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신명세계(神明世界)와 인간(人間)
1) 신명계(神明界)와 과학(科學)
2) 인간신(人間神)과 동식물(動植物)
3) 신명계(神明界)와 인간(人間)
1) 신명계(神明界)와 과학(科學)
현실의 과학은 신명의 존재와 그 작용을
인간의 물질 대상으로 그것을 연구하고 있다.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관계, 즉 현상으로 나타나 있는 물체의 생명과,
그 물체의 생명을 움직이고 있는 비물체를 알려고 하는 것이,
현재 유전과학 또는 물리학의 분자과학이다.
그리고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알아보려는 과학이 심령과학인 것이다.
인간의 정신을 좌우하는 것이 영파(波)라고 생각하고,
영파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과학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영파라는 것이, 물리적인 현상의 노출은 없지만
물체의 생명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에 도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우주는 영적으로 서로 엉키어 있는 하나의 크나큰 대생명체를 보게된 것이다.
그래서 물질과 비물질과의 관계, 즉 유형세계와 무형의 세계와의 질서를
인간들은 진리(眞理)라고 말하며, 혹은 천도, 또는 법도 라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우주관이 그대로 들어맞는다고 하면,
이 우주는 진리와 법도로 가득차 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심령과학에서는, 우리 인간을 우주적인 생명의 「에네르기」를 받아들여 가지고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 있는 존재를 물체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우주의 「에네르기」를 정신의 세계로 보고,
육체의 현상을 통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정신과 육체의 작용을 통해서 유형적인 것이 무형적인 것이 되고,
무형적인 것이 유형적인 것이되는 변화에서 윤회가 거듭되어진다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현재, 심령과학에서 주장하는 견해와 결과적으로 일맥상통 한다고 본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어떠한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말한 것은 아니다.
어떤 영감(靈感)이나, 계시(啓示)에 의해서 말하게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정신의 내용이 신명계(神明界)와 인간,
그리고 물질세계와 어떤 관계에 있으며,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해명해야 할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과제를 풀어보려는 것이 오늘날 심령과학이 해야할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심령과학에서 말하는 영파시대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종교가이 말하고 있는 이른바 지상천국이 실현되는 때라고도 볼수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최고로 발달한 물질과학과 심령과학이
합일해서 자아내는 시대가 바로 영파시대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를 다시 종교적으로 말한다면,
신명세계와 인간세계가 합일해서 자아내는 시대가 인간 신선시대라 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인간의 추구는 철학에서도 미래의 주요한 과제가 되어있다.
우주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과 자연, 인간과 물질, 인간과 인간의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고
연구 하는 것이 철학의 문제이며,
그 길로 인도하려는 것이 종교의 문제이며,
이를 위하여 분석하고 실증하려는 것이 과학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혁명이라고 하면, 정치적인 변화나, 또는 군사적인 거사를 생각하기 쉬운데,
혁명이란 새로운 것에 대한 전환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윤회를 의미 하는 것이다.
사고(思考)의 혁명이다. 의식(意識)의 혁명이다 하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윤회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세계가 생각 하고 있는 사고와 의식을
새로운 평화의 세계를 만드는데 돌아가자는 것이 혁명이 된다.
철학자인 「헤겔」도 인간에게 생각한다고 하는 사유(思惟)가 있기 때문에
존재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진리라고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실천이 있을 수 있고,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며,
이론이 있어서 비로소 행동하는 현실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무형적인 것이 있어 가지고 유형적인 것이 나타난다고 한 것은,
우주의 참 모습을 드러내는 중요한 진리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이외에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믿으려 하지 않은 것이 오늘의 인간 사고(思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사고일뿐,
우주의 진리, 그 자체는 존재한다.
신(神)의 무형적인 존재를 믿지않으면서
인간의 현실은 믿고 있다는 사고에는 모순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이미 정신이라는 무형의 존재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심령과학에서도 앞으로는 영파를 중심한 새로운 진리가 수립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파의 세계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때,
이 인간세상은 진리의 실천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양심(良心)을 버리고 생활하는 사회는 항상 혼란하고 불안하다.
