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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5일 오후2시. 몽중수업
나에게는 교회에서가 아닌 [지금 여기] 공간에서의 예배가 시작되었다. 흰 눈이 흩날리고 제법 겨울다운 날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기억공장 전시관'에 앉는다. 관옥목인원 학생들의 싱잉볼 ‘관옥의 노래’로 시작된다.
사회자 : 저는 복이 많아요. 그래서, 선생님과 차담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이 어김없이 “오늘 새벽에 꾼 꿈이야.”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셨죠. 그것은 재미있는 이야기이자, 선생님을 통해 들려주는 깨달음의 말씀들을 주셨어요. 오늘, 선생님은 그 모두가 하늘이 내려 준 선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희에게 쏘아 준 선물을 선생님을 통해 잘 받고 있지요. 오늘도 그런 자리예요. 선생님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늘의 선물을 모두 잘 받는 그런 자리가 되었음 합니다. 선생님, 어제 꿈 꾸셨죠? 꿈 이야기를 한 자락 들려주세요.
선생님 : 우선, 어제도 말씀 드리고, 오늘도 말씀 드릴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저 위에 계신 우리 모두의 어머니, 제가 한님이라고 부르는 그 어머니께서 여러분을 초대하셔서 이런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겁니다. 저도 여러분들과 똑같이 초대받아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글쎄요, 이제 다 겪어봐야 그것이 뭔지를 알게 되니까, 되어가는 대로 해 봅시다. 아까 관옥목인원 학생들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것을 설명 좀 해 드릴께요. 가사가 어떻게 되는고 하니, {사랑이신 한님, 우리의 정결한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당신을 뵙고 당신을 보여주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간단한 가사죠. 사실, 얼마 전, 제가 꿈에 이런 노래를 받아 봤어요. 악보도 있었어요. 악보도 있고, 가사도 있었는데, 꿈에 본 가사하고 조금 다릅니다. 제가 꿈에 본 가사는 이런 내용이었어요. {사랑이신 하나님,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정결케 하시어 당신을 뵙고 당신을 보여주게 하셔서}
[관옥목인]이라는 것은 벌써 30년 전에 무위당선생님께서 “앞으로 이런 이름으로 살아보게.” 하시면서 저한테 주신 이름입니다. 저는 선생님께 감히 이름 좀 하나 주세요. 라는 말씀은 못 하고, 선생님이 여러 제자들에게 이름을 주시는 일을 못 봤어요. 생각지도 않고 있는데, 어느날인가, 뭔 쪽지에다가 [관옥목인] 라고 써서 저에게 주시면서, “이런 이름으로 살아봐라.”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목사인데, “관옥목사하면 ‘사’라는 것이 가르친다는 뜻인데, 재미없다. ‘사’자 대신에 사람 ‘인’자를 써서 목인이라고 하자.”이렇게 말씀하시고, “관옥이라는 이름은 ‘돌 옥’자이지만 ‘구슬 옥’으로 살아봐라.” 이렇게 한마디 말만 하고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받아와서 ‘목인’자는 잘라서 ‘관옥’을 내 이름으로 쓰다 보니까, 제 호처럼 됐습니다만, 이제 와 생각하지만, 어떤 한 사람이 자기 개인의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자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볼 관’자 입니다. 보는데, 대충 보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보는 겁니다. ‘볼 견’ 하면 그냥 보는 것이지만, ‘관’하면 관찰, 자세히, 옥자는 구슬옥으로 새기라고 했거든요. 완벽한 거기에서 ‘완벽할 옥’, 우리가 “하나님, 하나님” 부르는 거기에서 어떤 형상으로 만든다면 거기가 ‘옥’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거예요. 완벽하다는 의미겠죠.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고, 꽉 찼다는 거예요. 경계가 없다는 거예요. ‘볼 관’ 자에 나보고 하나님을 보라는 얘기인가. 하나님을 보시게, 그래서 이 단어를 주셨다. 저 혼자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예수님도 마음이 깨끗하면 하나님을 본다. 이런 말씀을 하셨으니까, 나를 본 사람도 하나님을 봤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여기서도 볼 수 있다는 얘기죠. 살아생전에 하나님을 뵐 수 있었음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관옥’이라는 이름을 썼었습니다. 어느 날 보니까, ‘볼 관’ 자도 있지만, ‘보여질 관’도 있더라. 그것도 재미있다. 나도 하나님을 보지만, 또,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볼 수도 있다. 하나님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 그래서, ‘관옥’이라는 이름을 쓰는데요, 지금 부르는 노래가 그 노래거든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세 가지 것이 꼭 필요하거든요. 몸과 마음과 영혼, 이 셋이 정결해서, 왜냐면, 예수님이 깨끗해야 보인다고 했거든요. 정결케 하셔서 한님을 볼 수 있게,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게, 그것이 꿈에서 본 가사였습니다. 깨어나는 순간, 내 의지와 관계없이 살짝 바뀌었어요. 지금 들으시는 곡으로 됐어요. 어떻게 바뀌었냐 하니까, 지금 들으시는 대로, [사랑이신 한님, 우리의 정결한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당신을 뵙고 당신을 보여주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이것은 제가 바꾸었다고 할 수는 없구요. 바뀌어 졌어요. 이게 왜 바뀌어 졌나, 떠오르는 생각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도하면 받은 줄 알고 기도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아직은 내가 봐도 절절하지 않고, 이미 깨끗해 진 것으로 생각하고, 이 몸과 마음과 영혼으로 한님을 뵙고, 보여주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사가 바뀌었습니다. 이게 여러분이 들으신 겁니다. 아까 꿈 얘기를 하라고 했는데, 매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거의 매일, 꿈을 꾸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세 가지나 되는 꿈을 꿨습니다.
