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빠직! 빠직! 빠지지직!
염왕채에는 무려 사백이나 되는 수적이 있다. 그 중 이백 정도는 그저 칼질만 할 줄 아는 삼류도 못 되는 자들이고, 남은 이백이 그나마 좀 칼을 쓰는 사람들이다.
지난번 서가장과 싸울 때, 염왕채주는 그 중 삼백 명을 추려서 데리고 갔다. 삼백 명 안에는 삼류 이하의 자들 백오십 명과 그러저럭 쓸 만한 자들 백오십 명을 섞었다.
정가장에서도 백여 명이 참여하기로 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여겼다. 그것이 나중에 서가장을 지웠을 때, 정가장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지 않을 방법이라 여겼다.
염왕채의 부채주 등막평은 채주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만일 염왕채의 인원을 전부 투입했다고 해도 그날 싸움은 절대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남궁세가의 좌우쌍위가 존재하는 한 그들에게 승산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남궁세가의 좌우쌍위는 정가장의 조력자가 맡기로 했다. 한데 그가 오지 않았으니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덕분에 정가장은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염왕채는 그나마 좀 나았다. 절반의 힘만 동원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대부분 쓸 만한 자들이었다.
그날 격전으로 삼류 이하의 수적들은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몽땅 죽어도 아깝지 않았다. 그런 자들을 채워 넣을 방법이야 무궁무진했으니까.
채주는 아직도 의식불명의 상태였다. 서가장에서 도망 나올때, 그가 업고 오지 않았다면 아마 죽었을 것이다.
등막평은 누워 있는 채주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소주 사람들에게 강제로 빼앗아온 신선단을 먹이고 신선고를 발랐지만 여전히 깨나지 않는 사람에게 기대를 걸 이유가 없었다.
"채주,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 보오."
등막평은 채주를 잠시 더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채주는 수하 몇이 알아서 돌볼 것이다.
더 이상 채주에게 쓸 약은 없었다. 남은 약들이 대부분은 자신이 쓸 것이고, 또 실력이 그런대로 괜찮은 부하들이 쓸 것이다.
"흥, 이 약이 효과가 없다고? 그따위 말을 내가 믿을 거라 생각하다니, 날 얼마나 물로 봤으면."
등막평은 정가장 사람이 은밀히 찾아와 해준 얘기를 전혀 믿지 않았다.
채주의 외상이 깨끗이 나은 걸 봤는데 그딴 말을 믿으라니, 멍청한 것에도 정도가 있었다.
등막평은 부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최근 며칠 동안 새로운 부하들을 구해 채워 넣었다. 어차피 머릿수를 채우는 거라서 아무나 받아들여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일단 수적이 되면 기본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도 최소한 칼질하는 법은 배워야 써먹을 수 있으니까.
부하들이 수련하는 곳으로 향하던 등막평의 눈에 수하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헉헉! 채주님! 갔답니다!"
밑도 끝도 없는 수하의 보고에 등막평이 인상을 쓰려다가 말았다. 채주님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왠지 듣기 좋았다. 물론 자신이 시킨 일이었지만.
"가긴 뭐가 갔단 거냐!"
"남궁세가 놈들이 갔답니다."
"뭐? 그게 정말이냐?"
등막평이 눈을 빛냈다. 현재 염왕채에서 그럭저럭 무공을 아는 자가 백 명이었다. 지난번에 백 명이 죽고 오십이 살아남았다.
물론 그 오십 명은 죽은 백 명보다 더 강한 놈들이다. 그리고 어중이떠중이가 다시 이백 명 정도 있었다.
"서가장에 무사가 얼마나 된다고 했지?"'
"지난번 싸움에 죽은 자들을 빼며 한 칠십 명쯤 된다고 합니다."
"칠십 명이라, 칠십 명......"
등막평은 고민했다. 수는 염왕채가 훨씬 많다. 하지만 서가장 무사들은 실력이 대단하다. 이대로는 절대 승산이 없었다.
"끄응, 뭔가 수가 없을까? 이대로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일단 너는 정가장에 한 번 찾아가 봐라. 다시 한 번 일을 도모하자고 부추겨 봐."
"예."
수하가 달려가자 등막평은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겼다.
기본적으로 생각이란 것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아왔던 사람이 갑자기 여러 가지를 고민하려니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꿋꿋이 생각을 했다. 채주가 되려면 그렇게 해야 했다.
등막평이 지금까지 옆에서 지켜본 채주는 항상 뭔가 일을 앞두고 생각이란 걸 오랫동안 했다. 자신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무영이 수적들에게 당한 모든 사람을 만나는데 걸린 시간은 꼬박 닷새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당했다. 개중에는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
무영은 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집에 환자가 있으며 그 환자의 병이 나아지도록 조치를 취해 줬다.
