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2장 1-7절.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서라
1. 골로새서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 죄인들을 마귀와 지옥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으로 구원하신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마귀와 죄와 지옥에 종노릇 하다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는 이제 이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힘을 다하여 수고와 봉사를 해야 하겠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2. 오늘 2장 초두에서는,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인들을 얼굴로는 보지 는 못한 교인들이지만, 그들을 위해서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는 것은 골로새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서서, 공교한 말로 속이는 이단에 넘어가지 말고, 예수 믿음에 굳게 서도록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6-7절은 세 가지로 강조하면서, ① 나그네 같은 인생길에서 그리스도를 거처로 삼고 그 안에서 살아가라는 것과, ② 크게 자란 나무처럼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굳게 박으라는 것과, ③ 튼튼한 건물처럼 그리스도를 기초석으로 삼고 그 위에 말씀을 믿음으로 견고한 건물로 지어져 가라고 교훈합니다.
3. 오늘의 설교 제목은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서라>입니다.
먼저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서 늘 기도할 정도로 골로새 교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많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 want you to know how great a struggle I have on your behalf and for those who are at Laodicea, and for all those who have not personally seen my face,
내가 너희와--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Θέλω γὰρ ὑμᾶς εἰδέναι ἡλίκον ἀγῶνα ἔχω ὑπὲρ ὑμῶν
I want for you to have known how great struggle I have for you
‘얼마나 힘쓰는지를’은 직역하면 ‘어떻게 큰 투쟁을 내가 가지고 있는지를’이란 뜻인데, 동사(ἔχω)는 현재형이고(I have), ‘알기를’(εἰδέναι)은 완료 부정사형 동사이고(to have known), ‘내가 원하노니’(Θέλω)는 현재형으로서(I want) ‘내가 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καὶ τῶν ἐν Λαοδικίᾳ καὶ ὅσοι οὐχ ἑόρακαν τὸ πρόσωπόν μου ἐν σαρκί,
and the in Laodicea and as many as not have seen the face of me in flesh
‘보지 못한’에서 동사(ἑόρακαν)는 완료형으로서(have seen) ‘본적이 없는’이란 뜻입니다.
1.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는 뤼커스 계곡을 중심으로 한 삼각지대 도시들이었고, 그곳에 있는 교회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간 전도할 때(사도행전 20:31) 바울에게 복음 전도를 받은 에바브라가 세운 교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육신으로 내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 라오디게아는 소아시아에서 상당히 번영한 도시였으며, 의학도 발달된 곳이었고, 직경이 300미터나 되는 연극장도 있었으나,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습니다.
2. 골로새 교회는 바울 사도가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도 역시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또 4장 13절에 나오는 히에리볼리 교회도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면, 바울과 이 세 교회들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길래, 바울 사도가 이처럼 간절한 마음과 애정을 가지고 기도하고, 교훈하며 지도하고 있을까요?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바울 사도는 AD 54-56년까지 3년 동안 에베소에 머물면서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기록을 보면, 에베소가 소아시아 전역에서 제일의 행정 수도이기 때문에, 소아시아의 각 지방에서 에베소로 행정사무와 물건구매를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이 두란노서원에 들려서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라는 바울에게서 예수님을 믿고서,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와 히에라볼리 교회를 세웠습니다.
특히 골로새 교회는 바울에게서 예수를 믿은 빌레몬이 장로로 시무하면서, 온 가족이 교회를 잘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골로새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히에라볼리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설립한 교회는 아니지만, 바울의 제자들이 세운 교회들로서, 바울 사도의 말씀의 지도를 받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교회들을 방문하지 못하여, 육신의 눈으로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3. 특별히 골로새 교회를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영지주의 이단이 교회에 침투했기 때문에, 이단을 방지하기 위해서 본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영지주의 이단의 특징은 네 가지였습니다.