개인의 양심이 있고, 국가의 양심이 있다.
그리고 인류는 세계의 양심이 있다.
이러한 양심은 모두가 상대와의 조화와 협동을 위한 양심이어야 한다.
그런데 세계의 양심을 기준으로 해서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유엔」도
아직은 이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강대국의 거부권으로 세계의 양심이 실현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세계는 인간들이 싫든 좋든간에
세계의 양심을 갖지않고서는 살 수 없게될 그러한 시대가 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세계의 양심을 가지고, 모든 국가가 초국가적인 입장에서
이 지구를 관리해야 되는 시대가 반드시 온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심령과학의 발전도와 인류사회의 변화상을 놓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때가 더 흐르면 세계의 양심만으로도 살 수 없고,
우주의 양심을 가져야만 살 수 있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심령과학자들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지구의 단위로 하여 초국가적인 하나의 세계를 모색하고 있지만,
앞으로 심령과학이 고도로 발달하여,
이 지구 이외에도 다른 혹성이나 항성에 인간과 같은 생물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될 때에,
그때에는 세계의 양심의 기준을 넘어서서 우주의 양심을 가져야만,
인간과 다른 생물과의 평화를 이루고, 서로가 공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주의 양심을 가지고 우주적인 생활을 하게 될 때가,
바로 신(神)의 섭리가 완성되는 때가 아니겠느냐고 일부의 과학계에서는 말하고 있다.
과거의 인간들은 막연히 정신적으로만 우주를 논하고,
또 종교적으로만 우주를 추구하고 관념적으로 말해 왔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떠한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우주를 이야기 해야되고,
또, 우주의 양심을 갖추어야만 살 수 있을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인간은 그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만 된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최고로 발달된 물질과학과, 최고로 발달된 심령과학을 가지고, 모든 우주현상이 드러나게 될 때,
종교가 말해온 신비적인 영적세계, 즉 신명의 세계가 드러날지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되면, 앞서 말한바와 같이 영파를 중심으로 새로운 진리가 형성되고,
또 그 진리가 새 시대를 형성해 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의 원점은 영능(靈能)에 있고,
영능의 원점은 영통, 또는 성인에게 있는 것이다.
성인들이 스스로 체험했던 영능의 현상으로
비로소 진리와 교리와 경전이 꾸며졌던 것이며,
그 교리나 경전을 인간 생활에서 실천하려고 했던 것이 종교를 형성시켜 놓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까지는 막연하게 명상이나, 기도 같은 것들을 통해서 영능현상을 체험하고,
그것이 종교의 전부라고 믿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에 있어서는 그러한 종교적 영적현상을
외적으로는 물리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내적으로는 초심리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분석하고 파악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종교가 과학적으로 드러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인류의 역사상에 없었던 큰 소망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신의 존재가 심령과학을 통해서 밝혀진다면,
그 때에는 인류의 사상이 새롭게 정리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에는 종교문제도 완전히 해결될 것이라는 의미에 있어서,
그것은 전인류의 희망의 새시대가 출발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학과 초과학을 통해서 인간문제가 이상적으로 해결되는 날,
그때에는 종교문제를 비롯하여,
모든 세계적인 문제와 우주문제까지도 해결 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을 소우주, 즉 우주의 축소판이라고도 말하지만,
분명히 인간은 우주와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인간이 인간을 진정으로 알게될때,
우주를 알 수 있게 되는 때라고도 볼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종교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앞에 놓고
새로운 종교의 출현과 진로를 모색 할 수가 있게된 셈이다.
그러나 지금도 세상에는 영계의 존재를 부인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영적체험을 해본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 관해서,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보다 확실하게 알고싶어 하는 인간의 의욕은,
결국 이제까지의 과학을 발전시켜 온 것이다.