그러면서 돈은 한푼도 받지 않았다. 가끔 밥을 얻어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그렇게 닷새를 지내고 나니 수중에 돈이 깨끗이 떨어져 버렸다. 다시 약이라도 팔지 않는 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이러다가 잘못하면 굶어 죽겠구나."
무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약방으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약방을 쓸 수 있는 날이 아직 열흘 정도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그 열흘 동안 무영은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을 마무리 해야겠지."'
무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약방 안으로 들어섰다.
남궁세가주 남궁환은 남궁상룡의 모습을 보고 일단 인상부터 찡그렸다.
"대체 그게 무슨 꼴이냐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이냐."
남궁상룡은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감았다. 차마 약장수에게 당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당시 어떻게 당했는지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무영이 뭔가 강력한 외문기공을 익히고 있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에게 빈틈을 만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놈 절대 가만 두지 않는다.'
남궁상룡은 속으로 복수심을 불태었다.
사실 남궁상룡이 아무리 입을 다물어도 무영이 근처에 떠벌리고 다니면 아무 소용없다. 하지만 남궁상룡은 무영이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예 멍청한 놈은 아니었으니까.'
무영이 남궁세가의 소가주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퍼져나가면 여러 가지로 곤란해진다. 아니, 목숨을 위협받을 만한 일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절대 함구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머리가 돌아간다면 남궁상룡이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정말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니까.'
남궁상룡은 그렇게 생각하며 슬며시 눈을 떴다.
"어떤 놈이 이렇게 만들었느냐? 왜 대답이 없어?"
남궁상룡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많이 다친 것은 아니다. 의원이 적절히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앞으로 보름 정도 정양하면 완벽하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염려치 마십시오."
"뭐라? 염려치 말라고? 네가 지금 그 꼴로 돌아왔는데 뭘 염려치 말아! 대체 어떤 놈들이냐! 네가 당할 정도라면 필시 보통 놈들이 아니었을 터! 다른 세가 놈들이냐?"
남궁상룡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들이 왜 절 핍박하겠습니까."
남궁환은 아들이 더 이상 입을 열 것 같지 않아 고개를 돌려버렸다.
"에잉, 한심한 놈 같으니. 남궁세가의 뒤를 이을 놈이 매나 맞고 다닌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평소에 자만하고 무공 수련을 게을리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야."
남궁환의 말이 남궁상룡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남궁상룡은 다시 눈을 감았다.
남궁상룡의 뇌리에 서하린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강하던 그녀의 무공도 떠올랐다. 그런 여자를 얻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 약장수 놈.'
남궁상룡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아직도 자신이 무영보다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따. 하지만 자신을 암습한 그 수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이럴 때 해결 방법은 하나다.
'압도적으로 강해지면 모든게 해결된다.'
압도적인 강함이 있다면 아무리 더러운 암습이라 해도 정면으로 박살낼 수 있다.
대대로 남궁세가의 가주는 그렇게 배워왔고,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 남궁상룡은 자신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남궁상룡의 눈이 전의로 타올랐다.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그 약장수를 박살내고 당당하게 서하린을 차지할 것이다. 남궁상룡은 앞으로 이 년 이내에 그렇게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
"뭐냐?"
남궁환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남궁상룡이 잠시 움찔했다.
"후우, 혼인을 이 년만 미뤄 주십시오. 그리고 그 사이 서소저가 다른 놈과 혼인을 올리지 못하도록 해주십시오."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게냐?"
남궁환은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이 년 동안 폐관수련을 하겠습니다. 관을 깨고 나왔을 때, 그녀가 없다면 전 정말 미쳐 버릴 겁니다."
남궁상룡의 말에 남궁환이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표정도 온화하게 바뀌었다.
"허허, 거 참......"
남궁상룡의 재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재능만 믿고 노력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 남궁상룡이 드디어 자만의 틀을 깨고 날아오르려 한다. 어느 부모가 가만히 있겠는가.
"좋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 내 뭐든 도와주마."
"감사합니다."
남궁상룡은 가볍게 인사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일단 지금은 몸의 회복이 가장 중요했다.
남궁상룡은 눈을 감은 채 또 이를 갈았다. 눈만 감으면 서하린과 무영이 아른거렸다. 자신이 없는 이 년 동안 둘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꼭 약속하셔야 합니다."
남궁상룡은 다시 한 번 부친에게 다짐을 받고 싶었다. 남궁환은 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다. 걱정 말고 얼마나 큰 성취를 얻을 것인지만 생각해라."
남궁환은 벌써부터 이 년 뒤가 기대됐다. 남궁상룡은 그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으니까.
무영은 품에 신선단 두 알을 조심스럽게 넣었다. 지난 열흘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약이었다. 그 중 하나는 서하린에게 줄 약이었고, 다른 하나는 소칠의 동생 소소에게 줄 약이었다.
