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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별빛은 흐른다
박초란
하루 일을 마치고 철수와 민희는 오늘도 지친 몸을 끌고 반지하단칸 방으로 찾아들어왔다.누르스레한 빛을 뿜는 가로등불빛이 희미하게 창문으로 비춰들어와 방안은 어둑시그레 하다. 아무리 해살이 부서지는 화창한 대낮이라 해도 방안은 늘 해가 지고 어둠이 깃든 초저녁상태이다. 아무리 고달파도 철수의 몸에서 나는 페인트냄새며 휘발유냄새 그리고 민희의 몸에서 나는 김치찌개며 된장찌개 또 마늘냄새까지 범벅으로 된 고약하다 했으면 좋을지 아니면 취하다 못해 어질어질하다 했으면 좋을지 하는 냄새때문에라도 샤워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잠자리에 들수 없는 상황이다. 항상 그러했듯이 민희가 쪼크리고 앉지도 못할만큼 비좁은 화장실에 조심스레 몸을 움직이며 서서 대충 물질,비누질 마쳤다. 그 뒤를 이어 철수도 마찬가지였다.
철수와 민희는 부랴부랴 씻고 잠자리에 나란히 누웠다. 여느 때같으면 머리에 베개가 닿자마자 코를 드렁드렁 골 철수지만 오늘은 아니였다. 보이지도 않을 천정을 쳐다보던 철수가 민희를 툭 쳤다.
“여보, 우리 인젠 집 가자. 응? 가서 아들이랑 부모님옆에서 같이 살자”
“집에 가다니요? 젊었을 때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로후가 행복하고 더우기 아들도 남못지 않게 공부시키죠.이제 몇년만 더 벌어요.”
한국에서 생활한지도 어언 8년. 그사이 고향에다 아빠트도 사놓고 아들도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저축도 웬만하게 해놓았다. 하지만 민희는 아직도 자신의 목표와 멀어도 한참 멀었다고 하면서 보이지도 않는 손사래를 쳤다. 이제 애가 취업할 때 쓸 돈, 장가 갈 때 쓸돈, 손주 보면 줄 용돈, 병나면 써야 할 돈…아직도 벌어야 할 돈은 이루다 말할수 없이 많았다. 그래서 남들이 다 쉬는 일요일이면 또 용역에 찾아가서 일당벌이를 찾아하군 했다. 이렇게 주말을 안 쉬고 하루만 일하면 한달 교통료금이 해결되고 이틀만 일 하면 두주일 채소값까지 해결된다. 어쩌다 하루 쉬려고 누워있으려니 둘이 눕고 나면 “하나,둘,셋!”하고 구령을 웨치면서 동시에 돌아누워야 할 정도로 비좁은 단간방안에 “세종대왕”과 “신사임당”이 훨훨 날아다니며 손짓하 는것 같아 민희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부랴부랴 용역에 달려가군 했다. 용역에서 시키는대로 식당으로 공장으로 달려간다.하다보니 몸은 늘 만부하로 돌아간다. 이렇게 쉬지 않고 일하는 민희자체가 노가다일을 하고 좀 쉬려는 남편한테까지 남모를 압력으로 되였다. 한주 내내 힘든 노가다판 에서 매일이고 별들마저 깜빡깜빡 조으는 새벽부터 올리뛰고 내리뛰 여 다니다보니 주말이면 하루 24시간 자고 먹고 해도 그 사이 고갈된 체력을 보충하기에 태부족이건만 안해가 일나가는데 한 집안의 기둥인 남편으로서 집에서 퍼더버리고 쉬고 먹고 한다는건 량심에도 내려가지 않는 일이였다. 하여 한달에 서너번 쉬는 휴식일중 하루 이틀 쉬면 고작이다.
팽이처럼 뱅글뱅글 사람도 잘 돌아가고 세월도 꽃이 피는가 싶더니 눈껌뻑 할사이에 락엽이 지였다 하면서 잘도 돌아갔다. 세월이 흐르는 두만강 같은게 아니라 쏜 화살처럼 빨리도 그리고 잘도 흘러 또 삼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새해 설을 한달가량 앞두고 철수가 최후방패를 내들었다.
“이젠 한국에서 11년이란 세월을 보냈고 또 인젠 돈도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벌었으니 집에 가기요. 당신 안가면 나혼자라도 갈테니 알아서 하오.나 비행기표를 사러 갈거요.”
그랬다. 전에는 십년이면 강산이 한번 변한다고 했는데 절주가 빨라진 요즘은 강산이 한번 변하는 주기가 5년으로 줄어들었다고 하니 강산이 두번 변하고도 세번째 변함을 시작한 셈이다.민희도 더는 남편을 눌러앉힐 방법도 렴치도 없었다. 더우기 이젠 부부가 십수년간 맞들구 열심히 벌었으니 집에 가서 편안히 쉴 생각도 났다. 하여 남편을 따라 귀국길에 올랐다.
집에 정작 돌아오니 붕~ 뜬 기분이였다. 친척들과 친구들이 십여년간만에 고향에 왔다고 난리다. 오늘은 이 사람이 소문난 집의 “훈춘꼬치”집에 초대하면 다른 친구는 그래도 중국의 도수높은 술은 펄펄 끓이며 먹는 샤브샤브가 최고의 안주라면서 샤브샤브집에 청한다. 자신을 위해서 돈 벌고 왔는데도 친구들과 친척들이 열성껏 환대를 해주니 그냥 받아먹어서는 안된다면서 대꾸로 밥 사고 술사고 하다보니 옹근 한달은 거의 매일이다싶이 술에 퍼질러 있은 셈이다. 정말 한달내내 간이 술에 동동 뜨고 정신은 안개속에 둥둥 떠다닌듯 했다. 그래도 정나미가 느껴지는 고향정에 기분은 하늘가로 날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철수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했다. 매일 고기먹고 술마셔서 설사라도 생겼나 해서 화장실에 달려가 변기에 한참 웅크리고 앉아도 나온건 아무것도 없다. 밸이 탈려지는듯 아파났다. 얼굴이 새파랗게 된 남편을 본 민희도 걱정스러웠다.
온 하루 먹지도 못하고 아픔을 호소하는 남편을 끌고 민희는 무작정 시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이것저것 검사해보더니 당장 수술을 하라고 한다. 수술이란 소리만 들었지 입원한번도 못해본 민희와 철수한테는 정말 마른 하늘의 벼락이였다.수수술대에 오를것까지 생각지도 못한 그들 부부는 놀라서 다리가 와들와들 떨려났다.몸이 다 오그라들었다.당장 죽음의 문턱에라도 들어선듯한 느낌이다. 머리속이 새하얗게 되였다.
가슴을 졸이는 수술이 시작되였다. 수수실 밖에서 가슴을 졸이며 남편을 기다리는 민희는 언제면 수수실문이 열릴가 초조하게 기다렸다. 헌데 한시간도 채지나지 않아 집도의사선생이 수술실문을 나왔다. 수술치고 한시간정도라면 다 빨리 나온 셈인데 떡 굳은 의사선생님의 얼굴을 보느라니 민희의 가슴에 널판자같은것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불길한 생각부터 들었다.
“선생님, 수,수술이 어떻게 됐어요?”