주문받은 대로 오늘 새벽에 꾼 꿈을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어떨 때 꿈 얘기를 할 때는 부끄러울 때가 많아요. 왜냐면, 내 속에 있는 것이 그냥 드러나요. 내 속에 잠재된 의식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뭐가 잠재되어 있는지 평상시에는 잘 몰라요. 꿈을 꿀 때는 이미 여과 없이 나온단말이예요. 살아있을 때는 요 놈이 통제를 해요. 나올라하면 막기도 하고, 자기 안에 있는 비열한 모습이라든지, 안 보여 줄라고 하잖아요. 깨어있으니까. 잘 때는 얘가 자잖아요. 파숫꾼이 없으니까 지 맘 대로 나올라 해요. 꿈꾸는 얘기는 내 모습이 창피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제 책을 보면, 제 동생이 “포르노야, 포르노.” (웃음)
오늘 새벽에 꾼 꿈은 어떤 모임이예요. 어떤 모임인지 몰라. 하지만, 저도 관련이 되어 있어요. 그 모임에 한 여자가 그 모임에 온 유일한 목적은 이 모임을 붕괴시키는 것이 목적이예요. (웃음) 어떻게 하든 이 모임을 깰려고 하는 그런 목적으로 들어 온 것처럼 보여요. 왜냐하면, 시시건건 시비야. 아무하고나 시비야. 닥치는대로. 내가 보다보다가 이내에 한계가 왔어요.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내가 잡고 쓰러트렸어요. 그러고선 아랫배를 내가 발로 꽉 밟고 주먹을 꽉 쥐어서 깨고 보니 아직도 주먹을 쥐고 있어요. (웃음) 뭐라 했냐면, “내 주먹이 깨지던지, 네 머리가 깨지던지 둘 중에 하나다.” 내가 꿈에 너무 흥분하니까 깨지는 바람에 진짜 깼어요. 민망하고 암담하더라구요, 아직도 내 안에 이런 폭력적인 잠재되어 있단 말인가. “내 주먹이 깨지던지, 네 해골이 깨지던지.” 그러다 깼단 말이예요. 나는 내 안에 폭력적인 것이 없어진 줄 알았어요. 아직도 있어요. 참 참담하기도 하고, 그래서, 뒤척뒤척하다가 잠이 들었죠, 두 번째 꿈인데, 누가 내 등을 이렇게 만져요. 만지는 것 같은데, 음성이 들리는 거예요. 언뜻 보니까, 엄마예요. 엄마가 내 등을, 저는 요새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불러요. 참 좋아요. ‘하나님 아버지’ 맞아요. ‘하나님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같은 거지만, 엄마라고 끝나면 훨씬 더 친근해요. 우리 변선환 선생님 돌아가셨을 때, 저보고 기도하라고 했을 때, “하나님 어머니, 우리 선환이가 갔습니다. 잘 안아주세요.” 그랬다가 많은 구설수에 올랐어요. (웃음) 어머니라고 했다고, 그러고 선생님을 선환이라고 했다고. 우리나라 문법에 맞죠? 엄마같아요. “잘했다, 잘했어.” “그 여자 해골 안 깨졌어.” (웃음) “그 여자 안 죽었다. 죽은 건 너야.” “내가 만든 너를 지배하고 다스리던 네가 만든 너 없어.” “내가 만든 너를 그동안 지배하고 폼 잡았던 네가 만든 너 죽었다.” “여자는 멀쩡하고 그 순간 죽은 건 너야. 잘했다.” 그러시는 거예요. ‘나한테 남은 마지막 폭력적인 내가 없어졌구나.’ 라는 것이 생각이 들면서 ‘고맙다.’ 우리의 흉측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희소식입니다. 내 잠재적인 의식에서 창조되는 거예요. 사라는 거예요. 악몽이 아니라 너무 좋은 꿈이예요. 제가 경험했어요. 그래서, 내 잠재의식이 전멸해지면 그러면, 현실과 꿈이 같아지는 거예요.