일단 오늘은 이 약을 두 사람에게 전해 줄 생각이었다. 그 이후의 일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으로써는 계속 이곳에서 약을 팔아도 되는지조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최근 무영에게 벌어진 일들은 너무나 급격했다. 그간 겪어왔던 산에서의 생활이나 스승을 따라다니며 약을 팔던 경험과는 꽤 동떨어진 것이었다.
'하긴, 그때도 싸움이 있긴 있었지만.'
스승과 생활할 때도 무림인이라 부르는 자들과 싸우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의 그 무림인들은 사실 무림인이라기보다는 산적에 더 가까운 자들이었다.
힘을 가진 산적은 상당히 두려운 존재다. 일단 나쁜 짓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고, 힘이 있기 때문에 그보다 약한 존재들은 심하게 당하기 일쑤였다.
스승은 그런 자들을 볼때마다 단호하게 단죄했다.
'나도 그때의 스승님처럼 될 수 있을까?'
무영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해야만 한다. 스승 역시 그것을 바랄 것이다.
'후우, 스승님은 왜 내게 산을 떠나라 하셨을까.'
무영은 그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렸다. 스승은 틈날 때마다 무영에게 사람들이 사는 곳에 깊이 들어가 살라 하셨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야 당신이 만든 것을 능가하는 신선단을 만들 수 있을 거라 하셨다.
"후우,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반드시 해야지."
무영은 결연한 눈으로 앞을 똑바로 바라봤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 하나만은 꼭 할 것이다. 스승이 자신에게 바라고 원한는 유일한 것이 바로 그것 아닌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 의미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몰랐다. 아니, 그럴 것이다. 스승의 가르침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던 무영은 어느새 소칠이 사는 집에 도착했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집은 따스함을 품고 있었다.
무영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저 왔습니다."
이미 몇 번 찾아왔었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아마 이 시간이면 소칠은 없을 확률이 높다. 소칠은 정말로 열심히 일을 했다.
"오셨어요?"
문이 살짝 열리며 안에서 소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침저녁으로 신선단을 복용한 덕분인지 소소의 얼굴에는 약하게나마 혈기가 돌았다. 시체의 몰골에서 이제 조금 사람으로 다가가는 중이었다.
소소가 힘겹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무영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몸은 좀 어때?"
무영의 질문에 소소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좋아졌어요."
무영은 그것을 보며 슬쩍 웃었다.
소소의 나이는 열여덟, 무영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다. 몇 번 얼굴을 보면서 이제는 익숙하게 말을 놓았다.
소소는 무영을 볼 때마다 얼굴을 붉혔다. 피골이 상접해 얼굴의 윤곽이 너무나도 보기 흉했기에 그녀를 보려고 하는 사람조차 없없는데,
성심성의껏 자신을 치료해 주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마음이 열리는 것도 당연했다.
"자, 안으로 들어가자."
무영의 말에 소소가 안으로 들어가 침상에 누웠다. 무영이 올 때마다 진맥을 받았다.
지금까지 의원에게 진맥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무영이 해주는 진맥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업었다.
무영은 침상에 누운 소소를 보며 평소와 마찬가지로 한 손을 머리에 다른 한 손을 아랫배, 단전에 갖다 댔다.
끈끈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소소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무영이 소소의 진맥을 모두 끝낸 것은 꼬박 한 시진이 지나서였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능숙해진 것도 있지만, 소소의 몸 상태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소소의 몸에서 손을 뗀 무영은 숨을 골랐다.
"후우, 이제 대충 된 것 같구나. 본격적인 치료를 할 수 있겠어."
무영의 말에 소소의 눈이 커졌다.
"본격적인 치료요? 그럼 지금까지는......"
"지금까지는 진짜 치료를 위한 바탕을 만든 거야.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치료 자체가 불가능했거든."
무영의 말에 소소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녀는 상당히 영특했다. 지금까지 무영이 자신에게 해준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또 무영이 자신에게 먹이는 약이 얼마나 대단한 약이었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한데 그 모든 것이 진짜 치료를 위한 준비를 불과하단다. 그렇다면 진짜 치료는 얼마나 어려울 것이며, 또 얼마나 귀한 약이 필요할 것인가.
소소의 마음을 짐작했는지 무영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은 다른 생각하지 말고 일단 병을 물리칠 것만 생각해."
소소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무영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품에서 신선단을 꺼냈다. 서하린에게 줄 신선단과 바뀌면 곤란했기에 몇 번이나 다시 확인을 했다.
"자, 이게 약이야."
소소는 떨리는 손으로 무영이 건네주는 신선단을 받아 들었다.
"이, 이것이......"
"신선단이야."
무영의 말에 소소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신선단이라면 제가 계속 먹었던 약이 아닌가요?"
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것도 신선단이야. 그리고 이것도 신선단이야. 신선단은 같은 방법으로 만들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약효가 조금씩 달라지거든.
