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갓집이 곁에 있는 김천시 황금동
104번지에 위치한 성당(천주교) 부근에
자취방을 얻어서 새 보금 자리를 마련 하였다. 그 당시 외할아버님께서 경영 하시던 경상도 사투리로 구루마방(달구지제작)을 운영 하시며 나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외갓집 주위에서 생활 하면서 청운의 꿈을 꾸게 되었단다.김천시 황금동에서 학교가 있는 부곡동 까지는 걸어서 약 50분 정도 걸렸다.나는1학년6반에 배정 되여 첫 수업을 받게 되였다. 특별활동 시간에는 축구부를 선택하여 활동한 추억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시절에 산 넘어 이웃 구성초등학교에 더니던 이달훈 이라는 학생과 한반이 되여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내게 되였단다.그 친구는 몸이 빨라서 축구도 제법 잘 하였다.또 내 옆 자리에는 김상욱 이라는 학생이 옆에 앉자 같이 공부 하였다. 그 친구는 공부를 아주 잘 하였다. 시골 촌 놈인 내가 그런 친구를 따라 갈 려니 몹씨 힘이 들었다. 학교 생활하는 과정에서 중학교 2학년 때 영어 암송대회를 하였는데 그 당시 김천시 지례면 에서 온 이달훈 이라는 친구가 일등을 하였단다. 나는 속으로 무척 부럽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 생활은 그런데로 재미가 있었다. 나의 모교 김천중학교는 정말 훌륭하고 좋은 학교로 기억 된다. 김천중학교를 감싸고 있는 황악산 기슭에 자리잡은 나의 모교의 내력은 먼저 학교 주위를 둘러싼 황악산과 직지사의 내력 부터 알아 보려한다.
황악산(1,111m)은 추풍령을 잠시 가라앉힌 백두대간이 서남쪽 멀리 지리산을 향하다가 첫 번 째로 산릉을 다시 치켜 올려 놓은 산이다. 황악산은 해발1,111m 비로봉을 중심으로 백운봉(770m),신선봉(944m),운수봉(740m),이 치솟아 직지사를 포근히 감싸준다. 충북 영동과 경북 금능의 경계를 이루는 황악산은 옛날 학이 많이 찾아와서 일명 황학산(黃鶴山),으로도 불리어 왔다. 황악산의 모든 명소와 고적은 동쪽 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직지사는 오래된 절이다. 신라의 눌지왕 때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세웠다니까 대충 1,600여년의 내력을 갖고 있으며 그후 태조19년(939년), 능여대사가 중건했다. 또한 사명대사가 5년간이나 이 절에서 수도 했다는 것도 유명하다. 직지사라는 이름도 좀 독특한 것인데 직지사라는 사명(寺明),은 직지인심,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조사어록에 근거한듯 하지만 아도스님이 신라에 불도를 전하러 왔다가 손가락으로 황악산을 가리키며 좋은 절터라고 한데서 유래 한다는 설이 가장 유명하다.또는 나중에 이 절을 중건한 능여대사가 자를 쓰지 않고 손으로 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전해온다.
황악산1,111.4m은 경븍 김천시 대항면에 위치하며 정상의 다른 이름은 비로봉이다. 황악산 동쪽 산 기슭에 자리한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2년(418년),에 아도화상이 창건 하였고 문화재로는 보물 제319호인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보물 제606호인 삼층석탑등 국가지정문화재 7점이 있으며 암자로는 암수암,은선암,백련암,이 있다. 직지사는 임진왜란때 나라를 구한 호국선사 사명대사의 출가득도 사찰이다. 사명대사(1544~1610),는 경남 밀양 태생으로 본관은 풍천임(豊川任),씨로 속명은 응규(應奎),법명은 유정(惟政), 호는 사명당(四溟堂),이다. 사명대사(1544~1610),는 16세에 직지사로 출가하여 18세에 승과 장원으로 급제하고 30세에 직지사 주지가 되었다. 사명대사는 조부가 관찰사를 역임한 밀양 최고의 명문가 후손이다. 황희(黃喜)정승의 현손이며 울산군수 재임당시 비리에 연루되어 김천으로 유배를 와 있었다고 하며,문하에서 과거공부를 하기위해 13세 때 부터 직지사 인근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그러던중 역병이 돌아 15세 때에 모친을 여의고 16세 때에 부친마저 여의게 되자,공부에 뜻을 접고 방황을 거듭한다.마침 직지사에 놀러와서 천왕문 앞 은행나무 아래 평평한 돌에 앉았다가 낮잠이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대에 벽안당에서 참선을 하던 주지 신묵대사도 낮잠이 들었다.신묵(信默),은 꿈에 황룡이 나타나 천왕문 앞 은행나무를 감싸고 있는 기이한 광경을 보고 잠에서 깨어 그 자리로 가보니 한 아이가 돌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양친을 여의고 괴로워하던 소년은 천하에 고아된 몸이 과거가 무엇이며 출세가 무엇 이겠습니까? 하고 출가를 소원하니 신묵은 이 소년이 자신의 꿈에 본 황용임을 직감하고 거두어 제자로 삼았다. 이후 묘향산 서산대사에게 수학한 사명대사는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스승인 서산대사와 함께 승병을 모아 각종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어려움에 처한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을 바쳤다. 현재 직지사는 조계종 제8교구본사(주지:법보스님)는,2020년 11월6일,200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경내 응진전 삼존불 및 약사전 약사여래불 개금불사를 회향하고 점안 법회를 봉했다.이곳에는 박정희 전대통령과 육영수여사 그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전해 들었다.
황약산의 정기와 직지사의 유서 깊은 전통을 본 받은 자랑스런 나의 모교 김천중학교 교가를 오랜만에 불러 보려 하니 좀 처럼 생각이 나지 않아 김천중학교 교무과에 전화를 하여 교가를 핸드폰으로 전송 받아 옛 추억을 드듬어며 불러보니 만감이 교차 되는 것을 느꼈다. 나의 모교 교가를 잊어 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아래 나의 자서전에 옮겨 심어 보고져 한다.
♡ 김천중학교 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