다. 그래도 이길 수 있다면 막강해진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죄수는 경찰에 잡혀 있다. 죄수는 경찰을 이기면 되는게 아니고 나와 경찰을 합친 전체 시스템을 이겨야 한다. 내가 경찰을 이겨먹으면 경찰은 약이 올라서 두 배로 압박할 것이 틀림없다. 죄수는 경찰의 시스템이 유용하도록 하는 결과를 내야 한다. 사는 공을 이길 수 없다.
우리는 게임에 갇힌 상황과 외부 지원을 받는 상황을 구분하지 못한다. 원래는 게임이 아니었는데 점차 게임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발달하면서 게임에 갇힌 것이다. 더 이상 외부에서 불러올 어른이 없으면 이제는 힘으로 상대를 이길 수 없고 시스템을 이겨야 한다.
내팀내 원리
‘내팀내’라는 말이 있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김재박의 현대 유니콘스 감독시절 명언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머피의 법칙과 같다. 농담으로 하는 머피의 법칙 말고 진짜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법칙이 있다. 강체가 유체로 바뀌면 겉잡을 수 없다.
핵분열에서 중성자가 양성자를 정확히 때릴 확률은 0에 가깝다. 그러나 원자가 무한정 많으므로 결국 하나는 맞는다. 80번 맞추면 핵분열이 일어난다. 핵분열은 0 퍼센트 아니면 백 퍼센트다. 감기의 전파와 비슷하다. 1명이 1.1명에게 옮기면 유행한다.
플러스냐 마이너스냐 정하는 선이 있다. 극한의 법칙이다. 한계를 넘으면 무지막지하게 흥한다. 바이럴 마케팅이다. 쫄딱 망하거나 천만 관객 찍거나다. 정치인의 프레임 걸기 수법은 대중에게 양자택일 선택을 압박하여 1명이 1.1명에 전파하려는 것이다.
보통은 정치인의 감정적 선동에 유권자가 낚인다고 말하지만 틀렸다. 프레임은 액션을 제공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틀렸다. 미국인들이 닉슨을 거짓말장이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고 닉슨이 유권자의 맞대응이라는 상호작용 구조에 붙잡힌 것이다.
액션은 강체를 유체로 만들어 자체동력을 이루고 폭주한다. 닉슨은 거짓말 해서 짤린게 아니고 월남전에 져서 짤렸다. 전쟁은 액션이다. 월남전에 패배한 미국인들은 닉슨을 이겨먹고 싶었다. 저쪽에서 졌으니까 이쪽에서 이겨먹자. 닉슨은 쉬운 상대였다.
인지부조화, 스톡홀름 증후군, 정치적 프레임, 내팀내 현상들은 강체의 유체화다. 닫힌계에 액션을 걸어주는 방법으로 강체를 유체로 만들 수 있다. 강체는 무리 중에서 가장 강한 자가 운명을 결정하고 유체는 무리 중에서 가장 약한 자가 운명을 결정한다.
심리적 선동이 강체라면 물리적 액션은 유체다. 바둑이든 축구든 야구든 막판에는 묘수를 두기보다는 실수를 줄이고, 리스크를 줄이고, 불확실성을 줄이고 수비를 잘하는 팀이 이긴다. 집단 내부가 균일한 쪽이 이긴다. 유체인 질이 강체인 입자를 이긴다.
유체의 승리
강체를 유체로 만들면 이긴다. 계를 닫아걸고 판을 키우고 액션을 걸어주면 유체가 된다. 문재인의 적폐청산도 유권자에게 액션을 걸어준 것이다. 김대중의 신지식인 운동이나, 노무현의 개혁정책이나, 이명박의 대운하 사기나, 윤석열의 자해공갈도 유권자를 액션의 연속성에 가두는 기술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다. 자극과 반응의 형태로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집단의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는 동물이다. 집단에 의지하며 즐겨 장기판의 말이 되려고 한다. 우리는 야망, 의도, 목적 따위 개인의 심리적인 이유를 대지만 거짓이다. 인간은 집단으로부터 에너지를 빼먹고자 한다.
인간은 심리로 흥하고 물리로 망한다, 전쟁이 터지면 초반에는 의지가 강한 쪽이 이긴다. 독일과 일본이 정신력을 강조한다. 막판은 생산력이 결정한다. 총력전이 되면 땅이 넓고 자원이 많고 인구가 많은 쪽이 이긴다. 소련과 미국의 생산력이 독일과 일본의 생산력을 이겼다. 정신력 필요없다.