그리고 오늘에 와서는 인간이 죽은 후에도 영원히 산다고 하는 것을 비롯해서,
모든 신비적인 사실들을 과학적으로 밝히려 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인간들은 우주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운 의욕을 가지고,
새로운 창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이 창문 밖에는 영계 즉 신명세계의 비밀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저쪽에 신(神)이 보일는지도 모르는 그러한 찰라에 우리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종교의 내용이나, 종교의 진로가 보다 확실해질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소련」과학자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이미 외적인 우주를 정복한 것과 같이,
이제는 인간의 내적인 우주도 정복해야 되겠다」.
그래야만 우리들은 세계를 완전 정복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 앞에서 오늘날 종교인들은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더듬어 볼 때,
사실상 어떠한 새로운 진리를 세운 사람들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수그려야만 했었다.
그리고 그 새로 세운 진리를 중심하고 어떠한 현실 적인 힘의 판도를 이룬 사람들 앞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굴복하거나 노예가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실증해 나왔다.
그래서 신(神)의 실존과 영계의 존재를 믿고 있는 모든 종교인들은,
지금 「소련」에서 심령과학을 통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려들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생사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만일 「소련」이 심령과학이라고 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종교가 말하는 영계의 내용을 알아내고,
드디어 신 (神)의 실존까지를 과학으로 드러내게 된다고 한다면
종교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들이 막연하게 관념상으로 지키고 있는 신앙,
그리고 관념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신명계나 신의 존재를
만일 그들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파악하고,
신이나 신명계가 가지고 있는 초현실적인 힘이나 능력을
자유자재로 행사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참으로 무서운 세계가 전개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명계와 신(神)은 우주의 양심을 철두철미하게 실천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우주의 양심으로 변화시켜 주는 좋은 기회가 되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 「소련」에서는 심령과학을 기반으로 해서,
사람 10 명이면 10명의 영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을
「EEG」라 든가 「CCAP」라고 하는 기계를 가지고서 산출해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10명의 역력에다 5명을 더한다든가,
또는 7명을 빼면 어느 정도의 영력이 되느냐 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측량해 낸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소련」과학자들은 현재 많은 영통인들을 양성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영계에 있는 영력을 이용해서
대학생들에게 천재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영적인 역학(力學)의 힘을 이용해서 세계의 정복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무신론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과학을 통해서 영계를 파해치려 들고 있다는 것은,
신명세계와 신명의 존재를 은근히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된다.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불확실한 것과, 미지의 것,
그리고 현상에 나타나는 것을 밝혀내는 방법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밝혀내지 못한다고 해서,
그 존재하는 자체가 없는 것도 아니며, 있는 것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과학이 추구하는 영계, 신명계가 완전히 드러나지 못한다 하더라 도,
우주의 양심, 우주의 심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신명을 알게 되는것만도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인간신(人間神)과 동식물(動植物)
바다의 깊은 물속에 있는 것을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
그러나 잠수부는 그 곳에 들어가서 물고기의 노는 것도 보고,
해초의 여러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명의 세계에도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그 곳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잠수부와 같은 장비나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이어야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잠수부는 사진기를 이용하여 바다속의 상황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일 수 있지만,
신명계를 출입하는 사람은 그 곳의 상황을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것이 다르다.
그러기 때문에 그 신명계의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말로는 전활수 있지만
보여줄 수 없는 것이 현재 로서는 안타깝다.
바다속이나, 달 나라를 왕래할 수 있고,
또 그 곳의 상황을 과학의 힘으로 사진을 찍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지만,
신명계에는 과학의 힘으로도 현상을 다른 사람들 에게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은,
현대의 과학이 아직도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과학적으로 신명게를 알 수 있게된다면, 과학이 필요없게 되어진다.
신명계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면,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을뿐 아니라,
전달할 상대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다해도 형상이 있을때 비로소 사진에 나타나지,
형상이 없는 신명계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명계에 간다고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물적 표시를 보여줄 수 없게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신명계가 있는이 없는이 하며, 쉽게 믿으려 하지 않은다.
오늘의 과학문명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생각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알지 못하고 모르는 것은 전부 없는 것으로 부정하는 것도
큰 어리석음이며, 잘못된 생각이다.
