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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빙하 속의 사투
「이제 개척단의 기반이 잡힌 모양이다.」
강회장이 주름진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렇게 애를 먹이던 러시아 병사들을 주무르게 되어서 잘 됐어.」
근대그룹의 회장실 안이다. 강회장과 마주오고 앉은 이남호 실장은 모처럼 회장의 밝은 표정을 보자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이토록 기쁘게 만들어준 개척단의 신입사원 김상철이 고마웠다.
회장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쟁반 위에 찻잔을 받쳐 든 여직원이 들어섰다.
긴장한 얼굴의 그녀는 박미정이다.
「유 상무는 이것이 모두 김상철의 공로라고 했습니다.」
이남호가 입을 열었다.
「신입사원이지만 열 사람의 몫을 해내고 있다는 군요.」
박미정은 회장 앞에 쌍화차를, 이남호 앞에는 인삼차를 내려놓았다.
「김상철이 그놈, 내가 알지.」
회장이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그놈 아버지가 작년에 세금횡령 사건으로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어. 지금은 교도소에 있지.」
「면접에서 떨어뜨리려는 것을 유상무가 뽑았다고 들었습니다.」
「유장석이가 사람 보는 눈이 있어.」
박미정이 조심스럽게 걸어 문을 닫고 나가자 그녀의 뒷모습에 시선을 주던 강회장이 이남호를 바라보았다.
「누구야? 참한데, 신입사원인가?J
「예, 회장님. 개척단 일도 있고 해서 비서실 인원을 늘렸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강회장이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11시 5분 전이었다.
「지금 와 있나?J
「예. 11시 10분 전에 도착해서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가보자.」
강회장이 나이답지 않게 사뿐한 몸놀림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접견실은 우중충한 회장실과는 달리 환한 분위기에 방 안의 장식이 고급스러우면서 품위가 있었다. 강회장이 앞장서서 접견실로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 있던 두 사내가 일어섰다. 안기부장 권준규와 특별보좌관 이해수였다.
「아이구, 권 부장님. 이렇게 오셨는데 마중도 나가지 못해서.」
얼굴에 웃음을 띠운 강 회장이 다가가자 권준규도 따라 웃었다·
「아닙니다. 바쁘신데 갑자기 찾아와서 방해나 안했는지.」
이남호와 이해수까지 악수를 나눈 그들은 자리에 앉았다.
권준규는 두 시간 전인 9시경에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해왔으므로 접견실에서 5분쯤 기다린 것에 자존심을 다칠 이유도 없다. 강 회장을 만나려면 최소한 일주일 전에 연락을 해야 시간이 난다는 것을 그도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부장께서 여기는 처음 오시지요?J
강회장이 묻자 권준규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예, 처음입니다. 여긴 청와대 접견실보다 낫군요.」
「그럴 리가.」
강회장이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하긴 각하께선 사치를 싫어하셔서, 나같이 돈만 아는 장사꾼이야 돈으로 위세를 보이려고 하니까요.」
권준규가 쓴웃음을 지었고 이해수는 딱딱한 얼굴을 풀지 않았는데 문이 열리더니 여직원이 차 쟁반을 들고 들어섰다. 잠시 어색했던 참이라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는데 조금 전에 회장실에 왔던 여직원은 아니다. 찻잔을 내려놓은 여직원을 바라보던 이남호는 문득 조금 전의 여직원의 운세가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회장이 밝은 기분일 때 들어와 밝은 인상을 심어줬지만 지금 이 여직원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은 권준규가 강 회장을 바라보았다.
「북경에서 지금 남북한 경제협력 실무자급 회담이 열리고 있는 것을 아시지요?J
「예….」
대답을 해놓고서 강회장이 이남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남호가 허리를 폈다.
「지금 8차 회담이 열리고 있습니다, 회장님.」
권준규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5차 때부터 북한이 트집을 잡기 시작하더니 8차 회담에서는 근대그룹이 시베리아 임차를 포기하면 모든 것이 풀릴 것이라고 노골적인 표현을 해왔습니다.」
「허어,」
강회장이 우선 눈을 크게 뜨고 놀란 얼굴을 해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면 경제협력 회담을 순조롭게 진행시킨단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납북된 어선과 선원, 그리고 납치된 종교인 송환 문제까지 연계시킨다는 것입니다.」
「선원과 종교인까지.」
「그렇습니다.」
강회장이 이남호를 바라보았으나 그는 얼굴을 굳힌 채 입을 열지 않았다.
방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으나 강회장이 그것을 깨었다.
「그 경제협력 실무자 회담이라는 것, 정부에서 주도하는 거지요?」
잠시 말을 끊고 권준규와 이해수를 일별한 강회장이 단호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우리 근대그룹은 거기에 참여할 의사가 없습니다.」
권준규와 이해수가 얼굴을 굳혔다.
정부에서 교섭은 하더라도 북한에 진출하는 것은 민간 기업들이다. 그런데 한국의 최대그룹이 불참의사를 밝힌 것이다.
「정부에서 우리한테 상의해온 적도 없고 회담과정을 설명해 준적도 없지요. 따라서 나는 상관 안하겠습니다. 회담 결과가 어떻든, 무슨 조건이 나오건 간에.」
강회장이 말을 마치고 입을 꽉 다물었다.
그때 '회장님'하고 격한 목소리를 낸 것은 특별보좌관 이해수이다.
그는 대통령 측근 그룹의 일원인데 국회의원에 세 번 낙선하여 직업을 정당인으로만 사용하고 다니다가 작년에 대망의 관직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가 강 회장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정부의 방침에 따르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선원들의 생명이 걸려 있는 일인데.」
이해수가 눈을 부릅뜨고 그렇게 말하자 강회장이 미소를 머금으며 가소롭다는 듯 이해수를 바라보았다.
이남호가 머리를 들었다.
「이보쇼, 당신 어디서 굴러먹다 기어 들어온 개뼈다귀야?」
이남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너 어느 앞이라고 건방지게 주둥아리를 놀리고 있어? 이 개자식아.」
입술은 웃었으나 두 눈을 찢어질 듯 치켜뜬 이남호가 말을 이었다.