이건 소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신선단이야."
무영의 말에 소소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손 위에 있는 신선단을 바라봤다. 평소 먹던 것과 똑같은 크기와 모양이었다.
"일단 누워서 먹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조금 치료를 도와야 하거든. 약만으로는 치료하기 쉽지 않은 병이라서 말이야."
"네."
소소는 서둘러 침상에 누웠다. 그리고 무영의 지시에 따라 신선단을 입에 넣었다.
맛도 그동안 먹던 신선단과 똑같았다. 심지어는 입에 들어가는 순간 스르르 녹아 목구멍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 버리는 것도 똑같았다.
하지만 그 이후는 조금 달랐다.
갑자기 목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확 퍼져 나갔다. 그 기운은 온몸 구석구석으로 뻗어 나갔다.
무영이 정수리와 단전에 손을 올렸다.
무영의 손에서 뇌기가 일렁였다. 빠직대는 뇌기가 소소의 단전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끈끈한 기운이 정수리에 얹은 무영의 손으로 조금씩 빠져나왔다.
소소는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그 열기가 뜨거움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신음조차 흘릴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그 고통을 참아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무영의 모습 때문이었다.
무영의 얼굴을 땀투성이였다. 고통을 꾹 눌러 참는 듯한 표정이었다.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 얼굴을 눈앞에 두고서 앓는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소소는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해 고통을 참아냈다.
결과적으로 고통을 꾹 참고 입을 다물었기 때문에 훨씬 치료에 득이 되었다.
소소나 소칠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병은 그 어떤 명의가 와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생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소소가 앓고 있는 병은 구음절맥이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영양 공급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온몸의 혈맥이 말라비틀어져 회생이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처음 무영이 그녀를 확인했을 때의 상태가 그랬다. 그래서 함부로 치료를 할 수 없었다.
무영은 그녀의 말라비틀어진 혈맥을 어느 정도 살려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강렬한 기운을 혈맥이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어야 했다.
그래야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했다.
너무 오랜 세월 혈맥이 제구실을 못했기 때문에 혈맥 자체가 퇴화되었고, 그렇게 퇴화된 혈맥을 거의 새로 만들다시피 해야 했다.
무영이 조금 전에 먹인 신선단이 바로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신선단이라는 것이 사람의 혈맥에 쌓인 탁기를 제거하고 혈맥을 튼튼히 하는 데 큰 효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혈맥을 조금이나마 안정시킬 수 있었고, 본격적인 치료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무영은 집중력을 흐트러트리지 않으려 무던히 애썼다. 치료시간은 상당히 길었고, 그 긴 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무영의 손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뇌기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는 것이었다.
무영은 쉴 새 없이 뇌기를 소소의 단전에 불어 넣었다. 무영이 넣은 뇌기가 신선단의 공능과 맞물려 퇴화된 혈맥을 새로 열어가고 있었다.
소소의 온몸을 가득 채운 뜨거운 열기가 점차 단전으로 모여들었다. 덕분에 다른 곳은 상대적으로 차가워졌다. 소소는 차가움과 뜨거움을 동시에 느끼는 모순적인 상태가 되었다.
뜨거운 기운이 단전에 응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응축된 열기를 무영의 뇌기가 뒤덮였다. 소소는 이번에는 찌릿찌릿하게 감전되는 고통까지 겪어야 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눈도 이미 감은 상태였다. 눈을 뜨고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뜨거운 기운이 단전에 콩알만 하게 응축되었다. 그 순간 온몸을 벼락이 꿰뚫고 지나갔다.
꽈르릉!
소소는 마치 머리가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벼락이 온몸을 관통해 머리를 날려 버리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상쾌해졌다.
"아!"
소소는 결국 입을 벌려 온몸에 가득 찬 환희를 내뱉었다.
"하아아......"
숨과 함께 뜨거운 기운이 빠져 나갔다. 어느새 그녀의 정수리와 단전에 있던 무영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소소는 그대로 잠들었다. 치료를 하는 무영도 힘들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소소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다. 그 피로를 지금까지 병석에 누워만 있던 소소가 견딜 수는 없었다.
무영은 잠든 소소를 잠시 바라봤다. 비록 뼈와 가죽밖에 남징 낳은 보기 흉한 얼굴이었지만 무영이 보기에는 귀엽고 아름다웠다.
"뭐 이제는 잘 먹고 잘 자면 살도 찌고 예뻐질 테니까."
무영은 그렇게 가볍게 말한 후,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무영이 나간 방 안에는 소소이 고요한 숨소리만 가득했다.
때로는 지나치게 오래 생각하면 오히려 나쁜 결과를 내기도 한다. 더구나 생각하는 사람이 머리가 그리 잘 돌아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런 경향이 더 심하다.
염왕채의 부채주 등막평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정가장은 뭐라고 하더냐?"
