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 김 선생 창협 에 대한 만사〔農巖金先生 昌協 挽〕
맑고 깨끗한 산하의 기운 淸淑山河氣
한 몸에 모여 세상의 모범 되셨네 鍾來作世儀
영지는 본래 뿌리가 있으며 靈芝元有本
좋은 옥에 어찌 하자를 찾을 수 있으랴 良玉可求疵
나아가고 물러남은 오직 의리를 따랐고 舒卷惟隨義
생존과 사망은 시운(時運)에 관계되었네 存亡自係時
훨훨 대황 밖으로 날아가니 翩然大荒外
이름이 해와 별과 함께 후세에 전하리라 名並日星垂
두 번째〔其二〕
이락의 원류 멀리 전해지고 伊洛源流遠
하분의 덕스런 풍모 높았네 河汾德範尊
두루 통달하여 온갖 묘리를 알았고 融通會衆妙
의심나고 가려진 여러 학설 분석하였네 疑翳析羣言
흉금은 제월처럼 깨끗하고 霽月襟懷爽
기미는 춘풍처럼 온화하였다오 春風氣味溫
찬란한 운금의 솜씨였으나 扈煌雲錦手
여사를 어찌 논할 것 있으랴 餘事豈須論
세 번째〔其三〕
일찍이 청운에 걸음을 펼치니 早展雲霄武
채봉이 달려가는 모습 다투어 보았네 爭瞻彩鳳趨
태학은 호안정(胡安定)을 얻었고 儒宮得安定
강석은 범순부(范純夫)를 기다렸다오 講席待淳夫
세속에서는 훌륭한 의논에 놀라고 末俗驚谹議
위험한 길에서 범구를 보았는데 攲途見範驅
문득 일휘출수(一麾出守)하여 居然一麾出
관리로 숨은 곳 바로 강호였네 吏隱卽江湖
네 번째〔其四〕
용사 연간(龍蛇年間)의 일 차마 말할 수 있으랴 忍說龍蛇事
천시는 참혹하게도 음기가 가득하였네 天時慘積陰
기구한 종적은 계속 굴곡이 많고 畸蹤仍却曲
현자의 출사길은 더욱 험난하였다오 賢路轉嶇𡼲
단표의 즐거움 바꾸지 않고 不改簞瓢樂
개석의 마음 돌리기 어려웠지 難回介石心
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리신 임금님 마음 重宸虗佇意
추도하는 윤음을 우러러보네 追悼仰綸音
다섯 번째〔其五〕
내 늦게 태어난 것을 어찌 한탄하랴 寧嗟生苦晩
공의 남은 향기 쏘인 것만도 다행이었네 自幸襲餘薰
매번 뒤따라 모시던 날을 생각해보니 每憶追陪日
간곡한 경계와 가르침 특별히 입었노라 偏蒙警誨勤
미천한 정성은 길이 잊지 못하고 微衷長耿耿
흘러가는 물은 세차게 소용돌이치네 逝水劇沄沄
의귀할 곳을 영원히 잃었으니 永失依歸地
슬픈 회포를 차마 다시 말하랴 悲懷忍復云
여섯 번째〔其六〕
우리 선친과 심사를 함께하였으니 心事吾先共
살고 죽음에 어찌 간격이 있으랴 曾何間死生
바야흐로 큰 붓을 적셔서 方將渙鴻筆
환영을 꾸며 주겠다고 허락하셨는데 許以賁桓楹
나의 깊은 바람 이루기 전에 未及深望滿
큰 운명 갑자기 기울었네 俄看大命傾
아득한 천고의 한스러운 마음 悠悠千古恨
평생토록 끝내 화평하기 어려워라 沒世竟難平
일곱 번째〔其七〕
지하엔 일찍이 경수가 있으니 地下曾瓊樹
인간 세상이 어찌 더럽힐 수 있겠는가 人間足溷塵
공은 응당 헌 신발 벗은 듯 기쁘시겠지만 公應欣脫屣
나루 잃고 헤매는 나는 참으로 애통하네 我自痛迷津
상엿줄 끄니 어떻게 다시 돌아오실까 啓紼何當返
장막을 헤치고 멍하게 참인가 의심하노라 披帷怳訝眞
사문에 다하지 않는 눈물 斯文不盡淚
말씀을 적은 띠에 가득하여라 洒滿舊書紳
