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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10(월) :
모처럼 정말 오랜만에 맑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을 본다. 지난밤 잠을 설쳤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미얀마 방문 중 폭발사고를 영국의 BBC Radio로 방송으로 듣다. 오래 미루어 오던 Vibration checking(선체 진동조사)을 실시하고 한꺼번에 Report를 정리하다. 밥벌이를 한 날인가.
Oct. 11(화) :
입항전의 짙은 안개. 11:35시에 South Africa의 Cape Town 외항에 Dropped anchor. 15:30 Berthed at Dunkan dock 'D'. 오랜만의 입항인데도 어쩐지 기분이 나질 않는다. 근간 Condition이 시원찮은 느낌이 있기도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숙면을 못하고 불안정하다.
Oct. 12(수) :
새벽 2/O의 소동이 있었다. 기어이 하나쯤 희생을 시켜야 겠다. 체중이 1-1.5Kg 줄었다. 67.5-69Kg을 오르내린다. 왠지 대변을 하루에 두세 번씩 갈라서 본다. Fly Angle을 거쳐 Disco el Gio에서 한잔하면서 기분을 돌리려고 했으나 그 마져 안 된다.
Oct. 13(목) :
Agent에 가서 대아에 전화. Crew Roll 및 제반 문제를 대강 이야기하다. 2/O 문제를 우여곡절 끝에 매듭 짓다. 전화위복이 될려나? 제 버릇 개 못 주는 꼴은 아닐는지? Ship Funds(선용금)를 받다. 그 때문에 집에 전화할 시간을 놓쳤다.
Oct. 14(금) :
오후 2시 집에 전화. 모처럼 활기찬 Wife의 목소리가 기분을 전환시켜 준다. 집을 매매, 다시 구입했단다. 역시 임자가 있다는 소리다. 보다 더 자세한 소식이 없어 궁금증이 쌓이지만 다음까지 참자. 강풍이 불기 시작. 항내인데도 30K't가 기록된다. C/E, R/O의 상륙 권유를 거절. 꼼짝않고 머물다.
Oct. 15(토) :
Miss Moria의 생활실태에서 비참함이란 것을 느낀다. 그녀는 백인이면서도 여기서는 유색인종 즉 흑인으로 취급된단다. 이곳에서 백인과 유색인종의 구별은 단순한 피부색이 아닌 모양이다. 생활습성, 사고방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엇인가 재고의 여지를 남긴다. 그의 권유를 거절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수없이 뿌려져 있는 Asian계 2세들의 내일은 누가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Oct. 16(일) :
GS 趙 君의 치통과 음주, 그리고 퉁퉁부은 한쪽 볼따구. 그래서도 Disco를 해댔다. 그 심정만은 이해해 주자. M/S Brazilia호(한성소속)의 Capt.와 C/E가 방선하다. Greece Owner에 28년의 선령. 결국 Lien(유치) 당했단 소리인데 골치 아프게 됐다. 희망적이라기보다 갈수록 태산이란 감이 짙다. 동정이, 공감이 가지만, 힘에 되어주기에는 역시 한계가 있다.
Oct. 17(월) :
14:30 출항. 모두가 홀딱 빼앗겨 버린 느낌이다. 한 주일 동안 몸도, 기력도 주머니도 몽땅 털렸다. 수많은 아가씨들에게-. GB 조 군의 발병이 곧 OL-1의 질타 때문임이 밝혀지다. Anglo로부터 한꺼번에 선원 교대함에 대한 동의를 받다.
Oct. 18(화) :
14:55시 외항 도착. 17:40 접안하다. 오랜만에 1시간을 걸었을 뿐인데도 다리가 뻐근하다. 또 다시 상륙하겠다고 “Lend Me Money” 하는 녀석들이 있다. 늘 그런 작자들이 그렇다. 정신 나간 사람들이다. 집 걱정이 자꾸만 앞선다. 어떻게 되고 있을까? 계속 67.5-69Kg을 유지한다.