"지원할 여력이 없다 합니다. 우리도 자중하기를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등막평의 수하 양조는 그렇게 말했지만 실제로 정가장에서는 강력하게 반대했다. 지금 서가장을 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전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양조는 정가장에서 해준 말을 그대로 할 수가 없었다. 등막평이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는 눈치 하나로 여기까지 버텨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눈치가 이제 슬슬 염왕채를 떠나라 하고 있었다.
"겁쟁이 같으니."
등막평은 그렇게 정가장을 간단히 평가하고는 양조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이건 그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말 훌륭한 계책이었다.
"넌 저놈들을 이끌고 서가장이 관련되어 있는 점포들을 쳐라."
"예?"
양조는 눈을 크게 떴다. 등막평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얼마 전에 새로 충원된 수적들이 보였다. 대부분 삼류 근처에도 못가본 놈들이었다.
하지만 그저 횡포를 부리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백오십이다. 그 정면 충분하겠지?"
백오십 명은 절대 적은 수가 아니다. 백오십이나 되는 수적이 장사꾼들을 덮친다면 소주 일대가 순식간에 들끓어 오를 것이다.
"채, 채주님. 그렇게 하면 관에서 나설 겁니다."
"그것도 네가 알아서 해결해. 서가장 놈들이 우르르 몰려나가도록만 하면 돼."
양조는 그제야 그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자신을 비롯한 백오십 부하들을 미끼로 서가장의 전력을 분산시켜 각개 격파를 할 생각인 것이다.
'이런 미친놈!'
이건 정말로 정상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낼 수 없는 계책이었다.
설사 성공을 하더라도 소주의 상권이 무너져 이득을 보기 어려울뿐더러 관부를 개입시켜 몰살당할 위험도 있었다.
그래도 만일 성공만 하면 서가장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지금 서가장에는 싸움이 가능한 무사가 칠십 정도뿐이다. 그 중 절반만 밖으로 끌어내도, 승산이 넘치는 싸움이 될 것이다.
현재 염왕채는 백오십 명의 어중이떠중이를 빼더라도 오십명이나 되는 그럴듯한 수적들과 백 명이나 되는 무공을 익힌 수적들이 있다.
그들이 한꺼번에 서가장에 들이치면 고작 서른 명 정도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겠지만. 이 닭대가리는 그런 건 전혀 생각도 안 했겠지.'
양조의 생각에 등막평이 이번 일을 저지르면 이래저래 염왕채는 끝이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적당히 돈을 챙겨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도망가는 건 도망가는 거고 시킨 일은 충실히 할 생각이었다. 소란스러우면 소란스러울수록 도망에 성공할 확률이 높으니까.
무영은 소소의 치료를 끝내고 서가장으로 향했다. 소소의 집과 서가장은 꽤 멀었다.
그 중 가장 가까운 길은 소주에서 상가가 밀집해 있는 번화가를 통과해 가는 길이었다. 무영은 당연히 그 길로 향했다.
"응?"
무영은 한적한 길을 걸어가다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 일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살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들고 험악한 표정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싸늘한 감정이 무영의 가슴을 헤집었다. 그들은 볼 것도 없이 수적들이었다.
지난번 자신의 약을 사간 사람들을 습격해 상처를 입히고 목숨을 빼앗을 자들이었다.
그들이 또 뭔가 일을 벌이기 위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그들이 달려가는 방향은 소주의 번화가였다. 무영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이놈들 멈춰라!"
무영은 큰 소리로 외치며 몸을 날렸다. 무영의 몸은 순식간에 수적들 앞을 가로막았다.
수적들은 갑자기 누군가 앞에 나타났음에도 무시하고 그냥 달렸다. 평소의 염왕채 수적들이라면 길을 가로막는 자는 단번에 갈라 버렸겠지만 지금 달리는 수적들은 평소와 많이 달랐다.
그들은 실력도 모자라고 독기도 조금 모자랐다. 길은 넓었으니 그냥 지나쳐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콰르릉!
어딘가에서 뇌성이 울렸다. 그리고 수적들이 달려가는 길에 뭔가가 떨어졌다.
콰과광!
"으허헉!"
"뭐야!"
앞에서 달리던 수적들은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뒤에서 달리던 수적들은 넘어진 동료들에 걸려 마찬가지 꼴이 되었다. 순식간에 절반이나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무영은 그렇게 바닥을 구르는 수적들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수적들은 황급히 몸을 일으켜 전열을 가다듬었다.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렸고, 넘어진 게 다였다.
"뭐, 뭐요?"
수적들은 감히 무영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 방금 전에 뭘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그 정도 위력을 보이려면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디로 가는 거냐?"
무영의 질문에 수적들이 약간 당황했다.
"우, 우리가 어디 가서 뭘 어떻게 하든 무, 무슨 상관이시오?"
