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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8. 비전중앙교회 주일오전예배
변질되는 십자가의 도
고전 1:10-18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라는 말이 나오죠. 이 말씀은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은 어렵지 않으니, 웬만하면 지금 바로 암송을 해버리세요.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멸망 받을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다.’ 이것은, 꼭 단어 하나하나를 그대로 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 위에 세워진 종교이며, 복음도 그러합니다.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제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우리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하는 것이고, 우리 기독교의 뿌리이며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의 도가 변질되면 교회가 변질되고 기독교가 변질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분명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시대가 되면 십자가의 도가 변질될 것임을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미 경고하셨습니다.
자, ‘십자가의 도’ 이러면 여러분들이 머릿속에 ‘그리스도’다, ‘십자가의 도는 그리스도다’, ‘예수님이다’를 먼저 기억하시고, 그리고 ‘이 그리스도 예수님은 복음이다’라고 일단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이 복음의 변질은 ‘십자가의 도’의 변질입니다. 이 변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일어납니다. 원래 ‘십자가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예수님이 가르쳤고, 사도들이 가르쳤고, 하나님의 수많은 바른 종들이 가르쳤단 말이에요. 그런데 일부의 잘못된 자들 또는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서, 이 ‘십자가의 도’를 어떤 형태로든지, 조금 바꾸든지, 많이 바꾸든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하든지 간에 변질시키는 일들이 초대 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6절에서 이렇게 ‘십자가의 도,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라는 이 복음이 100% 순전하고 완벽하잖아요. 거기에서 0.1%라도 다른 게 들어가면, 이건 십자가의 도가 변질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볼 때에 0.1% 정도가 바뀌면 잘 몰라요. 여러분들, 큰 커텐이 있다고 합시다. 그게 깨끗한데 조그만 까만 점이 하나 있으면, 우리 그거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의 도, 복음도 원(原)복음이 이렇게 있는데, 완벽하게 달라지면 우리가 알아요. 저건 완전히 다르다, 저건 틀렸다 그렇게 분별할 수가 있는데, 아주 미세하게 그것도 우리가 봤을 때는 이것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 분별조차 하기 어려운 식으로 변질되어 우리에게 들어오면, 이건 사실은 찾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굉장히 어려워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시대를 너희들이 만날 텐데 그러면 절대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을 많이 하셨거든요. 예수님도, 사도들도, 많은 신앙의 선배들도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의아한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상한 다른 복음에, 십자가의 이 가르침을 뭔가 변질시킨 데에 너무너무 쉽게 미혹이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 미혹이 돼요.
저에게도 편지가 하나 왔어요. 요즘 손글씨로 편지를 잘 안 쓰는데, 아주 정성 들여 손글씨로 쓴 편지가 하나 왔어요. 그래서 성의가 참 좋다 싶어서 쭉 보니까, 신천지에서 온 거였어요. 자기가 교회를 다니다가 신천지로 간 간증을 이야기하면서, 이게 진짜 복음이라는 식으로 그렇게 편지를 쭉 써놓은 거예요. 그래서 참 기특하다, 이단이지만 참 기특하다고 생각했지요. 여러분들, 여러분의 가족이나, 주변에 정말 영혼을 구원시키려는 사람들에게 타이핑이 아니고 손글씨로, 거기도 두 장 적어 왔더라고, 두 장씩 쭉 채워가지고 그렇게 편지해본 적이 혹시 있는지 모르겠어요, 근래에. 잘 안 되거든요. 그런데 다른 복음을, 거짓된 복음을 받은 자들이 이렇게 정성스럽게 목회자도 미혹하기 위해서 편지를 보낸 것인데, 자기가 이제 바른 복음을 찾아서 지금 신천지에서 그렇게 열심히 일한다는 이런 내용이었어요.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목회자들도, 완전히 다른 복음인데도 넘어가더라는 말입니다. 약간만 바뀐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르거든요. 완전히 비(非)복음인데도 넘어간단 말이에요. 그래서 성경을 이야기하면은, 전부 다 올바른 줄로 착각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께서 오늘 말씀을 듣고, ‘십자가의 도’ 이것은 절대 바뀌면 안 됩니다. 천지가 개벽하더라도 이게 바뀌면 위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교회 내에 침투하는, 이 다른 복음에 대해서 경고를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경고를 많이 했다고요.