의사선생님이 말문을 열 때를 기다리기엔 너무나 안타까웠다.아니 가슴이 바질바질 타 들어가는것 같았다. 여태 외국에서 일하고 생활하면서 가끔 수모도 기시도 받고 또 억울함도 당해봤지만 이처럼 가슴을 졸여지지는 않았다. 그동안 민희가 하자는대로 잘 따라 주고 말없이 가정의 기둥이 돼 준 남편이 오늘따라 고맙고 또 소중하게 느껴졌다. 철수가 없다면? 하는 생각에 하늘이 새노래졌다. 온 몸의 기운이 싹 빠지면서 자칫 땅에 풍덩 주저앉을것만 같았다. 의사의 입에서 뭔 말이 튕겨나올가봐 무서워 났다. 당장 핵폭탄위력만큼이나 큰 충격을 줄것 같은 말이 의사 입에서 튕겨 나올것 같았다.
“네.급성맹장염이였습니다. 시간 좀만 더 끌었다라면 수술이 더 어려워졌을겁니다.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것입니다.”
“후우~ .”
민희는 고무풍선 김이 다 새나가듯 다리맥이 저절로 활 풀려 났다. 민희는 등을 벽에 기대더니 스르륵 주저앉았다. 고도의 긴장이 느슨해지면서 맥이 절로 풀렸던것이다.
한겨울을 따뜻한 곳에서 잘 지낸 철새들도 끼룩끼룩 줄을 지어 고향하늘을 까맣게 뒤덮는다. 먹고살기에 많이 편해진 요즘엔 사람들은 먹거리 볼거리 에 무척이나 신경쓴다. 어디에 맛집이 새로 생겼다면 호기심에서 줄레줄 레 찾아든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말로도 되겠다.
철수네 고향인 경신에는 해마다 3월이면 철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와 찾아보기 힘든 장관을 이룬다. 논밭이며 늪들마다에 기러기는 물론 희꼬리수리새며 두루미 등 희귀한 새들이 훨훨 내려앉아 논밭인지 철새밭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경신은 지리적으로 습지가 많고 평원이 넓어서 철새들의 쉼터로 되기에 알맞춤하다. 이때면 촬영애호가들은 렌즈가 거의 대포길이만큼 긴 고급카메라를 들고 철새들의 멋진 포즈를 기다렸다가 순간포착한다. 그 멋지고 력사적인 한 순간을 위해 촬영가들은 털외투를 입고 털모자를 눌러쓴채 철새들의 행동만 눈이 빠지도록 지켜본다. 그 모습들은 얼핏 보면 마치도 들판에 서있는 촬영가의 동상이라도 보는듯하다. 경신벌의 철새가 얼마나 장관이고 이름날렸는지 전국 각지에서는 물론 로씨야, 한국촬영가들 마저 명작을 찍을 의욕을 불태우며 찾아와 열흘이고 스므날이고 촬영에 전념한다. 이 또한 경신벌의 또 하나의 새로운 멋진 풍경선을 이뤘다. 매체들에서 철새홍보에 불을 달고 또 지방 정부의 현명한 결책으로 3월중순부터 4월초까지는 철새축제기간으로 정했다. 하기에 전국각지 관광객들이 불원천리하고 이 보기 힘든 장관을 구경하러 온다.
한국에서 돌아와 죽을 고비까진 아니여도 죽는단 생각까지 할 정도로 급병을 앓은 철수는 민희의 정성어린 보살핌에 건강을 빨리 회복했다. 급병을 치루고나서 이들 부부에게는 인생이 뭐가 있나? 남들이 하는 노릇은 다 하고 살자,가능하면 착하게 이 세상을 살다 가자라는 새로운 신조가 생겼다.
11년간 하늘을 쳐다볼 사이도 없이 아침에 일터에 나갔다간 저녁에야 집이랍시고 좁다란 방에 찾아드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고생이란 수없이 해온 철수와 민희도 덩달아 남들이 찾아간다는 철새구경에 나섰다. 자가용을 못 갖춘지라 하루동안 비싼 택시비 내면서까지 말이다.
떵떵 얼었던 강물이 풀리는 봄이 찾아왔다고 하지만 고향의 3월 날씨는 여전히 겨울에 미련을 두고 겨울의 끝자락을 놓기 아쉬웠는지 싸늘하기만 하다. 추위를 타서인지 아니면 한바탕 앓고 나서인지 철수의 얼굴은 파리해났다. 그래도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지나가기 마련이고 또 이겨내 왔던것처럼 병을 이겨내고 건강해졌다는 자체가 덩실덩실 춤출 정도로 기분 좋은 일인지라 철수와 민희의 마음은 즐겁기만 했다. 고향을 찾아 날아드는 철새떼들이 정겹기만 했다.감개무량해나기까지 했다.
“여보 우리는 어찌보면 저 철새들보담 못한것 같지?”
“무슨 소리예요?”
새까맣게 뒤덮인 철새들을 정신없이 구경하다가 뜬검없이 하는 철수의 말에 민희는 철새를 보다 말고 철수의 입을 쳐다 보았다.
“철새들은 한해에 한번씩 고향을 찾아 날아드는데 우리는 장장 11년만에 찾아왔으니…”
“아, 그 뜻이였군요.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었는데 이번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철새구경도 구경이지만 전국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얼굴이 하얗고 머리가 노란 로씨야인들마저 철새떼들만큼이나 많이 찾아와 “하라쇼”를 연신 부르면서 휴대폰으로 철새들 향해 사진찎기도 하고 또 자신들도 철새들 혹은 인파를 배경으로 하고 기념사진을 남기는것을 보니 다시 명절이라도 쉬는 기분이였다. 철새구경에 사람구경까지 할수 있어서 몸이고 마음이고 다 힐링이 되는것 같았다. 철수의 파리하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북방의 3월은 아직도 떡 얼어붙은 채로이다. 그래서 일년치고 봄,여름, 가을에는 처절썩 처절썩 파도를 쉬임없이 치고 때로는 방파제까지 허물 태세던 룡산저수지는 지금도 입을 꾹 다문채로다.철새들이 날아와 다리쉼을 하는 한편 배불리 먹으라고 맘씨가 따뜻한 화로같은 고향 사람들은 생닭이며 옥수수 등 먹이를 얼음강판우에 가득 뿌려줬다. 철새들도 이런 고향사람들의 마음을 잊지 못해서인지 해마다 찾아와 장관을 이룬다. 흰꼬리수리새 한쌍이 나란히 마주서서 서로 부리를 맞쫓는다. 그러다가도 서로의 몸을 부비부비 한다.엇갈아 목을 기웃거리는 품이 뭔가를 진지하 게 의논하는듯하다. 넓다란 얼음강판우를 새까맣게 덮다싶이 하고 있던 철새들이 약속이나 하듯 반공중에 푸드득 날아올라 힘찬 날개짓을 한다. 멀리 가는가 싶더니 하늘에서 몇고패 돌며 윙크하더니 또 다시 푸르릉 얼음강판우에 날아내린다.마치도 멋진 에어쇼라도 보는듯해 관광객들 입에선 “와~ 와~” 우렁찬 환호소리가 터져나온다.
민희와 철수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관광객들속에서 철새구경에 사람구경에 여념이 없다.그들의 눈길은 얼음강판에 두었다,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향했다 수시로 철새들의 움직임 따라 이동된다. 가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구경나오길 정말 잘했어요.”
“것보. 고향에 오니 이런 멋스러운 일도 다 있잖소.이제야 사는 맛, 사는 멋이 나는것 같소.”
이들 부부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물결을 친다.