앞으로 나선 것은 양조였다. 양조는 일단 다른 수적들을 지휘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서야 했다.
무영은 양조의 말에 피식 웃었다. 양조는 무영의 웃음을 보고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이런 젠장. 잘못 걸렸다.'
양조의 빠른 눈치가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걸렸다고 경고했다. 이 위기를 넘기지 않으면 그는 죽은 목숨이었다.
"그, 그러는 협사께서는 어찌 저희 갈 길을 막으시는 겁니까?"
양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양조의 어조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공손했다.
무영은 양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무영의 표정이 어찌나 차가웠는지 양조는 그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 물었다."
양조는 급히 대답했다.
"저, 저곳 번화가로 가고 있습니다."
"거긴 왜 가는 거지?"
"그, 그건......"
양조는 차마 행패를 부리러 간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무영의 눈이 조금 더 차가워졌다.
"하나 더 묻겠다. 지난번에 사람들에게서 약을 빼앗아 간 놈들이 누구냐?"
무영의 질문에 양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당시 가장 열성적으로 그 일을 했던 것이 바로 양조였다.
그런대로 무공도 높은 편이고 욕심도 많아 상당수의 신선단을 빼앗았고, 그 중 몇 개는 자신의 몫으로 빼돌리기까지 했다.
무영은 양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무영이 양조에게 그렇게 물은 이유는 양조의 몸에서 미약하나마 신선단의 향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체 누, 누가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한 건지......"
무영이 피식 웃었다.
"왜 모르지? 품에 소중이 간직한 그 약이 바로 신선단인데."
무영의 말에 양조가 화들짝 놀랐다. 설마 자신이 신선단을가지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 약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인 게 너로구나."
무영의 말에 양조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그것은 그렇다고 시인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무영은 차가운 얼굴로 다시 물었다.
"번화가로 가서 뭘 어떻게 하려고 했느냐?"
무영이 한 발 앞으로 걸으며 물었다. 양조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수적들은 양조와 무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의 눈에도 무영의 모습은 정말로 심상치 않았다. 무영의 몸에서 은은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 기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듣지 않아도 뻔하지. 수적들이 할 수 있는 게 강도짓 말고 또 뭐가 있나. 아니면 또 사람을 죽이려 했나? 어차피 나쁜 짓만 하며 살아갈 인생. 내가 지워주지."
무영의 말에 양조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무영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순간 정말로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서 지워질 거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무영이 한 발 앞으로 걸어갔다. 수적들은 그와 동시에 일제히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무영이 그 광경을 보고 피식 웃었다.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양조는 크게 소리쳤다.
"쳐라! 적은 한 놈이다!"
양조는 그 말을 하며 뒤로 몸을 뺐다. 한껏 긴장된 상태에서 양조의 외침을 들은 수적들은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달려갔다.
무기를 휘둘러 무영을 맞추기만 하면 될 것 같은 묘한 기대감이 생겨났다. 수적들의 눈이 흉흉해졌다.
무영은 수적들을 공격시키고 몸을 빼서 도망치는 양조의 등을 가만히 노려봤다. 그리고 주먹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무영의 주먹에서 뇌기가 일렁였다.
빠직! 빠직! 빠지지직!
뇌기가 점점 커졌다. 뇌전이 마구 튀어나와 무영의 주먹을 감싸고 돌았다. 마치 주먹에 벼락이 모여든 형상이었다.
수적들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수적들과 무영의 거리는 고작 다섯 걸음 정도였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빠직대는 뇌전이 수적들의 눈에 아프게 들어왔다.
"그, 그것을 어쩌실 생각이신지......"
수적 중 하나가 공손하게 물었다. 무영은 대답하지 않고 주먹을 앞으로 쭉 뻗어다.
꽈르릉!
"으허헉!"
수적들이 동시에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마치 눈앞으로 벼락이 몰려드는 것 같아 눈도 질끈 감았따.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수적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아무런 고통이 없었다.
수적들이 슬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기겁을 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무영의 모습 때문이었다. 무영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서 있었다.
"눈을 떠라."
무영의 말에 수적들이 동시에 눈을 떴다. 말을 듣지 않으면 벼락에 맞아 죽을 것만 같았따.
"일어서라."
수적들이 벌떡 일어섰다.
"앞으로 수적질을 그만두고 착실하게 살아라. 다시 수적질을 시작하면 내가 찾아갈 것이다. 어떻게 찾을지는 묻지 마라.
알아서 찾는 방법이 다 있으니. 의심나면 다시 수적질을 시작해라. 그러면 저렇게 될 것이다."
무영은 손을 들어 수적들의 뒤쪽을 가리켰다. 수적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경악한 얼굴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무영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한 사내가 바닥에 쓰러진 채 고통스럽게 온몸을 비틀고 있었다.
"끄어어어어!"
