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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교회의 구성원
1-10절, 은혜의 구원
[1절]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성도의 영혼은 과거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이었다. ‘허물과 죄’란 아담의 첫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원죄(原罪)와 이 원죄 때문에 각 사람이 실제로 범하는 자범죄(自犯罪)를 포함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경고하셨던 대로(창 2:16-17), 죄의 보응은 죽음이다(롬 6:23). 모든 사람은 영적으로는 죽은 자이었다. 그것은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죽은 영혼은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의와 선을 행하지 못한다.
[2절]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구원받기 전에 사람들은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 이 세상 풍속은 죄악된 풍속이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사탄이다. 사탄은 ‘이 세상 임금’(요 12:31), ‘이 세상 신’(고후 4:4) 등으로 표현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3-4에서,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어둡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했다. 사도 요한은 온 세상이 악한 자[사탄] 안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요일 5:20).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믿음과 순종을 주시지만, 사탄은 사람들 속에 불신앙과 불순종을 일으키며 이 세상에 죄악된 풍조를 조장한다.
[3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도 과거에 불순종의 아들들처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었다. ‘육체’라는 말(사르크스)은 ‘죄성을 가진 몸’을 가리킨다고 본다. 돈에 대한 욕심, 이성에 대한 욕심, 세상 권세와 명예에 대한 욕심 등이 그러하다. 이것들은 다 세상적이요 죄악되다. 구원받기 전의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다.
[4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이 왔다. 우리가 구원받은 원인과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밖에 없었다. 다른 원인과 이유는 없었다. 우리 속에는 어떤 원인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었고 영적으로 죽어 있었고 무능력했다. 성경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했고(렘 17:9), 또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렘 13:23).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代贖)의 죽음으로 확증되었다.
[5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셨다. 죽었던 우리의 영혼은 새 생명을 얻었다. 이것을 중생(重生, 거듭남)이라고 표현하며, 이것이 구원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택자들을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이루신 일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 되었고 그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구원이다.
[6절]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올리우셨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 믿는 모든 자들도 그와 함께 새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얻었고 천국을 상속받는 자들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심은 우리의 구원과 그 특권에 대한 성취와 확증이며 상징이 되었다.
[7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은 구원은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하신 자비와 은혜를 나타내심이었고 그 은혜는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온 세상에 밝히 전파되고 있고 증거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피 흘리신 죽음은 순전히 죄인들을 대신하신 것이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깨끗케 하시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대속물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죄가 제거될 수 없었다. 그것은 하나님께는 큰 희생이었고 우리에게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8절] [이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얻었으며].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그의 은혜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구원의 수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었다. 믿음은 지식과 찬동과 의지를 포함한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이며(요 6:35, 37) 그를 영접하는 것이며(요 1:12)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다(롬 6:17). 믿음은 입술로 고백된다(롬 10:9-10). 물론, 참된 믿음은 선한 행위로 나타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약 2:17).
참된 믿음은 구원의 수단이요 구원에 필수적이지만 사람의 어떤 공로적 행위가 아니다. 믿음은 율법 순종의 행위와 대조되는 어떤 것이다(롬 4:5). 믿음은 빈손과 같다.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기 위해 빈손이 필요하지만, 빈손은 자랑할 만한 공로가 될 수 없다. 회개하는 상한 심령과 진실한 믿음은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그것은 공로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믿어야 한다(요 3:16). 믿음은 하나님의 긍휼을 얻는 정상적이고 정당한 수단이며, 불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악이며 멸망에 이르는 길이다(요 3:18, 36).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구원을 얻었다’는 원어(세소스메노이)(완료분사)는 믿는 성도가 이미 구원을 얻었음을 보인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그것은 죄로 더러워진 자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법적인 구원을 가리킨다. 히브리서 10:10, 14,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구원받은 성도는 현재 성화를 이루다가(빌 2:12)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구원을 얻을 것이다(롬 5:9-10).
[8-9절] . . .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선물임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이것’(투토 tou'to)은 ‘구원받은 사실’을 말한다. 구원은 우리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은 사람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자랑하지 못한다. 성도의 미래의 영광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핏값으로 사신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얻게 되는 것이다(롬 8:30).
[10절]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선한 일들을 위해서다.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선하게 사는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영혼을 살려주셨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디도서 3:4-5,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重生)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이나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일이 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우리는 이 귀하고 복된 사실을 감사하자.
셋째로, 구원의 목적은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해 살게 하시기 위함이다.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救贖)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말하면서 자신의 나태함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계명들을 순종하되, 늘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하게 살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며, 영혼 구원의 전도와 참 교회 건립에 힘써야 한다.
11-22절, 하나님과 화목케 하심
[11-12절]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外人)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그러므로 생각하라”는 말씀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살았고 구원을 받았으므로, 과거의 신분과 상태가 어떠하였으며 거기로부터 어떻게 현재의 신분과 상태로 구원을 받았는지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에베소 교인들은 과거에 구원받기 전에 어떤 신분과 상태에 있었는가? 본문은 그들의 구원받기 전의 신분과 상태를 일곱 가지로 표현한다.
첫째로, 그들은 ‘육체로 이방인’이었다. ‘이방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하나님을 경외함도 없는 자들을 가리킨다. 우리는 과거에 다 이방인이었다.
둘째로, 그들은 전에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었다. 무할례당은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뜻이다. 무할례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언약과 상관없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과거에 다 무할례자이었다.