철새구경에 얼을 쏙 빼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친다.
“야 이게 철수 아니냐?”
“어 누구지?”
어정쩡해난 철수가 상대방을 빤히 쳐다본다.
“어머 군석씨 아니예요?”
“하하 민희구만. 그래도 녀자들 눈썰미가 약삭빠르다니깐”
그제야 초중때 한반 동창임을 알아챈 철수가 서둘러 손에 끼였던 장갑을 벗고 악수를 청한다. 너무도 오랜만이였다. 초중때 갈라진뒤 각기 자신의 삶을 위해 뛰여다니다보니 서로 소식조차 전하지 못하고 살았던것 이다. 군석이 뒤에 거무틱틱한 사십대 남정네들 몇이 줄레줄레 따라나서 반갑다고 야단법석이다. 자세히 여겨보니 다 동창들이였다. 다 어데 숨어서 살다가 인제야 나타났는지 초중졸업후 한번도 못 보던 동창들도 있었는데 얼굴이 가물가물해났다. 그래도 천룡아,성택아 영철아 하면서 부르던 이름들을 하나하나 알리니 모두들 새롭기만 하고 반갑다고 야단법석이다. 철수는 고향에 날아오는 철새들이 고맙기만 했다. 이 철새들이 아니였다면 그들은 여전히 어딘가에 꽁꽁 숨어있다싶이 하고 언제 만날지도 기약이 없었을테 니깐!철새구경이고 뭐고 철수는 동창들을 거느리고 경신진에서 가장 이름난 물고기맛집인 “왕해각”으로 향했다.
경신은 유서깊은 곳이고 또 전설도 많은 고장이다. 경신에는 늪이 얼마나 많은지 열손가락 발가락 다 동원해도 세기 어렵다. 지어 지명까지 도 이도포, 사도포, 오도포, 륙도포 등으로 지어졌다. 그외 이름없는 크고 작은 늪도 기수부지이다. 크고 작은 못이 하도 많아 전주 지역의 낚시애호가들이 줄을 지어 찾아온다. 전에는 발이 닿는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낚시줄을 늘여놓아도 팔이 아파날 지경으로 고기를 많이 낚았다 하지만 요즘은 괜찮은 늪은 다 개인이거나 집체에서 도급맡고 양어장을 만들어 대외영업을 하기에 그마나 낚시군들이 많이 줄어든 셈이다.요즈음에도 외지에서 손님이 오면 휴식과 레저로 경신에 있는 낚시터에다 안내를 하면 손님들은 최고의 대접을 받은줄로 안다. 하긴 하루삼시 풀떡풀떡 뛰는 잉어, 붕어,초어로 찜해먹고 회 쳐먹고 얼큰한 탕도 해먹으면서 낚시질하는 재미란 세상 더 부러울것 없이 짜릿하며 행복한 일이니깐.낚시군들의 말을 따르면 바람피우던 사람 도 경신양어장에 와 낚시를 하느라면 바람을 피우는 습관을 고치고 빨리 주말이 되여 경신에 찾아 와 낚시를 할 궁리만 한단다.
철새축제에서 만난 동창들이 “왕해각”의 십인용원탁에 삥 둘러앉자 철수와 민희는 고향에서 나는 물고기들로 료리 8가지를 시켰다. 서로 수인사를 나누고 따뜻한 보리차 한잔씩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시킨 료리들이 한상 그득이 차려졌다.
철수가 술 한잔씩 따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건배제의를 했다.
“자, 오랜만에 우리 동창들 여럿이 여기에 모이게 됐는데 이것 또한 뜻밖이 기쁨이 아닌가 싶다. 참 오랜만에 만나서 더 반갑고 또 철새축제에서 만났다는게 더 뜻깊은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건배!”
“건배!”
친구들도 저마끔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쭈우욱 비웠다. 술이 한잔 들어가니 옷속을 파고 들던 꽃샘추위에 얼었던 몸이 점차 녹기 시작하는지 철수는 겉옷을 벗었다. 다른 친구들도 하나둘 겉옷을 벗어제꼈다.웃고 떠들며 식사하는 자리에 식당사장은 경신의 늪에서 자래운 오리가 낳은 오리알을 절인거라면서 서비스로 한접시 올렸다. 반씩 보기좋게 자른 오리알은 그야말로 예술이였다.샛노란 노란자위에서 기름이 줄줄 흘러내렸다. 맛갈스 러워 보이는 절인 오리알에 밥 한공기는 퍼뜩 없앨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군석이가 반으로 자른 오리알을 저가락으로 집어서 동창들 앞접 시에 집어다 주었다. 그리고 술한잔씩 따랐다
“참,동창들 만나서 기쁘다. 그리고 오늘 철수네 부부가 이런 자리 마련해줘서 너무 감사하구. 그런데 말이야. 입이 잘 떨어지지 않지만…”
군석이는 술잔을 들고 말하다가 말을 끊고 친구들의 얼굴을 휘이익 둘러봤다. 친구들은 아래 말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저마다 군석이 입을 쳐다보았다.
“뭔데 말하다 말어? 궁금하잖아. 어서 말해야지.”
“저,저 실은 말이야. 나 안쪽에서 장사를 하다가 하루아침사이에 쫄딱 망했단 말이야.부끄러운 얘기지만 당장 먹을걱정, 입을걱정해야 할 상황이야.이번에 고향에 온 목적도 우리 동창들 찾아서 도움을 부탁할 가 해서 …”
군석이는 하던 말을 끊고 또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군석의 입을 빤히 쳐다보던 친구들이 하나둘 고개를 숙여 손에 들었던 잔에다 눈길을 두었다.어떤 친구들은 애꿎게 손에 든 술잔을 뱅뱅 돌리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좀전까지만 해도 흥성거리던 술좌석이 삽시간에 조용해진다. 너무 조용해서 서로의 숨쉬는 소리까지 들리였다.
“아, 너무 어렵게는 생각지 말고. 조건이 허락되는대로 도울만하면 도와주고.못 도와도 원망은 하지 않을테니까.”
군석이는 술 한잔을 단모금에 굽을 냈다. 철수도 뒤따라 잔을 굽냈다. 옆에서 민희가 눈총을 쏘며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지만 철수는 모른척이다. 수술로 하여 몸이 많이 상한 철수가 술을 무리하게 마실가봐 걱정이 태산같은 민희다. 하지만 철수는 들은척도 안 한다. 오랜만에 동창들 모이고 또 철수가 마련한 식사자리라 민희는 술마시지 말라고 말리기가 쑥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아예 철수의 잔에는 물론이고 모든 친구들의 잔에도 찰랑찰랑 넘치게 술을 부었다. 해박한 민희는 남편의 술흥과 오랜만에 만난 여럿 동창들의 식사분위기를 깨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천룡이와 영철이는 술잔에 입을 대는척 하더니 아예 상에 내려놓고 부지런히 물고기료리를 집어서 입에다 넣는다. 술상이 룡산저수지 얼음강판만큼이나 차거운것 같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색함이 좔좔 흐르기 때문이다.
“자,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뭐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니? 군석이 처지를 어느 정도 알았으니 이제 시간을 가지고 도울 생각을 하고 오늘은 그냥 즐겁게 술이나 마시자”
“그래. 내가 싱거운 말을 해서 미안하다. 암튼 상황이 어떻든간에 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날로 여기고 즐기며 살자. 노래 가사처럼 숨쉴수 있어서 바라볼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다시 말하면 살아있는 자체가 행복하다. 자 우리 모두 행복하단 뜻에서 실컷 마시자”
군석이가 잔을 들고 또 쭈우욱 마신다. 술상은 다시 화기를 띄기 시작했다.
