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유유자적에서도 지향적 탐색
정부 문화예술 지원 정책의 허실
먼저 우리 문화예술 정책의 현주소를 말한다면 비애를 느끼다 못해 분노까지 치미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정부는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느니 그래서 문화예술의 발전이 곧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느니 다시 그러하기에 국력을 총동원하여 정책적으로 문화와 예술을 지원하고 보전 육성시켜야 한다고 외쳐왔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중론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문화와 예술의 중흥은 분명히 국민들의 삶에 대한 질적향상을 기조로 한다. 국민들이 문화와 예술의 향수를 통해서 의식의 전환과 더불어 윤택한 정서의 축적은 바로 국가의 위상을 정립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글로벌 시대에서 국가의 이미지나 브랜드의 정착을 이끌어낸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우리 문화예술인들은 보편적인 정서에서 바라볼 때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를 일컬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지난 10년간 소위 진보정권이 통치하면서 문화정치니 문화민주주의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문화예술 정책의 입안이나 시행에 그들의 코드에 맞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문화예술계와 문화예술인들을 보수와 진보라는 잣대로 양분시켜놓고 그들만의 잔치로 모든 정책이 실행되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위원회 공화국에서 개편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사업을 살펴보면 명백해진다. 지난 6월에 내년도 ‘예술지원정책 릴레이 토론회’가 있었다. 우리의 모든 문화예술의 지원을 관장하는 이 위원회는 옛날의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으로 전환하여 보다 정당성이 확보된 지원정책으로 향수자나 창조자 모두에게 균형있는 지원책을 강구하라고 한 목소리를 낸 바 있다.
이 토론에서 특이한 것은 어느 토론자가 ‘지난 정부에서 창작자 개인에 대한 지원이 두드러졌던 것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인데, 이전 정권의 주요 지지층인 창작자들에 대한 보상 개념이 앞섰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상 개념을 버리고 문학과 문학인의 자생적 생산력을 높이는 쪽으로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라는 주장이 많은 설득력과 호응을 얻어 박수를 받은 바 있다.
우리는 이 작은 나라에서 언제까지 이런 논쟁이 필요할까 우려된다. 유신시절과 군사정권 시절에 그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무슨 법률을 위반하여 교도소에 한번 갔다오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내세우면서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던 것이다. 엄연히 역사와 전통이 있는 문화예술 단체들을 배격하고 그에 소속된 문화예술인들을 폄하하여 관변단체니 어용단체니 무자비하게 난도질을 해댄 것이다.
이와 같은 작태는 문학, 미술, 음악뿐만 아니라, 대중예술, 영상예술 어디에도 적용하지 않은 곳이 없다. 우리 한국문인협회의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순수문학의 정통성을 계승 발전시키려는 선비들의 단체였다. 그들은 기존의 문인협회에 반기를 들고 나서서 처음에는 ‘참여문학’이라고 외치다가 슬그머니 ‘민중문학’이라고 간판을 바꾼다. 그러다가 ‘민족문학’이라고 개명을 하고 정부와 코드를 맞추어서 지난 10년간을 풍미하게 된다.
이처럼 그들은 ‘민족미술’, ‘민족음악’, ‘민족연극’, ‘민족무용’ 등 민족만 내세우면서 진보적 문화예술의 영역을 확산시키고 우리 문화예술인들 간에 예술이론과 창작의 순수성에 분열을 조장하면서 그들의 천국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금년 새 정부가 탄생하자 그들은 다시 ‘한국작가회’라고 ‘민족’을 지워버렸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것이 과거 우리 문화예술정책의 현주소라면 상당한 개혁이 지금 정부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문화와 예술의 발전적, 혹은 미래지향적 당위성은 통치자의 구미에 따라 변경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문화와 예술은 고유의 선비정신에서 출발한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생활이 편해졌다고 하드라도 그 뿌리는 우리의 고고한 정신에서부터 새로운 지향적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 물질만능으로 흐려지는 우리의 정신을 문화와 예술로서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문화권력이라고 지칭되는 반민족 정서의 창출에 앞장섰던 문화예술인들도 시대의 변혁을 인식하고 진정한 국가관을 정립하여 순수예술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예술단체들도 한 목소리로 단합해야 한다. 그리하여 문화예술 창작자와 수혜국민들에게 공존하는 정책이 실행되어야 한다.
우리 문화예술은 통치자와 추종자에 의해서 생성되고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과 함께 공유하는 영원성이 필요하다. 국가와 민족이 진실로 원하는 언어로, 그림으로, 노래로, 공연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이를 지원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는 경제 살리기를 정책의 우선 순위로 정했다고 한다. 다음 순위는 무엇일까. 당연히 문화적 감성과 창의력 발현으로 인간성을 회복하고 민족 정서를 정립하여 글로벌시대 나아가서는 통일시대를 대비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순수예술의 진흥에 정책의 기저를 설정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치자나 정책 입안자들의 문화예술적 의식이 중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예술을 국가 발전의 진정한 원동력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 문화예술진흥위원회를 개편하는 일도 한 방법이다.
다시는 ‘남북문학교류’라는 이름으로 금강산에서 남북작가들이 모여 ‘조국은 하나다 /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 남모르게 이제는 공공연하게 / 조국은 하나다 / 권력의 눈앞에서 /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 조국은 하나다 /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이런 것을 시라고 남측 참가자가 낭송하고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웃지못할 사건에 당시 정부가 수천만 원의 행사비를 지원했다는 그러한 우는 절대 범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헌정>9월호
유유자적(悠悠自適)에서도 지향점 탐색
--2017년 회고와 새해 바람
올 한 해는 유유자적하면서도 어떤 지향점을 향해서 바쁘게 달려온 듯한 생각이 든다. 문협 일들에서 벗어난 지금 가능하면 조용하게 지내고 싶었다. 미처 읽지 못했던 책을 들쳐보거나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오지(奧地)를 여행하는 일들을 야무지게 계획을 세웠으나 지금 와서 돌아보니까 모두가 시원찮다.
그러나 작년 여름에 창간한 『계간시원』이 우리 시인들에게 반응이 좋아서 주간직을 맡은 전 동명대 총장 정순영 시인과 함께 발행하는 기쁨도 있었다. 편집을 하고 광고를 섭외하고 서로 부족함을 보완하면서 벌써 7집을 발행하게 되었다. 작품을 보내주는 시인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또 하나는 『계간시원』이 주관하여 해외문학체험을 러시아 바이칼호수를 다녀온 일이다. 정순영 시인이 기행단장을 맡아서 총괄 지휘를 하고 광주의 김 종 시인과 이영하 전 레바논 대사 등 문인들이 이르쿠츠크와 바이칼 호수를 탐방하고 이곳 한국 영사관을 방문하여 엄기영 총영사와 환담을 나누는 등 교감을 가진 것이 외국기행의 묘미를 느끼게 된다.
올해는 생애의 수작(秀作)이라 할 수 있는 제11시집 『나와 너의 장법章法』을 출간하여 ‘한국시학대상’을 수상한 일이다. 이번 시집은 평소에 알고 지낸 전국의 시인들에게 발송하여 많은 답장을 받았으며 전국 유명서점에도 판매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제자들의 모임인 ‘청송시인회’에서 정기 신작발표회와 함께 ‘김송배 시집 읽기’를 개최하고 문단 나의 지인들과 함께 축하의 자리도 가졌다는 일이 문학적인 업적이라고 할 수 있어서 기뻤다.
나는 ‘시인의 말’에서 ‘詩여 ! 위대한 진실이여, 나를 구원하는 인생의 등불여, 죽는 날까지 그의 품 안에서 영원히 나를 인식하고 성찰하며 또한 정립하리라’라는 인생의 최후 보루인 시를 향해서 결연한 다짐을 써서 평생을 시와 동행하는 진실을 토로하였다.
나는 시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지도 않았는데 시창작 강의의 부탁이 많아서 1998년 KBS방송문화센터에서 시작한 강의가 청송시창작아카데미, 문협 평생교육원을 거쳐서 시원시창작연구원을 설립하고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매주 화요일에 강의를 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시집 해설의 청탁이 와서 김옥선, 김승길, 유 형, 박태원, 류영열, 장현경, 최정은, 김태흥, 정소현, 박영수, 권용익, 송수복, 김하영, 김영일 시집의 해설을 집필하여 이들의 시를 분석한 바 있어서 시론연구에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계간종합지 『문학미디어』 에 시계평을 쓰고 있어서 전국의 시인들과 교감하는 행운도 있었다.
또한 집필 활동은 ‘문학의 집, 서울’에서는 ‘문학인이 띄우는 편지 142’에 「다정다감한 호인 대학 총장-미강(未江) 정순영(鄭珣永) 시인에게」를 발표하여 우의를 더욱 돈독히 다졌으며 「내 삶에서 만난 문학」을 집필하여 ‘서울문학인대회’의 기념문집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그리고 경남문학관에서는 하반기 기획전으로 「문인과 찍은 사진 한 장」을 집필해서 정순영, 김 종 시인과 함께 이르쿠츠크 스탈린 동상앞에서 찍은 사진과 설명을 보내어 전시를 하는 영광도 가졌고 한국시인협회에서는 2018년 평창올림픽 성공 기원 ‘한. 중. 일 시인축제 참가시인’특집으로 「평창에서 시인들이」라는 작품을 기념시집에 수록하였다.
한국문인협회에서 사무처장과 시분과회장, 부이사장을 역임하면서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나의 문단 출신 모임인 ‘심상시인회’에 불참해 왔으나 올해는 제주도 총회에 참석하여 한기팔 시인 등 오랜만에 동지들과 만나 우정을 나누었다.
다가오는 2018년 무술년 개띠의 해에는 특별하게 바라는 일이나 성취해야할 사안이 없을 것 같다. 올해처럼 유유자적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는 철학서적을 좀더 심도(深度)있게 탐독하고 여기에서 유추하거나 사유한 것들을 확대하여 현실상황과 비교 탐구하는 공부를 많이 해서 지적인 인격도야에 힘써야 할 것 같다.
이제 나이도 고희 넘은 중반에서 그동안 탐구해온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들의 철학적 사제(師弟)관계의 학맥(學脈)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탐구를 열정적으로 해서 ‘너 자신을 알라’라는 깊은 의미를 심연(深淵)에서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소망이 있다면 지금 추진하고 있는 나의 작품을 영문으로 번역해서 『김송배 한영 대역시집』을 엮어볼 예정을 하고 있다. 옛날에 번역해서 컴퓨터 ‘내문서’에 담아두고 발간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문서 전체가 오염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어 현재 전문가에게 부탁하여 다시 워드를 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제8호를 기획중인 『계간시원』이 더욱 향상된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이도록 심혈을 기우려서 충실한 내용으로 우리 시문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잡지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제2회 문화기행으로 라오스와 미얀마 등지를 방문해서 그곳의 찬란한 불교문화를 배우고 싶다.
새해에는 더욱 챙겨야 하는 건강문제가 있다. 이제 신체기능도 나이만큼 낡아서 제대로 작동이 안 되고 고장이 나지 않도록 열심히 걷고 운동을 해야 한다. 두 달에 한 번씩 찾는 병원에서 의사의 상담에 순응하고 처방해주는 약도 잘 먹어야 한다. 건강이 다져진 후에 문학도 매진해야 할 것이다.(문학예술)
시간이 무겁다
--심상- 시인 이야기 김 송 배
(시)
-여보세요. 아빠, 별탈 없으시죠
딸에게서 오랜만에 문안전화가 왔다
코로나로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니까
많이 걱정스러운가 보다
-그래. 너희들도 괜찮지
서로 오가지도 못하고 불안해서
전화로,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 받는다
동네 작은 볼일도 마스크를 챙기고
거리두기로 쉬엄쉬엄 걸아가야 한다
이 무슨 위난인가, 환란인가
지구촌이 팬대믹 현상으로
친구 만남도 가족 행사도 없어졌다
삭막한 거리에도 춘삼월은 왔지만
오늘도 확진자들을 돌보는 천사들은
가슴이 차가웁다, 시간이 무겁다
주어진 삶의 넓이는 오로지 기도뿐이다.
