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원정대 민준영, 박종성 대원의 귀향에 부쳐'
민준영.
Extreme Rider 9기 졸업.
충북 직지원정대 등반대장
2009년 가을 안나푸르나 히운출리 신루트개척 중 실종사.
요세미티 쇼티스트 스트로( a4+) 국내 최초
단독등반
5.13급의 Free Climber
클라이밍, Aid Climbing 시스템 연구와 공부를 게을리 하지않았던 노력형 알피니스트.
제 1회 익스트림라이더 빅월페스티벌 우승 및 대회 최다 우승
청주 타기클라이밍센터 운영
2001년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가을반 9기에서 준영을 처음 만났다.
나는 당초 그 전 해 7기에 입교하려 했으나 함께 입교하려 했던 나의 자일 파트너 팔봉의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1년 늦게 들어가게 되었고 그래서 준영과 동기가 되었는데, 준영은 마지막까지 줄을 묶었던 평생의 자일 파트너 종성. 그리고 반려자 미영과 함께 입학을 했었다.
아마 내가 7기로 입학했더라면 남인우와 동기가 되었을 터이고, 공재은형이 권유한대로 함께 1기로 입학했더라면 재은형, 인석형과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인생에 가정은 무의미하듯 가정은 가정일 뿐.
당시 9기 졸업때 우수교육생에게 주는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은 김팔봉, 우수상은 민준영이 받았었다.
나보다 앞서 6기를 졸업한 전용학은 적벽 등반 한 번 해보려는 소박한 마음으로 ER등산학교에 입학했지만 졸업하자마자 '무라길' 재등 및 '적벽2836'과 소토왕골 '산빛 JK' 갱기좌벽 '붉은악마' 등 많은 인공루트 개척을 했고 지금도 많은 클라이머들이 즐겨찾는 빛나는 다수의 자유등반루트들을 개척했다.
ER에서 인공등반을 배워, 거기에서 배운 등반 지식과 역량을 진일보시킨 대표적인 산악인이자 모범적인 알피니스트이다.
그리고 뒤에 해당학교의 대표강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렇듯 남인우, 전용학, 이명희, 이명선 등등 초창기 ER등산학교 졸업생들은 인공등반 뿐 아니라 자유등반등반역량이 탁월한 클라이머들이 많았었다.
졸업 후 그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고 함께 갱기좌벽을 비롯한 많은 벽들을 함께 올랐었고 겨울이면 다함께 전국의 빙벽대회에 참가해서 함께 즐기곤 했다.
어느 날 종로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 하자는 강사진들의 초대에 가보니 대회(ER빅월페스티발)운영에 대한 계획을 꺼내었고, 경험없는 우리들은 그 때부터 대회의 틀을 잡고 대회운영에 대한 세부사항들을 논의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대회 일정은 초대강사 최승철 김형진의 기일에 맞춰 9월 마지막 주에 하기로 했고 경험은 없지만 일단 부딪혀 보자는 패기(hungry mind)와 약간의 오기도 작용을 했던 것 같다.
1회 빅월대회 결승전.
지금도 기억나는, 당고개 외벽암장에 설치된 팬듈럼구간에서의 수많은 도전자들의 좌절과 탈락.
그리고 민준영의 차례가 왔을 때 종성의 확보를 받은 준영은 단 한 번의 동작으로 캠훅을 이용해 홀드를 잡고 넘어가 완등까지 이끌어낸 그의 등반은 심판진, 관중들의 환호를 이끌어내기에 충준했다.
그 후 준영은 이상우와 더불어 대회우승을 양분하다가 은퇴(?)하고 대회 루트세팅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자청해서 맡는 의리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인공벽이 아닌 자연벽에서서의 대회에서 치러지던 유일했던 당시 대회에, 꼭 참가하고 싶다며 양해를 구하던 준영은 녹슬지 않은 실력으로 다시 한 번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다.
그 후 그는 요세미티와 많은 등반지에서 눈부신 등반을 이루어내고 타기암장을 차려 교육에도 힘을 쓰고 체계적인 등반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기도 했었다.
노래방에 가면 늘상 이 노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즐겨 부르던 민준영.
영결식에서 많은 눈물을 흘리던 준영의 반려자 미영이.
더 많은 눈물을 흘리던, 살아남은자의 아픔을 눈물로 떨구며 무릎을 꿇어 사죄하던 죄인같던 대원들.
...
그들이 히말라야 계곡에서 10년 만에 발견되었다.
준영아, 종성아!
먼 바다에서 모천으로 회귀한 연어처럼 이제 고향에서 마음껏 쉬렴!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 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 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여러 갈랫길중 만약에 이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돌아서 갈수 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일지라도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저넓은 꽃밭에 누워서 나 쉴수 있겠지
여러 갈랫길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망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 길일지라도
포기할순 없는 거야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뜨겁게 날 위해 부서진 햇살을 보겠지
그 후로는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라는 걸 알아
수없이 많은 걸어 가야 할
내 앞길이 있지 않나
그래 다시 가다 보면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어느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 하겠지
보이지도 않는 끝...
지친 어깨 떨구고 한숨짓는
그대 두려워 말아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걸어 가다 보면 걸어 가다 보면
...
※2008년 7회 인공등반대회. 유일하게 자연바위(유양리 채석장)에서 치러진 대회에서 우승했던 민준영.
![](https://t1.daumcdn.net/cafeattach/1YO1k/78c3a01bdf8d85880f8cd6e46c8cc0ebb84b62ab)
우리 산악인 고 민준영, 박종성 직지원정대원이 돌아왔습니다.
2008년 파키스탄 차라쿠사 지역 미답봉을 올라 히말라야 유일의 우리 이름인 직지봉이라 명명했고, 2009년 안나푸르나 히운출리 북벽 직지루트를 개척하던 도중 실종되었습니다.
히말라야 설원에 잠든 지 꼬박 10년만의 귀향입니다.
지난 10년, 가족들과 동료들은 마음 속에서 두 대원을 떠나보내지 못했습니다.
안나푸르나가 이 간절한 마음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합니다.
유가족과 동료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두 대원이 가족의 품에서 따뜻하게 잠들길 바랍니다.
오직 자신들의 힘으로 등반하여 우리 금속활자본 직지를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두 대원은 진정한 알피니스트였습니다.
국민들은 두 대원의 도전정신과 도전으로 알리고자 했던 직지 모두 매우 자랑스럽게 기억할 것입니다.
히말라야에는 아직 우리 산악인 100여 명이 잠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두 분 대원이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 처럼 언제나 실종 산악인들의 귀향을 염원할 것입니다.
산악인들이 가슴에 품은 열정은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가지게 합니다.
민준영, 박종성 대원, 잘 돌아오셨습니다.
- 대통령 문재인
첫댓글 누구나 다 자기만의 등반철학이 있겠지요마는
직지원정대의 등반정신은 확실히 남다른 것이었지요
직지원정대의 특별한 귀향을 환영합니다