철수는 술상이 끝나고 저마끔 흩어지는 마당에 당장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군석이와 작별인사하는척하면서 호주머니에 있던 현금을 몽땅 털어서 군석이 손에 쥐여줬다.그리고는 군석이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군석이의 깊은 눈매가 술기운이 어려서 불그므레 한 철수의 얼굴을 깊게 주시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렸다.
온 겨우내 훌떡 벗다싶이 밋밋하던 들판에도 봄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앞산에 진달래꽃나무에 오롱조롱 매달려 있던 망울들이 부풀기 시작하고 우중충하던 나무에도 물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꼬독꼬독 하고 부르면 당장 달려와 꼬리를 저을것만 같던 버들개지는 어느새 활짝 피여 노오란 송충이처럼 되였다.
두만강 어부들은 쪽배를 타고 고기잡이에 총궐기해나섰다. 과농들은 벌써 과수원에서 얼씬거리기 시작하고 농사군들도 농사준비에 분주하다.
고향에 돌아와서 좋기만 하던 철수와 민희의 부부는 생기를 띄는 봄철과 달리 얼굴에 암울한 그늘이 지여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없었던것이다. 한국가 있는 동안 밭은 남한테 임대해주었던것이다. 설령 밭이 있다해도 몸이 허약한 철수가 농사일을 해낼 상황이 아니였다. 11년간 부부가 맞들고 악을 써 벌어왔지만 보태는것 없이 그냥 허물어 쓰자니 돈이 어쩐지 축이 잘도 났다.부조할 군일이란 또 얼마나 많은지 오늘은 누구 결혼이요 내일은 회갑이요 애돐이요 하면서 끊임없다. 한국에 오래동안 있으면서 그동안 부조를 못한 친구나 친척에겐 더 얹어주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일에 분주히 돌아치는걸 보면서 두손 맞잡고 보고만 있자니 철수네 부부는 괜히 마음이 부산해났다. 마치도 마음은 항상 돌덩이에 지지눌리워 있는것 같았고 또 누군가 불안하게 쫓아오는것 같기도 하여 초조해났다. 분주한 고향사람들의 모슴을 보지 않으면 낫지 않을가 싶어서 철수네 부부는 시내에 사둔 아빠트에 옮겨갔다. 서로 제 일에 팽이처럼 바삐 도는 시내사람들은 옆집에서 누가 죽어나가도 모를 상황일테니 보지 않으면 약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시내돌이를 하면서 싱싱한 먹거리를 사오기도 하고 또 오랜 세월 등지고 살다싶이 했던 영화관나들이까지 하느라니 번거롭기만 하던 마음이 좀 추슬려지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번이 좋을뿐이였다. 시내에 나가지 않는 날이면 아침에 일어나서 밤중에 TV방송프로에서 “안녕히!”가 나올때까지 TV시청하는 일밖에 하는 일이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시내생활도 역시 싫증이 쉽게 나는 사치였다. 아니 사치인것이 아니라 갑속의 든 생활이였다. 무덤이였다.
더는 손잡고 앉아있을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 수입이 없이 벌어온 돈을 쥐 소금녹이듯 야금야금 허물어 쓰다간 몇해 못가서 바닥이 날것 같았다. 이번에 행운스럽게도 큰 병이 아니여서 쉽게 한고비 넘겼지만 또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누가 알랴! 화는 눈섭에서 떨어진다고 했으니..생각던 끝에 그들은 요즘 시내에서 돈벌이 잘된다는 맥주집을 꾸리기로 했다. 영업은 민희가 하고 물건구입같은건 철수체질에서 얼마든지 감당해낼거 같았기 때문이였다.
철수와 민희는 전혀 보지도 않던 정보신문이란 신문을 다 주어다 서캐훑듯이 훑어보았다. 간혹 가다 영업하던 술집을 내놓는 집이 있었지만 어쩐지 맞갖지 않았다. 어떤 집은 면적이 너무 커서 영업에선 왕초보인 그들 부부한텐 감당하기가 어려웠고 또 어떤 집은 위치가 탐탁치 않았으며 좀 마음에 들것 같은 집은 임대료가 너무 비쌌다. 자칫 임대료에 지지 눌리워 일어나기 힘들수 있기 때문이다. 련 몇주째 정보신문을 빼놓지 않고 훑어보던 철수네 부부는 마침 한 보스가 개인사정때문에 맥주집을 임대놓는다는 정보에 눈길이 쏠렸다. 아마 사정이 급하긴 급한 모양이였는지 임대료도 꽤 싸게 내놓겠다 했다.그래서 제꺽 계약을 마쳤다.
“따따따따…”
한족사람들 식대로 철수와 민희네 “와라와라”맥주집도 800발짜리 폭죽을 요란하게 터뜨리는 가운데서 오픈을 했다. 조건도 요구도 없이 그냥 오기만 하면 맥주고 안주고 다 있다는 뜻에서 맥주집 간판이름도 “와라와라”로 달았다.
간판명칭이 새로워서인지 아님 새로 섰다는 맥주집이라서 호감도가 올라갔는지 개업한 첫날부터 손님들이 줄레줄레 닥쳐들었다. 주방에 서 맥주안주를 만드는 료리사는 물론 앞에서 서빙하는 민희도 주문받으 랴 료리와 술을 올리랴 또 계산하랴 궁둥이에서 비파소리 날지경이였다. 그래도 힘든줄 몰랐다. 한국에서 11년간 젖은 일 마른 일 가리지 않고 하면서 다져온 몸이라 웬만한 고생과 힘든 일은 두렵지 않았던것이다.
11시가 넘어서야 영업을 마무림 하고 맥주집문을 닫을수 있었다. 오픈 첫날이지만 매출 3000여원이란 액수가 장난이 아니였다. 맥주집은 식당과 달리 마진이 높은 셈이였다 8원짜리 짝태를 들여다가 손님에게 20원씩 팔고 과일 몇개를 꽃처럼 이쁘게 저며놓고 50원씩 받았다. 그러니 마진 이 상당할수밖에.
하루사이에 돈 한뭉테기 쥔 그들 부부는 희열에 들떴다.
“참 돈은 이렇게 빨리 그리고 많이 벌수도 있네요.”
“그러게요. 좀 힘들겠지만 그래도 돈이 많이 들어오는 재미로 열심히 해보교.”
“그럼요. 한국에서 일하는데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내 일이라 생각하니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줄 모를것 같아요 호호…”
“와라와라”는 개업해서 한달이 다가오도록 매일같이 흥성거렸다. 좌석은 거의 차다싶이 했다.분위기를 띄우느라 흘러가는 시내물처럼 잔잔하게 틀어놓은 음악소리는 술군들의 엇갈아 높여가는 악센트에, 또 쟁그랑하고 술잔 부딪치는 소리에 깔려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다. 날따라 돈무지가 커가는 재미에 철수의 파리하던 얼굴도 어느덧 홍조가 비끼기 시작했다.