정신력 타령은 사람을 동원하려는 것이다. 쪽수로 억누르려고 한다. 전쟁이 벌어지면 우리는 백만도 동원할 수 있다고 뻥 친다. 백만 받고 2백만, 2백 받고 4백. 이러다가 1억 죽었다. 사람만 동원하는 것은 강체다. 유체는 환경과 연결한다. 양차 세계대전은 결국 땅덩어리가 넓은 쪽이 이겼다.
문제는 강체를 유체로 바꾸는 극한의 법칙이다. 유체는 연결한다. 연결의 코어가 만들어 졌느냐가 중요하다. 초반은 연결되지 않았으므로 한 가지 장점이 있는 팀이 이긴다. 집단 중에 가장 강한 하나가 전체를 결정한다. 임진왜란은 조총이 초반에 이겼다. 초한지 초반은 항우가 유방을 이긴다.
막판은 내팀내가 작동하여 올라갈 팀이 올라간다. 끝까지 가면 전쟁은 수비가 유리하다. 공격은 강점이 있어야 하지만 수비는 약점이 없어야 한다. 약점이 없는 유방이 보급이 곤란한 항우의 약점을 추궁하여 이겼다. 초반은 공격이 일점돌파로 이기고 막판은 수비가 지리의 잇점으로 승리한다.
계급배반 투표는 유권자가 액션을 제공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현상이다. 트럼프는 액션을 제공해서 이겼다. 진보는 행위를 제공하지 않는다. 총을 주지 않는다. 인간은 간섭받고 싶어 한다. 지식인의 말로 이래라 저래라 하면 실패하고 구체적 행위로 간섭해야 한다. 총을 주고 역할을 줘야 한다.
유체는 간섭받는 상태다. 초반은 간섭받지 않는 마라도나의 드리블로 이기고 막판에는 간섭받는 메시의 티키타카로 이긴다. 간섭받으면 의외성이 감소한다. 정해진 궤도로 가게 된다. 올라갈 팀이 올라가게 된다. 진보는 간섭을 늘리려고 한다. 초반부터 간섭하면 망하고 막판에 간섭해야 한다.
롬멜은 히틀러의 간섭이 없어야 잘하고 소련군은 정치장교가 간섭해야 이긴다. 항우는 혼자서도 잘하지만 한신은 다다익선이다. 숫자가 많을수록 간섭이 많다.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은 결국 더 많이 간섭한다는 것이다. 초반부터 간섭하면 억압이다. 액션을 늘려 점차 간섭에 익숙해져야 한다.
자기착취술
에너지는 착취다. 쥐어짠다. 압박해서 1로 만든다. 다른 선택의 여지를 없앤다. 인간은 집단 무의식의 압박을 받는다. 집단으로부터 암시를 받아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 조종된다. 발명가는 자연을 쥐어짜서 성공하고, 정치인은 사람을 쥐어짜서 성공하고, 작가는 자신을 쥐어짜서 성공한다.
웹툰 작가는 마감에 쫓겨야 집중한다. 자신을 외통수로 몰아야 에너지가 나온다. 명문대 가겠다고 소문을 내서 그것을 자신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는 학생도 한다. 부자는 결벽증, 공포증, 강박증, 징크스로 자기를 압박한다. 요즘 인스타그램에 유행하는 루틴 만들기도 자기 착취술이다.
자신을 쥐어짜는 방법으로 남을 쥐어짜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든 타인과 대결구도를 만들어야 자신이 집중한다. 정치적 프레임 걸기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사실은 자신을 압박하는 행동이다. 시비를 걸어 타인으로 하여금 내 등을 떠밀게 한다. 어찌 보면 사랑도 자신을 쥐어짜기다.
우리는 생각이 행위의 원인이라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는게 인지부조화다. 개인의 야심, 음모, 욕망 따위 심리적 동기는 거짓이고 환경의 압박이 행위의 원인이다. 행위는 집단과 보조를 맞추지만 생각은 혼자 한다. 당연히 집단이 에너지가 크다. 집단과 결이 어긋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누구도 호르몬을 이길 수 없다. 엎어진 호르몬을 주워담을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을 환경과 동조화 시킨다. 그러므로 행위가 생각에 앞선다. 결국 인간은 사회 안에서 적당한 생태적 지위를 찾아간다. 집단의 기세와 결어긋남을 느낄 때 어색해진다. 불안하고 답답해진다. 심하면 공황장애다.