Oct. 19(수) :
GS 조 군을 치과에 보내다. 약이 4-5가지나 된다. 미련스러운 녀석이다. 20:40시 다시 출항. 항내에는 일본선 ‘Acasia Maru’ 이외는 선박이 없다. Pilot의 말처럼 해운경기의 불황임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10여일간의 항해가 이어진다. 무엇인가 마무리를 해 들어가야 할 때다.
Oct. 20(목) :
비. 그러나 해상이 거칠지 않아 다행. 남은 약 한재를 다시 달이기 시작하다. 왼손 엄지 손톱 밑이 곪았다. 꽤나 아프고 성가시다. C/E의 권유로 Bible을 읽기 시작했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보다 우선은 ‘영어’교재로서 괜찮을 것 같아서다.
Oct. 21(금) :
파랗고 맑은 하늘이 모처럼 기분도 밝게 해준다. 약을 먹을 때마다 생기는 잠이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사 13권을 읽기 시작. Adolf Hitler가 미술학교에 두 번 낙방했다는 사실. 한 번만 합격을 했어도 세계역사는? 역사에 있어서 假定은 금물이랬잖은가.
내 스스로의 지난날을 보자. 고교 진학과정에서 담임 박준규선생님의 설득, 5 16과 군 입대. 어머니의 별세와 대학포기. 중앙학교에서 박기진 교장과의 Trouble로 인한 사직 등이 우연이랄 수도 있다. 그것이 결국 지금과 한 고리에 연결되어 있다.
Oct. 22(토) :
차츰 날씨가 더워져 간다. 3/O의 발병. 미련스럽게스리 말도 않았다. 이틀 동안 푹 쉬도록 했다만 역시 과로였던가 보다.
Oct. 24(월) :
하루는 그런대로 내 시간을 만들어 보낸다. 그냥 시간을 잊어버릴 수만 있으면 된다. 무얼하던 -. 그러나 모든 것이 진전이 없다. 회화도 그렇고 글씨도 그렇다. 그저 형식적일 뿐이다. 자신도 모르게 Calendar를 쳐다 보는 회수가 늘어간다. 移徙는 잘 되가는지? 잔금처리는? 어떤 집을 쌌는지 궁금증도 커져간다. 양하항이 Kwait. Sharjar, Damam항으로 Fix되다.
Oct. 25(화) :
대세계사 14권 전질을 끝내다. 남은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으나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중세와 근세 그리고 현세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지금도 헤메고 있을 뿐이다. 남은 기간 ‘政經軍團’을 마저 읽고 가자.
Oct. 29(금) :
오후 1시. 전원을 집합시키다. 남은 기간동안의 질서를 위해 주의와 경고를 하다. 화재예방, 선용품의 절약 사용, 선내 생활의 기본상식에 관한 것들을 새삼 일깨운다. 한 두 사람 때문에 늘 말썽이 아닌가? 다 됐다는 한 순간의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낳는 수가 있다.
Oct. 30(토) :
월말. 별 볼 일 없는 이곳에도 월말은 있다. 이 달의 수당. P.O.B 및 보너스 100%를 지급하다. 오늘 이사를 한다고 했었는데-. 잘 돼 가는지? 오후 3시 Hormus Strait(호르무스 해협)를 들어서다.
Oct. 31(일) :
밤늦게 도착. 그리고 바로 접안했다. 내일 오후쯤 다시 출항할 것 같다. ‘政經軍團’ 시작하다. 귀국 전에 讀破해야지.
Nov. 1(화) 1983 :
11월이다. 남은 시간이 성큼 닥아선 느낌이다. 편지 찾다. 초읍동 208-1. 아내가 너무 피로한 것 같다. 그 말대로 너무 바쁘겠군. 나는 너무 할 일이 없고-. 분명히 잘못됨이 틀림없다. 어서 가야겠다. 그의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우선은 첫째의 일이다. 광안리 집은 어떻게 지었을까? 콧등이 시큰해 온다. 나 때문에 Wife가 너무 고생이 많다. 건강이나 해치지 말아야 할텐데-. 내가 그를 위해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는 명백해져 간다. 애들을 위해서라도 -.