맥주집은 흔히 저녁장사가 위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점심에 문을 닫고 저녁부터 장사를 할수는 없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2차로 혹은 입가심 삼아 맥주집에 들려서 명태오리거나 개암에 맥주 몇병을 딸 때도 푸술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점심에 손님 한상을 치른 민희는 저녁장사 할 물건체크를 마치고 나니 오후 두시넘었다. 저녁장사시간이 될 때까지 조용한 시간이다.민희는 향이 짙고 달착지근한 베트남봉지커피를 한컵 진하게 풀어놓고 친구가 평양관광다녀오면서 갖다준 료리책을 펼쳐들었다. 떡류로부터 무침, 찌개,김치류까지 사진과 함께 세세히 설명곁들인 료리책은 읽어보기만해도 쉽게 조리할수 있을것 같았다. 맥주집이지만 요즘은 마른 안주에 과일만 준비해서는 경쟁에서 밀리워 구멍이 난 쪽배신세가 되고 만다. 어느 땐가부터 연변은 1차를 건너뛰고 직접 맥주집에서 1,2차를 하는 버릇 아닌 버릇같은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맥주집이라지만 오무라이스,돈까스, 온면 볶음밥 같은 메뉴도 구전히 갖춰졌다.
“민희야~”
책에 정신을 골똘히 팔고 있는데 누군가 쌩하니 들어와 민희앞에 서서 생글거린다.
“어? 유나구나.어떻게 알구 여기까지…”
말해놓고나서 민희는 속으로 아차! 했다. 어찌보면 반갑지 않은 네가 웬 일로 여기까지 왔냐라는 식으로 된 셈이다.
그랬다. 솔직히 민희는 유나가 반갑지 않았다. 인물덕을 하는지 동창생인 유나는 썰썰이 날 때 식상활개선하듯 남자를 자주 갈아치운다. 한때는 다들 심사장이라 부르는 남자가 부자인가 해서 졸졸 따라다니며 부부노릇하더니 결국 알고보니 한국에서는 별볼일도 없는 보따리 장사군이였다. 입으로만 사랑한다면서 행복하게 해줄거라고 하면서 식당에 밥 먹으러 데리고 가도 두부전에 “참이슬”한병으로 한두시간씩 장황설을 풀어놓는 위인이였 다. 결혼등록도 안한 처지라 몇달만에 결국 그냥 빠이빠이하고 손저으니 끝을 본 셈이였다. 이어 사업한다는 연변남자와 짝짜꿍치더니 역시 1년도 채 안되여 갈라지고 말았다. 그 남자는 입만 살아서 말로 천하 사업을 다 하는 남자였다. 그래도 남자라고 통이 크게 싯누런 색이 번쩍번쩍 나는 새끼오리만큼 굵은 황금목걸이를 민희한데 사주면서 큰소리를 뻥뻥 쳐대곤 며칠후엔 빚에 쫄려서 절절 매군 했다. 그래서 역시 축구공 차버리듯 툭 차버렸다. 친구들은 그런 민희를 두고 남자보는 눈이 너무 없다는둥, 돈 많은 남자만 쫓아다니니 돈 많은 남자는 다 도망쳤다는지 하면서 빈정거렸다.
그 뒤에는 민희네가 한국에 나가 있으면서 유나소식을 들을새도 듣고싶은 마음도 없었던것이다. 전에부터 속으로 왜 저렇게 인생살가 하고 비난하던 민희인지라 유나가 반가울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동창이랍시고 가게까지 찾아온 유나를 내 쫓을수도 없었다. 싫어도 따뜻하게 대하는척이라도 해야 했다.
“유나야, 넌 어쩜 늙지도 않니? 어느 남자의 사랑을 받고 있길래 이처럼 싱싱하니?혹시 남자의 사랑이 방부제라도 되였나?”
그랬다. 40중반이지만 아직도 얼굴은 뽀송뽀송하고 기미 하나 안 생긴 얼굴은 우유색갈처럼 뽀얗다. 겉을 보아선 잘 익은 능금처럼 싱싱했다. 옷 차림새도 생기발랄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신경을 무척이나 쓴것 같았다. 빨간 티셔츠에 20대 애들이나 쓰기에 알맞는 채양이 앞으로 숙어진 모자를 눌러썼는데 머리카락이 반쯤 흘러나와 섹시미가 더 보태졌다. 아래는 청바지 를 허벅지까지 뭉턱 잘라버린듯한 핫팬티를 입고 무릎까지 오는 부츠를 신었다. 한국에 있을 때 식당에서 서빙하다가 차례진 “처음처럼”이란 글자가 새겨진 앞치마가 아까워 그냥 갖고 온걸 몸에 두른 민희는 유나앞에서 마치도 서울판에서 두리번 거리는 촌닭같아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간.
“여기 커피 한잔 타오세요!”
민희는 주방쪽에 대고 쨍쨍한 소리로 웨쳤다. 마치도 내가 이래도 이 가게사장이야 하고 시위라도 하는듯했다.
“네~ 잠간만요!”
주방아줌마가 커피 한잔 타서 쟁반에 받쳐 민희앞에 공손히 가져다 놓았다.민희가 하는 말 마디마디마다에 보이지 않는 가시가 콕콕 박혀 있었지 만 그러거나 말거나 유나는 여전히 생글거리며 커피잔을 받아 홀홀 불었다. 그 바람에 원래 진하던 커피향기가 온 가게에 감돌았다.
“민희야, 넌 한국에서 십여년간 구불더니 많이 변한것 같다.세상에 꼿꼿하기루 저가락같던 네가 이런 장사를 다 하다니?그래 세월이 약이긴 하지.”
민희가 야릇하게 웃었다.어쩐지 두 녀인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싸하게 감돌았다.
“그래 내가 여기에 없는 십여년간 어떻게 지냈니? 아참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니?”
물음을 시정하는 리유에 대해서 민희자신은 잘 알고 있다. 뭐 물으나 마나 그냥저냥 남자를 항행사가 배타듯 자주 가라치워 탔겠지하고 생각되였지만 그냥 물으나 마나하걸 왜 묻냐싶어서 그리고 과거는 과거고 현재가 퍽이 나 궁금하고 또 알고있어야 현실적인것 같았기때문이였다.
“나? 호호… 알고싶어? 나야 뭐 항상 그렇지 뭐. 참 민희야, 나 요즘 로또 맞춘 느낌이야! 글쎄말이다 있잖니?.”
아무리 젊고 세련되게 보이느라 애써 꾸몄지만 예나 지금이나 배운게 별로 없이 두서 없이 말하는건 여전했다. 하긴 인물하나만 믿고 남자를 리용해 출세를 바란 유나가 초중부터 남자들한테 련애쪽지나 날리더니 결국 고중에 진학하지도 못하고 사회란 “대학”에 철썩 붙어버렸으니 그럴법도 했다.
커피 한모금을 홀짝 들이키며 입을 짭짭 다시던 유나가 로또 맞춘 기분을 만들어준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기라도 하듯이 신이 나서.