어렵고 힘드는 것을 싫어하고, 편리하고 안락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신명계를 알아보는데에는 그만큼 힘이 들고 어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곧 인간 심성을 닦아야 한다는 힘든 고개가 있기 때문이다.
이 힘든 고개를 넘어야 깨달음에 이르고 나아가 신명계를 알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깨달음의 그 고개를 피하며 싫어한다.
깨달음의 체험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마치 문명세계를 모르고 원시인처럼 살아가는 사람과 같다.
원시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문명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댓자
얼른 수긍도 안가지만, 알려고 하지도 않은다.
항상 그대로의 생활이 좋은이까, 이처럼 신명계를 모르고
현실의 세계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오늘의 생활에 안착하는 현대인도
신명계에서 본다면 원시인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사람이 현상대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제생각 제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르게 알게 신명계의 영향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항상 마시고 사는 공기의 존재를 모르는채 하는것과 같이,
신명게의 영향을 항상 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다.
동물과 식물, 또한 생명체들 모두가
신명계와는 안과 밖의 관계에서 서로 상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애니미즘」 즉, 만유영혼설을 주장하는 학설이 있는데,
이것이 추상적으로 생각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의 체험에서 얻어진 표현이라고 보아진다.
증산께서도 만물에는 일체가 신(神)의 작용에 의하여 생명이 있고 없고 한다고 하였다.
내가 체험한 바에도 그것이 정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사람은 동물이나 식물보다, 그 능력에 있어서 월등하며,
우주신(神)의 뜻을 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으로
동물과 식물의 생명체와 다른 점이다.
인간 이외의 생명체는 자체의 신명에만 한정된 능력이 있으나,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생명체의 신(神)을 소유한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뜻을 사람으로 하여금 대행케 하는 것도 이러한 원리에 있다고 본다.
과거에 성인이 이 세상에 나와서,
하늘나라의 법도와, 그 질서를 인간 세상에 펴려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인간신의 본질에 근원이 있기 때문이다.
3) 신명계(神明界)와 인간(人間)
사람이 행동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 모두를 신명세계에서는 환하게 보고 있으며
양심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하면, 그에 대하여 신명들은 항거하고 따르지 아니한다.
조금이라도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거나, 남에게 속임수를 쓰게되면,
그 순간은 모면이 될지는 몰라도
장차에는 자신에게 모든 것이 나쁜 결과가 되어 되돌아오게 된다.
따라서 병들거나, 일이 잘 안되는 원인에는
반드시 그의 조상신이나, 주위의 신명들이 불편하거나, 불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해결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또는 약물을 쓰거나 병원을 찾아도 그 환자는 제대로 쾌유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환자를 그의 처가집에 기숙하게 하였느니,
그 처남의 아내(처)되는 사람이 겉으로는 반기는척 하면서도,
내심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니,
그 환자의 병은 쾌유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악화되어지더라.
그래서 살펴보니 그 환자의 주위(친척들)신명들이,
그 처남댁의 심사를 못마땅 하게 여겨서,
그 환자의 치병에 협조를 하지않은 것이었다.
이러할때, 그 처남댁에게 노골적으로 불평을 하거나,
원망을 하게되면 더욱 잘못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는 처남댁에게도 미안하고 죄스러운 기분을 주지않고, 그 집을 물러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이라도 머물게 해준것에 대하여 감사히 여기며,
그 처가집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마음 속에서, 더 도와주지 못한 것을 뉘우치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병은 자신의 마음과 행동과 말에서 잘못됨이, 곧 원인이 되나니,
일체를 자신에게 먼저 되돌아보고 상대를 판단해야한다.
그 판단은 자신을 위하는데 척도를 두는 것이 아니라,
미륵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았는가에 척도를 두고 판단 해야 한다.
그래야 주위의 신명들이 호응하게 되며,
나아가 모든 것에 신명들이 협조를 하게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신명세계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나,
무의식 속에서 모든 것을 운행하는데 간여하고 있는 것이 신명들이다.
물질의 세계만을 인식하고 있는 오늘날의 인간의식을 개혁하지 않으면 않된다는 것이,
바로 신명계의 작용과 인간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는데 있다.