Nov. 2(수) :
Kwait 주재 한국대사관을 다녀오다. 인감증명서를 떼기 위해서다. 18:30시 출항. 뿌연 사막의 흙먼지가 시계를 가린다. 정영 살기 힘든 곳이다. 그 놈의 석유가 없다면 -. 아내의 과로가 무척 염려된다. 그와 나 사이의 Gap을 메우기 위한 힘든 노력을 서로가 이해와 인내로서 해내야 한다. 우선은 내 자신의 위치 정립이 시급한 문제임에 틀림없으나 이미 굳어진 것이 쉬이 돌려질 수 있을까가 더욱 큰 문제다.
Nov. 3(목) :
늦은 밤 23:10시 도착. 그러나 출항하는 선박 때문에 2시간이나 걸려 자정을 넘겨 접안하다. 부두 사정이 까다로워 무척이나 신경이 쓰인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사고는 없어야지. 예상외로 이곳에서 양하 할 양이 많다. Dammam에서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교대는 다음 항이 되어야겠다. 제기랄.
Nov. 4(금) :
접안하자 바로 양하 시작이다. 보기보다 성질이 급한가? 오늘 이사를 한뎄는데? 일요일도 아닌데-. 역시 종일 그쪽으로 마음을 앗긴다. 좀 더 능동적이고 명랑한 기분을 갖자. 억지로 라도-. 옛날처럼. 68-69Kg을 유지.
Nov. 5(토) :
예정보다 빨리 18:00 finished. 그리고 21:10 Departed. 미확인 정보지만 아직도 부근에 Mine(기뢰)이 있다는 소문에 깨름직한 기분이다. 예상대로 Dammam에서 빨리 끝낼 수 있어 다행이다만 Next Trip이 궁금하다.
Nov. 6(일) :
오후 2시. Dammam외항 도착. 15:20시 No.20 부두에 바로 접안하다. 날씨가 생각보다 덥지 않아 한결 견디기가 수월하다.
Nov. 7(월) :
Agent인 Star Navigation이 어딘가 엉성하다. 어제 보낸 Telex가 되돌아 왔는데도 ‘이게 왜 여기 와 있냐?’ 고 한다. Anglo에서 선원교대를 위한 항구는 내게 맡긴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Next Trip이 미정이다.
Nov. 8(화). 1983 :
14:00 Completed Discharging and Sailed at 15:30 for Muscat without any order for next trip. (14:00시 양하 완료. 15:30시 다음 항차에 대한 아무 오더 없이 무스카트로 출항하다.)
OCC의 Telex를 보면 아무래도 Docking을 생략. NK survey만으로 끝낼 모양이다. 아무튼 문제는 다음 항차가 Key Point인데 아직 아무런 Inform이 없고 계속 Waiting 하란 UNRI의 Cable이 있을 뿐이다. 20여일간 계속된 약을 마지막 먹다. 오직 아내의 정성을 생각하는 一念으로 끈질기게 달이고 먹었다. 보람이 있을 거야.
Nov. 9(수) :
‘政經軍團’ 8권을 마치다. 일본의 최근 정당사라고 할 수 있지만 의회정치의 묘미 같은 걸 느낀다. 마치고 가야지. 아직 6권이 남았다.
Nov. 10(목) ;
03:00 오만의 Muscat 외항 도착. 기관을 멈추고 표류를 시작하다. 09:00 UR로부터 다음항차에 대한 연락이 왔다. “To go Abidjan with Banana for west Med. or North Europ”(아비잔에서 바나나 적재, 중동이나 북유럽행)이다. 이제 날은 받은 셈이다. 아무래도 Abidjan에서는 ‘No’할 것이고 북유럽에서 교대될 것으로 봐야 겠지. Anglo, Diaship에도 그런 취지로 Cable하다. 오늘이 내 43회 Berth Day이다. 너무 많다. 벌써 -.
Nov. 12(토) :
대아로부터 온 전보가 아리송하다. 내용도 그렇고 Kwait에서 보낸 Letter를 받지 못한 모양. 기관장과 1/E의 문제도 Anglo와 틀린다. Loading Port인지 Dis Port인지도 불분명하다. 제대로 일을 마치자면 몇번인가 더 신경을 쓸 일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갑자기 몸살 기운이 있어 Contact을 먹고 목욕으로 땀을 빼다. 너무 약하다, 내 몸을 내가 생각해도.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있을까? 이렇게 해서야 앞으로를 어떻게 극복한단 말인가?