「러시아 대통령도 중국의 주석도 회장님을 공경해서 예의를 갖춘다. 회장님이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해서 너 같은 새끼한테까지 모욕을 받을 수는 없으시다.」
「아, 잠깐만, 이 실장님.」
권준규가 웃음 띤 얼굴로 손을 저었다.
「이제 진정합시다. 이보좌관은 아직 물정에 익숙하지 못해서.」
그러자 머리를 끄덕인 이남호가 다시 이해수를 바라보았다.
「너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대로 옷을 벗게 될 것이야. 1년 후에 말이다. 앞날을 생각해서 조심해야 될 거야.」
말을 마친 이남호가 권준규에게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그만 제가 경망해서 부장님의 귀를 더럽혀 드렸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입맛을 다신 권준규가 잠자코 앉아 있는 강 회장을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회장님. 다시 한 번 고려해 보시는 것이.」
강회장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권 부장께서도 정부에서 우리 그룹에 오만가지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을 아실 거요. 세무사찰 받는 곳이 다섯 군데, 해외차관 허가는 우리만 나지 않았고 공장증축 허가도 미뤄지는 데다가 거래은행 두 곳에서는 대출이 정지되었고 중역들의 재산을 국세청에서 비밀리에 조사 중이오.」
그는 찻잔을 들어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지금쯤은 정부 고위층에서도 그런 방법으로는 근대그룹을 꺾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될 거요.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도 지난달 매출이 계획보다 10% 초과했소. 사원들이 분발한 덕분이죠.」
「부장께서도 내가 시베리아 지역을 임차해서 조선족과 한국인들을 대거 이끌고 그곳에 공장과 도시를 세운다면 그 효과가 어떨 것인지는 잘 아실 거요, 그리고 북한이 그토록 반대를 하고 있는 이유도 말이오.」
「난 계속 추진하겠소. 그러니 부장께서도 대국적으로 생각하고 도와주시오. 그래야 역사에 오명을 남기지 않으실 테니까요.」
길게 숨을 내쉰 권준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돌덩이처럼 굳어져 있던 이해수도 따라 일어섰는데 이를 악물고 있는 것이 볼의 근육에 나타나 있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권준규의 표정과 목소리는 부드러워서 마치 한담을 나누고 떠나는 사람처럼 보였다.
「김상철 씨는 지금 시베리아 동남단에 있어.」
박미정이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건네주면서 말했다.
「아주 위험한 곳이야. 춥고.」
그들은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마치고 휴게실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박미정이 점심을 같이 하자면서 안인석을 끈 것인데 김상철의 이야기를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 놈은 언제 돌아오는 거야?J
안인석이 묻자 박미정은 머리를 저었다.
「그건 모르겠어. 3월이 될지, 아니면‥‥‥‥」
「아니면 뭐?J
「그곳에 눌러 있을지도 몰라.」
「그 놈은 곧 돌아온다고 했는데.」
「김상철 씨 아버지가 교도소에 있다며?」
그러자 안인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건 누가 그래?J
「그냥 들었어.」
「어떤 개자식이 그따위 나발을 불고 다니는지 모르겠군.」
「누구한테 욕하는 거야? 우연히 듣게 되었을 뿐이라니까.」
「글쎄, 누가 그랬냔 말이야.」
「비밀이야.」
안인석이 혀를 찼다.
「넌 비서실로 가더니 비밀도 많다. 상철이가 개척단 업무를 하고 있다면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단 말이야?J
「솔직히 알고는 있지만 말할 수 없어.」
「이런 젠장.」
안인석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을 구기더니 휴지통에 넣었다.
「그럼 상철이가 있는 곳이 춥고, 위험하고, 아버지가 교도소에 있고,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이야기 해주려고 날 불렀어? 누구 약 올리는 거야?J
「김상철 씨는 지금 주목을 받고 있어.」
「주목을 받아? 어디서?J
「개척단에서.」
「글쎄, 어떻게?J
「그건 나도 자세히 몰라.」
「이런 젠장.」
「그 사람 성격이 어때?)
그러자 안인석이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제야 마각이 드러났어. 너, 상철이한테 관심이 있구나.」
「그냥 호기심이야. 오해하지 마.」
「네가 잘 알 텐데, 왜 나한테 물어?」
「글쎄 장난하지 말고.」
박미정이 정색을 하자 안인석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의지가 대단한 놈이지. 사내답고.」
「아버지의 사건 이후로 철저하게 주변이 부서져 내렸어. 가정, 인간관계 등이.」
「‥‥‥」
「그런데도 그놈은 내색하지 않고 기운을 차렸지. 그래, 시베리아에 벌거벗긴 채 버려져도 살아나을 놈이야.」
그는 다시 박미정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알아? 그놈은 몇 달 전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놈이야. 아마 나만큼 그놈을 아는 놈도 없지.」
「왜 안 울었는데?J
그러자 안인석이 입맛을 다셨다.
「그 자식한테는 눈물 같은 거 없어.」
「닷새 일정으로 LA를 다 볼 수는 없어. 그저 코리아타운 한 바퀴 둘러보고 할리우드 구경이나 해.」
박정남이 서랍에서 책 한 권을 꺼내더니 이유미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미국 서해안 관광 안내서야. 비행기 타고 가면서 이 책이나 읽어.」
「고맙습니다, 박 대리님.」
「나 없을 때 발대리라고 하지나 말아라.」
이유미는 5박 6일 일정으로 LA에 있는 현지 대리점에 출장을 가게 된 것이다. 신입사원들에게 담당지역을 익히고 현지 대리점의 업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회사방침이었다. 박정남에게서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난 이유미가 자리로 돌아오자 이제는 미스 양이 다가왔다.
「내일 몇 시 비행기야?」
「오전 11시 30분 KLM이야.」
미스 양이 옆자리의 의자를 끌어당겨 다가앉았다. 점심시간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때라 다소 업무태도가 느슨해진 시간이다.
「저 발정남 자식, 어젯밤 외박을 했어.」
낮은 목소리로 미스 양이 말했다.
「저 셔츠에 타이, 양말이 어제와 똑같아. 딴 데서 자고 나온 거야.」
「언니도 참.」
이유미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고 있어? 그럼 어때? 아직 미혼인 걸.」
「나한테는 아버지 제사라 일찍 들어가야 된다고 했단 말이야.」
「그림 그렇겠지 뭐.」
「네 남자가 그랬다고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봐, 그냥 지나갈 수 있겠니?」
그러자 이유미가 웃었다.
