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덕암 이성칠
첫돌 맞는 외손주 도리도리 까꿍 까꿍 백릿길 외가댁과 영상통화 요란하다 엊그제 포대기로 업어줬다고 낯설어하지 않으니 기특하다 할배 얼굴 험상궂은데 소쿠리처럼 환한 나의 동자승 염화미소(拈花微笑)에 합장한다
일년 내내 마주하는 책상 위 미소거울에게 너 참 젊고 잘났어 마주하며 눈 크게 뜨고 웃어본다 그 놈도 명경지수(明鏡止水)에 잔주름 하나 얹는다
요지경(瑤池鏡)
서우당 이성칠
잘나고 똑똑하다는 이들 모두 미쳐가니 두 눈 질끈 동여맨 체 벼랑 끝으로 달린다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 모닥불 하나 불나방처럼 파닥거린다
비틀거리는 길 위에 소아마비 걸린 세상이 걸어간다 술 취한 사람은 바로 걷고 바른 사람은 눈을 감는다. 바람 한 줄기 쓸고간 자리 허무만이 짚단처럼 쌓인다 제멋대로 쓴 시놉시스처럼 춤추고
무너져도 일어서고 일어서도 무너지는 세상 파도를 쳐다보며 바다가 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진실같은 거짓이 산허리를 감아와도 안개처럼 사라지려니 서로의 가슴을 열고 손 잡으며 웃어나 보자
마늘과 양파
선월 이성칠
호랑이보다 매서운 겨울을 박차고 삼짇날 기지개 켠다
나무도 아닌 것이 팔다리 펼쳐 보이며 하늘에 삼지창 든다
같은 형제인 듯하면서 넘지 못할 옹골참과 까도 까도 진실함에 숙연해진다
향기 없는 꽃잔치
이성칠
먼 산 진달래와 벚꽃이 떠나니 꽃병엔 낯선 얼굴들만 주인 노릇이다
지게 나뭇단에 꽂혀 어사화처럼 빛났고 사랑 나눌 땐 꽃비처럼 날렸다
벌 나비 날아들 꽃향기 덤으로 즐기니 바보 같은 꽃들은 제 몸 꺾이는 줄 모른다
나라 곳곳에서 고개 꺾인 꽃무릇이 바람에 흔들리고 망국의 조선이 어른거린다
은하에서 온 꽃잎별
이성칠
하늘에서 금가루 뿌린 듯 바람결에 은하마저 무리지어 날리니 자물쇠처럼 묶지 못한 아쉬움에 육중한 덩치 손가락 끝마다 붉은 상처 싸맨다
바위옷 뚫고 나온 듯 보드라움 슬며시 감추고 낙하산 활짝 펼치며 점점이 박힌 하늘 천장의 행성들 미련버리고 하나둘 우주의 절벽에 꽃잎 하나씩 안았다
연년이 은하의 별꽃들 고향땅 잊지 않고 사랑하니 삼짇날 봄밤 다 가기 아쉬워 나비 같은 날갯짓에 파르르 떨며 내려앉아 대지의 품에서 반짝인다 |
첫댓글 저의 미력한 글을 지도교수님께서 퇴고를 해주시니 한없이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부끄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