아빠, 별탈 없으시죠
한자말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것이 있다. 누구나 봄 같지 않다는 말로 자주 인용하기도 한다. 지난날에도 봄날 같지 않은 계절의 횡포가 있었지만 올해의 봄은 유난히도 우리들 가슴을 조이게 하는 역질(疫疾)이 횡행(橫行)하고 있어서 더욱 어려운 봄을 살아가도 있다.
작년부터 우리들의 생활과 마음을 뒤죽박죽해 놓은 코로나19는 지구촌 인류를 위난으로 몰아넣고 있어서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에 위협을 야기시키고 있다. 우선 마스크를 착용해라. 사회적인 거리두기를 해라. 손을 자주 씻으라. 몇 명 이상 모임을 자제해라. 9시 넘으면 영업을 중지해라는 등등의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도록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일상생활에도 여간 불편한 점이 적지 않다.
지난 설날, 우리 고유의 명절인데도 자식들과 일가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여 새해를 기원하는 세배를 위한 모임이 없었다. 아들 내외는 오전에, 딸 내외는 오후에 시차별로 시간을 정해서 겨우 세배를 마치고 덕담을 나눈다거나 서로의 새해 설계를 토론하는 일도 없이 그냥 돌아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배돈은 다음 뵈올 때 주세요” 손자, 손녀 녀석들의 개구쟁이적 소망을 전화로 들으면서 한바탕 웃기도 했었다. 가족도 4인 이상 모이면 위법이라서 아이들은 집에 두고 왔단다. 사실은 손자손녀들이 더 보고 싶은데 말이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역병은 지구촌 전체를 팬데믹 현상으로 몰아 전 인류와 자연을 파괴 또는 해체의 수준으로 위협하고 있다. 뉴스마다 오늘의 확진자가 얼마. 사망자가 얼마, 격리수용자가 얼마라는 통계로 슬픈 소식을 전하고 있어서 집안 친척 결혼식에도 불참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는 대 환란의 시대에 우리들은 다시 봄을 맞이하였다.
먼 산에는 아직도 눈바람이 몰아쳐도 산천에는 꽃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라는 봄노래 가락은 멈춘지 오래다. 삭막하기만 세상, 지구의 이 대재앙은 언제쯤 사라질 것인가. 모두가 측은한 표정으로 극복의 의지로 인내하고 있다.
오늘도 병원 일선에서 희생정신으로 치료에 염념이 없는 간호사와 의사들의 정성과 용기와 노력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곧 예방접종이 활성화하면 감염 확진자는 없어지겠지. 그날의 환희를 기원할 뿐이다. “그래, 아빠는 별탈 없으니 너희들도 조심하거라” 전화로만 안부를 묻는 세상에서 올봄도 무거운 햇살은 무표정하고 어눌한 심정으로 차갑게 내려 쪼이고 있다.
[2021. 4. 심상]
투철한 시정신과 열정의 동화
--늦깎이 시문학 입문자에게 드리는 글
문학에서 굳이 ‘늦깎이’라는 표현은 필요 없다. 어쩌면 인생의 추수기에 더욱 알차고 빛나는 보석으로 주제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생을 살아오면서 체득한 오욕(財,名譽,食,睡眠,性)과 칠정(喜,怒,哀,樂,愛,惡,慾)이 스스로 자기를 중심으로 한 진실과 지향점을 정리, 정돈할 수 있는 여력(餘力)이 생겨난다.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게 되고 인생의 종점에서는 무엇이 어떻게 생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설정하고 실현시키려는 심적인 여유가 생긴다. 이것이 자아(自我)에 대한 이해이며 인식이며 성찰이다. 이러한 의미 깊은 바탕을 모색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공통된 기원이며 이루어야 할 목표이기도 하다. 이러한 중대한 인생론의 정점에서 시를 창작하는 것은 자기를 통한 올바른 정도(正道)의 목표를 향해서 무엇인가 늦게나마 인생의 투자를 설계하는 것이다. 시는 이미지의 산물이다. 이 이미지는 인생행로 즉 삶의 궤적(軌跡)에서 무엇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다시 더듬어서 재생하는 작업이다. 거기에서 간추려진 인생의 의미가 창출되는 것인데 이것으로 한 편의 시창작을 위한 소중한 질료(質料)로서 이미지화가 되는 것이다. 이러하듯이 소년시절의 사유(思惟)와 청년, 중년, 장년, 노년의 시간성에서 추출하는 정서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소위 ‘늦깎이’의 사유나 정서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오랜 심리적인 변화와 세상살이의 변화는 많은 시적소재를 제공하게 되고 여기에서 형상화하는 주제는 모두가 시인의 진실이 승화된 것이다. 시창작에서는 무엇보다도 투철한 시정신과 열정을 요구한다. 자신이 시인이 되어 이를 과시용이나 자랑거리로 뻐기는 일은 아닐 것이다. 시정신은 그 작품 속에 투영된 시인의 영혼을 말한다. 일찍이 프랑스의 대시인 보들레르는 슬픔이거나 기쁨이거나 모두 시 그 자체 속에서 이상을 좇는 신과 갔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가 살면서 느낌 그 추억에서 희노애락의 심리적 현상들이 언어를 통해서 표출되는 것이다. 그렇게 창작되고 표현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이 난세를 살아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하는 것은 문학의 기능이나 특히 시가 이 세상에 있어야 하고 시인이 존재해야하는 이유를 이해하면 문제는 쉽게 풀어진다. 프랑스 시인 필립 사보네는 ‘눈을 뜨면 나에겐 풍경이 보인다 / 눈을 감으면 나에겐 사랑하는 당신이 보인다’라고 읊었다. 당신의 사랑스런 얼굴로 변하는 풍경이 눈을 감고 뜨는 순간의 차이가 바로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느끼는 우리들 마음의 차이는 무엇인가. 황폐되고 삭막한 세상일수록 그 무엇인가 내 가슴을 데워줄 따스한 온기가 필요하다. 일찍이 신석정 시인은 ‘시를 쓴다는 것은 생에 대한 불타오르는 시인의 창조적 정신에서 결실되는 것이니, 대상하는 인생을 보다 아름답게 영위하려고 의욕하고 그것을 추구, 갈망하는데서 작품을 창작한다면 그 시인의 한 분신(分身)이 아닐 수 업다.’는 말로 시와 시인을 옹호하고 있다. 대체로 당신은 왜 시를 쓰고 시인이 되려하느냐는 물음에는 예술작품을 창작하거나 감상함으로써 마음속에 솟아오른 슬픔이나 공포의 기분을 토해내고 심정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 이를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보면 비극은 어떤 행위를 모방한 것으로서 애련(哀憐)과 공포에 의하여 이것들의 정서가 특유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하나는 나르시스 또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고 한다. 이는 한 마디로 자기의 도취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청년이 샘물에 자기 얼굴을 비춰보고 자기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죽어서도 수선화가 되었다는 고사(古事)에서 유래한 말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카타르시스(정화)와 나르시스(도취)라고 해서 시인이나 독자가 모두 시를 통해서 심리적인 안정을 찾기 위해서 이 세상에는 시와 시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는 아름다움이나 진실, 나아가서는 구원을 찾는 인간의 순수하고 진솔한 표현이다. 시는 그만큼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의 주제는 항상 인본주의(humanism)에 그 초점을 맞추어 시의 목적을 설정하는 감동의 직접적인 동기가 발현되어야 한다. 이러한 창작활동은 ‘늦깎이’가 오히려 활발하게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생 체험이 바로 작품과 접맥되고 거기에서 승화한 시적 진실이 명징(明澄)하게 현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늦게 출발하는 시문학도여 실망하지 말고 용기를 과감하게 발휘해서 시인으로 우뚝 서기를 희망한다. 문학은 체험이다. 생생하면서도 농익은 체험-태어나서 지금 이 시간까지의 삶이 모두가 체험이다. 지금까지 체험한 정한(情恨)들이 작품으로 형상화할 때 우리는 시와 시인의 정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인생경험은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직접체험과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고 선지자나 선현들이 이루어놓은 체험을 간접적으로 수용하는 간법체험 모두가 시적 소재와 주제가 된다. 삶의 현장에서 ‘늦깎이’가 되도록 생사고락을 겪어 보았거나 아니면 역사와 같이 그 시대에 살지 않았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독서를 통해서 그 당시의 상황이나 생활상을 이해하는 체험은 문학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실제로 문학청년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신춘문예 등에 당선한 청년들이 언어가 반짝하는 표현에서 앞설른지는 모르겠으나 투영된 주제의 깊이는 아무래도 나이든 사람보다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중론도 새겨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바로 인생체험의 불충분 때문이다. 창작법에서 말하는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사(多思)로 좋은 시들을 창작해서 훌륭한 시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오늘의 ‘늦깎이’들이여, 망설이지 말고 지금부터 시작하라, 그리하여 자신의 체험을 충분하게 뿜어내라. 또 다른 ‘늦깎이’의 애환이 진정한 작품으로 샛별처럼 빛날 날이 기다리고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분발하라.
(시와수상문학)
나도 좋은 시인이이 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귀가 아프도록 들어온 시 창작에 필요한 여러 가지 방법과 시는 어떤 모습인가 하는 것들이 어렴풋이 정리되면서 시가 보이고 시인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하나의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도 정말 시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정말 좋은 시를 창작할 수 있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걱정이 생기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물음은 시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나 이미 각종 잡지를 통해서 등단했다는 사람도 모두가 한번쯤 가져보게 되는데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제도화 되어 있는 시인 데뷔의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신춘문예’라고 해서 각 일간 신문사에서 주관하여 응모작을 통해서 심사를 거쳐 당선하는 길이 잇습니다. 지금도 이 신춘문예에 대한 열기는 매년 대단하게 지망생들에게 화려한 꿈을 꾸게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문학잡지들의 ‘신인상’ 당선제도입니다. 옛날에는 3회의 추천을 완료해야 데뷔를 인정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으나 최근에는 모든 문학지들이 신인상으로 바꾸어서 일 년에 몇 차례의 당선을 통해서 시인을 데뷔하고 있어서 옛날보다는 약간 쉬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인으로 데뷔하려는 사람은 우선 시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자신의 자질과 정신을 한번 되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인(詩人)은 글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詩)를 쓰는 사람(人)이라서 ‘사람’됨이 먼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여기 몇 가지 문제를 제시하여 스스로 점검해 보고 난 뒤 현재 진행되는 시단 데뷔의 실정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시인의 자질 또는 정신
‘시인은 누구나 될 nt 있다’는 자신감은 좋지만, 시인이 되기까지는 몇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싶은 욕망만으로는 올바른 시인이 될 수도 없고 똑바른 시 한 편도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시인은 사물이나 인생을 관찰하는 동안 보통 사람들보다는 예민한 간수성과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실생활이나 사회에서 경험한 소재가 곧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시인이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똑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체험한 것이라도 시인은 이것을 시로서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과 상상력이 있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냥 자기의 체험으로 끝난다는 마음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사실 보통사람들은 자기의 실생활과 관계가 없으면 굳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해 보기로 합니다.
