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3일간에 걸쳐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이 적바림(기록)한 동사강목(東史綱目)을 방안 굽도리(벽의 아래 가장자리)에 깜냥없이(얼음 가늠보아 해낼 능력없이) 눈시울을 아래로 곧추세우며 훑어내리고 있다. 태풍에 끄느름한(날씨가 흐리어 어둠침침한) 바깥 날씨에 방안에서는 가멸찬(넉넉한) 형광등 불빛이 사정없이 지면(紙面)을 내리쪼이고 있다.
<동사강목>은 우리 상고시대부터 고려 말엽까지를 편년체의 적바림한 형식으로 주요 사건을 그린 역사서이다. 댓바람에(단번에) 약 이틀 반나절 만에 그 두꺼운 책갈피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읽어내니 오늘은 눈에 핏기가 서린다.
간동하니(잘 정돈되어 단출한) 갈무리된 역사서를 읽으면서 역사에 대한 나의 갈래된(정신 또는 길이 섞갈려 종잡을 수 없는) 의식을 다소나마 거니챌(기미를 알아챔) 수 있었다. 단재의 <조선상고사>와 순암의 <동사강목>을 읽으면서 귀살쩍던(물건이 흐트러져 뒤숭숭한) 역사에 대한 흐릿하던 생각이 깨단해짐(어떤 실마리로 말미암아 환하게 깨달음)을 알았다.
무슨 일이든 처음에는 농사를 지을 때처럼 노가리(씨를 흩어 뿌리어 심는 것)질을 해야 가을철에 늦사리(철 늦게 농작물을 거두는 일)를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좀 역사의 사실과는 두동지는(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마뜩잖은(제법 마음에 드는) 곳도 여러 곳 눈에 뜨인다.
우리의 역사가 왜곡된 사실은 실제로 옹춘마니(마음이 좁고 오그라진 사람) 당 태종이었다고 단재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말하고 있다. 당 태종은 <사기>, <삼국지>, <수서> 그리고 <진서> 등을 그들의 역사에 부끄러운 부분은 거의 삭제를 하고 그들의 아름다운 역사만을 기록했다고 단재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