「난 이렇게 다른 사람한테 상의 안 해.」
「그럴 만한 가치도 없거든, 안 그래?J
「얘 좀 봐.」
얼굴이 굳어진 미스 양이 이유미를 쏘아보았다.
「그건 네 성격이지, 난 달라.」
「언니, 도대체 박 대리하고는 어떤 사이야? 서로 무슨 약속이라도 했어?J
잠자코 있던 미스 양을 바라보던 이유미가 머리를 끄덕였다.
「이것도 내 성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저런 남자는 잊어. 싹수가 없으니까.」
「‥‥‥」
「한마디로 가능성이 없어. 내가 보기에는.」
그러자 미스 양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몸을 돌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유미가 풀석 웃고는 전화기를 들었다. 안인석에게 미국 출장 이야기를 해주려는 것이다. 번호판을 누르던 그녀는 문득 김상철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시선 끝이 멀어졌다. 그의 주변 환경과 차가운 표정이 뒤섞였고 그러자 혹한의 시베리아가 그에게 어울리는 곳처럼 느껴졌다.
한낮이었지만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어서 주위는 어두웠다. 평원 쪽에서 휘몰아친 바람이 기지의 벽. 역할을 하는 트럭의 대열에 부딪치면서 갖가지 소리를 냈다. 마치 넓고 긴 바람의 원형이 가닥으로 찢겨지면서 내는 소리처럼 들렸다. 반월형 기지의 안쪽에서는 바람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눈보라를 위쪽으로 뿜어냈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림스키의 지휘로 병사들이 바깥 줄의 연료 트럭에서 드럼통을 굴러 내리는 중이었고 일부 병사들은 트럭 사이의 공간을 텐트용 천을 사용해서 막고 있다.
방한모에 방풍안경까지 쓰고 있어서 우주인처럼 보이는 유장석이 부속품 트럭으로 다가갔다.
「이봐, 눈보라는 사흘쯤 계속 될 모양이야. 조금 전에 연락이 왔어.」
그가 소리쳐 말하자 트럭 안으로 상반신을 넣고 있던 이대각이 몸을 폈다.
「우리야 눈보라가 멎기만 기다리면 되지만 시추공 기지는 야단났는데요. 이동 중이라.」
「목표지점 30킬로 아래에서 정지했다니 그들도 눈을 피할 준비를 하고 있겠지 .」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두 시간쯤 전이었다. 시추공 기지는 시도한 지역에서 유정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중에 눈보라를 만난 것이다.
그들은 무거운 공구 박스를 함께 들고 안쪽의 박스 트럭을 향해 다가갔다. 트럭 뒤로 들어서자 바람의 기세가 뚝 떨어졌으므로 유장석은 방풍안경을 벗었다.
「김상철이는 지질 탐사기지 5킬로 앞이라고 연락해 왔어. 그쪽은 바람만 셀 뿐 눈보라는 없다는 거야.」
지질탐사기지는 이틀 작업하고 사흘째 되는 날 옮겨가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었는데 벌써 8번째 이동에 있었다. 탐사자료를 체크한 김진모 교수의 시추공 팀이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기지를 옮기는 순서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사흘간 눈보라가 계속된다면 보급헬기가 사흘 후에 도착할 텐데 늦어지겠는데요.」
상자를 내려놓은 이대각이 말했다.
그들은 옷에 묻은 눈을 털어 내고는 박스 트럭 안으로 들어갔다.
뒤쪽에 배치된 트럭의 중간에 자리 잡은 이곳은 통신실이다. 최신형 위성통신 시스템 장비를 갖춘 통신실에는 두 명의 직원이 24시간 교대근무를 했다. 그러나 통신지역은 하바로프스크에 있는 근대그룹의 연락사무소까지가 한계였고 서울까지는 러시아군 당국이 허가하지 않았다.
「시추공 기지의 최 과장을 불러라.」
유장석의 말에 직원이 스위치를 켜고 주파수를 맞췄다. 시추공 기지의 최 과장이 가지고 있는 소형 무전기의 통신거리는 150킬로여서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으나 다음 주에는 기지본부를 동쪽으로 이동해야만 할 것이다. 유장석은 직원이 건네주는 무전기를 받았다.
「최 과장이야? 그곳 어때?J
대뜸 소리쳐 물었으나 그쪽 목소리는 가물거렸다.
「골짜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상무님.」
깊숙한 골짜기로 이동해 있기 때문에 목소리가 가물거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눈이 엄청나게 내립니다. 그래서 방풍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골짜기라면 어떤 지형이야? 혹시 눈사태 만나는 것 아니야?J
「아닙니다. 구릉 사이의 꽤 넓은 골짜기여서 그런 염려는 없습니다. 구릉도 5,60미터 높이로 나무가 빽빽해서 ‥‥‥」
가물거리다가 말이 끊겼으므로 유장석이 손에 든 무전기를 내려다보았다.
「이것, 우리 근대 제품을 써야지 미제는 아무래도‥‥‥‥」
무전기를 건네준 유장석이 벽에 걸려 있는 지도를 바라보았다.
최 과장의 위치는 이미 파악해 두었으니 이제 남은 건 김상철이다.
「이봐, 김상철한테 연락을 해. 그놈은 아마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김상철은 수화기를 71에 댔다.
「예, 김상철입니다.」
「도착했나?J
유장석이 소리치듯 물었으므로 그는 앞쪽을 바라보았다.
「기지가 1킬로 전방에 보입니다, 상무님.」
「그곳은 어때? 기상이.」
「바람이 셉니다만 운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이곳하고 시추공 기지는 눈보라가 심해서 움직이지도 못한다. 시추공 기지는 이동하다가 대피했어. 그러니 너도 그곳에서 쉬어.」
「알겠습니다, 상무님.」
수화기를 무전기에 걸어 놓자 이바노프가 그를 바라보았다.
「김, 무슨 일이요?」
「서쪽 지역에 눈보라가 심해서 여기서 쉬라는 거야.」
「잘 됐군.」
탐사기지는 툰드라 지역을 벗어나 내륙의 평원 지역에 진출해 있었다. 시추공 기지보다 북방으로 50킬로쯤 떨어진 위치였고 본부로부터는 직선거리로 130킬로가 된다.