① 시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의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시심(詩心)이 충만한가를 먼저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죽도록 시를 사랑할 수 있으며 죽는 순간까지 시를 쓸 수 있다는 시를 향한 투철한 정신이 필요하다.
② 시와는 친근감이라 할까, 시와 더불어 한 생을 살아가야 한다. 시는 곧 나의 인생이다라는 확고한 삶의 지표(指標)가 세워져야 한다.
잠시 논어(論語)의 말을 새겨 봅니다. 공자의 제자 중에는 진항(陣亢)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에게 ‘그대는 남달리 아버지(공자)에게 따로 가르침을 받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백어는 없다고 대답하면서 다만, ‘일찍이 아버님께서 뜰에 홀로 께시면서 지나가는 나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 시(詩經)를 읽었느냐 묻기에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한즉, 시를 읽지 않으면 남과 더불어 말할 수 없다하여 즉시 시르 읽었노라’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불학시 무이언(不學詩 無以言)이라 하여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남 앞에서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불학례 무이입(不學禮 無以立)이라 해서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서 있을(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시나 예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며 이를 잘 다듬고 이해하는 것, 특히 시를 쓰겠다는 사람은 시와 인생과 일치된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이 확실하게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③ 시를 위한 노력이다. 한 편의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④ 인생의 수양이다. 올바른 인생관과 정립된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 그 시는 그 사람의 마음(其詩其人心)이고 그 글은 곧 그 사람(人)이며, 그 사람은 그 글(詩)이다. 시는 진실한 마음이며 그 인간 됨됨이가 바로 시이다. 그 사람의 인격이나 인간성이 결여되면 우선 시인으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논어의 시경에는 ‘시 삼백편의 내용은 한 마디로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어야 한다(詩 三百 一言而蔽之曰 思無邪)’고 말한 것과 ‘시는 감흥ㅇ을 일으키며 인정을 관찰케 하며 사람과 어울리게 하며 비정(非情)을 원망할 줄 알게 한다. 가까이는 어버이 섬김을 가르치고 나아가거는 나라를 위하는 바탕이 되며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는 명언은 곧 시와 인간성과의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⑤ 진실의 응집(應集)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진실이 곧 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진실은 정의하기가 너무 넓지만 시적 진실은 어디까지 사랑의 실천입니다. 진솔한 삶의 진실도 내가 남을 사랑하면 남도 나를 사랑한다(愛人者卽愛之)는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신념이 무엇보다도 무르녹아서 그 진액만이 진실로 형상화되어야 합니다.
⑥ 인내가 필요하다. 시인은 고독함과 고뇌와 갈등을 참아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시가 곧 돈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흔히 시인이라면 가난한 존재이거나 상식 밖의 엉뚱한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상식의 틀에서 맴도는 일상인들은 시인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되독이면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대 희랍에서도 철학자 플라톤이 그가 생각하는 이상국가의 건설은 철학자가 제왕이 되든지 제왕이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시인 추방론을 내세운 적도 있습니다.
한편 독일 시인 쉴러는 그의 「지구의 분배」에서 소외당한 시인의 처지를 잘 밝혀주고 있어서 주목됩니다.
어느 날 제우스 신은 천상에서 인간들에게 호령했다.
- 물려 받아라. 이 세계를.
물려 받아라. 이것이 너희들 것이다. 너희들에게 이것을 유산으로서, 영원한 영지로서 보내노라. 자, 사이 좋게 나눠 가져라.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서로 앞다투어 손이 미치는 대로 마구 자기의 것으로 차지햇다. 농민, 상인, 귀족, 어부 등 자기가 필요한 것은 모두 차지하여 지구의 분배는 끝났다. 그때 아주 먼 곳에있던 시인이 나타났다.
- 참, 너무하군. 어찌하여 나 혼자만이 모든 사람한테서 따돌려져야 하나. 당신의 가장 충실한 자식인 내가...
시인은 컨 소리로 괴로운 심정을 호소하면서 제우스신에게 애원했다.
- 너는 도대체 어디 있었느냐?
- 나는 당신 곁에 있었습니다. 나의 눈은 당신의 용안을 우러러고 귀는 천상의 음악에 솔깃해 있었습니다. 이 마음을 용서하십시오. 당신의 눈부신 광채에 황홀해서 지상의 일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을......
- 어떻게 하면 좋지. 지구는 이미 모두 나뉘어져 버렸다. 계절도, 사랑도, 시장조 모두 이젠 내것이 아니야. 네가 이 천국의 나와 함께 있고 싶으면 가끔 오너라. 이곳은 너를 위해 비워 놓을테니까.
이래서 시인은 가진 것은 없지만, 그 자유롭고 고귀한 동경에 의해서 이따금 신과 함께 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세상 사람들이 별로 탐내지 않는 구름의 벗이 되고 사물의 주인이 되기도 합니다. 고귀하고 순결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밝고 따스한 호흡과 향기로운 이름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는 특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요즘은 워낙 심오한 그 어떤 것에 까지도 보다 넓고 깊은 상상의 세계를 가진 시인들이 그것들을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게 작품 속에서 구현해 내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좀 진부하고 길어졌지만, 이와 같은 것은 시인으로서의 자긍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에서의 측은함 같기도 합니다. 이러한 고뇌와 갈등들이 화해를 위해서 지독한 인내가 요구되기도 하는 것이 시인의 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시인과 우리 글 사랑
시는 언어의 예술이라고 앞에서 말한 바처럼 시인에게서 언어라고 하면 당연히 우리의 글이며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글 ‘한글’을 갈고 닦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글을 많이 알고 아름답게 구사할 줄 알아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익히 강조한 바 있는데 특히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국어에 대한 관심과 민족문화의 바탕이 되는 국어를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자각과 함께 국어의 순화와 아름다움을 중시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에 창간된 『시문학』을 중심으로 한 박용철, 김영랑, 정인보, 정지용 등의 시문학파들의 활동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당시는 일제 식민지였지만, 국어 사랑이 곧 나라 사랑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아서 우리 글로 시를 쓰는 것이 우리 민족과 문화를 지키는 것으로 인식하고 우리 국어 지키기와 순화에 앞장 섰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서정주와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청록파) 등에게로 이어져 주옥 같은 우리 글로 다듬어진 시편들을 많이 썼던 것입니다. 포켓용 국어사전을 세 번 정도는 완독(玩讀)한 후에 시 쓰기에 임해야 한다는 어느 노시인의 말처럼 우리 글의 중요성과 우리 글 사랑이 바로 시인들에게서부터 인식되어야 하며, 실제로 우리 글을 잘 알지 못하고는 아무리 좋은 시상과 명확한 주제가 있다할지라도 표현에는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나 시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 그리고 더욱 좋은 시를 쓰려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좋은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우리 국어를 누구보다도 많이 이해하고 쓸 줄 아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뵈오려 안 뵈는 님 눈 감으니 보이시네
감아야 보이신다면 소경 되어지이다
--이은상의 「소걍되어지이다」중에서
내 마음의 어딘 듯이 한 편에 끝 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는데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의 「끝 없는 강물이 흐르네」중에서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조지훈의 「승무(僧舞)」중에서
이러하듯이 우리의 국어를 최대한 활용하여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논어에 이른 것과 같이 단 한 마디의 언어로써 지자(知者)도 되고 무식한 자도 될 수 있다(一言以爲知 一言以爲不知)는 교훈을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 글을 사랑하는 것만큼 시 쓰기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글쓰기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옛날 같으면 원고지 사용법이 정확해야 하지만, 요즘은 컴퓨터 워드 프로세로 그을 쓰기 때문에 우리 맞춤법에 유념한다든지 하는 문제만 해결하면 됩니다.(시창작 강의 자료)
좋은 시를 위한 바른 길 안내자
--스토리문학 인터뷰
김송배 시인은 인터넷에서 인기 절정의 시인이다. 그의 시는 무수히 돌아다니며 누리꾼들의 인기를 구가하지만 특히 그의 20여회에 걸친 시창작 강의는 시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이리 저리 퍼 날라져 카페와 블로그, 플래닛 등을 장식하고 있다. 김송배 시인을 안지는 오래되었지만 인연을 맺은 것은 몇 년 전, 스토리문학 출신의 박정연 시인이 선생에 대한 근황을 소개하고부터다. 그 후 지난해 말 캐나다에 사는 김숙경 시인이 시집을 내게 되면서부터 더욱 선생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김숙경 시인은 스토리문학 등단작가로 필자가 운영하는 도서출판 문학공원에서 시집 『시월애』 출판시에 그 작품해설을 김송배 선생께 부탁했기 때문이다. 많은 문학행사장에서 자주 뵙고 인사는 나누었지만, 그 일로 인해 더욱 가깝게 되고 진즉에 메인스토리에 응해주실 것을 부탁드리니 흔쾌히 승낙하신 터였다. 시인께서 바쁘시거나 본사 측과의 일정이 맞지 않아 몇 번의 일정조정 후에, 드디어 3월 5일 뵙기로 했다. 지난 달 김남환 선생을 만난 자리가 신촌의 현대백화점 로비였는데, 공교롭게도 또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보니, 우연은 필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란 성현들의 말씀에 공감이 간다. 본지 주간이신 지성찬 선생과 미리 만나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김송배 시인이 백화점 앞으로 걸어오신다. 우리는 반갑게 조우를 하고, 김송배 시인이 안내하는 커피숍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랬더니, 지난달에 김남환 시인을 취재를 하였던 그 카페가 아니던가? 주간 선생과 나는 웃으며 2층으로 따라 올라갔다. 오전인지라 아직 손님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로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우리 일행은 각자 커피와 대추차 등을 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선생은 그간 KBS문화센터 등 여러 곳에서 시창작 강의를 해 오신 분이기에 시 이야기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네버엔딩 스토리마냥 끊임없이 이어졌다. 老 시인에게 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환타지 소설보다 재미있다. 우리 일행은 장소를 근처 한 중국음식점으로 옮겨 이야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의성김씨로 경순왕의 아들이며 고려 태조의 외손인 석錫을 시조로 하고, 그의 후손 용비龍庇·용필龍弼·용주龍珠 형제대에 이르러 세계가 갈린다. 용필계에서 대제학·학자 안국安國, 참판·학자 정국正國 형제가 나왔고, 용비계에서 부제학 성일誠一, 대사헌 우옹宇勒 등이 배출되었다. 서울의 인사동으로 향하는 역이 있는 안국동의 지명은 김안국 선생의 이름을 딴 지명이다. 의성김씨義城金氏인 근세 인물로는 학자 흥락興洛, 독립운동가·유학자 창숙昌淑 등이 있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7만 9368가구에 25만 330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생은 시조로부터 31세손이며 괴정공파이다.(네이버 검색)김송배 선생의 할아버지는 한학자였다. 그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명심보감, 소학 등을 할아버지께 익히기도 하였는데, 그런 면학 가풍이 김송배 시인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송배 선생은 1943년 경상남도 합천에서 아버지 김추담金秋潭(작고) 선생과 어머니 김악이金岳伊(작고) 여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 오수남吳守南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 태경(명지전문대,세종대 겸임교수), 딸 은정(가정주부) 등 자매가 있다. 김송배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장이라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간 노력하는 모습으로 많은 시인에게 귀감이 되어온 시인이다. 무엇으로도 노력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시인은 몸소 실천하는 양심으로, 편법은 잠시는 통할지 모르나 인생 전반을 지배할 수 없으며, 술수는 몇 사람의 마음에 들 수는 없으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려면 진실뿐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필자는 김송배 시인과 지성찬 시인을 보면서, 누구나 노력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두 분의 정의로움과 좋은 작품으로의 노력에 크게 배운다. 이에 김송배 시인과의 대화를 대화체 형식으로 실으며, 독자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호칭은 생략한다.