제가 신학교 다닐 때, 60년대 초죠. 성철스님이 갑자기 유명해졌어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그 한마디 하셔서 갑자기 대중들한테 알려졌거든요. 그때, 스님 책이 많이 나왔어요. 스님 책 한 권을 읽은 것 같은데, 정말 뭔 말인지 몰라요. 그런데, 한마디 말이 제 머리 속에 팍 들어 왔어요. 안 잊어버려져요. 그것이 뭐냐니까, “수행이 깊어지면 꿈과 현실이 같아진다.” 그런 말씀을 하셨드라구요. 그때는 뭔 말인지 이해가 안 가더라구요. 꿈과 현실이 너무 다른데, 이것이 같아진다? 뭔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해가 안 가서 그런지 머릿 속에 남아있는 거예요. 20년 전, 환갑 때, 엄마 뱃 속에서 나온 지 60년이 되었는데, 이 한 해를 어떻게 살면 좋은지 생각을 하다가 떠오르는 아이디어 하나가 직업이 목사니 참 말을 많이 하고 살았는데, ‘일년 동안 입을 다물고 지내는 게 어떻겠나.’ 라는 생각이 나서 하자고 했습니다. 일년 동안 침묵이라는 것을 해 봤는데요. 살아있던 제 아내가 “한 달만 해. 그렇지않으면, 도망 갈거야.” (웃음) 했지만, 하긴 했습니다. 며칠 하다가, ‘침묵이라는 것이 쇼다.’ 왜냐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 해요. 존재 자체가 말이야. 입가지고 얘기 안했을 뿐이지, 온 몸으로 말해요. 급하면 막 써. (웃음) 말 안 하는 것, 침묵이라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죽어야 침묵하는 것을 한 달쯤 하다가 알았어요. 할까 말까 계속 고민하다가 해봤습니다만, 지난 얘기를 하는 것은 6개월 정도 하니까, 제 아내가 함께 사는 자기가 너무 답답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타협을 봤어요. 집에서만 얘기하고, (웃음) 집에서는 제 아내하고는 얘기를 했습니다. 한 달 지났을 때, 꿈이 저를 찾아온 것 같아요. 처음에는 몰랐어요. 꿈이 오고, 꿈이 가고, 이제는 꿈이 생각이 나요. 여러분, 꿈을 꾸는데, 뭔 꿈인지 모를 때가 많잖아요. 저는 지금도 그래요. 지금은 꿈이 왔고, 또 꿈이 생각이 나요. 일기처럼 적다 보니까 쭈욱 적다보니까 그 꿈이 뭐를,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가 생각이 나는 거예요. 해몽은 아니예요. 해몽이라는 것은 없구요. 꿈에 대한, 그 꿈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가 하는 내용이 생각이 나요. 첫째는 꿈, 그 꿈에 대한 기억, 그 꿈에 대한 해석, 세 가지가 쭈욱 나와서 대학노트로 빡빡하게 세 권인가 썼습니다. 샨티출판사 친구들이 그것들을 다 타자를 쳤어요. 저 뒤에 있는 두꺼운 책, 하나는 제가 갖고, 하나는 소금 선생님, 하나는 가까운 지인에게 줬는데, 나머지 두 권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한 권은 저한테 남아있었어요. 그것을 뒤져서 얼마 전에 보다가 내가 20년 전에 꿈이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해서 내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가르쳐주셨구나.
꿈에, “선생님은 칼 같은 말씀을 하시는데, 상대방이 어떻게 들을는지 생각은 안 하시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실 때가 많아요. 보통 사람은 하기 어려운 말을 바리새파 사람들한테도 참 듣기 거북한 말씀을 하시는데, 그러면서 상대방을 미워하는 거 같지 않아요. 미워하는 마음은 없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나는 미운 사람이 참 많은데.” 그 때는 어떤 사람이 생각만 하면 화가 나. 밉고. “난 참 미운 사람이 많고, 선생님처럼 안 되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 때 말씀하시는 것이 “너는 아직 안 될 거야. 기다려. 기다리라구.” 이제 그때 기다리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이제 진짜로 미운 사람이 없어요. 아무리 못 된짓을 해도 밉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꿈을 통해서 가르쳐지시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 후배님들에게, 오신 분들에게 선물을 해드리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런 꿈을 꾸고 오늘 새벽 3시 반에 어머니 말씀 듣고 편하게 잤어요. 또 잠이 들었는데, 울창한 대숲이 하늘 끝까지 닿을만한 대숲 앞에 작은 오두막이 한 채가 있어요. 그 오두막에 돌담이 예쁘게 쌓여있어요. 그 집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아이가 걸어 나와요. 그 아이가 주황빛 불덩어리를 가슴에 품고 나와요. 걸어 나왔는데, 앞이 바다야. 그리고 깼어. 무슨 상징하는 것 같은데, 알고 싶진 않구요. 언연이 꾼 꿈을 소개하라고 해서 얘기가 길어졌어요.
사회자 :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좀 전에 말씀하셨어요. 길몽도 없고, 흉몽도 없고, 꿈은 다 좋은 것이다. 일상에서도 공부하듯이 꿈 속에서도 공부를 이뤄지는 거다. 그래서, 꿈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는 거고, 나를 변화시키게 되는 공부의 과정이다. 하시는데, 그 흐름에 20년 전에 꿈 일기를 쓰셨다고 하는데, 20년만에 책이 나왔어요. [자각몽] [삶을 깨우는 기술]을 번역하셨는데, 자각몽은 우리가 꿈을 꾸는 줄 알고 꾸는 꿈이래요. 자각몽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을 좀 더 변화시킬 수 있고, 연습과 수행이 필요하다고 책에서 하고 계시는데, [자각몽] 이야기를 선생님을 통해서 듣고 싶어요.