그들이 기지에 도착하자 전 과장이 강풍에 머리를 숙이며 다가왔다.
「잘 왔어, 김상철 씨.」
그는 30대 중반으로 마른 몸매의 사내였는데 원자력 발전소 시설 전문가였다. 유장석이 믿을 만한 부하만을 뽑다보니 그도 걸려들었는데 이곳의 상황이 아무리 험해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전 과장은 김상철의 팔을 끌고는 비어있는 박스 트럭 안으로 들어섰다.
「문제가 있어, 김상철 씨.」
방한모를 벗으며 전 과장이 말했다.
「탐사기가 아침부터 작동하지 않아. 그래서 메뉴얼을 달랬더니 여자가 버렸다는 거야.」
「서은영이가 말입니까?J
「조금 전에 이윤제가 말해 주었어. 그 여자가 오는 도중에 버렸다고.」
김상철이 잠자코 전 과장을 바라보았다.
본부에 사흘간 잡아두었던 서은영을 감시 직원 하나를 딸려 이곳으로 보냈던 것이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지금까지 말썽은 일어나지 않았다.
「보고하셨습니까?J
김상철이 묻자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 그리고 날이 개면 서은영을 자네가 데리고 돌아오라는 지시였어.」
「또 말입니까?J
「이윤제가 조금 전에 실토했는데 서은영이 협박을 했다는 거야. 이번에 그자가 받은 사례금을 반분하지 않으면 탐사기 작동법을 알려주지 않겠다고. 그래서 할 수 없이 허락했다는데.」
「그럴 리가, 그 여자는 이윤제의 정부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글쎄, 나도 이 부장한테서 들었는데 아무래도 이상했어. 둘은 서로 거의 말도 하지 않았고 물론 잠자리도 따로였거든.」
「시베리아까지 와서도 여자가 말썽이야.」
「어쨌든 서은영이 탐사기를 고장 낸 것이 틀림없군요. 과장님.」
「틀림없어. 나하고 오상원 씨가 하루 종일 매달려서 조사해 보았더니 결국 컴퓨터 칩 두 개가 없어졌고 작동선이 끊겨져 있더군. 선은 이으면 되겠지만 칩이 없으면 저 기계는 버려야 돼.」
전 과장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여자에게 다그쳤더니 본부로 보내 달라는 거야. 거기서 유 상무와 이야기를 하겠다고. 내 말에는 꿈쩍도 안 해.」
잠자코 머리를 끄덕인 김상철이 벗어 들고 있던 방한모를 머리에 썼다.
「이거 왜 이래!J
김상철에게 잡힌 팔을 뿌리치려고 애를 쓰면서 서은영이 소리쳤다.
「놔! 이 자식아!」
바람은 세었지만 아직 한낮이다. 러시아 병사들이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김상철은 서은영을 끌고 자신의 트럭 앞으로 다가갔다. 옆쪽의 랜드로버에 기대 서 있던 이윤제가 그들이 다가오자 머리를 돌렸다.
「이바노프!J
러시아어를 익히기 위해서 한쪽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트럭의 운전석 문을 열면서 김상철이 소리쳐 부르자 이바노프가 달려 왔다.
「이 년을 차 안으로 밀어 넣어!J
「옛 써.」
이바노프가 서은영을 뒤에서 번쩍 안아들었다. 운전석에 오른 김상철은 서은영과 이바노프를 싣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이제 바람 끝에 눈발이 실려 있었다. 와이퍼를 작동시킨 김상철이 차에 속력을 내자 이바노프에게 안겨 몸부림을 치던 서은영이 소리쳤다.
「이것 놔! 따라갈 테니까.」
한국말이었으므로 이바노프는 여전히 그녀를 안은 채 반응이 없다.
「이바노프, 그만 풀어 줘.」
김상철의 말에 이바노프가 떨어졌다. 트럭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소리가 날카롭게 들렸고 몰아치는 눈발도 점점 굵어져서 시야가 좁혀지고 있었다.
서은영이 머리를 들고 김상철을 쏘아보았다.
「왜 폭력을 써서 끌고 가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날 본부로 보내 달라고 했는데 말로 하면 될 것 아냐!J
앞쪽은 직선코스로 횐 눈에 덮인 평원을 10킬로쯤 달리면 울창한 삼림에 덮인 구릉지대가 나온다. 서은영이 말을 이었다.
「난 돌아가겠어. 보내 주지 않으면 너희들 회사를 고발할 거야. 모조리.」
「‥‥」
「내가 근대그룹의 조사단원으로 시베리아로 떠난 건 모두 다 알아. 너희들은 날 어떻게 하지 못해.」
트럭은 이미 나 있는 바퀴자국을 따라 제법 속력을 냈지만 눈발이 세지면 자국을 찾기 힘들어질 것이었다. 시간은 오후 3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바노프가 힐끗 김상철을 바라보았다. 속력을 내 달리던 트럭이 가끔씩 바위나 웅덩이를 지나면서 기우뚱거렸으므로 이제 이바노프는 그녀의 몸에 닿지 않으려고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20분쯤 달려갔을 때 김상철은 눈보라 속에 희미하게 나타난 숲을 보았다. 이제부터 구릉지역이었고 끝없이 숲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구릉지역을 다시 10분쯤 달려간 김상철이 차를 멈추자 서은영과 이바노프가 동시에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너, 여기서 내려!J
김상철의 목소리가 차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어서! 끌어내기 전에.」
「날 어떻게 하려는 거야!J
목소리는 높았지만 그녀의 두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곧 이리떼들이 네 냄새를 맡고 몰려 을 것이다. 네 시체는 흔적도 없이 찢겨질 것이고. 그러면 아무도 못 찾지.」
서은영이 이를 악물었다.
「고발할 거다.」
「고발 못하도록 없앤다는 거야.」
김상철의 시선이 이바노프에게로 옮겨졌다.