남들이 평생 남자 하나에 목을 매달고 죽는다 산다하면서도 줄곧 거마리처럼 찰싹 붙어서 살아갈 때 유나는 10여년 사이에 남자 4명과 살았다 말았다를 반복하다가 한 9달째 혼자가 되였다. 그런 유나한테 요즘 결혼을 할 멋진 상대가 생겼다. 아니 멋지기만 한것이 아니라 정말 혼까지 다 맡겨도 아깝지 않을만큼 훌륭하고 리상적인 남자였다. 리혼 한 8년 년상인 남자였는데 대학까지 졸업하고 시 모 외사부문에서 출근하다가 사업을 시작했다. 출근시에 다져놓은 인맥이 좋은데서 그 남자는 옥수수수염을 해당 업체에 납품하는 일로부터 시작했는데 대박을 쳤다.농촌 에서 소한테 먹이고 있거나 지어 밭에서 가을과 겨울바람에 흩날려버리던 존재가 돈이 될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이런 공짜 재료를 인공비 조금만 팔고 죄다 걷어다가 납품하니 진짜 돈을 거저 버나 다름이 없었던것이다. 정말 사업운이 줄줄 따르는 남자였던것이다. 후에 사업을 확장해 로씨야수입 판재를 안쪽에 팔아서 떼돈을 벌었다. 지금 그 남자는 혼자서 운동장만한 살림집에 헬스클럽에서나 갖출만한 체육기자재가 한 방에다 줄느런히 갖춰놓았고 고급 자가용까지 끌고 다녔다. 그 남자는 첫 만남부터 유나를 자상하고 따뜻하게 대해줬다. 데이트 할 때면 꼭꼭 차로 맞이하고 식사시에도 유나가 먹고싶은 메뉴만 시켰다. 그리고 집에 데려다 줄 때에도 아파트출입문앞까지 헤드라이트불을 환히 켜주고 유나가4층에 있는 집에 다 올라가서 창문을 열고 손짓해야만이 떠나가곤 했다.인물외에 아무것도 내세울것 없는 자신을 매번마다 똑 같이 대하는 남자앞에서 유나는 자신의 과거를 다 말했다. 어쩐지 말해얄것만 같았던것이다. 또한 이처럼 훌륭한 남자를 속이고 싶지 않았던것이다. 말했다가 당해봤자 이 남자를 놓치는 외에 더 있을가 하는데서였다. 이 남자 아니면 다른 남자를 만나면 되지 하는 배포유한 생각까지 하면서. 그런데 뜻밖에도 남자는 과거는 어떻던간에 현재 나아가서 미래에 잘 그리고 똑바로 둘만을 위해 살면 그만이라도 했다. 멋진 남자는 이렇게 빼놓을데 없이 멋지구나 어쩜 도량까지 푸르른 하늘같을가 하는 생각에 유나는 이 남자하고 평생을 함께 하리라 작심했던것이다.
유나의 아라비안나이트같은 이야기를 들은 민희는 속으론 그 남자도 어딘가 구멍이 났거나 아님 외모에 현혹되여 잠시 미친것이겠지 하고 생각을 했었다.그러면서 속으론 얼마 못가 유나가 남자한테 채이거나 또 바람기 강한 유나가 다른 남자를 볼것이라 단언했다.그러면서도 속에도 없는 말을 내뱉았다.
“암튼 잘됐어.이제라도 좋은 남자 만나 잘 살면 좋지!”
“그래그래, 나 꼭 잘 살거야! 이 남자가 내 인생에 마지막 남자일거야!”
민희는 저도 모르게 피씩 웃었다.( 개 똥 먹는 버릇 고칠가? 그냥 돈많은 남자니 잠시 코 꿴 송아지처럼 졸졸 따라댕기는거겠지)
한참을 수다떨던 유나가 어딘가에 전화를 하더니 몇몇 사람을 불러들였다. 남자 둘 여자 셋이였다. 그리고 질펀하게 맥주판을 벌렸다. (그럼 그렇지. 한 남자만 바라보겠다고 하더니 또 남자들이랑 술판을 만들어?) 속으론 아니꼽게 생각하면서도 남이사 뭘하던 자신은 장사만 하면 됐지 하고 그 술판을 벌린 남자들과 녀자들을 찬히 여겨보지도 않았다. 알고싶지도 않고 또 알 필요도 없었던것이다.
돈을 번다고 하지만 맥주집경영도 실은 쉽지 않은 노릇이였다. 한번은 술에 만취한 남자손님 두명이 열시 넘어 왔었는데 십원짜리 땅콩한접시에 맥주 두병 시켜놓고 온밤 떠들어댔다. 언성이 어찌나 높은지 경신습지에 날아드는 철새들만큼이나 요란했다. 아니 철새들은 수천마리 수만마리가 한꺼번에 날아드니 소리높은건 당연한거다. 그런데 이 두 남자는 철새 만마리보담 더 꽥꽥거렸다. 온 가게가 떠나갈것 같았다. 꽤나 깊은 밤중이라 가게에 마침 손님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손님을 다 몰아낼 판이였다. 참말로 다행이였다. 마음같아선 빨리 끝내고 가라고 말해주고싶었지만 서비스업이란 그렇게 하는게 아니기에 꾹 참고만 있었다. 퇴근을 못하고 있는 주방아줌마의 눈치가 보였지만 어쩔수 없었다.남편 철수는 아침에 필요한 물건만 구입하면 영업장소에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영업장소에 남자식구들이 드나들면 껄끄럽다고 하면서 말이다. 껄끄럽더라도 이럴 때면 와서 자리지킴이라도 해줬음 하는 욕심도 들었지만 몸을 간신히 추슬리고 장봐주는 일을 도와주는것만으로도 만족을 느껴야 했다. 이럴 때면 돈이고 뭐고 마구 걷어장져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돈 버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 돈 위해 목숨까지 내거는 사람도 있는데 하고 생각하면 다 견딜만한 노릇이였다.
또 한번은 몇차에 걸쳐서 왔는지 술이 떡이 된 사람들 여섯이 왔었다. 그중 한 녀자는 맥주가 사탕물로 여겼는지 병을 거꾸로 들고 꿀꺽꿀꺽 마시고 으싸를 부르고는 남들도 그렇게 마시도록 강요를 했다. 맥주 두상자가 한시간도 되지 않아 거덜이 났다. 이어 엇갈아 화장실로 줄줄 향했다. 호기를 부리며 일행에게 맥주를 병채로 나팔부게 하던 녀자도 례외 아니였다. 휘청휘청거리며 자리를 떠나 화장실로 향하는 그 녀자는 팔자걸음을 하며 걷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화장실문잡이를 쥔채로 “우웩 ~”하고 왈왈 오바이트했다. 소화되지도 못한 건덕지가 맥주와 함께 거꾸로 우르륵 쏟아져 나왔다. 지독한 맥주인듯 아닌듯한 고약한 냄새가 가게안을 진동했다. 민희가 얼른 비자루로 쓸어내고 화장실 구석에 두었던 밀걸레로 밀었다. 역한 냄새에 코를 찡그려지며 저도 모르게 구역질이 나왔다. 숨을 내 쉬지도 들이쉬지도 못했다. 조금만 숨을 쉬였다간 자신도 오바이트 할것만 같았던것이다.약삭빠 르게 치웠지만 코에서는 여전히 역한 냄새가 나는것 같았다. 바닥을 여러번 닦고 핸드비누로 손을 빡빡 씻었지만 숨쉴 때마다 냄새가 풍겨옴을 어쩔수 없었다. 한국에서 벼라별 고생을 다 겪어냈지만 비위가 약해 좀 고약한 냄새만 나도 꽥꽥 거리는 민희로선 정말 고역이 아닐수 없었다.눈물이 저도 모르게 찔끔 쏟아졌다.( 내가 왜 이 짓을 해야지? 반드시 이래야먄 사는가?그리고 이 짓이 언제면 끝이 보이지?)