선생님 : [자각몽]이라고 번역이 된 책인데요. 샨티출판사 친구들이 3년 전인가, 번역을 해달라고 해서 맡아서 번역을 했습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읽기가 쉽지는 않아요. 저도 번역하면서 딴에는 고생을 좀 했습니다. 왜냐하면, 일상생활의 경험과 거리가 먼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번역하기도 어렵기도 했습니다만, 제가 다시 책으로 나온 책을 읽어보니까 참 좋은 책이다. 생각이 듭니다. [자각몽] 서양사람들은 꿈을 학문으로 깊게 하는가 봐요. 네팔같은데서는 몇 년 전부터 꿈을 하나의 과학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꿈 이야기를 우리가 자면서 꿈을 잘 소중하게 여기고 잘 대접하면 꿈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주 많다. 그런 얘기예요. 보통 꿈을 꿔서 무시해 버리면, 그 꿈이 가까이 다가오기 어렵죠.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잘 들여다보면, 재미가 나서 자꾸만 온단 말이예요. 결국, 20년 넘게 꿈을 꾸면서, 그것을 통해서, 새벽에 온 꿈처럼 가르쳐 주시고, 잘못한 것을 지적도 해주시고 [자각몽]을 다시 읽으면서 착실하게 읽어보시면, 어쨌든 꿈들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들 꿀테니까, 꿈과 나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이 사람이 쓴 제목은 [맑은 꿈] 이예요. 영어로는 기억이 안 나요. 꿈을 꾸면서 이것이 꿈이라고 선명하게 알면서 꾸는 꿈, 그것을 [자각몽]이라고 해요. 여러분, 그럴 때 있죠? ‘이건 꿈이야.’ 하실 때, 있죠? ‘이건 꿈이야.’ 알면 재미 있어요.
한번, 제가 꿈을 꿨는데, 아주 예쁜 선물을 받았어요. 벼루를 선물을 받았는데, 용무늬가 새겨져 있고, 비싼 벼루를 마산에 있는 어떤 수녀님이 저한테 소포를 보냈어요. 딱 보니까 아주 예쁜 돌로 만든 벼루예요. 저한테 ‘좋아할 거 없어. 꿈이야.’ (웃음) 꿈이니까 깨면 없잖아요. 꿈에서는 끔찍한 사건도 겁 없이 볼 수 있어요. 꿈인데 뭘. 꿈이니까 즐길 수도 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꿈을 저가 조정한대요. 꿈에 가고 싶은 곳은 간대요. 저는 아직까지 거기까지는 못 가봤고, (웃음) 사실 그러고 싶지도 않아요. 가짜 꿈인데 뭘. (웃음) 나한테 찾아오는 꿈이나 내가 잘 해석하지. 딴 꿈까지 쫓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세상일도 내가 조장하고 싶지도 않고, 꿈에 대한 학문을 얘기한 것 같습니다. 관심있으시면 읽어보시면 됩니다. 이 친구는 제 귀입니다. (웃음)
사회자 : 지금부터는 질문과 함께 진행해보려고 하는데요, 질문지를 모아주시면 됩니다. 선생님의 제자 두분이 재롱잔치를 하겠다는데요. 향아님, 범강님 나와주세요. (웃음)
선생님 : 진심으로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존경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친구들입니다. 두 사람만 그렇지는 않지만, 여러분들 여기 계신 한분한분 제가 볼때는 제가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 친구는 지난 해에 아프기도 했는데, 서각하는 친구인데, 나도 오랜만에 봤어요, 뭐 쇼하겠다고? (웃음)
범강 : 지금은 예행 연습이고, 구순 때 제대로 하겠습니다. (박수)
향아 : 선생님 말씀하실 때, 제일 앞자리에서 자자 하고 나왔습니다. 선생님 앞에서 오늘은 땡깡한번 부려보자. (웃음) 못난 세 놈을 엮어서 말씀 주신 것으로 노래하겠습니다. (박수) 이 세상 어딘가에 저를 향하여 보통 강을 건너는 한 사내가 있나니...저의 세 놈에게 주신 이름으로 노래를 했습니다. (박수) 앉아 계셔야 절해요. (그러면 하지 말아.) (서로 사람들을 향해 절을 한다.)
사회자 : 저는 흉내 낼 수도 없는 어르신들의 몸짓과 마음짓입니다. 뭉클하네요. 질문과 함께 선생님과 놀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 선생님, 꿈을 꾸시고 현실에서 생활할 때 구체적인 도움을 받은 사례가 있을텐데요. 기억나는 것 하나 알려주세요.
선생님 :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네요. (웃음) 저는 소위 말하는 예지몽 같은 것과는 거리가 있어요. 미리 어떤 일이 일어나는 꿈 있잖아요. 그런 꿈을 잘 꾸시는 분이 있더라구요. 저희 고모님같은 경우에는 그랬어요. 저희 어머니 돌아가실 때, 어머니 돌아가시기 이틀 전인가, 고모님이 꿈을 꿨대요. 어느 강가에 갔는데, 어떤 잘생긴 남자가 왔다갔다 하더래요. 웬 남자가 강각에서 왔다갔다 하나, 가까이 가서 보니, 오빠더래요, 우리 아버지죠. 막내 고모니까. “오빠!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이 사람이 올 때가 됐는데, 아직 안 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꿈을 꾸신 거예요. 그런 것을 예지몽이라고 그러죠. 그런 꿈을 잘 꾸시는 분들이 계세요. 저하고는 관계가 별로 없구요. 저는 그것이 잘 안돼요. 꿈이라는 것이 그냥 맘대로 꾸는 겁니까? (웃음) 저 책을 쓴 도사는 자기 맘대로 꾼다고 그러더구만. 저는 그러고 싶지도 않고, 꿈은 선물이예요. 꿈을 꿨기 때문에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은 저한테는 기억이 안 나요. 그러나, 이런 것은 있어요. 전반적으로 가르쳐주시니까 저도 모르게 현실에서 나오기는 하겠죠.