김순진 : 선생님!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위원장 일을 맡으시면서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저희 스토리문학 독자를 위해서 메인스토리 취재에 응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선 선생님께서는 시인이시니까 시에 대한 질문을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시는 어떤 예술이라 생각하시나요? 또 어떤 점을 중시해서 공부해야 할까요?
김송배 : 시는 언어예술입니다. 시를 공부하기 위해 많은 부분을 필요로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시인은 언어의 마술사이죠, 모든 장르의 문학이 언어를 매체로 하지만, 시는 시인의 마술적인 요소인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좋은 작품이 창조되는 고도의 언어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박목월의 「나그네」, 조지훈의 「승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김광균의 「뎃상」, 윤동주의 「서시」, 김춘수의 「꽃」, 그리고 이형기의 「낙화」 등을 읽고 이미 시와 언어의 불가분성을 인정하면서 그 서정적인 언어의 묘미에 취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지성찬 : 자주 만나니 정이 더 두텁게 드는 것 같네요. 많은 사람들이 고향이나 부모, 형제 이야기를 써냅니다. 그런 것은 시에서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자아와 고향은 상관성이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김송배 : 현대시의 표정에서 시인의 자아 인식 과정을 설정하는 예는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시인이 삶의 궤적軌跡에서 도출하려는 시정신이거나 시인의고매한 정서의 일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성이 연결되는 사람을 통해서 시인들은 존재라는 거대한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도 있고 자아의 인식을 통해서 무한한 상상력을 여과濾過하면서 작품 창조에 많은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한 인생의 영위가 탄생에서 소멸까지라면, 우리는 존재의식을 통한 자아의 인식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는 것은 어쩌면 시인의 소명召命을 충실하게 이행하려는 또 다른 고뇌의 일단인지도 모르겠네요.
김순진 : 향수와 그리움은 같은 종류군요. 우리는 그리움을 어떻게 표현해내고 수용해야 할까요?
현대시의 발상은 한 시인의 정서에 다라서 다르게 착상着想되지만, 대체로 그 시인이 당면한 입지적 조건에서 파생된 정서의 지향이 어느 시점視點에 근거하고 있는지도 작품의 성향이나 주제의 설정에 큰 관련을 갖게 됩니다. 일찍이 워즈워드가 ‘시는 힘찬 감정의 자연스러운 범람’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이와 같은 한 시인의 골 깊게 천착穿鑿한 정서의 일단이 시로 형상화하는 데는 시인의 ‘힘찬 감정’, 바로 시인이 골돌하게 사유하고 있거나 아니면 현재 사유의 늪에서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리움’에 대한 고뇌와 갈등을 여과하면서 자위하는 현상은 어쩌면 심리적인 전환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근본적인 치유의 효능을 갖지 못합니다. 그것은 작가에게 각인된 체험(직접이든 간접이든)은 절대로 소멸하지 않는다는 지론持論이 더욱 ‘그리움’을 시적으로 승화하는 동력이 작용하게 되는 것이지요.
지성찬 : 평소 감수성이나 낙서 등은 시인이 되는 데 연관이 있을까요?
김송배 : 인간은 누구나 감수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때가 있습니다. 막연하나마 어떤 정신적인 동경이나 갈망이 솟구쳐서 이를 표현해 보려는 의욕이 일어나서 종이에 낙서를 하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데 이러한 표현 욕구는 시를 쓰는 목적이나 그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다만, 마음의 공허를 채우기 위한 습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쓰여진 시란 다분히 자기 본위의 일상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앞날의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청춘의 감성은 대체로 자기자신의 내부적인 세계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적인 세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불안감의 표시로 봐야하며 이러한 표현의 욕구는 언젠가는 새롭게 발견되어질 미(美)의 세계에 대한 예술적 탐구정신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시인으로서 살아간다.’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시적인 표현 욕구는 시를 쓰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잠재한 내외적 세계의 조화로서 표현의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일은 사회적 불안이나 내 자신의 불안 등 여러 형태의 모순들이 보다 안정되고 보다 차원 높은 세계의 갈망이나 희구, 또는 향수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김순진 : 주제는 대체로 어떻게 잡는 것이 좋을까요?
김송배 : 현대시의 주제는 대체로 우리 인간의 삶과 상관성을 가지게 됩니다. 존재의 이유에서부터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우주에서 생성되는 모든 사물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가장 근접하면서도 심도 있게 고뇌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보편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반복되는 삶의 형태나 삶의 형식을 통해서 획득한 사유는 시인의 상상력에 크게 작용하여 시정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삶의 이상은 오직 미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상상과 이해를 가능케 해주는 능력, 그것은 오직 미적인 직관뿐이라는 말이 시의 본령에서 논하는 진선미眞善美의 추구나 탐색과 동류의 개념을 갖기 때문입니다. 요즘 시들의 경향이나 그 흐름을 보면 대체로 작품이 내포한 의미적인 요소, 즉 주제(Thema)를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그것은 작품의중심이 되는 사유思惟나 사상 등의 내용을 말하는데, 이는 주제를 분명하게 함으로써 표현을 정비하고 발전시키면서 이미지를 명확하게 하기도 하지요. 이처럼 주제는 시인의 발상에서부터 작품의 형성과정 그리고 완성까지 시인의 강열한 메시지가 함축되므로 시정신(Poetry)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작품을 창조할 때 시인의 고양高揚된 정신, 이것은 지적이면서 숙성된 자의식의 투영投影이며, 그것이 곧 시인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과 상응相應하여 인본주의(Humanism)의 탐색으로써 진선미를 창출하는 기능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지성찬 : 그럼 시에서의 상상력은 어떤 기능을 갖을까요?
김송배 : 현대시의 원료가 되는 상상력은 그 시인이 체험한 시간과 공간, 즉 삶의 궤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시인의 상상력(Imagination)은 과거에 체험된 그 어떤 동기(Motive)가 되는데, 시는 이런 것들의 기능을 살리고 언어의 감촉으로 표현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언어의 감촉은 다시 심상적心象的인 세계, 곧 이미지를 창출創出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은 시간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시인이 지나온 시간 속에서 재생한 상상력이 소중한 메시지와 함께 창조적으로 현현顯現되어야 비로소 한 편의 시로서 모습을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대체로 시적 동기나 이미지의 성립은 시인의 체험을 성립시키는 대상의 존재와 대상의 사물을 실재적인 것보다 순간적으로 다양한 흔적들이 요약된 영상이며 심리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심리적인 현상들이 시인의 사유와 결부된 시적 소재와 연관성을 갖게 되며 시심의 충동이 되고 시작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시인들은 이러한 동기를 정리하고 또 풍부하게 발전시켜서 표현하게 됩니다. 물론 시의 경우도 시인의 체험의 깊이와 무관하지 않으며 주제와도 연관이 되는 시 형성상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김순진 : 시에서 인간의 삶과 생명은 어떻게 표현되고,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김송배 : 시인들은 작품을 통해서 존재를 인식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성을 중시하게 되는데, 이는 보편적인 삶의 궤적軌跡을 살피면서 시인의 지적 상상력을 투과透過하여 전재의 의의를 추출하는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려는 습성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의 중심축에는 언제나 생명에 대한 새로운 향기를 재상기하거나 생명의 존엄성을 재발견하는 순정적 이미지가 작품으로 승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찍이 매슈 아널드가 ‘시는 인간의 가장 완벽한 이야기’라고 말한바와 같이 인간은 시에서 진리를 말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가장 완벽한 이야기’일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일시적인 형식에 의해 인간 존재의 보편적 성질을 상상하려는 시도(스팬더의 말)’가 없다면 한 시인의 독백으로 읽고 말 것입니다. 이렇게 시는 우리 인간의 이야기이기에 생명성을 배재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현존의 삶에 이르기까지 그 생명과 함께 존재를 인식하는 시인들의 인생관과 가치관의 승화는 그 시인의 영원한 진실로 남게 될 것입니다.
지성찬 : 시를 처음 쓰는 초심자들에게 해줄 말씀이 있으신지요?
김송배 : 처음부터 시라는 틀에 얽매이지 말고 아주 자유스러운 마음으로, 그냥 메모하는 식으로 써야 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하여 감동했던 것이나 마음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일들부터 자신의 생각으로만 하나씩 적어 봅니다. 어떤 형식에는 구애받지 말아야 합니다. 설령 문체나 형식이 일기문이 되거나 편지글이 되거나 상관없이 글로 옮겨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를 읽고 난 후에 내 생각을 가미하여 모방해보려는 의지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에 부딪치는 어려운 점은 언어의 부족입니다. 물론 언어뿐만 아니라 표현방법이 여러모로 서툴지만 읽고 생각한 자신의 진실을 글로 적어봄으로써 자기 세계가 열리고 시 쓰기에 대한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시 쓰기에는 유형有形적인 소재이거나 무형無形적인 소재이거나 간에 많이 느껴본 습성이 중요하지만 이 느낌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는 느낌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느낌이란 많은 형태의 감정으로 나타납니다. 이 느낌이 깊은 곳에서 받아들여 미적인 감정과 미적인 언어의 조화로 한 편의 시 작품이 창작되는 것입니다. 시는 그 시인의 고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 앞에서 하는 속임 없는 고백이어야 합니다. 구약성서의 시편만이 아니라, 무릇 시는 시인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시에서 거짓말을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신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의 말처럼 어떤 소재에서 느낀 솔직하고 진지한 자기 진실이 글로 표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순진 : 오늘 이렇게 긴 시간동안 저희 월간 스토리문학 독자들을 위하여 시간을 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5년 동안 저희 스토리문학 출신 문인들이 많이 배출되어 문단에 나왔습니다. 전에는 작고하신 박곤걸 선생께서 한국문인협회 회원을 추천해주셨는데 이젠 선생님께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작품이 좋은 사람만 내보낼 테니 적극 추천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송배 : 저도 오랜만에 지성찬 선생도 만나고 김순진 발행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어 너무나 기뻤습니다. 스토리문학 출신들이 들어온다면 책임지고 추천서를 써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김순진 : 고맙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입니다. 더 열심히 노력하여 최고의 문학지가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여기서 취재를 마치고 독자를 위하여 김송배 시인의 시 3편을 싣는다.
저문 강가에서 혹은 감상적 외 2편
김송배
저문 강가에서그대가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강물은 미지의 세상을 꿈꾸고 있었다
강물의 꿈은 진실로 투명하지만그대가 질겅질겅 삼켰다 뱉어내는눔물 섞인 언어는 보이지 않는다
강물 가득 그 푸른 꿈강 가득 다시 번지는 노을빛 사이 머누는그곳은 어디일까언제쯤일까
강가에서 그대가 지극히 감상적일 때강물은 이미 날저문 침묵으로 저만치 흘러어느새 영혼만 손짓하고 있는데…
백지를 위하여
김송배
긴 겨울밤불 끄지 못하는그대 뜨거운 마음 한 쪽은하얗게 비워두리라
가장 쓸쓸한 것들만 한 장씩 찢어내는그대 곁으로 사랑의 늙은 노래한 소절만 띄워 보내리라
흔들리는 창밖이 밤을 밀어내는 빗소리은밀한 기억을 태우고젖을 대로 젖어버린하얀 마음 한 쪽은
그냥 비워두리라 하얗게 비워두리라
풀꾹새 울음
김송배
무지개 지우고 떠난풀꾹새 울음소리밤 되면 고향 먼 에움길에 깔리는데제 마음으로 남아어느날 바람이 된 텃밭 감나무주저리로 달려있는 떫은 전설은오뉴월 불볕 잘도 견딘구름 한 조각 가슴 깊이 묻어 두고따갑게 흘러간 시냇물 속오늘도 찾지 못한 무지갯빛아픈 그림자들만빗속에서 헤어지고젖은 채로 지워지고초가지붕 위 하얀 박꽃잎 하나풀꾹새 울음으로가슴 앓은 소리여
[월간 스토리문학 2009년 3월호 '메인스토리' 수록]
[시가흘는 서울} ]인터뷰
[이경희 기자]김송배 시인님 안녕하세요?