현세의 인간들은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만 가지고 문제로 삼는다.
따라서 형상에 나타나는 외과적인 병은 잘 판단하며 치료 하는데 노력한다.
그러나 그 병의 발생원인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 환부를 치료하다가 도리여 딴부위를 병들게 만든다.
소위 병은 고쳤는데 사람은 죽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 과학이 잘못되면 오히려 병을 만들고,
사람들의 심성을 비뚤어지게만 한다.
왜냐하면, 병을 고치는데에는 돈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적으로 외부의 침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자동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예로서, 혀(舌)는 사람 몸에 흡수되는 모든 음식물을 맛으로 선택하고 있다.
짜고, 쓰고, 덥고, 찬것 등을 몸에 알맞게 감지하여 필요에 따라 흡수하게 된다.
이와같이 인체의 각 기관은 모두가 각자의 활동으로 전체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어느 한 기관이 잘못되면 다른 기관에도 지장을 주게된다.
이것은 마치 우주가 활동하는 형태와 똑 같다고 하겠다.
이러한 인체의 각 기관은 하나의 인간이란 전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스스로가 할 역할에 대하여 절대적인 질서와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어느 기관이 잘못되었을때 고장이 생긴다.
이것이 곧 병인 것이다.
그 기관의 고장이 생기는 원인이
바로 신명의 작용에 의하여 발생한 다는 것을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치병은, 약물이나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병든 인체의 주변과, 병자 자신에 대한 심성과, 신명들의 화해와 안정에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병자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그것은 스스로가 바른 마음, 바른 행동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조상에 대한 관계, 또는 주위의 인척들에 대한 관계,
모든 사람들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미륵님의 뜻에 따라 행하였는지를 깊이 반성하는 것이다.
근래에 이와같은 법방을 실천하는 교육자가 있다.
현재 충북 진평여자고등학교 교장으로 있는 송선호 교장이다.
그는 1983년 12월, 대학병원에서 간암으로 진단이 내려,
병원에서는 시기가 늦어 손을 쓸수 없으니 퇴원하라고 하였다.
그것은 그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식음을 전폐 하고 사경에서 죽엄의 시간만을 기다리게된 송교장은
어떤 인연으로 나를 찾게 되었든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물약자효의 법방대로 정성을 다하자
곧 회복되어, 학교에 다시 복직하여,
지금은 언제 병을 앓았든가 하리만치 건강한 몸이 되어,
학교생활이나, 가정생활에 있어 미륵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가 재직하는 학교는 도내 모범학교가 되었고,
1987년 한국일보사에서 추천 발굴한 전국 교육자대상을 수상하고,
교육시찰의 특혜가 주어저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지금도 그는 아침 저녁으로 자기반성과 아울러,
개혁된 심성에 오염이 되지않도록 노력하고 있다한다.
증산께서 말씀 하시기를,
「선영(조상신)의 음덕으로, 나를 믿게 되나니,
음덕이 있는자는 들어왔다가 나가려하면
신명들이 등을 처들이며, 이곳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음덕이 없는자는 설혹 들어 왔을지라도 이마를 처내시며,
이 곳이 너는 못있을 곳이라 일으나니라」 하였다.
이것을 보아도 조상신(祖上神)의 음덕에 대하여,
살아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병든 사람을 대할때,
그 사람의 조상신에 관하여 문제가 있나 없나를 먼저 알아보고,
그 조상신이 원하는 것을 해결함으로서
환자의 마음과 의식을 혁명토록 말을 한다.
옛날 오대(五代)봉사, 즉 고조부모 까지 제사를 지낸다 는 이유가
바로 인간신의 존재와 그 영향관계를 의미 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신명이 인간세상에 영향을 주는데,
그 대상이 자기의 자손이다.
그리고 그 영향을 행사하는 기간이 손자 증손 고손까지 미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체험한 바로는 보통 손자대 자손까지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다.
그후, 이 신명들은 대우주신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나라 신명계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신명계가 안정하면 인간세계도 안정되고,
신명계가 불안정 하면, 인간세계도 불안정 하다는 것이다.