인간은 환경의 자극에 반응한다. 자신의 명령에 주변이 즉각 반응하는 상태가 되도록 주변을 압박한다. 권력적이지 않으면 에너지를 조달할 수 없다. 도박꾼이 패를 쪼면 긴장상태, 압박상태, 집중상태, 에너지를 끌어올린 상태가 된다. 자신의 행위에 주변이 즉각 반응하는 민감한 상태다.
자대에 배치된 신병은 두통을 앓는다. 환경과 동조화 되지 않은 것이다. 가부장은 위장병을 앓는다. 지도자는 난폭해진다. 일반인은 결벽증, 공포증, 강박증, 포비아로 도피한다. 징크스와 터부와 종교와 주술로 도피한다. 각종 중독에 걸린다. 의연하게 나의 길을 가는 사람은 참으로 적다.
동기와 게임
동기와 인간
인간의 행동을 내면의 동기로 설명한다면 터무니 없다. 심리학은 대부분 개소리로 보면 된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 양의학과 한의학의 차이, 과학과 주술의 차이다. 마음 심心 짜만 들어가면 마음대로 개소리를 한다. 자기개발서 수준의 헛소리다.
답은 외부에 있다. 개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내면의 동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단을 의식하고 흥분해서다. 집단이 없으면 흥분할 일도 없다. 인간이 흥분하는 것은 자신이 코너에 몰렸거나 혹은 상대가 코너에 몰렸을 때다. 호르몬이 나와준다.
화살이 특별히 과녁을 사모하여 방문한 것이 아니고 활이 화살을 쏜 것이다. 동기론은 화살에서 답을 찾는 오류다. 화살은 특별한 마음이 없다. 화살을 쏘는 것은 집단이다. 집단으로부터 보이지 않게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는게 행위의 원인이다.
결벽증, 공포증, 강박증이 그러하다. 그게 다 집단의 참견 때문이다. 뭐가 무섭다, 뭐가 싫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집단에 짜증을 내는 것이다. 의지할 형님이 없고 믿음직한 어른이 없을 때 그 스트레스를 강박증 형태로 집단에 전가하는 것이다.
부족민들은 개인이 의사결정의 단위가 아니므로 그런 고민이 없다. 움집이 깨끗하든 더럽든 족장이 고민할 일이지 내가 나설 일이 아니다. 자연인들도 행복하다.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집단을 갈아타거나 집단 속의 생태적 지위를 바꿔야 한다.
손님이 방문하면 개가 난리를 피우는 것은 주인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강형욱이 출동하면 바로 차분해진다. 짖어대는 것은 개의 욕망이 아니다. 개는 동기가 없고 역할이 있을 뿐이다. 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집단의 루틴이라고 믿어서 그렇게 한다.
인간의 어떤 행동은 흥분하기 때문이다. 목 좋은 자리를 잡으면 흥분한다. 지정학적 요충지를 차지하면 흥분한다. 권력있는 자리에 오르면 흥분한다. 사람들이 주목하면 흥분한다.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때 흥분한다. 남의 약점을 보면 흥분한다.
타인의 운명을 결정할 때 흥분한다. 집단의 약한 고리를 보면 흥분한다. 하는 일이 아귀가 맞아떨어지면 흥분한다. 작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때 흥분한다. 상대가 반응해주면 흥분한다. 환경과 동조화 되면 흥분한다. 대개 집단을 의식한 행동이다.
게임과 인간
인간은 남을 이겨먹으려 한다. 동기가 있다면 이겨먹는게 동기다. 사실 이길 생각도 없다. 도박꾼은 이겨야 패를 돌릴 수 있다. 지면 쫓겨난다. 이겨야 그 자리에 붙어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기려고 할 뿐 사실은 이기려는 욕심도 없다. 지면 곤란해진다.
인간은 상호작용 구조에 잡힌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뛰어내릴 수 없다. 사건은 액션의 연결이다. 액션의 연속성에 잡혀 늑대에게 쫓기는 사슴처럼 직진만 계속한다. 인간이 이겨먹으려고 기를 쓰는 이유는 게임에 갇혀서 탈출을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보 혹은 보수가 되는 것은 특별한 동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 안의 지정학적 구조에 흥분하기 때문이다. 중국 변두리에 붙어있으면 의기소침해진다.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중러미일 사이 길목을 차지하면 문득 깨닫고 흥분한다.
