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참석
5주라는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운 정규반을 뒤로 하고 기대하던 환영등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동생의 결혼식 때문에 첫날 환영식은 참여할 수가 없었고 미리 짐을 싸둔 뒤 다음 날 새벽 4시 무렵에 일어나 차를 타고 대둔산으로 향했다. 잠을 3시간 밖에 못 잔 터라 많이 졸렸지만 내려가면 갈수록 짙어지는 진한 녹색의 산들과 숲의 냄새에 마음이 들뜨고 졸음이 가셨다.
첫 만남
오전 6시 40분 쯤 도착하니 마당이 이미 차들로 꽉 차 있었다. 환영 등반이 정말 큰 행사라는 것을 실감했다. 차에서 내리니 이번 환영 등반에 배정된 하드월 회원분들이 반겨주셨다. 바로 자리에 앉아 떡국과 밥을 배부르게 먹었다. 산바라기 건호형을 찾아가 인사를 하고 등반 짐을 챙겼다. 78기 3조 지민님과 6조 호진님도 같이 하드월에 배정되어 인사를 나누고 선배님들의 차에 탑승하여 대둔산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출발했다.
케이블카&어프로치
내가 속한 팀은 6명이었고 하드월 회장님-수빈님-나-아영님 / 가인님-부식님 순이었다. 회장님은 졸업식날 우리 조 원종민 선생님 옆 자리에 내빈으로 앉으셔서 얼굴을 기억했는데 같은 날 3조 태윤님에게 꽃을 전달해준 아내 분이 바로 아영님이었다. 그리고 알고보니 가인님은 우리 조 용현님, 정희님 내외분과 이전에 이미 실외 리드 암장에서 같이 운동을 해서 아는 사이라고 하셔서 신기했다. 케이블카 운영 시작 시간이 8시 30분이라 그 동안 앉아서 쉬면서 스트레칭도 하고 조원들과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었다. 가인님은 볼더링을 오래 하다 등산학교에 다니게 되었다고 했는데 산행 경험은 많지 않은 터라 처음에 긴 어프로치가 너무 힘들었다고 하시는데 나 또한 동감했다. 평소에 등산을 거의 하지 않아서 1시간 어프로치만 해도 정작 암장에 도착하면 바위를 잡을 힘이 없었고 정규반 3주차에 백운대, 노적봉 연 이틀 다녀온 날에는 거의 죽을뻔 했기 때문이다.
케이블카에 탑승해서 창 밖을 바라보니 정면으로 거대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다. 남산타워 케이블 카 말고는 타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이렇게 케이블카에 탑승해서 멋진 바위 산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계속 아래로 내려가는데 속으로 '돌아올 때는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장선 회장님을 열심히 따라 내려가니 새천년 코스가 나오고 여기서 산바라기 회원분들이 등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 더 올라가서 신선암장이라는 곳에 짐을 풀고 등반 준비를 했다.
1피치
우리가 오를 코스는 신선A라는 10.b 4피치 페이스, 크랙 코스였다. 준비를 마친 하드월 회장님이 선등을 하셨다. 곧이어 수빈님이 올라가고 나도 바로 이어서 벽에 붙어 출발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말을 하자 아영님이 자신감 가지고 올라가라고 하셔서 마음을 한번 다잡고 올라갔다. 1피치는 어렵긴 했지만 비교적 무난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피치들은 훨씬 더 어려웠다.
2피치
딱 봐도 어려워 보이는지라 회장님이 올라가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며 발 디딜 자리를 보았다. 내 앞에서 올라가는 수빈님이 정말 침착하고 편안하게 해주셔서 긴장이 많이 풀렸다. 내 차례가 되어서 올라갔는데 막상 붙으니 발 디딜곳, 손 잡을 곳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밑에서 아영님이 좋은 홀드들을 알려주셔서 어려운 부분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여기서 기억나는 것은 중간 지점에서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몸의 균형이 깨질 듯한 느낌을 받아서 아찔했던 순간이다. 곧 아영님의 빌레이를 보았다. 빠르게 올라오는데 아마 내가 15분이 걸렸다면 거의 3분만에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얘기를 나눠보니 매주 토,일 이틀 거의 안빠지고 항상 등반을 했다고 하셨다. 심지어 빙벽반도 하셨는데 빙벽반은 20kg이 넘는 짐을 지고 어프로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체구도 작으신데 자기 몸무게 절반이 넘는 짐을 지고 산을 오른다고 하니 놀라움에 입이 안 다물어졌다. 강철 의지란 이런 분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스스로가 너무 나약하지 않았나 반성도 들었다.
올라가니 경치는 좋아지는데 그만큼 햇빛이 너무 강해서 더위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입에서 덥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이때부터 배낭에 준비해둔 이온 음료를 열심히 마시기 시작했다.
