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는 넘쳐나는데 좋은 수필 찾기는 어려워 섭섭하지요”
[동양일보]“나는 수필을 만나기 전 심적인 자가 격리를 하고 살았다. 수필은 자폐의 광야에서 손잡아 이쪽 세상으로 안내해주었다. 부정의 암흑을 깨고 긍정의 옷을 입혀준 존재다. 독자에게 가기 전에 스스로를 위로해 주고 치유하여 재생의 옷을 짜게 했다. 그렇게 살고 보니 어느덧 석양이 내렸지만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않고 하루하루가 충만하다. 그것은 삶을 직조하는 수필이기에 가능했고 매순간 깨어 살게 하는 지혜의 샘이기에 가능 했을 것이다. 글을 다듬듯이 시간을 다듬은 흔적들이다.… 평생의 목표로 살아온 삶의 길과 수필의 길이 하나라는 사실 앞에 작아질 뿐이다.” -반숙자의 ‘빛나지 않는 빛’ 서문에서.
수필가 반숙자(潘淑子·85)는 1938년 충북 음성군 음성읍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살고 있다.
그는 청주사범학교를 나와 고향 음성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열정을 바치던 20세 때 천주교회에 입문, 영세를 받으며 ‘벨라제따’란 본명을 받고, 21세에 결혼을 한다. 남편은 본인이 되고 싶었던 화가였다. 그리고 2년 뒤인 23세 때 장티푸스를 심하게 앓고 난 뒤 양쪽 청력을 잃었다. 잘 듣지 못하고, 잘 듣지 못하니 응대를 잘 하지 못하는 신체적 결함에 절망했다. 교단에 더 이상 있을 수 없어 천직으로 여기던 교직을 17년 만에 떠났다. 결혼생활도 순탄할 리 없었다. 결혼생활 16년 만에 이혼을 했다. ‘구겨진 삶’에 위안 받을 곳은 성당이었고, 하느님의 구원을 간절히 간구했다. 그렇게 몇 년, 이혼녀의 상처가 아물 무렵 37세에 재혼을 한다. 7년 위의 상처남인 이명용 씨는 서울생활 10년을 포함해 48년간을 극진하게 아내를 보살펴 주다 4년 전 88세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음성읍 토계울길 72번길 23-11 1000평의 과수원에 28평짜리 양옥<사진>을 지어 ‘눈물 많은 아내’에게 선물했다. 이곳이 작가의 작품에 자주 오르내린 ‘과수원’이고, ‘사과나무’고, 새 삶의 둥지인 집필실이다. 첫 수필집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1986), <그대 피어나라 하시기에>(1990), <가슴으로 오는 소리>(1995), <때때로 길은 아름답고>(1998), <천년숲>(2008), <거기 사람이 있었네>(2015), 수필선집 <사과나무>(1999), <이쁘지도 않은 것이>(2009) 등의 작품집이 모두 이 과수원집에서 구상되거나 쓰여 졌다. <한국수필>(1981)과 <현대문학>(1896)을 거쳐 한국문단에 이름을 올린 지 불과 5년 만에 그의 탄탄한 글 솜씨는 돋보이기 시작했다. ‘현대수필문학상’을 비롯, ‘한국자유문학상’, ‘월간문학 동리상’, ‘조연현문학상’, ‘조경희수필문학대상’등 수필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을 모두 수상했다. 고향인 음성군은 1회 ‘자랑스러운 음성인상’으로 지역을 빛내 준 공로에 보답 했다. 이 같은 제2의 인생을 순탄(?)하고 보람 있게 경작耕作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남편의 헌신적인 배려와 수필만이 갖는 특별함 때문이었음을 그는 서슴없이 토로吐露한다.
4월 마지막 주말에 반 작가가 살고 있는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삼보 아파트를 찾았다. 읍내 한복판 산뜻한 디자인이 눈길을 끄는 390세대가 산다는 이 아파트 단지는 노인과 중년들과 어린이들이 많이 보였고, 복잡한듯하면서도 정돈된 느낌을 준다. 아마도 터를 잡은 지 오랜 세월이 고여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초인종을 눌렀다. 예나 이제나 웃는 얼굴에 주름이 많이 잡히는 반 작가의 반김은 언제나처럼 천진함 그 자체였다. 작지만 좁아 보이지는 않는 거실에 TV를 보기에 편하도록 배치된 소파 앞엔 글을 쓰거나 책을 보기 편한 테이블을 놓았다. 젊은 시절부터 청력을 잃은 스스로를 ‘半숙자’,‘반쪽’이라 하고, 이 메일의 아이디를 ‘반달’이라 하는 등 자신을 지칭할 때 절반이란 뜻의 반半자를 스스럼없이 붙이는 그를 문우들은 좋아했고, ‘반 언니’라 불렀다. 80대 중반인데도 인터뷰에 응하는 자세는 여학생처럼 반듯했다. 건강상태는 양호했고, 막힌 공간에서의 최고 성능의 귀걸이 보청기 덕분에 말을 천천히 하면서 음성의 톤만 높이면 의사소통은 충분했다.