「이바노프, 이 년을 끌어 내.」
둘이 주고받는 한국말에 잔뜩 귀를 기울였지만 답답하기만 했던 이바노프였다. 그는 서은영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놔!J
이제 서은영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놓지 못해!」
그러나 이바노프의 힘에 끌려 서은영은 차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는 밖은 이제 곧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김상철이 핸들을 틀어 트럭의 앞머리를 지질 탐사기지 쪽으로 옮겼을 때 서은영이 운전석의 문을 두드렸다. 트럭이 10여 미터를 달려 나가는 동안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트럭과 함께 달렸다.
트럭을 멈춘 김상철이 유리창을 내리고는 그녀를 바라다보았다. 넘어져서 이미 머리와 얼굴이 눈범벅이 된 서은영이 흐느껴 울었다.
「한마디만 묻겠다. 컴퓨터 칩을 어디에 두었어?J
김상철이 소리쳐 묻자 서은영이 울음을 그쳤다.
「트럭 안에. 크림통 속에.」
무전기를 꺼내면서 김상철이 서은영을 향해 다시 소리쳤다.
「기지에 연락해서 찾을 때까지 거기서 기다려.」
밤이 되자 눈발은 조금 기세를 잃었지만 바람은 점점 더 거세졌다. 본부 경비 책임자인 림스키 상사는 트럭 밖으로 나와 좌우를 둘러보았다. 일주일 전부터 그의 제의에 따라 기지를 환하게 비추던 야외등을 모두 꺼 놓았으므로 밖은 먹물을 씌운 것처럼 어두웠다.
11시 30분이 되었지만 아직도 주위의 트럭에서는 희미한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술을 마시며 떠드는 소리였다. 병사들의 사기는 매우 높았다. 이곳의 분위기가 자유로운 데다가, 수당을 달러로 받게 될 희망 때문이었다. 술과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병사들의 사기를 한껏 높여주는 이유였다. 부대에서 가져온 식량과 부식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림스키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앞쪽의 화장실로 다가갔다.
병사들은 근대 직원들과 똑같은 식사를 제공받았다. 계약에는 없는 사항이었지만 유장석은 병사들 몫까지 식량을 보급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였던 것이다. 며칠 전에 세 대의 헬리콥터가 싣고 온 보급품 중에 보드카가 백병이나 들어 있었는데 유장석은 그 중 50병을 병사들 몫으로 나눠주었다.
화장실로 들어 간 림스키는 트림을 하고는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는 버릇처럼 목을 뽑고는 눈높이에 있는 환풍기 구멍 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화장실용 트럭과 맞닿아 있는 러시아군 트럭의 운전석이었다.
「망할 놈들 같으니.」
오줌 줄기를 내뿜으면서 림스키가 투덜거렸다. 운전석이 비어 있었던 것이다.
「이 개자식들이 어디로 갔지?」
투덜거리던 림스키의 눈이 커졌다. 운전석의 바깥쪽 문이 반쯤 열려져 있었던 것이다. 림스키는 아직도 오줌 줄기를 뿜는 자신의 물건을 서둘러 바지 속으로 집어넣었다. 곧 다리가 뜨뜻해졌으나 그것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벨트에 차고 있던 루가를 뽑아든 그는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 총은 스리코프가 차고 다니던 것이다. 조심스럽게 화장실의 문고리를 움켜 쥔 그는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운전석에는 안드레이와 티코프 두 명이 보초근무로 나와 있었다. 영하 40도가 되는 이런 상황에서 운전석이 비어 있는데다가 문까지 열려 있다면‥‥‥ 뻔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윽고 림스키는 어금니를 물고는 화장실의 문을 걷어차듯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허공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J
요란한 총성이 기지를 울리는 순간 림스키는 땅바닥으로 몸을 굴렸다.
「비상 ! 비상이다.」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면서 다시 몸을 굴렸을 때 옆쪽의 트럭 사이에서 어른거리는 물체가 보였다.
「탕! 탕!」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며 림스키는 다시 몸을 한 바퀴 굴렸다.
「타타타타타.」
정확히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총구는 모두 림스키를 향하고 있었다. 림스키는 둔중한 몸을 굴려 트럭 밑으로 들어갔다.
식은땀이 흘렸다.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총성은 모두 트럭 바깥 쪽에서 안쪽을 향한 것이다. 림스키는 식은땀을 흘리며 루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적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려고 눈을 번뜩였다. 술에 취하긴 했지만 그는 군인이었다.
총소리에 제일 먼저 뛰쳐 일어난 것은 이대각이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따라 일어선 유장석을 바라보았다.
「상무님은 여기 계십시오.」
아직 잠을 자지 않고 있던 같은 박스 안의 직원들도 서둘러 일어섰다.
밖에서는 이제 요란한 기관총 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터질 듯한 러시아어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박스 안을 두리번거리던 이대각이 급히 집어든 것은 얼음을 깨는 조그만 손도끼였다. 총알이 박스의 철판에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대각을 선두로 직원들이 구르듯 밖으로 나가자 유장석도 방한복의 지퍼를 올리지도 못한 채 밖으로 뛰어내렸다. 이미 무장을 갖춘 러시아 병사들도 대부분 바깥으로 뛰쳐나와 요란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전실로 달려가던 유장석이 무엇인가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는데 감촉으로 보아 사람 같았다.
「이 부장! 이 부장 어디 있나!J
엎드린 채 그가 소리치자 총성 속에서 이대각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여깁니다! 무전실 앞입니다!J
그 순간 요란한 폭음과 함께 수류탄이 터지면서 트럭 한 대가 기우뚱거리며 옆으로 넘어졌다.
「이 부장! 불을 켜라!J
무전실 안에는 기지의 안팎에 세워진 전등의 스위치가 있다.
유장석은 눈바닥을 더듬거리며 발에 걸렸던 물체 쪽으로 다가갔다.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쪽인지 구분할 수는 없다 그의 더듬는 손끝에 차갑고 딱딱한 물체가 잡혀졌으므로 그는 서둘러 움켜쥐었다. 그가 찾고 있던 총이었다. 그 순간 사방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갑작스런 불빛에 유장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대각이 전등을 켠 것이다. 유장석은 바깥의 트럭 대열 사이에서 엎드리거나 서 있는 사내들을 보았다
「쏘아라!J
목이 터져라고 이쪽에서 외치는 사람은 림스키일 것이다.
