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에서 문안 합니다.
매월 첫째주 화요일과 셋째주 화요일은 구조분석 방법론을
함께 연구 할수 있도록 하신 성령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목사님들께서 동참하시여 성서의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도 하겠습니다.
많은 은혜 받으시고 하나님만 자랑해 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아주 좋아 하세요.
주제절
외울 말씀 12장 30절 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1-12절 [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1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일구어서,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멀리 떠났다.
1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 짜는 구유를 만들고 망대를 세우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떠났다.
직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들 안에서 말씀하기를 한 사람이 한 포도원을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었다. 그리고 그것을 농부들에게 세를 놓았다. 그리고 타국으로 떠나갔었다.
12:1 Καὶ ἤρξατο αὐτοῖς ἐν παραβολαῖς λαλεῖν· (부정사: 현재 능동태)
그리고 그가시작하셨다 그들에게 안에서 비유들 말씀하시기를 (동사: 직설법 과거 중간태 3단)
ἀμπελῶνα ἄνθρωπος ἐφύτευσεν
한 포도원을 한 사람이 재배했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περιέθηκεν φραγμὸν
그래서 돌려쳤다 울타리를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ὤρυξεν ὑπολήνιον
또 팠다 포도즙 짜는 틀을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ᾠκοδόμησεν πύργον
그리고 지었다 망대를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ἐξέδετο αὐτὸν γεωργοῖς
그리고 세를 놓았다 그것을 농부들에게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ἀπεδήμησεν.
그리고 타국으로 떠나갔었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 12:1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 '비유'(파라볼레)란 문자적으로 '나란히 놓음'이란 직접적인 뜻을 갖고 있다. 이것은 화자(話者)가 강조하려는 논점을 일상생활 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들어 설명함으로써 납득시키는 방법이다. 이에 대해서는 마 13장 연구자료, '비유에 대하여'를 참조하라. 여기서도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생활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며, 구약에 여러 차례 교훈의 소재로 사용된 포도원을 들어 영적 진리를 교훈하고 있다. 한편 원문에서는 '비유'(파라볼라이스)가 복수로 나와 있는 바, 이것은 본 비유 외에도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하셨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병행구인 마태복음에는 이 비유가 '두 아들 비유'와 '혼인잔치의 비유' 사이에 언급되어 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비유의 청취자인 '저희'란 말 가운데 는 예수를 적대하는 교권주의 자들도 섞여 있었음이 분명하다.
▣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 팔레스틴은 '감람나무'와 '포도나무'가 특별히 많은 땅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한편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은 포도원을 만든 뒤에 일단의 농부들에게 소작하도록 주고 자신은 길을 떠났다. 이와 같은 소작 형태는 당시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었다. 즉 페르시아 시대 이후로보다 국제화되었던 팔레스틴에는 외국의 왕이나 부호, 혹은 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포도원을 만들고 수확의 일정한 양을 토지 소유자에게 납부하는 소작 제도가 있었다. 이때 소작인은 수확한 포도뿐만 아니라 포도주, 곡식, 기름 등의 현물이나 일정량의 돈을 납부하기도 하였다. 여하튼 이 비유에 등장하는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키며, 농부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그리고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 산울로 두르고. - '산울'이란 포도원에 침입하는 야생 동물이나 열매를 탈취하려는 침입자들로부터 포도원을 지키기 위해 포도원 둘레에 쌓은 담장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영적으로 선민과 이방 민족 간의 분리를 나타내며,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 즙짜는 구유. - 포도즙을 짜기 위해 야외에 설치된 시설물이다. 유대인들은 두 개의 구덩이를 판 후 돌로 그 주변을 쌓고 위에 있는 구덩이에 포도를 넣고 밟았다. 이때 생겨난 즙이 작은 연결 구멍을 통하여 아래로 흘러 포도즙 항아리에 담겨지고 그 후 그 즙은 포도주 부대에 옮겨져 저장된다.
▣ 망대를 짓고. - 침입자를 감시하기에 용이하도록 돌로 쌓았는데 높이는 보통 10규빗(1규빗은 약 45.6cm), 넓이는 4규빗으로 파수꾼이 거하던 곳이기도 하며 때때로 수확한 포도를 저장하는 창고가 되기도 하였다.
▣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 이 비유에서 포도원을 관리하는 농부는 포도원으로 비유되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로서 제사장과 장로, 바리새인들을 가리키고 있다. 한편 당시의 일반적인 소작의 형태는 수확의 반씩 주인과 농부가 나눠갖는 것이었다.
▣ 타국에 갔더니. - 이 말은 타국에 갔는데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라는 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부여한 책임이 크다는 것을 묘사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값을 지불하고 사신 포도원을 이스라엘 농부, 즉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보살핌에 완전히 위임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실로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불러내어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고, 거기에 심으셨을 뿐 아니라 울타리를 치심으로 외적의 침입에서 보호하시며 그들을 구속사의 주역으로 삼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준비하시는 사랑을 보이셨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12:2 때가 되어서, 주인은 농부들에게서 포도원 소출의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12:2 때가 되자, 그가 농부들에게서 포도원 소출 중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그 농부들에게 보냈으나,
직역: 때가 이르매 주인이 한 종을 농부들에게로 보냈다.
그리고 포도원 열매 얼마를 받게된다면 받기 위하여 농부들 에게로 보냈다.
12:2 καὶ ἀπέστειλεν πρὸς τοὺς γεωργοὺς τῷ καιρῷ δοῦλον
그리고 그가 보냈다 에게로 그 농부들 그 때가이르매 한 종을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ἵνα παρὰ τῶν γεωργῶν λάβῃ ἀπὸ
위함이라 에게로 그 농부들 받기 부터 얼마를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3단)
τῶν καρπῶν τοῦ ἀμπελῶνος·
그 열매 그 포도원
주해
▣ 때가 이르매‥‥한 종을 보내니. - 팔레스틴에서는 포도나무를 심은 지 2,3년이 지난, 9월경에 포도의 수확을 시작한다. 한편 여기서 '때'(토 카이로)는 정관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마도 계약에 정해져 있었을 소작료 지불 시기였을 것이다. 즉 포도원을 세로 줄 때 이러한 계약이 분명히 있었으므로 이처럼 정한 때에 종을 보내는 것은 주인의 정당한 행위이다. 한편 여기에서의 '종'(둘로스)은 부분적으로나마 자기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하인'(오이케테스)과 달리 모든 권리가 주인에게 있으므로 주인의 명에 의해서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노예를 말한다. 그런데 이 '종'은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이나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부여된 사명만을 수행하여야 했던 선지자를 가리킨다. 한편 여기서 말하는 바 '포도원 소출의 얼마'는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구원을 경험하고 선민으로 택함 받은 이스라엘 이 마땅히 실천해야 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성결을 의미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3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12:3 그런데 그들은 그 종을 잡아서 때리고, 빈 손으로 돌려보냈다.
12:3 그들이 그 종을 붙잡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직역: 그러나 종을 그들이 잡은 다음 때렸다. 그리고 빈손으로 내 쫓았다.
12:3 καὶ λαβόντες αὐτὸν ἔδειραν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그러나 잡은 다음에 그를 그들이 때렸다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복수)
καὶ ἀπέστειλαν κενόν.
그리고 내쫓았다 빈손으로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주해
▣ 저희가…심히 때리고. - 농부들은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소작료도 주지 않은 채 거저 보내었다. 주인의 정당한 요구에 대하여 순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인이 파송한 종을 구타한 이러한 행위는 주인을 멸시한 행위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비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많은 선지자를 파송하여 그들의 죄상을 지적했으나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파송하셨던 선지자들을 핍박했던 역사를 가리킨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12:4 주인이 다시 다른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랬더니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때리고, 그를 능욕하였다.
12:4 그가 다시 다른 종을 그들에게 보내니, 그들이 그 종의 머리를 때리고 능욕하였다.
직역: 그러자 주인은 다시 다른 종을 농부에게로 보냈다. 또 그를 도로 쳐서 머리에 상처를 내었다.
그리고 모욕하고 보냈다.
12:4 καὶ πάλιν ἀπέστειλεν πρὸς αὐτοὺς ἄλλον δοῦλον·
그러자 다시 그는 보냈다 에게로 그들 다른 종을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ἀκεῖνον [ιθοβολσηνατες] ἐκεφαλίωσαν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또 그를 돌로쳐서 머리에 상처를 내었다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복수)
καὶ [ἀπέστειλεν] ἠτίμασαν.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그리고 보내었다 모욕하였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 주인이 계속해서 종을 보냈다는 것은 주인의 풍부한 인내심과 관용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농부들의 완악함도 그만큼 더 심해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 여기서 '능욕하였거늘'(에티마산)이란 '모욕을 주다' 또는 '경멸하다'란 의미로서 심각할 정도의 명예 손상을 말하는 것인데, 주인이 파견한 종에 대한 이러한 모욕적 행위는 주인에 대한 불명예와도 같은 것이다. 한편 '머리에 상처를 내는'것은 당시유대인에게 크나큰 수치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머리는 유대인에게 있어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것에 대한 상징이며 신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이곳에 상처를 입혔다는 것은 대단한 불명예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모욕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를 계속하였던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5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12:5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더니 그들은 그 종을 죽였다. 그래서 또 다른 종을 많이 보냈는데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
12:5 그가 또 다른 종을 보내자, 그들이 그종도 죽였으며 그가 다른 많은 종들도 보냈으나 그들이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
직역: 그래도 주인은 다시 종을 보냈다. 또 그를 농부들이 죽였다. 또한 많은 다른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이었다.
12:5 καὶ ἄλλον ἀπέστειλεν·
그래도 다시 종을 그가 보냈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ἀκεῖνον ἀπέκτειναν,
또 그를 그들을 죽였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καὶ πολλοὺς ἄλλους,
또한 많은 다른종들도
οὓς μὲν δέροντες,
그 더러는 때리고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οὓς δὲ ἀποκτέννοντες.
더러는 그리고 죽이는지라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주해
▣ 또 다른 종을…때리고 혹은 죽인지라. - 주인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농부들에 대하여 포도원 주인은 놀라운 인내심을 가지고 세 번째 종들을 파송하였다. 그러나 패역한 농부들은 다시 준 기회에도 불구하고 처음과 동일하게 종들을 구타하고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것은 영적으로 패역하고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속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선지자를 보내시며 때로는 같은 시대에 여러 선지자를 보내기도 하셨는데(요나,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 미가 등) 이것 또한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를 보여준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뜨거운 사랑과 인내로 우리들이 당신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인내하심이 영원하지 않고 끝이 있으며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6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12:6 이제 그에게는 단 한 사람, 곧 사랑하는 아들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 아들을 그들에게 보내며 말하기를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하였다.
12:6 아직 그에게 한 사람, 곧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으므로 마지막으로 그를 보내면서 '그들이 내 아들은 존경하겠지.' 라고 말하였으나,
직역: 아직 그에게 사랑하는 한사람 아들을 데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그 아들을 마지막으로 그들에게로 보냈다.
나의 아들은 저들이 공경하게 될 것을 말하였으나,
12:6 ἔτι ἕνα εἶχεν υἱὸν ἀγαπητόν·
아직 한사람 데리고있었다 아들을 사랑하는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단)
ἀπέστειλεν αὐτὸν ἔσχατον πρὸς αὐτοὺς λέγων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그가 보냈다 그를 마지막으로 에게로 그를 말하기를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ὅτι ἐντραπήσονται τὸν υἱόν μου.