작가님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Q01 작가님께서는 평소에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근황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 직장에서 은퇴한지도 오래되었고 시집도 13권이나 냈으니까 유유자적의 마음으로 관조의 세계에 몰입하고 있지요. 한 80여성상을 살다보니까 모든 삶의 여운을 정리하는 자세로 여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정다운스님이나 성철스님의 무소유에 심취하고 방하착이라는 화두를 살펴보면서 인생이란 누구나 장자의 상선약수를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요즘에 와서 철이 더는 것 같네요.
Q02.작가님은 ‘월간<심상(心象)>’ 지에서 신인상으로 등단 하셨는데요 그 때가 몇 년도였을까요? 그리고 그 때 수상하셨던 작품은 어떤 작품이었나요?
-1983년인가 그래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서 한문을 읽었는데 그후 시라는 괴물(?)에 홀려서 방황하다가 1970년대에 박목월 선생님이 주관하시는 ‘월간『心象’』지에서 많은 창작공부를 하게 되고 투고를 했지만 낙방했어요. 기어코 목월선생님의 추천을 받고 시인의 길을 가야겠다는 결심은 1978년 선생님이 별세하는 바람에 정식 추천을 받지 못하고 1980년에 와서 황금찬선생님의 심사로 당선했어요.
그때 당선 작품이 「바람」 「아침 정경」 「밤비 속에서」라고 기억하는데 사실 그 당시의 전원 풍경이나 산촌의 정서가 포함된 서정적인 작품이라서 요즘 안목에서 읽어보면 참으로 유치하기 까지 하는군요.
Q03. 작가님의 프로필을 보면 KBS방송문화센터, 문협문예대학, 여성문예원, 삼성반도체사원연수원, 문학신문예술원에서 시창작을 강의 하셨고 현재에도 강의를 하고 계시는데 지금은 어느 곳에서 강의를 주로 하고 계신지요?
-등단후 시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주로 『심상』 『시문학』 『현대시학』 등 시전문잡지에서 시론과 창작법을 공부하거나 시중에 나와 있는 시창작법을 모두 구입해서 섭렵하다싶이 열중했어요.
그후에 운 좋게도 백화점이나 개인 문학행사에 초청되어 시를 들려주었지요. 이게 계기가 되어 KBS방송문화세터를 비롯해서 한국문협 평생교육원 등에서 지속적으로 강의를 했으며 여기 수강생들이 여타 잡지에 응모하여 등단한 시인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들이 모여서 <청시시인회>를 창립하고 지금 26년째 계속해서 월합평회, 문학기행, 동인지 발간 등 친목을 겸한 시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코로나 이후 강의를 모두 끝내고 문학단체에서 가끔 초청하는 특강 형식의 강의만 하고 있어요.
Q04. 작가님은 무엇을 하실 때 가장 즐거우신가요?
-지난 날 한국예총 월간 『예술세계』 편집주간과 한국문인협회 사무처장, 시분과회장, 부이사장 재임시에는 많은 문인들과 교유(交遊)하면서 술을 마시거나 환담하는 일이 가장 즐거웠으나 지금은 가끔은 문단 주류(酒流) 4인방(김송배 임병호 정성수 정순영)이 모여서 주회(酒會)를 겸한 상호 문안 인사를 나누는 즐거움이 있고 집에 혼자 있을 때에는 하루 7천보 걷기운동과 아직도 청탁이 오는 시집 해설 집필 등의 시간이 최상의 낙이네요.
Q05. 작가님은 어렸을 때의 꿈이 뭐였을까요?
-어렸을 때에는 교사가 되어 어린이들에게 봉사하다가 최종에는 유능한 국어교수가 되어 우리말과 글 살리기 운동에 기여하리라 했는데 아버지가 일찍 중환(重患)으로 별세하는 바람에 학업이 중단되고 육군에 자원입대하여 모든 꿈은 사라졌지요. 그러나 어릴 때 배운 한자공부가 다시 떠올라 시인의 꿈을 꾸었고 부단한 노력으로 이것이 성사되었어요.
Q06.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을까요?
-바로 한 집안의 몰락으로 학업이 중단되어 절망의 시간으로 방황하면서 안정을 찾지 못하던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인내와 불굴의 의지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Q07.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독자들에게 할 말은 많아요. 내 경험으로 볼 때 시창작법을 학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인격수양이 첫째고요, 지적인 자양의 충분한 저장이 필요해요. 이를 위해서는 마음 수련도 필요하고 지식의 함양을 위해서 독서를 통한 간접체험이 특히 필요해서 많은 독서량을 권하고 싶네요.
그리고 사물을 보는 시각적 훈련과 내면에서 성찰하고 인생의 의미를 확고하게 이해하여 작품의 이미지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특히 전하고 싶네요.
Q08. 올해에 꼭 이루고 싶으신 일이 있으시다면 어떤 일일까요?
-올해 벌써 팔순 고개에 도달하니까 과거를 차분하게 정리하면서 나의 시업(詩業)을 마무리하는 작업에 착수할까 생각하네요. 우선 『김송배시전집』을 발행해서 시집 13권을 일목요연하게 일별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겠어요. 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수필집과 시답집(詩談集)도 간행해서 주위의 지인들과 나눠 볼 계획도 있는데 글쎄 잘 이행될 지는 의문이에요.
Q09. 지금 여행 티켓이 한 장 주어진다면 작가님은 어디를 여행하고 싶으신가요?
-가 볼곳이 많지요. 나는 해외여행을 좀 많이 다녀온 편인데 이는 한국문인협회에서 시행하는 해외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동행하면서 아프리카(에짚트 제위)와 남아메리카(멕시코, 쿠바 제외)를 빼고는 거의 다 가본 걸로 기억되네요. 제일 다시 떠오는 곳은 인도, 에집트, 돈황, 쿠바 등 평소에 쉽게 갈 수 없는 곳이 인상에 남는데 다시 가고 싶은 곳은 남아메리카 아마존이나 아프리카 탄자니아 세링게티 동물 탐험을 해보고 싶어요.
Q10.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비결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특별한 비밀이나 처방을 없고요. 가능하면 6천보 이상 걷는 것 말고는 특별히 보약을 먹거나 음식조절 같은 것은 없어요. 세끼 밥 잘 챙겨먹고 잡다한 일이나 상상은 피해요. 조용하게 청탁받은 글이나 쓰고 가끔 친구들 만나서 잡담하면서 술 한 잔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 아닐는지?
Q11. 작가님의 저서로는 시창작법 『시가 보인다 시인이 보인다』{『김송배 시창작 교실』, 시론집 『성찰의 언어』}등과 시집도 많으신데요. 이렇게 많은 작품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으실까요?-
-초기 작품들은 모두 전원적인 서정시가 많은데 연륜이 차면서 시의 사회성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더라고요. 세상이 자꾸 각박해지는 것 같고 인정도 매말라가는 데 사회와 인간의 상호 보완관계는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되든군요.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만 골라라하면 제12시집에 수록된 「바람의 편린」이란 시가 나의 자서전 격의 이미지가 투영되어서 좋아요.
읽어보면 이런 내용이에요.
나는 본래 바람이었다/ 정처 없이 불어다니는 무숙자(無宿者) / 언제나 별빛 한 줄기에도 / 흔들리며 눈물짓는 허수아비였지/ 나는 사랑을 모르고 / 그냥 내달리는 논펄에서/ 어눌한 한 줄기 가난의 생명줄만/ 겨우 영위하던 방랑자의 후예/ 누구나 밝은 태양을 기원하지만/ 후줄근한 몰골에서 풍기는 절망의 눈빛은/ 지금도 하염없이 밀려다니는 바람/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 자화상은/ 언제쯤 어디에서 안착(安着)할 수 있을까/ 착목(着目)하는 사물마다 사람 냄새가 / 물씬 내뿜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다/ 나는 아직도 어쩔 수 없는 바람이다.
Q12. 인생을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참되고 착하게 살아갈려고 하나 현실에 대한 갈등과 불만이 있기 미련인데 이를 조화롭게 극복하면서 인내를 길러야 하지요. 그러나 젊은 활기로 서로 충돌하는 일도 많았지요. 이럴 땐 돌아서서 흐느끼거나 대폿집에서 회포를 풀었지요- 그러나 나이 들면서 모두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해하고 수긍하지요. 이것이 인생 수양에서 얻은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요
Q13. 작가님은 취미가 있다면 어떤 게 있으실까요?
옛날에는 등산을 매주 전천후로 다녀서 서울 근교는 안 올라 본 곳이 없어요-그러나 그후에는 독서를 하고 작품 구상에 몰두하고 습작을 많이 했지요.
Q14. 만약에 돈, 사랑, 권력 중에 한 가지만 고르시라면 어떤 것을 고르시겠어요?
모두 방하착이네요. 모두를 다 내려놓았지요. 돈은 남에게 빌리러 가지 않을 정도고요. 사랑은 참 중요한 대목이지요. 어떤 이는 사랑은 곧 육체적 쾌락으로 연결시켜서 생각하는데 이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사랑 아가페가 좋지요. 예수님의 박애나 부처님의 자비 같은 사랑이요.
Q15.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책 추천은 그 독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먼저 알아야 어떤 책이 좋겠다 말할 수 있지요. 시인이라면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쓴 [물과 꿈](이가림 역)이나 노자의 상선약수를 권하고 싶네요.
물과 꿈은 물이라는 사물 하나가 100여 종류의 이미지를 창출할 수가 있어요. 시간과 공간 개념으로 대입해보면 계절별로 어디에 해당하는냐, 또는 이 물이 흐르는 곳이 강이냐 바다냐 옹달샘이냐에 따라서 다양한 이미지가 나올 수 있어서 많은 사유(思惟)를 확대하고 있어요.
Q16. ‘시가흐르는 서울’ 하면 어떤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르실까요?
상당히 오래전 지하철 한 구석에서 행한 시낭송과 노래가 기억에 남네요. 참 열악한 환경에서도 시낭송운동을 통해서 시인구의 저변확대에 심혈을 기울인 김기진 시인의 열정이 우리 문단에 많은 가능성을 제시했다고나 할까요.
Q17. 작가님이 가장 보람 있었던 때는 언제였을까요?
등단하고 7년만에 한국문인협회에서 주관하는 <윤동주문학상>을 받던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이제 나도 당당한 시인으로서의 명색이 나타나는가 싶었지요. 그후 한국문인혐회 시분과회장에 당당히 맞서서 당선한 일 등이 보람이 있었네요.
Q18.작가님처럼 저도 글을 잘 쓰고 싶은데요. 글을 잘 쓰는 비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나는 시창작 강의를 KBS방송문화센터에서 시작하여 얼마전까지도 사설 강의실에 초청 강의를 했지요. 그리고 나의 제자가 다수 등단하여 지금 왕성한 중견시인으로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때 중점적으로 강조한 것은 사물을 대하는 시각과 그 사물에서 느낄 수 있는 사유가 가장 중요해요. 그것을 우리는 이미지의 창출 이렇게 말하는데 아무튼 자신의 체험을 재생하여 거기에서 도출된 자신의 정서가 바로 작품과 연결되는데 여기서는 작품을 쓸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지요. 그래서 언어의 조탁을 위해서 국어사전과 더욱 가까이 해야해요. 열심히 해 보세요.