① 헬라철학
② 율법주의
③ 신비주의
④ 금욕주의
4.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힘쓰고 있다는 것’(ἀγῶνα)은 간곡히 기도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4장 12절에서 ‘애써 기도한다’고 할 때도 이 ‘힘쓰는 것’(ἀγωνιζόμενος)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바울 사도가 눈으로 직접 보지도 못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2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2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at their hearts may be encouraged, having been knit together in love, and attaining to all the wealth that comes from the full assurance of understanding, resulting in a true knowledge of God's mystery, that is, Christ Himself,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ἵνα παρακληθῶσιν αἱ καρδίαι αὐτῶν,
that may be encouraged the hearts of them
직역하면 ‘이는 그들의 마음들이 위안을 받게 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위안을 받기 위함이라’(παρακληθῶσιν)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로서(may be encouraged) 그들의 마음이 확실히 위로받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συνβιβασθέντες ἐν ἀγάπῃ
having been knit together in love
‘연합하여’(συνβιβασθέ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knit) 원래 두 천 조각을 기워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사랑으로 확실히 연결되고 하나가 되어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καὶ εἰς πᾶν πλοῦτος τῆς πληροφορίας τῆς συνέσεως,
and to all riches of the full assurance of the understanding
직역하면 ‘이해로 인한 온전한 확신이 완전히 가득하게 되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εἰς ἐπίγνωσιν τοῦ μυστηρίου τοῦ Θεοῦ, Χριστοῦ,
to knowledge of the mystery of the God, Christ
동사가 없는 명사구를 풀어서 번역한 것입니다.
1. 본 절은 바울이 심려를 하면서 기도하는 기도의 목적을 말합니다.
이처럼 바울이 기도한 기도의 목적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로, 골로새 교인들이나 라오디게아 교인들, 히에라볼리 교인들이 마음에 위안을 받고, 믿음에 굳게 서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로, 성도들끼리 사랑 안에서 서로 연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셋째로, 진리에 대한 원만한 이해와 풍부한 이해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알아 서로 사랑하고 연합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성도들이 깨닫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2.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인 이유는 인간의 지식으로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인간에게 계시하여 주셔야만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를 따라 섬기다가, 죄에 빠지고, 죽어 지옥 가게 되었습니다.
지옥 가도록 운명지어진 불행하기 짝이 없는 인간은 아무리 자기 힘으로 노력하고, 연구하고, 발버둥을 다쳐도 지옥 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당신의 귀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인간 대신 죽게 하시고, 죄와 마귀와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인간의 지식과 경험과 탐구와 노력으로써 발견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셔야만 믿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절대 <비밀>이십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다고 말합니다.
3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n whom are hidden all the treasures of wisdom and knowledge.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ἐν ᾧ εἰσιν πάντες οἱ θησαυροὶ τῆς σοφίας καὶ γνώσεως ἀπόκρυφοι.
in whom are all the treasures of the wisdom and of knowledge hidden
‘감추어져 있느니라’(εἰσιν--ἀπόκρυφοι: are--hidden)에서 뒤의 단어(-ἀπόκρυφοι)는 형용사이고(hidden) 앞의 동사(εἰσιν)는 현재형입니다(are).
1. 당시 이단인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만이 천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영지주의나 유대교 에쎈파에서는 극비 문서를 가지고 있으면서 소수의 사람들만이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는 광산처럼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마태복음 13:44 참조)
여기 ‘모든’(πάντες, all)이라고 표현한 것은 2장 8절에 나타난 영지주의 이단과 2장 18절에 나타난 천사 숭배자들은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것을 첨가해서 더 완전한 구원을 주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단들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 자기들만의 특별한 구원 진리를 첨가해서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지식과 지혜는 죄와 마귀와 지옥에서 영원한 천국으로 구원하시는 비밀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지극히 귀한 보화인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 대한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탐구나 신비적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님의 은혜로 깨닫게 하시고, 성령님의 감동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2) 바울 사도가 이처럼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이고,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이 감취어 있다고 말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영지주의 이단이 자기들만 구원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자기네 집단에 들어와야 참된 지혜와 지식을 전수받게 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지주의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수 천 개의 이단들이 다 자기네 집단에 들어와서, 자기네 집단의 ‘비밀 교리’를 전수받아야 참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고, 오직 예수 밖에는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4:12)
영지주의 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통일교 (구원파, 귀신론, 신천지 등도) 같은 데서는 자기네 원리강론만이 참된 구원의 지식과 구원의 지혜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이나 앞으로도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4절.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say this so that no one will delude you with persuasive argument.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Τοῦτο λέγω ἵνα μηδεὶς ὑμᾶς παραλογίζηται ἐν πιθανολογίᾳ.
this I say that no one you might delude in persuasive speech
‘이것을 말함은’에서 동사(λέγω)는 현재형으로서(I say)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이란 뜻입니다.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에서 동사(παραλογίζηται)는 현재 가정법 동사입니다(might delude).