것을 공경하게 될 그 아들은 나의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태 3복)
주해
▣ 오히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티 운'에서 '에티'는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 시간(still)을, 그리고 '운'은 접속사로서 '그렇다면', '거기에 응해서'란 뜻을 지닌다. 따라서 이 말에는 종들이 비극적인 상황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이 더 이상 선지자의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시겠다는 의지가 암시되어 있다.
▣ 한 사람이 있으니……아들이라. - 여러 종들이 희생되고 난 후 이제 포도원 주인은 자신의 아들을 파견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 아들은 포도원 주인의 파견을 받았다는 점에 있어서는 그에 앞선 종들과 같은 선상에 있지만, 후에 포도원의 상속자가 된다는 점에서는 절대적인 차이를 지닌다. 그리고 여기서는 종말론적 심판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은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것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방책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무한한 것인가를 알게 해준다. 한편 본절의 '사랑하는'(아가페톤)이란 단순한 감정상의 애정 표현을 넘어선 유일한 존재에 대한 지고(至高)의 사랑을 표현한다. 즉 이 용어가 구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에서는 '유일한'이란 의미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는 삼위일체로서 완전한 하나를 이루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는 독생자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 최후로 …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 여기서 '최후로'는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표현으로서 패역한 자들에 대한 엄격한 심판에 앞서 선지자를 마지막으로 파견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포도원 주인은 자신의 독백에서 사람들이 자기 아들을 존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혹자는 이것을 확대 해석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반응을 알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전지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비유의 목적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히 참으시는 인내와 하나님 앞에서 저지른 이스라엘의 배역을 보여 주려는데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7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12:7 그러나 그 농부들은 서로 말하였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유산은 우리의 차지가 될 것이다."
12:7 그 농부들은 서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상속자이니, 자, 우리가 그를 죽여 버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될 것이다.' 하고,
직역: 그러나 농부들은 그 자신들끼리 말하였다. 이는 저사람이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와서 우리가 상속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그 상속이 우리들의 것이 될 것이다.
12:7 ἐκεῖνοι δὲ οἱ γεωργοὶ πρὸς ἑαυτοὺς εἶπαν
저(사람은) 그러나 그 농부들은 끼리 그 자신들이 말하였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ὅτι οὗτός ἐστιν ὁ κληρονόμος·
때문이다 이는 이기 그 상속자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δεῦτε ἀποκτείνωμεν αὐτόν,
너희들은 와서 우리가 죽여버리자 그를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1복)
καὶ ἡμῶν ἔσται ἡ κληρονομία.
그러면 우리들의 것이 될것이다. 그 상속이 (동사: 직설법 미래 중간태/디 3단)
주해
▣ 저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 농부들이 협의하여 아들을 죽이려는 상황은 마치 농부로 비유되는 유대의 교권주의자들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협의하는 것과 유사하다. 예수는 이러한 비유로서 그들의 의롭지 못한 논의를 간접적으로 비방하신 것이다.
▣ 죽이자…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 농부들은 포도원 주인의 인내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포도원을 자신들이 가지려는 불의한 욕심으로 상속자인 그 아들마저 죽이려 하였다. 이러한 불의한 살해 행위는 당시 '소유주가 없는 재산'의 처리 규정과 관련을 갖는다. 즉 무연고자의 재산은 제일 먼저 소유권을 주장한 자에게 그 소유가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유권자의 유일한 상속자마저 죽게되면 그 재산은 경작자인 자신들에게로 돌아오게 된다고 그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그닐카는 농부들로 묘사된 유대인들 특히 교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선민으로서의 특권을 이방인에게도 보편화시키려는 예수로 비유되는 아들의 시도를 막기 위해 아들을 죽였다고 한다. 즉 이 일로 인해 자신들에게 부여된 특권과 지위를 더욱 보호하고 확보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아들에 대한 농부들의 살해 계획은 요셉을 죽이고자 모의했던 형제들과 상황이 비슷하다. 또한 당시 민족주의자로서 외세를 몰아내려고 했던 열심당원 이 외국인 부재 지주를 추방하려 했던 것과 본문의 상황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비유는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교권주의자에 대한 공격이나 다른 일면으로는 인위적이고 과격한 방법으로 메시야 나라를 임하게 하려 했던 열성 당원에 대한 공격이라고 볼 수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8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12:8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잡아서 죽이고, 포도원 바깥에다가 내던졌다.
12:8 그를 잡아 죽여 포도원밖에 내던졌다.
직역: 이에 그들이 잡아서 그를 죽이었다. 그리고 그를 포도원 밖으로 내어 던졌다.
12:8 καὶ λαβόντες ἀπέκτειναν αὐτὸν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이에 잡아서 그들이 죽었다 그를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καὶ ἐξέβαλον αὐτὸν ἔξω τοῦ ἀμπελῶνος.
그리고 내어 던졌다 그를 밖으로 그 포도원의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주해
▣ 죽여 포도원 밖에 내어 던졌느니라. - 농부들의 완악한 생각은 포도원이 자기들의 것으로 될 수 있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주인의 분신(分身)이며 사랑의 표시였던 상속자를 살해하였다. 그들은 비록 상속자를 살해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주인은 살아 있으며 그가 패역한 자들을 응징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아들을 죽인 후 시체를 들판에 그대로 방기하여 짐승의 먹이가 되게 하므로 인해 죽은 시체를 또 한 번 모독하게 된다. 이것은 육체적 죽음과 아울러 죽은 자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키는 인격적 죽음까지 더하는 것으로서 농부들의 사악함을 극명하게 나타내 준다. 한편 본 구절의 사건을 기술함에 있어 마태와 누가는 아들을 죽이는 순서를 바꾸고 있다. 즉 아들을 먼저 밖으로 끌어낸 다음에 포도원 밖에서 죽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은 예루살렘을 상징하며 아들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당시 종교적 관습에 의하면 하니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죄인들을 처형할 때는 도성 밖에서 사형이 거행된 것을 염두에 둔다면 마태와 누가는 보다 더 당시 관습에 의거해서 사건을 기록한 것 같다. 그러나 마가의 기록 역시 농부의 사악함을 극대화시킨다는 점과 본 비유의 초점이 농부의 어리석음과 사악함을 부각시키는데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술 역시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9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2:9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 그는 와서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12:9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주인이 와서 농부들을 죽이고, 그포도원은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직역: 그러므로 포도원 주인이 무엇을 하겠느냐? 그가 올것이다. 그리고 농부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그리고 포도원을 다른 농부들에게 줄것이다.
12:9 τί [οὖν] ποιήσει ὁ κύριος τοῦ ἀμπελῶνος;
무엇을 그러므로 하겠느냐? 그 주인이 그 포도원을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3단)
ἐλεύσεται καὶ ἀπολέσει τοὺς γεωργοὺς (동사: 직설법 미래 중간태/디 3단)
그가올 것이다 그리고 멸망시킬 것이다. 그 농부들을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3단)
καὶ δώσει τὸν ἀμπελῶνα ἄλλοις.
그리고 줄 것이다. 그 포도원을 다른(농부에게)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3단)
주해
▣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뇨. - 포도원 주인이 주인의 관용과 인내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으며 악용하는 농부에게 어떻게 행할 것인가는 너무나 자명하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이 너무나 분명한 대답이 가능한 질문을 함으로써 이를 듣는 사람들에게 더 큰 효과를 내게 하였다. 또한 여기에서 이 비유의 시점이 과거에서 미래시점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역이 과거와 현재에 계속 이어지고 있으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다가오는 미래에 곧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 본절에서는 이 말이 바로 앞부분에서 질문을 제기한 예수님이 스스로 하신 대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병행 구절인 마 21:41에서는 이 비유를 듣던 청중들이 대답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은 문답식 방법을 통한 교훈을 많이 주셨고 상대방의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흔히 했다는 점에서 마태의 사건 전개가 보다 세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심판의 선언은 선민으로서 구속사의 주역의 역할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를 박대하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적대하는 이들의 파멸과 더불어 그 역할이 다른 사람에게 이전됨을 보여준다. 이러한 예언은 역사상 그대로 실현되어 A.D. 70년 국가 형태로서의 이스라엘은 와해되었으며 복음 역시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영적 유대인에게로 넘어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편 당시 예수로부터 이러한 선언을 들은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는데 이러한 사실은 눅 20:16에서 청중들이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란 호소를 봐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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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2:10 너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 "집을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12:10 너희가 이 성경을 읽지 못하였느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다.
직역: 너희가 이 성경을 읽지도 못하였느냐? 건축자들이 버렸던바 그 돌을 모퉁이의 머리돌로 이것이 사용되었다.
12:10 Οὐδὲ τὴν γραφὴν ταύτην ἀνέγνωτε·
도 못하였느냐 그 성경을 이 너희가 읽지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λίθον ὃν ἀπεδοκίμασαν οἱ οἰκοδομοῦντες,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돌을 바 버렸던 그(사람) 건축자들이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οὗτος ἐγενήθη εἰς κεφαλὴν γωνίας·
이것이 사용되었다 으로 머리돌 모퉁이의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디 3단)
주해
▣ 성경에. - 예수께서는 시 118:22,23을 인용하여 그들에게 상기시킴으로써, 그의 청중 특히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거부하며 죽이려 하였던 대적자들인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을 놀라게 하셨다. 한편 본절은 예외적으로 공관복음서 모두에 기록됨으로써 교권주의자들에 의한 예수의 핍박 받으심과 그리스도를 통한 신약 교회의 성립이 이미 구약에서부터 예언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 건축자들의…머릿돌이 되었나니. - 이 말은 본래 제 1차 예루살렘 성전 건축의 주역인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위해 운반한 석재 중 성전 건축에 부적당하다고 판단되어 버려진 돌이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물인 성전 문의 기초석이 되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추정한다. 그런데 원래 시편에서는 이 구절이 나라의 멸망으로 쓸모없이 된 선민 이스라엘이 다시 본국으로 귀환함으로써 구속사의 주역의 위치를 회복한 사실이나 사울에게 쫓기는 초라한 다윗이 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른 신약의 묘사와 마찬가지로예수께서도 이 시편의 비유를 자신에게 적용시켜 자신의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예언하고 있다. 즉 여기서 '건축자'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인 산헤드린을 말하고, '버린'이란 살인을 의미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이 죽인 그 아들이요, 건축물 어디서나 맞지 아니하므로 내다버린 그 '돌'이다. 그리고 '모퉁이 돌'은 건축물을 지을 때 가장 먼저 놓는 것으로, 그 건축물의 기준이 되는 기초석이다. 예수님을 고전 3:11에 기록된 것과 같이 '터'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엡 2:20에서는 '터'에서 뛰어난 유일한 모퉁이 돌을 예수라 말하고, 그것이 모든 터와 건물 자체의 표준을 지배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진정 예수님은 하나님의 위대하고 신령한 구조물인 교회 안에서 이 모퉁이 돌의 역할을 하시고 계시는데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우리가 영원히 사모해야 할 하늘에 있는 성소의 머릿돌이시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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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11 이것은 주께서 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는 놀랍게 보인다."
12:11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일이요, 우리 눈에 놀라운 일이다.' "
직역: 이것을 주님께서 이루셨도다. 그러나 우리 눈들 안에 놀라운 일이다.