오늘 이 본문은 ‘고린도 교회’라는 교회에 쓴 편지지만, 그 내용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말씀 듣는 여러분들에게도 똑같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 표현을 보면 참 아름다워요. 1장 2절을 보면 이래 놨어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그러니까 이 편지를 받는 대상이 누굽니까? 성도라는 거예요. 이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가 아니고, 고린도 교회 성도와 일반 성도들에게 동시에 주시는 말씀인데,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이래 놨거든요. 그러니 이 편지의 수신자가 누구냐면, 우리라는 거예요. 안 믿는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에게 권면해 주시는 말씀이에요.
그런데 이 편지를 받는 고린도 교회 내의 무리 가운데에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십자가의 도를 알고 복음을 알고 있는 자들도 있지만, 다른 복음 즉 거짓 복음을 가진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 거짓 복음을 가진 자들이 좀 힘이 있었던 것 같아요. 힘이 있다 보니 사도 바울에 대하여 심한 공격을 했는데, 어떤 경우에는 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이런 거짓 복음에 미혹되어서 사도 바울을 사도로 대우하지 않고 사기꾼이나 거짓 선지자 비슷하게 생각하는 현상이 고린도 교회 내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일어났어요, 이런 일이 실제로. 얼마나 바울이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그래서 다른 복음, 다른 십자가의 도, ‘바른’이 아니라 ‘다른’ 십자가의 도를 가르친 무리에 대해서 쭉 설명하고, 그들에 의하여 나타난 교회의 문제들을 고린도전서에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었던 내용 가운데 보면 일단 분쟁이 나오죠. 그다음에 그 뒤에 쭉 나옵니다. 은사 문제, 제사 문제, 여자 문제, 음행 문제, 성찬 문제, 부활 문제, 그다음에 결혼 문제 등등 계속 나와요.
이렇게 잘못된 사상을 가르치는 자들이 교회 내에서 득세하면서 성도들을 꾀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건 굉장히 무서운 일이거든요. 원래 사기꾼들이 모습이 아주 아름답습니다. 옷도 잘 입고 헤어스타일도 멋지고 말도 굉장히 잘합니다. 여러분들처럼 꾀죄죄하고 이런 사람들은 사기꾼 안 된다고. 저 같은 사람도 보세요, 사기꾼 될 스타일인가. 생긴 것부터가 뭔가 좀 꾀죄죄하잖아요. 그런데 다른 복음을 전하는 무리는 있잖아요, 말을 잘해요. 말도 잘하고 상대방에게 설득력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자들이 또 뭔가 풍성하게 씁니다. 교회에서 성도들 데리고 가서 맛있는 거 대접하고 목사님에게 굉장히 잘해요. 근데 우리 교회는 잘못된 무리가 없는 거 같아요, 목사님한테 잘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그러니까 진짜 이 잘못된 자들은 굉장히 목사님에게 잘합니다. 왜냐, 인정받으려고. 저는 잘한다고 여러분들 인정하지 않아요. 인정은 하나님께 받으면 돼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믿음 생활 잘하는 게 제일 좋은 거예요. 그래서 이런 자들이 교회 와서 성도들에게 섬기고 대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조금씩 다른 복음을 이야기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그러니 오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는 말씀이에요. 여기 있는 여러분들에게 주는 말씀이에요. 그러나 여기에 만약 다른 복음, 다른 거짓된 복음을 따르는 자가 있다면, 그들에게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예요.
