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와 극이론
- ‘비브르 사 비’를 보고 -
ㅂ ㅅ ㅈ
1. 영화 소개
나는 연극이나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다. 연극이나 영화를 보아도 현재 극장에서 상영하는 대부분의 흔한 상업영화를 볼 뿐이고, 새로운 의미를 던지는 영화라든지 예술 영화는 거리가 멀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그래서 ‘브레히트’라는 이름을 수업에서 처음 들었을 때, 그 이론은 실제로 적용되기 어려운, 말 그대로 ‘이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브레히트의 이론을 잘 이해할 수 있을만한 영화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비브르 사 비’라는 영화가 브레히트의 이론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평을 보고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여자 주인공인 나나가 배우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여러 현실적 여건과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거리의 여자’라고 불리는 매춘부로 전락하게 되고 나나가 죽음을 맞게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12개의 막으로 구성되어 첫 번째 장에서 순수한 나나의 모습과 배우가 되고 싶어하는 나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레코드점에서 일하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없고, 돈이 부족해 집에서 쫓겨나기도 하는 나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나나의 현실은 하룻밤만 같이 지내면 레코드점에서 버는 몇 십 배의 돈을 벌 수 있는 매춘의 길로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렇게 나나가 ‘거리의 여자’로 지내던 와중 철학자와 대화를 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그 와중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된다.
2. 브레히트 이론의 적용
브레히트의 극이론을 한 단어로 말하자면 ‘거리두기’라고 생각한다. 브레히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온 이론을 비판하며 20세기에 맞는 새로운 극이론을 제시했는데, 20세기 이전의 희극들은 모두 관객이 극에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장치를 제시해 관객을 수동적으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는 관객이 극을 보며 감정 이입을 하기 보다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능동적인 관객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극을 만들 때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기 보다는 관객에게 ‘현실이 아니다’ 라고 상기할 수 있게 하는 거리두기 기법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극과 관객의 거리두기 기법을 통해 관객이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계속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보았다.
‘비브르 사 비’ 에서는 다양한 기법을 통해 관객과의 거리두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거리두기’를 통해 관객에게 사회 현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 카메라 워킹
이 영화는 관객이 ‘어색하다’라고까지 느낄 수 있는 카메라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도 배경음악과 함께 제시되는 여자주인공 나나의 옆모습과 앞모습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첫 막 역시 주인공의 정면 얼굴을 보여주는 대신 뒷모습을 비춰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막에서 나나가 돈이 없어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 장면은 주인공과 동일한 눈높이에 카메라를 두는 것이 아닌, CCTV를 보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구도에서 주인공의 행동을 보여준다. 그리고 갑자기 나나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카메라를 응시하는가 하면 카메라는 주인공을 비추는 대신 내용의 흐름과 전혀 상관없는 카페의 내부를 오래도록 비추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카메라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에 감정이입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사용되었다.