이쪽에서 빗발처럼 총탄을 쏘아대자 저쪽은 순식간에 네댓 명 쓰러지더니 트럭의 바깥쪽으로 몸을 숨겼다.
「쫓아라!J
림스키가 권총을 휘두르며 달려 나갔고 부하들이 뒤를 따랐다.
「상무님 ! J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 이대각이 그의 옆에 눈보라를 일으키며 엎드렸다. 그의 손에도 어디서 주웠는지 칼라시니코프 소총이 쥐어져 있었다.
전등이 켜지면서 쌍방이 노출된 상황 하에 총격을 주고받자 습격자들은 곧 어둠 속으로 물러갔다.
습격자의 정체는 예상했던 대로 그레고리 소령의 무리라는 것이 포로로 잡힌 부상자의 입을 통해 밝혀졌다. 그들은 10여 일 전부터 기지를 염탐했다는 것이다. 김상철과 이바노프가 보았던 불빛도 결국은 그들의 차량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모두 20명이 기지를 습격했다가 일곱 구의 시체와 두 명의 포로를 남기고 도망쳤는데 이쪽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20여 명 병사 중에서 네 명이 죽고 여덟 명의 부상자가 생긴 것이다. 그 중 두 사람의 부상자가 근대그룹 직원이었다.
아침이 되자 간밤을 꼬박 새운 사람들은 이곳저곳에 불을 피워놓고 둘러 앉아 지친 몸을 쉬었다. 다행히 무전기는 파괴되지 않아서 유장석과 림스키는 제각기 상황을 보고할 수 있었다.
유장석이 부상당한 주방장 양씨와 장대리를 살펴보고 있는데 트럭 안으로 림스키가 들어섰다.
「유상무, 그레고리는 이곳에서 200킬로 남서쪽의 주그주르 산맥 중간 부근에 있다는 거요.」
림스키가 벽에 붙여 놓은 시베리아 지도의 한곳을 손끝으로 짚었다.
「본래 그레고리가 지휘해서 습격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정찰을 하던 놈들이 제멋대로 쳐들어 온 겁니다.」
「상사, 당신이 눈치 채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몰살당할 뻔 했습니다. 고맙소.」
「천만에, 난 내 임무를 다했을 뿐이오.」
「도망친 놈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그 인원으로는 힘들 거요. 그레고리에게 돌아가서 전 병력을 끌고 올 가능성은 있지만.」
「그레고리의 무리는 몇 명이나 됩니까?」
「약 백 명. 대부분이 러시아군을 탈영한 놈들이오.」
「도대체 목적이 뭐요? 돈인가요?J
유장석이 묻자 림스키가 당연한 일이 아니냐는 듯 눈을 크게 떠보였다.
「물론이오. 당신들은 달러를 엄청나게 갖고 있다고 소문이 난데다가 이곳 장비들을 탐내고 있소.」
「그렇다면 그레고리가 다시 습격해 올지도 모르겠군. 물론 당신은 사령관에게 보고를 했겠지요? 상사.」
「했소. 하지만‥‥‥‥」
「하지만 뭐요?J
유장석의 시선을 받은 림스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헬리콥터가 투입되어야 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큰 작전이니까요.」
「러시아 정부는 우리를 보호해줄 책임이 있어, 상사. 우리가 죽고 난 후에 작전이 시작되면 소용없는 일이오.」
「글쎄, 나는 상부에서 하는 일은 모릅니다. 나는 상사일 뿐이오.」
유장석이 그를 향해 섰다.
「림스키, 우리도 무장해야겠소. 내 부하들은 모두 군 경력자들이니까 총기는 문제없이 다룰 수가 있어.」
「나는 그런 지시를 받은 적이 없는데.」
림스키의 말에 유장석이 눈을 부릅떴다.
「노획한 총과 전사자들의 총을 버려둘 생각이요? 우린 20명 가까운 인원이란 말이야. 놈들이 다시 쳐들어 왔을 때 숨어 있기만 하란 말인가?J
한동안 유장석의 시선을 받던 림스키가 이윽고 머리를 끄덕였다.
「좋소. 서로 돕도록 합시다. 하지만 이곳을 떠날 때는 무기를 모두 회수하겠소.」
「줘도 가져가지 않을 거요, 상사.」
흐린 하늘에서 눈발이 드문드문 떨어졌다. 바람도 불지 않는 이런 날씨에는 대개 폭설이 내린다. 지질 탐사기지의 러시아군 책임자인 에프게이 상사가 병사들에게 소리치며 무엇인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본부가 습격당했다는 연락을 받고는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김상철은 방한복에 묻은 눈을 털며 트럭 안으로 들어섰다. 무전실 겸용으로 전 과장과 두 명의 직원이 숙소로 쓰고 있는 곳인데 트럭 안에는 전 과장과 이윤제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김상철 씨, 조금 전에 상무님한테서 연락이 왔어. 자넨 눈이 멎을 때까지 이곳에 남으라는 지시였어.」
전 과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서은영이 문제, 잘 처리 했다고 하셨어. 그 여자는 자네가 떠날 때 데리고 오라는 거야.」
서은영은 숨겨 놓았던 컴퓨터 칩을 내놓고 기지로 돌아와서는 트럭 안에 박혀서 얼굴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어떡할 거요? 전 과장.」
이윤제가 찌푸린 얼굴로 전 과장을 바라보았다.
「우릴 이대로 잡고 있을 거요? 계약이고 뭐고 돈 도로 돌려줄 테니까 나도 본부로 가야겠소. 거기서 보급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가겠어.」
입맛을 다신 전 과장이 김상철을 바라보았다. 이윤제는 어젯밤의 사건을 알고 있는 것이다. 숨길 이유도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으므로 습격사건을 말해주었는데 그때부터 이윤제는 돌아가겠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이렇게 위험한 지역이라고 말해주지 않은 것은 당신네 회사가 날 속인 거야. 나는 당신들을 위해 목숨을 걸 이유도 책임도 없단 말이오‥‥‥‥)
「글쎄, 이 교수님.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 어때서? 내가 유 상무한테 이야기를 해보겠다는데 왜 그것도 못하게 하는 거요?J
김상철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전 과장이 머리를 들었다. 전 과장을 향해 입술만을 움직여 웃어 보인 김상철이 밖으로 나왔다.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눈발이 곧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무겁게 보이는 눈송이는 밤알만 했는데 마치 하늘의 깨어진 조각들이 흩어져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플라스틱 식판 위에 다른 식판을 뒤집어씌운 다음 모포로 감아들어 온기가 식지 않게 만든 김상철은 트럭 안으로 들어섰다.