Q19.작가님은 혹시 화가 날 때 어떤 식으로 푸시나요?
가능하면 화를 내지 않지요. 혹시 그를 일이 있다면 참지요. 워낙 약골이 되어서 서로 다투지는 못하고 내가 잘못했나보다 참아요. 더욱 못 참겠으면 혼자라도 대폿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기분을 바꾸지요.
Q 20. 인터뷰를 하고 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랫동안 수고했어요. 문제는 <시가흐르는서울>이 장족의 발전이 있으면 좋겠어요. 역사도 있고 김기진 시인의 노력도 있는데 많은 호응과 동참이 있으면 좋겠는데.....
앞으로도 열심히 하세요. 고마워요.
*소중한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경희 기자 올림 -
우리 시와 시사(詩史)의 위의(威儀) 정립
-- 『한국시원』 창간 2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시는 1908년 11월, 육당(六堂) 최남선(1980~1957)이 『少年』지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면서 신시(新詩)의 시대를 열게 되지만, 일부 논자들은 육당을 신체시의 선구자라고 할 수는 없고 그후 『創造』지에 발표한 주요한(1900~1975)의 「불노리」를 현대시의 출발로 보는 경향도 있다.
아아 날이 저믄다. 西便 하늘에, 외로운 江물우에, 스러져가는 분홍빛 놀.....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四月이라 패일날 큰길을 물밀어 가는 사람 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셩서러운 거슬 웨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불노리」 일부)
이 「불노리」는 우리의 전통의 흐름을 바탕으로 형성된 새로운 작품으로서 형태면에서 완전 개방된 자유시, 산문시의 호흡과 율격을 지녔으며 반복, 점층에 의한 내재율 가락과 상징성, 비유의 다층성 등이 육당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와는 다르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이렇게 우리 시문학사는 ‘현대시 100년’이라는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많은 시대적인 변혁과 함께 발전하여 왔다. 그동안 무수한 시문학지가 발간되어 많은 시인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중심이 된 시단(詩壇)이 형성되어 목하(目下) 활발하게 창작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는 창간 당시 왜 ‘시원(詩苑)’이냐? 잘 아는 바와 같이 오일도(吳一島) 시인이 1935년에 범시단을 지향하는 시전문지로 창간하였으나 5호를 마지막으로 종간했지만 우리 시단에 커가란 시사적인 의미를 남겼다. 그 당시 많은 시인들의 호응이 있었지만 카프 계열의 시인들 작품을 게재하지 못했던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오일도 시정신을 계승하자는 의도는 아니고 새로운 시지(詩誌)의 작명을 위해서 자문을 구하고 몇몇 편집위원들의 중론에 따라 『계간시원(詩苑)』으로 명명하게 되었음을 창간사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 우리 『계간시원』은 2016년 2월26일, 구청에 정식 동록을 필하고 6월 1일에 창간호의 깃발을 만천하에 올리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위와 같은 시와 시인의 부정적인 부재시대에서도 문학지들이 많이 발행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시전문지도 다수 발행되어 시와 시인구의 저변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제작비와 원고료를 정상적으로 투입하여 그 정체성을 확고하게 영위하는 잡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이 시대의 문학지는 그 어려움에서도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있으며 제작이나 원고료 등의 운영자금을 마련하지도 않은 채 신인상을 추천자에게 책을 판매하는 조건으로 등단을 시키는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문단에 물의를 야기하는 등의 몰지성인의 행동으로 많은 빈축을 사기도 한다. 이러한 난기류에서도 우리는 『시원(詩苑)』을 계간으로 창간하고자 새롭게 깃발을 높이 세운다.’라는 창간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금(昨今)의 현실이 우리들을 서글프게 하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일각에서는 ‘문단 잡초론’이나 ‘잡초 문학’이라는 말까지 등장하면서 우리 문단에 불명예스러운 일들이 빈번해지고 있어서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러한 비문인적인 일들을 자행하는 문인들의 각성을 위해서 우리 전문잡지들도 앞장서서 개선해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 『계간시원』은 지난 봄호부터 『한국시원』으로 제호를 바꾸고 창간이념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우리 시의 발전을 위해서 꾸준히 노력해 나갈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잡지의 편집에서 타잡지에서 구상하지 못한 몇 가지의 방향들은 차근히 발굴 수록하여 독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은 바 있다. 그것은 시론의 발굴이나 ‘차 한 잔, 시 한 편’, ‘화중유시’, ‘시비탐방’, ‘시문학회 소개’, ‘시문학관 순례’ 등 고정란에서도 독자들의 공감을 흡인하고 있다.
그리고 ‘시집 속의 시 읽기’와 ‘이 시집을 주목한다’ 그리고 ‘권말 소시집’ 등 고정 된 지면은 더욱 독자들을 관심을 집중시키는 고정란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참신한 신인 발굴 사업의 일환으로 제정한 신인상 모집에서는 연인원 200여명이 응모하여 다수의 좋은 시인을 배출한 것이나 ‘한국시원시문학상’을 제정하여 제1회 수상자를 배출한 일은 우리 시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으로 시와 독자의 실질적인 교감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시인구를 저변확대하고 시의 정신이 바로 인간정신(혹은 인본주의)의 함양에 기여한다는 시의 기능과 위의(威儀)를 고양시켜 나가는데 일조를 할 예정으로 있다. 앞으로의 발전 및 정착계획은 정기 구독자를 더욱 확대하여 시와 애독자간에 더욱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시창작 강좌를 개설하고 실질적인 창작에 도움을 주는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다만, 지방 회원들을 위하여 통신강좌를 통해서 첨삭의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다.
한편 [한국시원시인회]를 창립하여 『한국시원』의 전국 보급화와 동시에 시단의 정보 교환 및 발표지면의 확대 등 상호교류의 장을 마련하여 명실공히 한국시단의 중심축으로 정립해나갈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시낭송회, 신작발표회, 문학기행 그리고 문학심포지엄 등을 통해서 시인들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이처럼 전국적인 시운동의 확대는 ‘한국시원시문학상’ 제도를 더욱 신뢰성 있는 문학상으로 발전하여 상금도 지급할 것이며 지금까지 열악한 재정이어서 원고료를 해결하지 못하는 점을 다방면으로 확충 연구를 거듭 고민하고 있어서 곧 정상으로 해소되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다.
창간후 2년 동안 꾸준히 운영이사로 참여하신 시인들과 운영에 힘을 모아주신 시인들 그리고 정기구독자와 광고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배전의 지도와 편달을 바란다.(2019. 게간시원 제 호)
(지정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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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과학의 상생에 대한 방법론
오늘 제52회 한국문인협회가 주최하는 한국문학 심포지엄(주제 : 문학과 과학의 생생)에서 ‘문학과 과학이 만나는 자리’라는 주제를 발표하신 우한용 교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리고 우리 참석 회원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통된 지향점으로서 좋은 지침이었음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우한용 교수님은 발표문에서 ‘자연과학과 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소통과 조화를 통해 인간의 가치구현을 위한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서 이러한 모임의 일차적인 의미가 있다’는 요지로 오늘 이 심포지엄의 개최 의미를 먼저 설정라고 한 언지도 매우 고무적이면서 앞으로 전개해야 할 문학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 교수님은 만해 한용운의 작품「알 수 없어요」에서는 ‘자연현상 가운데 존재하는 것들’과 ‘물리현상에 속하는 것들’, ‘인간의 몸과 연관된 사물들’ 그리고 ‘언어로 된 예술(시)’과의 상관성을 잘 살펴주셨고 ‘여기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물리현상을 비롯해서 자연사물은 물론 인간과 연관된 사물, 인간의 창조물인 예술품 등 다양하게’ 전개되어 있음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가람 이병기의 작품「별」과 미당 서정주의「韓國星史略」에서 예시한 ‘별’은 ‘전체적으로 별은 역사의 진전 과정에서 이념적 변화의 궤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은유적 매체에 해당한다. 그래서 천문학적으로 어떤 특별한 별을 지칭하는 것일 수는 없다. 다만 인간이 만들어가는 역사를 인간과 우주의 연관 속에서 고찰하게 하는 매개역을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별을 매개로 인간과 역사와 우주를 사색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시인의 탁월한 상상력이 아니면 안된다. 천문학에서 다루는 별이 시에서는 인간과 우주의 교감을 이루어내는 매개역을 한다는 점, 과학자들이 이해하는 데서 과학은 시적 상상력을 한편에 이끌어 들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논지로 전개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교수님께서는 ‘과학자의 시적 에스프리를 일구어내야 하고 시인의 분석적 시각과 진리에 대한 열정이 세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길을 터주게 되고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시인의 상상력을 더욱 의미 있는 것으로 고양시켜 주기 때문에 시와 과학이, 문학과 과학이 어떻게 수행하는가를 고찰하고 이 둘이 서로를 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지하는 일이 우리들의 과업이’라는 명쾌한 논지를 피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우 교수님께서는 국어교육과 교수이시면서 월간문학에 소설로 등단하여 많은 소설작품집을 펴냈습니다. 아직까지 잘 읽어본 바는 없지만「생명의 노래」「시칠리아의 도마뱀」「불바람」등의 작품 제목에서 어쩐지 스스로 흡인될 수 있는 과학적인 이미지가 특이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편 오래전에 서울대에서 지구과학 교수로 퇴임한 안희수 시인이 펴낸 시집 『우주의 고도에서』가 있는데 본인이 시집 해설을 쓰면서 오늘과 같은 우리 시와 지구과학과 접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본 일이 있습니다.
깜깜한 밤에 / 밝은 태양을 생각한다 / 먼 우주 공간에서 / 허공에 뜬 지구를 바라본다 / 천만 겁으로 얽힌 인연 속에서 / 금생의 나를 생각한다 / 지금 이곳에서 / 매트릭스에 갇힌 / 나를 느낀다 / 저 아득한 곳 / 블랙홀로 이어진 / 또 다른 우주에서 / 음양으로 맺어진 내가 / 광속보다 빠른 영감으로 / 또 다른 나에게 / 따뜻한 마음을 보낸다 / 안부를 전한다.
그는 작품 「또 다른 나에게」전문에서 그가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이미지로 그가 지구과학자답게 이미 지구과학과 우리 시를 연결시켜서 많은 창작을 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분명히 안희수 시인은 이처럼 ‘또 다른 나에게’ 새롭게 창출해낸 시적 사유를 통해서 존재를 재확인하게 되는 것은 물론, ‘따뜻한 마음’과 ‘안부를 전’하는 등 자아 인식에서 있어서 차원 높은 교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신의 흔적은 그의 고뇌스런 소재 선택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동일한 발상과 그의 지향점인 존재의 명징성을 분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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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행성의 아늑함 속에서 / 행복한 인간들이여 / 눈을 들어 먼 우주를 보라 // 햇빛 찬란한 봄날에도 / 수백 킬로미터 상공에는 / 캄캄한 허공 속에 / 무섭게 번쩍이는 별들이 / 너의 작은 몸뚱이를 삼켜버릴 듯하고 / 안드로메다 성운이 굉음을 내고 있다 // 티끌 같은 이 별 / 미덥지 못해도 / 다른 곳을 찾아갈 수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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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작품「하나뿐인 지구」전문에서도 ‘우주를 보라’는 이미지가 부제로 붙은 ‘하나뿐인 지구’가 ‘티끌 같은 이 별’로 형상화 되었을 때 현실 속의 ‘나’라는 존재가 한낱 미물임을 자인하고 더욱 광활한 이상향을 ‘찾아갈 수도 없’는 고뇌의 요소가 비등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우주의 고도(孤島)’는 어디인가. 아마도 그곳은 ‘캄캄한 허공’과 ‘저 억만 겁 세월’로 공간과 시간이 교합하는 지점일 것입니다. 그가 갈구하는 그 ‘고도’, 거기야말로 신천지의 꿈이며 지구에서도 分化된 개척의 인내가 충만된 시의 세계가 아닐까 하고 유추하게 됩니다.