빠지지지직!
사내의 몸으 온통 뇌전에 휩싸여 있었다. 뇌전이 사내의 몸을 들락거릴 때마다 사내가 몸부림치며 비명을 토해냈다. 사내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벼락에 맞은 사람 같았다.
"으어어억!
수적들은 가슴이 싸늘히 얼어붙었다.
"그만 가도 좋다. 오늘 일은 잊어라."
수적들의 뇌리에 무영의 마지막 말이 틀어박혔다. 그들은 그대로 수채를 향해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다가 수채로 들어가면 벼락에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한 명도 수채로 향한 자는 없었다.
백오십 명의 수적이 그렇게 사라졌다.
무영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양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약을 빼앗기 위해 사람들을 죽인 자다.
게다가 동료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혼자 도망간 놈이다. 동정의 여지가 없었다. 수적들은 이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무영은 몸을 돌려 원래의 목적지로 향했다.
양조의 움직임이 점점 잦아졌다. 그리고 이매 멎었다.
소주 외각 한적한 곳에 벼락에 맞아 죽은 시체 한 구가 생겨났다.
등막평은 부하들을 잔뜩 이끌고 서가장으로 향했다. 이번 헤획은 시기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소주에서 수적들이 난동을 피우면 그 소식이 서가장으로 들어갈 것이고, 서가장 무사들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할 것이다.
그렇게 모든 상황을 정리한 무사들이 다시 서가장으로 돌아오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야 했다.
"이거 두근두근하는걸?"
등막평은 이번 일을 전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단 서가장 근처에서 대기할 수가 없었다. 서가장에서 이렇게 많은 수적들이 몰려온 것을 알아채면 아무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도 없었다.
즉, 서가장 무사들이 언제쯤 나갈 것인지 정확히 예측을 해야만 했다. 등막평은 그것을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앗다. 미리 몇 번 부하를 시켜 서가장과 번화가 사이를 달리게 해본 것이다.
양조가 소주의 상인들을 공격할 시기는 정해져 있다. 그렇게 되면 상인들이 서가장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서가장 무사들이 달려갈 것이다.
번화가와 서가장 사이를 몇 번 달리게 해 그 시간을 대충 계산했다. 등막평은 그 계산이 틀리지 않을 거라 자신했다.
"자, 지금이다. 가자."
등막평은 내심 서하린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하린이 상인들을 도우러 갔다면 훨씬 싸움이 편해질 것이다.
지난번에 서하린이 무섭게 날뛰는 모습을 봤다. 현재 염왕채에서 서하린을 대적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등막평은 미리 서하린과 서무룡을 상대할 자들을 뽑아 놨다.
한 명에게 각각 열 명씩 배정을 했다. 열 명이 협공을 하면 조금이나마 시건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 나머지를 정리하면 된다.
등막평은 이 허술한 계획이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믿었다.
백오십 명에 달하는 수적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곧장 서가장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중간에 달려오는 무사들과 부딪치지 않려고 무사들이 갈 만한 방향을 피해서 이동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등막평을 더더욱 깊은 수렁에 빠뜨렸다.
등막평의 눈에 서가장이 보였다. 등막평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 수적들이 무질서하게 그 뒤를 따랐다.
"으하하하! 당당하게 문으로 들어가 주마!"
등막평은 정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정문을 지키고 있는 무사가 둘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최소한 그들보다는 등막평이 더 강했다.
정문을 지키는 서가장 무사들 중 하나가 급히 품에서 작은 피리를 꺼내 불었다.
"삐이이이익!"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하늘을 꿰뚫었다.
등막평은 정문에 선 무사 둘을 무시하고 문에 일격을 날렸다. 그의 도가 바람을 가르며 문을 향해 쇄도했다.
콰과광!
등막평도 나름대로 도기를 발출할 수 있는 고수였다. 그의 도기에 서가장 정문이 산산조각 났다. 등막평은 자욱하게 날리는 나뭇조각들 사이로 몸을 던졌다.
등막평이 문 안으로 들어서자, 그 뒤를 따라 수많은 수적들이 몰려들었다. 정문을 지키던 무사 둘은 각자 세명의 수적에게 둘러싸여 고전을 면치 못했다.
나머지 수적들이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또 왔단 말이냐!"
서무룡이 크게 외치며 검을 휘두르며 나타났다. 서가장 무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정신없이 검을 휘둘렀다. 한데 그 수가 조금 많았다.
등막평은 크게 당황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얼핏 보기에도 삼사십 명은 훨씬 넘어서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직도 내원쪽에서 서가장 무사들이 꾸여꾸역 몰려나오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 양조, 이 자식!'
등막평은 양조가 일을 실패했거나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이번 작전은 완벽한 실패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별것 아니다! 다 죽여!"
등막평은 그렇게 외치며 수적 둘을 상대하고 있는 서가장 무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등막평의 앞을 서무룡이 가로막았다.