Nov. 13(일) :
GS 조 군의 치통이 재발. 염려가 된다.
Nov. 14(월) :
대아에서 다시 cable. 재계약은 불허한단다. 그렇다면 한 항차를 더 하라고 강요도 못하리라. 결국 22명이 북유럽에서 교대키로 한 셈. 아마도 12월 6-10일 사이가 되겠지. 이제 남은 기간은 차분히 정리하고 무사한 운항이 되면 된다. 오늘이 출국한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어느 해 보담도 잊혀지질 않을 해였었다. 귀국일이 정해짐은 또 다른 하나의 시작과 염려가 고갤든다. 앞으로의 문제다.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지는 서글픈 현실이다.
Nov. 15 :
지난 1년이 어떻게 지냈는지? 돌이켜 보면 늘 불안과 염려 속에서 보낸 것 같다. 어느 해 없었던 한약을 3재나 먹기도 한 해였고, 건강에 신경을 쓴 해다. 덕분인가 현재까지 식욕과 배변은 좋으나 어딘가 약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버리지 못한다. 감기도 두어번 했고 몸살도 앓았다. 아침에 쉬이 일어나기 싫은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닌지?
아직도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응어리는 곧 밝혀내야 한다. 다분 신경성임을 자신이 느끼기도 한다만. 이래서야 남아 있는 내 인생의 도리를 어떻게 한다는 소린가? 한해 대과 없이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보람을 느끼지만 어느 해 보다 질병환자, 사고로 인한 부상자가 속을 태우기도 했다. Wife 말대로 귀국 즉시 해결해야 할 License 문제도 있다. 앞으로 3-5년이 남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 지우게 된다. 무엇인가 다시 시작하는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인생은 한 순간순간이 모두 시작’이란 田中 전 일본수상의 얘기가 곧 그의 과거를 생각게 한다. 모든 일은 자신의 강인한 건강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왜 자꾸만 약해지려는 것일까? 분명히 최근 몇 년 사이에 별다른 발전이 없었던 것은 확실하다. 먼저 가는 대로 우선은 일거리를 가져야 한다. 거기에 정신을 쏟고 새로운 각오를 가져야 한다. Wife를 충분히 휴식하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얘들의 쌓인 불만도 풀어 주어야 한다. 책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짊어져야 할 사명이다. 인생은 돈이 그 전부가 아니란 것은 사실이지만 마치 전부인 것처럼 변해가는 현실을 무시하거나 도외시 할 수는 없다. 아직도 우리는 선진국이 아니다. 자기 것이 없어도, 자신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와 제도가 있는 현실도 아니다. 없으면 그만큼 비참함을 겪어야 하는 것이 지금이다. 5월의 팽귄처럼 죽도록 일만하다 가야하는 세대인지도 모른다. 그 열매를 거두자면 아직도 몇 세대의 뒤가 될 것이다. 내가 뿌린 씨앗에 대한 보살핌과 수확은 내가 끝까지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희생 없이 양립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니 철저히 희생을 감수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후회가 없는 인생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뜻대로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이 돼야 한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이기도 하지만 가장 맹렬히 일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시기인데도 그처럼 용기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그 원인의 여하를 불문하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깊이 있게 생각하고 행할 일이다. 1년간 79,780Mile을 항해했다. 지구를 두어바퀴 돈 셈인가?
Nov. 16 :
'政經軍團‘ 14권을 마쳤다. 거의 하루 한 권씩 읽어내 셈이다. 역시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은 있는 모양이다. 그것은 스스로 만든다기 보다 시대가, 환경이 만들어 내는 것인 모양이다. 일본인들의 간사성이 어느 정도 엿보이기는 했으나 대의를 살리는 관용도 함께 있다는 것도 느낀다.