그는 이처럼 작품「우주의 한 모퉁이에서」「별똥별」「달나라 떡방아」「남십자성」「화성의 표면을 걷다」「다음은 어느 별에서」「석양의 말」등 지구과학과 시의 접점에서 ‘상호 보족적 작용’으로 그가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인의 잡론이 너무 장황하였습니다만, 이러한 과학적인 시적 모티브나 테에마는 이 지구과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생명과학 나아서는 기계공학과 더불어 물리 화학분야까지도 동화하거나 투사하는 방식으로 접목되어서 우리 문학이 새로운 정서와 사유의 현장으로 소통하는 지향점을 탐색해야 한다는 소견입니다.
우 교수님께서는 오늘 발제하신 내용 이외에도 다른 논제로 문학과 과학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하여 구상한 것이 있거나 지금까지 창작 및 발표된 직접 사례가 있으면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문학과 과학 심포지엄 토론문)
한국시의 세계화 벙안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문협 심포지엄에서 오세영 선생님이 발표하신 [세계화 시대의 한국시]란 주제 대해서 토론을 하게 된 시분과회장 김송배입니다.
오세영 선생님께서는 그저께 백담사 한국시인협회 세미나에서도 좋은 주제를 발표하여 회원들의 공감을 얻은 바 있는데 이처럼 연일 우리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노고를 아끼지 않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번 주제논문과 같이 우리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해서 깊은 연구를 하시고 우리 문단과 정부 당국 또는 정책입안자들 등 관련단체나 기관에 의견을 전달하는 논문을 많이 발표한 바 있습니다.
오늘 이처럼 우리 문협 심포지엄에서도 우리 시가, 또는 우리 문학이 총체적으로 세계화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살펴주셔서 우리 문협 회원들과 함께 공감하면서 몇 마디 저의 소견을 이야기하고 평소에 의문스럽던 두어 가지 문제를 여쭙고자 합니다.
선생님은 우리 한국시의 세계화방안에 대해서는 우리 문학을 세계로 널리 진출시켜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없을까하는 문제를 해결방안으로 제시하면서 대체로 두 가지 문제로 요약했습니다.
첫째는, 우선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일이며
둘째로, 이 창작한 작품을 세계 각국에 널리 보급시키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세계문학(world literature)과 민족문학(national literature)의 두 가지 개념과 우리는 만나게 되는데 이는 세계의 독자들이 사랑하는 문학은 결국 그 민족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세계적인 문학작품이어야 한다는 논지입니다.
여기에서 제시한 민족문학-훌륭한 민족문학으로서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른 작품에 대한 견해는 우리 모국어, 즉 한글(민족어)의 이상적인 구사로 한국적인 인간형의 탐구와 한국적 문학 양식의 계승 발전과 민족적 인생관이나 세계관 또는 전통적 사상 등 기층적 사고에 대한 충분한 탐구와 자기 반성의 노력이 절대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이밖에도 우리 민족의 보편적 문학적 감수성에 대한 일체감의 체험이 필요하고 민족정신의 탐구가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이 민족정신입니다. 우리의 현실적 사회적 정치적인 실천윤리가 아니라 우리 한민족이 근거하고 있는 영원한 생명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힘, 이 민족혼(volks seele)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 바로 민족문학의 확립을 위한 명제로 남아있음도 지적했습니다.
여기에서 이 민족혼은 한 민족의 일체감을 형성시키는 동질성(national identity)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러한 명제의 해법에는 지금까지 우리의 분단이나 이데올로기에 따른 민족의 분열 등을 염두에 두고 민예총이나 민족작가회의 같은 단체와 예총이나 우리 한국문인협회의 순수정신에 대한 상극이나 반대의 독성이 혹시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 민족문학의 확립을 위해서 언젠가는 한번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은 곧 이러한 의문을 갖게 되는데 이에 대한 견해를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음 세계화를 위한 두 번째 단계는 문화부나 문학을 지원하는 단체의 장이나 정책입안자들과 이를 실천에 옮기는 실무자들의 경영마인드가 중요하며 국제적으로 영향있는 문인, 지식인, 언론인, 출판인들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일과 우리 문학의 번역 사업의 적극적인 활성화이며 훌륭한 번역가의 양성과 지원이 국가의 정책적으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 문학의 세계화에 가장 중요한 문제로써 본인도 절대적으로 동감합니다. 세계적인 문학교류와 번역으로 우리 문학이 세계에 알려져서 언젠가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나와야 합니다.
여기에서 현재 우리의 문화예술의 세계화 방안중에서 정책적으로 시행하는 문학적 교류와 번역사업 또한 번역가의 양성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그 현황을 아시는대로 말씀해주시고 그 효과는 어느 정도이며 또한 앞으로 추가하거나 개선해야 할 점이 있으면 어떤 문제인지 평소에 알고 계시거나 당국에 제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문학의 세계화 관점에서 ‘시조’ 장르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언급을 해주셔서 ‘우리 시조는 민족시’라는 개념으로 세계화의 한국시에 포괄적으로 언급해 주신 점을 다시 한번 더 감사를 드립니다.(시조분과 회원들 박수) 감사합니다.(문학과 과하의 상생 토론문)
문학과 새 세기의 정서 교육
1. 새 세기의 전망
서기 2000년, 새로운 한 세기가 시작되면서 새 천년기(New Millennium)를 함께 맞는다. 이는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실제로 지난 연말부터 다양한 담론으로 우리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 내용을 일별해 보면 대체로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는 우리 국민들의 요망사항이 짙게 담겨져 있다.
그리고 환경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는 인류학자나 생명 존엄의 지식층들이 요망하고 있지만 현실로 다가온 과학 기술 문명의 유토피아인 테크노토피아의 세기라고 단정하는 측면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도 벌써 인터넷 인구가 7백만명(지난 해 11월말 통계)을 넘어서서 세계에서 10위권을 진입했다고 한다.
이처럼 세간의 사람들이 말하는 담론은 우리 인간들이 미래를 예감해 보는 희망이며 꿈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20세기에는 엄청난 민족적인 수난의 역사를 극복하면서 과학 기술의 고도화를 달성하여 산업화 시대를 이룩함으로써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 문명의 편리함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어찌보면 하루밤 사이에 달라지는 첨단 문명의 혜택은 우리들의 생활을 편안하게 해 주었지만 그 뒤안길에는 그만큼의 갈등과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이부 빈익빈이라는 차별현상으로 실업과 빈곤의 사회적인 위기와 공해와 질병 등 환경 파괴는 인류를 생존 가능성의 희박함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지구의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
또한 경제전쟁, 기아사태, 이상기온, 인종분쟁, 지진의 빈번한 발생 등등은 사회적인 생태와 환경적인 생태를 동시에 파괴하고 있어서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창조의 세기를 열어가기 위해서 어떠한 사유의 방식과 가치관으로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연구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반세기동안 해법을 찾지 못한 남북통일도 금세기에는 기필코 성취해야 한다는 민족적인 대명제가 남아 있음도 주목해야 할 새 세기의 숙원이다.
2. 문학의 과제
문학의 기능이 이와같은 세기적인 위기에 상호보완적인 역할이 주어지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한 시대의 공통적인 정신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동시에 역사의 정점으로 창조라는 당위성을 인정한다면 문학은 이러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주춧돌이 될 것임은 믿어도 될 것이다.
앞에서 문화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는 문화지향의 정서나 주장은 아무래도 문학을 필두로 한 문화와 예술이 인간의 정신세계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그 본질 속에서 사회, 경제, 교육, 국치 등 생존과 연관된 모든 근원을 합일시켜야 할 것이다.
문학은 정서와 사유의 창조영역에 속한다. 문학에는 인간의 체험을 통해서 자아 인식이 있고 자아 성찰이 있다. 또한 자기 발견을 함으로써 창조를 위한 기원이 있고 존재에 대한 가치성을 정립하고 생명력을 순수로 지향하는 구심점을 형성한다.
우리의 현대문학도 예외일 수는 없다. 1908년 육당 최남선이 <소년>지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신체시를 발표한 것을 현대문학의 효시로 본다면 어언 우리 문학사도 근 100년, 한 세기의 역사를 이룬다. 우리 문학사와 함께 지난 세기의 우리 근현대사는 수난의 역사이다. 일제 강점기에다 해방이다, 6. 25 동족상쟁이다, 4, 19, 5. 16, 12. 12, 5. 18 등 내외적으로 비극에 가까운 한 세기 속에서 문학이 감당한 몫은 지대하다.
문학은 민족혼과 동질적이어야 하지만 문학인들의 사유나 정서는 민족적인 고뇌와 인간의 아픔을 동시에 화해하는 문학정신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은 문학 정신의 다양한 변화와 진취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3. 문학과 정서 교육
우리는 복합적이고 다원화 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21세기는 더욱 다양한 형태의 생활방식이 예상되고 온 인류가 기상천외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가설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의식의 대처방안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문학은 진실을 그 가치와 생명으로 하고 있다. 모든 예술이 모두 진실에 그 원류를 두고 작품으로 형상화하겠지만 특히 문학은 영혼을 보전하는 방법이다. 그러하기에 문학은 정서의 올바른 성장과 유지를 위해서 필요하다. 문학 작품 중에는 노골적으로 직접 계도하거나 교시적(敎示的)인 부류의 것도 있지만 간접적(혹은 은유적)으로 정서를 순화하거나 함양하는 작품을 많이 접할 수 있다.
논어에 불학시 무이언, 불학례 무이입(不學詩 無以言, 不學禮 無以立)이라는 말이 있다. 직역해서 시를 배우지 아니하면 말을 할 수 없으며 예를 공부하지 아니하면 함께 동석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얼마나 시와 예를 중요하게 여겼는지 느끼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시, 희곡, 수필, 소설 등의 작품 한 편이 당장 무슨 혜택이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육체가 안락을 요구하듯이 정신도 안정을 요구하며 육체가 영양분을 필요로 하듯이 정신도 그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 풍요를 충족시켜줄 자양분을 필요로 하게 된다.
아무리 육체가 건강하더라도 정신이 병들어 있다면 우리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육체는 다소 불편하더라도 굳건한 정신력을 소유했다면 그를 인간 승리자로 우러러 보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유추한다면 문학은 정신에 영양분을 공급하는데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컴퓨터를 통한 싸이버 문학이 유행하고 있으며 금세기에는 전자신문, 전자도서관, 전자잡지가 크게 활기를 띄어서 순수문학이나 문학의 순수성에 대해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작가와 독자간의 매체가 달라질 뿐이지 문학의 기능이나 효용에 대해서는 아직 크게 문제는 없다고 보아진다.
