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잃은 어미 새 /신옥식
우리 옆집에는 베트남 변호사 부부와 어린아이 2명이 살고 있다. 우리 두 집 사이에는 담장 대신 키 큰 호도 나무와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서 있다. 두 그루의 나무 사이로 가시검은딱새 가족이 부지런히 드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후르륵후르륵 날개 짓는 소리하며, 끼륵딱딱 끼륵딱딱 그들의 합창 소리는 슈만 환상곡 다장조를 연주하는 것 같았다. 하현달이 호도 나무에 걸렸을 때도, 사연 많은 별이 눈가에 이슬이 맺힌 밤에도, 가시검은딱새 가족은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들은 둥지를 나뭇가지에 짓지 않고 집 벽에 붙은 환기통 안에 틀었다. 주방과 연결된 그 환기통은 겨우내 더없이 따뜻한 보금자리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가족이 늘었는지 요즈음 들어 그 둥지 안은 더욱더 소란스러웠다. 나는 가끔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초저녁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현관문 밖 뜰에 앉아서 서늘한 공기를 즐긴다. 모두 잠든 밤에 고요히 나를 성찰하기도 하고 내일 일을 계획하기도 한다. 때로는 ‘별 헤는 밤’을 외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부스럭부스럭 가시검은딱새 가족이 적막의 고요를 깬다. 그럴 때면, 나는 호롱불 켜진 내 유년의 고향 집 안방으로 가 있곤 한다. 호롱불을 가운데 두고, 고물고물 어린 동생들과 손으로 귀여운 토끼도 만들고 순한 사슴도 만들며 그림자놀이를 한다. 그럴 때면 아버지가 큼지막한 손으로 독수리도 만들어 보이고, 호랑이나 큰 짐승을 만들어 ‘으르렁’하시며 우리가 만든 그림자를 위협한다. 우리는 깜짝 놀라 움찔했다가 이내 까르르 웃음보가 터지곤 했다. 곁에 계시던 할머니가 긴 담뱃대에서 화롯불에 재를 털어 내시며 한마디 하셨다.
“대궐 같은 집안에서는 웃음소리가 잘 들리지 않지만, 아이들이 북적대는 가난한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는다며 그것이 큰 재산”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참 진하게 다가온다. 나는 아들과 딸, 둘밖에 없는데, 아들은 캘리포니아로 떠나고 딸은 뉴욕으로 가버렸다. 아이들이 없는 집은 빈 둥지 같다.
가시검은딱새 집에도 큰 문제가 생겼다. 새들이 집을 비운 사이 가족을 보호하고 있던 둥지가 헐려버린 것이다. 그 집 주인인 크리스티나 트랜이 집수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회색 알루미늄 외장재를 밝은 베이지색 플라스틱 사이딩으로 바꾸고 트림과 물받침도 새로 해 달았다. 낡은 환기통도 뜯어내고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환기통에 망사를 씌워 더는 새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변호사인 크리스티나가 새소리 때문에 잠을 깊이 들 수 없어 일에 집중할 수 없다며 단단히 건축업자에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인부가 알에서 갓 깨고 나온 듯한 새 새끼 서너 마리와 아직 부화하지 않은 너덧 개의 알을 플라타너스 저쪽 끝머리 풀섶에다 옮겨 주었다. 그런데 어미 새가 새끼들을 찾지 못하는지 계속 환기통 주변에서 푸드덕거린다. 아빠 새인 듯한 검은 새도 플라타너스 나뭇가지에 옮겨 앉았다 다시 환기통 구멍 안을 두리번거린다. 가슴이 타는지 빨간 가슴이 더 벌겋게 보인다.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오는데 그들은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밤새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환기통 주변만 서성였다. 어찌나 길게 울어대는지 나도 한잠도 잘 수 없었다.
다음날, 나는 우리 집 뒷길을 산책하다가 우리 집 울타리에 앉은 가시검은딱새와 눈이 딱 마주쳤다. 가슴이 철렁했다. 건축업을 하는 내가 그 둥지를 헐어버린 범인이기 때문이다.
현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다. 현진이는 10여 년 전에 어른들의 잘못으로 유명을 달리한 아이다. 내가 살고 있던 대전 연구단지 사택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식당에서 일어난 일이다. 현진이네 가족과 몇몇 가족이 모여 그곳에서 회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른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아이들은 식당 밖에서 놀았다. 집으로 돌아갈 무렵, 다른 아이들은 다 돌아왔는데 여섯 살 된 현진이만 나타나지 않았다. 부모들은 유괴범 소행으로 알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아이를 찾아 나섰다.
“현진이는 똑똑해요. 그냥 놓아만 주세요.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라는 부모들의 간절한 호소가 매일 방송을 타고 흘러나왔다.
한 달 만에 배현진 어린이는 그 식당 하수관에서 까맣게 상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아이들끼리 숨바꼭질을 하다가 현진이가 주차장에 세워진 차 뒤로 숨다가 그만 헐렁한 맨홀을 밟은 것이다. 아이는 하수관으로 빠져버리고 맨홀 뚜껑은 그대로 닫혀 버렸다. 깜깜한 밤에 맨홀 안에 빠졌던 현진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현진이 엄마의 가슴엔 얼마나 큰 피멍과 대못이 박혔을까?
그 식당 바로 옆 대덕초등학교에는 우리 아이도 1학년과 4학년에 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