GS 조 군이 계속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경이 많이 쓰인다. 테라마이신을 근육주사로 두어 차례 해보자. TM 대신 페니시린류가 좋을지 모르겠다만 체질적으로 맞을는지 의문이다. 어느 정도 소강상태만 유지하면 입항지에서 즉시 조치를 취하면 된다.
Banana hatch를 Open하여 점검을 마치다. 다소 불안한 감이 없지 않으나 할 수 없다. 남은 20여일이 다소 지루해 질지도 모르겠다. 역시 ‘有終의 美’를 얻기란 힘드는 것인가 보다.
Nov. 18 :
조 군이 일어났다. TM주사 때문인 것도 같다. 다행이다. 08:40시 Maputo를 항과함으로 Sub-Charter로부터 Delivered된다. 저녁때 ‘Reefer Paris’로부터 Instruction을 받다. 양하항이 Italy의 Livorno, France의 Marseille이며 Super cargo가 승선예정이랬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양하항이 두 군데로 나누어 지면 교대가 바빠지겠군. 순조롭게 되야 할텐데-. ETA Abidjan이 27일 정오경이 될 것 같다만 28일 정오로 Adjust하랬다.
Nov. 20. 1983 :
어제부터 시작된 Rolling, 바람은 없는데 먼 남쪽에서부터의 긴 Swell 때문이다. 몇 차례의 소나기도 오랜만에 지나갔다. 12시30반. Africa의 최남단인 Cape. Agulhas를 항과한다. 지금까지 몇 번인가 지난 곳이지만 이번은 유달리 감회가 깊어 보이기도 한다.
20시 Cape Town 시가지의 찬란한 불빛을 먼빛으로 보며, 만월이 떠 있는 Table Mount의 실루엣을 본다. 여기서부터 계속 북상이다. 아마도 이번 항해가 가장 긴 항정이 될 것도 같다. 8000여 마일에 20여일간의 여정이다. 한 달 전 Cape Town 정박시의 일들이 엊그제 같이 떠올린다. 남은 20여일이 고비라 보자.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보낼 수 있어야 한다.
Nov. 24(목) :
계속 순항한다. 3일째 하루 1시간씩 갑판 위를 조깅했다. 아무래도 정신상태가 산만해져 가는 감이 있다. Last Voy.라고 해도 이 배로서 처음 싣는 Banana와 France인 Super-cargo의 승선. N.K검사 등 신경쓰야 할 일들이 많다.
조 군과 WR-1 김 군의 Doctor Treatment도, 구서증서 갱신도 Abidjan에서 해결해야 한다. Livorno와 Malseille의 항박도가 Abidjan에서도 Paris에서도 안 된다고 해서 OCC에 Cable했으나 まねあう(시기가 맞을련지)가 될는지?
Nov. 27.(일) :
10:00 황금해안에 자리잡은 Ivory Coast의 abidjan에 입항. 즉시 접안했으나 세관들의 고의적인 Search로 말썽. 결국 담배와 술만 빼앗긴 셈. 검둥이 놈들! 안 그래도 다 알아서 줄 것인데-. 이곳 역시 점차 백인에서 흑인의 시대로 서서히 전환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백인들이었다면 그런 치사한 짓은 않을 것인데 -. 역시 여기도 방심할 수 없는 곳이다. 오늘은 작업이 없단다. 나갈 기분이 아니다. 본고장 흑인들은 비교적 안정되어 있으나 이웃 나라 Ghana에서 넘어온 녀석들이 영어를 지껄이는 것을 미끼로 온갖 못된 짓을 하는 모양이다. 역시 최하층의 인간군상들을 이루고 있다.
Nov. 28. :
轉錨. 그리고 Super-Cargo Mr. H. Schere가 승선. 그러나 자기도 이런 Banana Cargo의 Superviser는 처음이라며 잘 부탁하잔다. 허허! 우짜란 말이가?
작업 시작. 그냥 복잡하기만 하다. 검둥이 여자의 승선엄금. 각실 단속을 철저 등 신경쓰이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자정넘어 OL-1의 내방 및 이야기가 만기를 앞둔 말기적 분위기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밤새 뜬눈으로 새우다. OS-1은 편도선염이랬다.