북을 보면 기어코 북을 울리고 만다. 사람들이 쳐다보면 기어코 한 곡조 뽑고 만다. 마이크만 쥐면 절대 마이크를 놓지 않으려고 하는게 국회의원이다. 총을 주면 쏜다. 공을 던지면 개는 달려간다. 권력을 잡으면 소인배는 폭주한다. 기계적 행동이다.
이기는 힘 때문이다. 상대를 제압하고 적을 물리치려는게 아니라 영향력을 의식하는 것이다.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는게 이기는 것이다. 이기는 힘은 의사결정의 힘이다. 인간은 행위를 해서 어떤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면 기어코 그것을 하고야 만다.
인간은 그저 자신이 잘 하는 일을 한다. 할 수만 있으면 그 일을 한다. 집단과 동조화되는 행동을 한다. 반대로 어색하고, 낯설고, 모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 해도 당장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면 못한다. 선행도 훈련해야 된다.
게임과 동기
게임론 - 집단 무의식의 압박에 의해 마음이 조종된다.
동기론 - 개인의 야망, 욕망, 탐욕이 인간이 행위하는 원인이다.
욕慾은 하고자 할 욕이다. 욕망은 '하고자 한다'는 말이다. 하려고 해서 한다는 말은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밥을 먹고 싶어서 밥을 먹는다는 말과 같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배가 고픈게 원인이다. 인간들이 말을 엉터리로 한다.
동기론은 어설프게 말을 갖다 맞춘 헛소리고 실제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사회적 권력게임이다. 선택을 강요하는 집단의 압박이다. 그런데 의도가 잘못 전달된다. 인간이 각종 포비아와 인지부조화에 시달리는 것은 집단의 압박을 잘못 해석하서다.
집단은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지 않고 그냥 압박한다.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아 기어코 일을 저지른다. 어른이 소식 듣고 와서 해결해준다. 인간은 집단의 압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결벽증과 공포증, 강박증에 걸린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어른이다.
인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명령해줄 어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각종 심리적 장애는 보호자를 호출하는 어리광이다. 특히 부자들은 자신에게 명령해줄 어른이 없으므로 결벽증에 걸린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의 정형행동과 같은 정신장애다.
인간은 어떻게든 상대를 이겨먹으려고 한다. 주도권을 잡으려고 한다. 권력을 차지하려고 한다. 상대를 자극하여 반응을 끌어내려고 한다. 북이 있으면 북을 치고, 말이 있으면 말을 타고, 사람이 있으면 그 상대를 제압하려고 한다. 그런데 못 당한다.
인간은 사회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쳐들어가서 집단을 장악하려고 하지만 거꾸로 집단에 의해 제압되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해치고 대신 집단의 리스크를 줄인다. 자신은 이기적인 행위라 믿지만 결과적으로 집단의 잠복한 위험을 발굴하는 행위다.
진짜 나쁜 사람이라면 딱 한 번만 은행을 털고 조용히 숨어 살겠지만 그러지 못한다. 그 사이에 생태적 지위가 바뀌기 때문이다. 집단을 위해 악역을 떠맡은 것이다. 갈때까지 갔다가 결국 교도소로 모이는 형태로 스스로 자신을 사회로부터 격리한다.
개는 간식을 주면 복종한다. 간식이 동기가 될까? 천만에. 개는 인간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한다. 간식을 주면 거기서 규칙을 발견한다. 강아지는 집단과의 결속을 원하며 간식은 견주의 명령을 전달하는 신호일 뿐이다. 간식은 동기가 아니라 루틴이다.
개는 집단에서 낙오되는 것이 두렵다. 개는 무리지어 세력을 과시하기 좋아한다. 인간은 역할이 없이 겉도는 것을 무서워 한다. 보상을 주면 개가 자신의 역할을 잘 이해할 뿐 그게 목적은 아니다. 간식은 무리에서 낙오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이다.
개든 인간이든 집단과의 결속을 원하며 보상은 결속을 유도하는 장치다. 집단과 결속하는 방법은 걸맞는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집단의 모든 의사결정이 자신을 거쳐갈 때 인간은 안심한다. 인간들에게는 신이라는 이름의 보스가 필요하다.
물리적 제압
동기의 논리가 먹힐 때도 있다. 그것은 제압되어 있을 때다. 엄마가 자녀에게 주는 동기는 먹힌다. 교사가 학생에게 주는 동기는 먹힌다. 자녀는 엄마에게 심리적으로 제압되어 있다. 이 방법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는 크지 않다. 산적들에게 사회의 동기부여가 먹힐 리 없다.