1. ‘교묘한 말’(πιθανολογίᾳ)이란 올바른 진리 대신에 그럴듯한 이론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속이지’(παραλογίζηται)란 단어는 원래 속여서 계산하는 것(miscalculate)을 가리켰으나, 속이는 논쟁을 하는 것(reason falsely)을 뜻하고 있습니다.
5절.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even though I am absent in body, nevertheless I am with you in spirit, rejoicing to see your good discipline and the stability of your faith in Christ.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εἰ γὰρ καὶ τῇ σαρκὶ ἄπειμι,
if truly for in the flesh I am absent
‘왜나하면’(γὰρ, for)이란 단어가 있어서 전 절에 대한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떠나 있으나’(ἄπειμι)는 현재형입니다(I am absent).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ἀλλὰ τῷ πνεύματι σὺν ὑμῖν εἰμι,
but in the spirit with you I am
‘있어’(εἰμι)는 현재형입니다(I am).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χαίρων καὶ βλέπων ὑμῶν τὴν τάξιν καὶ τὸ στερέωμα τῆς εἰς Χριστὸν πίστεως ὑμῶν.
rejoicing and seeing your good order and the firmness of the in Christ faith of you
‘기쁘게 봄이라’(χαίρων καὶ βλέπων)는 직역하면 ‘기뻐하면서 봄이라’는 뜻입니다.
‘기뻐하면서’(χαίρων)는 현재분사로서(rejoicing) 기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봄이라’(βλέπων)도 현재분사로서(seeing) 계속 보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바울은 육신적으로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으나, 마음으로는 골로새 교인들과 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질서 있게 행하고, 믿음이 굳건한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질서 있게 행하는 것’(τάξιν, good order)은 군대가 질서 있게 대열을 갖추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믿음이 ‘굳건한 것’(στερέωμα, firmness)은 굳건하게 무장된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골로새 교인들이 이단에 대한 영적 전투 태세가 잘 갖추어져 있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영적 무장이 잘 되어 있어서, 이단들과 영적 전투를 할 준비가 잘 갖추어져 있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이처럼 골로새 교인들이 믿음 생활을 굳게 잘 해왔지만, 영지주의 위협 앞에서 더욱 그리스도 안에 믿음의 뿌리를 굳게 내려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6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as you have received Christ Jesus the Lord, so walk in Him,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Ὡς οὖν παρελάβετε τὸν Χριστὸν Ἰησοῦν τὸν Κύριον,
just as therefore you received the Christ Jesus the Lord
‘받았으니’(παρελάβε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received) 과거에 확실히 받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 안에서 행하되
ἐν αὐτῷ περιπατεῖτε,
in Him walk
‘행하되’(περιπατεῖτ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walk) ‘행하라’는 뜻입니다.
1.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표현은 중요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영지주의 이단은 ‘그리스도’와 ‘예수’를 다른 존재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절대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영지주의지들은 예수는 인간이고, 그리스도는 영적인 존재라고 분리해서 잘못된 주장을 했습니다.