민희는 마음이 바빠났다. 그리고 앞이 막막해났다. 그럴 때마다 민희는 혼자말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고 주문처럼 외웠다. 그리고 제나름대로 돈덩어리들의 구정물에 떨어뜨린 돈을 받았다고 치자 하면서 마음을 억지로 추슬렸다. 남들은 외국에 가서 시체 메여 나르는 일까지 한다는데 이깟 냄새 고약하고 주정뱅이들 주정 받아들이는것쯤이야 거기 비하면 꽃이지 하고 자아위안을 했다. 그리고 이것 역시 다 돈이라 생각하면 못할일이 없다.그러고 나면 힘은 여전히 났다.
민희가 가게 청소를 하고 있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하루 일을 시작할 때면 항상 기대로 부풀어났다. 오늘은 어떤 손님이 올지, 몇상이나 할지 그리고 매출은 어떻게 될지 하는 생각에. 요즘따라 영업이 더 잘돼 때로는 좌석이 없어서 손님을 다 받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 때마다 애초에 좀 더 큰 가게를 임대맡아야 했는데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머리가 흔들어졌다.시작에 너무나 두려워한것이 어찌 보면 너무 어이없었던것이다. 철수도 채소며 마른 안주감이며 잔뜩 구입해들고 가게에 들어섰다.
“여보, 필요한건 다 사왔소. 나 집에 가 있을테니 혹시나 부족한게 있음 전화하오”
습관이 되다싶이 한 공식적인 말이였다.
“그래요.혹시라도 늦으면 전화할테니 마중나와요.”
“알았소”
철수가 구입해온 식자재들을 주방에 들여다 놓고 두손을 탁탁 털며 나왔다. 그리고 출입문쪽으로 향했다.
“어험!” 하는 기침소리와 함께 거쿨진 한 남자가 “와라와라”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민희가 습관적으로 인사를 하며 일하던 모습대로 출입문쪽에 눈길을 돌렸다. 속으론 누가 이리 일찌기 아침나절부터 술생각이 나서 왔을가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아잇, 이게 누구냐, 군석이구나.”
“허허허 철수야, 그동안 몸은 어때?가게 한다는 소리 듣고 고향에 왔던차에 찾아왔다”
“잘했어, 참 잘했어. 오랜만에 만나니 너무 반가워. 근데 어려운 형편은 어떻게 됐니? 한번쯤 찾아올줄로 믿었다.”
철수는 나가려다 말고 군석이 손을 잡고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혹시 이번에도 어려운 일이 있어 온거지?”
친구지간이라지만 어쩐지 군석이 눈치가 살펴졌다. 옆에서 반기던 민희도 철수의 옆구리를 툭 쳤다. 군석이의 자손심을 상하게 할가봐서 걱정됐었 던것이다.
“허허허 그럼 어려운 일이 있어 왔지. 내가 도움받으려고.”
“그래 말해. 돈이 얼마나 필요한거야? 내가 영업도 잘되구 하니깐 너한테 빌려줄 웬만한 돈은 있으니 액수나 말해.”
철수가 민희앞에서 이렇게 통이 크게 나올수 있는데는 그럴만한 리유가 있었다.
군석이와 철수는 중학교 다닐 때부터 제일 친한 친구였다. 군석이네는 당시 아버지가 림장 림장장인 덕으로 돈은 물론 먹을거리도 싸아놓고 살았다.당시 아버지가 병으로 일찍 돌아가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오던 철수네는 생활이 어려웠다. 가난한 집 자식이 철이 빨리 든다고 용돈 한푼 못 가지면서도 철수는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지만 결국 대학입시를 포기한채 사회에 나와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후에는 착하고 어진 민희와 결혼하게 되였다. 결혼식에 남들이 다 갖추는 채색TV하나도 못 갖추게 된 철수의 사정을 뻔히 안 군석이는 장사에 쓰겠다면서 부모님한테 3000원을 가져다가 21인치 TV를 사다가 철수한테 결혼선물로 해줬다. 그 때 세월에 쉽게 해줄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그전에도 둘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한형제처럼 어려움도 즐거움도 같이 해온다는 약속을 해온터라 두사람의 우정은 반석처럼 다져졌던것이다. 후에 제각기 제 삶을 위해 서로 같은 하늘아래 다른 지역에서 달렸지만 우정은 여전히 색바래질순 없다고 생각한 철수이다.
“그래 날 도와줄수 있단 말이지? 그리고 민희두?”
“아 그럼요. 우리가 어려울 때 군석씨가 한몫을 해준 값을 이젠 우리가 갚을 때가 됐어요.”
“ 오케이! 그럼 너네 부부 둘다 나를 도와준다고 답복한거다?”
철수와 민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 나를 도와 례식장을 운영해줘.실은 내가 1년전부터 여기다 면적이6500평되는 대형 례식장 하나 만들었다. 운영은 믿을만한 사람한테 맡겨야 하는데 네가 오래동안 외국에서 소식 없고 하니 참 답답했거든.그러던차 저번에 고향에 철새축제 있길래 고향친구들도 찾아볼겸해서 찾아온거야.”
군석이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되는 개방도시인 심천에 일찍 진출해 부동산중개소에서 부동산을 팔던데로부터 시작해 지금은 알아줄만한 사업가로 되였다. 락엽귀근이라고 아무때건 고향에 돌아오기로 마음먹은 군석이는 남몰래 고향에 돌아와 투자여건을 고찰하고 고향에다 1억을 투자해 건물을 사고 례식장하나 세웠다.그런데 믿고 맡길만한 사람을 물색하자니 쉽지 않았다. 애들 고추끝에 묻은 밥알도 떼여 먹을 요상한 세월에 아무한테나 맡기였다간 자칫 고양이한테 고기덩이를 맡긴 식으로 될수도 있었던것이다.특히 요즘에는 어려운 가운데서 진실을 많이 알아보기 쉬운 세월이라 부득이하게 사업하다가 망해빠진 빈털터리배역을 했던것이다. 다행히도 철수네 부부간은 십수년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때가 묻지 않은 대로였다 그때 군석이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속으론 역시 친구 하나는 잘 뒀다는 만족감에 자꾸 기뻐지려는 마음을 감추느라 남모를 애를 썼던것이다. 망한 사람이 얼굴에 실실 웃음기를 띠우면 그야말로 상갓집에서 신나는 곡을 연주하는것만큼이나 어울리지 않을테니. 더우기 갈라지면서 손에다 남모르게 쥐여준 800원은 그로 하여금 철수와 민희에 대한 신뢰를 더 깊이 했던것이다.
너무 천방야담같은 군석이 말에 철수와 민희는 두눈이 다 휘둥그래졌다. 전혀 믿어지질 않았다. 허나 군석이 해온것이 연기였다는 말에 믿고 말았다. 더우기 시내 한모퉁이에 주차장까지 넓다랗게 주어진 새 건물이 있음을 잘 알고 있는 민희와 철수는 믿을수밖에 없었던것이다.순간 철수는 고까움이 치밀어 올랐다.
“야 임마새꺄, 아무리 떠본대도 분수가 있어야지. 그런 식으로 친구를 떠봐? 한번 친구면 그리고 영원한 친구로 약속했으면 영원한 친구지! 너 정말 이재보니 심천바닥에서 고약한 수단만 배워왔구나. 나 안해.”
철수가 씩씩거리면서 불평을 털어놓았다.