배가 고파서 산적이 된 것은 아니다. 이겨먹으려고 산적질 한다. 성매매 여성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편이 아니다. 산적은 자기네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을 때만 호르몬이 바뀐다. 호르몬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뀐다. 조폭을 개과천선 시키려는 노력은 의미없다.
조폭 두목은 패거리를 집합시키면 자기가 이긴다고 생각한다. 경찰이 열 명을 동원하면 나는 스무 명을 동원하는데 누가 이겨?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알려주겠다는 사회의 오지랖은 먹히지 않는다. 선악논리는 사회에서 먹히는 규칙이고 조폭세계 규칙은 이기느냐 지느냐다.
조폭이 도망치는 이유는 경찰이 자신을 붙잡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달리기로 하면 내가 이기는데 내가 왜 잡혀?' 그러다가 잡히면? 복종한다. 물리적으로 제압된 현실을 받아들인다. '유치장에서는 경찰이 왕이지. 인정할건 인정하자.' 힘의 논리로 현실을 받아들인다.
게임의 법칙이 작동한다. 산적은 언제라도 정부를 이겨먹으려고 한다. 조폭은 언제라도 사회를 이겨먹으려고 한다. 사회가 조금이라도 빈 틈을 보이면 바로 공략에 착수한다. 범죄자가 반성문을 제출하면서도 항소를 계속하는 이유는 사법제도의 빈틈을 봤다고 믿기 때문이다.
상대가 제압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를 먼저 살펴야 한다. 피아구분 중요하다. 동기부여는 같은 식구, 같은 무리에 소속되어 집단과 결속되어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야 한다. 많은 경우 동료가 아니라 경쟁자다. 아군이 아니라 적이다. 사회를 적대하므로 따르지 않는다.
기어코 이겨먹으려는 자는 물리적으로 제압할 밖에. 호르몬을 제압하고 무의식을 제압해야 사회화가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를 갈아타야 한다. 조폭사회에 소속된 자는 영원히 조폭이다. 산적사회에 소속된 자는 영원히 산적이다. 제도권 사회 논리는 의미가 없다.
인간은 가족과 무리에 충성한다. 범죄자는 그 가족 단위가 작다. 최악은 자기 하나만 챙기는 자다. 더 최악은 자기 자신 조차도 챙기지 않는 사이코패스다. 인류가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키려면 인류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물리적으로 제압해서 생태적 지위를 바꿔야 한다.
루틴 만들기
동기는 ‘위하여’다. ‘위하여’는 일단 거짓말이다. 인과법칙과 맞지 않다. '의하여'가 정답이다. 흥분에 의하여, 호르몬에 의하여, 무의식에 의하여, 생존본능과 세력본능에 의하여, 집단의 결속력에 의하여, 인간의 사회성에 의하여가 진실이다.
인간의 동기는 사회에서 개인으로 이전된다. 자기개발에 앞서 사회개발이 필요한 이유다. 내 생각이라고 믿지만 남의 생각이다. 나의 근심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남의 근심을 대신 걱정하고 있다. 사회와의 관계설정이 인간 내면을 결정한다.
로빈슨 크루소의 문명행동은 작가의 인종주의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무인도에 던져놓으면 원시인 된다. 실제로 증명된 일이다. 백인들이 남태평양 섬에 고립되었을 때 그들은 문명인의 도덕규범을 버리고 적나라한 부족민으로 되돌아갔다.
인간의 행동을 추동하는 것은 상호의존성이다. 집단 속에 게임이 걸렸을 때 인간은 움직인다. 인간이 행위하는 이유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화가 나서, 흥분해서, 호르몬이 나와서다. 대개 무의식이다. 인간은 알게 모르게 집단의 눈치를 본다.
동기부여는 자기개발서 팔아먹는 책장사들 거짓말이고 진실은 집단의 결속이다. 집단이 뭉치면 문제가 해결된다. 21세기에 버젓이 종교가 활동하는 이유다. 집단의 결속도가 높은 종교가 히트한다. 제사 때만 모이는 유교는 흥하지 못한다.
루틴 만들기가 유행이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인플루언서는 루틴을 만들어주는 직업이다. 루틴은 심리적으로 집단과 결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종교와 계율과 부족민의 터부도 그게 루틴장사다. 자기개발서도 루틴을 제공해준다.
에너지는 중심에서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집단의 중심을 차지하면 덜 흔들린다. 게임에 이기려면 지정학적 요지를 차지해야 한다. 명문대와 같은 중요한 위치를 선점해야 한다. 한국인들이 학벌에 집착하고 강남 부동산에 집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