한가지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 있었어요. 어느 날, 꿈인지 모르겠는데, 서울에 가면 명동에 향림교회라고 있어요. 그 교회에 제가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겁니다. 가는데, 사람들한테 묻혀서 들어갔죠. 저 쪽에서 향림교회 목사님이 저를 보시고 잘 왔다고. 이 목사 잘 왔다고 온 김에 설교 좀 하라고. 저는 여기에 설교하러 오지 않았는데, 못하겠다고 그랬죠. 그러지 말라고, 설교를 이왕 왔으니까 설교하라고. 자기 가운을 벗어서 나한테 입혀주는 거예요. 꿈이지만, 명색이 목사인데, 설교하라면 하는 거지 뭐. 하고 들어갔어요. 그사이에 꿈이 끝났어요. 한참 있다가 다른 꿈이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교회 식당이예요. 작은 식당에 여자 집사님들이 몇 사람 앉아 가지고 요리를 준비하는 거예요. 제가 거기에 앉아있어요. 거기 앉은 집사님한테 제가 물어요. “집사님, 여기 보리쌀 있어요?” 보리쌀 있대요. “고추장 있어요?” 고추장도 있대요. “그럼 잘 되었네. 보리밥 지어서 고추장에 싹싹 비벼 먹읍시다.” 그렇게 하고는 설교 끝. (웃음) 그 때 제가 얻은 것이 설교가 뭐냐.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거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디 계시냐? 보리밥 속에 있다. 고추장에 싹 싹 비벼 먹는, 다시 말하면, 우리 일상 생활 속에 있는 거야. 저 히말라야 갈 거 없다. 이런 메시지였어요. 매일 같이 먹는 밥, 거기에 저 분이 숨어계신다. 그런 말씀을 차려서 그것이 진짜 설교다.
어느 날, 보니까 성 프란체스코 성인이 그러셨대요. “밤낮없이 설교하시오. 부득이한 경우에 강대상에서 해도 됩니다,” (웃음) 멋있는 말이예요. 강대상에서 하는 경우에는 부득이한 경우에 하래요. 밤낮없이 설교하라는 것이 뭐예요. 내 삶 자체가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간디가 “당신 메시지가 뭐요?” “My life is my message.” 멋있는 말이예요. 그런 생각을 해요. 저에게 꿈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꿈의 내용은 나도 모르게 현실에 적용이 되겠죠. 아직 저는 성지 순례 같은 거 해 보지 않았습니다. 누가 저보고 해 보라는데, 나는 생각이 없어요. 왜냐하면, 여기가 저에게는 성지입니다. 뭐하러 가요. 전부 제가 꿈에서 조금씩 조금씩 배운 겁니다.
질문 : 선생님, 저는 왜 꿈을 기억하지 못 하는 걸까요? 저도 분명 꿈을 꿀 텐데요.
선생님 :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자기 전에, 정말 꿈을 기억하고 싶다면, 기억이라는 것은 내 의지와 관계가 없습니다. 경험해 보니까, 기억해 라고 하면 더 안 돼요. 그렇죠? 이름이 뭐더라? 암만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요. 그런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딱, 떠오를 때가 있죠? 기억이 그래요. 제 의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기억이 나면 나는 거고, 안 나면 기억이 나게 하는 방법이 없어요. 나는 왜 기억이 안 날까요? 하신 분에게 한 가지 제가 팁을 드리자면, 주무시기 전에, 잠 드시기 전에 한 번 자기 자신에게든지 아니면, 기독교 신자면 하나님 있잖아요. 불교 자면 부처님이 있고, 아니면 천지신명에게도 좋아요. 부탁하세요. 꿈을 꾸면 이것 좀 기억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참 좋겠습니다. 한 번쯤 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마 기억 날겁니다.
질문 : 기도를 하면서 과연 이런 기도가 의미가 있는 것인지, 신께서는 과연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도 이런 경우가 있는지요. 있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선생님 : 기도라는 것이 뭘까요? 자기 혼자 할 수 없잖아요. 어떤 대상이 있어야 하잖아요. 하나님에게, 마리아에게, 자기 조상에게 대상이 있어서 하는 거지요. 어떤 일이 있냐, 없냐, 그것은 다 내가 걱정 해요. 의미가 있다면 저 사람이 평가하는 거죠. 한 가지 조건만 얘기합니다. 기도할 때 이것만 지켜라. 솔직하게 해라. 근사한 기도하지 말고 솔직하게 해라. 왜냐하면, 사람은 우리 말에 속지만, 저 양반은 말에 안 속드란 말입니다. 내 속이 뻔히 어떤지 아는데, 일부러 다른 말을 해? 그런 것은 저 분을 모욕하는 거다. 그러지 말고 정직하게 하면 된다. 어떤 내용이냐? 그건 정직하면 되니까.