12:11 παρὰ κυρίου ἐγένετο αὕτη
께서 주님 이루셨도다 이것을 (동사: 직설법 과거 중간태/디 3단)
καὶ ἔστιν θαυμαστὴ ἐν ὀφθαλμοῖς ἡμῶν;
그러나 이다 놀라운 일 안에 눈들에 우리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 멸시를 받고 버림받은 돌을 들어 하나님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되게 하신 것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고 불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인간의 시각에서는 그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고 오히려 혼란만 야기시키는 무가치한 존재였으나, 당신 스스로는 산 돌로서 많은 생명을 구하시고 동시에 당신을 거부하고 핍박한 자들에게는 큰 형벌을 예비하셨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모든 것이 '주로 말미암아 된 것', 즉 하나님의 인간 구원을 위한 섭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의무인 하나님 경륜에 따른 삶을 살기 위해 산 돌이신 예수를 삶의 주춧돌이자 머릿돌로 모시고 그분이 뜻하시는 대로 우리의 삶을 영위해 가야 한다.
▣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인간의 판단을 뛰어 넘는다는 사실은 하나님을 배역한 유대인을 버리고 이방인을 구속사의 주역으로 선택함을 묘사한 사도 바울의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 읽어보지도 못하였느냐. - 율법의 규정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해석할 지혜를 가진 것으로 스스로 생각했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공격적인 말로서 그들의 영적인 완악함과 참 진리에 대한 무지를 공개적으로 책망하고 있다. 특히 당시 권세 있던 교권주의자들을 꾸짖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위가 강하게 나타나므로 인해 허위와 위선으로 뭉쳐진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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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12:12 그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을 겨냥하여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렸으므로, 그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무리를 무서워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12:12 그들은 예수께서 이 비유로 자기들에 대하여 말씀하신 줄 알고 그분을 잡고자 하였으나 무리를 두려워하여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직역: 그들이 예수를 잡으려고 찾고 있었다. 그러나 무리를 두려워 하였다.
왜냐하면 자기들을 향하여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버려두고 떠나가 버렸다.
12:12 Καὶ ἐζήτουν αὐτὸν κρατῆσαι, (부정사: 과거 능동태)
그리고 그들이 찾고있었다 그를 잡으려고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복)
καὶ ἐφοβήθησαν τὸν ὄχλον,
그러나 두려워하였다 그 무리를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디 3복)
ἔγνωσαν γὰρ ὅτι πρὸς αὐτοὺς
그들이 알았다 왜냐하면 것을 향하여 자기들을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τὴν παραβολὴν εἶπεν.
그 비유를 말씀하신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ἀφέντες αὐτὸν ἀπῆλθον.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그래서 버려두고 그를 떠나가버렸다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복수)
주해
▣ 자기들을 가리켜 … 두려워하여. - 본절에 언급된 자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장로들로서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말한다. 이들은 예수의 비유가 자기들의 영적 완악함과 종교적 기득권 유지를 위한 이기적인 태도를 가리키는 말씀인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반박하지 못하고 단순히 체포하여 대중들과 만날 기회만을 박탈하고자 한 것은 자신들의 비진리를 스스로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잡으려고 했으나 따르는 무리들로 인하여 잡지 못하게 된 것 역시 자신들이 법을 올바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을 보여 준다. 당시 예루살렘은 유월절 축제로 인하여 각지에서 모인 수많은 순례자들로 가득찼고(약 120만 정도로 추산됨)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선지자로 여겼고 그를 왕으로까지 추대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산헤드린 회원이 예수를 체포하는 일은 수많은 순례자들이 꽉 찬 예루살렘에서는 위험한 일이었다. 이처럼 예수를 제거하려는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가 실패하는 경우가 '무리들' 때문이라는 사실은 예수의 교훈이 이기적인 욕심을 전제하지 않고 듣는 백성들에게는 진리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지대한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 예수를 버려두고 가니라. - 이들이 물러난 것은 예수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무리들이 두려워서이다. 다시 말해서 이는 예수에 대한 도전이 중단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불리함을 만회하기 위해 잠깐 동안 후퇴한 것에 불과하다.
13-17절 [ 세금 논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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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2:13 그들은 말로 예수를 책잡으려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예수께로 보냈다.
12:13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 중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니
직역: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게된다면 잡기 위하여 그를 바리새인과 헤롯당들 중에 몇사람을 예수께서 보냈다.
12:13 Καὶ ἀποστέλλουσιν πρὸς αὐτόν
그리고 그들이 보냈다 에게로 그를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복)
τινας τῶν Φαρισαίων καὶ τῶν Ἡρῳδιανῶν
몇사람을 그 바리새인들 과 그 헤롯당들 중의
ἵνα αὐτὸν ἀγρεύσωσιν λόγῳ.
위하여 그를 그들이 책잡게된다면 잡기 말씀에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3복)
주해
▣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 여기서 '저희'는 악한 농부의 비유를 듣고 쫓겨간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과 동류의 무리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예수의 권세에 대한 종교적인 문제 제기가 실패로 돌아가자 이제는 정치적인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또다시 예수를 모함에 빠뜨려 사로잡을 궁리를 하는데, 이러한 사실이 본절에서 '책잡으려'(아그류소신)라는 말로서 표현된다. 즉 이 말은 사냥꾼이 사냥감을 집요하게 추적하여 헛 점을 찾아 활을 쏘아 짐승을 사로잡는 동작을 의미한다. 마태는 이를 '올무에 걸리게 할까'로 표현했고, 누가 역시 사냥꾼이 사냥감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을 묘사하는 엿보다가(파라테레산테스)라는 말을 사용하여 이러한 사실을 보여 준다. 그만큼 이들은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바리새인과 헤롯당. - '바리새파는 '분리된 자'라는 뜻으로 율법에 대한 열심으로 인해 당시 소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및 중·근동을 휩쓸었던 헬레니즘의 타락한 영향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킨 사람들을 뜻한다. 이들은 의식적 정결에 관한 율법을 지키는데 철저하여 죄인들로 취급하는 사람들로부터는 음식, 음료를 구입하지 않고 죄인들의 집에서 식사도 같이하지 않았다. 이들은 이처럼 급격한 문화의 변동 속에서도 율법이 실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전통을 발전시켰는데 B.C. 1세기의 유력한 두 지도자를 통하여 두 학파가 창시되었다. 그 하나는 힐렐학파로 온건하여 유대 정통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 하여 로마의 법을 수용했고, 또 다른 샴마이 학파는 완고하여 로마에 대해 배타적이었다. 이들의 율법 해석 전통은 율법과 같은 권위를 갖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은 '성문 율법'으로서 모세 오경인 토라 뿐 아니라 '구전 율법'도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본절에서 예수께 나아온 자들은 샴마이에 속한 자들로 이들은 가이사에게 세금 내는 것을 반대하는 반로마 집단의 대표로 온 것이다. 반대로 '헤롯당'은 헤롯의 왕가를 지지하는 유대인의 한 당파로서 로마에 대해 호의적이고 유대인의 메시야 운동을 반대하는 일종의 정치적 집단이었다. 이들은 최초로 헤롯(B.C. 37-4년)을 가리켜 '대왕'이라고 불렀는데, 이에 대해서 터툴리안과 제롬은 이들이 헤롯을 약속된 메시야로 생각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헤롯이 화려한 성전을 재건하였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로 인하여 평소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친분있는 사이가 아니라 오히려 반목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신약 총론, '신약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참조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예수를 잡는 일에는 결정적으로 하나된 것은 예수는 반로마적인 혁명론자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친로마적인 체제 유지론자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함으로써 하나의 선동가로 비춰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이점이 예수를 제거하려 한 양 집단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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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2:14 그들이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한 분이시고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압니다. 선생님은 사람의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
12:14 그들이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저희는 선생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분이신 줄 압니다. 선생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도를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우리가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직역: 그들이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진실한 아무에 대하여 당신은 문제가 되지 않으신 분이신 것을 알았나이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참된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합당합니까, 혹은 옳지 않습니까 ? 바쳐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가 내리이까?
12:14 καὶ ἐλθόντες λέγουσιν αὐτῷ·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복)
이에 와서 그들이 말한다 그에게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복수)
διδάσκαλε, οἴδαμεν ὅτι ἀληθὴς εἶ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2단)
선생님이여 우리가알았나이다 것을 참되신분 이시며 (동사: 직설법 완료 능동태 1복)
καὶ οὐ μέλει σοι περὶ οὐδενός·
또 않으신 문제가되지 당신에게 대하여도 아무에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οὐ γὰρ βλέπεις εἰς πρόσωπον ἀνθρώπων,
않고 왜냐하면 당신은보지 을 외모(얼굴) 사람들을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2단)
ἀλλ᾽ ἐπ᾽ ἀληθείας τὴν ὁδὸν τοῦ θεοῦ διδάσκεις·
그러나 위에서 참 그 길을 그 하나님의 가르칩니다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2단)
ἔξεστιν δοῦναι κῆνσον Καίσαρι ἢ οὔ; (부정사: 과거 능동태)
합당합니까 내는것이 세금을 가이사에게 혹은 아니니까?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δῶμεν ἢ μὴ δῶμεν;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1복)
우리가내리이까? 혹은 말아야하니이까 바치지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1복)
주해
▣ 당신은 참되시고…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 그들은 예수님의 교훈이 지닌 진실성과 성품의 위대함을 수사학적인 용어로써 토로하고 있다. 비록 그들은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나아온 사람들이긴 하지만 완벽에 가까우리만치 예수에 대하여 정확히 평가를 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가장 열렬한 제자들인 체 행세하였다. 특히 이들이 말한 '참되시다'(알레데스)라는 말은 부정을 의미하는 불변사 '아’와 '숨어 있다'를 의미하는 '란다노'의 합성어로서 숨겨진 바가 전혀 없이 정직하며 순수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권위를 고백하는 용어로 여러 번 사용되었다. 따라서 그들이 지금 말하는바 그대로 예수의 '참되심'을 인정하였다면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라는 표현은 상대적인 인간의 판단이나 지위, 혹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일이 없음을 가리킨다. 이 역시 신적 불변성을 반영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는다'는 표현은 모든 인간이 상대적인 지각력 밖에 가지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본질을 알고 있다는 의미로서 신적 전지성을 반영하는 말이다. 한편 여기에 사용된 '하나님의 도'라는 말은 믿음과 행위의 방법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백성들이 사고하고 생활해 나가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 서론적인 미사여구에 이어 무엇이 옳으냐라는 핵심적인 물음이 나오는데, 이것은 예수를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사전에 준비해온 질문이다. 여기서 가이사는 최초로 로마 황제가 된 가이사 아우구스투스에서 유래된 말이었으나 그 직위를 이어받은 모든 황제를 지칭한 말이 되었다. 한편 여기서 거론되는 당시 황제는 디베료이다. 또한 예수의 적대자들이 징수 참여의 질문을 제기한 '세'(켄손)는 A.D. 6년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아켈라우스가 폐위된 후 세리들이 유대의 모든 성인, 즉 남자는 14-65세, 여자는 12-65세까지 1데나리온씩 거두어 로마로 보낸 인두세(人頭稅)를 말한다. 이런 세금은 로마 황제를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하며 신적 권위까지 부여하고 유대가 로마의 속국임을 상기시키는 것이었으므로, 경건한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불만스러운 제도였다. 따라서 이 질문은 매우 교묘한 함정이었다. 만일 긍정적인 답변을 한다면 당시 대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경건한 바리새인들과 열렬한 애국자들로 자처했던 열심당원들의 극한 반발이, 부정적인 답변을 한다면 실제 권력을 잡고 있던 로마 정부에 대한 반역으로 헤롯당에 의해 고발될 어려운 진퇴양난의 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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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2:15 예수께서 그들의 속임수를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가, 나에게 보여라."
