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음 모임일정을 공지합니다.
일시: 2017년 4월 오후 5시
장소: Medan Tanjung Bungah
자료:
http://www.straitstimes.com/asia/se-asia/malaysian-actress-hits-out-at-exam-question-that-stereotypes-people-by-name-and-place
이 기사는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한 학교에서 시험문제를 사람의 이름과 종교를 연결지어야 하는 문제를 출제했고 시험지를 본 배우가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이야기하면서 저희는 인종차별(racism)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강선생님이 이것이 인종차별에 분류되는 것인지, 이것은 그냥 편견에 관련된 것은 아닌지 물어보았습니다.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피부색이 밝은 사람들은 기독교에 가깝고 어두운 사람들은 불교, 이슬람교라는 편견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크리스, 제니와 같은 이름은 백인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함께 이야기하다가 함께 공부하는 학생이 자신의 학교친구가 인도네시아 친구인데 이름이 제임스이고 기독교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주변에 아닌 예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를 읽으면서는 깨닫지 못했다고 이야기했고 토론을 하면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훈훈한 마무리를 했습니다.
아래는 관련해서 서술한 글입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는 ‘스테레오타입’, ‘편견’에 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관련 기관의 잘못된 태도이다. 기사는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학교가 ‘Moral Exam’으로 이름과 종교를 연결 지어야 하는 문제를 제출했고 이러한 문제는 잘못된 영향을 끼친다고 서술한다.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종교와 기관을 연결해야 하는 문제는 타당하지만 사람 이름과 종교를 연관 지어야 하는 문제는 근거가 없고 감정적인 판단에 의거해서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판단을 주로 ‘스트레오타입’ 또는 ‘편견’이라고 명명하며 잘못된 관념이라고 지적한다. ‘이름’이 갖는 편견이 주제인 이 기사를 보면서 이와 연결되는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자동차 어플리케이션 Uber의 사용자명을 ‘Sha’로 지정했다. 그리고 몇 기사는 사용자명을 보고 말레이계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고 이를 들은 후 사용자명을 바꿀까 고민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페낭에 거주하는 현지인들에게 말레이계는 한국인보다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인종, 종교, 피부색에 따른 차별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듣고 자라온다. 그리고 이러한 말을 듣는 곳은 대부분 학교, 대중매체, 가정이다. 이 기사 역시 ‘편견’은 잘못된 것이지만 학교에서 ‘편견’을 조장한다는 것은 더욱 큰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학교에서 낼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사용되는 교과서에서 ‘여성’은 가사 노동의 주체와 수동적인 이미지로 구현되고 있다. 공공기관 화장실에서 사용되는 여성과 남성의 이미지 또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아 영국에서는 ‘좌변기가 있는 화장실’, ‘좌변기가 없는 화장실’로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여전히 공공기관에서 차별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해결해 갈지 고민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기사의 말미에는 관련 기관의 답변을 들으려고 했으나 “Parliament is in secession"이라는 이유로 듣지 못했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미국드라마 Designated Survivor의 한 장면을 살펴보면 대통령 연설문 작성자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때에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 조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기자들이 자세한 사항을 질문할 때에는 ‘현재 확인하고 있습니다.’(We are looking into it), ‘현재 알려드릴 내용이 없습니다’(We don't have a statement at this time),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We will get back to you working diligently to find a solution)와 같이 답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조언은 기사에 인용된 관련 기관이 답변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러한 부분을 보면서 뉴스와 대중매체에서 전달하는 기사의 정당성과 투명성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현재 나의 위치는 기사를 전달해서 듣는 청자에 불과하다. 뉴스를 통해 듣는 이야기는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무비판적으로 뉴스에서 전달하는 것을 믿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흔히 뉴스에서 전달하는 것은 거짓일 수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기사화하는 것은 사람과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모두 진실일 수는 없다. 그리고 기관의 태도는 잘못을 반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으며 잘못된 방식을 선택할 수 있으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잘못을 인정하고 바뀌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음 기사에서는 기관의 의견과 함께 잘못을 고치려고 하는 태도가 보이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기사를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