●이 집, 혼자 쓰시기엔 적당하신가요?
“32평짜리 인데 30년 된 아파트예요. 그이(남편)가 떠난 후 이 자리처럼(앉아 있는 2인용 소파의 한쪽을 가리키며) 빈 공간이 커요. 그런데 가끔씩 좋은 분들이 방문하고 있어서 그리 적적하지는 않아요. 반쪽인 나의 남은 빈 곳을 채워주는 분들이 의외로 자주 있어서 기쁘고 행복해요. 반쪽이라고 깔보지 말아요(웃음)”
●고향에 돌아오시면서 바로 문학 활동을 하셨나요?
“1985년부터 10년간을 서울에서 사업을 하시던 시아버님 병수발을 했어요. 1995년에 내려 왔어요. 오자마자 문학의 황무지 같던 고향을 위해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지요. 곧바로 한국문인협회음성지부를 창립하고, 2년 후 5월엔 한국예총음성지부를 발족시켰어요. 일하는여성의집, 청소년문화의집, 예총 등에서 문학교실을 열어 청소년과 주부들에게 수필쓰기를 중심으로 문학 강의를 했지요. 꽃동네에도 주기적으로 찾아가 심신 장애인들에게 문학 지도를 통해 재능을 일깨우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했어요. 내가 받은 심신의 상처를 열정적인 문학 지도를 통해 치유하려 했던 것 같아요, 해를 거듭하자 ‘음성문학의 어머니’라는 과분한 닉네임까지 붙여주더군요. 참으로 열심히 했어요”
●문학 강좌가 계속되고 있는지요.
“요즘에도 매주 화요일 자치센터에서 수필쓰기 강의를 계속하고 있어요. 수강인원은 30명인데 열심히들 하고 있어요. 공부를 하다보면 성급해지나 봐요. 등단 욕심이 앞서는 경향이 있어 이를 제어하느라 에둘러 여러 사례를 들어 주기도 해요.”
●강좌내용이 문학인지, 수필쓰기인지
“수필을 이야기하려면 자연 문학전반에 관한 언급이 되지요. 그러나 수필에 관해 집중적인 강의를 해요.”
●”수필이 문학이냐”란 반론이 아직도 있는 듯 하지요?
“자칫 신변잡기적인 글들이 많다보니 그런 비아냥적인 말들이 있는 것 같아요. 단언컨대 문학 장르 중 사람과 가장 가까운 것이 수필문학입니다. 소설은 이 바쁜 시대에 다 읽기가 솔직히 어렵고, 시는 그 함축성이나 상징성이 너무 정교하고 난해해요. 이에 비해 수필은 길이가 적당하고 전개가 빨라서 공감도 빠르지요. 수필은 어떤 예술, 어떤 문학보다도 그 소재나 표현이나 전달이 사람을 떠나지 않아서 진정한 감동을 주는 문학이지요. 그래서 강의의 중심에 수필이 경계해야 하는 첫째가 주제의식 없이 마구 퍼(써) 대는 것이라고 주지시켜요. 요즘 들어 더 극성을 떨며 너도 나도 수필가라고 떠들어대요. 그래서 수필인구는 엄청나게 많은데 수필다운 수필은 적어서 안타깝지요.”
●기본도 갖추지 않은 시인이나 수필가를 양산하는 몇 문학지와 수필지의 책임도 크지요?
“한국문단의 고민 중 하나가 일부 문학지의 무분별한 상업성이지요. 책을 팔아서 먹고 살려니 신인상 제도를 이용하여 등단을 미끼로 장사를 합니다. 그러니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은 저질작가의 요람이 될 수밖에요. 이렇게 나온 친구들이 글을 쓰기 보다는 기존 문학단체에 들어가 단체를 장악하는 사례가 도처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합니다. 더 한심스러운 것은 일부 문학인들이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 문학잡지나 전문지를 발행하여 자기 패를 만들어서 그동안 쌓아놓은 문학이나 문학인의 격조를 떨어뜨리고 있음이지요. 또 ‘△△문학상’이라고 만들어 마구잡이로 수상자를 등단시키는 것도 문제지요. 저는 생애를 걸고 문하생을 키우고 있지만, 갈수록 이 같은 세태에 맞서기가 힘들어져요.”
●어떻게 문하생을 키우십니까?