셋째로, 그들은 그때에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약 백성에게 율법에 암시된 구주이셨다. 구약 백성은 율법 중 제사법에 나타나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 ‘밖에’라는 원어(코리스)는 ‘상관없다’는 뜻이다.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상태에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구주가 없었다. 그들은 구주를 알지 못했고 그의 은혜를 받지 못했다. 우리는 과거에 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
넷째로,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요 선민(選民)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하셨고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셨다. 그 나라에는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들이 있었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과 규례 밖에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의 복과 상관이 없고 그 복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우리가 과거에 그러하였다.
다섯째로, 그들은 과거에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 외인(外人)’이었다. ‘약속의 언약들’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등에게 약속하셨던 복을 말한다. 그 핵심적 내용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다(창 17:7-8; 렘 30:22; 31:33; 겔 11:20; 14:11; 36:28). 그것은 또 영생과 평안의 복을 포함한다(신 5:33; 잠 3:16-18). 할례는 그 하나님의 약속의 표이었다. 할례 없는 이방인들에게는 그런 복이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과거에 이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들에 대해 외인(外人)이었다.
여섯째로, 그들은 구원받기 전에 ‘세상에서 소망이 없었던 자들’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늙음과 쇠잔함, 질병들과 죽음 등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할 소망이 없다. 과거의 우리들은 이와 같이 슬픔이 많은 인생, 허무한 인생일 뿐이었다.
일곱째로, 그들은 전에 ‘하나님도 없는 자’이었다. 그들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신(神)에 대한 약간의 의식이 없지 않았으나, 그들은 헛된 우상들을 신(神)인 줄 알고 섬겼다. 그들은 그 헛된 우상들을 의지하고 바랐던 자들이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참 지식의 시작이지만, 이전의 그들은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영적인 무지와 흑암 속에 살던 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나 돌보심도 받지 못했다. 과거의 우리가 바로 그러하였다.
[13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이제’는 구원받은 후를 가리킨다. ‘전에 멀리 있었다’는 말은 구원받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또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통해, 즉 그가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피로 이루신 속죄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졌고 그와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영원한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 이것이 구원이다.
[14절] [이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화평이심이니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이방인인 에베소인들이 이스라엘과 가까워진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화평이 되셔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을 구별하는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셨다. 이제 신약교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영적 특권의 차이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히 그를 부르는 자들을 누구나 차별 없이 받으신다.
[15절]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이방인은 우상숭배적이고 부도덕하므로, 과거에 유대인은 이방인에 대해 정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적대 관계는 의문(儀文) 곧 율법 조문에 근거한 것이었다. 특히 구약의 의식법들, 예를 들어, 성막이나 제사들이나 절기들 그리고 정(淨), 부정(不淨)의 음식들 등에 대한 법들은 다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별시키는 법들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의식법들은 다 성취되었고 따라서 그 법들은 신약 아래서 폐지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 이 둘로 자신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다. 이제는 유대인의 교회가 따로 없고 이방인의 교회가 따로 없다. 이제는 둘을 다 포함하는 한 교회가 있을 뿐이다. 신약교회는 세계적 단체이며 신약교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적대 관계가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케 된 관계가 되었다.
[16-18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과 사람들은 원수와 같은 상태에 있었다. 이방인들은 물론이고, 유대인들도 그러했다. 성경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 못지 않게 우상숭배적이고 부도덕하였음을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미워하셨고 죄인들도 하나님께로 나오기를 꺼려하고 하나님을 싫어하고 멀리 떠나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목케 하시며 그 둘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다(롬 5:10).
‘먼데 있는 너희’는 이방인들을 가리키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막론하고 모두들에게 평안의 복음, 화목의 복음을 전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은 이제 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들은 한 성령을 받고 한 성령 안에서 그의 위로와 권면을 받으며 하나님을 섬긴다.
[19절]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가족]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은 유대인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 곧 동료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 즉 신약교회는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 민족들을 다 포함하는 세계적인 교회가 되었다.
[20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신약교회의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 즉 그들이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 ‘모퉁이 돌’은 건물을 구성하는 모든 돌들의 기준이 되는 기초석이다. 그것은 건물을 결합시키고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21-22절]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교회의 목표는 하나님의 거하실 성전이 되어 가는 것이다.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듯이 성전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다. ‘성전이 되어 간다’는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전도요, 둘째는 개인의 성화이다. 전도는 성전 건립의 일이다. 한 명의 택한 영혼이 돌아오는 것은 건물의 벽돌 한 장이 쌓이는 것과 같다. 모든 영혼들이 다 돌아올 때 이 성전 공사는 완공될 것이다. 그러나 성도 개인의 영적 성장 즉 성화(聖化)도 필요하다. 성도는 구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을 때 이미 법적으로는 완전한 의를 받았으나(고전 1:30; 롬 3:23, 24; 10:4),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구원과 그 의를 그의 삶 속에서 나타내어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들의 인격과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함과 섬김을 그리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함을 나타내어야 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받기 전 상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다 이방인들이었다. 우리는 할례도 없는 자들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에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 외인이었다. 우리에게는 내세의 소망이 없었고 영생과 부활과 천국의 소망도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상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우리를 구원해주셨는지, 그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구원받은 현재의 새 상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방인들이 아니고 외인들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과 동일한 시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 즉 가족이 되었다. 19절,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다. 물론, 이 성전은 지금도 건축 중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성화에 있어서도 그러하고 전체 교회적인 면에서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남김 없이 다 구원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존귀한 백성이 되었고 또 하나님의 성령의 전이 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이 모든 일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임을 깨닫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교회의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피로 구속(救贖)함을 얻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21절), 주 안에서(21절), 성령 안에서(22절), 예수 안에서(22절) 구원을 얻었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가까워졌고 한 새 사람을 이루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구주 예수께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다 하나같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그는 하나님과 원수 되고 서로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케 하셨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개인의 성화(聖化)를 위해서와 남은 택자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더욱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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