당시 모든 사도들과 성도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했고, 언제나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마태복음 1:1, 마가복음 1:1, 누가복음 9:20, 요한복음 20:31, 사도행전 2:38, 로마서 1:1, 고린도전서 1:1, 고린도후서 1:1, 갈리디아서 1:1, 에베소서 1:1, 빌립보서 1:1, 골로새서 1:1, 데살로니가전서 1:1, 데살로니가후서 1:1, 디모데전서 1:1, 디모데후서 1:1, 디도서 1:1, 빌레몬 1:1, 히브리서 13:8, 야고보서 1:1, 베드로전서 1:1, 베드로후서 1:1, 요한일서 5:1, 요한이서 1:7, 유다서 1:1, 요한계시록 1:1 등 다수)
2.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와 계신 것을 가리키고, ‘그리스도’란 명칭은 구약에서 ‘메시야’로 약속된 분임을 뜻하고, ‘주’란 표현은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이시란 뜻입니다.
3.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성령님이 그렇게 하게 하신 것이고(고린도전서 12:3),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요한복음 3:5).
이제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에 ‘그 안에서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 안에서 행한다’(περιπατέω)는 것은 그 안에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즉 아버지 집에서 아들로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 집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결혼한 여자는 남편과 함께 살아가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고 살게 되었으니, 이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와 계시며,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에게 감동하셔서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께로 가시면, 예수님 대신에 보혜사 성령님을 예수님 대신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6).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연합된 삶을 살아야 열매 맺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에베소서 5장에는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비유해서 말씀했는데,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상의해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상의하지 않고 따로따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처신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우리는 자녀라고 했는데, 가정에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도 한집에 살면서 날마다 서로 말하고 상의하면서 살아야 참된 가정입니다.
또 예수님은 주님이시고, 우리는 종이라고 했는데, 한 회사에서 주인과 직원이 서로 매사에 상의하면서 서로 마음을 합하여 일을 해가야 성공적인 회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성도들도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성령님의 감동과 지도를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안에서 행하는 삶’입니다.
7절.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having been firmly rooted and now being built up in Him and established in your faith, just as you were instructed, and overflowing with gratitude.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ἐρριζωμένοι καὶ ἐποικοδομούμενοι ἐν αὐτῷ
having been rooted and being built up in Him
‘뿌리는 박으며’(ἐρριζωμένοι)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rooted) 이미 뿌리를 박은 상태를 가리키고, ‘세움을 받아’(ἐποικοδομούμενοι)도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built up) 세움을 받은 상태로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καὶ βεβαιούμενοι τῇ πίστει καθὼς ἐδιδάχθητε,
and being strengthened in the faith just as you were taught
‘교훈을 받은 대로’(ἐδιδάχθητε)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you were taught) 확실히 가르침을 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굳게 서서’(βεβαιούμενοι)는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strengthened) 굳게 서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περισσεύοντες ἐν εὐχαριστίᾳ.
abounding in thanksgiving
‘넘치게 하라’(περισσεύ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abounding) 감사를 풍성히 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뿌리를 박으며’(ἐρριζωμένοι) 완료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rooted) 완료형이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의 뿌리를 박은 상태를 가리키며, 또한 분사형이란 그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뜻하고, 수동태는 이런 일이 우리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은혜로 되는 것을 뜻합니다.
‘세움을 받아’(ἐποικοδομούμενοι)와 ‘굳게 서서’(βεβαιούμενοι)는 현재 분사 수동태로서, 수동태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을 뜻하고, 현재분사는 그 상태가 현재도 계속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περισσεύοντες)는 현재분사 능동태로서(abounding) 우리가 능동적으로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2. 6-7절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와 있습니다.
(1) 행인의 비유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
우리 인생은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이 나그네 인생을 날마다 그리스도를 안식처로 삼고, 그 안에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영지주의 같은 이리가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세겜 성에서 야곱의 딸 디나가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 축제를 보러 갔다가 강간을 당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 밖에는 늘 위험이 따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목자가 되셔서, 양 같은 우리를 늘 지팡이로 인도하시고, 막대기로 보호하시며,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날마다 교회에 나오셔서, 예배하시고, 기도하시고, 말씀 안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나무의 비유입니다.
7절 상-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으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시냇물에 뿌리를 뻗은 것과 같습니다.
시편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예레미야 17장 7-8절.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요한복음 15:4-5.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고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먹고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복음 6장.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에게 믿음의 뿌리를 내려서, 예수님에게서 날마다 영생의 물도 마시고, 성령님의 은혜를 받으며, 말씀 속에서 생명의 양식과 영생의 은총을 충만히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건축의 비유입니다.