“수강은 누구나 원하면 하는 것이지만, 문하생을 키우는 데는 너무 까다롭다는 뒷말을 들어요. 작품을 30편 쓰도록 하는데, 이 정도 쓰려면 대략 5년 쯤 걸리죠. 성급해서 이 기간을 견디지 못하면 떠나게 됩니다. 이제까지 문하생이 80명쯤 되는데 절반쯤이 음성에, 나머지는 제주 등 전국에, 미국 휴스톤대학 교수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어요. 최근 2,3년엔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에 당선된 김향용(충주)수필가 한 명이 등단했어요. 요즘엔 공모전 상금만을 노리는 수강생들도 있다고 듣습니다. 글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바탕을 보아야하지요.”
●한국의 수필가 중 존경하는 인물은?
“쉽지 않지만,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쓰시다 2013년에 타계하신 김열규 교수(서강대. 문학평론가), 닮고 싶은 분으로는 <외로움이 사는 곳>의 그 반짝반짝 빛나는 글의 전주 출신 최민자 수필가 등… 훌륭한 수필가가 여럿 있어요.”
●‘반숙자문학상’ 제정 의사는 있나요?
“(갑자기 손을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언성을 높여)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나 써야할 것이 많은데 감히 누구에게 내 상을 줍니까. 당치도 않지요. 보시면 알겠지만 유서에도 써 놓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시한 사람 되기 싫어요. 그런 짓 하지 않겠다는 신념은 확실해요”(단호한 어조와 태도 때문에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음성의 5일장 장 구경하고, 매주 성당에 가고, 그리고 매일 오후 2시 쯤 1시간 걸어요. 걸으면서 옛날 교사 때 익혔던 보건체조 꼭 합니다. 음성에 옛 제자들이 몇 있는데 나오라해서함께 체조하는데 그들 제자들은 이제 겨우(?) 65세인데 체조순서를 다 잊어버려서 나를 보고 흉내 내요(웃음)저녁엔 발끝치기 3000번 해요.” (‘그렇게 많이?’ 라며 놀라자, 해 보면 별 것 아니란다)
●가까운 분들은?
“남편 사별 후 가끔씩 사막에 홀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는 하느님을 찾으며 위안을 받아요. 그러나 대부분은 방문객들이 많은 편이지요. 내 동기간이 9남매인데 본부가 내 집이어서 자주 모여요. 수녀님들이나 문하생들, 성당과 이웃사람들이 살아 있나, 얼마나 더 늙었나… 확인하러 방문해주지요. 내가 돼지갈비구이 하고 술 한 잔 쭉 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요즘 사람들은 깍쟁이가 돼서 술을 안 먹어요. 그래서 쬐끔(조금)섭섭은 하지만…”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도스토예프스키(소설가) 때문에 러시아도 두 번이나 갔고, 유럽이며 미주, 인도와 동남아 등 세계여행도 많이 했어요. 7월에 몽골가자고 해 놓고 포기했어요. 이제 자신이 없어요. 대신 국내 129곳의 성지순례를 하자고 했어요. 금요일이면 팬텀싱어 즐겨보느라 신나지요. 자막 나오는 (청각장애자용)TV여서 보고 듣는데 아무 지장이 없어요. 식사도 하루 세끼 꼭 챙겨요. 내 삶을 사랑하기에 잘 먹고 열심히 쓰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요.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기뻐요”
돌아 나오려다 열려 있는 그의 서재 방을 들여다보았다. 잘 정리된 서가엔 수필집 등 문학서적 못지않게 신앙에 관련한 서적들이 눈길을 잡았다. <최양업신부의 서한>, 빅터 플랭코의<죽음의 수용소에서>, 샤를 드 푸코의 영적수기 <사하라의 불꽃>등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진 책들과 함께 <토머스 마튼의 영적일기> 등 가르멜 수도회 관련 서적이 많았다. 알고 보니 그는 2005년에 가르멜수도회 재속회원이 되었다.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세상을 긍정의 눈으로 보는 힘이 신앙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했다.
조철호 시인·동양일보 회장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시인
첫댓글 어쩜 저리도 소녀 같은 미소를 간직하시고 사실까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저희 후배들이 배우고 닮아야 하겠어요
천사의 미소가 이런 모습이겠지요.
삶이 아름다우시니 글에서 향기가 나지요.반선생님 고운 미소 언제나 뵐수 있도록 늘 건강하세요.
글쓰는 자세나 곧은 정신, 겸손함, 노후의 모습 등 많은 것들을 짧은 글을 통해 반선생님에게 많이 배웁니다.
반언니 ~ 차아암~수녀님의 모습이 보이네요...신앙인의 향기(삶의 향기)가 느껴지는~담백하고 단단한 문체로~부드럽고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는 반언니~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꾸벅
신문에서 읽은 것을 새롭게 보네요.
살아온 삶이 수필이지 않나 생각되더군요.
글을 향한 열정이야말로 뜨거운 삶을 사는 일이겠죠.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오늘서야 댓글을 봅니다.님들의 사랑에서 하느님 마음을 느낍니다.청주교구 가톨릭문인회에 함께여서 행복합니다.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