Nov. 29 :
다소 일의 질서가 잡혀간다. Super-Cargo가 있으니 모든 Instruction을 그에게 미루고 작업은 내 의도대로 하도록 요청, 합의하다. 한결 정신적 부담을 들 수 있다. 잠시 외출, R/O와 맥주 두어잔을 마시다. 어서 떠야 할 텐데. NK Survey 시작. 그러나 Documenting Survey로 마친다. 자국의 이익이라면 최대한 알아서 처리해주는 일본인들의 정신이 부럽다. GB의 발병. 아니 왜들 이러나.
Nov. 30:
병자들만 실렸나? 아침에 C/O의 불평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자신의 역부족, 결점 등을 스스로 노출하는 결과밖에 안 된다. 그의 面從腹背形적이고 전형적인 Y형 성격이 여실히 나타난다. 공인으로서 자질은 그 사람의 일에 대한 능력 자체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가 꼭 그런 사람이다. 19:00 출항. 또 한번의 충돌의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겼다.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이제 이 길이 바로 부산으로 무사히 이어져야 한다. 며칠간 Cargo Temperature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겠지.
Dec. 1(목). 1983 :
화물 온도, 그리고 CO2, On-Deck상의 Fresh Air Line 점검 시에 No.3 CD deck의 배기 Line에 잘못이 있었다. C/O의 분명한 실책이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자신의 잘못을 선뜻 남에게 떠넘기는 그 빠른 재치가 오히려 부러울 정도다. 결국 그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얻는다. 다른 것을 모두 정상이다. 잘 될 것 같다.
GB 여전히 일어나지 못한다. 강해 보이면서도 보기보다 물렁한 모양이다. 이럴 때 그 녀석의 역할이 더없이 크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오후에 각 Hold의 Bilge 때문에 또 한바탕 소동.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팽팽한 시간의 연속이다. 아울러 또 하나의 문제의 씨앗을 남긴 셈이다.
Dec. 2(금) :
GB의 병세에 호전이 없다. 오후의 TM 주사 후 겪은 심한 복통에 놀라움과 신경이 곤두서기도 했다. 세네갈의 Dakar의 긴급입항을 Super-Cargo와 의논. 급하면 행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증세가 이상하고 원인을 모르겠다. 똑똑하게 자신의 증세를 밝히지 못하는 그 자신의 탓이 가장 크다. 우선은 편두선이 곪아 있는 것은 분명한데-. 복통이라니? 잠시도 그의 옆을 떠나지 못하게 사람을 붙인다. ‘Oh! God. 끝까지 이렇게 하시렵니까?’ 양하항이 Schedule대로 Fix되어 관계 회사에 Cable했다만 응답이 오려면 3-4일은 걸리겠지. 아직도 해야 할 일은 많은데 D-day가 미정이라 손을 델 수가 없다. 이 마지막 한 주일은 殺身成人의 정신으로 임하자. 그것이 곧 내 운명이라면… . 下關출항 1주년이다.
Dec. 3(토) :
GB 병세가 여전히 시원찮다. 오늘 오전 목의 통증은 없어졌단다. 아마도 곪은 곳이 터진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제 원기만 회복하면 되겠는데-. 영 파김치처럼 늘어져 꼼짝을 못한다. 그럴 수 밖에 - . 그간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실 수 없었지 않은가? 영양실조나 지나친 허약함이 다른 합병증이나 제2의 발병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도 도중에 입항하여 혼자 하선하게 될까 그게 두려워 바르게 이야기하지도 못한 모양이다.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하다. 정맥을 통한 생리식염수(링거) 주사를 하기로 했다. 모험이 아닐 수 없다만 내가 직접 하기로 하고 서둘렀다. 첫 번째는 실패. 팔뚝에 피만 묻히고 말았지만 두 번째는 성공했다. 등어리에 땀이 났다. 두어시간 걸려 약400cc 정도 넣었다. 한결 눈망울이 제대로 구르는 듯도 하다. 일어나야 할텐데-. 이러다간 내가 탈이 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다행히 Ref. Machine의 성능이 좋아 온도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만 해도 한결 수월타. Super-Cargo란 녀석도 전적으로 내 말에 수긍한다. 지가 뭐 알아야 면장을 하제.