그러나 너무 편리하고 안이한 것만 선호하는 젊은 층의 구미에 맞게 그 기능이 쾌락적인 것으로 흐름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고도의 문명사회에서 분출된 고뇌와 갈등을 화해하고 지향적인 가치관으로 인생을 구가하는데는 예술, 특히 문학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문화의 세기, 환경의 세기, 또는 테크노토피아의 세기도 우리 인간의 정서가 올바르게 구현되고 거기에서 새로운 창의력이 발현될 때 우리는 이러한 여망의 세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바로 교육에서부터 자리 잡아야 한다는 명제가 있다. 정서의 교육은 인간성 회복을 위한 초석이다.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는 지양되어야 한다. 인성은 없고 목적 달성을 위한 경쟁만 있다. 사랑과 포용의 덕목은 보이지 않고 이기주의만 살아 남았다. 문학과 정서의 함수관계는 교육을 통해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은 자명하며 당면 과제일 것이다.*(강연 자료)
가치관의 성찰 혹은 존재와의 화해
우리 인간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혹은 문학은 왜 하는 것일까 하는 참으로 우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서 쓴 웃음을 짓는다. 요즘처럼 재테크에 밝아서 투기를 하거나 복권 당첨 같은 요행으로 금욕의 성취에서 얻어진 물질의 풍요를 위해서 사는 것일까. 아니면 권리와 지위 명예를 위해서 사는 것일까. 21세기 현대인들의 가치관은 혼란스럽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과연 문학은 필요한 것일까. 거리에서 신음하는 노숙자 하나 구제하지 못하는 문학(옛날에는 쌀 한 됫박, 연탄 한 장도 보탬이 되지 않는 문학이라고 했다)의 기능이나, 극소수이긴 하지만, 시인 . 작가라는, 아니면 무슨 단체 회장이라는 명함을 내세워 문학외적인 잿밥에 현실 정치판처럼 설쳐대는 행태들은 어쩌면 우리 문학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라. 오늘도 순박한 서정을 바탕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마음을 열 수 있는 작품 한 편을 창작하기 위해서 골몰하는 문인들을. 그들은 문학을 통해 인생과 삶의 가치를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곧 문학이 ‘나’의 존재와 공존하는 그 가치성을 절대시하면서 원고지(요즘은 컴으로 하지만)와 함께 살아간다.
일직이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본시 있던 나’에게로 복귀하는, 말하자면 진정한 ‘나’의 존재를 탐색하고 확인하는 고독한 작업이 솔직한 나의 문학관이다. 문인은(특히 시인은) 무엇인가를 일상인(하이데거는 그냥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평균적인 사람을 ‘세상 사람들’이라 했다)보다는 정서의 지향이나 사유의 방식이 더욱 지적이어야 하고 건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는 진정한 의미에서 나에게는 종교와도 같은 것이었다. 허탈과 굴욕에서 황사바람이는 현상의 어느 벌판, 이런 곳에 한 줄기 훈풍으로 영원히 남아 있었다. 가시거리를 순간에 잊어버렸어도 꿈으로만 엮어진 가난한 마음이 있었고 그 내부 깊숙이 언제나 섬광처럼 번뜩이는 커다란 사상이 깔려 있음은 오늘의 황사현상을 용케도 헤쳐 나온 원동력이었으리라.
이것은 1980년대 초반에『심상』지의 신인상 당선소감(‘불혹의 언어’)의 일부이다. 이처럼 나는 이 현실적 갈등과 고뇌를 오로지 문학(시)을 통해서 정화하려는 확고한 심저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저항감이나 특정의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당시 농촌의 보릿고개 시절, 그래서 지적 자양의 충전이 불가능했던 정서는 언제나 우울한 그림자로 나를 고통스럽게 이끌고 있었기에 친자연적, 향토의 토속적인 소재에서 인생의 의미 찾기와 존재를 성찰하는 시 세계로 몰입하게 된 것이다.
나는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었지만, 철저한 유교정신의 근본으로 성장했기에 인본주의(휴머니즘)를 신봉한다. 공맹(孔孟)의 교리도 좋으나 장자의 물을 심취하는 연유도 그렇다. 시를 통해서 자아를 인식하고 가치관을 다시 정립하는 일은 문학에서 중요하다. 여기에는 성찰과 화해라는 상보성이 전제하지만, 여전히 상존하는 갈등과 번민을 해소하는 지적 혜안이 필요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성취해야 할 문학적 과제이며 숙명이다. 인간의 고통과 자연의 파괴 등은 위정자나 특수 관계인들만의 정책으로는 해소하기 힘들다. 우리 문학이 참여해서 인간의 정신 승화와 자연 친화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삶의 궤적을 회상하는 독백이나 사물을 스케치하는 문학 시대는 이미 낡았다.
더구나 시인이란 가면을 쓰고 잿밥에만 연연하는 무리들은 이땅에서 척결해야 한다. 적어도 공자의 사무사(思無邪) 정도, 장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정도는 실천하려는 시인이 존재해야 인본주의의 깃발 아래 진선미(眞善美)가 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 타오르는 문학이 빛을 내지 않겠는가 싶다.
*(2007. 문학공간 <나의 문학관>)
문학의 사회성 또는 시사성(時事性)
우리 인간들은 누구나 고립된 상태에서 생활할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지 서로 교류하고 집단을 이루어 사회를 형성한다. 문학에서도 그 사회생활에서 떠날 수는 없다. 문학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에서 직면한 현실로부터 끊임없이 주제를 찾아 낸다. 현대의 사회는 더욱더 그 기구가 복잡화하고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불합리한 것이 가는 곳마다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문인들은 외부부터의 갈등과 고뇌를 시, 소설 등 문학에서 그 해법을 탐구하는 것이다.
특히 시(詩)가 사회에 참여하는 특성은 시대적 여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복합적인 모순과 불합리 등에 대한 저항으로 개선이나 새로운 방향 전환을 위한 시사성이 내포된 시적인 절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을 살펴보면 저항시, 투쟁시, 참여시, 문명비판시, 반공시, 노동시, 전쟁시, 애국시, 환경시, 통일시, 투병시, 담 시 등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시적 발상이나 동기는 인간의 성정(性情)-오욕(五慾)칠정(七情) 중에서도 노(怒)에 해당하는 심리적인 혼란에 대한 충격과 각성(覺性)에 따른 사회적인 문제들이 시인들의 뇌리에서 진실의 지향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창작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시인 매슈 아놀드는 시는 인생 비평이다 라는 말을 상기하면서 우리 시의 사회적 참여나 시사적인 요소가 회자(膾炙)되는 경우 몇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의 고전 시조에서 몇 가지를 추려보면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이를 반대하는 고려 충신들이 망국의 설움을 달래면서 노래한 것들이 많으나 이방원이 포은 정몽주를 만나서 회유책으로 노래를 불렀으나 포은은 충성심으로 답변을 거절하여 선죽교에서 철퇴를 맞고 최후를 맞은 사건도 있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얼켜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 하여가
이 몸이 죽고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의 단심가
한편 선조때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이순신 장군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끗나니.”라고 읊었으며 인조때에 청태종 홍타이치가 굴욕적인 전쟁 병자호란을 일으켜 승리한 후 삼전도비를 세우고 수항단(受降檀)에서 인조로 하여금 치욕의 삼배구도구(三拜九叩頭)의 항복의 예를 올렸으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외에 많은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갈 때 전범(戰犯) 척하파(斥和派) 김상헌은 다음의 노래를 불렀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현대시의 현실 참여는 역사성과 동행한다. 일제 강점기, 해방, 6.25 동란, 4.19 의거, 5.16 군사혁명, 유신, 5.18 민주운동 등 역사적인 사건과 문명의 발달로 요염된 환경문제, 인성 파괴문제 등등 이루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사례가 많다.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응 것이다.
1) 저항시-일제 강점기-이상화(「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한용운(「님의 침묵」)
2) 4.19의 현장 및 추모-신동엽(「껍데기는 가라」) 김수영(「풀」)
3) 참여시=김지하(「오적」)
4) 시사시-정공채(「미8군의 차」) 김남주(「조국은 하나다」)
5) 전쟁시-*6.25-구상(「초토의 시 8」 ) 전봉건(「6.25」 연작) 등 시인들-종군작가단과 현역 군인들 *월남전-이동순(「위문편지-베트남 참전병사의 노래」) 김준태(「베트남 추억」)
6) 환경시-김송배(「폐수론」) 변세화(「자연 앞에 서고 보니」)
7) 기행시-김종상(「장가계」) 김송배(「브란덴브르크 문 앞에서」 등)
8) 노동시-박노해(「노동의 새벽」)
9) 문명비판시=김종해(「서울의 정신」) 김송배(「숲속의 대화」)
10) 이 밖에도 일상적인 사회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이 인간의 기본 윤리 개념이나 인격 또는 정의에서 벗어났을 경우 이를 사회성 범주에 넣고 있으며 소설에서도 남정현-(「분지」) 정을병-(「개새끼들」) 등이 사회성 짙은 작풍(作風)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는 저항시와 참여시 또는 민중시라는 이름으로 현실 사회나 국가를 비평하는 반국가적인 작품들도 많이 볼 수 있었으나 시대(정치)의 변화와 역사의 기류가 평화와 안정을 염원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지향점이 본래 시의 위의(威儀)나 본령(本領)으로 돌아온 것 같기도 하다.
한때는 우리 문학사에서도 지울 수 없는 문학단체가 설립하여 이 세상을 뒤흔든 시대도 있었다. 한국민족문학작가회(약칭 민작)이라는 이름으로 좌편향의 정부와 순수문학다체들과 대립 양상으로 양분하여 서로 아웅다웅한 적도 있었다. 그후 민족이라는 이름이 빠지고 작품의 경향도 다양하게 나타나서 우리 문학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시의 사회성 내지 시사성은 특정지어서 논할 것이 아니라 특수 목적시 혹은 행사시를 제외한 모든 작품들은 그 시대적 배경과 그 체험에서 획득한 상상력이 재생한 이미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모두가 현실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사회성은 모든 문학에서 응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어떤 사안에 대하여 저항하기 위해서 혹은 성취하기 위해서 창작된 작품은 그 예외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이목을 집중시켰던 작품 몇 편을 적어둔다.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오적」-김지하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것다(중략)-/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중략)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 배꼽 같은 천하 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이하 략)
「조국은 하나다」-김남주
"조국은 하나다" /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 남모르게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 "조국은 하나다" / 권력의 눈 앞에서 /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 "조국은 하나다" /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 나는 이제 쓰리라 /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길 위에 / 조국은 하나다라고 / 오르막길 위에도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 사나운 파도의 뱃길 위에도 쓰고 / 바위도 험한 산길 위에도 쓰리라 /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 조국은 하나다라고(이하 략)
「미8군의 차」-정공채
나와 백년의 열차를 타야 할 / 그 여지는 / 그 사람이 운전하는 / 미 8군의 차를 탔다 // 바퀴는 나의 맨발이 못따르는 / 휘발유를 타고 / 바퀴는 / 굴러 갔다// 버드나무에 말을 맨 주둔 / 자본이 / 땅 위에서 황혼 때의 꽃밭같이 / 꽃으로 피었다 / 공주들은 / 주로 그 꽃만 좋아하였다 //그리고 달리는 바퀴 위의 미 8군의 / 차 안은 / 이러한 꽃으로 가득차 / 자본은 빛나도록 달리고 있다(이하 략)
「위문편지-베트남 참전병사의 노래 6」-이동순
나트랑 / 주월한국군 방송국에서는 / 저물 때까지 고국 어머님들의 위문편지 들려왔었다 / 울먹이는 목소리로 읽어가던 / 그 육성 편지 들으며 / 나는 참호 속에 들어가 기어이 눈물을 떨구었다 / 군화 코에 떨어지던 눈물 /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훌쩍이면 / 한바탕 소낙비 지나가고 / 참호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 왜 그리도 가슴에 크게 /울리던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