12:15 예수께서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왜 나를 시험하느냐? 내게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와 서 보여라." 하시니,
직역: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의 위선을 알고 계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나를 유혹하느냐?
나에게 한데나리온을 가져오라 내가 보기 위함이라
12:15 Ὁ δὲ εἰδὼς αὐτῶν τὴν ὑπόκρισιν εἶπεν αὐτοῖς·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그 그러나 알고 계시면서 그들의 그 위선을 말씀하신다 그들에게 (분사: 완료 능동태 주격 단수)
τί με πειράζετε;
어찌하여 나를 너희가유혹하느냐?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2복)
φέρετέ μοι δηνάριον ἵνα ἴδω.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1단)
가져오라 나에게 한데나리온을 위하여 내가보기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2복)
주해
▣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 앞절의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란 표현보다 더 적극적인 재촉의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이전에 보였던 예수에 대한 찬사는 아랑곳없이 이제 포획물을 앞에 둔 사냥꾼처럼 올무를 조이고 있는 것이다.
▣ 그 외식함을 아시고. - 본절에 대하여 마태는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누가는 '그 간계를 아시고'로 말함으로써 예수께서는 그들이 예수를 파멸에 빠뜨리기 위해 나아왔음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한편 '외식'(휘포크리시스)은 위선의 뜻을 가진다. 예수께서는 이미 교권주의자와 당시의 지배계층을 위선자로 질책한 바 있었는데 여기서 다시 그들의 비겁한 허위의식을 밝히고 계시는 것이다.
▣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 인류를 처음으로 시험하여 타락케 한 것은 사단이다. 그 이후에도 사단은 인류를 계속 시험하여 왔으며 공생애를 시작하려던 예수조차 광야에서 시험한 바 있다. 따라서 이때 진리를 선포하던 예수께 나아와 시험하던 무리들은 구속사의 주역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를 시험하는 것으로 사단의 행동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작은 은화로 로마의 통치권이 미치는 제국 내에서는 이 돈으로 세금을 내어야 했다. 이 은전의 한 면에는 승리와 신적 권위의 상징인 월계관을 쓴 디베료 황제의 흉상과 함께 '신성한 아구스도의 아들 디베리우스 가이사 아구스도'라는 황제를 찬양하는 말이 새겨져 있고, 그 뒷면에는 '최고의 사제'라는 말과 함께 황태후리비아의 화상(畵像)과 더불어 그 왼쪽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가지가 새겨져 있다. 이러한 것들은 결국 황제 숭배 사상을 조장하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로마의 화폐가 통용되었다는 사실은 그 통용된 지역이 그 화폐에 찍힌 실재 인물에게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라이트푸트는 '어떤 왕의 흉상이 새겨진 돈이 통용되는 것은 거기가 어디든지 그곳 주민은 그 왕을 자기들의 군주로 인정한다는 것의 증거이다'라고 말하였다. 한편 예수께서 로마의 은전 데나리온을 가지고 오라고 하신 것은 예수께 시험하러 나온 자들 자신이 이미 로마의 돈을 사용함을 밝힘으로써 그들의 질문이 진지한 것이 아니며 동시에 이러한 질문을 할 자격이 없는 위선자들임을 나타내려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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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2: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니, 예수께서 물으셨다. "이 초상은 누구의 것이며, 적힌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 ?" 그들은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2:16 그들이 가져오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초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 그들이 예수께 말하기를 "가이사의 것입니다." 하니,
직역: 그래서 그들이 가져왔다. 이에 그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신다.이 화상과 새겨진 글이누구것이냐?
그들이 예수께 말했다 가이사의 것입니다.
12:16 οἱ δὲ ἤνεγκαν.
그 그래서 가져왔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καὶ λέγει αὐτοῖς·
이에 그가말씀하신다 그들에게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τίνος ἡ εἰκὼν αὕτη καὶ ἡ ἐπιγραφή;
누구의것이냐 그 화상(초상) 이것은 과 그 새겨진 글이냐?
οἱ δὲ εἶπαν αὐτῷ· Καίσαρος.
그들이 이에 말했다 그에게 가이사의것이니이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 가져왔거늘…뉘 것이냐. - 예수를 시험하려고 나아온 이들은 황제의 상이 새겨진 데나리온을 가지러 사람을 보낸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돈을 꺼내보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데나리온을 납세하는데 사용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일상생활에서 편의를 위해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실제로 황제를 군주로 인정한 것이 된다. 결국 이들은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다가 자신들의 부도덕성과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 한 흉계만을 폭로하는 결과를 낳았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12: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그들은 예수께 경탄하였다.
12: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 그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크게 놀랐다.
직역: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이사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그것들을 드려라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심히 놀랐다.
12:17 ὁ δὲ Ἰησοῦς εἶπεν αὐτοῖς·
그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에게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τὰ Καίσαρος ἀπόδοτε Καίσαρι
그 가이사의 바치라 가이사에게 (동사: 명령법 과거 능동태 2복)
καὶ τὰ τοῦ θεοῦ τῷ θεῷ.
그리고 그것들을 그 하나님의 그 하나님께
καὶ ἐξεθαύμαζον ἐπ᾽ αὐτῷ.
그래서 그들이심히놀랐다 대하여 그에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복)
주해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 이 말은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이 당시 민족주의자들이 생각했던 바와 같이 거부될 악행이 아니며, 동시에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일에 대해 열심을 보이지 않았던 헬라주의자의 태도 역시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터툴리안은 동전에 새겨진 가이사의 이미지는 가이사에게 바치고 너희에게 새겨진 하나님 자신의 이미지는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해석함으로써 이 두 가지가 병존할 수 있음을 드러내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국가 권력과 하나님이 서로 반목 관계가아님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바울과 베드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성도가 세상의 권세자에게 취할 태도를 명쾌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국가 권력이 서로 충돌할 경우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권력은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섭리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비록 국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역사 안에 포함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절의 예수의 말씀은 가이사의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가이사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되기 때문에 가이사에게 대한 의무도 있다는 것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마 22장 자료노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를 보다 참조하라.
▣ 기이히 여기더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세다우마존'은 '놀라다', '감탄하다'의 뜻을 지닌 말로서 예수의 대답이 그들이 전혀 예측치 못했던 바이며 너무나 완벽해서 그를 책잡으려 하던 자들까지 감탄하며 놀라는 것을 묘사한 표현이다. 병행 구절인 눅 20:26에서는 그 결과 '참람케 됨'을, 마 22:22에서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예수를 떠나감'이 묘사되어 있다.
18-27절 [부활 후 결혼에 대한 논쟁]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18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12: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12:18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말하였다.
직역: 또 부활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들은 말한다. 사두개인들이 예수에게로 온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기를 묻고 있었다.
12:18 Καὶ ἔρχονται Σαδδουκαῖοι πρὸς αὐτόν,
또 그들이 온다 사두개인들이 에게로 그를 (동사: 직설법 현재 중수디 3복)
οἵτινες λέγουσιν ἀνάστασιν μὴ εἶναι, (부정사: 현재 능동태)
그들은 그들이 말한다 부활을 아니라고 있는것이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복)
καὶ ἐπηρώτων αὐτὸν λέγοντες·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그리고 묻고 있었다 그에게 말하기를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복)
주해
▣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 이들은 당시 유대인의 세 종파, 즉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센파 중의 하나로서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성격이 더 뚜렷했다. 이들은 다윗과 솔로몬 당시의 대제사장인 사독을 직계 조상이라 생각하며 계속 세습적인 제사장직을 수행하여 왔던 바 민중들과는 구분되는 귀족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특히 대제사장과 주요 사제는 거의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매우 폐쇄적이고 배타적이었기 때문에 민중들과는 단절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모세 오경에만 정경적 권위를 부여 하므로 인해 오경 이외의 성문 율법에 기초한 바리새파의 교리와 특히 구전 율법은 철저히 배격하였다.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도 없고 내세의 기쁨이나 슬픔까지도 없다. 주장함으로써 죽은 자와 하나님과의 관련성을 제거해 버렸고 그와 함께 천사나 악마의 존재도 부정하였다. 결국 이들은 운명이라는 것을 모두 말소시키고 만사를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의 탓으로 돌려 버린 인간 중심적인 현실주의자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신약 총론, '신약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보다 참조하라. 이러한 사두개인들이 자기의 입장과 대조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와의 설전에서 패배하자 자신의 논리로 예수를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 예수께 나아왔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19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12:19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만 남겨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여자를 맞아들여서, 그의 형에게 뒤를 이을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12:19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기록해 주기를 '만일 어떤 이의 형이 죽어 아내를 남기고 자식이 없으면, 그 동생이 그 형수를 취하여 자기 형의 대를 이어 주어야 한다.' 라고 하였습니다.
직역: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기록하였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죽어 아내를 남겨두고 자식을 남겨두지 않았으면 그의 동생이 아내를 취하게 된다면 취하여 그 형을 위하여 씨를 일으키게 된다면 자식을 낳아주어야 합니까?
12:19 διδάσκαλε, Μωϋσῆς ἔγραψεν ἡμῖν
선생님이여 모세가 기록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ὅτι ἐάν τινος ἀδελφὸς ἀποθάνῃ
때문에 만일 어떤사람의 형이 죽게 된다면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καταλίπῃ γυναῖκα
그런데 남겨두고 아내를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μὴ ἀφῇ τέκνον,
그러나 않았으면 남겨두지 자식을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3단)
ἵνα λάβῃ ὁ ἀδελφὸς αὐτοῦ τὴν γυναῖκα
위하여 취하게된다면 그 동생이 그의 그 아내를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ἐξαναστήσῃ σπέρμα τῷ ἀδελφῷ αὐτοῦ.