여러분들, 고린도전서 많이 보셨죠? 보면서 나름대로 은혜를 많이 받으셨겠습니다만, 쭉 읽어 가다가 보면 참 감동적인 말씀이 8절에 나와요. 이런 말씀들을 잘 보셔야 됩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이거는 주님이 오시는 재림이라든가, 주님을 만날 때라는 의미로 볼 수 있겠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중간 부분 다 빼고 보면, “주께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누가 견고케 한다고요? 주님이 하신다는 겁니다. 이거 굉장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성도의 견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끝까지 주님이 여러분들을 붙잡고 견인해 간다는 거예요. 여러분, 차가 고장 나면 무슨 차가 옵니까? 견인차가 오잖아요, 견인차가 와서 이제 차 수리점으로 끌고 간단 말이에요. 주님께서 고장 난 우리를 잡아서 끝까지 어디까지 간다? 천국까지 데리고 간다, 이걸 견인이라 그래요. 성경은 보면, ‘주님이 우리를 끝까지 지키시고 인도해 가시며 놓지 않는다’라는 약속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는 주님이 끝까지 견고케, 단단히 해서 지켜 주신다는 이런 내용이 수없이 나오거든요. 얼마나 위로와 힘이 되는 내용입니까?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거짓된 무리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분쟁을 일삼고, 그다음에 오늘 본문에 나오듯이, 당을 짓도록 유도하는 이런 일들을 벌입니다. 교회에 분쟁이 없으면, 당이 안 만들어져요. 우리 교회처럼 이런저런 분쟁이 없으면, 당이 안 만들어집니다. 내 편, 네 편, 이런 게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분쟁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당이 만들어져요. 어느 집사파, 어느 집사파, 장로파, 권사파, 아니면 목사님파 하면서 당이 생겨. 그런데 그 분쟁의 요소, 그다음에 이 당의 요소를 가만히 추적해 보면요, 진짜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 건데, 이게 별거가 돼 버려.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것이 돼 버려서 교회 전체를 어지럽게 만드는 무서운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미혹되어 쓰임 받게 되면, 굉장히 불행합니다. 굉장히 불행하다. 실제로 교회 내에서 물론 다른 이유로 인해서도 당이 지어질 수 있지만은, 고린도 교회 내에서는 말씀이에요, 십자가의 도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들이 이렇게 당을 짓도록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일단 18절에서 바로 이렇게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가르침, 십자가에 대해서 전하는 이 가르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 내에 있는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미련하다는 거예요. “그들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는 미련한 것이요’ 여기에서 멸망하는 자들은 일단 고린도 교회 내에서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지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자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는 자들도 멸망하는 자들, 미련한 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굉장히 미련하게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생각이 안 들었겠지만, 그러나 일반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말씀 보면서 하나님 앞에 정말 온전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예수 안 믿어도 된다”라는 식으로, “뭣 하러 주일마다 교회를 가느냐”는 식으로, 또 “너도 지금 굶어 죽을 형편인데 교회에 뭐 하러 헌금을 하고 그러느냐”는 식으로 잘못 안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김금옥 집사님 모친에게 세례를 드리고 왔습니다. 연세가 97세입니다. 그리 교회에 오고 싶은데 올 수는 없지만, 이제 예수님 영접하고 싶고 기도도 하고 싶다 하셔서 세례까지 받게 된 거예요. 늦었지만 그분은 아주 지혜로운 분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도, 이것이 성령을 통하여 깨달아졌거든요. 97세에 믿으나 여러분들처럼 젊어서 믿으나, 하나님께 구원받는 건 똑같습니다. 똑같이 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어요. 이게 진짜 기적 같은 일이에요. 저도 그렇게 연세 드신 분 세례 주기는 또 처음입니다. 예전에 한 분이 임종 며칠 전에 주님 영접하고 세례를 받은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 그분의 나이가 70대 정도 됐거든요. 이렇게 느지막하게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정말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세계라든가 구원의 은총이라든가 이런 걸 잘 모릅니다. 그들이 죽고 난 뒤에 어디로 갈지에 대해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어떻게 된다는 게 하나하나 깨달아지기 시작하고, 잘 모르던 진리의 말씀이 조금씩 들어오게 되면은, 주님을 영접하고 예수를 믿은 게 얼마나 복된 일이고 감사한 일인지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하고, 이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릴 때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회개시키는 거죠, 완전히 그냥 이유가 없어. 성령께서 회개시키는 건 이유 없이 그냥 그런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대부분 겪어 본 일들일 겁니다. “아, 목사님, 나는 아직 그런 일이 없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일이 없이 갈 수도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십자가의 도가, 십자가에 대해서 가르치는 이 가르침들이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고,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데, 이 십자가의 도가 뭔지 알아야 하잖아요. 이거, 여러분들, 굉장히 간단합니다. 