제가 세기의 기도라는 책이 있는데, 번역하다 보니, 성공회 신부인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친구 기도가 기억이 나요. “하나님, 아무개 그 녀석 정말 개 같은 자식입니다. 생각만 해도 화딱지가 나서 참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기도 했어요. “이렇게 이른다고 해서 나한테 이로운 것 하나도 없다는 것 나도 압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 견딜 수 없습니다. 고놈 정말 고약한 놈입니다.” 그렇게 기도 하더라구요. 그게 기도예요. 데이빗 홉킨스라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기도 했다 잖아요, 자기가 온 몸에 병이 들어서 고칠 수가 없고, 안 고쳐지고 의사인데, 절망가운데 있다가 자살까지 생각하다가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다들 갓, 갓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자기는 무실론자 예요. 다들 하나님 하니까, 혹시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난 안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존재한다면? 이런 것이 떠오른 거예요.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불러보자. “난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모르지. 저도 몰라요. 나 하나님 안다? 그러지 말라고 그래요. 지가 어떻게 알아요? 모릅니다. 몰라요.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머리가지고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말도 안 돼요. “나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당신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만약에 당신이 있다면, 날 좀 도와주시오.” 이렇게 했답니다. 그 기도가 자기 삶에 정리가 되었고,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을 책에서 읽었어요. 그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솔직하게, 그것이 진짜 기도지요. 그 기도를 듣고 응답하느냐, 그것은 백 프로 하늘이 하시는 거죠.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해 줄 거라는 환상만 있지 않으면 돼요. (웃음)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 해 보세요. (웃음)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해주시는 것이 응답이었구나. 그것을 깨닫고 감사하세요. 내가 해달라는 대로 해 줬으면 큰일 납니다. (웃음) 김교신 선생님이 12월 23일 날, 재야의 기도를 하십니다. “ 하나님, 1년 동안 제 기도를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기도를 안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기도 하셨어요. 기도를 어렵게 생각하실 거 없어요. 해 보십시오. 기도를 어떻게 하냐고요? 숨은 어떻게 쉽니까? (웃음) 그것을 어떻게 설명 해요? 해 보세요. 답답할 때 있잖아요. 어떻게 해야할지 길을 알 수 없을 때 있잖아요. 제가 어떤 사람이 제안하는데 응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 암만 생각해도 모를 때가 있을 때가 있잖아요. 길이 두 개인데, 몸이 두 개면 양쪽 다 가고 싶은데, 한 개밖에 없어서 한 개는 취하고 한 개는 버릴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어떤 것을 취해야 할지 난 모르잖아요. 이 길이 어떻게 될지 나는 모른단 말이예요. 그 때가 찬스예요. 기도하는. 네비게이션 같은 거예요. 네비게이션 가지고 다니면 처음 다니는 길을 겁 없이 가잖아요. 다 알려줘요. 내가 어디 있는지. 내가 가는 길이 어떻게 다른지. 다 알아요. 저 위성에서 보니까 훤히 길이 보이는 거예요. 여기서는 길이 안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쓰는 거예요. 길이 막힐 때, 어느 길이 뚫렸는지, 어느 길이 막혔는지 이 네비게이션이 기도예요. 코스는 정해졌어요. 가다가 기름이 떨어졌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기름 채워 가야 하잖아요. 주유소에 들러서. 그것이 기도예요. 신호가 오는 거예요. 나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을 알아요. 저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것도 알아. 해도 안 돼. 생각만 해도 화딱지가 나고, 용서는 커녕 더 미워져. 어떻게 하면 좋으냐. 그때 기도해야 해요. 그게 기도라. 내 힘으로가 아니라 당신의 힘으로 저 사람을 용서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해 보세요. 됩니다. 안 될 리가 없어요.
제가 한 번 꿈에, 어떤 여자인데, 할머니인데 얼굴이 어쩌면 그렇게 예뻐요. 소녀 같아요. 청순함. “당신은 그렇게 나이가 많은데, 어떻게 얼굴이 그렇게 맑고 깨끗합니까?” 하고 물었어요. 자기 얘기를 해요. 자기가 정신대 출신이래요. 정신대 아시죠? 만주 어디 가서 몸이 망가져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자기가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그 아픔을 깊이 묻어두고 아무도 모르게 감춰두고 오랜 세월 살았대요. 그래도 그 상처가 남아있는 거예요.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정신대 문제가 사회문제로 이슈가 되면서 한사람, 두사람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커밍아웃. ‘일본은 사과하라.’ 이것도 하고 ‘보상하라.’ 하기도 했는데,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화가 나고, 더 불편하더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안하잖아요. 저 놈들이. 세상에, 사과하라는 것 만큼 그것이 무슨 짓입니까? 사과는 미안하게 생각하는 놈이 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 하라 그러는 거예요. 사과받는 겁니까? 난 이해가 안 가요. 사과가 뭡니까? 잘 못한 놈이 하는 거 아니예요? 잘 못한 거 없다는 놈이 하라고 하라고 하니 내 입만 아프죠. 점점 더 자기가 힘들드라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한테 갔대요. 부처님한테 가서 그 사람들 막 얘기하고 점점 편하게 되고, 이건 제 꿈 얘기입니다. (웃음) 오해하지 마세요. 실화가 아닙니다. (웃음) 그랬더니, “용서해라.” “알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용서할라고 하니까 안되더라는 거예요. 용서할라고 하니까 도 안돼요. 용서해야한다는 것은 아는데, 안되는 거에 자기가 더 불만인 거예요. 더 힘든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한테 한번 더 갔대요. “저 이렇습니다. 용서할라고 해서 용서하려니까 더 안 되는 거예요. 그러고 용서 안 하는 내가 또 용서가 안 돼요.” (웃음) 팔을 딱 벌리고, “내 품에 안겨라.” 부처님 품에 안겼대요. 안기니까 눈이 밝아지면서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란 말입니다. 용서할 사람이 없더라는 거예요. 뭐 그런 꿈을 꿨습니다. 그래요. 부처님 품에 안겼다는 얘기는 부처가 됐다는 얘기예요. 부처한테 누가 용서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용서할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내가 상처를 입었다는 얘기인데, 내가 피해를 봤다는 얘기인데, 부처님이 누구한테 상처를 주고, 누구한테 피해를 주겠어요. 모든 사람들이 다 짠하고, 大悲 자식처럼 사랑하게 된거죠. 자기가 그렇게 됐더라. 꿈에. 내가 부처한테 안기니까 내가 부처가 되더라. 기도는 두가지, 어떻게 기도할까? 원래 가르쳐 주셔요. 길을 갈 때, 힘이 없을 때, ‘나 좀 도와주시오.’‘내가 할 수 있게끔 해주시오. 내 힘으로가 아니라 당신의 힘으로 내가 저를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시오.’ 이것도 기도라고 생각해요. 내용은 신경쓸 거 없이 정직하게만 하십시오.