그래서 일으키게되면 씨를 그 형에게 그의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 이들은 바리새인들이나 헤롯당들이 그랬듯이 예수를 존경하는 마음도 없으면서 마치 그를 존경하듯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예수께 나아왔다. 그리고 그들이 구약 가운데 유일하게 신빙성을 부여하는 모세 오경 가운데 기록된 모세의 계대 결혼법(신 25:5,6)을 예로 들어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였다. 여기서 '계대 결혼법'이란 사람이 자식을 낳지 않고 죽을 경우 그의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형을 위해 자식을 낳아주는 제도로 '수혼'(婚) 혹은 '형사취수'(兄死取嫂)라고도 불리운다. 이러한 제도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앗시리아, 힛타이트와 가나안 국가에도 있었는데 이들 나라는 혈통 유지의 의미만 있었지만 이스라엘의 경우는 선택받은 하나님 백성이 남편이 죽으므로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의지할 데 없는 과부에게 자식을 남겨 부양케 함은 물론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케 하여 가문과 기업을 유지케 하기 위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20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12:20 형제가 일곱 있었습니다. 그런데, 맏이가 아내를 얻었는데, 죽을 때에 자식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12:20 형제 일곱이 있었는데, 첫째가 아내를 취하였으나 후손이 없이 죽고,
직역: 칠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 그러나 씨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을 때
12:20 ἑπτὰ ἀδελφοὶ ἦσαν·
칠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복)
καὶ ὁ πρῶτος ἔλαβεν γυναῖκα
그런데 그 맏이 취하였다 아내를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ἀποθνῄσκων οὐκ ἀφῆκεν σπέρμα·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그러나 죽을 때 못하였다 남기지 씨를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주해 20-22절
▣ 칠형제가 있었는데 …여자도 죽었나이다. - 이와 같은 질문은 사두개인들이 부활 교리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던 불합리성을 지적하므로 인해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고, 또한 그들과 대립하던 바리새인까지 제압하려는 속셈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기는데 아마도 이 이야기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는 이들과의 논쟁을 위하여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유치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말이 타당성이 있다. 왜냐하면 계대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비록 비도덕적인 것이긴 하지만 자식 없는 남편의 계속적인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여자에게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었으므로 그 결혼을 거부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창 38:6-10) 7명이 모두 결혼하고 죽었다는 것은 이해키 어렵기 때문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21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12:21 그리하여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는데, 그도 또한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12:21 둘째가 그 여자를 취하였으나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으며, 셋째도 그러하고,
직역: 또 둘째가 그 여자를 취하였다 그러나 씨를 남겨 두지 못하고 죽었다. 또 셋째도 그렇게 하여
12:21 καὶ ὁ δεύτερος ἔλαβεν αὐτὴν
또 그 둘째도 취하였다 그여자를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ἀπέθανεν μὴ καταλιπὼν σπέρμα·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단수)
그러나 죽었다 못하고 남겨두지 씨를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ὁ τρίτος ὡσαύτως·
또 그 셋째도 그렇게 하여
주해 20-22절
▣ 칠형제가 있었는데 …여자도 죽었나이다. - 이와 같은 질문은 사두개인들이 부활 교리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던 불합리성을 지적하므로 인해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고, 또한 그들과 대립하던 바리새인까지 제압하려는 속셈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기는데 아마도 이 이야기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는 이들과의 논쟁을 위하여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유치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말이 타당성이 있다. 왜냐하면 계대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비록 비도덕적인 것이긴 하지만 자식 없는 남편의 계속적인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여자에게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었으므로 그 결혼을 거부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창 38:6-10) 7명이 모두 결혼하고 죽었다는 것은 이해키 어렵기 때문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22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12:22 일곱이 모두 자식을 두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12:22 그렇게 일곱이 다 후손을 남기지 못하였으며 마지막으로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직역: 그래서 그녀를 일곱이 취하였으나 그들 일곱이 씨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역시 그 여자도 마지막에 모두 죽었습니다.
12:22 καὶ οἱ ἑπτὰ οὐκ ἀφῆκαν σπέρμα.
그래서 그 일곱이 않았습니다 남기지 씨를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ἔσχατον πάντων καὶ ἡ γυνὴ ἀπέθανεν.
마지막을 모두 역시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20-22절
▣ 칠형제가 있었는데 …여자도 죽었나이다. - 이와 같은 질문은 사두개인들이 부활 교리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던 불합리성을 지적하므로 인해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고, 또한 그들과 대립하던 바리새인까지 제압하려는 속셈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기는데 아마도 이 이야기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는 이들과의 논쟁을 위하여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유치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말이 타당성이 있다. 왜냐하면 계대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비록 비도덕적인 것이긴 하지만 자식 없는 남편의 계속적인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여자에게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었으므로 그 결혼을 거부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창 38:6-10) 7명이 모두 결혼하고 죽었다는 것은 이해키 어렵기 때문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23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12:23 그들이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모두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12:23 그들이 부활하여 다시 살아나는 때에는 일곱이 그 여자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그 여자가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직역: 그들이 다시 살아날 때에 부활 중에 그들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일곱이 그녀의 아내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12:23 ἐν τῇ ἀναστάσει [ὅταν ἀναστῶσιν]
중에 그 부활 때에 그들이- 다시살아날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3복)
τίνος αὐτῶν ἔσται γυνή;
누구의 그들 중의 될것입니까? 아내가 (동사: 직설법 미래 중간태/디 3단)
οἱ γὰρ ἑπτὰ ἔσχον αὐτὴν γυναῖκα.
그 왜냐하면 일곱이 삼았음이니라 그녀를 아내로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주해
▣ 부활을 당하여…뉘 아내가 되리이까. - 이러한 난해한 질문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부활 사상을 깨뜨리기 위한 사두개인들의 비장의 무기였던 것 같다. 즉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수혼 제도는 부활 이후 가족제도의 혼란을 야기하므로 모세의 심중에는 이미 부활 사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이 제기한 질문의 경우 첫 번째 결혼한 형이 부활 이후에도 남편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들의 이와 같은 곡해는 부활한 자들 역시 지상에서와 같은 생활을 계속할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12: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12: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오해하는 것이 아니냐?
직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고 있지 못하여 잘못된 것이 아니냐?
12:24 Ἔφη αὐτοῖς ὁ Ἰησοῦς·
말씀하셨다 그들에게 그 예수께서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οὐ διὰ τοῦτο πλανᾶσθε μὴ εἰδότες (분사: 완료 능동태 주격 2복)
아니하냐 때문에 이 잘못된 것이 못하여서 알고있지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2복)
τὰς γραφὰς μηδὲ τὴν δύναμιν τοῦ θεοῦ;
그 성경을 도모르고 그 능력 그 하나님의
주해
▣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 예수께서는 현세와 내세 간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현세를 기준으로 내세를 규정하는 사두개인들의 그릇된 부활관을 두 가지 측면에서 꾸짖으셨다. 첫째는 성경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 즉 구약 성경, 여러 곳에서 부활에 관한 교훈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을 간과할 뿐 아니라 오경 가운데서도 출 3:6 등에는 부활사상이 암시되어 있으나 오경의 문자적인 해석만을 고집하는 까닭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를 알지도 못하고 더 나아가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했다. 즉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인간과 천지를 창조하셨던 것처럼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음을 알지 못했다. 이처럼 그들은 내세를 현세와 혼동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의 사고 안에 제한시키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 오해함이 아니냐. - 여기서 '오해함'(플라나스데)은 '길을 잃다', '방황하다'란 뜻을 갖고 있다. 이는 마치 목자의 말을 듣지 않음으로 길을 잃어버린 양과 같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 말은 궤도를 이탈하여 떠돌아다니는 별, 곧 유성(遊星)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처럼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성경을 알지 못함으로 인해 갈 바를 알지 못하여 유리하게 되는 비극적인 상태에 처하여 있음을 예수께서 바로 지적하신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12:25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
12:25 그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할 때에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않으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을 것이다.
직역: 왜냐하면 사람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이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안간다.
다만 하늘들 안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있음이라
12:25 ὅταν γὰρ ἐκ νεκρῶν ἀναστῶσιν
때에 왜냐하면 가운데서 죽은자들 그들이 살아날 (동사: 가정법 현재 능동태 3복)
οὔτε γαμοῦσιν οὔτε γαμίζονται,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3복)
도-안간다 장가도 안간다 시집도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복)
ἀλλ᾽ εἰσὶν ὡς ἄγγελοι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다만 있음이라 같이 천사들과 안에있는 그 하늘들에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복)
주해
▣ 살아날 때…천사들과 같으니라. - 예수님의 답변은 내세가 있음을 전제한 후 현세와 내세와의 명백한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즉 현세에서 사람들은 결혼을 통하여 한 가정을 이루고 그 속에서 참삶의 의미를 느끼고 자손의 번성을 꾀한다. 그러나 내세에는 부활한 성도들 간에 큰 기쁨이 항상 존재하고 온 인격들이 한 가정의 형제와 같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것과 자손을 퍼뜨리는 일 등은 필요치 않다. 따라서 그곳은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또는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예속되지 않으며 부활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수가 고정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로 볼 때 그들이 인정하는 모세 오경에서 천사들의 존재를 분명히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의 존재를 부인한 것은 예수의 지적처럼 사두개인들이 성경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성실치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예수께서는 부활한 몸이 천사가 아니라 천사와 같이 된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천사가 순수한 영적 존재임에 반해 내세의 성도는 부활한 육체를 입고 있음을 반영한다. 우리는 그 상태가 어떠할지에 대해 잘 알 수는 없으나 태어나고 죽음이 없는 모습을 가질 것은 분명하다. 아마 이는 '지상에서 생명이 갖는 모든 결함을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일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26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하였느냐
12:26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는 일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떨기나무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느냐 ?
12:26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일에 관하여 너희가 모세의 책 중에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구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지 못하였느냐?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셨으니,
직역: 그러나 죽은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에 관해서 너희가 그 책 안에서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모세가 가시나무 떨기 위에서 그에게 어떻게 말씀하였는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12:26 περὶ δὲ τῶν νεκρῶν
관해서는 그러나 그 죽은자들에
ὅτι ἐγείρονται οὐκ ἀνέγνωτε ἐν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2복)
것을 그들이 살아난다는 못하였느냐 너희가읽어보지 안에서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3복)
τῇ βίβλῳ Μωϋσέως ἐπὶ τοῦ βάτου πῶς εἶπεν αὐτῷ
그 책에 모세의 위에서 그 가시나무떨기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그에게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ὁ θεὸς λέγων·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ἐγὼ ὁ θεὸς Ἀβραὰμ καὶ [ὁ] θεὸς Ἰσαὰκ καὶ [ὁ] θεὸς Ἰακώβ;
나는 그 하나님의 아브라함 과 그 하나님 이삭 과 그 하나님이라 야곱의
주해
▣ 모세의 책 중. - 예수께서는 성경을 오해한 사두개인들의 오류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계신다. 여기 언급된 모세의 책은 사두개인들이 유일하게 정경으로 인정하는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모세 오경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들은 오경의 일부인 신 25:5, 6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부활이 없음을 논증하며 예수를 시험하였으나 오히려 예수께서는 모세 오경에 있는 부활의 증거를 역으로 제시하고 계신다.
▣ 가시나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 이는 출 3:1-6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모세에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즉 예수께서는 이 내용을 말씀하시므로 인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이미 육신적으로는 죽었으나 그 존재가 완전히 무(無)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27절), 족장들이 현재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강하게 보여 준다. . 한편 본절에서 마가는 생략하고 있으나 마태는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낼 때 현재형 동사 '나는...이다'를 사용함으로써 모세에게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그 시점에도 그들이 살아있었음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12:27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생각을 크게 잘못하고 있다."
12:27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하나님이시다. 너희가 크게 오해하고 있구나."
직역: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이다. 다만 산자들의 하나님이시다.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다.
12:27 οὐκ ἔστιν θεὸς νεκρῶν
아니 이다 하나님이 죽은자들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ἀλλὰ ζώντων·
다만 산 자들의 (분사: 현재 능동태 소유격 복수)
πολὺ πλανᾶσθε.
크게 너희가 오해하였다.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생존하는 자들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과 더불어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리고 육신적으로 이미 죽었던 이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은 또한 부활의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처럼 생명의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자는 비록 육신은 죽는다 할지라도 그 영혼은 계속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며 결국 마지막 날에 육체까지 부활함으로써 완전한 부활을 체험하게 된다. 한편 구약에는 부활에 대한 암시가 많은 반면에, 신약에는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과 사건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즉 예수께서 친히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셨고, 친히 죽으셨을 뿐 아니라 친히 다시 사심으로 부활의 주인이심을 보여 주셨다, 더욱이 예수께서는 이 세상 끝 날에 모든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 심판하시는데 불신자도 부활하여 영원한 징벌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으며,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될 것이라고 하였다. . 그런데 이 부활의 시기에 관하여서 성경은 일반적으로 주의 재림시라고 언급한다.
▣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 문자적으로 '너희가 크게 자신을 속이고 있도다'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것은 부활이 없음을 주장하려던 사두개인들의 주장이 그들의 논리의 근거로 삼는 모세 오경과도 모순됨을 증거함으로써 전혀 정당성이 없으며 성경 또한 크게 잘못 알고 있음을 책망하시는 말씀이다. 한편 이와 병행 구절인 눅 20:39,40에는 바리새인으로 추정되는 서기관들이 이 말을 듣고 찬성의 뜻을 표했으며 사두개인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하고 잠잠할 수밖에 없었음이, 그리고 마 22:33에서는 이를 듣는 무리들이 놀랐음을 기록함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이 갖는 신적 권위를 보여 준다.