「식사 가져 왔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서은영의 시선이 모포 뭉치로 옮겨졌다. 부속품 창고와 숙소의 겸용으로 쓰이는 이곳에서 이윤제와 서은영, 그리고 두 명의 근대직원이 생활하고 있었다. 모포를 벗긴 김상철은 식판을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서은영은 어제 저녁부터 오늘 저녁까지 만 하루 동안 트럭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근대직원 한 명이 점심 때 그녀에게 빵과 우유를 가져다주었지만 손도 대지 않고 밀어놓았으므로 무안해진 그는 더 이상 상관하려고 하지 않았다. 김상철이 그녀 앞에 섰다.
「서은영 씨, 눈밭에서 죽지 못한 것이 분해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네 죄상이 폭로되어서 부끄럽기 때문이야?」
틱을 무릎 위에 대고 구부린 다리를 두 팔로 안은 채 서은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상철은 그녀의 앞쪽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사람은 여러 가지야. 네가 이교수의 정부라는 것은 러시아로 출발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우린 상관하지 않았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는 게 사람이니까.」
「‥‥‥」
「우리는 이교수와 배까지 맞춘 사이니까 손발 맞추는 것은 더 수월하리라고 생각했었어.」
서은영의 퍼뜩이는 시선이 김상철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김상철이 상체를 숙여 서은영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는 네 주변의 사람들을 차례로 배신하면서 실속을 차리려고 했지만 내 눈을 피할 수는 없지. 나는 너 같은 계집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야.」
「‥‥‥」
「지금 무장 강도단들이 본부를 습격해서 10여 명의 사상자가 났고 이곳도 언제 습격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야. 네가 굶어죽건 강도단에게 끌려가건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는데 우리 상관들은 심성이 착해. 밥을 먹이라고 나를 보낸단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도 말이다.」
「‥‥‥」
「눈이 그치면 본부로 간다. 널 데리고.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같이 갈 것이고 죽으면 그만이지, 나는.」
「‥‥‥」
「그리고 또 있어. 본부까지 100킬로가 넘는 거리인데 도중에서 네가 무장 강도의 습격을 받아 납치될 수도 있단 말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상철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넌 구역질나는 년이야. 하지만 한 시간 후에 돌아와 그 개밥 그릇을 보겠다.」
병사들이 철조빔의 한쪽에 매단 줄을 당기자 탑형의 빔은 땅바닥에 밑 부분이 겨우 고정되었다. 제일 힘든 작업이었으므로 김진모는 숨을 내쉬었다. 이제 탑의 꼭대기로 올라가 시추공과의 연결 부위를 맞추고 트럭에 실린 모터와 전선을 배합시켜야 한다.
「이봐, 바닥 받침대를 단단히 고정시켜.」
조교에게 이르고 난 김진모는 트럭 쪽으로 다가갔다. 근대의 직원들이나 병사들도 기계 설치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작업진행 속도가 빠르다.
「교수님, 괜찮을까요?J
박동원 대리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방한모와 방한복의 어깨에는 횐 눈이 가득 덮여 있었다. 그들은 대형 모터가 실린 트럭 위로 올라갔다. 5,000마력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근대그룹 제품이었다.
「솔직히 그 지질탐사는 믿을 수가 없어 그 최신형 기계라는 이상하게 생긴 것도 의심이 가고.」
전선을 꺼내 구분하면서 김진모가 말했다.
「이쪽 지역은 지각변동을 심하게 겪은 곳이야. 이론만 가지고 땅 표면을 긁어봐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어.」
「그래도 자료를 토대로 분석하는 과학적인 탐사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J
「글쎄, 그 확률이 문제란 말이야. 저 작자들 꽁무니만 따라다니기 싫었는데 잘 됐어.」
본래 시추기지가 이동하려던 곳은 30킬로 동쪽의 삼림지대였다.
이윤제의 팀은 그곳의 암반과 지층을 분석하여 유전의 가능성이 있다고 컴퓨터 자료를 내놓았는데 확률은 3%였다. 김진모가 전선을 이으면서 옆에 선 박동원을 향해 웃었다.
「이곳에서 일주일을 보내기로 하지, 박 대리.」
그는 눈보라로 이동이 멈추자 아예 그곳을 파내려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러시아 놈들에게 경비나 잘 서라고 해. 난 마누라를 머리맡에 앉혀두고 죽고 싶단 말이네.」
「눈만 그치면 군 병력이 헬리콥터에 실려 오기로 했습니다. 그 산적들 소굴도 곧 소탕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야지.」
머리를 끄덕인 김진모가 박동원을 올려다보았다.
「난 처음에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은 하루하루가 나에게 소중한 날이야. 기대감으로 두근거리는 나날이지. 보게.」
김진모가 눈발이 흩날리고 있는 옆쪽의 평원과 삼림을 손으로 주욱 가리켰다.
「이 거대한 땅,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던 이 땅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 이제까지 아무도 몰랐어, 그런데 내가 처음 손을 댄단 말이야. 이건 숫처녀 옷을 벗기는 것보다 백배나 더 나를 감동시키고 있는 거야.」
그레고리는 검고 짙은 콧수염을 기른 40대 초반의 사내였다
본래 그는 구소련 시대에 소령 계급의 부대 지휘자였는데 소련의 연방제국이 붕괴되고 러시아 체제의 군으로 개편되자 무리들을 이끌고 탈영, 강도단의 수괴가 되었다. 따라서 그는 부대이동과 공격, 방어 등 러시아군 전술에 통달해 있는 사람이었다.
주그주르 산맥 안쪽의 깊숙한 삼림지역을 본거지로 삼고 있던 그레고리가 부대이동을 시작한 것은 그의 부하 바토프가 반 이상의 부하를 잃고 도망쳐 온 다음 날이다. 바토프는 한국인들의 기지를 정찰하는 임무를 띠고 22명의 부하를 이끌고 떠났는데 트럭 한 대의 엔진이 고장이 난데다가 식량도 바닥이 난 바람에 기지를 습격 했다는 것이다.