미래의 세계는 신명계와 인간세계가 완전통일 하는 것으로,
신과 사람이 합일 한다는 때라고 한다.
따라서 하늘 나라가 이 지상의 인간 세상에서 실현된다는 것을 뜻하며,
이로서 후천이 열리고, 지상의 극락세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내용의 기록은 미륵삼부경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특히 증산께서 이세상에 오셔서 천지공사를 통하여 후천세계의 설계를 하셨다는 것이다.
근래에 내가 일본을 다녀온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느낀 것은, 일본사람들은 현재 경제적으로는 세계의 제일을 자랑하며,
과학문명도 세계의 첨단을 가고 있으면서,
신명에 대하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하나의 예로, 그들은 아직도 집집마다 신주(神主 가미누시)를 모시고 있으며,
또 특이한 것은 어린이 신명에 대하여 특별히 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린이가 죽어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신위를 모시고 있는 점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린이가 죽으면 그 무덤은 물론이고,
신위를 모시는 일이 거이 없다.
옛날부터 미혼한 남녀의 무덤은 만들지않은 것으로 전래되었고,
그들에게 제사나 추도를 하지않은 것도 당연한 일로 의식되어 왔다.
이것은 분명히 신명계를 모르는데서 생겨난 과오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전쟁에서 죽은 젊은 사람들, 군인은 그들 자신들의 명에 의하여 죽어간 것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인 업보에 의하여 희생되었다고 보아야 하며,
어린이가 죽어 간 것은, 그 어린이의 명에 의하여 죽었다기보다,
그 집의 업보에 의하여 희생되었다고 보아야한다.
따라서 그들의 영혼과 신명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간 세상에서 평등이니 민주화니 하고 있는 것은,
신명 세계에서 평등과 민주화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린이 신명이나, 무명의 군인 신명들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대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다.
증산께서 해원(解寃)이라고 하신 뜻은,
신명계의 평등과 민주화를 위한 것이다.
인간 세상에도 그 해원의 이치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해원의 참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없는 것을 성취하게 해주는 것이 해원인 줄 알고 있으며,
신명계의 해원도 그와같이 각자의 원하는 대로 해결해주는 것이 해원공사인줄 알고 있다.
그러나 증산의 해원공사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해원은 인간 세상에서의 평등과 민주화로 각자가 미륵님의 심성으로,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갈망의 소원을 이룩하게 하여주는 것이며,
신명계에는 어린이의 신명이나, 군인의 신명이나, 장군의 신명이나,
부자의 신명이나, 가난한자의 신명이나,
모두가 평등하게 민주화 하려는데 해결을 한 것이 해원공사였든 것이다.
그러므로 해원공사의 참뜻을 알고 있다면,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깨닫게될 것이다.
현실에서 욕망대로 잘 살기를 소원하면,
그 소원을 풀어주는 것이 해원인 줄 생각한다면 크나큰 잘못이 된다.
이와 반대로 사람이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미륵님의 뜻에 따라,
바른 심성을 가지고, 사람으로서의 제값을 다할가 하고 소원하는 사람에게
그 소원을 풀어주는 것이 해원인 것이다.
해원공사 이후 신명계는 완전히 모든 갈등과 불만을 없애고,
완전한 평화와 평등의 세계를 이루었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 세상에서도 평화를 제촉하게 된 것이다.
소련이나 중국에서 평화를 주장하고, 핵무기를 폐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곧 신명계의 현상이 인간 세상에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인류의 축제인 올림픽이 열리게 된 것도,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이 라고 한,
증산의 천지공사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인간 세상에서 해야할 일은
사람 각자가 각기의 심성을 바로 하고,
미륵님의 뜻에 따른 행동이 있을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생활의식(生活意識)과, 가치관을 완전 혁명하여
후천의 신성세계(神聖世界)의 사람으로서 새출발 하여야 할것이다.
후천의 신성세계에서는
지금까지의 그릇된 인간의 심성과 생활가치를 가진 사람을
인류의 씨앗으로 선택하지 않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