28- 34절 [제 1계명 논쟁]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12:28 율법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다가와서,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서, 예수게 물었다.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을 어느 것입니까?"
12:28 서기관들 중 하나가 와서 그들이 서로 논의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께서 그들에게 잘 대답하시는 것을 보고 묻기를 "모든 계명들 중에서 첫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니,
직역: 서기관 중의 한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들이 논쟁하는 것을 들은 후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잘 알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모든 계명들 중에 첫째가 무슨 계명이니이까?
12:28 Καὶ προσελθὼν εἷς τῶν γραμματέων ἀκούσας αὐτῶν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단수)
그리고 가까이 와서 한사람이 그 서기관들 중의 들은 후에 그들의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단수)
συζητούντων, ἰδὼν ὅτι καλῶς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논쟁하는 알고있는 것을 잘 (분사: 현재 능동태 소유격 복수)
ἀπεκρίθη αὐτοῖς ἐπηρώτησεν αὐτόν·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그가대답하셨다 그들에게 물었다 그를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디 3단)
ποία ἐστὶν ἐντολὴ πρώτη πάντων;
무슨 이니까 계명 첫째가 모든것들 중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서기관. - '서기관'(그람마테이스)은 '글을 옮겨 적는 자'란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성경을 필사(筆寫)하는 자였으나 점차 성경을 능숙하게 해석할 수 있는 전문가로 대접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랍비' 혹은 '율법사'(마 22:35), '교법사'(눅 5:17)로도 불리워진다.
▣ 변론하는 것을 듣고‥‥예수께‥‥나아와. - 평소 율법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서기관이 예수의 탁월한 지혜에 감탄하여 자신의 의문점을 묻고 있다. 이처럼 당시 교권주의자들이 예수를 적대시했던 반면 이 서기관은 선의(善意)로써 진지한 자세를 가지고 예수께 질문했기 때문에 좋은 해결책을 찾았을 뿐 아니라 칭찬을 받게 된다.
▣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 의식적인 신앙을 가졌던 당시 유대인에게는 인간 몸을 이루는 지체의 수효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248개의 행하기를 촉구하는 적극적인 명령과 일년을 의미하는 365개의 행하지 말라는 소극적인 금지령이 있었다. 한편 여기서 '첫째'(프로토스)는 시간적으로 첫 번째를 의미할 뿐 아니라 지위나 계급에 있어서도 으뜸 됨을 가리킨다. 당시 율법의 전문가들 사이에는 이 율법 중에 어느 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첫 계명을 제물과 희생에 관한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레위기에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예배는 적절하고 온전한 제물에 달려 있다고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12: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12: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들어라, 이스라엘아. 주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님이시니,
직역: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인 것은 이것이다. 들어라 이스라엘아 주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님이시다.
12:29 ἀπεκρίθη ὁ Ἰησοῦς ὅτι πρώτη ἐστίν·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대답하셨다 그 예수께서 것을 첫째인 이것-이라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디 3단)
ἄκουε, Ἰσραήλ,
들어라 이스라엘아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2단)
κύριος ὁ θεὸς ἡμῶν κύριος εἷς ἐστιν,
주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님 유일한 분 이시다.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이스라엘아 들으라. - 본절은 신 6:4의 첫 부분과 동일한데 이것은 여호와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는 이스라엘의 '신앙 신조'인 '쉐마'의 구절이다. 이 쉐마는 유대인들은 이것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암송하고, 또 그것을 양피자에 써서 작게 접은 후 통에 넣어 팔이나 이마에 착용함으로써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임을 고백하고 자신이 선택받은 민족임을 나타내는데 사용하였다.
▣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 이 말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규정한 십계명 중 제1계명에 해당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일하시며 절대자시고, 오직 유일한 주(主) 하나님이시라는 이러한 고백은 유대인 종교의 출발점임과 동시에 기독교의 유일성을 보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본문은 이러한 유일한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없는 분이 아니라 바로 '우리 하나님'임을 밝힘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계속 개입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심을 보여준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직역: 네 온 마음을 다하여, 네 온 목숨을 향하여 , 네 온 뜻을 의하여 , 네 온 힘을 인하여 , 주 네 하나님을 너는 사랑하라.
12:30 καὶ ἀγαπήσεις κύριον τὸν θεόν σου
그리고 너는 사랑하라 주 그 하나님을 네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2단)
ἐξ ὅλης τῆς καρδίας σου
다하여 온 그 마음을 네
καὶ ἐξ ὅλης τῆς ψυχῆς σου
그리고 인하여 온 그 목숨을 네
καὶ ἐξ ὅλης τῆς διανοίας σου
그리고 인하여 온 그 뜻을 네
καὶ ἐξ ὅλης τῆς ἰσχύος σου.
그리고 인하여 온 그 힘 네
주해
▣ 마음. - 성경적 개념으로 마음은 존재와 인격의 중심이다. 즉 지 ․ 정 ․의를 포괄한 인간의 전반적인 정신적 기능의 좌소(座所)이며 동시에 종교심이 깃드는 곳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본절에 나오는 헬라어 '마음'(카르디아)은 뒤이어 언급된 '목숨'의 의미를 포함하며 '뜻'과 '힘'이 발생하는 근원으로서의 의미도 지닌다.
▣ 목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케'는 일차적으로 생명을 의미하나, 보다 근원적으로는 생명력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따라서 본절에서의 의미는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생명조차 포기하는 것과 아울러 활기차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것도 포괄하는 의미를 지닌다.
▣ 뜻.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노이아'는 인간 지성의 중심일 뿐 아니라 기질과 마음가짐의 중심이다. 따라서 본문은 맹목적이고 무지한 맹종으로서가 아니라 명석한 이해력과 전인적인 통찰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한편 예수 교훈의 근거가 되는 신 6:5의 히브리 본문에서는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히브리 본문의 문맥 속에서는 뜻과 마음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실제적 행동에 앞서 마음 속의 뜻이 보다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를 첨부시켜 사용한 것 같다.
▣ 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스퀴오스'는 인간의 영적. 육체적 활동력 모두를 포함한 전인적인 역량을 나타내는 말이다.
▣ 사랑하라. - 이 말이 원문에는 명령형이 아니라 2인칭 단수미래형으로 나와 있다( 아가페세이스). 그러나 이러한 미래적인 표현이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명령문이나 당연히 준수해야 함을 강조하는 법조문에 쓰인다는 점에서 결국 이 모든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모든 '능력'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한편 본절에서는 '다하고‥‥다하고‥‥다하고‥‥다하고'라는 말이 중복하여 쓰였다는 점에 유의해 보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대하여 내키지 않는 태도로 응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주심으로 자기 자신을 주셨는데 이보다 더 놀라운 자기희생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크신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는 인간 역시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12: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12:31 또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이것들보다 더 큰 다른 계명은 없다."
직역: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너는 사랑하라 이것들 보다 더 큰 다른 계명은 있지 아니하다.
12:31 δευτέρα αὕτη·
둘째는 이것이니
ἀγαπήσεις τὸν πλησίον σου ὡς σεαυτόν.
너는 사랑하라 그 이웃을 네 같이 너 자신과 (동사: 직설법 미래 능동태 2단)
μείζων τούτων ἄλλη ἐντολὴ οὐκ ἔστιν.
보다 더 큰 이것들 다른 계명은 아니하다 있지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예수님은 계명 중 첫째가 무엇이냐는 서기관의 질문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대답하셨는데 첫째는 이미 앞 구절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하나님에 대한 피조물의 태도이며, 둘째는 본절에서 설명하는 바 피조물인 인간들 상호간의 관계에 대한 교훈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다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곧 사랑이다. 그러나 그 사랑의 출발점이 하나님에 대한 전적 사랑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본절은 이웃에 대한 사랑은 사랑의 출발점인 하나님 사랑이란 신앙적 차원의 문제가 인간 사랑이란 실천적 차원으로 옮겨져서 율법의 완성을 이룸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레위기에서는 이웃의 범위가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외국인까지 국한되지만, 예수가 말한 이웃은 눅 10:29-37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와 같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까지 그 대상의 영역이 확대된다. 이것으로써 예수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온전한 사랑의 연합이 율법의 완성임을 제시하셨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안에서 이웃을 사랑해야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 계명이 구약에 언급된 모든 계명의 요약임을 말해준다. 한편 이와 병행 구절인 마 22:40에서는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로 나와 있다.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전체를 가리키므로 결국 30,31절의 이중 계명이 모든 구약 교훈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12:32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밖에 다른 이는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은 옳습니다.
12:32 서기관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옳습니다. 선생님께서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라고 올바르게 말씀하셨습니다.
직역: 그러자 서기관이 예수님께 말했다. 선생님이여 옳습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그외에 다른이가 있지 아니하다 라고 당신이 참 이라고 말씀 하셨나이다.
12:32 Καὶ εἶπεν αὐτῷ ὁ γραμματεύς·
그러자 말했다 그에게 그 서기관이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λῶς, διδάσκαλε,
옳소이다 선생님이여
ἐπ᾽ ἀληθείας εἶπες ὅτι εἷς ἐστιν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대하여 참에 당신이 말씀하셨나이다 것을 한분 이시요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αὶ οὐκ ἔστιν ἄλλος πλὴν αὐτοῦ·
그리고 아니하는 있지 다른이가 외에(밖에) 그분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 '옳소이다'(칼로스)라는 말은 28절에서 서기관이 예수에 대한 판단 근거인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에서 '잘하신'과 동일한 말로서 이는 '좋습니다' 또는 '훌륭합니다'로 대치될 수 있다. 서기관은 예수의 답변에 대하여 처음 나아올 때 예상했던 결과를 얻었음으로 인해 매우 흡족해 한 것이다. 즉 그는 그 당시 많이 주장되었던 예물에 대한 계명보다 사랑이 우선임을 주장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인정한 것이다.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하여 예수는 29절에서 신 4:35를 인용한 반면, 이 서기관은 신 4:35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독특성을 자기 나름대로 인정하고 있다. 한편 본절에서 서기관이 신 6:4 히브리어 본문에 나오는 '여호와'라는 칭호를 삭제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으려는 유대인들의 경건한 전통에서 기인한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낫습니다."
12:33 또한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 이 모든 번제와 제사보다 낫습니다."
직역: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나음이라.
12:33 καὶ τὸ ἀγαπᾶν αὐτὸν ἐξ ὅλης τῆς καρδίας
그리고 그 사랑하는것 그를 의하여 온 그 마음을 (부정사: 현재 능동태 주격)
καὶ ἐξ ὅλης τῆς συνέσεως
그리고 의하여 온 그 지혜를
καὶ ἐξ ὅλης τῆς ἰσχύος
그리고 의하여 온 그 힘을
καὶ τὸ ἀγαπᾶν τὸν πλησίον ὡς ἑαυτὸν
그리고 그 사랑하는것이 그 이웃을 같이 그 자신과 (부정사: 현재 능동태 주격)
περισσότερόν ἐστιν πάντων τῶν
더 나음 (보다) 이라 모든 그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ὁλοκαυτωμάτων καὶ θυσιῶν.