“미안해. 내 립장에선 그럴수밖에 없잖어. 너란게 오래동안 소식이 끊겼지.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람이 안변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니? 노엽아 말고 나랑 같이 손잡고 일해보자. 자 리윤 70:30어때? 이만하면 꺼멀의치(哥们义气)가 있는거잖아?”
그랬다. 일전한푼 투자하지 않고 운영만 해주어도 지금의 맥주집의 열배 아니 그보담 더 될만큼의 수익을 얻을만한 일이였다. 정말 친형제라도 이렇게 할수 있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런데 남의 일만 해왔고 장사랍시고 요 작은 가게 반년남짓이 한 경험밖에 없는 우리로선 감당할만할가요?”
민희가 걱정스레 물었다.
“두분은 잘해낼수 있으리라 믿소. 민희는 한국에서 주 방장까지 한 경력이 있으니 음식에 대해선 근심없을거구.그리고 너무 걱정마오. 내가 4성급호텔에서 하던 료리사까지 다 불러오기로 했으니깐. 이제 한두달후에 오픈할건데 그 사이 오픈준비를 하는 한편 큰 호텔 례식장에 견학도 다녀오도록 하오”:
정말 꿈만 같았다. 자다가도 이게 꿈이냐 생시냐 할 정도로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착하게 바르게 살아야 행운도 복도 차례지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의 일년간 주방에서 착실히 열심히 일해준 혜련아줌마한테 맥주집운영을 리윤 60:40으로 나누는 조건으로 맡겨야지 하고 작심을 했다. 그 동안 정이 들고 온갖 정력을 들이고 고충까지 쏟아버렸던 가게를 믿음직한 사람한테 맡기여야만이 군석이처럼 다른 사 람한테도 베푼다고 생각되였던것이다.
어언 두달이 지났다. 깔끔하고 화려하며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로얄례식장”이 끝내 오픈식을 가졌다. 오픈식날이자 동창회날이 였다. 60여명동창들중 30여명이 동창회에 참석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는 판에 이만하면 많이 참석한 셈이다.
대형스크린에는 “모여라 친구들아, 우정의 노래 목청높이 부르자!”라는 글발이 푸른 하늘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하얀 구름을 배경으로 한 가운데에 찬란하게 씌여져 있었다.
동창회는 “교정의 종소리”란 노래속에서 시작되였다.
꿈많은 시절을 축복하는가/ 배움의 새날을 불러오는가/ 가슴을 울려주는 교정의 종소리/ 언제나 들을수록 정다웁구나/ 아~ 아~ 교정의 종소리/희망찬 래일을 부르는 메아리.
다들 일어서서 학창시절에 즐겨불렀던 이 노래를 목청높이 불렀다. 저마다 교정에서 있었던 일을 되새기는지 눈길들이 아련해났다.
방송국에서 MC로 있는 란이가 동창회 사회를 맡고 마이크를 쥐고 나섰다.
“세월은 흘렀어도 우리 우정의 끈은 여전히 끊기지 않고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지가 거의 20년이 가까와 오는 마당에 우리는 이 자리에 다시 모여 배움으로 불타던 그 시절을 되새기면서 동창들 회포를 나눌수 있는 자리를 가지게 되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준 리군석씨와 리철수 김민희씨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면서 오늘의 동창회 첫순서로 이번 동창회를 위해 만원을 찬조한 리군석씨한테 .마이크를 돌리겠습니다.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맑고 부드러운 란이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우렁창 박수소리가 새 례식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곤색나는 양복에 연한 하늘색 넥타이를 맨 군석이가 나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친구들, 우리가 한자리에 모여서 이렇게 오붓한 시간을 가진다는게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저는 그동안 사업한답시고 친구들 그리고 고향에 자주 들리지 못했습니다. 외지에서 사업하면서 저는 사람이 곧 재산이다. 있는것을 소중히 여겨야 함을 깊이 있게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친구들과의 우정의 끈을 단단히 틀어쥐고 친구들의 일에 최선을 다 하렵니다.”
또 한차례의 떠나갈듯한 박수가 터져나왔다.
철수가 마이크를 들고 앞에 나섰다. 그는 동창들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보더니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저는 정말 여직껏 내 자신만을 그리고 내 가족만을 위해서 하늘을 쳐다볼새도 없이 돈벌이를 해왔습니다. 옆에 누가 있고 누가 나를 필요로 하는가 같은 건 나하곤 인연이 없는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에야 그게 인생의 정답이 아님을 여겼습니다. 때로는 좌우도 상하도 여겨보면서 내 주위의 모든것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친구들 우리 다 함께…”
이때다.례식장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하얀 드레스 입은 녀인이 까만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를 휠체어에 싣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들어섰다. 30여쌍의 눈길이 일제히 그들한테로 돌려졌다.
“어? 저게 누구니? 유나 아니니?”
“어 맞다.우리 반에서 남자를 제일 많이 한 유나 맞어.”
사처에서 쉬쉬거렸다.
“아 유나씨 늦게 왔네요. 참 늦어도 이렇게 참석해주니 참으로 반가웁습니다. 동창들 열렬한 박수로 유나씨를 맞이합시다”
그래도 이 술렁이는 장면을 로련한 MC인 란이가 뒤수습을 했다. 유나는 의연히 천천히 휠체어를 밀고 무대앞에까지 나섰다.
“동창들, 너무 반가워. 동창들도 알다싶이 내 인생경력이 좀 복잡했어. 하지만 오늘 난 내 인생에 마지막 남자로 이 남자와 결혼하게 됐어. 동창들의 축복을 받는 가운데서 간소하게 그리고 추억에 남을수 있게 결혼식을 올리고싶어 오늘을 고대고 기다렸어. 다들 축복해줄거지?”
좌석은 삽시에 조용해졌다. 마이크를 쥔 란이가 박수를 치자 급기야 모두들 박수를 쳤다 민희가 어느새 례식장에서 쓰려고 미리 마련해둔 꽃살바구니를 가져다 그들 머리우에, 몸우에 뿌려주었다. 유나도 휠체어에 앉은 남자도 세상의 행복을 다 차지한듯 환하게 웃었다.
유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다들 보시다싶이 제 남편 될 사람은 장애인입니다. 두달전에 교통사고로 지체 장애인으로 되였어요. 주위 사람들은 이제 장애인 남자랑 결혼해서 무슨 락을 보겠는가 하면서 말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 남자는 세상에 사랑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게 해주었고 또 진정한 사랑이 뭔가를 알게 해줬으며 유일하게 나를 사람취급 아니 녀자 취급해준 남자였습니다. 저의 인생에 이 남자가 유일한 그리고 마지막 남자일것으로 될것입니다. 동창들 지켜봐주세요.”
유나는 남자의 손가락에 먼저 반지를 끼워주었다. 이어 남자도 양복호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유나의 손에 끼워주었다.
“뽀뽀해,뽀뽀해!”
누군가 큰소리로 웨쳤다. 온 장내 가 “뽀뽀해”로 가득찼다.
유나가 살며시 허리를 굽히자 남자가 유나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유나도 남자의 볼에 쪽 하고 소리 크게 날 정도로 키스를 했다.
동창회가 계속되였다. 노래소리에 웃음소리에 온 례식장은 환락으로 차넘쳤다. 밤은 소리 없이 깊어가고 시내 가로등들이 대낮처럼 시내거리를 환하게 비춘다.
하늘의 별들이 졸음을 몰아내기라도 하듯 수시로 깜빡거린다. 별들의 강인 은하수가 기다랗게 늘여져 밤하늘을 하얗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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