다른 어떤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복잡하고 막 어렵고 한 게 아니고, 십자가의 도는 너무 단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우리가 죄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이 사형선고를 없애기 위하여-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했다는 이 사실과 그다음에 이를 믿는 자는 모든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십자가의 도의 핵심입니다. 이게 되면 돼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구원을 완성하셨다. 우리의 죄 때문에 그분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십자가의 도의 핵심입니다. 이게 복음이에요. 예수님이 이것 때문에 세상에 오신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런 놀라운 은총, 구원, 복음이 어떻게 주어졌는가, 이것이 무엇인가를 에베소서 2장 8~9절에서 정확하게 설명하는데,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래 놨어요. 이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거예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야기하면서, 9절에서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그리스도께서 완벽하게 이룬 선물이에요, 그런데 만약에 여기에 인간의 행위가 들어가게 되면, 인간은 자랑할 게 있습니다. ‘나도 주님이 구원을 이루는 그 사역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랑할 수가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인간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완전히 차단해버린 겁니다. 그러므로 이 완벽한 십자가의 도 안에 인간의 행위가 들어가게 되면, 이것은 맞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게 변질된 복음이 됩니다. 바울이 이걸 경계한 겁니다. 이걸 조심하라 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이것은 그 십자가의 도를 믿는 믿음이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아니 그러면 예수만 믿고 내 마음대로 살아도 구원받느냐?” 이런 얘기를 많이 듣는데, 여러분들 이거 잘 보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자기를 믿게 되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을 했겠어요? 예수님께서는 “천국 가려면 나를 믿고 내가 가르친 대로 내가 말한 대로 다 따라야 한다. 너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라는 식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무조건 나를 믿으라.” 하셨어요. “믿는 자 곧 그 아들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그랬어요. “믿어라” 그랬거든요. 이걸 여러분들이 잘 이해를 하셔야 해요.
왜냐하면, 자기를 믿게 되면은 그 믿음이 그 사람을 바꾼다는 것을 주님은 아십니다.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들어가면 성령께서 그 사람을 바꾸어 간다는 것을, 변화시켜 간다는 것을 예수님이 알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올바르게 성령으로 인도받는 사람들은 -간혹 즉시적인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점진적인 변화들이 다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외 없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죽을 때까지 가기도 해요. 어쨌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역사하시게 되면은, 이게 서서히 바뀌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급작스럽게 바뀌어서 주를 위하여 사는 분들도 있어요. 사도 바울 같은 그런 케이스거든요, 그런 케이스도 있지만, 대부분이 서서히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뭔가 모르게 예전에는 측은지심이라든가, 남을 위해 살아가겠다라든가, 주님 앞에 바로 살아야겠다라든가 이런 생각 자체가 안 들었는데, 주님을 믿게 되면서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주님께서 자기만 믿으면 된다고 하신 이 말씀이 뭔 말씀이냐 하면 주님이 다 바꿔 준다는 말씀이에요. 주님은 삶 자체를 다 변화시켜 주실 수 있고 그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믿으라”고 하신 겁니다. 무조건 믿으면 된다는 거예요. 믿으면 그렇게 하나님 앞에 자기도 모르게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게 정상적인 가르침이에요. 그런데 믿고 난 뒤에도 하나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죄를 죄인 줄 모르고 그렇게 산다는 것은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거는 믿는 게 아니죠.
여러분들, 죄를 짓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 혹시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면서 ‘내가 뭐 구원받았으니까 괜찮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하는 분 있습니까? 없잖아요. 가슴에 찔리잖아요. ‘아, 하나님 앞에 내가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이 계속 들잖아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또 잘못하며 살아가면서 ‘참, 이게 잘 안 됩니다, 하나님, 고쳐 주세요.’ 이러는 분들 사실 많잖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으라 하시는 이 말씀에는 주님이 바꾸시겠다는 의도가 다 들어 있습니다. 누구를 통하여? 성령을 통하여. 자신 있다는 거지, 주님이. 주님은 우리의 모든 걸 다 바꿀 수 있는 분이에요. 생각, 마음, 행동, 다 바꿀 수 있는 분이에요. 그러나 주님은 인간의 의지도 존중하기 때문에, 뭔가 잘못하면 주님이 짠하고 나타나서 어떻게 하시지 않습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 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해 보면 얻는 것은 공허와 허무함 뿐입니다. 그러나 힘들었지만 정말 주님 앞에서 주님 뜻대로 하고 나니까 뭔가 모르게 뿌듯하고 기쁜 마음으로 바뀌어 가는 겁니다. 이렇게 바뀌어 가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은총은 절대 믿음으로 가능한 것인데, 자, 그러면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한 번 보도록 합시다.
