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고리산(579.3m)
대청호의 조망이 아름다운 산
일시:2010년 1월 1일 아침 5:40분 출발
장소:둔산동 가람아파트 상가 하나은행앞
회비: 아침 해장국값
부소담악을 품은 소금강
코가 땅에 닿을 듯한 된비알이지만 옥천군에서 등산로를 잘 정비해 두어서 걷기에 쾌적하다. 20분쯤 오르자 밋밋한 263봉 부근에서 길이 완만해진다. 오르는 길 주변으로 노간주나무가 자주 보이더니 이곳은 온통 참나무 숲이다. 빛깔 좋은 낙엽이 가득 깔린 길은 발걸음을 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가슴으로 들려온다.
이 부근에서 돌아보는 대청호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 중에서도 추소팔경 중 제8경인 '부소담악(浮所潭岳, 일명 병풍바위)'이 눈길을 끈다. 지금처럼 대청호가 아니라 금강이었을 때는 더 장관이었겠다. '절골'과 '부소무니', 금강 건너 '추동'마을이 추소리에 포함되는데, 부소담악은 부소무니에서 동쪽으로 가늘고 길게 뻗은 바위능선 끝의 작은 산(91m)을 일컫는다. 부소무니라는 마을이름은 환산 밑에 연화부소형의 명당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일찍이 우암 송시열과 율곡 이이는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소금강'이라 불렀다. 부소담악은 부소무니 앞 물 위에 떠 있는 산이라고 해서 이름을 얻었다. 병풍바위 형태는 추소리에서 잘 보이지만 부소담악 전체 모양은 이곳 고리산에서 봐야 제대로다.
263봉을 지나 한 번 더 가파른 능선을 치고 올라야 580봉이다. 능선에 닿자 만난 이정표에는 '서낭당 1.6km, 물아래길 2.0km, 정상 0.47km'라 적혔다. 왼쪽으로 꺾으니 바로 봉우리다. 너른 터 한켠에는 봉화대 재료였을 돌로 만든 교통호가 보인다.
"이야, 장난이 아니네. 정말 좋다, 진짜 좋아!"
석재호씨가 주변 풍광에 대한 최고의 찬사를 쏟아낸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장관이 펼쳐졌다. 동서쪽 어디라도 대청호와 어울린 산들이 시원스런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청풍명월 산경탐사대' 산행대장인 유정희씨가 손으로 주변 지리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친절히 설명한다. 탐사대원 중 최고령(75세)인 신현섭씨는 지형도를 확인하며 걸린 시간과 거리, 특징 등을 꼼꼼하게 메모한다. 괴산군에서 공무원으로 정년퇴임을 한 후부터 산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그는 '기록'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어서 산행 후 대상지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남기는데 많은 시간을 쓴다고 한다. 산행 중 걸음을 멈추고 지도와 비교하면서 기록하는 그를 볼 때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가 떠오른다.
바로 건너 보이는 고리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잠시 내려섰다가 올라야 하는데 내림길이 여간 가파르지 않다. 안부에는 이정표가 있고, 정상 바로 아래 왼쪽으로는 비석 없는 무덤도 보인다.
고리산 정상에는 넓은 터에 헬기장을 갖췄다. 키 낮은 정상석이 '환산성제5보루'라 적힌 표지석과 나란히 서 있다. 이곳은 주변으로 눈높이 이상으로 숲이 우거져 겨울이 아니면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고리산' 이름을 두고는 해석이 분분하다. 보통은 '문고리', '열쇠고리' 등에 쓰이는 순우리말인 '고리'를 써서 고리산이라 부르고 또 이를 한자로 표기해서 '환산(環山)' 이라고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옥천군 의회 의장 류제구씨가 2001년에 세운 정상석에는 '주검 시(尸)'를 써서 '古尸山', 그 아래에 한글로 '고리산'이라 적혔다. 동쪽 추소리의 황룡사 비석에 나타난 해석은 또 다르다. '예로부터 이로운 산, 즉 고리산(古利山)으로 불렀는데 환생되는 산이라고 해서 環山이라고도 부른다'는 내용이 나온다. 황룡사의 해석은 <삼국사기> 김유신조에 나오는 '古利山'을 이곳 환산과 동일시한 것인데, 아직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지명이다. 정상석의 '古尸山'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렵다.
현지 주민들은 '환산'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데, 순수한 우리말을 쓸 수 없었던 일제강점기 때 남동쪽 자락의 환평리의 '고리 환' 자를 따서 '환산'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 풍수지리설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배를 붙들어 맬 고리가 있는 산이라고 해서 그리 불렀다는데, 1980년 대청호가 생겨 그 설이 더욱 그럴싸해졌다.
정상석 뒤에는 원래 환산 근처에 장엄한 100개의 봉우리가 있었지만 이곳 정기를 받아 큰 장수가 나올 것을 염려한 당나라 장수가 한 봉우리를 쳐서 현재는 99개봉만 남았다는 재미있는 내용이 적혔다.
