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사회과학도서읽기(사과모임)의 주제는 ‘장애인 이동권’이었다. 쓰고 싶은 주제가 있었으나,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게으른 탓에) 자연스레 이와 같은 주제의 글을 찾아보게 되었다. 조선일보의 사설을 찾으면 반대하는 논리로 쉽게 글을 쓸 수 있으리란 막연한 생각과 달리, 어느 부분에선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기도 해서 혼란스러웠다.
전장연 시위의 불법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지난 시위의 ‘불법성’을 적극 지지하는 편이다. 2001년부터 시작해 철길을 점거하고 출근시간대를 선택하며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그 상황이 아니었다면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이나 가졌을까? 20여년이 지난 지금, 지하철 엘리베이터 보급률 94%는 시위의 덕을 보는 게 아닐까?(하지만 완전한 이동권을 향한 길은 멀기만 하다. 지하철뿐만 아니라 저상버스, 장애인콜택시 등 연결된 교통수단이 호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 서울에서 지낼 때 지하철을 타며 엘리베이터와 장애인 화장실을 잘 이용했다. 아이가 어려 에스컬레이터로 움직이기 힘들 때가 많았고, 장애인 화장실만큼 기저귀 교환하기 편한 곳도 없다. 그때는 위와 같은 노력을 잘 알지 못했으니 그들의 노력에 무임승차 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수 있겠다. 어떤 글에선 출근길 시위로 시험을 보지 못한 학생의 이야기를 다루며 시민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허나 그간 이동권으로 불편을 겪어온 장애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만나기 어렵다. 똑같은 삶인데, 약자는 사연을 부여받기 어렵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의 시위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한정된 게 아니었다. ‘탈시설’ 관련 내용도 함께 담겨있었다. 서울시와 합의에 어려움을 겪는 건 이동권이 아닌 탈시설 관련 내용이라는 것이 전장연 시위 비판의 근거 중 하나였다. 애석하게도 이 부분에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입장의 차이가 비슷한 결과를 초래하니 당황스러웠다. 장애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루는 언론 비마이너에 기고된 탈시설에 관한 글을 찾아 읽어보았다. 시설에서 나와 어느 부분이 좋았는지 이야기 하는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개별적인 옷을 입고,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일은 버튼을 누르면 상주인력이 도와준다. 하지만 그들이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함께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염려가 되는 건, 시설 밖에서 시설처럼 살아갈 모습들이 그려지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예산으로 진행될 온갖 서비스가 사람들과 어울릴 여지를 단절하지 않을까?
개인의 자율을 보장하는 시설이 늘고 있다. 시설의 이름부터 평범하게 바꾸고, 식사도 먹고 싶은 시간에, 옷도 자유롭게 입는다. 개별생활공간이 있는 건 당연하다. 머리를 할 땐 시내 미용실에 다녀온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분은 지역 마라톤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한다. 매체에서 보던 기존 시설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하기에, 지금의 이러한 노력이 가려지는 것 같았다. 기숙사가 시설과 같지 않듯, 단체로 생활하는 것이 꼭 부정적이진 않을 것이다. 어느 곳에 거주하든, 어떻게 돕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탈시설이 꼭 정답인 것 같은 분위기가 안타깝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비슷한 상황을 만날 수 있었다. 중국대사와 이재명 대표와의 만남에 대한 글이었는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비판하며 왜 중국 동쪽 해안에 지어지는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서해바다에 직접적인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며. 이 글도 어느 부분에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분에 대한 수긍이 전체내용까지 긍정적으로 착각하게 한다. 교묘하게 본질을 흐리는 글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입장을 가지는 것은 어렵고 위험하게 느껴진다. 내 입장에 반하는 입장은 언제나 존재하니까. 그렇다고 아무런 입장도 가지지 않는다면, 내가 발견했던 이런 모순되는 상황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이의 의견에 의심 없이 따랐을지도 모른다. 입장을 가지되, 달라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상황이 전장연이 했던 일 전체를 부정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 덕분에 더 나은 세상을 만났으니까. 그렇다고 그 다음 주장까지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다.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또한 다른 의미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이 아닌가. 그들의 다음 행보가 조마조마함을 감출 순 없다.
여담으로, 사설과 연결된 수많은 댓글을 보며 한숨이 깊어만 갔다. 그 원색적인 비난이 아직 갈 길이 멀었음을 깨닫게 한다. 예산보다 중요한건 인식의 변화다. 하지만 이런 글은 한쪽의 입장에선 예산삭감의 기회로, 다른 한쪽의 입장에선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생각으로 여겨지리란 사실에 씁쓸하기만 하다.
(아, 글을 다써가는데 전장연 측의 요구와 달리, 서울시가 의도적으로 탈시설 관련 부분을 물고 늘어지는 듯한 내용의 글을 읽었다.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니 사실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글쓰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