7절 후반- 세움을 입어
인생의 집을 성공적으로 지으려면, 예수님을 기초석으로 하여 인생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세상 권력이나 돈이나 명예를 기초로 하여 인생의 집을 지은 사람은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이 죽음의 홍수와 함께 허무하게 다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이, 죽음이 와도,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서 영원한 행복, 참된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는, 바울이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서 집 지을 터를 닦아 두었는데,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27절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건축자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미련한 건축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건축자는 바로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인생의 집을 지으시렵니까?
예수님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지혜로운 건축가가 되시렵니까?
세상 향락 따라 살아서, 인생의 집이 다 무너지고, 멸망의 길을 가시렵니까?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모두 다 예수님을 날마다 모시고, 그 말씀대로 사셔서, 성공적인 인생을 사시고, 영생 천국에 들어가시는 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굳게 믿음으로 뿌리를 박고, 믿음 생활을 굳세게 하고, 영지주의 이단에 흔들리지 말고, 감사의 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7절.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having been firmly rooted and now being built up in Him and established in your faith, just as you were instructed, and overflowing with gratitude.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ἐρριζωμένοι καὶ ἐποικοδομούμενοι ἐν αὐτῷ
having been rooted and being built up in Him
‘뿌리는 박으며’(ἐρριζωμένοι)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rooted) 이미 뿌리가 박혀진 상태를 가리키고, ‘세움을 받아’(ἐποικοδομούμενοι)도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built up) 세움을 받은 상태로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καὶ βεβαιούμενοι τῇ πίστει καθὼς ἐδιδάχθητε,
and being strengthened in the faith just as you were taught
‘교훈을 받은 대로’(ἐδιδάχθητε)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you were taught) 확실히 가르침을 받은 대로란 뜻입니다.
‘굳게 서서’(βεβαιούμενοι)는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strengthened) 굳게 서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περισσεύοντες ἐν εὐχαριστίᾳ.
abounding in thanksgiving
‘넘치게 하라’(περισσεύ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abounding) 감사를 풍성히 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뿌리는 박으며’(ἐρριζωμένοι)는 완료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rooted) 완료형은 이미 예수님 안에 믿음의 뿌리를 박은 것을 가리키고, 분사형은 이미 뿌리 박은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수동태는 하나님의 은혜로써 살아가는 모습을 뜻합니다.
‘세움을 받아’(ἐποικοδομούμενοι)도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built up) 현재 분사형은 세움 받은 상태가 계속되는 상태를 가리키며, 수동태는 하나님의 은혜로 계속 세움을 받고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βεβαιούμενοι)는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strengthened), 분사형은 믿음에 굳게 서서 신앙생활을 계속해가는 모습을 가리키고, 수동태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에 굳게 서 가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περισσεύοντες)는 현재분사 능동태로서(abounding) 현재 분사형은 계속 감사를 넘치게 하는 생활을 해가라는 뜻이고, 능동태인 것은 성도가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넘치게 감사하는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2. 다윗은 부족할 것이 없는 복된 생활을 하면서 감사를 했는데, 하나님이 목자이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감사를 했습니다.
시편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박국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으나,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하박국 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자신이 가난에 처할 줄도 알고 부요에 처할 줄도 아는데, 이것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3.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이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놀라운 구원을 얻었음으로, 이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무슨 일이든지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한 주간 동안도, 험한 세상에서 얼마나 힘들게 사셨습니까?
직장 생활이나 사업하시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하셨습니까?
질병으로 고생을 하셨습니까?
어떤 사고로 고생을 하셨습니까?
아니면, 자녀 문제로 힘드셨습니까?
혹은 마음에 상처 받아서 괴로운 일들이 있으셨습니까?
(2) 비록 찢기고 상한 감정을 가지고 나오셨을지라도, 좋으신 예수님께서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하시고, 치료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시간 다시금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 주간도 날마다 예수님 모시고, 성령님의 은혜 속에서 마귀와 죄악과 지옥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어느 곳이나 어느 때나, 굳세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