질문 : 슬퍼할 일도 눈 부릅뜨고 분노할 일도 어찌다가 그리 되었습니다. 그냥 오늘도 어제 같고, 어제도 오늘 같은 날을 살아가게 되는 건지요. 그렇다고 딱히 뭘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임시방편으로 날아가도 좋습니다. 이게 정말인지 불안합니다.
선생님 : 그래서, 이런 마음수련도 하고 그런 겁니다. 그래서요. 명상도 그래서 하는 거구요. 책도 그래서 읽는 거구요. 완벽한 사람이라면 그런 것 필요 없잖아요. 이번 기회에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어쨌든 간에 내가 이 상태로는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이 상태에서 내가 해방될 것인가를 분명하게 생각하시고 이대로 살고 싶지는 않다. 바르게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진심으로 한 번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누구 상의할 것없이, 자기가 알잖아요. 이렇게 어저께나 그저께나 똑같이 뭐가 뭔지를 모르면서 이렇게 살지 않고 한순간 살더라도 매일 뭘 하자는 건지 어디로 가자는 건지 정말 알고 싶다. 이런 마음을 독하게, 간절하게 먹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됩니다. 어느 나라 속담인지 모르겠지만, ‘학생이 준비되면 선생이 나타난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진짜예요. 내 속에 의문을 가지고 알고 싶은 질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적당할 때 풀어줄 스승이 나타나더라구요. 제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저도 직접 경험하면서 같이 가고 있는 스승도 있고, 300년 전에 살다 가신 스승도 있고, 2천년 전에 사시던 분도 스승이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알뜰하게 살아봐라. 알차게 한 번 살아봐라. 가르쳐줄 분이 마땅히 나타날 거라고 봅니다. 그런 마음을 간절하게 먹어보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 선생님 일기를 읽다 보니 끝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저의 마음도 이래서 적어왔는데요. ‘이 꿈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두자. 알 때가 되면 알겠지.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에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고 온 길보다 가야 할 길이 더 먼 학생으로 살아가리라.’ 오늘 선생님 모시고 말씀 들었는데, 저희도 선생님 가는 발자취를 따라서 한걸음 한걸음 가는 학생의 길을 가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오늘, 선생님과 말씀 나누면서 오늘이 전시회 기간중에 선생님을 오롯이 만나는 날이었어요. 옆에서 선생님을 뵌니 너무 간곡한 마음이 전해졌어요. 여러분의 질문에 선생님이 성큼 앞으로 나오시는 간곡하고 간절한 마음이 전해져서 너무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셨죠? (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말씀 청해보겠습니다.
선생님 : 사랑어린학교 아이들이 자주 하는 기도가 있어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 한님께 기도드립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님이라는 말은 영어로 The One 이잖아요. 우리말로 갓 하다가 한님, 하나님을 그리 부르게 된겁니다. 같은 분을 이름으로 하나라는 뜻으로 전부터 하늘에 있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절대적인 하나, 그런 뜻으로 우리 꼬맹이들이 하고 있어요. 저들은 한님이 무슨 말인지도 모를거예요. (웃음) 어느 날 알게 되겠죠. 저도 저를 가만히 생각하면 뭔지도 모르고 기도한 것 같아요. 한님의 내용은 알 수 없는 겁니다. 알려도 하지도 마세요. 잘 안 됩니다. 그러나, 느낄 수는 있대요. 느낌으로만 아는 거예요. 제가 지금 생각해보는데,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인가, 얘기 좀 해도 되요? (네.)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여름인지 겨울인지, 방학 되면 엄마가 외갓집으로 큰집으로 먹을 것을 벌어야 돼서 보내요. 저는 외갓집으로 발령되었습니다. 갔더니, 외할머니가 제천 외갓집 갔는데, 충주 집으로 가래요. 한 달 있어야 되는데, 그 다음 날 저보고 집으로 가래요. 이만한 단지가 있어요. 단지를 엄마 갖다 주래요. “이게 뭐예요?” 하고 물었더니, 동네 청년이 어디서 구렁이 한 마리를 잡은 거예요. 산 채로. 구렁이를 단지 속에 넣어가지고 뚜껑이 없으니까 깡통 따고 남은 것으로 새끼 줄을 묶어서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서 엄마를 갖다 주라는 거예요. 