일단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동의하죠? 여러분들 가운데서 ‘아, 모든 인간이 죄인은 아니잖아요’라고 혹시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생각을 고치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분은 아무도 없죠. 여기 아무리 어린 애라도 아기라도 죄인임을, 그 애는 몰라도, 여러분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두 번째, 죄에 대한 대가는 죽음입니다. 사람이 왜 죽는가를 정확하게 알리는 책은 성경밖에 없어요. ‘인간이 죽는 이유는 죄 때문이다.’ 딱 정확하게 답을 주고 있어요. 그래서 죄에 대한 대가는 죽음이고, 이건 진행 중이죠, 지금. 지금도 사람들이 죽는 건 다 죄에 대한 대가예요.
그다음에 중요한 게 있어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거예요. 죽음이 끝이라면 빨리 죽어버리는 게 낫습니다. 수면제 왕창 먹고 죽어버리죠. 죽음이 끝이라면 그게 편할 수도 있어요, 힘들고 어려운 세상 사는 것보다. 그런데 사람이 죽고 나면 그게 끝이 아닙니다. 얼마 전, 지난 12월에, 참 안타까운 노릇인데, 목사님 가정에서 목사님이 아내를 죽이고, 두 자녀를 죽이고, 자기도 자살을 했습니다. 그 방송 보신 분 혹시 있나 모르겠어요. 목사님이 그랬어요. 요즘은 참... 그 목사님은 뭐가 없다? 성령이 없어요. 하나님의 자녀인 줄 알고 교회도 하고 다 했지만, 여러 가지로 너무 힘들고 하니까 세상에 그런 일을... 죽으려면 자기만 죽지, 왜 애꿎은 애들까지 죽이고 그래? 아, 참...
그래서 제가 조사를 해 보니까, 지금 목회자들이 자살을 많이 해요. 대구에 아주 유명한 모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이 참 좋다 보니까 그 교회 성도들이, 그 목사님 돌아가셨는데, 영상을 틀어놓고 예배도 드리고 하는 그런 교회가 있다고요. 근데 그 목사님이 자살했습니다.
여러분들, 있잖아요? 거짓된 자들도 지금은 말만 잘하고 조금만 언변이 좋고 제스처가 좋으면 성도들 감동시키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지금 인공지능요, 제가 이게 얼마나 대단한가 싶어서 대충 한번 뭘 해 봤거든요. 이거요, 진짜 기가 찹니다. 예전에는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이것저것 찾고 했잖아요. 이제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인공지능에 내가 알고 싶은 것 입력하면, 설교도 본문 딱 적어주면서 이런 제목으로 5분짜리 설교 좀 만들어달라고 하면요, 내용이 기가 찹니다. 목사가 이제 말씀 때문에 고민하고 기도하고 연구할 필요가 없어요. 조금만 언변이 좋고 카리스마가 있으면은 이제 그냥 실컷 놀다가 두드려서 내면 돼요. 이런 시대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어요. 지금 교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지금 그렇다고요. 그러면서 십자가의 도, 이것을 확실하게 못 믿어서 이런 자살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뭔가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해도 진짜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 없으면은 결국은 멸망 받게 됩니다. 십자가의 도, 이것을 바꿔도 멸망 받아요.
그래서 죽고 나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죽고 나면 그다음에 심판이 있습니다. 어디서 증거합니까? 성경이 증거하고 있어요. 여러분들, 하나님의 자녀는 뭘 믿어야 해요? 성경을 믿어야 해요. 성경을 믿어야 하나님의 자녀이잖아요. 성경이 뭐다? 하나님의 말씀이잖아요. 그분의 마음과 그분의 일과 그분의 계획과 그분의 뜻을 기록한 게 성경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하면은 성경을 보셔야 한다고요. 성경은 인간이 죽으면 끝이 아니라고 밝혀요. 그리고 그 뒤에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죽고 나면 심판을 받습니다. 이 심판은 미래의 사건이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절대 피할 수 없는 사건이에요.