뒷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배우의 얼굴을 볼 수 없어 배우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차단한다. 요즘의 영화에 익숙한 나는 배우의 얼굴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 생소하다는 감정이 먼저 들어 감정이입을 시도할 수 조차 없게 만들었다. 또한 주인공의 눈높이에서 보이는 카메라의 시점이 아닌, CCTV와 비슷한 설정의 카메라 관점은 주인공의 감정을 느끼기 보다는 주인공의 행동과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였다고 느껴졌다. 이렇듯 다양한 카메라의 관점과 카메라의 사용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생소하다고 느껴졌을뿐더러 그러한 생각으로 인해 감정이입이 힘들었다는 점에서 브레히트의 이론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2) 장면의 분리
‘비브르 사 비’는 현대 영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이 이어지지 않는다. 각 공간별로, 이야기의 흐름별로 1막부터 12막까지 나누어 제시된다. 이야기를 토막으로 나누어서 제시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을 막는다. 나나가 레코드점에서 일하는 장면에서 바로 이어질 다음 장면을 기대하고 있는 관객에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표지와 함께 제시된 소주제는 이전의 장면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관객의 감정은 장면의 구분과 함께 새로 시작되고, 이전의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항상 영화와 거리가 가까워 질 때쯤만 되면 여지없이 막을 나누는 표지가 등장하게 되어 다시 거리가 멀어지고, 가까워 졌다 싶으면 다시 거리가 멀어지는 과정의 반복이다. 이러한 부분은 결말에서 가장 크게 다가왔다. 주인공 나나는 포주 라울과 다른 조직의 거래하는 중 죽음을 맞게 된다. 이 때 나나의 죽음은 생각지도 못하게 이루어졌고, 나나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끝을 알리는 표지가 등장한다. 나나의 죽음마저도 동정하거나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만드는 데에 거리두기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3) 배경음악
장면이 분리될 때마다 항상 따라오는 것이 배경음악이다. 보통의 배경음악은 주인공의 심리를 극대화하기 위해 쓰인다. 하지만 ‘비브르 사 비’에서 사용된 배경음악은 배경음악의 수도 다양하지 않을뿐더러 주로 장면을 구분하는 휴지와 함께 쓰여 장면을 더 확실하게 분리하려는 의도를 보이며 사용되었다. 또한 어떤 부분에서는 아예 소리가 나오지 않게 편집한 부분도 있어 배경음악까지도 브레히트의 ‘거리두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사회의 반추
이 영화는 ‘거리두기’라는 기법을 사용해 관객으로 하여금 사회와 떨어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만큼 사회 현실을 다양한 장면에서 제시하고 있다. 첫 장부터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돈이 없는 나나의 모습이다. 친구가 돈을 빌려가고, 나나의 꿈을 단순히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까지 나나의 상황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비정하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이러한 사회의 모습은 나나가 매춘부가 되려고 할 때 잘 드러난다. 나나가 매춘부가 되기 위해 포주에게 편지를 보내는 장면에서 ‘저는 나름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대목과 직접 자신의 키를 재는 장면 등 나나의 순수한 모습과 사회의 모습이 크게 대비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한 매춘부가 된 후 ‘거리의 여자’의 생활 수칙은 굉장히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이것 역시 당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관객에게는 감정이입을 자제시키고 사회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파악하게 만드는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는 와중, 사회의 모습도 제시해줌으로써 관객에게 당시 파리의 뒷골목의 실상을 생각해보게 하는 도구로 작용했다고 보인다.
3. 영화 비평
우선 이 영화를 보고 처음 느낀 점은 ‘생소하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감정이 감정이입을 방해했고, 심지어 ‘거리두기’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영화 초반부에 영화에 집중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감정이입을 방해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브레히트의 이론이 큰 효과가 있는 것 같았고, 능동적인 관객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하지만 꼭 이러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능동적인 관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제시했다시피 ‘비브르 사 비’는 다양한 기법을 사용해 관객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볼 때 관객은 영화의 흐름에 감정이입을 하는 대신 사회의 현실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감독은 다양한 표지와 소주제를 제시하며 관객이 직접 사고해보도록 도와주는 여러 장치를 영화 내에 삽입했다. 물론, 이러한 장치들은 무언가를 의도하고 있는 ‘미쟝센’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관객이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단순히 영화 내에서 보여지는 여러 것들을 보며 관객은 사회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동적인 관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현대 영화에 익숙한 나에게는 ‘거리두기’기법이 영화의 흐름을 쫓기 바쁜 영화가 되었다. 영화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며 영화의 흐름을 이해하기 보다는 흐름을 끊는 이 영화는 영화의 줄거리와 함께 보지 않았더라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영화가 되어 버렸다. 오히려 영화 내에 제시된 여러 흐름과 다양한 의미를 좇아 관객이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사회와 연관지어 던지는 메시지 역시 관객이 주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능동적인 관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관객을 능동적으로 만드는 다양한 장치가 오히려 극의 이해를 방해해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능동적 관객’ 대신 극의 흐름만 쫓아가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점이라고 보여진다.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