Dec. 4(일) 1983 :
아침 주방에 전화하자 GB녀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다고 일하러 나왔단다. 놀람과 기쁨이 교차한다. 역시 기운을 차린 모양이다. 당장 뛰어 내려가 보았다. 희죽이 웃는 그 녀석의 얼굴에 핏기가 돈다. 어께를 쳐주고 당장 들어가 쉬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엊저녁에 용감하게(?) 실시한 정맥주사가 성공한 것이다. 정말 내가 나은 기분이다. 이제 더 이상의 사고가 없어야 할텐데. 앞으로 10일. 딱 열흘. 하나하나 매듭을 지어간다. Cash Advance가 다시 필요. 연락을 한다만 이해를 할는지. 충분할거라 예측했던 것이 다소의 차질을 가져온 게 원인이다. 모처럼 안정된 기분으로 되돌아 온다.
얘들도 Wife도 무척 기다릴 것이다. 마음속으로나마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 여러 날 됐다. 별고들 없어야 할텐데-. 믿을 뿐이다.
Dec. 5(월) :
2/O가 발병이란다. 환장하고 미칠 일이다. 설사가 심하다니 께름직하다. 몸살이라고 한다만 자식 뭘 했다고 몸살이야! C/K는 V.D라 하고, GS 조 군은 TM를 주사하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아무튼 당하는데로 해보자. 누가 이기나 해보자. 지기미 씨팔 것.
Dec. 6 :
GS 조 군이 기어이 들어 누웠다. 역시 퉁퉁부운 볼을 안은체 -. 이번엔 아무래도 볼테기를 칼로 째고 수술을 하드래도 근본적인 치료를 해보자. ‘제대말년에 보초선다’드니- .
No. 3 C D deck의 Return Temp.가 Del. Temp.보다 약간 낮게 나오는 게 이상하고 께름직 하다. 이런일은 처음 겪은 일이기도 하다. 무슨 특별한 일이 발생한 낌새는 아무데도 없다. 정화와 Wife가 취업선 노조 백일장에서 입상했다는 News가 오랜만에 기분 좋게 한다.
Dec. 7(수) :
늦게 온 Cable이 지금까지의 Schedule를 뒤죽박죽으로 만들 염려가 있다. 제기랄. 이번에는 용선자측에서 문제다. 9일 12:00시까지 도착. 9-10일 양일간 Livorno에서 양하를 완전히 마칠 모양이다. 마르세이유 도착이 11일 그리고 ETCD가 13일 정오경이면 완전히 하루가 Save되긴 하지만 교대일정에 차질이 있을 것만 같다. 생각보다 좋은 날씨가 한결 기분이 괜찮았는데 -.
Dec. 8 :
바람은 없는데 Swell이 ETD를 지연시킨다. 억지로라도 좀 늦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선내위원회를 소집. 1년간의 노고를 치하하고 결산 관계도 매듭을 지었다. 이제 나머지를 지급하고 봇다리를 들면 되지만 아직 남은 5-6일이 Last의 고비가 될 것이다. 자신부터 흩어러지지 않도록 하자. 대강 짐을 챙겼지만 아무래도 30Kg이 Over한다. 별것도 없는데도 그렇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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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동안 참 많이 읽고 느낌도 다양 했네요. 꾸준한 성격을 칭찬합니다.
선내에서는 일기가 정말로 필요했을 거란 생각이 읽을 수록 "정말 필요했겠다' 느낌이오
시간과 장소와 인적 구성이 수시로 변하는 생활 , 더우기 한치 앞을 모르고 지나가는 연속적인 생활이여서 더욱 그랬을 거란 동감이 듭니다.
수고 많이 했오 .
무사히 귀환해서 지금이 있으니 그 보다 다행한 일이 어디 있오. 감사합니다.
그러게 말이오. 지금 생각하면 살아 남은 것만해도 기적 같은 일입니다. 감사하네요.
구가 참으로 고생이 많오 . 어디서나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이 자신을 높이는 결과가 있는 듯하오.
.석암이 참으로 고맙게 생각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