능선의 아름다움에 조망의 감동까지
고리산에서 남쪽 끝 황골까지 4.5킬로미터는 점점 고도를 낮추는 길이라 걷기가 수월하다. 길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에 뒹구는 낙엽이 이브 몽탕의 샹송처럼 고즈넉하다. 여름날의 화사함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자연의 순리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산길이다. 중간에 감로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도 나오고 전망 좋은 봉우리도 여럿 만난다.
'환산성제4보루' 라고 적힌 표지석이 세워진 556봉 바로 아래에는 보은과 상주, 영동, 옥천 일대의 멋진 산너울을 바라보며 들어선 무덤이 있다. 죽산 박씨와 여흥 문씨의 합장묘인데 가히 천하명당이라 할 만한 전망을 거느렸다. 그 앞에서 일행들은 점심상을 차린다. 청주팀은 멀리서 온 대구팀 도시락까지 준비해왔다. 각자 바리바리 싸온 음식들을 꺼내놓으니 제법 그럴싸한 뷔페 같다.
"지금 우리 밥상을 돈으로 따진다면 얼마나 할까요?"
"나랏님도 받아보지 못한 천상의 식탁이죠. 어떤 요리사도 이런 점심상은 흉내 내지 못할 겁니다."
클림트의 벽화로 도배되었다는 스토클레 저택 식당에서의 식사도 이보다 더 근사하지는 않을 것 같다. 모두의 표정에서 최고의 식탁에 초대된 행복이 넘쳐난다. 식사를 마치고도 한참이나 주변을 눈에 담고서야 걸음을 뗀다.
556봉을 지나자 이번에는 대전시가지를 둘러싼 식장산과 계룡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남동쪽 먼먼 곳에 덕유산도 보인다. 무엇보다 길이 좋다. 소나무와 참나무 낙엽이 번갈아 나타나는 길은 걷는 맛이 절로 난다.
이후 만나는 봉우리마다 보루였음을 알리는 표석이 설치되어있다. 고리산 맨 남쪽 봉우리에는 산불감시초소도 있다. 당연히 전망이 확 트이는 곳에 자리했다. 초소 옆에 낭만적인 모양의 통나무벤치가 있어 주변을 구경하기도 안성맞춤이다. 옥천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교통의 요충지답게 경부고속국도와 경부선, 경부고속철도 등 굵직한 국토의 동맥이 옥천을 꿰뚫고 지나는 모습이다. 그 뒤로 추풍령을 지나는 백두대간에 이르기까지 온통 산봉우리들이 즐비하다.
초소 근무자가 낮 시간을 홀로 보내기가 무료했던지 초소 앞에 여러 돌탑을 쌓고 갖가지 장식을 해뒀다. 솜씨가 좋은 사람 같다. 돌을 깎아 글씨도 새기고 그림도 그렸다.
초소에서 남쪽으로 50미터쯤 앞에 환산성제1보루가 있다. 이곳에도 옥천군과 옥천향토사연구회에서 세운 빗돌이 서 있다.
하산은 산불감시초소에서 남서쪽 사면을 따라 이어진다. 지그재그로 난 길 따라 15분 내려서면 날머리 황골이다.
*산행길잡이
추소리 황룡사-(50분)-580봉-(20분)-고리봉 정상-(556봉-(25분)-환산성제3보루-(40분)-산불감시초소-(15분)-황골
역사와 절경을 간직한 옥천의 조망명산
남북으로 길쭉한 배 모양을 하고 있는 고리산(579.3m)이 대청호반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았다면 그냥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터가 너무 명당이다. 능선에 서면 사행천을 이루며 굽이굽이 트는 금강이며 구석 구석 물길을 뻗친 호수와 어울린 대청호 둘레산들이 만들어내는 풍광이 가히 절경 중에 절경을 이룬다. 또 남쪽으로 우뚝한 식장산과 서대산 너머 멀리 덕유산이 가물거리고 대전 서쪽으로는 계룡산이 보기 좋다. 동쪽으로는 상주의 백화산 포성봉까지 거침이 없다. 북동쪽으로는 구병산 너머 속리산이 한눈에 든다. 천황봉부터 문장대, 묘봉에 이르기까지 주능선이 남김없이 잘 보인다. 이렇듯 절묘한 위치에 솟은 산이 고리산이다. 조망 좋은 한 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가히 수백을 헤아리는 산들이 만들어내는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멋진 풍광을 공짜로 구경하고 보니 고리산 자체도 달라보인다. 서낭당에서 황골에 이르는 6.5km의 길지 않은 코스에서 만나는 봉우리가 열 개다. 중요한 봉우리마다 조선시대에 쌓았다는 봉수대 터가 남아 있으며, 백제의 왕자 여창이 쌓았다고 전하는 고리산성 성터도 있는 유서 깊은 산이다.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능선은 험하지 않아 걷는 맛이 좋고 곳곳에 쉴 만한 공간이 많아 휴식 같은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고리산 산행을 위한 들,날머리로는 남쪽의 황골, 서쪽의 감로골, 방아재, 항골, 북쪽의 이평리 갈마당, 동쪽의 서낭당이 있다. 이정표가 잘 만들어져 있어서 길 찾기에 어려운 곳이 없지만 산으로 들어서면 물을 구할 곳이 없기에 식수는 미리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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