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혼다 모터스(Honda Motors)의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
丁 未 | 丙 午 | 乙 巳 | 甲 辰 | 癸 卯 | 壬 寅 | 辛 丑 | 庚 子 | 大 運 | 편재 | 일간 | 편재 | 상관 | 四 柱 干 支 | 姓 名 |
78
87 | 68
77 | 58
67 | 48
57 | 38
47 | 28
37 | 18
27 | 8
17 | 己 卯 | 乙 丑 | 己 亥 | 丙 午 | 本 田 宗 一 郎 |
비견 | 편재 | 정인 | 식신 |
▶ 사/주/분/석
이 명조는 월지(月支)의 해수(亥水)에서 기토(己土)가 투출한 것이니 재격(財格)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편재(編財)가 2개이니 이건 상당한 공공의 재산물을 상징하므로 법인(法人)의 재물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재격(財格)에서 상관(傷官)을 상신(相神)으로 하므로 격국은 재용식상(財用食傷)이 되는데 곧 상관생재(傷官生財)의 구조를 가진 격국입니다. 본래 상관생재(傷官生財)는 자기의 기술을 활용하여 창안한 물건들을 제조해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술집약적인 사업가의 기질이 높은데 특히, 기술집약이라는 것이 특징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어려서는 부친 밑에서 자전거 기술을 배우고 젊어서는 자동차 견습생으로 인생을 출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훗날 혼다오토바이, 자동차를 출시(出市)하게 됩니다. 그런데 상관(傷官)이 병오(丙午)로 구성이 된 간지(干支)이므로 이 사람의 기술은 화력, 불, 에너지, 발전기, 전기 등의 발열(發熱)장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수(亥水)와 오해(午亥)암합(暗合)이 되는 물상이니 해수(亥水)는 엔진 오일이 되었고 오화(午火)가 불꽃 방전을 일으키는 모터스의 내연기관으의 모습을 하는 것입니다. 고로 혼다 모터스는 오토바이, 자동차 등의 내연기관을 생산하는 기업이 됩니다. 또한 병오(丙午)가 도화(桃花)에 속하고 해수(亥水)가 역마(驛馬)에 해당하는데 합이 되어 있어서 이것은 에너지의 불기둥이 역마를 타고 이동하는 물상이 되었는 바, 축(丑)중의 신금(辛金)으로 가치 있는 물건으로 창출(創出)이 된다는 것이니 곧 운송수단을 제작하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 신금(辛金)이 오토바이 물상입니다. 고로 만약 축(丑) 중의 신금(辛金)이 투간한 즉, 병신합(丙辛合)으로 사라지면 병신합(丙辛合)은 합기(合起)를 불러 일으키니 기토(己土) 편재(編財)를 생하는데, 그 결과 사라지는 것은 신금(辛金)이요 들어오는 것은 현금(現金)이 되므로 곧 오토바이를 팔고 현금을 받는 방식의 매매 물상이 됩니다. 또한 기해(己亥)와 기묘(己卯)는 두 편재를 나누는 것이므로 편재(編財) 이위(二位)이 상(像)을 놓았는데, 편재 하나는 해중(亥中) 갑목(甲木)이 갑기(甲己) 명암합(明暗合)으로 관리하는 단체이고 다른 편재 하나는 묘중(卯中)의 갑목(甲木)이 갑기(甲己)명암합(明暗合)으로 관리하는 구조가 됩니다. 이것은 공공의 법인 그룹이 분산된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묘(己卯)시주는 일지(日支)와 시지(時支)가 묘축(卯丑)암합으로 일간 을목(乙木)이 직접 관할하는 바, 친정계열의 그룹이 되고 기해(己亥)는 또 다른 계열의 그룹으로 해중(亥中) 갑목(甲木)은 법인(法人) 동업자가 됩니다. 이것이 훗날 동업자인 후지사와 다케오(藤沢武夫)가 되는 것입니다.
▶ 인물백과
혼다는 토요타, 닛산과 함께 일본 3대 자동차 회사 가운데 하나이자 세계 10위권 안에 포함되는 자동차 회사입니다. 그리고 세계 최대 모터사이클, 내연 엔진 제조업체입니다.
● 1906년(丙午年): 혼다 소이치로는 일본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철공소에서 자전거를 수리하는 일을 익혔으며 이는 그로 하여금 기계와 기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1928년(戊辰年): 혼다 소이치로는 22세의 나이로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자동차 수리소를 차리게 됩니다.
● 1937년(丁巳年): 혼다는 도카이 세이키 부품 공장을 세워 토요타에 부품을 납품하게 됩니다. 이는 혼다의 초기 기업 활동 중 하나로, 자동차 산업에 대한 참여를 강화합니다.
● 1946년(乙未年): 혼다 모터스의 전신인 혼다 기술연구공업을 창립하고, 2년 후에는 첫 양산형 오토바이를 생산합니다.
● 1959년(己亥年): 혼다는 미국 현지에 첫 번째 혼다 오토바이 딜러 샵을 열게 됩니다. 이는 혼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더욱 확대시키는 중요한 결정이며, 혼다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됩니다.
● 1973년(癸未年): 혼다 소이치로는 혼다의 사장직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최고기술고문으로 활동하며, 회사의 기술연구분야에 전념합니다.
또한 그의 동업자인 후지사와 다케오(藤沢武夫)는 혼다 소이치로와 함께 혼다를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키웠습니다. 혼다 소이치로는 후지사와에 회사 경영의 전권을 맡기고 자신은 기술개발에 몰두하며 혼다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킵니다. "경영의 귀재"로 불리는 후지사와 다케오는 혼다 소이치로를 내조해 오늘의 혼다를 만든 장본인이며 일본 경영학계 전문가들은 "후지사와 타케오가 없었으면 혼다 소이치로는 단순히 동네 자동차 공업사 사장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사업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