[주1] 농암 김 선생(農巖金先生) : 김창협(金昌協, 1651~1708)으로 농암은 그의 호이다. 자는 중화(仲和), 또 다른 호는 삼주(三洲)이며, 문곡(文谷) 수항(壽恒)의 아들이고 저자인 도곡의 스승이다. 1682년(숙종8) 증광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우암의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를 교정하였다. 청풍 부사(淸風府使)로 있을 적에 기사환국으로 부친 문곡이 진도에서 사사되자, 벼슬을 사퇴하고 영평(永平)에 은거하였다. 문장이 단아하고 순정(純正)하여 구양수(歐陽脩)의 정수를 얻었고, 시는 두보(杜甫)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답습과 조회(藻繪)를 일삼지 않고 고고하고 건아하였다. 저서로는 《농암집》 등이 있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주2] 훨훨 …… 날아가니 : 대황(大荒)은 큰 들 또는 먼 곳을 이르는데, 영혼이 먼 곳을 향해 날아가 승천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주3] 이락(伊洛)의 원류(源流) : 정자(程子)의 학문을 연원으로 삼았음을 이른다. 이락은 낙양(洛陽)을 흐르는 이수(伊水)와 낙수(洛水)로, 명도(明道) 정호(程顥)와 이천(伊川) 정이(程頤) 형제를 가리킨다.
[주4] 하분(河汾) : 황하와 분수(汾水)의 합칭으로, 수(隋)나라의 대유(大儒)인 왕통(王通)을 가리킨다. 왕통은 황하와 분수 사이에서 천여 명의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이른바 하분학파를 형성하였다.
[주5] 흉금은 제월처럼 깨끗하고 : 제월(霽月)은 ‘광풍제월(光風霽月)’의 줄임말로 비 갠 뒤의 깨끗한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뜻이다. 황정견(黃庭堅)이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인품을 평한 말인데, 흉금이 고결하고 명랑함을 비유한 것이다.
[주6] 기미는 춘풍처럼 온화하였다오 : 춘풍은 온화한 스승의 훌륭한 가르침을 이르는 말로, 주광정(朱光庭)이 명도 정호를 여(汝) 땅에서 뵙고 돌아와서는 “내가 춘풍 속에 한 달 동안 앉아 있었다.”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近思錄 卷15》
[주7] 찬란한 …… 있으랴 : 운금(雲錦)은 구름무늬의 비단으로 아름다운 문장을 비유하며, 여사(餘事)는 여가에 하는 일이다. 망자인 농암이 문장에도 뛰어났으나 이것은 여사에 불과할 정도로 다른 뛰어난 덕이 많음을 말한 것이다.
[주8] 채봉(彩鳳)이… 보았네 : 채봉彩鳳은 오색의 봉황처럼 아름다운 선비를 비유하는데, 곧 망자가 조정에 나아감을 이른 것이다.
[주9] 태학은 호안정(胡安定)을 얻었고 : 호안정은 북송의 학자 호원(胡瑗)으로 안정은 호이며, 자는 익지(翼之)이다. 송학의 선구자로 경학에 통달하였으며, 뛰어난 교육자로 호주(湖州)의 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는데, 그때 만든 규약이 1044년에 황제의 명에 따라 태학의 규정으로 채택되었다. 뒤에 태학으로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자 사방에서 몰려들어 학궁이 크게 부족하였는데, 정이천도 태학에서 그에게 수학하였다. 《宋史 卷432 儒林列傳 胡瑗》 여기서는 농암이 태학에서 뛰어난 스승이었음을 말한 것이다.