기지에 주욱 늘어서 있는 신형 트럭들과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식냄새의 유혹을 참기 힘들었고 더욱이 기지의 경비가 허술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레고리는 부하들이 모인 가운데 바토프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는 웃는 얼굴로 권총을 꺼내 바토프의 이마를 향해 한 발을 쏘았다. 바토프는 12명 전원이 죽었다고 말했지만 부상당한 몇 명은 포로로 잡혔을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리고 포로로 잡힌 부하가 이쪽의 본거지를 자백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이동 이틀째 되는 날, 눈보라 때문에 10미터 전방도 보이지 않는 오후였다. 선두에 서서 길을 만들며 나아가던 장갑트럭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대장님, 전방에 표시판이 보입니다.」
「그럼, 다 왔군.」
그레고리가 옆자리에 앉은 부관 바야킨을 바라보았다
「예정보다 다섯 시간이 늦었다.」
「이런 폭설에 그만큼 늦은 것도 다행입니다, 대장님.」
장갑차를 선두로 16대의 차량이 줄을 이어 눈 속을 전진하고 있었는데 눈보라가 아니었다면 정찰기에 의해 금방 발견되었을 것이다. 이윽고 그가 탄 차는 옆쪽에 세워진 커다란 나무간판을 스치고 지나갔다. 글씨는 눈에 덮여 보이지 않았으나 붉은 깃발이 눈에 띄었다.
한동안 벌거벗은 구릉 사이를 달리던 차량의 대열이 멈춘 것은 꽤 넓은 평지에서였다. 그레고리가 차에서 내리자 동양인 한 명이 다가왔다. 그의 뒤쪽에는 수십 명의 동양인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레고리 동지, 잘 오셨소.」
유창한 러시아어로 말하며 손을 내민 것은 북한의 시베리아 지역 벌목사업 소장인 홍기표이다. 차량의 주위로 북한의 경비병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고 안면이 있는 몇 명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레고리는 간부급 부하들과 함께 홍기표를 따라 통나무로 만든 그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페치카에서 굵은 장작이 기세 좋게 타오르고 있는 집 안은 따뜻했다. 홍기표는 시베리아에 흩어져 있는 네 곳의 벌목사업장을 총괄하는 사내로 당의 직급도 부부장급이었다. 곰가죽을 깐 의자에 앉은 그레고리에게 사내 한 명이 다가와 김이 오르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넓은 통나무집 안에는 페치카가 반대쪽에도 하나 더 있었으므로 부하들은 모두 그 쪽으로 몰려가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2년 가깝게 거래를 해왔으니 간부급들은 서로 이름을 외울 정도가 되었지만 누구 하나 죽었다고 해도 상대방은 눈 한번 깜짝 해 주지도 않는다. 북한의 벌목공이나 고용된 사냥꾼들이 잡은 짐승의 가죽을 그레고리가 사가는 것이 그들의 거래관계였는데 이번에도 흥기표가 만나자는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레고리가 입을 열었다.
「요즘, 많이 잡았습니까? 홍동무.」
그는 아직도 동무 칭호를 쓰고 있었는데 그렇게 부르면 흥기표가 친밀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별로. 그나저나 동무가 이쪽으로 무사히 오셔서 다행이오. 눈보라가 도와준 것이지만,」
홍기표의 말에 그레고리가 눈썹을 모으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게 무슨 말이요?J
「눈이 그치면 러시아 정찰기가 주그주르 산맥을 샅샅이 훑어 갈 테니까요. 하지만 이곳은 마음을 놓으셔도 됩니다. 러시아군도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고 의심도 안할 테니까.」
「‥‥‥‥」
「며칠 전에 한국 놈들 기지를 습격했다가 실패한 것을 압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눈보라가 그치면 동무의 본거지를 소탕하기로 했다는 것도. 무전이 내 머리 위를 지나가거든·」
그는 손을 들어 위쪽을 가리켰다.
「그래서 동무한테 급하게 만나자고 한 겁니다. 혹시나 몇 명만 오면 어쩌나 했지만 동무라면 이 기회에 모두 데려올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예민하신 분이니까.」
「허어, 이런 고마울 데가.」
그레고리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나와 내 부하들을 위험에서 구해주려고 연락을 해주셨군. 동무가.」
「그런 셈이지요.」
홍기표가 붉은 얼굴을 부풀리며 웃었다. 50대 중반의 나이였으나 어깨가 넓고 움직임이 빠르다. 그리고 성격이 잔인해서 2천 명 가까운 벌목공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었다.
「우리는 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레고리 동무.」
「러시아 영토 안에서 불법행위를 하는 것 말이요?」
웃음 띤 얼굴로 그레고리가 묻자 홍기표는 정색을 하고 머리를 저었다.
「그까짓 밀렵이나 마약 밀매는 러시아 정부 놈들이 우리보다 더하지요. 그런 건 불법도 아니오.」
「그럼 공통점이 무어요?.
「한국 놈들 기지를 불바다로 만들고 한국 놈들을 몰살시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오.」
「‥‥‥」
「서로 힘을 합치면 문제 될 것이 아무것도 없소. 그레고리 동무.」
「그렇다면 같이 습격해서 전리품을 나누자는 말인가?J
그러자 홍기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니오. 전리품은 모두 동무가 가지시오. 우린 구두 한 켤레 가져가지 않겠소.」
「‥‥‥」
「이제 짐작하시겠지만 우리가 바라는 건 위쪽에 있는 한국 놈들을 몰살시키는 것뿐이오.」
그레고리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물론 그 일을 저지른 것이 이 그레고리 파트킨이라고 알려져야겠지. 당신들은 배후에 숨고.」
「당연하지. 어쨌든 동무는 한번 실패해서 놈들에게 이름이 알려졌으니까.」
그러자 그레고리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협상을 다시 해야겠는데. 당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당하는 대신 보상을 받아야겠군. 그 기지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재물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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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
즐독
지금에 정부 권력자들 같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
즐감요~~~ ! 감사합니다.
~♡♥♡~즐,독.하고있읍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즐감요~^^
보면 볼수록 빠져드네요!
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굿..............
잘 보고 갑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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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