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숫자입니다. 왜냐하면 죽을 사(死)자를 연상시키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엘리베이터에 4층을 F층(Four층)이라고 표기하기도 하고, 때론 아예 4층을 없애고 5층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죽음을 연상시킬 수도 있는 4라는 숫자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은 4. 4.입니다.(참고로 이 글은 4. 4. 쓴 글입니다.) 4라는 숫자가 두 번이나 반복되고 있으니, 더욱 싫어할 듯 합니다.
44
이 번호는 제 대학교 학번입니다. 물론 학번 전체는 아니고, 앞 번호 대학과 학과를 표시하는 숫자에 마지막 숫자가 44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4라는 숫자가 낯설지가 않고 오히려 좋습니다. 4라는 숫자의 이미지가 저에게는 그리 나쁜 의미를 담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저는 강원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 해가 1985년도입니다. 대학입학 오리엔테이션 날,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학번 순으로 이름을 불러 입학에 따른 뭔가를 했던 것 같은데, 44번인 제 이름이 불리우고 나서 몇 번 지나 48번, 한 여학생의 번호가 불리워졌고 그녀가 앞으로 나가는 모습에 저는 그만 한 순간에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그녀에게선 무언가 빛이 뿜어져나오는 것 같았고, 저는 그냥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바로 대입 전해인 1984년도 제5회 MBC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자인 이선희라는 가수 때문이었습니다. "J에게"라는 제목으로 대상을 수상한 그룹은 4막5장이었습니다.
https://youtu.be/GpgRMHBXJ6s?si=AZ9VOu6MNf7sqg75
*** 이선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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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대학 시절이던 1984년 제5회 《강변가요제》에서 같은 학과 선배 임성균과 4막 5장이란 팀으로 출전하여 《J에게》를 불렀다. 애초에 상명여자고등학교 2학년 때 노래가 하고 싶어 작곡가 장욱조의 음악 사무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어떤 무명 작곡가(이세건)가 말하기를 "아직도 내가 만든 노래를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며 악보 뭉치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그 악보 뭉치를 주우면서 마음대로 불러도 되는지 물어 보아 결국 허락을 받았으며, 그 쓰레기통 속에 있던 노래가 바로 〈J에게〉였다. 3년이 지난 이후 1984년 이 노래로 MBC 강변가요제에 참가를 하여 대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으며 데뷔하였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바지만 고수하는 옷차림의 보이쉬한 매력으로 ‘언니 부대’가 만들어졌으며, 특히 동그란 안경과 커트 머리가 여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며 소위 '이선희 신드롬'을 일으켰다.
아직 정규 앨범 한 장 없이 오직 〈J에게〉란 곡 하나만으로도 11월 25일부터 KBS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여 골든컵을 차지하였고, 1984년 KBS 방송 가요대상 신인상, 1984 MBC 10대가수가요제 최고 인기가요상, 신인상, 10대 가수상으로 최초 3관왕에 오르는 등 데뷔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위키백과 '이선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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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선희가 지금 내 눈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던 것입니다. 헤어스타일도, 자그마한 채구하며... 이름 또한 <이Jung희>여서 나는 그만 한 눈에 반해버렸고,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확인되지는 않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원래 물리학과를 지원한 게 아니었는데 다른 학과(약대)에서 점수가 안되어 떨어지는 바람에 물리학과로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물리학과 수석이 저였는데, 그녀가 옴므로 인해 그녀가 수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나는 지금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데...
입학 후 2년 간 짝사랑의 열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을 정도로 그녀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자신 있게 그녀에게 다가가 '나랑 사귀자, 우리 같이 커피 한 잔 할래' 등 이런 말조차 건네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그녀 바로 앞번호 47인 남자는 저의 가장 절친이었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48번 그녀는 47번 그를 마음 속으로 좋아했나 봅니다. 내 친구는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기 위해 휴학을 했고, 나는 그녀와 함께 4학년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군에 가 있는 47번에게 있었고, 저의 사랑 고백을 거절하였습니다. 지금 그들 둘은 벌써 30여년을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첫 사랑의 실연의 아픔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곧 1986년 가을 어느 일요일 아침!
대학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잠시 쉬려고 도서관 홀에 나와 앉아 있던 저에게 어떤 삐쩍마른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그에게는 검은 색에 붉은 색이 칠해져있는 두꺼운 책이 한 권 들려져있었고, 그는 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