3피치
햇빛에 온몸이 뜨겁게 구워지는 와중에 3피치 출발을 했다. 발 디딜 곳도 보이지 않고 홀드도 작았다. 여기서는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두세번은 로프에 매달려서 쉰 것 같다. 발이 불안하니 추락할 것 같은 위기감에 '줄당겨'도 많이 외치기 시작했다. 볼트도 한번 밟았다. 체감상 3피치에만 20분은 넘게 붙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늦어지는 만큼 내 뒷순번인 아영님은 바위에 붙어 뜨거운햇빛에 고통 받고 있었다.(죄송합니다ㅠㅠ) 천신만고 끝에 올라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쉬지 않고 후등빌레이를 보면 4피치에서 더 고생할까봐 감사하게도 부식님께서 대신 후등 빌레이를 봐주셨다.
4피치
개인적으로 최고 난이도였다. 디딜 곳이 너무 가파르거나 작은 홀드라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고 중심을 잃을 것 같아서 줄당겨만 10번도 넘게 외친 것 같았다. 여기서는 회장님이 중간 지점에서 매달려 계시면서 발 홀드, 손홀드를 알려주셔서 가까스로 어려운 구간을 지나갈 수 있었다. 어려운 구간을 통과하니 그때부터는 경사가 완만해지고 잡을 것도 많아서 비교적 편하게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올라가니 수빈님, 가인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부식님, 아영님이 올라오고 나서 단체사진을 찍은 뒤 하강을 했다. 신선a 꼭대기는 나무로 그늘이 져 있어서 앉아서 쉬기에도 아주 좋았다. 조금 더 일찍 출발해서 여기서 점심을 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산 및 식사
하강을 하고 나서 왼쪽 벽을 보니 78기 태완님이 단피치에 도전하고 계셨다. 중간 지점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어서 짐 정리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직벽에 가까운 곳인데 멀리서 봐도 디딜 곳이 없어 보였다. 불안한 발홀드에 의지해 붙어 있는 걸 보니 내가 다 쫄렸다. 얼마나 어려운데길래 저렇게 고전하시나 싶어서 개념도를 보니 11.a였다. 나는 애초에 저기서 시도도 못하고 바로 내려왔을 텐데 하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몇번이나 미끄러지시더니 결국에는 그 가장 어려워보이는 구간을 올라가셨다. 보는 사람도 뿌듯한데 직접 돌파한 당사자는 얼마나 기분 좋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산을 하며 중간에 회장님께서 샘에서 시원한 물을 떠다주셔서 덕분에 손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었다. 날씨가 너무 더웠던지라 손에 닿은 물이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야영장에 도착하니 맛있는 음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면도 간을 딱 맞게 해서 푸짐하게 끓여주시고 싱싱한 총각김치와 양념 목살, 닭고기 요리, 김치전, 차갑고 진한 미숫가루 등 정말 하나같이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최고의 만찬을 준비해 주신 하드월 회원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식사를 마친 후 갑자기 열린 무료 재활상담? 까지 받으며 호사를 누렸다. 정리를 마친 후 회장님의 마무리 인사를 끝으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향했다.
긴 후기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환영등반을 선물해 주신 하드월 회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동규님께서 하드월과 함께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항상 안등하시고 기회되면 다음 등반을 기대해봅니다
다시 한번 78기 여러분들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회장님께서 안정적으로 인솔해 주셔서 더욱 편안한 등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하드월과 함께하는 다음 번 등반이 기대가 됩니다~
78기 졸업을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맞춤법 띄어쓰기 다 맞추면서 정성스럽게, 길게 잘 쓴 글은 정말 오랜만에 읽어보는 것 같네요. 감동적...ㅋㅋ 하드월과 함께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졸업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등반 열심히 하세요~
등반 후에 글을 쓰면 그날의 등반을 다시 반추해 볼 수 있어서 이것 역시 또 하나의 즐거움이더라구요.
혹여 열심히는 못하더라도 안 다치고 꾸준히 길게 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동규님 어제 더운 날씨 등반하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무섭고 어렵다 하더라도 항상 자신감을 갖고 등반해 보자고요!! 졸업 축하드리며, 언제나 안전 등반 되시고 산에서 봬요!
겉모습은 여리지만 에너자이저 같이 파이팅 넘치는 아영님을 보며 저도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확실히 등반은 신체조건도 중요하지만 정신력과 마인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 멘탈 스포츠라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78기 졸업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산에서 봬면 반갑게 인사드릴게요^^
정욱님~ 산바라기와의 산행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서 공지를 올려주시옵소서ㅎㅎ
기록의 가치를 아는 귀한 후배님이시군요. 멋진 글 잘 봤습니다. 동규님 앞날의 힘찬 발걸음을 응원합니다!
그날의 바위에서의 움직임을 돌아보며 글을 쓰니 한번 더 등반을 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더라구요. 사진에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을 담을 수 있는게 기록이 가진 힘이지 않나 싶습니다. 묘랑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영 등반 때 옆 암벽에 붙어 계셨던 학생장님! 넘 반가웠습니다~ ㅎㅎ
저한테는 어려운 피치였지만 교장선생님과 선배님들이 도와주셔서 간신히 맛도 좀 보고 뿌듯함이 있었어요! :)
조만간 산에서 또 봬요 동규님!!
저도 태완님처럼 어려운 코스도 과감하게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78기 에이스 호진님과 더불어 실력이 일취월장하실 거라 믿습니다!
조장님들과 함께 78기 동기 모임도 준비해 보겠습니다ㅎㅎ 태완님 조만간 또 봽고 얘기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