전체 번재들 제물들
주해
▣ 마음을 다하고‥‥제물보다 나으니이다. - 서기관은 예수의 가르침에 전적인 동의를 표하고(32절) 나서 예수께서 방금 말씀하신 것을 반복하므로써 그 뜻을 다시 되새기고 있다. 그런데 그는 '목숨'과 '뜻'이라는 말을 '지혜'라는 말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하는 바는 예수의 말씀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일치한다. 그는 또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되는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신 계명이 근원적인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을, 이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구약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상기함으로써 확인하고 있다. 한편 진리에 대한 서기관의 이런 태도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준다. 즉 그는 율법에 대하여 맡은 사람을 가르치는 서기관의 지위에 있었으나 진리 앞에서는 자신의 지위나 명예 또는 체면도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인용한 '번제물'은 모두를 불로 태워서 바치는 제물을 의미하고. '기타 제물'은 모두 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과 경배자가 제물의 일부를 분배하여 가지는 일반적인 제물을 의미하는 것 같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2:34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그 뒤에는 감히 예수께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12:34 예수께서 그가 지혜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시니, 아무도 감히 예수께 더 이상묻지 못하였다.
직역: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가 지각있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부터
멀리 있지 않도다." 그리고 아무도 예수님께 감히 더 이상 묻는것을 못하고 있었다.
12:34 καὶ ὁ Ἰησοῦς ἰδὼν [αὐτὸν]
그러자 그 예수께서 보시고 그를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단수)
ὅτι νουνεχῶς ἀπεκρίθη εἶπεν αὐτῷ·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것을 지각있게 대답하는 말씀하셨다 그에게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디 3단)
οὐ μακρὰν εἶ ἀπὸ τῆς βασιλείας τοῦ θεοῦ.
않도다 멀리 너는있지 부터 그 나라로 그 하나님의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2단)
Καὶ οὐδεὶς οὐκέτι ἐτόλμα αὐτὸν ἐπερωτῆσαι. (부정사: 과거 능동태)
그리고 아무도 더이상못하고있었다 감히하지 그를 묻는 것을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단)
주해
▣ 지혜 있는 대답함을 보시고. - 서기관의 대답에 대한 예수의 평가 역시 매우 긍정적이다. 여기서 '지혜 있게'(누네코스)란 '이해력', '지성'을 의미하는 '누스'와 '소유하다'를 의미하는 '에코'의 합성어로서 '사려 깊고', '슬기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즉 이 말은 예수께서 서기관의 말이 입에 발린 외식적인 말이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한 결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영적으로 슬기로운 대답을 하였음을 인정한 것이다.
▣ 하나님의 나라가 멀지 않도다. - '멀지 않도다'는 '아주 가까운'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은 벌써 그 서기관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했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를 완전히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서기관은 당시 대부분의 교권주의자들이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전면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음에 비해 진리의 핵심을 알고 있었으므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은 많은 적대자들과의 논쟁이 있었다. 특히 공적 선교의 마지막 날인 고난 주간 화요일에는 성전 뜰에서 산헤드린 공회원, 바리새인과 헤롯당원, 사두개인등과 더불어 장시간 논쟁을 벌이셨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들의 도전을 모두 물리 치셨다. 즉 예수를 올무에 빠뜨리기 위해 나왔던 무리들이 오히려 자신들이 비 진리에 속해 있음을 입증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논쟁을 야기함으로써 예수를 시험하려는 자는 없게 되었다. 또한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란 말은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지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35-37 [메시야 신분 논쟁]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12: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이렇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느냐?
12: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서기관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직역: 그리고 예수께서 대답하여 성전 안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떻게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12:35 Καὶ ἀποκριθεὶς ὁ Ἰησοῦς
그리고 대답하여 그 예수께서 (분사: 과거 수동태/디 주격 단수)
ἔλεγεν διδάσκων ἐν τῷ ἱερῷ·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말씀하셨다 가르치시며 안에서 그 성전에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단)
πῶς λέγουσιν οἱ γραμματεῖς
어떻게 말하느뇨 그 서기관들이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복)
ὅτι ὁ χριστὸς υἱὸς Δαυίδ ἐστιν;
것을 그 그리스도께서 자손 다윗의 이라는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성전에서 가르치실 새 대답하여 가라사대. - 가르침의 대상이 본절의 병행구인 마 22:41에는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 눅 20:41에서는 '저희에게'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성전 안에서 여러 백성에게 가르치셨고 여기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대답하여'란 어떤 사람이 제기한 질문에 대답을 주셨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의 교훈 듣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욕구에 부응하여 가르침을 베푸시는 상황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 예수는 자신이 메시야되심을 나타내기 위해 당시 유대인들의 공통된 생각인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구약 성경에 계속 예언되어 온 것으로,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때 무리들이 외친 '찬송하리로다‥‥다윗의 나라여'라는 환호성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36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12:36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친히 이렇게 말하였다.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12:36 다윗 자신이 성령 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받침대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고하였다.
직역: 친히 다윗이 말하였다 거룩한 영 안에서 말씀하기를 주께서 나의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원수들을 두발 아래에 두려고 할때 까지 나의 오른편에 앉으라.
12:36 αὐτὸς Δαυὶδ εἶπεν ἐν τῷ πνεύματι τῷ ἁγίῳ·
친히 다윗이 말하였다 안에세 그 영 그 거룩한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εἶπεν κύριος τῷ κυρίῳ μου·
말씀하셨다 주께서 그 주께 나의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κάθου ἐκ δεξιῶν μου,
앉으라 에서 오른편 나의 (동사: 명령법 현재 중수디 2단)
ἕως ἂν θῶ τοὺς ἐχθρούς σου
때까지 든 내가 두려고할 그 원수들을 너의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1단)
ὑποκάτω τῶν ποδῶν σου.
아래에 그 두발의 너의
주해
▣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 본절 이하의 내용이 다윗이 저작한 시편에 나오는 말씀임이 밝혀져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윗보다 더 근원적인 출처를 성령으로 밝힌다. 즉 성령이 다윗을 감동시키시므로 이 시편을 서술했다는 것이다. 이로 볼 때 성경의 제 1저자는 성령이며, 제 2저자는 성령에 감동받은 인간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성경말씀의 근거를 성령 하나님에게 둘 때 성경의 참다운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 다윗이 지은 원래 시에는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로 나와 있다. 따라서 히브리 본문의 '여호와'가 여기서는 '주'로 나와 있다는 차이점을 지닌다. 이러한 불일치는 히브리인들이 여호와라는 이름을 직접 입으로 말하는 것을 불경하다고 생각하여 의도적으로 '주'(主)라는 의미를 지닌 '아도나이'로 읽는 데서 기인한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을 헬라어로 옮긴 70인역에는 여호와란 이름 대신 '아도나이'의 헬라어 번역인 '퀴리오스'가 나오며 예수께서도 이를 인용하신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앞에 나오는 '주'는 성부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말하며 '내'는 시 110편의 저자인 다윗을, 그리고 뒤에 나오는 '주'는 열방의 심판자로 오실 메시야를 의미한다. 이처럼 다윗은 자기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에게도 성부 하나님께 붙인 호칭과 마찬가지인 '주'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존경의 뜻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 여기서 '네 원수'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구속사의 흐름을 역행하려는 사탄의 세력을 말한다. 또한 '발아래 둔다'란 표현은 고대 중근동에서 정복자가 정복지를 다스리던 통치자를 발아래 끌어 앉히거나 심할 경우 그 목을 밟음으로써 완전한 승리를 나타내었음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그리스도 역시 창 3:15에 나오는 말씀대로 사탄의 세력을 완전하게 패배시킬 것이다. 창 3장 자료노트, '원시 복음'을 참조. 이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사망의 권세를 이김으로 이미 성취되었고 재림하신 후 사탄의 세력을 무저갱에 가둠으로써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 내 우편에 앉았으라. - 그리스도께서 지상 사역을 마치신 후 승천하셔서 재림하실 그 날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사실은 예수의 예언에서는 물론 사도들의 증언에서도 여러 번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이처럼 본절은 유대인들이 이름 부르는 것조차 불경하다고 생각하는 성부 하나님과 메시야가 같은 신분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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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12:37 다윗 스스로가 그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많은 무리가 예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12:37 다윗 자신이 그를 주님이라고 불렀다면, 그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큰 무리가 그분의 말씀을 즐겁게 들었다.
직역: 친히 다윗이 말한다. 그를 주님 이라고 그런즉 어떻게 그가 다윗이 자손이 되는가? 그런데 많은 무리가 즐겁게 듣고 있었다.
12:37 αὐτὸς Δαυὶδ λέγει αὐτὸν κύριον,
친히 다윗이 말한다. 그를 주 이라고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καὶ πόθεν αὐτοῦ ἐστιν υἱός;
그런즉 어떻게 그의 그가되는가 자손이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Καὶ [ὁ] πολὺς ὄχλος ἤκουεν αὐτοῦ ἡδέως.
그런데 그 많은 무리가 듣고 있었다 그의 즐겁게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단)
주해
▣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 예수는 다윗이 메시야를 주로 선언한 것을 되풀이하면서 강조하고 있다. 더하여 '어찌 메시야가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면서 바리새인들에게 질문까지 하셨다. 여기서 '어찌'는 다윗의 주(主)인 동시에 다윗의 자손이 되시는 놀라운 이 말을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즉 예수께서는 자신이 육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이나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아들되심을 말함으로써 그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메시야관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의 적대자에게 말씀하시는 그 이면적인 뜻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너희는 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사람들의 숭배를 받아들이는 것을 가지고 나에게 흠을 잡으려 든다. 그러나 나는 가장 존귀한 의미에서의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를 배척하는 자는 다윗의 주를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직까지도 공개적으로 대적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언급하지 아니하셨다. 그 일은 조금 후에 하실 것이다.
▣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 예수의 주위에는 늘 많은 무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때때로 자신이 병 고침 받기를 원하거나 아니면 가까운 사람이 병 고침 받기를 원하여 예수께 나아 왔으며, 또 때로는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나아오기도 했다 이들은 당시 교권주의자들의 위선적이고 고압적인 가르침에 식상해 있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신선하고 권위 있는 가르침에 대해 큰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38-44 [바리새인 외식에 대한 논쟁]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12:38 예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예복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12:38 예수께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는 서기관들을 주의하여라. 그들은 긴 예복을 입고 다니는 것과, 장터에서 인사받는 것과,
직역: 예수께서 가르침 가운데 말씀하셨다. 서기관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옷을 입고 다니기를 원하고,
시장들 안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12:38 Καὶ ἐν τῇ διδαχῇ αὐτοῦ ἔλεγεν·
또 가운데 그 가르침 그의 말씀하고계셨다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단)
βλέπετε ἀπὸ τῶν γραμματέων
삼가라 부터 그 서기관들로 (동사: 명령법 현재 능동태 2복)
τῶν θελόντων ἐν στολαῖς περιπατεῖν (부정사: 현재 능동태)
그 원하는 으로 긴 옷들 다니는 것을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단수)
καὶ ἀσπασμοὺς ἐν ταῖς ἀγοραῖς
그리고 인사들 안에서 그 시장들에
주해
▣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 가르치는 장소는 여전히 성전 뜰이다. 그러나 병행 구절인 마 23:1에는 그 대상이 '무리와 제자들'로, 그리고 눅 20:45에는 '모든 백성이 들을 때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로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는 예수로부터 호된 책망을 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리를 떠난 이후인 것 같다.