그런데 이 십자가의 도에서, 하나님은 이런 용서받을 수 없고 죄로 말미암아 심판받아 마땅한 자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겁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걸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죄인인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래서 죽음 뒤의 영원한 심판을 받지 않고 용서받게 됩니다. 이게 십자가의 도입니다. 또한, 죽음 뒤에 우리는 지옥에 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갑니다. 그런데 천국 가는 조건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여러분들, 지금 제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자, 잘 봐요. 인간의 노력, 인간의 행위, 같은 의미입니다.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하나님 앞에 바로 살고, 헌금하고, 기도하고, 말씀대로 사는 이것은 육적인 행위입니까, 아니면 영이 하는 겁니까? 어쩌면, 영이 그래서 하는 것이 아니냐 하기 쉬운데, 그러나 행동 자체는 전부 다 육의 행동이에요. 육의 행동. 내가 잘 들으라 그랬어요. 이거 잘 이해를 해야 해요. 인간이 노력에 의해서 천국에 간다는 것은 육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죠? 육이 바로 살아야 하고, 육이 똑바로 해야 하고, 육이 선하게 해야 하고 하는 이런 의미거든요.
그런데 이것은 육으로 출생해서 육적인 상태 그대로 있기 때문에, 절대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도록 만드는 행위가 못 됩니다. 요게 지금, 여러분,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조금 어려운 내용이거든요. 쉽게 말하면, 육이 하는 모든 것들은 육이에요. 이건 구원하고 상관이 없어요. 우리는 영에 의해서 구원받게 되는 겁니다. 육의 탄생 자체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육은 어차피 하나님의 심판 아래 멸망 받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야 돼요. 다시 태어나야,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갈 수 있게 됩니다. 육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모든 것들 그 자체가 육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구원과는 일체 상관이 없어요. 구원은 영이 거듭나야 됩니다. 영이 거듭나는 것은 어떻게 거듭나느냐? 육은 육으로 인해서 만들어지지만, 영은 영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그게 뭐냐면, 성령에 의해서 거듭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육은 인간의 결합으로 탄생 되어서 육이 되지만, 영은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게 함으로 영이 탄생 됩니다. 육도 본인이 모르게 탄생했듯이, 영도 내가 예수를 믿기는 믿었는데 언제 내 영이 탄생했는지 본인이 모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아느냐? 여러분들, 내가 육으로 태어났는데, 그건 부모님이 육으로 태어났다, 생일 가르쳐주고 하니까 아는 것이잖아요. 영의 탄생도 사실은 우리는 몰라요. 육의 탄생도 부모님이 그렇다 하니까 그런 것이지, 우린 모른다고, 실제 몰랐었다고.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언제 영적으로 거듭났는지 몰라도,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 됨을 계속 확신시켜 주십니다. 자, 육적인 탄생은 결국은 심판을 받게 되고, 육에 붙잡혀 있는 인간의 행위나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을 절대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에 의해서 출생한 자는 자기 노력으로 태어난 게 아니에요. 자기 노력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인 믿음에 의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영이 출생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한번 출생한 것은 바뀌지 않습니다. 육의 법칙도, 한번 어떤 사람의 자녀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이 자녀입니다. 호적 판다 뭐라 해도, 그 사람의 피는 그대로 있어요. 영의 탄생도,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탄생한 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자기 자녀를 지키십니다. 육신의 부모도 자기 자녀를 지키려고 그렇게 애를 쓰고 노력하는데, 영의 부모인 하나님께서 영의 자녀가 된 우리를 지키려고 노력 안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노력하죠. 절대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그렇게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게 하나님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사탄은 하나님을 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으로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견인, 끝까지 견고케 하면서 데리고 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오늘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육의 노력은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해요. 왜냐하면, 육이라는 것은 죄의 상태 그대로 존재하는 거예요. 죄의 상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육이기 때문에, 육은 아무리 노력해도 육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영의 탄생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가능해지고, 이 영의 탄생이 우리를 천국으로 가게 하는 것이며, 이 영의 탄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에요.
그런데 이런 십자가의 바른 도를 헛것으로 만드는 중요한 사건들이 고린도 교회에서 몇 가지 일어나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분쟁이에요. 분쟁이 생기면서 십자가의 도를 헛것으로 만들어 버린 겁니다. 헛것으로 만들어 버리면서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이런 당파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1장 12절에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이래 놨어요. 그런데 올바른 십자가의 도는, 가르침은 하나님의 자녀는 분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절에 뭐라고 말씀해 놨습니까?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이것은 십자가의 도를 잘못되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겁니다. 바울이 전한 이 복음, 십자가의 도, 그리스도가 전한 복음, 십자가의 도와 같은 말을 하라는 겁니다. 그다음에,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온전히 합하라, 완벽하게 합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도를 바르게 깨닫고 알게 되면, 하나가 됩니다. 하나가 돼요.
