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마당에 울긋불긋한 청계와 조선 닭 30여 마리가 산책을 즐기고 있다. 터가 넓어 풀과의 전쟁을 해결해 주는 유일한 친구들이다. 양계장 하는 친구로부터 청계 어미와 병아리 열한 마리를 선물로 받았다. 한 마리도 실패하지 않고 잘 자랐다. 열한 마리 중 암탉은 세 마리이고 다 수탉이었다. 일 년이 지나고 봄이 되자 세 마리의 암탉이 꼬꼬 거리며 새끼를 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알을 15개씩 넣어 주었더니 얌전히 앉아 품었다. 21일 되자 마치 데모를 하듯 어미 품속에 병아리들이 깨어 나오기 시작했다. 신비스럽기 까지했다.
어쩌면 15개의 알이 온전하게 병아리로 변신을 했다. 까망, 노랑, 밤색의 병아리들이 어미날개 죽지 사이로 까-꿍을 하듯 고개를 내 밀었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계란을 삶아 노른자위와 참깨를 주었더니 먹기 시작했다. 병아리는 어미를 따라다니며 자라기 시작했다. 그 번식력에 갑자기 양계장 주인이 되었다. 세 마리가 깐 병아리가 30마리가 넘었다. 한 달이면 병아리 사료와 어미 사료를 창고에 쌓아 놓을 만큼 먹성이 좋았다. 힘든 줄도 모르고 재미가 나서 아침에 일어나면 닭들의 먹이로 야채를 썰어 사료와 버무려 주는 일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터가 넓은 한옥집을 관리하느라 매일 풀과 전쟁을 했었다. 여러 마리의 병아리들이 돋아나는 풀을 뜯어 먹으니 풀 뽑을 일이 없게 되었다.. 화단이고 앞마당이고 담 밑까지 닭들은 땅을 헤집으며 먹거리를 찾았다. 무슨 일이든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남편과 난 병아리 기르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가을이 되니 알을 낳기 시작했다. 여러 마리가 낳는 닭 알을 지인들과 이웃과 나누는 재미가 쏠쏠했다. 닭을 기르고 싶은 분께 한 쌍씩 분양도 해주었다. 수닭이 많았지만 분양 해줄 때 멋진 수닭을 고르게 할수 있어 좋았다.
닭들이 집을 어질러서 집이 깔끔하지는 못해도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새집에 살고 싶어서 집을 짓게 되었다. 일꾼들이 닭이 많은 것을 보고 수탉을 저렇게 많이 두니 사료값이 많이 들어간다며 놀려 댔다. 반려동물처럼 사랑으로 기르는 닭을 잡아먹는다는 것이 마음 아팠으나 일꾼들의 보양식으로 수닭 두 마리만 남겨두고 내주었다. 일꾼들은 시장에서 사다 먹는 닭과 비교하며 보양식이라고 좋아했다. 닭을 길러 보니 100마리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집을 다 짓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딸아이가 새집이니 깨끗하게 살자며 닭 기르는 것을 탐탁히 여기지 않았다. 정든 것들과 이별한다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편하게 살라며 닭 기르는 것을 반대했다. 마음을 다잡고 과감하게 이웃들께 분양을 했다. 사돈댁에 10마리 보내고 누구든 닭을 기르고 싶은 분께 나누어 드렸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닭 기르는 집이 우리 마을에 여러 집이다. 마을을 돌아보며 저것들이 다 우리 닭이다 생각하니 서운할 것도 없었다. 이웃은 알을 많이 낳았다며 계란을 한판씩 선물로 가져오는 분도 있다. 내 집에서 닭은 기르지 않지만 덕분에 닭 우는 마을이 되었다. 새벽이면 여기저기서 “꼬끼오” 하고 주거니 받거니 마라톤을 한다. 평화가 넘치는 우리 마을이 닭우는 마을이 되었다..
첫댓글 어렸을 때 집에서 소, 돼지, 토끼 등 여러 종류의 동물을 길렀죠.
닭과 오리를 수십 라리 사육한 적도 있었죠.
병아리들을 분양하고-. 그것이 벼슬 닭이 되어 새벽을 깨우른 닭울믕 소리 여기까지 들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알을 베풀다가 닭까지 베푸니 이제 닭을 키우지 않아도 알이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