▣ 긴 웃을 입고 다니는 것. - 지금까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중심으로 공격을 가했으나 본절에서부터 40절까지에서는 그들의 그릇된 행동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 가운데 첫 번째로 지적된 긴 옷 착용 문제는 당시 서기관들이 자신들의 경건을 나타내기 위해 외식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들은 흰 세마포 두루마기를 입고 화려한 옷술을 달며 팔과 이마에 성구를 넣은 경문을 크게 만들어 부착하고 다니면서 자신들의 경건을 과시하였다. 이와 관련해서는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가득했으며 경건의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질책을 받은 것이다.
▣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 - 여기서 '시장'은 단순히 상행위만 이루어지는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시장은 많은 사람이 모여 정치와 종교에 대한 논의를 하는 대중 집회의 장소이기도 했다. 당시 서기관들은 이와 같이 대중이 모이는 장소에 나아가 그들의 지위를 확인하는 것을 즐긴 것 같다. 아마 당시사람들은 서기관을 '랍비'(선생님)라 부르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경의를 표했을 것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12: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좋아한다.
12:39 회당에서 높은 곳에 앉고 잔치에서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원한다.
직역: 그리고 회당들에 높은 자리들을 안에 잔치들 중에 윗자리들을 앉기를 좋아한다
12:39 καὶ πρωτοκαθεδρίας ἐν ταῖς συναγωγαῖς
그리고 높은 자리들을 안에 그 회당들에
καὶ πρωτοκλισίας ἐν τοῖς δείπνοις,
또 윗자리들을 중에 그 잔치들
주해
▣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 회당은 당시 사람들의 종교 집회의 장소로서 기도와 성경 낭독 및 해석이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회당의 상좌'는 '율법'(토라)을 넣어두는 킬 앞에 위치한 자리로서 기도 인도자나 성경 낭독자가 앉는 자리였다. 이곳은 회중의 시선이 집중하는 곳이므로 이 자리에 앉는 것은 명예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당시 서기관은 이곳을 자신들을 위한 고정석과 같이 생각하며 이곳을 독점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드러내려했다. 또한 '잔치의 상석'은 출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잔치에 참석한 모든 사람을 한 눈에 블 수 있는 곳이었다. 원래 이곳은 잔치 배설자나 주빈 흑은 노령자가 앉는 곳이었으나 서기관들은 가장 주요 좌석인 이곳을 차지하여 자신의 명예를 과시하였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40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12: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12: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니, 이런 자들은 더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직역: 그들은 과부들의 집들을 삼키며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가식으로 기도한다. 이들은 더 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12:40 οἱ κατεσθίοντες τὰς οἰκίας τῶν χηρῶν
그(사람) 삼키며 그 집들을 그 과부들의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복수)
καὶ προφάσει μακρὰ προσευχόμενοι·
그리고 가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분사: 현재 중수디 주격 복수)
οὗτοι λήμψονται περισσότερον κρίμα.
이들은 받을 것이다 더 중한 심판을 (동사: 직설법 미래 중간태/디 3복)
주해
▣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 하나님께서는 객이나 고아, 과부들을 해롭게 하지 말고 보호하라고 하셨으며, 서기관들은 그들을 돌아보며 그들을 보살펴 줄 종교 지도자로서의 의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이용하여 약한 자들의 것을 착취하는데 온 생각을 집중시켰다. 이같은 착취의 방법으로는 과부들을 자신들의 관리 하에 두고 이들에게 적정선 이상의 헌금을 강요한다든가, 또는 과부들이 소유한 부동산 거래를 도와주면서 과부들보다 더 많은 몫을 가로챘다든가, 그들이 자발적으로 바친 물질적인 헌납으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점이다. 어떤 방법이 사용되었든지 간에 예수께서는 이들이 가장 극악한 죄인으로서 과부의 가산을 착취한 범죄를 비난하고 계신다.
▣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 종교 행위를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행하는 위선적 태도가 고발되고 있다. 즉 기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은밀한 대화이다. 그런데 그들은 기도를 자신의 경건함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외식'(프로파시스)은'거짓된 동기'를 가리키는 바 실제로는 악을 행하면서 이를 감추기 위해 남들이 보는 앞에서 큰소리로 길게 기도하는 거짓된 행동이 만연했음을 보여 준다.
▣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 종교 행위를 악행의 은폐 수단으로 사용하는 자는 타인에게 이중적인 범죄를 하는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을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큰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이중적 범죄라 함은 하나는 경제적 손실 등을 일으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악행으로 인해 종교에 혐오감을 느끼게 함을 의미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12:41 예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셔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고 계셨다. 많이 넣는 부자가 여럿 있었다.
12:41 예수께서 헌금함 맞은편에 앉으셔서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 보고 계셨는데, 많은 부자들이 많은 것을 넣고 있었다.
직역: 예수께서 연보궤의 맞은편 쪽에 앉은후에 무리가 어떻게 연보하는가 바라보고 계셨다.
동전을 연보궤 속으로 넣는것을 그런데 많은 부자들은 많은 것을 넣고 있었다.
12:41 Καὶ καθίσας κατέναντι τοῦ γαζοφυλακίου ἐθεώρει πῶς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단)
그리고 앉은 후에 맞은 편에서 그 연보궤의 바라보고계셨다 어떻게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단수)
ὁ ὄχλος βάλλει χαλκὸν εἰς τὸ γαζοφυλάκιον.
그 무리가 넣는 것을 동전을 속으로 그 연보궤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καὶ πολλοὶ πλούσιοι ἔβαλλον πολλά·
그런데 많은 부자들은 넣고 있었다 많은것을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복)
주해
▣ 연보궤에 대하여 앉으사. - 성전에서 연보궤는 유대인 남자와 여자만이 출입할 수 있었던 여인의 뜰에 놓여 있었다. 즉 이곳에는 놋쇠로 만든 13개의 연보궤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9개는 성전 세나 제물을 대신한 헌금을 바치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나머지 4개는 가난한 자를 돕는데 쓰일 재원 마련을 위해 설치되었다. 예수께서는 지금까지의 격렬한 논쟁과 가르치는 행동을 중단하시고 쉬시면서 헌금하는 광경을 면밀히 관찰하신 것 같다.
▣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 이때는 고난 주간 화요일로서 유월절 절기가 가까와짐에 따라 많은 순례 객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들었고 많은 '무리'(오클로스-'군중'이란 뜻)들이 헌금을 하였다. 한편 당시 헌금은 공개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여러 부자들이 헌금을 맡이 한 것과 다음절에 나오다시피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이란 헌금 액수가 밝혀지는 데서 알 수 있다. 이는 당시 연보궤 앞에는 헌금을 징수하는 제사장들이 있어 헌금 액수를 공개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여기서 '넣는데'(에발른)는 미완료형으로서 계속 던져 넣는 동작을 보여 주는데 이처럼 계속적으로 여러 번 던져 넣었기 때문에 많이 헌금함을 알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12: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은 와서, 렙돈 두 닢,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
12:42 그런데 한 가난한 과부가 와서 두 렙돈, 곧 한 코드란테스를 넣었다.
직역: 그러나 한 가난한 과부가 와서 두 렙돈을 넣었다 이것은 한고드란트 이다.
12:42 καὶ ἐλθοῦσα μία χήρα πτωχὴ ἔβαλεν λεπτὰ δύο,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그러나 와서 한 과부가 가난한 넣었다 렙돈을 두 (분사: 과거 능동태 주격 단수)
ὅ ἐστιν κοδράντης.
이것은 이다 한 고드란트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주해
▣ 가난한 과부는‥‥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 - 여기서 '가난한'이란 앞절의 '부자'와 대조를 이루는 계층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극빈자'를 의미한다. 한편 여기서 '렙돈'은 당시 팔레스틴에서 통용되던 헬라의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이다. 이는 로마화폐 단위로서 가장 작은 고드란트의 2분의 1에 해당하고, 이 고드란트는 참새 두 마리의 가격 정도가 되는 앗사리은의 4분의 1에 해당하며, 앗사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인 데나리온의 16분의 1에 해당한다. 따라서 한 고드란트는 노동자 1일 임금의 1/128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적은 돈이다. 한편 여기서 '고드란트'란 로마 화패 단위가 소개 되는 것은 본서 의 독자인 로마인들에 게 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이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들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12:43 예수께서 자신의 제자들을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니,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넣는 모든 이들보다 더 많이 넣었다.
직역: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다가 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연보궤에 돈을 넣은 모든 사람들 중에 이 가난한 과부가 연보궤 속으로 더 많이 넣었다.
12:43 καὶ προσκαλεσάμενος τοὺς μαθητὰς αὐτοῦ εἶπεν αὐτοῖς·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이에 가까이 불러다가 그 제자들을 그의 그가말씀하셨다 그들에게 (분사: 과거 중간태/디 주격 단수)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진실로 내가말한다. 너희에게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3단)
ὅτι ἡ χήρα αὕτη ἡ πτωχὴ πλεῖον πάντων
것을 그 과부는 이 그 가난한 더 많이 모든사람 중에
ἔβαλεν τῶν βαλλόντων εἰς τὸ γαζοφυλάκιον· (분사: 현재 능동태 소유격 복수)
넣었다 그(사람들) 넣고있는 속으로 그 연보궤에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주해
▣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 예수께서 보시기에 이 과부가 행한 일은 대단히 귀중한 일이었기에 제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하여 제자들을 불러 모으셨다. 그리고 '진실로...'라는 말씀으로 그의 가르침을 시작하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내용을 말씀하려하신다는 것과 이것을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셨다는 사실과도 잘 부합된다.
▣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 헌금의 총액에서는 이 과부의 돈이 부자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적지만 신앙적 가치에 있어서는 부자의 것보다 더 크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두 닢의 동전은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에 그 가치가 두 배로 불어난 달란트의 비유와 흡사하다'고 하기도 한다.
◆ 개역개정 번역본 ◆표준 새번역본 ◆ 바른성경 번역본 ◆ 직역
12: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12:44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12:44 그들 모두는 풍부한 가운데서 넣었으나 이 과부는 빈궁한 가운데서 자신의 모든 소유,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 라고 하셨다.
직역: 왜냐하면 모두 다 풍족한 중에서 그들은 넣었다 그러나 이과부는 궁핍한 중에서 그녀가 가진 것 만큼 모두것을
많은것을 그의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
12:44 πάντες γὰρ ἐκ τοῦ περισσεύοντος αὐτοῖς ἔβαλον,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복)
모두가 왜냐하면 중에서 그 풍족한 그들은 넣었다 (분사: 현재 능동태 소유격 단수)
αὕτη δὲ ἐκ τῆς ὑστερήσεως αὐτῆς
이과부가 그러나 중에서 그 궁핍한 자신이
πάντα ὅσα εἶχεν ἔβαλεν ὅλον τὸν βίον αὐτῆς.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3단)
모든것을 만큼많은 그녀가가진 넣었다 전부를 그 생활비 그의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3단)
주해
▣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 과부의 헌금이 부자의 헌금보다 많다고 표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유가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부자는 여유가 있는 중에 일부만을 헌금으로 바친 반면, 여인은 생활비 전부를 헌금으로 바쳤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활비'란 하루하루의 생계를 그날 노동한 대가로 지속하며 비축이 전혀 없는 노동자의 최저 생계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그녀의 생계를 유지시키는 아주 귀한 돈을 바친 것이 된다. 예수께서 이러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헌금은 그 양이 문제가 아니라 헌금을 바치는 자가 지닌 신앙의 진실성과 헌신으로 평가되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절대 양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것이 소유에 실린 삶의 무게가 어떠한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과부의 헌금은 자신의 모든 것, 즉 생존의 기본적인 것까지 아낌없는 마음으로 드리는 그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여인의 완전한 헌신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