아버지가 워낙 가난해서 영양보충 할 것이 없어요.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아버지 선배래요. 와서 얘기하는데, “간단해. 잘 먹고 잘 쉬면 나아.” 그러는데, 나는 꼬맹이었는데도 그 말 듣고 속상하더라구요. 아버지는 먹을 게 있어야 잘 먹지요. 잘 쉬래. 어떻게 쉬어. 일해야 하는데. 당신은 잘 살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 아버지한테 그런 소리 하는 것이 아니지. 어린 속에도 화가 났어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아무나한테 아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괜히 화가 나네. (웃음) 그 구렁이를 보고 할머니가 사위 생각을 한 거예요. 영양보충하라고 그것을 가지고 가래요. 그것을 가지고 그 박달재를 넘어서 그 때는 지나가는 군용트럭이 버스였어요. 손들면 태워줬어요. 지나가는 쓰리쿼터가 있어요. 지나가는 기사가 타래요. 원래 쓰리쿼터는 앉는 의자가 있는데, 그 차는 없어요. 할 수 없이 그것을 깔고 앉았어요. (웃음) 비포장도로를 60리길을 달려가서 내렸어요. 아이가 앉아서 계속 누르니 뚜껑이 없어져서 구멍이 뻥 뚫려서 뱀이 낼름거리는 거예요. (웃음) 얼마나 겁이 났는지, 이만한 돌을 덮고 엄마한테 얘기를 했죠. 그 다음 날, 원래 제가 새벽 잠이 많은 사람이예요. 해가 떠도 잘 안 깨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많이 들은 말이 “야, 이놈아 일어나라, 해가 똥구멍을 찌른다.” (웃음) 그 날, 이상하게 잠을 깼어요. 그래서, 오줌이 마려우니까, 뒤로가면 아카시아 나무가 있고, 거기가 소변누는데예요. 거기로 갔더니, 엄마가 나무에다가 구렁이를 걸어놓고 잘 들지도 않는 그 칼로 껍질을 벗기고 있어요. 그 때 우리 어머니가 33살? 그 껍질을 벗기는데 그게 잘 안 벗겨지잖아요. 그것을 이렇게 보다가,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노래가 나왔어요. 지금도 생각이 나요.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그 노래가 왜 생각이 나는지 미스테리예요. 손 든다는 것이 뭡니까. 나 졌다. 내가 살고 죽는 것은 이제 너한테 맡긴다.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오지 말라고 하시면 나 어디로 갑니까. 어머니가 보시고, 뒤로 돌아보니까 요녀석이 그런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와서 꼭 안고 그 노래를 같이 불렀어요. 지금 기억나는 것이 저 분도 그러신 것 같아요. 한님이예요. 한님은 계십니다. 한님이 안 계시다고 얘기할 수 없어요.
얼마 전에 6월에 저희 집이 다 탔잖아요. 불이 다 탔어요. 저는 책, 옷은 그래도 남았는데, 제 아내는 양말하나없이 다 타서 없어져 버렸어요. 전부. 깨끗하게 없어졌어요. 자기가 불던 악기, 악보, 다 없어져 버렸어요. 아주 소중하게 여기던 악기가 있었어요. 그것도 없어졌어요. 이 람이 언젠가 생각 했대요. ‘내가 평생 음악을 하던 사람이고, 앞으로도 내가 음악인이라고 하는데, 평생 음악을 하고 싶다. 하나님이 악기를 주신다면 다시 한번 음악을 하고 싶다. 이번에는 영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 spiritual. 원초적인 소리를 찾아가는 음악을 하고 싶다.‘ 이런 말을 하면서, ’그러나 돈도 없지만 내 돈으로 사지는 않겠다. 하나님이 혹시 주시면 한번 해보고 싶다.‘ 이런 얘기를 저한테 했어요. 얼마 안 있어서 어떤 사람한테 전화가 왔대요. 서울 어디에서 만나자 해서 저도 같이 갔지요. 갔더니, 청담동 어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대접받습니다. 그 사람이 악기 가방을 하나 꺼내요. 자기가 불던 악기인데, 이 사람 생각이 났대요. 이 사람이 서울 시향에 있을 때, 제 아내는 플룻이 전공인데, 알토 플룻을 가끔 부를 때가 있대요. 우리나라에 알토 플롯을 가진 사람이 한,두 사람밖에 없었대요. 그 사람의 악기를 빌려다가 불렀답니다. 바로 그 악기예요. 그것을 가져 왔어요. 마음속으로 생각 했대요. ’하나님이 주신다면 알토 플롯을 주시면 좋겠다.‘ (웃음) 제 손으로 줬던 악기가 달퉁이라고, 참 좋아했는데, 소리가 참 좋았어요. 대나무에 알토 자를 붙여서 달퉁이라고 불렀는데, 다시 자기가 악기를 가진다면 알토 플롯을 가지면 참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대요. 제가 그랬어요. “이래도 한님이 없다고 그럴래?” (웃음) 제가 아내한테 부탁을 했어요. 혹시, 가능하면, 연주해줬음 좋겠다. (박수) 지금은 저렇게 번적번쩍 하는데요. 처음 받을 때는 은이 때가 많이 묻어서 칙칙했어요. 하도 오래 안 불러서.
알토 플롯 연주 – 천부여 의지 없어서. 하늘의 양식
관옥목인원 학생들이 함께 싱잉볼 “관옥의 노래”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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