십자가의 도가 변질되는 이유가 한 세 가지 정도가 있는데, 첫째는 잘못된 거짓 가르침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이게 아까 말했던 인간의 노력, 행위, 뭐 이런 것이 있어야 구원받는다는 거짓 가르침입니다. 여러분들이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간혹 말씀드린 것으로 아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구원을 99% 이뤘다 합시다. 그리고 1%는 인간의 노력, 행위가 필요하다 합시다. 그러면 결국은 구원이 99%에 의해서 결정됩니까? 1%에 의해서 결정됩니까? 이건 1%에 의해서 결정되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내가 1% 미달 되었기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은 구원의 결정이 그리스도에게 있는 게 아니고, 인간에게 있는 것이 됩니다. 이거 굉장히 위험한 사상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어요. 워낙 우리 기독교가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똑바로 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똑바로 살아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거꾸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똑바로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잘못된 가르침, 거짓 가르침, 교묘하게 십자가의 도를 변질시키는 무리들이 지금 계속 나오고 있어요. 이게 굉장히 위험합니다. 굉장히 위험해요. 그래서 말씀을, 십자가의 도에 대한 말씀을 확실히 이해하셔야 해요. 이렇게 믿으면, 주님이 바꿉니다.
두 번째는, 자신의 지혜를 믿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17절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이랬거든요.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실패한 경우가 딱 한 번 있었어요. 그게 언제냐면, 바울이 아테네에 가서 복음을 전해보니 거기에는 말꾼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말을 잘하니까 말로 막 전하려고 한 거예요. 실패했습니다. 이걸 바울이 고백하거든요.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 이것은 인간의 지혜를 믿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 밖에 있는 차원이에요.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없는 차원이에요. 이것은 그래서 비밀이란 말이에요. 이게 믿는 자들에게는 은혜와 은총인데, 세상 사람들에게는 멸망 받을 자들에게는 이것이 안 와닿으니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니까 자기들은 이걸 받아들이지 않고 뭔가 다른 인간의 어떤 논리로 바꾸는 겁니다.
여러분들, 모세오경 하면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다섯 개예요. 모세가 쓴 성경이잖아요. 근데 이거만 하면 완벽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완벽한데, 인간들이 모세오경 외에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인간의 어떤 지식이나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하자고 만들어낸 여러 가지 많은 다른 율법이 또 있어요. 그걸 ‘탈무드’라 그래요. 이 율법과 탈무드가 결합이 되면서,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박해했던 많은 무리들이 하나님의 완벽한 율법을 온전히 못 믿고, 자기들이 만든 유전에 짬뽕시켜 가지고 이상한 가르침을 준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을 공격한 거예요. “너희들은 하나님이 가르치는 원래 가르침을 버리고, 너희들이 만든 유전을 지키는 그런 나쁜 자들이다”라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자,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지혜를 통해서 이런 십자가의 비밀을 깨달으려고 하고 알려고 하면, 위험합니다. 이것은 깨달아지는 것도 아니고, 알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지혜나 생각 밖에 있는 차원이에요. 이거는 믿어야 돼요. 이거는 믿음만이 해결할 수 있는 놀라운 은총입니다.
그다음에 또 하나는, 말씀을 바로 모르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가 변질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깨달으면, 이 십자가의 도가 변질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모르다 보니까, 이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데 자기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을 해버리고 하면서, 말씀을 이상한 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자,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러분들 이걸 잘 아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임을 끝까지 붙잡으세요.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십자가의 도를 붙잡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임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다가올 여러 가지 어려움과 도전에 대하여 승리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 주보에 찬양 있죠. 찬송가 193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우리 함께 부르겠습니다.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더러운 죄 희게 하는 능력을 그대는 참 의지하는가?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에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주 예수와 밤낮으로 늘 함께 그대는 행동을 하는가?
아무 때나 어디든지 그대는 십자가 붙들고 있는가?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에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주님 예수 다시 올 때, 그대는 영접할 예복이 있는가?
그대 몸은 거룩한 곳 성전에 들어갈 준비가 됐는가?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에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모든 죄에 더러워진 예복을 주 앞에 지금 다 벗어서
샘물같이 솟아나는 보혈로 눈보다 더 희게 씻으라.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에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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