[주10] 강석(講席)은 범순부(范純夫)를 기다렸다오 : 강석은 강학하는 자리이고, 범순부는 북송(北宋)의 학자이며 정치가인 범조우(范祖禹)로 순부는 그의 자이다. 그는 강설을 잘하였으며, 특히 역사학에 뛰어나 《당감(唐鑑)》을 지어 당나라 3백 년 동안의 치란(治亂)을 자세히 밝혀 당감공(唐鑑公)이라 불리고, 사마광(司馬光)과 함께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수하기도 하였다. 《宋史 卷337 范祖禹傳》 여기서는 농암이 범조우처럼 강학을 잘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주11] 위험한 …… 보았는데 : 범구(範驅)는 ‘범아치구(範我馳驅)’의 줄임말로, 말을 법칙대로 모는 것을 이른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왕랑(王良)이 말하기를 “내 그를 위해서 말 모는 것을 법칙대로 하였더니〔範我馳驅〕 종일토록 한 마리의 짐승도 잡지 못하였고, 그를 위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짐승을 만나게 하였더니〔詭遇〕 하루아침에 열 마리의 짐승을 잡았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되었다. 이후로 범아치구는 원칙과 법도대로 행하는 것을 이르고, 궤우는 부정한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여기서는 농암이 위험한 처지에서도 반드시 법도대로만 행동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주12] 일휘출수(一麾出守) : 죽림칠현(竹林七賢) 가운데 한 명인 완함(阮咸)이 몇 번의 천거를 받았으나 조정에 들어가지 못하다가, 순욱(荀勗)으로부터 한 번 배척을 받고는 시평 태수(始平太守)로 나갔던 일에서 유래하였다. 이후 조정에 발붙이지 못하고 수령으로 나가는 고사로 쓰였다. 《文選 卷21》 여기서는 농암이 청풍 부사로 나간 일을 말한 것이다.
[주13] 관리로 …… 강호였네 : 원문의 ‘이은(吏隱)’은 하급 관직에서 몸담고 은자처럼 사는 것을 말한다. 농암이 산림에 은둔하지는 않았으나 남한강이 흐르는 청풍에서 낮은 벼슬에 있었던 것이 바로 강호에 은거한 것과 다름없다는 뜻이다0.
[주14] 용사 연간(龍蛇年間)의 일 : 용띠 해인 무진년(1688)과 뱀띠 해인 기사년(1689)의 사이의 일을 말한 것이다. 무진년에 소의(昭儀) 장씨(張氏 장희빈)가 왕자 윤(昀)을 낳자, 숙종이 윤을 원자로 삼아 명호(名號)를 정하고 장씨를 희빈으로 봉하였으며, 다음 해에는 기사환국으로 농암의 스승인 송시열과 부친인 김수항 등 노론의 대신들이 사사되고, 서인이 정권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주15] 단표(簞瓢) : 대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이라는 뜻으로, 공자가 안빈낙도하는 안회(顔回)를 칭찬하여 하신 말씀이다. 《論語 雍也》
[주16] 개석(介石) : 지조가 단단한 돌과 같아서 혼탁한 조정에서 벼슬하지 않고 떠나감을 이른다. 《주역(周易)》 〈예괘(豫卦) 육이(六二)〉에 “육이는 절개가 돌과 같아 하루를 마치지 않고 떠나가니, 정(貞)하고 길(吉)하다.〔六二 介于石 不終日 貞吉〕”라고 보인다.
[주17] 바야흐로 …… 허락하셨는데 : 농암이 도곡에게 선친의 묘비문을 지어 주겠다고 허락한 일을 말한 것이다. 환영(桓楹)은 하관(下棺)할 적에 사용하는 기구로, 나무를 비(碑)처럼 만들어서 속을 파내고 그 공간에 녹로(轆轤)를 장치하여 줄을 관에 매단 뒤에 그 줄을 조종하여 하관하는 장치인데, 후대에는 비석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주18] 경수(瓊樹) : 옥과 같이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으로, 고상하고 결백한 인품을 비유한다.
[주19] 나루 …… 애통하네 : 끝없이 넓은 학문의 세계를 학해(學海)라 하는바, 나루터는 강이나 바다를 건너는 중요한 길목이므로, 스승의 가르침을 잃고 방황하는 자신의 서글픈 심정을 비유한 말이다.
[주20] 말씀을 적은 띠 : 스승으로부터 얻어 들은 중요한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허리띠에 적어 두는 것을 이른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자장(子張)이 도가 행해짐을 묻자, 공자께서 ‘말이 충신(忠信)하고 행실이 독경(篤敬)하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지만, 말이 충신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경하지 못하면 〈자신이 사는〉 주리(州里)라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겠는가?’라고 하시니, 자장이 〈이 말씀을〉 띠에 썼다.〔子張問行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 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 行乎哉 子張 書諸紳〕”라고 보인다. 독경은 독실하고 공경함을 이른다. 성신여자대학교 고전연구소ㆍ해동경사연구소 | 성백효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