"네놈 상대는 나다!"
서무룡을 상대할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서가장 무사들은 한 명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모두 강했다.
그리고 서하린이 등장했다.
쉬가가가각!
서하린의 검이 사방을 휘저었다. 그녀의 검은 얼마 전보다 훨씬 더 날카롭게 다듬어졌다. 실전을 겪고 며칠 검술을 더 다듬어서 팔성의 경지를 완전히 소화해낸 것이다.
그녀의 검은 두 번 이상 막아내는 수적이 없을 정도였다.
장내는 빠르게 정리되어갔다.
무영은 서가장으로 향하며 상념에 잠겼다. 최근 있었던 일들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길지도 않았던 시간인데 그동안 사람을 둘이나 죽였다.
스승과 지내면서 사람을 안 죽여 본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살리려다가 실수로 죽인 경우도 있고, 산적들과 싸우다가 산적을 죽여본 적도 있다. 하지만 무영은 그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흡혈광마를 죽였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마음이 아팠다. 사람은 힘이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죽일 권리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다치게 될 것이 뻔히 보이는데 그냥 방치할 수는 없었으니까.
"후우,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무영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발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서거장에 다가가던 무영은 희미하게 번지는 피 냄새를 맡았다. 얼마 전 서가장이 습격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이런! 또!"
무영은 다급히 움직였다. 무영의 신형이 마치 안개처럼 흩어져 빠르게 쏟아져나갔다.
무영은 순식간에 서가장 정문에 도착했다.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싸움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었다.
무영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섰다. 막 등막평의 몸이 쓰러지는 중이었다. 그를 쓰러뜨린 사람은 다름 아닌 서무룡이었다.
무영은 심각한 얼굴로 장내를 살폈다. 수적들이 무더기로 죽어 있었고, 다친 채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무영이 얼굴을 찌푸렸다.
서가장 무사들도 다친 사람들이 만이 보였다.
무여이 서가장 안으로 들어서자, 무사들을 비롯해 서무룡과 서하린이 그를 발견했다.
"헉!"
다친 무사들이 무영을 보고 기겁을 했다. 그 중 그리 크게 다치지 않은 사람들은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들은 그 고통 심한 무영의 약을 바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가 너무 심한 사람은 어쩔 수가 없었다.
"크윽."
그들은 눈물을 머금었다.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겠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을 겪어야 살아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때마침 잘 왔네."
서무룡이 무영을 반겼다. 이럴 때 무영의 존재는 정말로 든든한 힘이 된다. 다친 무사들을 말끔히 고칠 수 있지 않은가. 서가장 무사들 중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다친 사람은 무영이 모두 고쳐줄 것이다. 즉, 전력 손실이 한 명도 없다는 뜻이다.
"으하하하! 염왕채가 끝장났으니, 이제 더 이상 소주에서 우리 서가장에 덤벼들 놈들은 없겠군. 으하하핫!"
만일 염왕채가 정가장과 힘을 합해서 쳐들어왔다면 정말로 위험할 뻔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염왕채 혼자서 쳐들어왔고, 결국 그들은 완전히 몰락했다.
서무룡은 무영에게 다가가 부탁했다.
"자네의 도움을 받고 싶은데 괜찮겠나?"
서무룡은 부드럽게 말했다. 무영의 기분을 거슬러선 안 된다는 것을 지난번 남궁세가의 좌우쌍위가 직접 보여주지 않았던가.
서무룡의 말은 꽤 정중했다. 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지금은 다른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이들의 상처를 돌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린, 도와줘."
서하린이 고개를 끄덕이고 무영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모습을 서가장 무사들이 두려운 눈으로 바라봤다.
서무룡은 다치지 않은 무사들을 모두 모았다.
"이대로 염왕채로 간다. 이번 기회에 그곳을 완전히 정리한다. 소주에 평화가 올 거야."
서무룡의 말에 무사들이 전의를 불태웠다. 비록 힘들었지만 염왕채를 정리할 힘은 남아 있었다.
수십 명의 무사들이 서가장을 나섰다. 그들을 이끄는 사람은 서무룡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뒤에 서가장의 총관이 따라갔다. 총관이 따라가는 이유는 염왕채를 정리하면 필연적으로 나올 재물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서가장에는 내장을 끊어내는 듯한 비명소리가 하늘을 찔렀고, 염왕채는 완전히 사라졌다.
첫댓글 즐독 감사,//
감사합니다.
즐독! 늘 고맙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
즐감요.
고맙습니다,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보고갑니다!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게 잘 읽고갑니다. 고맙습니다!
ㅈㄷ
감사합니다
즐독
즐감합니다수고하세요
즐감!
감사합니다 ^.^
즐감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즐감 ~~~~~~~
^*^
즐감 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
잘 보고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